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트 톡이 첫월급 받고 사드린 옷 환불해오신 어머니 글을 읽다가 저희할머니가 생각이나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랑 제 오빠는 할머니 손에서 키워졌습니다.. 아주 어릴때 아버지가 사고로 누워계셨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기 때문입니다. 좋았던 집안도 아버지의 사고로 인해 다 엉망이 되고 방한칸 월세방에서 생활을 했지요 나라에서 도와주는 보조금과 여러 단체에서 도와주는 후원금... 나물을 캐시고 파시며 고물을 주으시고 파시면서 할머니는 아둥바둥 아끼고 아끼면서 저희를 키워주셨습니다.. 저흰 엄마의 사랑은 아니였지만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항상 어디가서 부모없이 자라서 저런단 소리 안듣게 하실려고 항상 노력하셨습니다. 없는살림에도 학교에서 수학여행이라고 갈때면 남들에게 기죽을까봐 항상 보내주셨고요.. 정말 어려운 가정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가름침을 받으며 잘 살았습니다.. 제가 겁이 워낙에 많아서 월세방산곳이 밖에 있는 화장실이었거든요.. 항상 밤에 화장실갈땐 할머니가 문앞에 계셨고..또 제가 좀 늦게 집에 들어오게 되면 항상 버스정류장까지 나와계셨어요.. 제가 무서워서 혼자 못가니까요.. 한번은 제가 중학교2학년때이었을거예요... 그때부터 아마도 할머니 생신선물 사 드린듯..싶네요.. 처음으로 할머니 생신이라 사드린 선물이 양산이었습니다.. 할머니 생신이 초여름이다 보니 햇별이 뜨거우니깐 쓰고 다니시라고 사드린거였지요.. 저희 할머니 그 선물 받으시고 엄청 좋아하셨습니다.. 동네 할머니들 놀러올때마다 우산을 보여주시며 항상 자랑하셨으니까요..^^ 그 해 생신때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이 함께 돈을모아 울릉도로 여행을 갔다오셨습니다. 그때 양산 챙겨가셨죠...전 당연히 날도 더우니깐 양산쓰고 다니실줄 알았는데 나중에 고모하테 애기를 들어보니.. 저희 할머니 일주일동안 거기계셨으면서 한번도 양산을 안쓰셨데요.. 괜히 쓰고 다니다가 혹시나 잃어 버릴까봐 가방에만 넣고 다니셨던거죠... 바보같이...잃어버리면 또 사드리면 되는건데.. 저흰 할머닌 그 뒤로도 한번도 그 우산을 쓰지 않으셨어요..잃어버리면 안된다고... 제가 고3이 되던해에는 할머니랑 같이 이미지 사진을 찍었어요.. 그동안 어릴때 빼곤 한번도 할머니랑 같이 찍었던적이 없었던거 같아서.. 결국 그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자 마지막 생신선물이었지만요.. 저희 할머니 제가 초등학교 입학할때 입학 사진 못찍어준게 항상 한이셨거든요.. 그 사진찍고 어찌나 좋아하시고 초등학교 이야기를 하시는지.. 동네 할머니 놀러오실때마다 그 사진 보여주시며 입학사진 하나 못찍어줫는데..하시면서 항상 우셨어여..... 지금까지 서론이 길었던거 같네요....이제 제목에있는 애기를 한번해볼까합니다.. 저희 할머니 항상 저희들을 키우시면서 하시던 말씀이 있으세요 저것들 고등학교 졸업할때는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데...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는.. 항상 하시던 말씀이셨죠..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진 10흘정도 지났을꺼예요.. 골다골증으로 뼈를 다치시면 안되셨는데 버스 안에서 안전 사고를 당하셨죠..갈비뼈가 뿌려지고... 엄청 고생을 하셨어요...병원에 계속 입원해 계셨으니까요 저랑 고모랑 번갈아 가며 간호를 해드렸고 그때까지만 해도 몸만 불편하셨지 괜찬으셨어요 말씀도 잘하시고.. 그렇다가 제가 첫월급을 받게 되었지요... 많은 돈은 아니였지만 제가 적금할돈이랑 버스비 점심값 등등을 뺀 나머지 돈 30만원을 손에 쥐어 드렸죠...저희 할머니 그 돈받으시고 먼 돈을 이리도 마니 주시냐면서 계속 말씀하셨어여...전 할머니 먹고 싶은거 사드시라고만 말했죠.. 그러나 심장도 안좋으셨던 우리 할머니 결국 상태가 안좋아져서 할머닌 중환자실로 입원하시게 됬고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보름만에 돌아가셨어요....