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늦은밤, 비는오고..잠도 안오고하여 끄적끄적 두서없는글 적어봅니다.. 먼저 전 21살의 군인입니다. 해병대 1043기로 수료하고 가정사정으로 인하여 육군 상근병으로 편입되어 현재 행정병으로 출,퇴근 군복무 중입니다. 이야기는 제가 어릴적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강원도 정선 고한.. 아득한 산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택"이란 탄광 사원주택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까지 강원도에서 학교를다니다 포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전세집으로 시작하여, 아버지는 우체국 공무원, 어머니는 마크사(군복수선및물품파는곳) 에서 맞벌이를 하셨지요.. 덕분에 초등학교때부터 혼자 밥을 찾아먹고 설겆이며 집안정리는 모두 저의 몫이였습니다... 저녁 6~7시가 되어야 두분과 이야기를 할수 있었지만 당시엔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웃으며 마냥 좋았던 시절이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가던해.. 그리 크진않았지만 아담한 2층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없이 낯선 타지에와서 두분이서 열심히 맞벌이한 결과라고 볼수있었겠지요....이사를 하여도 부모님의 맞벌이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오손도손 다정한 3식구 였습니다. 부유하진않아도, 그리 좋은 자가용을 몰진않아도, 주말이면 항상 세식구 낚시를 다니거나 등산을하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사진을 찍었으니, 정말 행복했던 날들이였지요.. 그러던 제가 중학교 2학년때..비가오던날이였습니다.. 행복하던 가정에도 불행은 찾아오는지 어릴적 가끔 다투시던 두분이서 이혼이라는 큰 결정을 내리셨지요.. 사실, 말이 이혼이지.. 아버지는 도망치듯 저를 떠나가셨습니다.. 미안하다는 말과함께.. 이혼을 하기 몇일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난장판이된 거실에서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였습니다... 거실에 디스플레이 도자기며,액자,거울 모두 바닥에 깨져 널부러진채 어머니와 다투고 계겼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전 앞뒤사정모른채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이혼을 하셨지요.. 이혼의 이유는 단지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그런것으로만 19살이 될때까지 믿고..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상처를겪고 중학교2학년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하며 고등학교 진학까지 포기하려 했었지요.. 하지만 혼자서 힘들게 일을하며 저 몰래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를보며, 다시 마음을잡고 흔히들 말하는 "일진" 패거리에서 손을떼고 다시 나름 착실하게 살려고 노력을했습니다. 다행이 여차여차 중학교 교장선생님의 추천서로 "포철공고" 에 입학할수있었고 고등학교 진학을 할수있었습니다. 어느날, 어머니는 저에게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며 번화가로 절 데리고 나가시더군요. 왠 낯선 남자가 서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던 그분은 자상한것같고 무엇보다 사람대함에 있어서는 거짓이 없는것 같더군요.. 집으로 돌아와 전 어머니에게 재혼할것을 허락하며 두분을 울산으로 내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전 외가댁에서 혼자 생활하기로 하였지요.. 하지만 사람사이라는게 항상 좋을수많은 없던것 같더군요.. 외삼촌과의 갈등은 사춘기의 저에겐 상당한 에로사항이였으며, 차가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에겐 비수를 꽃는느낌이였습니다... 한번은 아주 작은일로인해 저에게 야단을치며 기여코 손찌검까지 하는 외삼촌에게 너무 화가난나머지 가출을 하였지요... 갈곳없는 처지를 잘아는지.. 친한친구 녀석이 자기 부모님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친구 부모님역시 자기집이라 생각하고 편히 있으라 하더군요.. 하지만 사람이 배려 이상을 받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더군요.. 