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아프리카

독립녀2003.06.02
조회29,723

우리동네에는 카페가 하나 있다.

 

'싸락눈 카페'

 

단골이 되어버린 나와 만화타운 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몽마르뜨' 다.

이십대에 잠시 프랑스에서 유학한 적이 있었다는 주인 언니가

지은 이름이랬다.

 

 

그런데 이름이 카페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한 나와 만화타운 언니가

'이타고울은 고양이의 숲' 이라는 만화책에서 이 이름을 보고 

우리맘대로 싸락눈 카페라 이름지어 버렸다.호텔 아프리카

지금은 주인언니도 그냥 싸락눈 카페라 부른다.

 

 

이 카페는 참 이상한 곳이다.

 

우선 주인 언니는

2년전에 남편과 사별한, 올해로 서른넷이 되는 미망인이다.

카페가 있는 건물 이층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카페 한켠에 있는 아뜰리에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어릴때 꿈이 화가였다고, 재주는 없지만 계속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고 했다.

(재주같은거 없어두돼! 하고 싶지만 없긴 정말 없는 것 같다..호텔 아프리카)

 

 

싸락눈 카페에 머무는 손들은 대부분 여자다.

'남자 사절' 이라는 푯말을 써붙여 놓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남자 손님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카페 자리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카페의 외관이 너무 여성스러워 그런것인진 잘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찾는 시간에는 항상 여자들밖에 없다.

그래서 참 편한 곳이다..호텔 아프리카

 

 

밤 늦게까지 깨어있다보면

맛있는 커피 생각이  간절 할 때가 있다.

잠 안오는 밤 좋은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공간,

커피향이 아리하게 베어있고

혼자라도 찾아가 언제까지고 책을 읽을 수 있는곳..

나는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가끔 그런 공간이 목말랐었다.

 

 

만화타운 언니를 따라간  

낯설은 골목길 한귀퉁이에 있는 이 작은 카페를

만나기 전 까지는.. 

 

 

 

조용히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주인언니 때문에,

 

한잔씩 알코올램프에 끓여주는 맛있는 커피 때문에,호텔 아프리카

 

가벼우면서도 따뜻하게 흐르는 기분좋은 음악들 때문에,

 

우리처럼 단골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전부 이삼십대의 여자들이다.

 

 

직장이 끝나고 바로 온듯 반듯한 정장을 입고 눈감고 커피를 마시는 여자...

매일 혼자 와서 2시간 정도 책을 보다 가는 여자.

역시 매일 혼자 무언가를 쓰다가 가는 여자.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는 여자.

 

 

 

주인언니는 혼자의 시간이 괴로워서 카페를 열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외로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 낮에 수제비를 떴는데 좀 드셔보세요"

"쿠키 구웠는데 같이 먹어요."

"샌드위치 좋아해요?"호텔 아프리카

 

이렇게 하나씩 온 손님들에게 작은 음식들을 권하고

조용히 커피를 리필해주면서

사르륵 사르륵 싸락눈처럼 사람들을 편하게 맞아준다.

 

 

 

나도 책 한권을 손에 들고 이 카페를 잘 찾는다.

조금 있다보면 만화타운 언니가 스케치북을 들고 슬며시 나타난다.

우리는 수다를 떨때도 있고

그냥 마주앉아 각자 할일을 할 때도 있다.

 

자주 가다보니 그 시간에 모여드는 사람들과는 목례도 하고

작은 말들도 오가는 사이가 되었다.

 

 

혼자 열심히 무언가를 쓰던 사람은

모 라디오 방송국의 작가였고,

책을 읽던 사람은

나도 한권 본적이 있는 소설가,호텔 아프리카

음악만 듣고 가는 사람은 디자인 관련 프리랜서,

매번 반듯한 정장차림의 사람은 회사생활이 올해로 9년째에 접어들었다는 직장여성.

이들도 다 혼자살고 있다 했다.

 

 

처음에는 목례만 나누는 사이였는데

같이 수제비를 먹고,국수를 먹다가

주인언니가 나눠주는 음식들이 고마워서

어느샌가 하나둘씩 음식을 가져와 나눠먹다보니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이 되었다.

처음오는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에 어리둥절해 하다가도

곧 즐거워하며 단골이 되어간다.

 

 

직장상사 얘기를 들으며 같이 분개 하기도 하고

만화타운 언니의 첫사랑 얘기를 들으며 포복절도 하기도 하고

주인언니의 남편 얘기에는 같이 눈 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혼자인 사람들이 서로 친해져 간다.

각자의 테이블에서..

 

싸락눈 카페는 그런곳이다.

너무 깊이 관여하지 않으면서

무관심하게 스쳐지나가 버리지도 않는...

 

혼자인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상한곳.

 

 

 

싸락눈 카페에는 오늘도 밤 손님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처음보는 얼굴이 하나 생겼다 싶으면

몇일뒤 여지없이 또 나타나

어느샌가 단골이 된다.

 

외로운 사람이 없으면 좋겠는데

외로운 일이 많은 세상인지

혼자 오는 사람들은 줄어들지는 않고 늘어만 간다.

나도 언제까지 이 싸락눈 카페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호텔 아프리카

 

 

 

 

외롭고 지친 사람들이 몸을 뉘어 잠시 쉬어가는곳

내게도 '호텔 아프리카' 같은 곳이 하나 있다. 호텔 아프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