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키위새에게 두부 한모 주신다면

demian200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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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외국에 나와있으면, 사실 왠지 단절된 듯한 느낌이 있어요. 가끔은 한국에서 이런 느낌을 찾아 (혼자서 도를 닦는 기분으로 마음 좀 비우자)외국에 나오기도 하지만, 친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것들이 제겐 다른 이에게서 늘 무언가 배운다는 느낌이었는데, 이곳에 와서 같이사는 영과 둘이 장보고 학교가고, 뭐 이것 저것 둘이서 주로 하다보니 다른 분들과..뜨거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곳 아이들과 친해진다는게 뭔가 우리네 사람들처럼.. 뜨거운 밥 한그릇 국한그릇 숟가락 꽂아 훌훌 .. 나누어 먹는게 아니라.. 말하자면 프랑스 바게뜨 사서 자로 재서 줄긋고 빵칼로 잘 썰어서 한접시씩 나누어 먹고 "야 더치페이다"라고 하는 것 같아.. 제게는 한국의 정과는 다른 관계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글도 읽고 그러면서 가끔 힘도 얻고.."모두들 이렇게 힘들게 부대끼며 사는거야...까까머리 키위새에게 두부 한모 주신다면 " 그러면서도 "이런거 쓰면 돈도 안줄텐데..다들 써주는구나..좋다"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답글 달아주신 분들의 답장 편지같은 글을 읽으니, 뭔가 가슴속에 차오르는 신기한 느낌이..."음..이래서 자꾸 쓰는구낭"하고 느끼게 됩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흐흐 떠듬 거리는 영어로 말하다 보면 이렇게 가끔 "진짜배기 의사소통"의 느낌이 어떤 것인가.. 가슴 저리게 느끼게 될 때가 있습니다. 고마운 한글.

 

 어떤 분께서 저녁 맛있는 것도 못먹을텐데..라고 하셔서 먹는 얘길 몇자 쓰려고 합니다. 흐흐 사실 제가 대학때 한국에서 혼자 살때는 주위의 복학생 형들이 모두.. 제 게으름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국 찌개에 밥챙겨먹는 복학생 아저씨들..존경스럽습니다) 집에 토스트기 하나 놓고 살았어요. 식빵 한줄 사다 일주일 내 먹으니까 유통기한을 늘 두려워하며, 가끔 별미로 콘프레이크..(켈로그..기타등등.. 모든 종류를 테스트)먹고 냉장고도 없어서 아침에 우유 500미리 사다 놓고 남으면 세수대야에 물담아 담구어 두고 말이죠. (뭐 게으름이라기 보다 혼자 사는데, 챙겨먹기 왠지 시간이 아깝고 그렇더라구요)그런데 여기에 와서 고등학교 도시락 두개 싸가지고 다닐 때 말고 처음으로 밥 두끼나 하루 한끼는 꼭 먹게 되는거 같아요... 흐흐..저도 신기합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같이 사는 영.. 때문이죠. 다른 커플과 달리(?)영의 학교 입학을 영이 스스로 미룬 관계로 영은 대한의 남자 임에도 요즘 집에서 살림합니다. 아침에 신문과 같이 오는 각종..세일 품목이 적힌 수퍼 마켓들의 광고지를 신문보다 훨씬 오랜시간 꼼꼼히 읽고 체크한 뒤에 그 날에 가장 싼 품목을 파는 수퍼들을 (한 4군대 정도의 대형마켓-우리나라 이마트..뭐 그런 것들이죠) 돌며 몇십센트씩 싸게 사면 디게 좋아합니다. (사실 저는 살림꾼이 못대는 덤벙이인 관계로 이런 것들이 매우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오클랜드는 없는게 없다는 데 이곳 시골..은 있는게 없습니다. 가끔 한국 새우깡 같은 것이 들어오면 3000원 정도 라고 가격이 적혀있어서 "야 신기하다 봉투 만지작 만지작 보시락 보시락..."하다 침닦고 그냥 돌아옵니다. 괜히 슈퍼에 놓인 한국상품을 보면 뿌듯하고 신기한데, 일본 친구들이 가끔 자기 식품을 자주 사다 먹는 것과 달리 이곳 슈퍼의 그날의 세일 상품(좀 후지고 날짜 지날려고 하는)에 목숨을 거는 저희로서는 그런 식품들이 큰..사치이기 때문에 이메일로 친구에게 "라면 붙여주면 안잡아 먹지"라고 공갈 협박 하는 것이 취미이자 생활의 낙입니다. 이곳의 라면도.. 하나에 가장 싼것은 300원도 못하는게 있는데 컵라면 면발을 소금국에(스프에 고추가루 안넣어져 있습니다)동동 띄운것이라, 가끔 한국에서 온 라면을 한국에서 짜장면과 탕수육 먹을 때의...별미..기분으로 아껴서 먹고 있습니다.