그렇게 몇달동안 친구녀석과 함께 지내며 학교를 다니고.. 어느덧 추석이 되었습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추석.. 그날 친구녀석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운 냉대뿐, 심하게 표현하면 아들로 생각하는것 같지도 않더군요.. 그에 비관하여 약을먹고 자살기도를 하길 수십번.. 하지만 사람이 사는것만큼이나 죽는것도 힘들다는걸 알았지요.. 친구부모님에게 너무도 죄송한마음에 그간 감사했다는 말을 남겨드리며 작은 월세방을 하나얻었습니다. 벌이가 없이 일단 방을 덜컥 얻으니 일을 해야겠더군요.. 당시 오토바이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배달용 비즈니스모델은 운전할수있었습니다.. 하지만 면허가 없었지요..^^ 분식집에서 학교를마치고 6시부터 저녁12~1시까지 일을하며 하루일당식으로 하루에 1만원을 받으며 일을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수고했다고 좀 더쳐주는날은 1만2~3천원..면허가없기에.. 그렇게 일당을 받고.. 분식집에서 자취방까지가는 차비가 아까워, 10Km거리를 매일 걸어다녔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 일을마치고 매일마다 편의점을 들려 삼각김밥 2개를 사먹고 끼니를 때웠습니다.. 다음날 학교갈 차비 2천원과 방세를 내기위해 돈을 모으려면 어쩔수가 없었지요.. 엄마에게 전화를드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조금만 도와달라" 라는 말을할때마다 도와준다는 말대신 돌아오는건 차가운 냉대와 야단뿐이더군요..^^ 결국 끼니는 고추장을 한통사놓고 새우깡으로 버텼습니다.. 새우깡만먹다가 질리거나하면 고추장을 찍어먹고..분기 학비또한 다행이 장학금을 탈수있었더래죠..^^ 하지만, 집에대하여 더욱더 화가나는것은 한번도 나를 찾아본적없고, 제 친구에게 나에대한 소식을 물어보지도 않았다는데 너무도 슬프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몇달이 흘렀을까.. 새아버지의 연락으로 다시 집에 들어가게되었고, 그후에역시 차가운 엄마에게 손벌리기싫어 면허를 따고 학교를 마친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오게되었습니다.. 한번은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겨울.. 잠깐 쉬는틈을타 가게 컴퓨터로 Cyworld 미니홈피를 확인하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낯익은 이름의 쪽지가 와있더군요.. 막내 고모였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떠난이후 친가와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그렇게 몇년이 지난후 미니홈피를통해 친가족과 연락을 할수있었지요.. 불신반,기대반의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번호를 누르고.. 드디어 그렇게 찾아 해매던 친가족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전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그동안 모아두었던 쌈짓돈을들고 무턱대고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친할머니집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이였는데.. 찾아가보니 이전 할머니가 살았던 집은 없어지고 원룸이 들어서고..전 허무한 마음에 그자리에 주저앉아 하루종일 울었답니다..^^ 반가운 마음에 고모도 울고.. 저역시 울고... 그다음날 바로 학교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게역시 사정을 이야기하고 2틀동안 아버지,할머니,할아버지,고모,고모부,삼촌..식구들을 전부다 만나보고 사정을 이야기 들을수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시절, 부모님이 이혼한건 아버지의 바람이아니고 어머니의 바람때문이였다.. 그리고 니가 싫어서 연락을 안했던게 아니라 외가를 통해 너에게 연락을 시도하려하였지만 너에게 전달해 주지않았다... 전 너무 충격이였습니다.. 너무도 원망했고 싫어했던 아버지가 피해자이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기분이랄까요.. 아버지역시 그당시 그자리를 아버지가 계속지키게되면 저에게 피해가 간다고 앞서 떠나신거라 울며 말씀하시더군요... 저희 아버지.. 달랑 바지에 셔츠하나입고 고향인 강원도로 도망치다 싶이 오셨답니다.. 그렇게 믿었던 엄마에게 배신당한것도 모자라, 바람핀다고 소문을내어 공직자 신분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그렇게...