“난··· 절대 당신처럼 살지 않아.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그렇게 살지 않을꺼야. 평생 동안 남을 상처주고! 결국 가족마저 상처주고! 당신마저 상처받고···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어···”
이를 악물고 떨리는 눈동자에서 흐르는 슬픔을 애써 참으며 외치는 나···
현재의 내 모습이 보인다.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의 길을 가고 있는 나···
결국 나의 종착지는 사랑했지만 누구보다 원망스러웠던 그 사람과 같다···
“아저씨···”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 그리고 낯익다. 은아···? 그렇다면 모두 꿈?
나의 모습을 바라보다 힘들게 눈을 뜨려한다.
곧 의식을 회복하며 빛이 시야에 들어왔고 바로 눈앞에 은아의 얼굴이 보였다.
“아저씨, 아저씨··· 괜찮아요?”
온몸에 바늘이 박힌 듯 통증이 밀려왔지만 애써 웃었다.
그러자 은아가 안심한 듯··· 은아?
“아저씨··· 아님···행님!”
흐릿한 초점을 애써 맞추며 다시 바라봤다.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는 사람은 은아가 아닌 기적이었다.
“행님! 행님!! 눈알 굴러갑니꺼!! 정신 차려보소!!”
····· 흔드는 강도를 보니 나를 죽일 생각이구나.
“행님!!!!”
더욱 고통을 느끼며 눈을 부릅뜨자 기적이의 쌩얼이 제대로 보였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주먹.
“행··· 커허어억! 왜 때리십니꺼?”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맞은 턱을 부여잡고 묻는 기적.
······ 내 눈을 살해하려 했잖아.
나는 곧 옆에 있던 원만에게 시켜 기적의 얼굴 바로 앞에 거울을 보여주었다.
“행님··· 정말 너무 하십··· 커헉.”
자신의 얼굴을 눈앞에서 보자 흠칫 놀라는 기적.
“제가 잘못했네예···”
곧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주방으로 사라진다.
‘하여튼 저 놈은 성형먼저 해야 해.’
얼굴 자체가 특급 공포인 기적을 보던 나는 곧 정신을 잃기 전 일을 떠올렸다.
분명 은아를 보고 쓰러졌었는데···
“은아는?”
“은아예?”
옆에서 박카스에 빨대를 꽂던 원만이 대답한다.
“은아가 행님 쓰러진 것 보고 저희한테 연락 했습니더. 그리고 같이 왔는데 시간이 늦어서 좀 전에 돌아갔습니더.”
원만이 주는 박카스를 빨대로 쪽쪽 빨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향하고 있다.
그럼 도대체 난 몇 시간이나 정신을 잃었던거야?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몸에 느껴지는 통증에 움찔하며 다시 누워 원만이에게 말했다.
“원만아···”
“행님. 와예?”
“나 소변 마렵다.”
“못 움직이겠습니꺼?”
······· 니 3박 4일 동안 패줄테니 한번 움직여볼래?
“그럼 박카스 있다 아입니꺼!”
원만은 박카스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이 새끼가 나를 뭐로 보고 진짜···
“닌 박카스로 되냐?”
“예··· 지는 되는데예.”
왠지 원만이에게 동정의 마음이 피어오른다.
“난 안 되니 박카스 말고···”
“쌍화탕예?”
······ 아 진짜 이새끼.
“딩동댕.”
“알겠습니더. 곧 가져올께예.”
왠지 나한테도 동정심이 피어오른다···
원만이가 준 쌍화탕 병으로 대충 일을 마친 나는
조금 흘린 것을 비밀로 한 체 치워버렸고
그때 한참이나 주방에 있던 기적이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로는 음식이었다.
“행님··· 은아가 만든 것입니더!”
뚜껑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음식은 바로 죽이었다.
“고 계집애가 참으로 착하다 아입니꺼. 가기 전까지 행님 간호하고··· 저희들에게 만드는 방법도 가르쳐 줬습니더.”
