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되었던 간에 죽음만은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남은 가족에게 큰 상처가 됩니다. 설령 그게 성공하지 않고 미수로 그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 저도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어디가서 얼굴 마주하고 떳떳하게 말할만한 가정사는 아니니까 여기에나마 풀어볼까 해서요. 제 친아버지는 나이 50되도록 철이 들지 않았었습니다. 바람...엄청난 바람둥이셨습니다. 저를 임신중이었던 어머니를 집에 두고 당시 바람피던 아주머니와 함께 고모가 운영하시는 딸기밭에 자주 가셨답니다. 말도 안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저희 친가쪽 분들은 그 아주머니가 아버지 부인인줄 알았답니다. 얼마나 자주 데리고 갔으면... 그 아줌마는 고기집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친가쪽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위해 고기를 자주 가져다 줬다네요. 결국 어머니한테 걸려서 헤어지게 됐는데 그때 저희 친가쪽 사람들 그아줌마 보내면서 울었답니다.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더라구요.... 하루는 저를 캬바레에 데리고 가시더군요. 호프집 주방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늦게 들어오셔서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딸을 집에 혼자 두고 나갈수는 없었는지... 제가 보는 앞에서 낯선 아줌마와 부둥켜 안고 춤을 추셨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다가 그냥 눈물이 나오더군요. 남편이 조폭인 여자와 바람을 피다가 헤어지셨습니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는지... 그 여자가 남편한테 죽을 각오를 하고 일러바쳤더군요. 그만큼 자길 버린 제 아버지가 미웠었나봐요. 물론 약간의 각색은 있었겠죠. 저놈이 날 꼬셨다는둥... 저 하교길에 조폭한테 칼맞아 죽을뻔했습니다... 아버진 저와 어머니에게는 꽁생원같이 굴었으면서 바람피던 여자에겐 있는대로 퍼줬었습니다. 어머니나 저나 아버지께 변변한 옷한벌 얻어입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딱 두벌 있는데 한벌은 당시 바람피던 아줌마가 저에게 선물해주라며 크리스마스날 사준겁니다. 고모가 사줬다고 박박 우기셨고 어린 저는 믿었었지만 지금와서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그옷은 절대 고모취향이 아니었다고... 또 한벌은 잠옷이었습니다. 시장에서 한벌에 5천원 정도 하는 원피스형 잠옷.. 이렇다 보니 집에와서 어머니께 사랑을 보이신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20살이 넘어서야 어머니가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 10년이 넘도록 부부관계를 하지 못했다고, 밖에서 기운을 다 빼고 오니 그런가보다고. 그렇다고 돈이나 많이 벌어주는가 하면, 아니었습니다. 능력이 없는건지 있는데도 일하기싫어서 농땡이 부리는건지 아니면 많이 벌지만 바람핀 여자들한테 다 퍼줬던건지. 중학생때였을 겁니다. 한...3~4개월을 내리 집에서 노시더군요. 그러면서 카드와 은행빚으로 차를 연거푸 네번이나 갈아치우셨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그때 진 빚이 전체 빚의 2/3는 되는 것 같습니다.. 빚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는 위장 결혼을 하셨습니다. 웃으면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으셨죠. 그러다가 정말 헤어져버리셨습니다. 어머니가 처음엔 좀 먼 곳에서 며칠간 일을 도와주고 오신다며 집과 일터를 왔다 갔다 하시며 외박을 자주 하시더니 결국 아예 집을 나가셨습니다. 물론 저와는 종종 연락을 했지만 아버지께는 비밀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힘들게 일해서 버는 푼돈을 자꾸 가로채가셨거든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빨리 발견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덕분에 마비라던가 장애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병원비 낼 길이 막막했습니다. 전 고등학생이었고 그동안제가 모아둔 푼돈은 아버지께서 진작에 다 털어가신지 오래였습니다.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어머니가 병원으로 오셨지만 어머니라고 돈이 있진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자살기도를 했다가 실패하는바람에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퇴원한 상황이었습니다. 