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수염] 사랑 밀어내기 (17)

말글눈200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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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산장의 여인


숙경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 핑계로 신애를 같이 끌어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숙경은 헤어진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애인을 만난 것처럼 이만저만 반가워하는 게 아니다.
그래, 친구 개인전은 잘 끝났어요?
응, 그런대로.
이런 소리 하긴 자존심 상하지만, 그 동안 정말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그럼, 연락을 하지 그랬어.
연락을 하면 뭐해요, 만날 수가 없는 걸. 저도 그 동안 제주도 촬영을 갔다 왔거든요.
아 참, 그러고 보니 전국 방방곡곡 안 가 본 데가 없겠는 걸? 분장사라는 게 참 좋은 직업인데?
남의 얼굴이나 만져 주는 게 무슨 좋은 직업이에요? 그리고 지방 촬영을 나가면 모든 게 다 피곤하고 불편해요. 우리 어디 가서 저녁 먹어요. 제가 살게요. 뭐든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요.
그러면서 팔짱을 차악 끼자 신애가 흘깃 문영의 눈치를 보면서 한마디 한다.
선생님만 입이고 내 입은 조둥이야? 왜 나한테는 안 물어봐?
넌 끼워 준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주는 대로 먹어. 개밥에 도토리라는 말 알아?
그럼, 선생님하고 언니는 개밥이고 나는 도토리네?
문영은 웃음을 터뜨린다. 농담도 재미있지만 신애하고 같이만 있으면 어쩐지 기분이 좋다.
숙경한테도 그런 느낌이 전해졌나 보다. 저녁을 먹고 신애와 헤어졌을 때 정색을 하고 물어본다.
문영씨, 신애 좋아하죠?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식사를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신애한테서 눈을 못 떼더라구요. 그리고 신애가 뭐라고 한마디만 하면 하하 웃고 말예요.
젊고 발랄하고 귀엽잖아?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가 각별히 이뻐하던 애라 나도 모르게 그런 모양이지.
아녜요. 스승이 제자를 보는 눈이 아니고 남자가 여자를 보는 눈이던데요, 뭐.
생사람 잡지 마. 길을 막고 물어봐. 저런 애를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어?
글쎄, 같은 여자의 눈은 못 속인다구요. 그래서 저를 만날 때마다 신애도 불러 내자고 보챘던 거죠?
아이구, 맘대로 생각해. 내 눈엔 신애가 아직도 여자로 보이질 않고 어린애로 보이니까.
그러지 말고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해요, 용서해 드릴 테니까요.
나 이런, 다른 얘기 좀 할 수 없어? 내가 무슨 성추행이라도 한 것처럼 이상해지잖아?
하여튼 앞으로는 문영씨 자신의 감정처리에 신경을 쓰시라구요. 걔한테는 지금 죽고 못 사는 애인도 있고 청춘을 즐기느라고 아무 정신도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이 차이를 한번 생각해 봐요.
이제 그만 해. 더 이상 신애 얘기 꺼내면 나 그냥 가 버린다.
숙경이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알았어요.
다 알고 있다는 말투다. 문영은 이 여자가 절정에 올라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불렀을 때처럼 또 한번 싫어진다. 하지만 이 여자가 없으면 신애를 불러 낼 도리가 없다. 앞으로는 조심을 하는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섬둑을 향해서 걸어간다. 길바닥에는 샛노란 은행잎이 깔려 있다. 그것을 보더니 숙경이 갑자기 생각난 듯 묻는다.
아 참, 가을 되면 산장 구경시켜 준다고 했잖아요?
아직 본격적인 가을이 안 됐잖아?
은행잎이 떨어지면 가을이지 본격적인 가을이 뭐 따로 있어요?
하긴 그렇군. 가까운 시일 내에 틈을 내서 가 보자구.
그럼, 약속한 거예요.
알았어. 그런데 어디까지 걸어갈 거야?
저기 대방역을 지나면 제가 사는 아파트가 있어요. 어떻게 하고 사는지 구경하고 싶지 않아요?
그것도 괜찮은 생각인데.
섬둑을 지나서 다리를 건너가 지하차도를 통과하니 대방동이다. 숙경이 슈퍼에 들어가 국산 양주와 맥주, 안주거리들을 한 아름 들고 나왔다. 어떻게 사는지 구경한다는 것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다. 아파트에 가서 벌어질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타구니가 뻑적지근해진다. 언제나 속없는 물건이 벌써 발기를 시작한 것이다.