사람을 매장시켜, 어쩔수없이 도망치다 싶이 저를 떠나셨던거지요.. 짧았던 2틀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앞뒤사정볼것없이 전 외가댁에 아버지를 찾아간다 말을하고 정들었던 포항을 떠났습니다. 그리곤 경기도 고모댁에서 지내며 시화공단에서 1년6개월동안 직장생활을하며 저축을하다, 현재 군복무를하며 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포항을 떠나려고할때.. 전 두갈래 길에 서있었더래죠.. 하나는 포항에서 계속있으며 피자토핑기술을 익혔기에.. 새아버지가 마련해주신 상가에 졸업하고 바로 가게를 낼수있는것이였고 둘째는 그간 잊어왔던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별로 생각할필요도 없다고 느껴지더군요.. 진실을 찾고, 그간 힘들었던 아버지에게 가는것이...당연하다고 생각되더군요.. 지금도 비가오면 우울해지곤합니다.. 첫사랑과의 이별,부모님의 이혼,헤어진 아버지와의 만남..모두 비오는날 이루어졌기때문이지요..^^ 그리고 거짓에 가려진 진실을 토해내지 못한 가슴에 맺힌 한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어머니 또한 원망하진 않습니다.. 이미 지난일이고.. 그래도 저의 어머니니까요..^^ 오손도손 다정했던 그 옛날.. 항상 엄마와 저를 사진찍어주기위해, 정작 자신은 빠져있던 아버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찍은 단 한장의..세상에서 단한장의 소중한 3식구사진.. 고추장에 새우깡을 찍어먹으며 힘들땐 사진을보고..애타게 찾아해매고..때론 원망했던 아버지.. 빈손으로 고향을 찾아와 사정모르는 친가족들에게 비난을 받으며 욕을먹고.. 저를 위해.. 묵묵히 아무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것저것 막일부터 시작하여 자리를 잡으신 아버지... 당신의 축처진어깨에 힘을 실어줄수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겠습니다.. 이젠 어깨 펴세요.. 사랑합니다.. 아직도 고추장과 새우깡,그리고 비가오는날이면.. 아픈 옛기억이 생각나곤합니다..^^ www.Cyworld.co.kr/YZFM1
새우깡과 고추장..
안녕하세요..^^
늦은밤, 비는오고..잠도 안오고하여 끄적끄적 두서없는글 적어봅니다..
먼저 전 21살의 군인입니다. 해병대 1043기로 수료하고 가정사정으로 인하여 육군 상근병으로
편입되어 현재 행정병으로 출,퇴근 군복무 중입니다.
이야기는 제가 어릴적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강원도 정선 고한.. 아득한 산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택"이란 탄광 사원주택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까지 강원도에서 학교를다니다 포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전세집으로 시작하여, 아버지는 우체국 공무원, 어머니는 마크사(군복수선및물품파는곳)
에서 맞벌이를 하셨지요.. 덕분에 초등학교때부터 혼자 밥을 찾아먹고 설겆이며 집안정리는
모두 저의 몫이였습니다... 저녁 6~7시가 되어야 두분과 이야기를 할수 있었지만
당시엔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웃으며 마냥 좋았던 시절이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가던해.. 그리 크진않았지만 아담한 2층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없이 낯선 타지에와서 두분이서 열심히 맞벌이한 결과라고
볼수있었겠지요....이사를 하여도 부모님의 맞벌이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오손도손 다정한 3식구
였습니다. 부유하진않아도, 그리 좋은 자가용을 몰진않아도, 주말이면 항상 세식구 낚시를 다니거나
등산을하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사진을 찍었으니, 정말 행복했던 날들이였지요..
그러던 제가 중학교 2학년때..비가오던날이였습니다.. 행복하던 가정에도 불행은 찾아오는지 어릴적
가끔 다투시던 두분이서 이혼이라는 큰 결정을 내리셨지요.. 사실, 말이 이혼이지.. 아버지는
도망치듯 저를 떠나가셨습니다.. 미안하다는 말과함께..
이혼을 하기 몇일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난장판이된 거실에서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였습니다... 거실에 디스플레이 도자기며,액자,거울 모두 바닥에 깨져 널부러진채
어머니와 다투고 계겼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전 앞뒤사정모른채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이혼을 하셨지요..
