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도중에 이모들의 성화에 못이겨 아빠를 만났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곧바로 시집에 들어와 살게되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시댁식구들은 모두 무시하며 괄시하였습니다.
예전의 아빠는 집안일이나 아이들에 무신경하셨습니다. 지금이야 나이를 들어가시면서 많이 변하고 계시지만, 어머니께선 아버지때문에도 많이 힘들어하셨구요.
하지만, 문제는 시어머니!
그때당시에는 가마솥에 밥을했는데, 밥상을 어머니가 다 차리시고 정작 본인은 가마솥 바닥에 남은 누룽지를 끓여 3끼니를 드셨습니다. 분가할때까지!
그리고 제 한살많은 언니를 가졌을 때, 어머니께서는 방에서 한번이고 편안하게 누워보질 못하셨습니다.
옛날 여자들은 아이가져도 할일은 다 했다면서 온갖 구박이 있어서였죠.
오죽했으면 밭일을 하러 밭에 나가 시어머니가 보지 않는 틈에 밭에 누워계셨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임산부는 먹고싶은거 잘 먹어야하지 않습니까?
과일? 과자? 이런거 꿈도 못꾸게 하셨습니다.
언니 임신중에 드신거라고는 시부모님 외출하셨을때 드셨던 통닭한마리.
얼마나 드시고 싶으셨는지 어머니 혼자 그 한마리에 뼈까지 드셨답니다.
그 결과 언니는 8개월만에 1.5kg의 완전 미숙아로 태어났고, 지금같으면 잉큐베이터에 들어가야하지만 당시에 병원에서도 포기한 언니를 살려낸게 바로 어머니이십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아들이 아닌 딸이라고 그걸 살려서 뭐하냐는 식. 이런 온갖 못할소리 하셨지만 어머니는 견뎌내셨습니다.
지금의 제 큰오빠죠? 오빠도 할머니한테 온갖 서러움 다 받았습니다.
군것질거리가 없어서 밭에서 가지하나 몰래 훔쳐서 먹고, 또 그걸 걸리는 날에는 정말 호되게 혼이 났답니다. 밥도 하루 아침 저녁에 점심은 고구마로 먹이고 ..
그 이후에 할아버지가 안타깝게 보셨던지 지금의 집으로 분가를 시켜주셨습니다.
분가 후에 저를 가지신 어머니는 그래도 드실건 드시면서 사셨지만 딸 낳았다고 또 구박받고, 마음잡지 못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또 그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저 낳고 집에 온 후 미역국도 못 얻어먹고 집에 누워계셨던지라 아버지께서 할머니 댁에 가서 밥을 드신 후 전화가 왔답니다. 딸낳아놓고 아들 굶긴다구요.
우리 어머니.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셔서 빨래하셨습니다.
그 영향으로 지금 어머니 몸 구석구석 안아픈곳이 없구요.
명절에 친가에 가면 시골에 사는 우리 불쌍하다며 할아버지가 사탕도 주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큰집에 언니들 둘과 아들하나가 있는데, 정말 끔찍이 여기십니다.
우리는 완전 개무시하면서요.
솔직히 큰집 언니들은 공부 잘합니다. 도시에서 학원다니면서 공부했으니까요.
우리는 시골학교 다니면서 학원한번가보지 못했는데,
공부못한다고 구박하고, 큰집 자식들이랑 맨날 비교를 했습니다.
하도 그러길래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부터는 할머니 댁이랑 차로 20분 거리인데,
안갔습니다. 저 초등학교때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맨날 구박만 하던 할머니가
점점 약해지시면서 그렇게 힘든 샌활을 견딘 어머니의 목소리도 커져갔습니다.
맨날 비교만 해서 안간다고 한 뒤부터 어머니께서 뭐라 말씀하셨는지 이젠 비교 안하십니다.
우리 어머니. 힘든 농사 일에 자식들은 넷이나 키우려니 힘들긴 엄청 힘든데 아버지는 도와주질 않으니 견디질 못하셨습니다. 어딜나가도 4명다 데리고 나가고,, 추운 겨울에 아이는 아픈데 눈이 많이 쌓여 버스는 들어오지 않을 때는 아이를 업고 걸어서 한시간거리인 시내까지 걸어나가셨답니다.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는지,,그런 어머니 힘든 것도 모른채 우리들은 그저 어머니한테만 붙어있으려고 했습니다.
우리어머니이야기입니다.
톡에 올라온 몇몇 글들을 보면 시어머니때문에 미치겠다 하시는 분들 계신데요.
우리 어머니 이야기를 들은 저로선 100% 공감입니다.
젊은시절 시절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갖게된 엄마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낳아서
젊은 나이에 혼자 키우셨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이모들의 성화에 못이겨 아빠를 만났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곧바로 시집에 들어와 살게되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시댁식구들은 모두 무시하며 괄시하였습니다.
예전의 아빠는 집안일이나 아이들에 무신경하셨습니다. 지금이야 나이를 들어가시면서 많이 변하고 계시지만, 어머니께선 아버지때문에도 많이 힘들어하셨구요.
하지만, 문제는 시어머니!