17평짜린데 좀 좁아 보여도 혼자 살기엔 불편한 게 없어요.
아파트에 들어서면서 숙경이 좀 창피하다는 듯이 말한다.
아담하고 보기 좋은데, 뭐.
모든 것들이 깔끔하게 잘 정돈돼 있다. 아마도 숙경의 미덕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숙경이 커튼을 치고 불을 켠다.
누가 들여다볼까봐 그러는 거야?
그럼요. 맞은편 높은 층에서 내려다보면 손바닥처럼 다 들여다보여요.
우린 지금 아무 짓도 안 하고 있잖아?
지금부터 할 거 아닌가요?
대답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문영은 그냥 웃고 만다. 숙경도 킬킬 웃으면서 술잔을 채운다.
문영씨 때문에 저 이러다 술꾼 되고 말겠어요. 만날 때마다 안 마신 적이 없잖아요?
앞으로 차차 나아질 거야. 그 동안엔 사는 게 고달프고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홧김에 마셨거든.
지금은 형편이 많이 풀렸는데도 계속 마시잖아요?
거기엔 또 이유가 있지. 옛날엔 돈이 없어서 싸구려 소주밖에 못 마셨어. 좋은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는데, 지금은 술값에는 구애를 받지 않으니까 마음껏 마시는 거야. 아마 이것도 얼마 안 가서 시들해질 거야.
전 문영씨가 술을 얼마를 마시든 상관없어요. 문영씨는 술을 마시면 명랑해지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결정적인 건…….
정력이 쎄진다는 거지.
딩동댕동, 맞았습니다.
처녀가 못하는 소리가 없군.
처녀도 처녀 나름이죠. 샤워 안 하실래요?
먼저 해. 난 나중에 할게.
여자하고 같이 샤워해 본 적 있어요?
목욕탕에 가서 여탕에 들어가 봤냐는 소리나 똑같군.
한번 해 봐요. 특별한 재미가 있을 거예요.
싫어, 창피하게…….
그럼, 침대에서 벌거벗는 건 창피하지 않아요? 자, 한번 해 봐요. 빨리요.
그러면서 마구잡이로 웃옷을 벗긴다. 대단한 여자다. 서로 알 건 다 아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한 것 같다. 다른 남자와 많이 해 봤더라도 되도록 감추고 내숭을 떠는 게 여자들 생리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런 걸 무시하는 건지 아예 모르는 건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남자 경험이 많은 것 같다. 이 다음에는 또 어떤 해프닝이 튀어나올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긴장 풀어요. 안 잡아먹어요.
숙경이 문영을 세워 놓고 온몸에 비누칠을 해 주면서 야단을 친다. 미사일처럼 빳빳하게 발기해 있는 물건이 창피해서 두 손으로 가리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자, 이번엔 제 차례에요.
문영은 비누칠을 해 주면서 자꾸 엉덩이를 뒤로 뺀다. 귀두가 숙경의 몸에 스칠 때마다 주저앉을 것처럼 오금이 저리기 때문이다.
이제 안아 주세요.
비누칠이 끝나자 숙경이 문영의 목에 매달린다. 키스를 하려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두 개의 풍만한 유방을 문영의 가슴에 밀어붙이더니 마구 비벼 대기 시작한다. 정숙과 화영 같은 역전의 노장들도 이런 희한한 테크닉은 보여 준 적이 없다. 굉장한 자극이다. 귀두를 자극하는 것보다도 더한 쾌감이 가슴으로부터 온몸으로 번져 나간다. 숙경이 색색거리며 묻는다.
어때요, 기가 막히죠?
문영은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아 대답도 할 수 없다. 숙경이 가슴을 밀착시킨 채 문영의 물건을 잡아 자신의 사타구니에 쑤욱 집어넣는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문영은 숙경의 엉덩이를 힘껏 끌어안은 채 맹렬하게 공격을 퍼붓는다.
아아, 너무 좋아. 나 죽을 것만 같아. 엄마야.