나에게 복수를 한다더니··· 천성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은아의 모습을 상상하며 실소를 흘린 난 곧 죽을 한 입 맛보았다.
분명 너라면 요리도 잘하겠··········
·······시비거냐?
“이거, 진짜 은아가 만든 것 맞냐?”
만약 사실이라면 최대의 복수다.
“그, 그게예···”
하지만 눈치를 보는 원만과 말을 더듬기 시작한 기적을 보니 나의 심증은 확정으로 바뀌었다.
“사실은 저희들이 배가 고파서예··· 좀 먹다보니 없다 아입니꺼. 그래서 은아가 알려준 방법으로 새로 만들었어예. 와예? 맛이 이상합니꺼?”
···· 음식이란 것 자체가 이상하다.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원만에게 죽을 내밀었다.
곧 원만은 한 입 맛을 보더니···
정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기적을 바라본다.
“니까지 와그러노! 내가 행님 걱정되서 열심히 만든긴데!”
···그래서 나를 밑밥으로 버리고 니들끼리 도망쳤구나.
결국 기적은 맛이 궁금했는지 죽을 맛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쓰레기통에 음식들을 버렸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팔굽혀 펴기를 하며 외친다.
“개념아!”
“돌아와!”
#
결국 나의 배고픔은 원만이가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으로 해결하였다.
“그런데 행님예···”
음식을 치우던 기적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병원 안 가도 되겠습니꺼···”
기적의 말에 몸을 돌아보니 한숨만 나왔다.
부러지거나 큰 문제는 없지만 온통 타박상에 출혈도 심해 어지러웠다.
그런데··· 날 버린 새끼가 왜 걱정을 해?
“네가 나를 버리는 순간부터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한다.”
“행님··· 버리다니예! 무슨 말을 그리 섭섭게···”
······시발놈아··· 네가 지금 섭섭하다는 말이 나와?
“지는 행님을 믿었다 아입니꺼! 행님이라면 그 명석한 두뇌와 거침없는 짐승의 본능으로 살아남는다! 그게 지 믿음이었어예!”
진심어린 구라로 자신의 죄를 사하려는 기적.
패고 싶지만 지금 내 몸 상태가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다.
그렇다고 원만이가 내 말을 쉽게 들을 리가··· 아.
“원만아.”
“예?”
“카트 캐쉬 차 사주마. 저 새끼 처리 좀 해라.”
“·············”
나의 말에 황당하단 표정의 원만.
젠장··· 캐쉬 차로는 부족한가?
“행님···”
“왜?”
“지가 겨우 캐쉬 차에 우정을 버릴 놈으로 보입니꺼!! 그렇다면 진짜····”
역시 캐쉬 차 한 대로는 부족했던거야.
“사람 잘 보십니더!! 아주 죽여놓겠습니더.”
“··············”
원만은 다급히 기적을 화장실로 데리고갔고···
잠시 후 기적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방안에 가득찼다.
“행님!! 지도 캐쉬 차 사주세예!! 커허억!"
잠시 후 처절하게 피떡이 된 기적이는 속상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고,
원만 역시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형님을 버리고 그렇게 뛰었으니 피곤하시겠지.’
꼭 몸이 나으면 밟아버린다는 다짐을 하며 눈을 감았지만 잠이 들지 않는다.
자꾸 정신을 잃었을 때 꾼 꿈이 떠올라서이다.
‘쓸데없는 기억들···’
애써 고개를 강하게 젓다가 어지러움에 헛구역질을 하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막 잠에서 깬 기적이 놀라며 다가왔다.
그래도 필요 없는 의리하난 좋은 놈이지···
“행님!! 애 뱄어예?”
“···········”
녀석의 얼굴을 보니 정말 진지하다.
“원만이 애다.”
“············저 새끼가!!”
·자는 원만이에게 달려가서 패는 것을 보니··· 진짜로 믿나 보다.
“행님은 내가 먼저 따먹을려고 했는디!!”