그때당시에는 가마솥에 밥을했는데, 밥상을 어머니가 다 차리시고 정작 본인은 가마솥 바닥에 남은 누룽지를 끓여 3끼니를 드셨습니다. 분가할때까지!
그리고 제 한살많은 언니를 가졌을 때, 어머니께서는 방에서 한번이고 편안하게 누워보질 못하셨습니다.
옛날 여자들은 아이가져도 할일은 다 했다면서 온갖 구박이 있어서였죠.
오죽했으면 밭일을 하러 밭에 나가 시어머니가 보지 않는 틈에 밭에 누워계셨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임산부는 먹고싶은거 잘 먹어야하지 않습니까?
과일? 과자? 이런거 꿈도 못꾸게 하셨습니다.
언니 임신중에 드신거라고는 시부모님 외출하셨을때 드셨던 통닭한마리.
얼마나 드시고 싶으셨는지 어머니 혼자 그 한마리에 뼈까지 드셨답니다.
그 결과 언니는 8개월만에 1.5kg의 완전 미숙아로 태어났고, 지금같으면 잉큐베이터에 들어가야하지만 당시에 병원에서도 포기한 언니를 살려낸게 바로 어머니이십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아들이 아닌 딸이라고 그걸 살려서 뭐하냐는 식. 이런 온갖 못할소리 하셨지만 어머니는 견뎌내셨습니다.
지금의 제 큰오빠죠? 오빠도 할머니한테 온갖 서러움 다 받았습니다.
군것질거리가 없어서 밭에서 가지하나 몰래 훔쳐서 먹고, 또 그걸 걸리는 날에는 정말 호되게 혼이 났답니다. 밥도 하루 아침 저녁에 점심은 고구마로 먹이고 ..
그 이후에 할아버지가 안타깝게 보셨던지 지금의 집으로 분가를 시켜주셨습니다.
분가 후에 저를 가지신 어머니는 그래도 드실건 드시면서 사셨지만 딸 낳았다고 또 구박받고, 마음잡지 못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또 그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저 낳고 집에 온 후 미역국도 못 얻어먹고 집에 누워계셨던지라 아버지께서 할머니 댁에 가서 밥을 드신 후 전화가 왔답니다. 딸낳아놓고 아들 굶긴다구요.
우리 어머니.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셔서 빨래하셨습니다.
그 영향으로 지금 어머니 몸 구석구석 안아픈곳이 없구요.
명절에 친가에 가면 시골에 사는 우리 불쌍하다며 할아버지가 사탕도 주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큰집에 언니들 둘과 아들하나가 있는데, 정말 끔찍이 여기십니다.
우리는 완전 개무시하면서요.
솔직히 큰집 언니들은 공부 잘합니다. 도시에서 학원다니면서 공부했으니까요.
우리는 시골학교 다니면서 학원한번가보지 못했는데,
공부못한다고 구박하고, 큰집 자식들이랑 맨날 비교를 했습니다.
하도 그러길래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부터는 할머니 댁이랑 차로 20분 거리인데,
안갔습니다. 저 초등학교때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맨날 구박만 하던 할머니가
점점 약해지시면서 그렇게 힘든 샌활을 견딘 어머니의 목소리도 커져갔습니다.
맨날 비교만 해서 안간다고 한 뒤부터 어머니께서 뭐라 말씀하셨는지 이젠 비교 안하십니다.
우리 어머니. 힘든 농사 일에 자식들은 넷이나 키우려니 힘들긴 엄청 힘든데 아버지는 도와주질 않으니 견디질 못하셨습니다. 어딜나가도 4명다 데리고 나가고,, 추운 겨울에 아이는 아픈데 눈이 많이 쌓여 버스는 들어오지 않을 때는 아이를 업고 걸어서 한시간거리인 시내까지 걸어나가셨답니다.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는지,,그런 어머니 힘든 것도 모른채 우리들은 그저 어머니한테만 붙어있으려고 했습니다.
농사일에 가사일에 온갖 집안일에 아이들까지 ..
너무 힘드신 어머니는 아이들 버리고 나갈 생각까지 하셨습니다.
나갈생각에 짐까지 싸면 아이들이 눈에 밟혀 차마 나가지는 못하시고 ..
엄마 없는 자식 안만들려고 담배에 술에 ..
나중에는 알콜 중독까지 ..
그래도 우리 버리지 않으려고 견디셨습니다.
우리도 커가고 나중에는 술도 다 끊으시고 다시 새로워지셨습니다.
저 낳고 두분 결혼식을 하셨구요 ㅎ
지금은 힘든 농사 일에 야쿠르트 배달 일을 하시면서 자식 4명 힘들게 키우고계십니다.
아버지도 지금은 많이 다정해지셔서 ㅎ
저도 가끔은 깜짝깜짝 놀라구요 ㅎ
시어머니들한테 구박, 온갖 궂은소리 들으신다는 분들!
걱정마세요 ㅎ 나중에는 복수할 기회 꼭! 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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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네이트온을 해서 보실지도 몰라요 ㅎ
엄마,ㅎ 그냥.. 엄마 하소연해서 위로받게하고 싶었어 ㅎ
그동안 우리 키우느라 정말 고생많았고 .. 꼭 보답할게 ..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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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힘들게 살아오신분께 악플 다시는 분들 정말...안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