숙경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다행히 성훈씨 소리는 안 나온다. 문영도 타이밍을 맞추어 힘차게 사정을 해 버린다. 숨이 턱에 차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끌어안은 채 숨을 고른 다음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둘 다 옷 입을 생각을 안 하고 식탁에 앉는다. 술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숙경은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래서 시커먼 음모 사이로 돈지갑처럼 살짝 벌어져 있는 음부가 보인다. 금방 폭포처럼 정액을 쏟아내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문영은 그게 너무 섹시하다. 또 덤벼들고 싶어진다. 술맛이 그 음부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음탕하고 달콤한 분위기는 거기서 끝나고 만다. 볼일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는지 숙경이 화제를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산장에 언제 데리고 갈 거예요?
데리고 갈 거 없이 틈이 나는 대로 언제든지 내려와. 기차를 타고 옥천역까지만 오면 내가 마중을 나갈 테니까.
그럼, 다음 주 촬영 끝나는 대로 연락할게요.
그렇게 해.
그런데 말예요.
숙경이 세우고 있던 무릎을 내려 놓는다. 무언가 사무적으로 할 얘기가 있는 것 같다.
결혼하고 나서도 정말 산장에서 살 거예요?
결혼?
문영은 어리둥절한다. 둘 사이가 벌써 그렇게까지 발전했단 말인가.
왜요? 결혼 얘기 들으니까 이상해요?
아니, 이상한 건 아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이야.
갑작스럽긴요. 문영씨하고 전 결혼을 전제로 해서 만나 가지고 잠자리도 같이하고 할 짓 다해 봤어요. 그래서 성격이라든가 육체적으로도 궁합이 맞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그럼, 이제 결혼식 올리는 일만 남은 거 아녜요?
문영은 고개를 끄덕인다. 잠깐이나마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일이 아주 고약하게 꼬이고 말았다. 설마 이렇게 빨리 결혼 얘기를 들고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여기서 결혼은 못하겠다고 나자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어떻게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봐야 한다.
지난 번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지? 자기는 도시 체질이라 산속에서는 못 살 거라고 말이야.
그랬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나?
체질이 그렇게 쉽게 변하겠어요? 머리 깎은 중도 아니고 전 정말 산속에서는 못 살아요. 친구도 이웃도 없고 백화점도 없고 미장원도 없는 산속에서 맨날 문영씨 얼굴만 보고 살라구요? 아마 몇 달도 못 가서 미쳐 버리고 말 거예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결혼을 해? 자기는 서울에 있고 나는 옥천에 있으면서 주말에 한 번씩 만나는 주말부부로 살자구?
문영씨가 서울로 올라오면 간단하잖아요? 산장은 가끔씩 내려와서 휴식을 취하는 별장으로 유지하면서 말예요. 돈 좀 있다는 서울사람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어요.
난 그 사람들처럼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또 도시 체질도 아니야.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오두막을 짓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농사도 지으면서 살고 싶다는 게 내 꿈이었어. 이제 간신히 그 꿈을 이루었는데 날더러 서울에서 살자구?
무슨 그런 꿈이 다 있어요? 왜 도시를 싫어하고 사람을 피하려고만 해요? 그러면 부정적인 인생을 살게 된다는 거 생각 안 해 봤어요? 그 동안엔 살기가 힘들고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그랬다 쳐요. 이제 재산도 생기고 약혼자도 생기고 그랬잖아요? 좀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고쳐 볼 수 없어요?
언제 약혼을 했다고 자기 마음대로 약혼자가 생겼다고 한다. 간단하게 끝날 일이 아닌 것 같다. 문영은 타협안을 내놓는다.
이건 논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서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풀어야 될 것 같아. 낼모레 당장 결혼식 올릴 것도 아니고 시간은 있으니까 좀더 생각을 해 보자구. 대화를 하다 보면 뭔가 해결점이 나오겠지. 지금은 술을 마시고 사랑을 하는 시간이야. 화제를 바꿔. 그리고 아까처럼 한쪽 무릎을 세워 봐. 참 보기가 좋았어. 술안주로는 그만이야.
문영의 재치가 통한 것 같았다.
아이 창피하게, 술안주가 뭐예요.
숙경은 말은 그러면서도 한쪽이 아닌 양쪽 무릎을 세우더니 옆으로 한껏 벌려 준다. 돈지갑 사이로 발그레하고 촉촉하게 젖어 있는 속살이 보인다. 인간의 신체에서 저처럼 못생기고 이상한 부분도 없을 것이다. 문득 저게 무엇이라고 그렇게 미쳐서 덤벼들었던가 싶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그 속없는 물건은 또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 다음 주가 되자 숙경에게서 산장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산장을 방문하겠다는 것이다.