몸아 빨리 나아라. 죽여야 될 놈이 있으니.
#
새벽까지 잠을 설치던 난 결국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본 뒤에야 잠이 들었고,
다음날 오후 늦게 깨어났다.
그리고 침대 옆 탁자에 기적이가 남긴 메모가 있었다.
-행님! 이번에는 아주 지대로 끓였어예! 큰 형님이 부르셔서 저희는 먼저 나갑니더!-
메모지 옆에는 죽이 있었고,
잠을 자서인지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죽을 가지고 간 나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몸이 빨리 나아야했다.
하지만 저 죽은 분명 회복속도를 방해할 것이다.
죽을 버린 뒤 힘들게 다시 낑낑거리며 침대로 가는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곧 문이 열리더니 은아가 보였다.
은아가 올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간 기적과 원만.
급하게 왔는지 교복 차림으로 온 은아.
“아저씨··· 괜찮아요?”
도톰하고 붉은 입술로 조심스럽게 묻는다.
피식··· 실소가 나왔다.
자기를 망가뜨린 나를 걱정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바보 같은 계집애···
“괜찮아. 걱정 하지마.”
그 말과 함께 침대로 돌아서는 나를 보더니···
“괜찮은 사람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질러요?”
예리한 년.
“이리와요. 부축해드릴께요.”
“아냐··· 괜찮아.”
“걱정말고 와요.”
“괜찮다니깐?”
끝내 은아는 내가 거절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걸친다.
그리고 우리는 한 걸음 걸었고···
“다왔다···”
“예···”
그래서 괜찮다고 그리 말했것만.
침대에 누운 나를 보며 은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심히 찾더니 곧 맛있는 냄새가 방안에 진동한다.
기적이가 만든 것처럼 짜가리가 아닌 진품 음식!
곧 은아가 음식을 가져왔다. 다쳐서인지 죽을 한 은아.
“아저씨. 많이 드세요.”
·······저기 10인분은 넘겠는데?
“가, 같이 먹자.”
“저는 먹고 왔어요. 많이 드세요.”
은아는 정말 사심 없는 표정의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남겨도 뭐라 하지는 않겠지?’
곧 죽을 한 숟가락 퍼서 후후 식힌 뒤 입에 넣었고 나는 맛있다는 뜻으로 웃어주었다.
그러자 긴장하고 있던 은아도 헤헤 웃고.
“맛있죠?”
“어. 정말 맛있어. 살면서 먹은 죽 중 최고야.”
····비록 기적이가 만든 것과 편의점 죽 밖에 안 먹어봤지만.
“그래요? 그럼 남기지 말고 다 드세요!”
“····”
10인 분이라니깐?
“농담이에요. 헤헤. 남으면 냉장고에 보관하세요.”
은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죽을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나는 먹기만 했고, 은아는 바라보기만 했다.
“저기 은아야.”
“예?”
“왜 나에게 잘해주냐? 너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고··· 복수 하겠다고 네 입으로 말했으면서.”
나의 말에 은아의 얼굴이 잠시 굳었지만 곧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웃는 모습이 우는 것보다 더 슬프게 느껴진다.
“아저씨는 왜 저에게 잘해주세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아저씨가 건강해져야 복수를 할 수 있잖아요. 아프면 그 만큼 복수할 시간이 늦어지니···”
·······무서운 계집애.
“헤헤. 농담이고요··· 아무리 미워도 어떻게 다친 사람을 그냥 놔둬요. 좋든, 싫든, 한 동안 얼굴 봐야 사이인데··· 아저씨라면 그럴 수 있어요?”
····어. 라고 대답했다가는 죽을 뺏길 것 같다.
말없이 죽을 먹는 나를 향해 다시 은아가 말하고···
“아저씨.”
“어?”
“다치지 마요.”