결국 제가 드린돈은 한푼도 쓰지도 못하고 나중에 보니 그돈 베게 밑에 고스란히 있었어요.. 항상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던..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진 살아야지..하고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던 말씀대로 제가 고등학교 졸업한지..한달 보름만에...돌아가셨어여.. 아직도 눈에 선해요...돌아가시던날 아침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저를 보자마자 물을 달라 하셨던 할머니.. 그때 간호가가 아무것도 드리면 안된다고 해서 저 안드렸거든요,.. 지금은 한이 되요..그때 물이라도 실컨 드릴걸...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날이 저희 오빠 생일이었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할머니 혼자 니오빠 생일인데..생일인데..하시면서 미역국끓여주라 하셨던 우리 할머니.. 항상 별거도 아닌 비싸지도 않은 선물 사드릴때마다 돈 낭비하게 머하러 그런거 사와 하시면서 동네할머니하테 자랑하셨던 우리 할머니...의자하나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손녀딸 기둘린다며 쪼그려 안자 계셨던 우리 할머니..많지도 않은 작은돈 멀그리 마니 주냐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던 우리 할머니..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났는데두...아직도 그때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지금도 후회가 되요..정말 단 한번도..고맙단 말씀도..사랑한단 말씀도 못드렸던것이.. 산소에도 자주 자주 가겠다고 다짐하지만..벌써 1년째 못가고 있네요..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저 정말 나쁜 손녀딸이죠.. 저 같은 못된 손녀딸 바르게 키우시느라 고생하셨던 우리 할머니.. 아니...우리 어머니....어머니...정말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쓴글 잃어 주신거 감사 드려요.. 1
손녀딸 첫월급 용돈 받아 한푼도 못쓰고 돌아 가신 우리 할머니..
네이트 톡이 첫월급 받고 사드린 옷 환불해오신 어머니 글을 읽다가
저희할머니가 생각이나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랑 제 오빠는 할머니 손에서 키워졌습니다..
아주 어릴때 아버지가 사고로 누워계셨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기 때문입니다.
좋았던 집안도 아버지의 사고로 인해 다 엉망이 되고
방한칸 월세방에서 생활을 했지요
나라에서 도와주는 보조금과 여러 단체에서 도와주는 후원금...
나물을 캐시고 파시며 고물을 주으시고 파시면서
할머니는 아둥바둥 아끼고 아끼면서 저희를 키워주셨습니다..
저흰 엄마의 사랑은 아니였지만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항상 어디가서 부모없이 자라서 저런단 소리 안듣게 하실려고 항상 노력하셨습니다.
없는살림에도 학교에서 수학여행이라고 갈때면 남들에게 기죽을까봐 항상 보내주셨고요..
정말 어려운 가정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가름침을 받으며 잘 살았습니다..
제가 겁이 워낙에 많아서 월세방산곳이 밖에 있는 화장실이었거든요.. 항상 밤에 화장실갈땐 할머니가 문앞에 계셨고..또 제가 좀 늦게 집에 들어오게 되면 항상 버스정류장까지 나와계셨어요..
제가 무서워서 혼자 못가니까요..
한번은 제가 중학교2학년때이었을거예요...
그때부터 아마도 할머니 생신선물 사 드린듯..싶네요..
처음으로 할머니 생신이라 사드린 선물이 양산이었습니다..
할머니 생신이 초여름이다 보니 햇별이 뜨거우니깐 쓰고 다니시라고 사드린거였지요..
저희 할머니 그 선물 받으시고 엄청 좋아하셨습니다..
동네 할머니들 놀러올때마다 우산을 보여주시며 항상 자랑하셨으니까요..^^
그 해 생신때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이 함께 돈을모아 울릉도로 여행을 갔다오셨습니다.
