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지워드립니다’ ‘전자파와 RNA간섭효과 병행치료’ 검색창에서 이걸 발견한 순간, 도무지 이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는 걸 깨달았다. 너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는 있겠지만, 그 동안 내가 당할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예 첨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날 그냥 그렇게 헤어지기만 했어도...’ 가슴 쓰라린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 날의 악몽은 죽어도 잊혀지지 않고 내 심장에, 내 뇌세포 한가운데 박혀서 매일매일 나를 괴롭히고 있다. 너가 그놈과 만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그냥 잊어버렸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2017년 유월의 마지막 밤. 그날 밤, 그 자식과 다정히 손잡고 걸어가는 걸 보고야 말았다. 그것도 내 옆을 스쳐서 지나가는 너희 둘... 나는 내게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어주었지만, 난 당장 달려가 너와 그 놈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싶었다. 민간인도 우주여행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 빌어먹을 놈의 기억하나 지우지 못하는 세상... 애써 일에 집중하려 해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과연 과학기술의 발달이 실연의 아픔까지 치유할 수 있을까... ‘그냥 상술이겠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정말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었다. 142층 건물 창밖으로 한참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인지 사장인지 모르겠지만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설명서는 읽어보셨겠죠? -아, 네... 대충요. 근데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써 있지 않아서요... - 어떤 치료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뇌세포에서 RNA 분해와 유전자 치료, 기억스캔장치까지 다 하면 원하는 부분만 정확히 지울 수 있구요. 부작용은 거의 없습니다. 이거하면 음... 대략 오육천 정도... 헉, 소리 지를 뻔했지만 한쪽 입술을 깨물며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아... 좀 더 싼 건 없나요? 그냥 한순간 기억 지우는 건데요... -아 뭐 여러 가지 있지요... 몇 백 수준 되는 것도 있어요... RNA 간섭치료만 하면... -아니요, 조금 더 싼 거면 좋겠는데요... -아, 좀 더 싼거요? 있긴 있는데... 이건 좀... 부작용도 있구요... 잘못하면 기억 전체를 다 지울 수도 있고... 또, 대부분 상처도 나구요... -그래도, 좀 싼 걸로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말하기 참 부끄러웠지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야 했다. 의사인지 사장인지 애매한 그 사람의 표정에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귀챦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그래요, 그럼... 젤 싼걸로 지금 당장 해드리죠. 김군아... 여기 망치랑 붕대 가져와 -
(초단편) 기억을 지워 드립니다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전자파와 RNA간섭효과 병행치료’
검색창에서 이걸 발견한 순간, 도무지 이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는 걸 깨달았다.
너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는 있겠지만,
그 동안 내가 당할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예 첨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날 그냥 그렇게 헤어지기만 했어도...’
가슴 쓰라린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 날의 악몽은 죽어도 잊혀지지 않고 내 심장에,
내 뇌세포 한가운데 박혀서 매일매일 나를 괴롭히고 있다.
너가 그놈과 만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그냥 잊어버렸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2017년 유월의 마지막 밤.
그날 밤, 그 자식과 다정히 손잡고 걸어가는 걸
보고야 말았다. 그것도 내 옆을 스쳐서 지나가는 너희 둘...
나는 내게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어주었지만,
난 당장 달려가 너와 그 놈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싶었다.
민간인도 우주여행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 빌어먹을 놈의 기억하나 지우지 못하는 세상...
애써 일에 집중하려 해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과연 과학기술의 발달이 실연의 아픔까지 치유할 수 있을까...
‘그냥 상술이겠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정말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었다.
142층 건물 창밖으로 한참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인지 사장인지 모르겠지만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설명서는 읽어보셨겠죠?
-아, 네... 대충요. 근데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써 있지 않아서요...
- 어떤 치료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뇌세포에서 RNA 분해와 유전자 치료, 기억스캔장치까지 다 하면
원하는 부분만 정확히 지울 수 있구요. 부작용은 거의 없습니다.
이거하면 음... 대략 오육천 정도...
헉, 소리 지를 뻔했지만 한쪽 입술을 깨물며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아... 좀 더 싼 건 없나요? 그냥 한순간 기억 지우는 건데요...
-아 뭐 여러 가지 있지요... 몇 백 수준 되는 것도 있어요... RNA 간섭치료만 하면...
-아니요, 조금 더 싼 거면 좋겠는데요...
-아, 좀 더 싼거요? 있긴 있는데... 이건 좀...
부작용도 있구요... 잘못하면 기억 전체를 다 지울 수도 있고...
또, 대부분 상처도 나구요...
-그래도, 좀 싼 걸로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말하기 참 부끄러웠지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야 했다.
의사인지 사장인지 애매한 그 사람의 표정에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귀챦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그래요, 그럼... 젤 싼걸로 지금 당장 해드리죠.
김군아... 여기 망치랑 붕대 가져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