“········”
“전 아저씨에게 복수할 마음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어요. 매일, 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이 들 만큼 힘이 들고, 그러고 싶지만 그 마음 하나로 버티고 있다고요. 그러니··· 다치지 마세요. 다쳐도 저한테 다쳐야해요. 어제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고개를 들어보니 곧 울 것 같은 은아가 보였다.
나는 말없이 숟가락을 내려놓았고···
···배부를 만큼 먹었거든.
“미안하다.”
“예?”
한 번도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한 적이 없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울어도, 아파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들에게는 엿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 역시 그럴 때마다 상처를 받았고 단지 주어진 인생이 다를 뿐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지금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유 따위는 없다. 그냥··· 그냥 말하고 싶었다.
“미안하다··· 정말.”
나의 말에 은아의 얼굴이 차갑게 굳는다.
마치 화가 난 표정.
곧 나의 멱살을 잡더니 외치는 은아.
······화가 난 것이었군.
“그런 말 하지마요! 아저씨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하면··· 전 어떻게 해요? 아저씨 선택이잖아요. 이런 일을 하는 것도, 그리고 저를 이렇게 만든 것도, 모두 아저씨의 결정이고, 저의 선택이잖아요!! 그런데 아저씨가 그런 말을 하면 저 어떻게 해요? 아저씨가 자신의 결정을 후회 한다면··· 제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무는 저는 어떻게 하냐고요!!”
티는 내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은아가 얼마나 괴로울지, 얼마나 힘들지 말이다.
그리고 그 슬픔을 처음으로 나에게 털어 놓는 은아.
····침 튀지 마라고 한다면 살해당하겠지?···
나는 은아 몰래 조심스럽게 침을 닦았고
곧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똥 마렵다.”
울다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은아는 곧 웃음을 터트렸다.
젠장. 똥마려운 것이 웃겨?
“부축 해드릴게요.”
은아의 말에 거절을 하려던 나는 조금 전 고집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우리는 화장실 문 앞에 도착했고···
“따라 들어오게?”
내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물러서는 은아.
곧 나는 화장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많이 힘든 것 안다. 우리가 증오스럽고, 네 인생이 원망스럽겠지. 하지만 나쁜 생각은 하면 안 된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고, 엿 같아도 절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 내가 죽일 놈이니. 나를 원망하고 미워해서 버텨라. 죽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나 먼저 죽이고 죽으란 말이다. 그러니 나 같이 나쁜 새끼가 살아있는 한··· 너도 살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행복한 날이 오지 않겠냐···”
절대 그러면 안돼. 그런 생각조차 하면 안돼··· 그런 바보는 한 명으로 족해····
한숨을 내쉬며 변기에 앉아 집중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은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집중하기는 글렀군.
“아저씨···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마요. 제가 아저씨 더 미워 할 수 있게··· 미워하고, 미워 할 수 있게··· 그러지 마세요··· 아저씨가 제 걱정을 하고 자꾸 그러면··· 저 아저씨 미워하기 힘들어지잖아요···”
그 말 이후··· 우리는 한참이나 침묵을 지켰다.
절대 내가 집중한다고 그런 것이······· 맞다.
결국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은아야···”
“예···”
슬픔에 젖은 은아의 목소리.
정말 저 아이에게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잠시 망설이다 힘겹게 말하는 나.
“휴지 없다···”
“············”
물로 씻을 순 없잖아····
잠시 후 은아의 손이 조심스럽게 화장실 안에 휴지를 놓고 사라졌고,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 통화를 하던 은아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가버렸다.
“아저씨··· 죽 꼭 저녁에도 드셔야 해요. 그리고 나을 때 까지 다른 일은 하지 말고 쉬셔야 하고요. 저 가봐야겠어요··· 일찍 끝나면 다시 찾아올게요···”
걸레소녀 5.
네이트분들 좋은하루 되세요.
#
어린 나의 모습이 보인다.
철없는 꼬마아이 시절,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던 그때.
어느덧 다 큰 10대 후반 때의 모습이 보인다.
무엇이 그렇게 서럽고, 슬프며, 원망스러운지 사진 속 남자를 보며 외치고 있다.