이혼의 이유는 단지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그런것으로만 19살이 될때까지 믿고..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상처를겪고 중학교2학년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하며 고등학교 진학까지 포기하려
했었지요.. 하지만 혼자서 힘들게 일을하며 저 몰래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를보며, 다시 마음을잡고
흔히들 말하는 "일진" 패거리에서 손을떼고 다시 나름 착실하게 살려고 노력을했습니다.
다행이 여차여차 중학교 교장선생님의 추천서로 "포철공고" 에 입학할수있었고 고등학교 진학을
할수있었습니다.
어느날, 어머니는 저에게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며 번화가로 절 데리고 나가시더군요.
왠 낯선 남자가 서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던 그분은 자상한것같고 무엇보다 사람대함에 있어서는 거짓이 없는것 같더군요..
집으로 돌아와 전 어머니에게 재혼할것을 허락하며 두분을 울산으로 내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전 외가댁에서 혼자 생활하기로 하였지요..
하지만 사람사이라는게 항상 좋을수많은 없던것 같더군요..
외삼촌과의 갈등은 사춘기의 저에겐 상당한 에로사항이였으며, 차가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에겐 비수를 꽃는느낌이였습니다...
한번은 아주 작은일로인해 저에게 야단을치며 기여코 손찌검까지 하는 외삼촌에게 너무 화가난나머지
가출을 하였지요...
갈곳없는 처지를 잘아는지.. 친한친구 녀석이 자기 부모님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친구 부모님역시 자기집이라 생각하고 편히 있으라 하더군요..
하지만 사람이 배려 이상을 받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더군요..
그렇게 몇달동안 친구녀석과 함께 지내며 학교를 다니고..
어느덧 추석이 되었습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추석..
그날 친구녀석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운 냉대뿐, 심하게 표현하면 아들로 생각하는것 같지도 않더군요..
그에 비관하여 약을먹고 자살기도를 하길 수십번..
하지만 사람이 사는것만큼이나 죽는것도 힘들다는걸 알았지요..
친구부모님에게 너무도 죄송한마음에 그간 감사했다는 말을 남겨드리며 작은 월세방을 하나얻었습니다.
벌이가 없이 일단 방을 덜컥 얻으니 일을 해야겠더군요..
당시 오토바이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배달용 비즈니스모델은 운전할수있었습니다..
하지만 면허가 없었지요..^^
분식집에서 학교를마치고 6시부터 저녁12~1시까지 일을하며 하루일당식으로 하루에 1만원을
받으며 일을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수고했다고 좀 더쳐주는날은 1만2~3천원..면허가없기에..
그렇게 일당을 받고.. 분식집에서 자취방까지가는 차비가 아까워, 10Km거리를 매일 걸어다녔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 일을마치고 매일마다 편의점을 들려 삼각김밥 2개를 사먹고 끼니를 때웠습니다..
다음날 학교갈 차비 2천원과 방세를 내기위해 돈을 모으려면 어쩔수가 없었지요..
엄마에게 전화를드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조금만 도와달라" 라는 말을할때마다 도와준다는 말대신
돌아오는건 차가운 냉대와 야단뿐이더군요..^^
결국 끼니는 고추장을 한통사놓고 새우깡으로 버텼습니다.. 새우깡만먹다가 질리거나하면 고추장을
찍어먹고..분기 학비또한 다행이 장학금을 탈수있었더래죠..^^
하지만, 집에대하여 더욱더 화가나는것은 한번도 나를 찾아본적없고, 제 친구에게 나에대한 소식을
물어보지도 않았다는데 너무도 슬프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몇달이 흘렀을까.. 새아버지의 연락으로 다시 집에 들어가게되었고, 그후에역시
차가운 엄마에게 손벌리기싫어 면허를 따고 학교를 마친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오게되었습니다..