지원을 받자니..그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차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밤에 주방일 하시면서 모은 돈으로 인천 변두리에 산 집도 있었습니다. 집담보로 대출을 받고 갚지 않는 바람에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었고 가구에도 빨간딱지들이 모두 붙어있었지만... 어찌됐든 차와 집이 있으니 나라에서 병원비를 지원해 줄 수 없다 했습니다. 평생 연락 안하고 살던 고모댁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도 자기 동생이 쓰러졌다는 말에 병원비를 대주긴 하시더군요. 그런데 병원에서 입원해있는동안 정신을 좀 차린듯 했던 아버지가 퇴원을 하니까 다시 정신을 못차리시더군요. 여전히 빚은 갚을 생각이 없어 집으로 빚 독촉장이 날아오고 이미 붙어 있는 빨간딱지위에, 다른 금융기관에서 한번 더붙이더군요. 그게 되는건지 안되는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학교를 때려쳤습니다. 18살때부터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벌었지요. 모일만 하면 아버지가 빌려달라며 가져갔습니다. 금융기관들에 제 핸드폰 번호를 넘기셔서 독촉전화가 저한테 다 왔습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는데 어디계시냐 부터 시작해서 딸이 아버지 빚 대신 갚으면 안되겠냐 까지.. 아버지는 제가 성인이 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면 카드를 만들라고 하시더군요. 그 카드 자기가 쓰려고 했나봅니다. 본인은 신불자라 안되니까요. 결국 잘 다니고 있던 회사도 아버지때문에 그만뒀습니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몇번이나 전화가 와서 빚보증 서달라고 그러시더군요. 저 그때까지도 미성년자였습니다. 보증을 설 수 없는 나이였지만 아버지가 빚쟁이들에게 우리 딸 일한다고, 걔가 갚겠다고 그러셨나봐요. 아무튼 그 일로 저희 집안 사정을 알게된 사장과 대리가 절 우습게 보고 괴롭히더군요. 경리로 일을 배우고 있었는데 대리라는 여자가 사장에게 저에대해서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과장하면서 저랑 일 못하겠다고...울면서 그랬답니다. 그리고는 금고 열쇠랑 서랍열쇠를 가지고가서 회사를 안나오더군요. 모든 서류들이 들어있던 서랍을 열쇠로 잠그고... 결제일이 다가와서 업체에서 전화는 오고... 그런 상황에서도 사장은 금고랑 서랍 열어줄 생각은 안하고 너때문에 대리 안나온다며 화를 내더군요....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책상에 앉아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프린터로 사표를 출력해 사장에게 던지고 나왔습니다. 그길로 친아버지와는 인연을 끊었습니다. 그래도 어릴적부터 아버지께 사랑받고 자랐으면 어떻게든 같이 지냈을지도 모르지만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보니 쉽게 인연을 끊을 생각이 들더군요. 초등학생인 딸을, 집에 오는 전화 다 받아야 한다며 밖에 못나가게 가둬두고 화장실 가는것마저 체크하셨습니다. 어쩌다 학원이라도 빠지는 날엔 손에 잡히는 모든것이 무기였습니다. 라면을 꼬들꼬들하게 끓이지 못하거나 좀 덜 익힌 날엔 냄비가 날라왔습니다. 어린아이 작은 손으로 물건을 붙들어봐야 얼마나 단단히 붙들겠습니까. 뭐라도 떨어뜨리는 날엔 쌍욕이 난무했습니다. 어머니께 말대답을 했다고 뺨을 양쪽 번갈아서 연타로 맞았습니다. 길다가 여자깡패 4명한테 걸려서 머리를 뜯기고 하이힐로 밟히고 왔는데 맞고 온 제가 창피하다며 그년들한테 맞은거보다 더 많이, 더 아프게 때렸습니다. 심부름을 시켰는데 느릿하게 움직인다고 철제 의자를 집어던지셨습니다. 독감에 걸려 고통스럽게 기침하는데 한번만 더 기침하면 죽여버린다 하셨습니다. 키우던 개를 길에 내다 버리신다길래 어린 마음에 (초2) 개 버리면 나 죽는다 그랬더니 식칼을 손에 쥐어주고 얼른 죽으라고 하셨습니다. 산수 계산이 느리다고 발로 밟혔습니다.. 뭐 아무튼 안보고 사니까 좋습니다. 그동안의 제 삶에서 이렇게 평화로웠던적이 있나 싶습니다. 어머니도 지금은 좋은분이랑 제혼하셔서 잘 사십니다. 새아버지는 마초적인 기질이 있지만 여자를 소중히 여길줄 아시고 바람은 꿈도 안꾸시는 분입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전 이혼했던건 전부인이 형부와 바람나서 형부의 아이를 낳아서였습니다. 서로 상처가있는 분들끼리 잘 다독이면서 사시는거 보면 저때문에 제혼을 망설이던 엄마를 밀어붙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딸입니다
어찌되었던 간에
죽음만은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남은 가족에게 큰 상처가 됩니다.