“난··· 절대 당신처럼 살지 않아.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그렇게 살지 않을꺼야. 평생 동안 남을 상처주고! 결국 가족마저 상처주고! 당신마저 상처받고···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어···”
이를 악물고 떨리는 눈동자에서 흐르는 슬픔을 애써 참으며 외치는 나···
현재의 내 모습이 보인다.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의 길을 가고 있는 나···
결국 나의 종착지는 사랑했지만 누구보다 원망스러웠던 그 사람과 같다···
“아저씨···”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 그리고 낯익다. 은아···? 그렇다면 모두 꿈?
나의 모습을 바라보다 힘들게 눈을 뜨려한다.
곧 의식을 회복하며 빛이 시야에 들어왔고 바로 눈앞에 은아의 얼굴이 보였다.
“아저씨, 아저씨··· 괜찮아요?”
온몸에 바늘이 박힌 듯 통증이 밀려왔지만 애써 웃었다.
그러자 은아가 안심한 듯··· 은아?
“아저씨··· 아님···행님!”
흐릿한 초점을 애써 맞추며 다시 바라봤다.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는 사람은 은아가 아닌 기적이었다.
“행님! 행님!! 눈알 굴러갑니꺼!! 정신 차려보소!!”
····· 흔드는 강도를 보니 나를 죽일 생각이구나.
“행님!!!!”
더욱 고통을 느끼며 눈을 부릅뜨자 기적이의 쌩얼이 제대로 보였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주먹.
“행··· 커허어억! 왜 때리십니꺼?”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맞은 턱을 부여잡고 묻는 기적.
······ 내 눈을 살해하려 했잖아.
나는 곧 옆에 있던 원만에게 시켜 기적의 얼굴 바로 앞에 거울을 보여주었다.
“행님··· 정말 너무 하십··· 커헉.”
자신의 얼굴을 눈앞에서 보자 흠칫 놀라는 기적.
“제가 잘못했네예···”
곧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주방으로 사라진다.
‘하여튼 저 놈은 성형먼저 해야 해.’
얼굴 자체가 특급 공포인 기적을 보던 나는 곧 정신을 잃기 전 일을 떠올렸다.
분명 은아를 보고 쓰러졌었는데···
“은아는?”
“은아예?”
옆에서 박카스에 빨대를 꽂던 원만이 대답한다.
“은아가 행님 쓰러진 것 보고 저희한테 연락 했습니더. 그리고 같이 왔는데 시간이 늦어서 좀 전에 돌아갔습니더.”
원만이 주는 박카스를 빨대로 쪽쪽 빨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향하고 있다.
그럼 도대체 난 몇 시간이나 정신을 잃었던거야?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몸에 느껴지는 통증에 움찔하며 다시 누워 원만이에게 말했다.
“원만아···”
“행님. 와예?”
“나 소변 마렵다.”
“못 움직이겠습니꺼?”
······· 니 3박 4일 동안 패줄테니 한번 움직여볼래?
“그럼 박카스 있다 아입니꺼!”
원만은 박카스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이 새끼가 나를 뭐로 보고 진짜···
“닌 박카스로 되냐?”
“예··· 지는 되는데예.”
왠지 원만이에게 동정의 마음이 피어오른다.
“난 안 되니 박카스 말고···”
“쌍화탕예?”
······ 아 진짜 이새끼.
“딩동댕.”
“알겠습니더. 곧 가져올께예.”
왠지 나한테도 동정심이 피어오른다···
원만이가 준 쌍화탕 병으로 대충 일을 마친 나는
조금 흘린 것을 비밀로 한 체 치워버렸고
그때 한참이나 주방에 있던 기적이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로는 음식이었다.
“행님··· 은아가 만든 것입니더!”
뚜껑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음식은 바로 죽이었다.
“고 계집애가 참으로 착하다 아입니꺼. 가기 전까지 행님 간호하고··· 저희들에게 만드는 방법도 가르쳐 줬습니더.”
