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때 무척이나 못생겼었데요.. 코는 고속도로에..눈만 쌍커플을 가꼬 태어났는데.. 그렇게 못생길수가 없었데요.. 시골에서는 아직도 못난이라고 불리구요.. 변한 내 모습에..시골 분들께선..XX맞냐고 놀라실정도.. 하지만..수술은 한건아니고..크다보니 코가 서드라구요..ㅡㅡ; 저희 할아버지께선 못생긴 손녀딸 등에 업고.. 젓먹일려고..4km거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니셨데요.. 길가다..얘기가 못났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 집을 가서 다 뒤집는다는..ㅎㅎ 무척이나 절 이뻐하셨다고 하셨어요.. 시골에서 자라면서..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먼저 서울로 상경하시고.. 저와 둘째 동생만..조부모님 손에 남겨졌죠.. 그땐..매일같이 울었었죠.. 일년에 딱 두번 볼수 있었으니깐요.. 설날..추석..그 외엔 없었죠.. 초등학교 1학년 추석때..엄마가 내려오셨는데.. 엄마 붙잡고..울었었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도..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겠죠..?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엄마는 또 다시 떨어지고.. 난 다시 시골집에 남아서..하루하루를 보냈죠..학교에서 도시락을 풀어서 먹을땐.. 아이들은 정말 맛있는 반찬의 도시락을.. 하지만..전..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현재의 일반 김밥에 3배가량 되는 두깨의 김밥을.. 손수 만들어주셨죠.. 김밥 안엔..물론 아무 것도 없었어요.. 햄과 단무지..이런것들은 생각도 못했어요.. 할아버지께서 많이 무서우셨거든요.. 창피한 마음에..학교에선 도시락을 풀지도 않았죠.. 그리곤 친구네 집에 가서..친구랑 먹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그 맛을 잊을수가 없어요.. 저희할아버지께서는..젊으셨을때..중국집을 운영하셨었데요.. 물론 주방장도 같이..하셨구요..그래서인지 할아버지께서 만드신 음식은.. 다 정말 맛있었어요..다시한번..맛볼수 있다면................. 매일 저녁 6시가 되면..큰도로 까지 나가있는 일이.. 나의 어릴적 일상였어요.. 장에 나가셨다가 들어오시는 할머니 마중 나가는 일.. 5일장이 있는 날엔 문어발을 사주셨어죠.. 그렇게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엄마의 따뜻한 정보단...할아버지 할머니의 정이 더 컸죠.. 1년이 지난 설날에..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아빠 차에 숨어서..울고 있었데요.. 엄마가 안되겠다 싶어서.. 전학수속도 안밟은채..엄마를 따라 서울로 오게됬어요.. 동생도 같이.. 시골에서..외숙모께서 전학 수속 해주셔서.. 서울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됬는데.. 어찌나 낯설든지.. 몇년이 흘러..저는 서울 생활에 익숙 해졌고.. 고등학교까지 가게됐죠.. 학교에 있는데..정말 슬픈 전화를 받아써요.. 할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는... 조퇴를 하고..시골을 내려 갔는데.. 본인 스스로 몸을 가눌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봤어요.. 풍이였어요.. 항상 시골을 내려가면..저는 할머니품에 동생은 할아버지 품에 자고..그랬었는데..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대소변을 못가리실정도로.. 몸은 않좋으셨죠.. 동생이 중학교 시절에..할아버지 대소변을 다 받아내고.. 몸도 씻겨드리고..정말 착한 제 동생이예요.. 그렇게 5년이 지나서였어요.. 저는..사회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고.. 아직 동생은 학생이였어요.. 할아버지께서 더 않조아지셨다는 전화를 받고.. 부모님께서는 시골로 내려가시고.. 저는 부모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더 않조아지셨다는건..돌아가실것 같다는 거였거든요.. 눈물이나서 일을 할수가 없었죠..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 할아버지 임종 보려면 빨리 내려와라.. 그냥 멍했어요..그리고..상사한테 가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꺼 같다고..지금 내려가야 한다고.. 했더니..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람이 죽은것도 아닌데 어떻게 보내니..? 와...정말 뒤집고 싶었습니다.. 제가 시골을 못가면..제 동생들도 못가는 상황이였어요.. 제가 다 데리고 내려가야 됐으니깐요..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또 받았어요.. 할아버지께서 저와 제 동생을 찾으신다고.. 