 

 저는 남자들만 많은 집에서 자랐는데 엄니가 "내딸은 부엌살림 안시킨다"(그네가 얼마나 고생하셨으면) 라는 철학으로 키우셔서, 대학 일학년때 라면 끓이는 법을 알았습니다. 찬물에 면과 스프 다 털어놓고 앉아있으니까 룸메이트가 그걸 보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지요. 물이 끓으면 넣으렴..하고..(고맙다 소래야)하지만, 공주처럼 큰 건 아니랍니다. 막내 남동생이 요리의 달인이 될동안 저는 집안 못 다박고 라디오 고치고(납땜도 아주 잘함), 티비 나르고, 짐나르고 창고 정리하고, 차닦고 변소 청소 뭐 그런 것을 했지요. 머슴처럼 큰거지요.

 

 그래서 불쌍하게도 같이 사는 영이 음식을 다 책임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믹서기에 감자를 갈아서 감자전을 해주었습니다. 가끔 저도 .. 좋아하는 사람에게 맛깔스런 음식을 해주고 싶은데, (저도 시도는 해봤습니다)결말이 늘 슬프게 나서 이젠 포기했습니다. 제 오른 손엔.. 이곳에 와서 생긴 커다란 4개의 흉터가 있습니다. 버섯 볶아 보겠다고 하다 생긴 송이 버섯 모양 화상과, 피자치즈 강판에 갈다가 가운데 손가락 마디를 갈아서 생긴.. 동그랗게 볼록 올라온 흉터와..기타 등등.여러가지 칼과 화상자국 이지요. 부엌은 정말..위험한 곳 같습니다. 조심하세요. 몇번 하지도 않았는데 할때마다 살도 태우고, 부침개 뒤집개도 다 태워 녹이고 하니까 영은 제가 음식한다고 했을때 해맑게 미소 지으며 기다리던 사람에서 점점 인상쓰고 말리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한 음식을 맛있게(?꾸역꾸역?) 다 먹어주면서 "이 재료 다썼어? 이것도 여기 다 넣어 버렸어?" 하면서 몇가지 귀중한 냉장고의 재료들이 모두 형편없는 음식으로 변한것에 대한 슬픔으로 밥을 넘기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아침에 토스트 정도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가끔 설겆이도 해요) 가끔 영이 아프고 힘이 없으면.. 밥을 해서 무조건 냉장고를 털어 모두 넣고 볶아 줍니다. 이게 제 유일한 요리라면 요리..입니다.  볶음밥....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 때는 돈이 없고 차도 없어 가까운 도시에도 가보지 못하고 집앞 공원을 배회하거나  비디오 빌려다 손가락 빨던 저희는 늘 먹고 싶던 "우리의 두부"를 손수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서 슈퍼에서 마른 두부 콩을 사다가 반나절 불리고, 믹서기에 갈고 두부를 꼭 먹어 보겠다는 희망에 차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행주에 콩가루 한 주먹씩 넣고 꼬옥 짜가며.. 열심히 끓여서 오후 해질 무렵이 되자, 겨우 두부를 앉히게 되었는데, 그 중요한 두부를 굳히는 "간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뭐 찾아보니 소금을 매달아놓고 생긴 물로 어쩌구... 하길래 소금을 마구 넣었습니다. (이 때 즈음 지쳐서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음) 그래도 두부는 굳을 생각을 안하고, 학교에서 배운데로 (단백질은 열과, 산에 굳는다)는 이론에 따라 누군가의 조언으로 이번엔 레몬 식초를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몽글 몽글 굳었지만(이순간 흥분하여 식초를 마구 넣다), 결국, 순두부 정도보다 연한 정도 이지, 저희가 생각한 매력적이고 탄력적인 두부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짜고 신..맛이 나서 순두부도 제대로 안되더군요. 굳으라고 마구 넣으면서 두부 맛이 변할 거란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완성된 짜고 신..연두부는 먹지 못하고, 두부 만들려고 열심히 짠 콩들을 모아서 비지 찌개를 해먹었습니다. 저희의 결론은 "한국의 두부는 믿을 수 없게 싸다"는 것이었죠. 이렇게 고생해도 안나오는데..쩝. 다음 휴가때에(7월입니다. 야호) 크라이스  처치라는 조금 큰 도시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차편을 예약하자 마자 영이 한말은 "크라이스 처치가면 한국사람 많으니까 두부 팔겠지.. 가자 마자 두부사서 한 모 날로 먹을테야"였습니다.(아구 아구 먹는 연기까지 해가며..-두부건을 잊고 있다가 충격 조금 받았음...저리도 먹고 싶었구나..흑)

 

 혹시 오늘 두부를 드시게 되면.. 저희몫까지 맛있게 먹어주세요. 흐흐 저희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자전거를 착한 우리의 영이 (수영장 갔다 오는 동네(?) 여자아이들이 비가 오므로 집에 가게 빌려달라고 하여)에게 빌려주고 전화도 주소도 묻지 않은 관계로..). 저는 학교에 오늘 걷거나 뛰어서 가야 합니다. (뉴질랜드도 차없이는 살기가 힘든 나라 중에 하나 입니다. 대중교통도 작은 도시는 거의 없구요. 슈퍼가 코앞에 있던 시절이 얼마나 그리운지요. 조금 거짓말 보태서 화장실에 휴지 떨어지면 삼십분은 열심히 뛰어야 한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일찍 집을 나서야 겠어요. 흐흐 좋은 하루 되세요. 자전거 좀 가져다 주지.. 휴우 빌려간지 닷새째 안가져 옵니다. 달려라 하니까까머리 키위새에게 두부 한모 주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