나에게 복수를 한다더니··· 천성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은아의 모습을 상상하며 실소를 흘린 난 곧 죽을 한 입 맛보았다.
분명 너라면 요리도 잘하겠··········
·······시비거냐?
“이거, 진짜 은아가 만든 것 맞냐?”
만약 사실이라면 최대의 복수다.
“그, 그게예···”
하지만 눈치를 보는 원만과 말을 더듬기 시작한 기적을 보니 나의 심증은 확정으로 바뀌었다.
“사실은 저희들이 배가 고파서예··· 좀 먹다보니 없다 아입니꺼. 그래서 은아가 알려준 방법으로 새로 만들었어예. 와예? 맛이 이상합니꺼?”
···· 음식이란 것 자체가 이상하다.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원만에게 죽을 내밀었다.
곧 원만은 한 입 맛을 보더니···
정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기적을 바라본다.
“니까지 와그러노! 내가 행님 걱정되서 열심히 만든긴데!”
···그래서 나를 밑밥으로 버리고 니들끼리 도망쳤구나.
결국 기적은 맛이 궁금했는지 죽을 맛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쓰레기통에 음식들을 버렸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팔굽혀 펴기를 하며 외친다.
“개념아!”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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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의 배고픔은 원만이가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으로 해결하였다.
“그런데 행님예···”
음식을 치우던 기적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병원 안 가도 되겠습니꺼···”
기적의 말에 몸을 돌아보니 한숨만 나왔다.
부러지거나 큰 문제는 없지만 온통 타박상에 출혈도 심해 어지러웠다.
그런데··· 날 버린 새끼가 왜 걱정을 해?
“네가 나를 버리는 순간부터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한다.”
“행님··· 버리다니예! 무슨 말을 그리 섭섭게···”
······시발놈아··· 네가 지금 섭섭하다는 말이 나와?
“지는 행님을 믿었다 아입니꺼! 행님이라면 그 명석한 두뇌와 거침없는 짐승의 본능으로 살아남는다! 그게 지 믿음이었어예!”
진심어린 구라로 자신의 죄를 사하려는 기적.
패고 싶지만 지금 내 몸 상태가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다.
그렇다고 원만이가 내 말을 쉽게 들을 리가··· 아.
“원만아.”
“예?”
“카트 캐쉬 차 사주마. 저 새끼 처리 좀 해라.”
“·············”
나의 말에 황당하단 표정의 원만.
젠장··· 캐쉬 차로는 부족한가?
“행님···”
“왜?”
“지가 겨우 캐쉬 차에 우정을 버릴 놈으로 보입니꺼!! 그렇다면 진짜····”
역시 캐쉬 차 한 대로는 부족했던거야.
“사람 잘 보십니더!! 아주 죽여놓겠습니더.”
“··············”
원만은 다급히 기적을 화장실로 데리고갔고···
잠시 후 기적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방안에 가득찼다.
“행님!! 지도 캐쉬 차 사주세예!! 커허억!"
잠시 후 처절하게 피떡이 된 기적이는 속상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고,
원만 역시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형님을 버리고 그렇게 뛰었으니 피곤하시겠지.’
꼭 몸이 나으면 밟아버린다는 다짐을 하며 눈을 감았지만 잠이 들지 않는다.
자꾸 정신을 잃었을 때 꾼 꿈이 떠올라서이다.
‘쓸데없는 기억들···’
애써 고개를 강하게 젓다가 어지러움에 헛구역질을 하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막 잠에서 깬 기적이 놀라며 다가왔다.
그래도 필요 없는 의리하난 좋은 놈이지···
“행님!! 애 뱄어예?”
“···········”
녀석의 얼굴을 보니 정말 진지하다.
“원만이 애다.”
“············저 새끼가!!”
·자는 원만이에게 달려가서 패는 것을 보니··· 진짜로 믿나 보다.
“행님은 내가 먼저 따먹을려고 했는디!!”