정말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또 한통의 전화.. 엄마였습니다..돌아가셨다고... 빨리 내려오라고..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습니다.. 상사가 야속하기도 했구요.. 지난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필름 처럼 지나갔어요.. 앵두따던 기억..솥에 물을 끓여서 씻겨주시던 기억..밤을 따던 기억.. 모든게..스쳐 지나가더군요.. 저는 상사한테 말했습니다..돌아가셨데요..이젠 가도 됩니까? 그래떠니..일이 바쁜데..이런말을 하더군요.. 정말 정내미가 떨어지고 정말 원망스러웠어요.. 어째뜬.. 동생들을 데리고 시골에 내려가서.. 방을 들어갔습니다..할아버지께서 누워계시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정 사진을 보는 순간..눈물이..많이 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관에 들어가시는 순간.. 정말 뼈밖에 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봤습니다.. 갈비뼈 모양이 다 들어날정도의..정말 마른 모습.. 할머니 집에서 보이는 곳으로 할아버지 묘를 만들습니다. 할아버지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 납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푼건지도..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6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그 직장은 그만뒀고..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가더군요.. 그런데 아직도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가 절 반겨 줄것 같은..그런 생각이.. 그리고..할아버지 생각을 할때면..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납니다.. 생전에 정말 잘 할껄..효도..할껄..휴..뒤늦은 후회뿐이 않남았네요.. 이제는 할머니께서 연세가 많이 드셔서 그러신지.. "내가 죽기전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바램은... 제가 빨리 결혼을 하는것..저 결혼하는것만 보고 돌아가셔도.. 할머니께서는 바랄께 없다고.. 저는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기로 했습니다. 제 현재나이 24살..정확히 2년후에 결혼을 하기로 다짐 했습니다. 물론..남자는..지금의 남자친구 겠죠.. 저희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이니깐.. 나중에 후회 하지 않도록..이젠..정말..할머니께... 부모님께도..정말 효도라는거 해볼라합니다.. 늦었지만..지금부터라도...
이제야 후회하는..
저는 어릴때 무척이나 못생겼었데요..
코는 고속도로에..눈만 쌍커플을 가꼬 태어났는데..
그렇게 못생길수가 없었데요..
시골에서는 아직도 못난이라고 불리구요..
변한 내 모습에..시골 분들께선..XX맞냐고 놀라실정도..
하지만..수술은 한건아니고..크다보니 코가 서드라구요..ㅡㅡ;
저희 할아버지께선 못생긴 손녀딸 등에 업고..
젓먹일려고..4km거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니셨데요..
길가다..얘기가 못났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 집을 가서 다 뒤집는다는..ㅎㅎ
무척이나 절 이뻐하셨다고 하셨어요..
시골에서 자라면서..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먼저 서울로 상경하시고..
저와 둘째 동생만..조부모님 손에 남겨졌죠..
그땐..매일같이 울었었죠..
일년에 딱 두번 볼수 있었으니깐요..
설날..추석..그 외엔 없었죠..
초등학교 1학년 추석때..엄마가 내려오셨는데..
엄마 붙잡고..울었었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도..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겠죠..?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엄마는 또 다시 떨어지고..
난 다시 시골집에 남아서..하루하루를 보냈죠..
학교에서 도시락을 풀어서 먹을땐..
아이들은 정말 맛있는 반찬의 도시락을..
하지만..전..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현재의 일반 김밥에 3배가량 되는 두깨의 김밥을..
손수 만들어주셨죠..
김밥 안엔..물론 아무 것도 없었어요..
햄과 단무지..이런것들은 생각도 못했어요..
할아버지께서 많이 무서우셨거든요..
창피한 마음에..학교에선 도시락을 풀지도 않았죠..
그리곤 친구네 집에 가서..친구랑 먹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그 맛을 잊을수가 없어요..
저희할아버지께서는..젊으셨을때..중국집을 운영하셨었데요..
물론 주방장도 같이..하셨구요..그래서인지 할아버지께서 만드신 음식은..
