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넓고 살 것은 많다. 알뜰한 당신, 떠나라~

일본으로2007.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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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한 당신, 떠나라?


국경을 넘어선 연대는 성사되기 어려워도, 국경을 넘어선 소비는 성황을 이루는 시대다. 어느새 해외여행은 한국인의 로망을 넘어서 현실이 되었다. 2005년 이후 한 해에 1천만 명 이상이 해외로 나갔고, 2007년 1분기 출국자는 331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56만 명(20.2%) 늘었다. 게다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국경을 넘어선 경험이 쌓이고 있다. 20대에 배낭여행으로 첫 비행기를 탔던 그들이지만, 30대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그들의 가방에는 더 이상 빨랫감만 쌓여 있진 않다. 이른바 명품족이 없지는 않지만, 그들의 가방에 30만원을 호가하는 신발, 100만원이 넘는 핸드백만 들어 있지는 않다. 한국에는 없는 중저가 브랜드의 5만원짜리 원피스, 한국에서의 절반 가격에 구입한 티스푼 세트도 들어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의 해외소비 지출액은 4조630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5% 늘었다. 해외여행객들이 현지에서 신용카드로 지출한 금액은 같은 분기에만 34.3% 증가해 14억1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렇게 국경 없는 소비는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다. 더구나 비행기로 한두 시간, 서너 시간이면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물건으로 ‘모시는’ 도쿄, 홍콩, 방콕 같은 아시아 도시들에 닿는다. 실제로 홍콩 관광객은 2003년 36만 명에서 지난해 70만 명으로, 일본 여행객도 같은 기간에 145만 명에서 211만 명으로 늘었다(표 참조). 명품으로 치장한 과시적 소비를 넘어서 도쿄와 홍콩의 거리에서 발품을 팔면서 합리적 소비를 즐기는, 그들의 외출에는 이유가 있다.

 

6월17일 도쿄의 지유가오카에는 한국인 남녀 한 쌍이 앙증맞은 일본풍의 도자기, 식기, 다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도자기 외에도 가구를 파는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에서는 이따금 한국말이 들려온다. 가게를 돌면서 꼼꼼히 가격을 살피고, 물건을 비교하는 한국인들은 얼핏 보아도 ‘쇼핑 프로들’이다. 이들은 통째로 얼려서 가지고 다녀도 쉽사리 녹지 않는 1.5ℓ 페트병, 유럽풍 피크닉 세트 등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을 유심히 살핀다. 가게의 주인은 “20%쯤 되는 외국인 손님 중에 한국인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또 다른 쇼핑 거리인 다이칸야마역 주변, 고급 잡화점들이 늘어서 있다. 신발 전문점에는 독특한 디자인에 부담없는 가격의 캐주얼화를 신어보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일본 디자이너가 만든 개성 강한 중저가 제품을 전시하는 가게에서는 ‘70% 세일’ 문구도 걸려 있다.

 


‘안전’하고 유행을 앞서가는 도쿄

 