몸아 빨리 나아라. 죽여야 될 놈이 있으니.
#
새벽까지 잠을 설치던 난 결국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본 뒤에야 잠이 들었고,
다음날 오후 늦게 깨어났다.
그리고 침대 옆 탁자에 기적이가 남긴 메모가 있었다.
-행님! 이번에는 아주 지대로 끓였어예! 큰 형님이 부르셔서 저희는 먼저 나갑니더!-
메모지 옆에는 죽이 있었고,
잠을 자서인지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죽을 가지고 간 나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몸이 빨리 나아야했다.
하지만 저 죽은 분명 회복속도를 방해할 것이다.
죽을 버린 뒤 힘들게 다시 낑낑거리며 침대로 가는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곧 문이 열리더니 은아가 보였다.
은아가 올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간 기적과 원만.
급하게 왔는지 교복 차림으로 온 은아.
“아저씨··· 괜찮아요?”
도톰하고 붉은 입술로 조심스럽게 묻는다.
피식··· 실소가 나왔다.
자기를 망가뜨린 나를 걱정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바보 같은 계집애···
“괜찮아. 걱정 하지마.”
그 말과 함께 침대로 돌아서는 나를 보더니···
“괜찮은 사람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질러요?”
예리한 년.
“이리와요. 부축해드릴께요.”
“아냐··· 괜찮아.”
“걱정말고 와요.”
“괜찮다니깐?”
끝내 은아는 내가 거절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걸친다.
그리고 우리는 한 걸음 걸었고···
“다왔다···”
“예···”
그래서 괜찮다고 그리 말했것만.
침대에 누운 나를 보며 은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심히 찾더니 곧 맛있는 냄새가 방안에 진동한다.
기적이가 만든 것처럼 짜가리가 아닌 진품 음식!
곧 은아가 음식을 가져왔다. 다쳐서인지 죽을 한 은아.
“아저씨. 많이 드세요.”
·······저기 10인분은 넘겠는데?
“가, 같이 먹자.”
“저는 먹고 왔어요. 많이 드세요.”
은아는 정말 사심 없는 표정의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남겨도 뭐라 하지는 않겠지?’
곧 죽을 한 숟가락 퍼서 후후 식힌 뒤 입에 넣었고 나는 맛있다는 뜻으로 웃어주었다.
그러자 긴장하고 있던 은아도 헤헤 웃고.
“맛있죠?”
“어. 정말 맛있어. 살면서 먹은 죽 중 최고야.”
····비록 기적이가 만든 것과 편의점 죽 밖에 안 먹어봤지만.
“그래요? 그럼 남기지 말고 다 드세요!”
“····”
10인 분이라니깐?
“농담이에요. 헤헤. 남으면 냉장고에 보관하세요.”
은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죽을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나는 먹기만 했고, 은아는 바라보기만 했다.
“저기 은아야.”
“예?”
“왜 나에게 잘해주냐? 너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고··· 복수 하겠다고 네 입으로 말했으면서.”
나의 말에 은아의 얼굴이 잠시 굳었지만 곧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웃는 모습이 우는 것보다 더 슬프게 느껴진다.
“아저씨는 왜 저에게 잘해주세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아저씨가 건강해져야 복수를 할 수 있잖아요. 아프면 그 만큼 복수할 시간이 늦어지니···”
·······무서운 계집애.
“헤헤. 농담이고요··· 아무리 미워도 어떻게 다친 사람을 그냥 놔둬요. 좋든, 싫든, 한 동안 얼굴 봐야 사이인데··· 아저씨라면 그럴 수 있어요?”
····어. 라고 대답했다가는 죽을 뺏길 것 같다.
말없이 죽을 먹는 나를 향해 다시 은아가 말하고···
“아저씨.”
“어?”
“다치지 마요.”