그때 양산 챙겨가셨죠...전 당연히 날도 더우니깐 양산쓰고 다니실줄 알았는데
나중에 고모하테 애기를 들어보니..
저희 할머니 일주일동안 거기계셨으면서 한번도 양산을 안쓰셨데요..
괜히 쓰고 다니다가 혹시나 잃어 버릴까봐 가방에만 넣고 다니셨던거죠...
바보같이...잃어버리면 또 사드리면 되는건데..
저흰 할머닌 그 뒤로도 한번도 그 우산을 쓰지 않으셨어요..잃어버리면 안된다고...
제가 고3이 되던해에는 할머니랑 같이 이미지 사진을 찍었어요..
그동안 어릴때 빼곤 한번도 할머니랑 같이 찍었던적이 없었던거 같아서..
결국 그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자 마지막 생신선물이었지만요..
저희 할머니 제가 초등학교 입학할때 입학 사진 못찍어준게 항상 한이셨거든요..
그 사진찍고 어찌나 좋아하시고 초등학교 이야기를 하시는지..
동네 할머니 놀러오실때마다 그 사진 보여주시며 입학사진 하나 못찍어줫는데..하시면서
항상 우셨어여.....
지금까지 서론이 길었던거 같네요....이제 제목에있는 애기를 한번해볼까합니다..
저희 할머니 항상 저희들을 키우시면서 하시던 말씀이 있으세요
저것들 고등학교 졸업할때는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데...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는..
항상 하시던 말씀이셨죠..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진 10흘정도 지났을꺼예요..
골다골증으로 뼈를 다치시면 안되셨는데
버스 안에서 안전 사고를 당하셨죠..갈비뼈가 뿌려지고...
엄청 고생을 하셨어요...병원에 계속 입원해 계셨으니까요
저랑 고모랑 번갈아 가며 간호를 해드렸고 그때까지만 해도 몸만 불편하셨지 괜찬으셨어요
말씀도 잘하시고.. 그렇다가 제가 첫월급을 받게 되었지요...
많은 돈은 아니였지만 제가 적금할돈이랑 버스비 점심값 등등을 뺀 나머지 돈
30만원을 손에 쥐어 드렸죠...저희 할머니 그 돈받으시고 먼 돈을 이리도 마니 주시냐면서
계속 말씀하셨어여...전 할머니 먹고 싶은거 사드시라고만 말했죠..
그러나 심장도 안좋으셨던 우리 할머니 결국 상태가 안좋아져서 할머닌 중환자실로 입원하시게 됬고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보름만에 돌아가셨어요....결국 제가 드린돈은 한푼도 쓰지도 못하고 나중에 보니 그돈 베게 밑에 고스란히 있었어요..
항상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던..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진 살아야지..하고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던 말씀대로 제가 고등학교 졸업한지..한달 보름만에...돌아가셨어여..
아직도 눈에 선해요...돌아가시던날 아침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저를 보자마자 물을 달라 하셨던 할머니..
그때 간호가가 아무것도 드리면 안된다고 해서 저 안드렸거든요,..
지금은 한이 되요..그때 물이라도 실컨 드릴걸...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날이 저희 오빠 생일이었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할머니 혼자 니오빠 생일인데..생일인데..하시면서 미역국끓여주라 하셨던 우리 할머니..
항상 별거도 아닌 비싸지도 않은 선물 사드릴때마다 돈 낭비하게 머하러 그런거 사와 하시면서
동네할머니하테 자랑하셨던 우리 할머니...의자하나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손녀딸 기둘린다며 쪼그려 안자 계셨던 우리 할머니..많지도 않은 작은돈 멀그리 마니 주냐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던 우리 할머니..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났는데두...아직도 그때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지금도 후회가 되요..정말 단 한번도..고맙단 말씀도..사랑한단 말씀도 못드렸던것이..
산소에도 자주 자주 가겠다고 다짐하지만..벌써 1년째 못가고 있네요..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저 정말 나쁜 손녀딸이죠..
저 같은 못된 손녀딸 바르게 키우시느라 고생하셨던 우리 할머니..
아니...우리 어머니....어머니...정말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쓴글 잃어 주신거 감사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