여기 지금 서울역인데요. 옥천에 다섯 시 반쯤 도착할 것 같아요.
숙경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있다. 문영은 심란하기 짝이 없다. 결혼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지을 것인지 아직 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애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때만 해도 절정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부르더라는 좋은 트집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다시 질탕하게 관계를 가져 버렸으니 그 약발은 사라져 버린 셈이다. 이제 남은 트집거리는 한 가지뿐이다. 서울에서 살 것인가 산장에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다. 대화로 풀자고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시간을 벌기 위한 속임수였다. 거기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결혼을 피할 수 있는 좋은 핑계인 것이다. 좋아, 그것으로 밀고 나가자. 그렇게 배짱을 정한 다음 문영은 차를 몰고 옥천으로 나갔다.
기차 도착시간까지는 한 시간쯤 여유가 있었다. 문영은 우선 장을 보았다. 미우네 고우네 해도 손님은 손님이다. 고기와 생선을 사고 야채와 과일 밑반찬까지 알뜰하게 장을 보았다. 그리고 시간에 맞추어 역 대합실에 들어서자 잠시 후에 기차가 도착하고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숙경은 금방 눈에 띄었다. 분홍색 꽃무늬의 화려한 원피스와 뽀얀 살결 때문이다. 그런데 문영은 손을 흔들다가 어, 하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숙경과 나란히 걸어나오는 게 바로 신애였던 것이다.
놀랬죠? 무지 놀랬죠?
숙경이 놀린다. 신애는 한술 더 뜬다.
선생님, 지금 혹시 심장마비 안 걸렸어요?
잘 왔다, 정말 잘 왔어.
문영은 어눌하게 이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이건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막힌 선물이다. 내색을 안 하려고 애는 쓰지만 가슴이 터질 것처럼 행복하다. 부탁도 안 했는데 신애를 데리고 온 숙경도 고맙기 짝이 없다.
이 차, 국산 아니죠?
읍내를 벗어나자 숙경이 묻는다. 역시 속물은 속물이다. 신애가 대신 대답을 해 준다.
그랜드 체로키라고 미국 차야.
차, 정말 좋아 보이는데요. 얼마나 하는 차예요?
문영이 어물어물하자 신애가 핀잔을 준다.
언니두 참, 남의 차를 타면서 찻값을 물어보는 건 실례야.
실례될 게 뭐가 있어? 지금 세상은 경제가 최우선이야. 어떤 사물을 보면 우선적으로 경제적인 가치를 따지는 게 뭐가 어때서? 문영씨, 안 그래요?
문영은 더 떠드는 게 귀찮아서 2천을 깎아 3천만원짜리라고 대답을 해 준다. 그래도 숙경의 수다는 계속된다.
어머, 국산 최고급차하고 맞먹네. 그런데 기왕이면 국산 세단을 사지 왜 지프차를 샀어요? 튼튼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승차감이 좀 떨어지잖아요?
그러다가 또 신애한테 핀잔을 먹는다.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하는 이런 산속에서 무슨 세단이야, 지프가 최고지.
아직도 비포장도로가 있어?
조금만 기다려 봐, 구경하게 될 테니까.
산장에 도착하자 어느새 사방이 어둑어둑해진다. 산그림자가 깔리기 때문에 평지보다 밤이 빨리 오는 것이다. 두 여자는 경치를 구경하는 둥 마는 둥하고 주방에 달려들어 요리를 시작한다. 숙경이 그녀의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다. 탕수육에다 생선 양념구이를 만들어 내놓았는데 그 맛이 훌륭했던 것이다. 까짓 거, 이 여자하고 결혼을 해 버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벽난로 앞에다 술상을 차렸을 때 문영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요리솜씨 한 가지만 보고도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숙경이 또 그 속물근성을 발휘하여 단숨에 기대를 깨 버린다.
벽난로 앞에 앉아 술을 마시고 정말 멋져요. 영화에서 보던 그런 장면 같잖아요? 아 참, 그런데 이 집 짓는 데 다 해서 얼마 들었어요?
언니두 참, 이 멋진 장면에서 촌스럽게 왜 그런 걸 물어?
얘는, 촌스럽긴 뭐가 촌스럽다는 거야? 새 옷을 보면 얼마 주고 샀는지 궁금하고 새 집을 보면 공사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궁금하고… 여자들한텐 당연한 관심사 아니야? 넌 여자 아니니?
그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한참 무드 잡고 있는데 고춧가루 뿌리는 거야 뭐야.