출판사에 근무하는 이현정(32)씨는 지난해 다이칸야마에 다녀왔다. 이씨는 다이칸야마를 “분위기는 홍익대 앞, 가격은 청담동”이라고 요약했다. 이렇게 도쿄의 거리를 한마디로 요약할 만큼 그는 일본 쇼핑에 정통하다. 이씨는 지난해 일본에 5차례, 홍콩에 1차례 여행을 갔다. 여행을 하면서 쇼핑도 했다. 그의 쇼핑은 서너 해 전부터 시작됐다. 당초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일본 여행을 시작했지만, 도쿄타워 구경도 한두 번, 도쿄를 알수록 도쿄의 물건도 보였다. 그는 “서울은 물가는 비싼데, 상품의 다양성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쇼핑 앤드 더 도쿄’가 시작됐다. 그는 “예컨대 여름 샌들을 사면서 참았다 사지는 않지만, 마음먹고 구두를 산다면 도쿄를 둘러본 다음에 산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 해에 적어도 서너 번 해외로 나가기 때문에 그의 시장은 국경을 넘어선다. 만약 도쿄에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다면? 그냥 한국에서 사면 된다. 그러니까 도쿄 쇼핑은 그에게 ‘머스트 바이’(Must Buy)가 아니라 ‘머스트 워치’(Must Watch)다. 더구나 그에게 일본은 ‘구라파’에 견줘 안전한 장소다. 이씨는 “유럽에서 옷을 살 때는 예뻤는데 막상 한국에 오면 입지 못할 옷들도 생긴다”며 “일본은 체형과 감각이 비슷해 그런 실수를 줄이게 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일본의 시간은 빠르다. 한국에서의 유행을 앞서가는 효과도 생긴다. 트렌드를 분석하는 연구소 ‘IF 네트워크’의 한선희 부장은 “국경을 넘어선 쇼핑은 일상적 공간을 확장하는 방법”이라며 “물건을 사는 것을 넘어서 문화를 쇼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쇼핑만 한다면 온라인으로도 가능하지만, 도쿄와 홍콩 같은 도시를 놀이터로 즐기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직장생활 2년차인 김재훈(26)씨가 일본에서 쇼핑을 즐기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키가 165cm가량에 마른 체형인 김씨는 한국에서 몸에 맞는 옷을 구하기 어렵다. 그는 “한국 남자 옷은 95, 100, 105 사이즈가 전부지만 일본에서는 xxs부터 최소한 네다섯 가지 사이즈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디자이너의 예쁜 재킷이 몸에 딱 맞았을 때의 즐거움을 잊기 어렵다. 김씨는 “어떤 물건을 반드시 사러 간다는 개념이 아니라 이번 시즌의 상품을 둘러보러 간다”고 말했다. 그래도 일본에서 20만원 주고 샀던 지갑이 얼마 뒤 한국에서 두 배 가격에 팔리는 것을 보고는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김씨가 일본에서 지갑을 열게 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는 “한국은 백화점 아니면 동대문 시장으로 양분돼 있다”며 “중간의 중저가 브랜드 디자인은 획일적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비싸지 않은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를 구입해 시장의 공백을 메운다. 한선희 부장은 “이제 라벨이 중요한 시대는 끝났다”며 “명품이 아닌 현지의 로컬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은 적당한 가격에 남들과 다르면서 트렌디한 것을 소비하려는 심리”라고 분석했다.

 


왜 싼 브랜드도 한국만 오면 비싸지나

 


쇼핑의 역사가 쌓이면 목록도 변한다.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독신여성 정미란(35·가명)씨는 일본에서 생필품을 공수한다. 정씨는 지난 6월 초 일본에 갔을 때, 후쿠오카의 슈퍼들을 누비며 먹을거리를 사모았다. 가끔씩 업무차 일본에 오는 그는 일이 끝나면 밤마다 생필품 쇼핑 순례를 한다. 후쿠오카 쇼핑에서도 인스턴트 미소(된장)는 빠지지 않는 쇼핑 목록이었다. 물만 부으면 깔끔한 된장국이 되는 제품은 미혼인 그가 한 끼를 때우기에 안성맞춤이다. 기호품도 사모은다.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일본 흑맥주도 350엔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팔기에 한 팩을 구입해 가방에 넣었다. 거리를 다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가격도 만났다. 같은 브랜드지만 한국의 다국적 커피숍에서는 한 봉지에 1만7천원 하는 원두커피가 일본에서는 8천원(1만엔)에 팔리고 있었다. 당연히 서너 봉지를 샀다. 그는 “일본에서 생필품을 사면 생활에 요긴할 뿐 아니라 가계 부담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로 일부 생필품은 한국보다 비싸지 않아진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에 부산의 주부들이 일본으로 생필품 원정 쇼핑을 떠나는 현상마저 생겼다.

 

 

출처: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