“········”
“전 아저씨에게 복수할 마음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어요. 매일, 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이 들 만큼 힘이 들고, 그러고 싶지만 그 마음 하나로 버티고 있다고요. 그러니··· 다치지 마세요. 다쳐도 저한테 다쳐야해요. 어제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고개를 들어보니 곧 울 것 같은 은아가 보였다.
나는 말없이 숟가락을 내려놓았고···
···배부를 만큼 먹었거든.
“미안하다.”
“예?”
한 번도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한 적이 없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울어도, 아파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들에게는 엿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 역시 그럴 때마다 상처를 받았고 단지 주어진 인생이 다를 뿐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지금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유 따위는 없다. 그냥··· 그냥 말하고 싶었다.
“미안하다··· 정말.”
나의 말에 은아의 얼굴이 차갑게 굳는다.
마치 화가 난 표정.
곧 나의 멱살을 잡더니 외치는 은아.
······화가 난 것이었군.
“그런 말 하지마요! 아저씨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하면··· 전 어떻게 해요? 아저씨 선택이잖아요. 이런 일을 하는 것도, 그리고 저를 이렇게 만든 것도, 모두 아저씨의 결정이고, 저의 선택이잖아요!! 그런데 아저씨가 그런 말을 하면 저 어떻게 해요? 아저씨가 자신의 결정을 후회 한다면··· 제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무는 저는 어떻게 하냐고요!!”
티는 내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은아가 얼마나 괴로울지, 얼마나 힘들지 말이다.
그리고 그 슬픔을 처음으로 나에게 털어 놓는 은아.
····침 튀지 마라고 한다면 살해당하겠지?···
나는 은아 몰래 조심스럽게 침을 닦았고
곧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똥 마렵다.”
울다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은아는 곧 웃음을 터트렸다.
젠장. 똥마려운 것이 웃겨?
“부축 해드릴게요.”
은아의 말에 거절을 하려던 나는 조금 전 고집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우리는 화장실 문 앞에 도착했고···
“따라 들어오게?”
내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물러서는 은아.
곧 나는 화장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많이 힘든 것 안다. 우리가 증오스럽고, 네 인생이 원망스럽겠지. 하지만 나쁜 생각은 하면 안 된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고, 엿 같아도 절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 내가 죽일 놈이니. 나를 원망하고 미워해서 버텨라. 죽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나 먼저 죽이고 죽으란 말이다. 그러니 나 같이 나쁜 새끼가 살아있는 한··· 너도 살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행복한 날이 오지 않겠냐···”
절대 그러면 안돼. 그런 생각조차 하면 안돼··· 그런 바보는 한 명으로 족해····
한숨을 내쉬며 변기에 앉아 집중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은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집중하기는 글렀군.
“아저씨···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마요. 제가 아저씨 더 미워 할 수 있게··· 미워하고, 미워 할 수 있게··· 그러지 마세요··· 아저씨가 제 걱정을 하고 자꾸 그러면··· 저 아저씨 미워하기 힘들어지잖아요···”
그 말 이후··· 우리는 한참이나 침묵을 지켰다.
절대 내가 집중한다고 그런 것이······· 맞다.
결국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은아야···”
“예···”
슬픔에 젖은 은아의 목소리.
정말 저 아이에게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잠시 망설이다 힘겹게 말하는 나.
“휴지 없다···”
“············”
물로 씻을 순 없잖아····
잠시 후 은아의 손이 조심스럽게 화장실 안에 휴지를 놓고 사라졌고,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 통화를 하던 은아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가버렸다.
“아저씨··· 죽 꼭 저녁에도 드셔야 해요. 그리고 나을 때 까지 다른 일은 하지 말고 쉬셔야 하고요. 저 가봐야겠어요··· 일찍 끝나면 다시 찾아올게요···”
은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나는 한숨을 내쉬며···
···· 힘겹게 똥을 닦았다.
그리고 그 날 은아는 집에 오지 않았고···
자정이 넘은 새벽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이는 은아였다.
출처: http://cafe.daum.net/siniistears『시니is눈물』
글쓴이: 시니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