큰맘 먹고 데려 왔더니 너 계속 그렇게 쫑코만 줄래? 서울로 다시 쫓아 버릴까 보다.
술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또 노래를 부르고… 밤이 그렇게 깊어간다. 술이 제일 약한 건 숙경이다. 10시도 못 돼서 혀 꼬부라진 소리가 나온다.
문영씨, 저 졸려요. 침대가 어디 있어요?
문영이 침실로 데려다 주자 이번에는 옷을 벗겨 달라고 한다. 옷을 벗기고 자신의 잠옷을 입혀 주자 인심을 쓴다.
그만 나가 봐요. 나가서 사랑하는 신애하고 실컷 얘기나 나눠 봐요. 그 대신 엉큼한 짓 하면 제가 가만 안 둘 테니까 명심하구요.
이게 웬 떡이냐 싶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신애를 데려온 것만으로도 감지덕진데 먼저 곯아떨어지면서 둘이 얘기를 나누란다. 문영은 너무 고마워 숙경의 볼에다 뽀뽀를 해 준다.
잠들었어요?
문영이 방에서 나오자 신애가 묻는다.
응, 천사처럼 잠들었어.
천사요?
신애가 쿡쿡 웃는다.
자신은 일찍 잠이 들면서 날더러 나가서 너하고 실컷 얘기나 하라니, 그게 천사가 아니고 뭐냐?
그 천사를 조심하세요.
왜?
오늘 내려오면서 저한테 뭐라고 그런 줄 아세요? 선생님이 저 좋아하는 거 다 알고 있대요.
이숙경이가 그랬어?
그러니까 저한테 선생님 앞에서 꼬리치지 말래요. 그랬다간 가만 안 둔다구요.
그래서 넌 뭐라고 그랬어?
나 요즘 남자친구하고 너무 너무 잘 나가니까 염려 붙들어 매시라고 그랬죠.
말 한번 잘했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하고 정말 잘 나가는 거야?
잘 나가잖구요. 서로 좋아하고 이해하고 모든 면에서 궁합이 딱 맞는 걸요.
부럽다.
선생님이 한 십 년만 더 젊었더라면 선생님하고도 궁합이 딱 맞았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런 얘긴 뭐하러 하니? 공연히 마음만 슬퍼지잖아?
어머, 죄송해요. 전 그런 뜻이 아니라…….
알고 있어.
갑자기 왜 그런 충동이 생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문영은 와락 덤벼들어 신애를 끌어안고 입술을 포갰다. 신애도 놀란 모양이다. 소리는 지르지 않았지만 몸을 바싹 움츠리면서 두 손으로 문영의 가슴을 밀어낸다. 그러나 문영이 있는 힘을 다해 꽉 끌어안은 채 입술을 밀어붙이자 서서히 반응이 온다. 먼저 두 손과 다리에서 힘이 풀리더니 입술을 열고 문영의 혀를 받아들인다. 마치 키스에 굶주린 사람들처럼 둘은 미친 듯이 상대방의 혀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신애의 두 팔이 문영의 목을 감는다. 문영은 이제 더 참을 수가 없다. 나중 일을 생각할 여유도 없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아이. 지금 이 순간에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급한 마음뿐이다. 애무라든가 전희라든가 하는 것들은 몽땅 생략해 버리고 곧장 팬티를 끌어내린다. 신애가 자신의 엉덩이를 들어 거들어 준다. 다음에는 바지를 벗을 차롄데, 마음이 급해서 벨트의 버클이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그것도 신애가 거들어 준다. 버클을 벗기고 지퍼까지 내려 준다. 문영은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무릎 아래로 밀어낸 다음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계곡을 향해 돌진한다. 바로 그 순간, 침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숙경이 튀어나온다.
참 그림 좋은데?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러면서 다가오더니 문영의 뺨을 힘껏 갈긴다.
이 나쁜 자식. 내가 취해서 곯아떨어진 줄 알았지? 어쩌나 보려고 일부러 취한 척했던 거야. 그렇게 좋으면 이 젊은애하고 결혼하지 왜 노처녀 바람들게 만들어? 너 같은 자식은 진짜 뜨거운 맛을 좀 봐야 돼.
문영은 또 한 차례 뺨을 얻어 맞는다.
그것으로 숙경과의 관계는 끝나고 말았다. 바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신애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셈이니 진심으로 축하할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