설령 그게 성공하지 않고 미수로 그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
저도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어디가서 얼굴 마주하고 떳떳하게 말할만한 가정사는 아니니까
여기에나마 풀어볼까 해서요.
제 친아버지는 나이 50되도록 철이 들지 않았었습니다.
바람...엄청난 바람둥이셨습니다.
저를 임신중이었던 어머니를 집에 두고
당시 바람피던 아주머니와 함께 고모가 운영하시는 딸기밭에 자주 가셨답니다.
말도 안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저희 친가쪽 분들은 그 아주머니가 아버지 부인인줄 알았답니다.
얼마나 자주 데리고 갔으면...
그 아줌마는 고기집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친가쪽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위해 고기를 자주 가져다 줬다네요.
결국 어머니한테 걸려서 헤어지게 됐는데
그때 저희 친가쪽 사람들 그아줌마 보내면서 울었답니다.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더라구요....
하루는 저를 캬바레에 데리고 가시더군요.
호프집 주방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늦게 들어오셔서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딸을 집에 혼자 두고 나갈수는 없었는지...
제가 보는 앞에서 낯선 아줌마와 부둥켜 안고 춤을 추셨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다가 그냥 눈물이 나오더군요.
남편이 조폭인 여자와 바람을 피다가 헤어지셨습니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는지...
그 여자가 남편한테 죽을 각오를 하고 일러바쳤더군요.
그만큼 자길 버린 제 아버지가 미웠었나봐요.
물론 약간의 각색은 있었겠죠.
저놈이 날 꼬셨다는둥...
저 하교길에 조폭한테 칼맞아 죽을뻔했습니다...
아버진 저와 어머니에게는 꽁생원같이 굴었으면서
바람피던 여자에겐 있는대로 퍼줬었습니다.
어머니나 저나 아버지께 변변한 옷한벌 얻어입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딱 두벌 있는데 한벌은 당시 바람피던 아줌마가 저에게 선물해주라며
크리스마스날 사준겁니다.
고모가 사줬다고 박박 우기셨고 어린 저는 믿었었지만
지금와서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그옷은 절대 고모취향이 아니었다고...
또 한벌은 잠옷이었습니다. 시장에서 한벌에 5천원 정도 하는 원피스형 잠옷..
이렇다 보니 집에와서 어머니께 사랑을 보이신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20살이 넘어서야 어머니가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
10년이 넘도록 부부관계를 하지 못했다고, 밖에서 기운을 다 빼고 오니 그런가보다고.
그렇다고 돈이나 많이 벌어주는가 하면, 아니었습니다.
능력이 없는건지 있는데도 일하기싫어서 농땡이 부리는건지
아니면 많이 벌지만 바람핀 여자들한테 다 퍼줬던건지.
중학생때였을 겁니다.
한...3~4개월을 내리 집에서 노시더군요.
그러면서 카드와 은행빚으로 차를 연거푸 네번이나 갈아치우셨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그때 진 빚이 전체 빚의 2/3는 되는 것 같습니다..
빚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는 위장 결혼을 하셨습니다.
웃으면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으셨죠.
그러다가 정말 헤어져버리셨습니다.
어머니가 처음엔 좀 먼 곳에서 며칠간 일을 도와주고 오신다며
집과 일터를 왔다 갔다 하시며 외박을 자주 하시더니
결국 아예 집을 나가셨습니다.
물론 저와는 종종 연락을 했지만 아버지께는 비밀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힘들게 일해서 버는 푼돈을 자꾸 가로채가셨거든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빨리 발견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덕분에
마비라던가 장애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병원비 낼 길이 막막했습니다.
전 고등학생이었고 그동안제가 모아둔 푼돈은 아버지께서 진작에
다 털어가신지 오래였습니다.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어머니가 병원으로 오셨지만
어머니라고 돈이 있진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자살기도를 했다가 실패하는바람에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퇴원한 상황이었습니다.
지원을 받자니..그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차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밤에 주방일 하시면서 모은 돈으로 인천 변두리에 산 집도 있었습니다.
집담보로 대출을 받고 갚지 않는 바람에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었고
가구에도 빨간딱지들이 모두 붙어있었지만...
어찌됐든 차와 집이 있으니 나라에서 병원비를 지원해 줄 수 없다 했습니다.