한번은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겨울.. 잠깐 쉬는틈을타 가게 컴퓨터로 Cyworld 미니홈피를 확인하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낯익은 이름의 쪽지가 와있더군요..
막내 고모였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떠난이후 친가와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그렇게 몇년이 지난후
미니홈피를통해 친가족과 연락을 할수있었지요..
불신반,기대반의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번호를 누르고.. 드디어 그렇게 찾아 해매던 친가족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전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그동안 모아두었던 쌈짓돈을들고 무턱대고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친할머니집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이였는데.. 찾아가보니
이전 할머니가 살았던 집은 없어지고 원룸이 들어서고..전 허무한 마음에 그자리에 주저앉아
하루종일 울었답니다..^^
반가운 마음에 고모도 울고.. 저역시 울고... 그다음날 바로 학교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게역시 사정을 이야기하고 2틀동안 아버지,할머니,할아버지,고모,고모부,삼촌..식구들을
전부다 만나보고 사정을 이야기 들을수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시절, 부모님이 이혼한건 아버지의 바람이아니고 어머니의 바람때문이였다..
그리고 니가 싫어서 연락을 안했던게 아니라 외가를 통해 너에게 연락을 시도하려하였지만
너에게 전달해 주지않았다... 전 너무 충격이였습니다.. 너무도 원망했고 싫어했던 아버지가
피해자이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기분이랄까요..
아버지역시 그당시 그자리를 아버지가 계속지키게되면 저에게 피해가 간다고 앞서 떠나신거라 울며 말씀하시더군요... 저희 아버지.. 달랑 바지에 셔츠하나입고 고향인 강원도로 도망치다 싶이 오셨답니다..
그렇게 믿었던 엄마에게 배신당한것도 모자라, 바람핀다고 소문을내어 공직자 신분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그렇게...사람을 매장시켜, 어쩔수없이 도망치다 싶이 저를 떠나셨던거지요..
짧았던 2틀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앞뒤사정볼것없이 전 외가댁에 아버지를 찾아간다
말을하고 정들었던 포항을 떠났습니다.
그리곤 경기도 고모댁에서 지내며 시화공단에서 1년6개월동안 직장생활을하며 저축을하다,
현재 군복무를하며 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포항을 떠나려고할때.. 전 두갈래 길에 서있었더래죠..
하나는 포항에서 계속있으며 피자토핑기술을 익혔기에.. 새아버지가 마련해주신 상가에 졸업하고
바로 가게를 낼수있는것이였고 둘째는 그간 잊어왔던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별로 생각할필요도 없다고 느껴지더군요..
진실을 찾고, 그간 힘들었던 아버지에게 가는것이...당연하다고 생각되더군요..
지금도 비가오면 우울해지곤합니다..
첫사랑과의 이별,부모님의 이혼,헤어진 아버지와의 만남..모두 비오는날 이루어졌기때문이지요..^^
그리고 거짓에 가려진 진실을 토해내지 못한 가슴에 맺힌 한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어머니 또한 원망하진 않습니다.. 이미 지난일이고.. 그래도 저의 어머니니까요..^^
오손도손 다정했던 그 옛날.. 항상 엄마와 저를 사진찍어주기위해, 정작 자신은 빠져있던 아버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찍은 단 한장의..세상에서 단한장의 소중한 3식구사진..
고추장에 새우깡을 찍어먹으며 힘들땐 사진을보고..애타게 찾아해매고..때론 원망했던 아버지..
빈손으로 고향을 찾아와 사정모르는 친가족들에게 비난을 받으며 욕을먹고.. 저를 위해..
묵묵히 아무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것저것 막일부터 시작하여 자리를 잡으신 아버지...
당신의 축처진어깨에 힘을 실어줄수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겠습니다.. 이젠 어깨 펴세요..
사랑합니다..
아직도 고추장과 새우깡,그리고 비가오는날이면.. 아픈 옛기억이 생각나곤합니다..^^
www.Cyworld.co.kr/YZF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