다 정말 맛있었어요..다시한번..맛볼수 있다면.................
매일 저녁 6시가 되면..큰도로 까지 나가있는 일이..
나의 어릴적 일상였어요..
장에 나가셨다가 들어오시는 할머니 마중 나가는 일..
5일장이 있는 날엔 문어발을 사주셨어죠..
그렇게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엄마의 따뜻한 정보단...할아버지 할머니의 정이 더 컸죠..
1년이 지난 설날에..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아빠 차에 숨어서..울고 있었데요..
엄마가 안되겠다 싶어서..
전학수속도 안밟은채..엄마를 따라 서울로 오게됬어요..
동생도 같이..
시골에서..외숙모께서 전학 수속 해주셔서..
서울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됬는데..
어찌나 낯설든지..
몇년이 흘러..저는 서울 생활에 익숙 해졌고..
고등학교까지 가게됐죠..
학교에 있는데..정말 슬픈 전화를 받아써요..
할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는...
조퇴를 하고..시골을 내려 갔는데..
본인 스스로 몸을 가눌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봤어요..
풍이였어요..
항상 시골을 내려가면..저는 할머니품에 동생은 할아버지 품에 자고..그랬었는데..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대소변을 못가리실정도로.. 몸은 않좋으셨죠..
동생이 중학교 시절에..할아버지 대소변을 다 받아내고..
몸도 씻겨드리고..정말 착한 제 동생이예요..
그렇게 5년이 지나서였어요..
저는..사회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고..
아직 동생은 학생이였어요..
할아버지께서 더 않조아지셨다는 전화를 받고..
부모님께서는 시골로 내려가시고..
저는 부모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더 않조아지셨다는건..돌아가실것 같다는 거였거든요..
눈물이나서 일을 할수가 없었죠..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
할아버지 임종 보려면 빨리 내려와라..
그냥 멍했어요..그리고..상사한테 가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꺼 같다고..지금 내려가야 한다고..
했더니..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람이 죽은것도 아닌데 어떻게 보내니..?
와...정말 뒤집고 싶었습니다..
제가 시골을 못가면..제 동생들도 못가는 상황이였어요..
제가 다 데리고 내려가야 됐으니깐요..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또 받았어요..
할아버지께서 저와 제 동생을 찾으신다고..
정말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또 한통의 전화..
엄마였습니다..돌아가셨다고...
빨리 내려오라고..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습니다..
상사가 야속하기도 했구요..
지난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필름 처럼 지나갔어요..
앵두따던 기억..솥에 물을 끓여서 씻겨주시던 기억..밤을 따던 기억..
모든게..스쳐 지나가더군요..
저는 상사한테 말했습니다..돌아가셨데요..이젠 가도 됩니까?
그래떠니..일이 바쁜데..이런말을 하더군요..
정말 정내미가 떨어지고 정말 원망스러웠어요..
어째뜬..
동생들을 데리고 시골에 내려가서..
방을 들어갔습니다..할아버지께서 누워계시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정 사진을 보는 순간..눈물이..많이 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관에 들어가시는 순간..
정말 뼈밖에 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봤습니다..
갈비뼈 모양이 다 들어날정도의..정말 마른 모습..
할머니 집에서 보이는 곳으로 할아버지 묘를 만들습니다.
할아버지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 납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푼건지도..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6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그 직장은 그만뒀고..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가더군요..
그런데 아직도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가 절 반겨 줄것 같은..그런 생각이..
그리고..할아버지 생각을 할때면..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납니다..
생전에 정말 잘 할껄..효도..할껄..휴..뒤늦은 후회뿐이 않남았네요..
이제는 할머니께서 연세가 많이 드셔서 그러신지..
"내가 죽기전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바램은...
제가 빨리 결혼을 하는것..저 결혼하는것만 보고 돌아가셔도..
할머니께서는 바랄께 없다고..
저는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기로 했습니다.
제 현재나이 24살..정확히 2년후에 결혼을 하기로 다짐 했습니다.
물론..남자는..지금의 남자친구 겠죠..
저희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이니깐..
나중에 후회 하지 않도록..이젠..정말..할머니께...
부모님께도..정말 효도라는거 해볼라합니다..
늦었지만..지금부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