평생 연락 안하고 살던 고모댁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도 자기 동생이 쓰러졌다는 말에 병원비를 대주긴 하시더군요.
그런데 병원에서 입원해있는동안
정신을 좀 차린듯 했던 아버지가
퇴원을 하니까 다시 정신을 못차리시더군요.
여전히 빚은 갚을 생각이 없어 집으로 빚 독촉장이 날아오고
이미 붙어 있는 빨간딱지위에, 다른 금융기관에서 한번 더붙이더군요.
그게 되는건지 안되는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학교를 때려쳤습니다.
18살때부터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벌었지요.
모일만 하면 아버지가 빌려달라며 가져갔습니다.
금융기관들에 제 핸드폰 번호를 넘기셔서
독촉전화가 저한테 다 왔습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는데 어디계시냐 부터 시작해서
딸이 아버지 빚 대신 갚으면 안되겠냐 까지..
아버지는 제가 성인이 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면 카드를 만들라고 하시더군요.
그 카드 자기가 쓰려고 했나봅니다. 본인은 신불자라 안되니까요.
결국 잘 다니고 있던 회사도 아버지때문에 그만뒀습니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몇번이나 전화가 와서 빚보증 서달라고 그러시더군요.
저 그때까지도 미성년자였습니다.
보증을 설 수 없는 나이였지만
아버지가 빚쟁이들에게 우리 딸 일한다고, 걔가 갚겠다고 그러셨나봐요.
아무튼
그 일로 저희 집안 사정을 알게된 사장과 대리가
절 우습게 보고 괴롭히더군요.
경리로 일을 배우고 있었는데 대리라는 여자가 사장에게
저에대해서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과장하면서
저랑 일 못하겠다고...울면서 그랬답니다.
그리고는 금고 열쇠랑 서랍열쇠를 가지고가서 회사를 안나오더군요.
모든 서류들이 들어있던 서랍을 열쇠로 잠그고...
결제일이 다가와서 업체에서 전화는 오고...
그런 상황에서도 사장은 금고랑 서랍 열어줄 생각은 안하고
너때문에 대리 안나온다며 화를 내더군요....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책상에 앉아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프린터로 사표를 출력해 사장에게 던지고 나왔습니다.
그길로 친아버지와는 인연을 끊었습니다.
그래도 어릴적부터 아버지께 사랑받고 자랐으면 어떻게든 같이 지냈을지도 모르지만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보니 쉽게 인연을 끊을 생각이 들더군요.
초등학생인 딸을, 집에 오는 전화 다 받아야 한다며
밖에 못나가게 가둬두고 화장실 가는것마저 체크하셨습니다.
어쩌다 학원이라도 빠지는 날엔 손에 잡히는 모든것이 무기였습니다.
라면을 꼬들꼬들하게 끓이지 못하거나 좀 덜 익힌 날엔
냄비가 날라왔습니다.
어린아이 작은 손으로 물건을 붙들어봐야 얼마나 단단히 붙들겠습니까.
뭐라도 떨어뜨리는 날엔 쌍욕이 난무했습니다.
어머니께 말대답을 했다고 뺨을 양쪽 번갈아서 연타로 맞았습니다.
길다가 여자깡패 4명한테 걸려서 머리를 뜯기고 하이힐로 밟히고 왔는데
맞고 온 제가 창피하다며 그년들한테 맞은거보다 더 많이, 더 아프게 때렸습니다.
심부름을 시켰는데 느릿하게 움직인다고 철제 의자를 집어던지셨습니다.
독감에 걸려 고통스럽게 기침하는데 한번만 더 기침하면 죽여버린다 하셨습니다.
키우던 개를 길에 내다 버리신다길래 어린 마음에 (초2) 개 버리면 나 죽는다 그랬더니
식칼을 손에 쥐어주고 얼른 죽으라고 하셨습니다.
산수 계산이 느리다고 발로 밟혔습니다..
뭐 아무튼
안보고 사니까 좋습니다.
그동안의 제 삶에서 이렇게 평화로웠던적이 있나 싶습니다.
어머니도 지금은 좋은분이랑 제혼하셔서 잘 사십니다.
새아버지는 마초적인 기질이 있지만 여자를 소중히 여길줄 아시고
바람은 꿈도 안꾸시는 분입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전 이혼했던건
전부인이 형부와 바람나서 형부의 아이를 낳아서였습니다.
서로 상처가있는 분들끼리 잘 다독이면서 사시는거 보면
저때문에 제혼을 망설이던 엄마를 밀어붙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