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집당 한 집 이혼, 아이들이 병든다

돈키호테200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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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집당 한 집 이혼, 아이들이 병든다 [오마이뉴스 2003-06-05 12:42] 세 집당 한 집 이혼, 아이들이 병든다 ▲ 하루 평균 360쌍 이혼. 그중 미성년 자녀를 둔 이혼자가 72.2%고 미성년 자녀가 2명인 경우가 36%를 차지하고 있다. ⓒ2003 우먼타임스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인 김영식(가명)입니다.

저에게는 3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첫째, 엄마와 행복하게 사는 것.

둘째, 불행한 일 없는 것.

셋째, 강아지를 키우는 것입니다.

아빠랑 살 때 강아지를 키웠는데 아빠가 재혼을 하자마자 그 아줌마네 집에 주어서 나는 너무너무 속상하고 슬펐습니다. 내가 굉장히 슬펐는데 아빠는 강아지를 주었습니다. 저는 강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아빠는 늘 나한테 엄마랑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지금 나는 엄마랑 같이 있어서 행복한데 아빠가 또 나타날까봐 너무 무서워서 밖에서 놀지도 못해요. 나는 정말정말 엄마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내 소원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6년 전 남편과 협의이혼하고 현재 친권자 소송 중인 김인혜(가명, 35)씨의 아들 영식군이 판사에게 보낸 편지다. 친권자인 남편이 양육권을 주장하자 아이는 자기가 살고 싶은 부모는 엄마라며 그 뜻을 판사에게 전달했다.

친권과 양육권 소송에 있어 자녀의 의견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현행법은 15세 이상의 자녀에 한해 그 의견을 '참고'하도록 되어 있다. 1심에 패소한 뒤 의기소침에 있던 아이는 2심에서의 승소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결과라 생각했는지 상당한 만족감을 보이더라고 김씨는 전한다.

이혼 당시 김씨는 친권은 남편이, 양육권은 자신이 갖기로 합의했다. 친권은 절대 줄 수 없다고 맞서는 남편과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후 남편의 양육비 도움 없이 혼자 키워오다가 2년 전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져 아이를 일정기간 남편에게 맡겼다. 그런데 약속기한이 지나도 남편은 아이를 보내지 않았고, 만나게 해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재혼한 뒤로 엄마와 살겠다는 아이의 태도는 완강했다.

가까스로 아이를 데려왔지만 김씨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남편이 찾아와 아이를 강제적으로 데려가려던 사건이 있었고 그 때 입은 상처로 아이는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했다.

"1심에서 패소한 뒤 아이의 입에서 '애들은 사람도 아니야?' '세상에 복수할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무너졌어요. 판사나 아빠에게서 자기 의견은 무시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이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을 갖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가정법률 전문인 이명숙 변호사는 "친권과 양육권을 지정하는 데 있어 자녀의 의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그 나이를 15세 이상으로 규정한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데 적극적인 요즘 초등학생들의 상황과는 괴리된다는 얘기다.

"현행법은 부부끼리 협의를 끝으로 봅니다. 이혼 과정에서 아이는 선택을 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지요."

세 집당 한 집이 이혼하는 시대. 하루 평균 360쌍이 이혼하고 있다. 그만큼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들의 수도 많다는 얘기다. 특히 이혼 연령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집중되어 있어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녀의 연령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세 집당 한 집 이혼, 아이들이 병든다 세 집당 한 집 이혼, 아이들이 병든다 통계청 자료(2001년)에 의하면 이혼 당시 미성년 자녀를 둔 이혼자가 72.2%나 되고, 미성년 자녀가 2명인 경우가 36.0%나 된다. 자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여러 가지 변화를 겪는다. 생활조건, 감정처리 문제, 새로운 부모-자녀관계의 적응 등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제도적, 혹은 사회적 보장은 전무한 실정이다.

성정현 교수(협성대 사회복지학)는 "사실상 부모의 이혼에 있어 자녀는 유기, 방임되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친권, 양육권, 면접교섭권, 양육비 등에 있어 아이의 입장에서 보장된 법 규정이 없어요. 특히 면접교섭권과 양육비청구권은 아이와 직접 관계된 문제인데 이 사안으로 재판이 열리는 경우는 전체 이혼에 관한 소송 중 10%도 안돼요. 자녀의 문제가 사소하게 취급되고 있다는 말이죠."

면접교섭권이란 양육을 하지 않는 부모가 자녀를 만날 수 있는 권리. 하지만 협의가 안돼 소송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 실행을 거부하면 현행법상 강제할 방법은 없다. 아이가 부모를 만날 권리, 혹은 만나지 않을 권리는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아이의 학습권과 직결되는 양육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양육비는 자녀 1인당 20, 30만원 정도가 지급되고 있는데(월수입 200만원 4인 가족 기준) 그마저도 받고 있는 사람은 30% 수준. 물론 양육비 청구소송을 낼 수도 있지만 실제적인 효력은 없다. 받아낼 양육비보다 변호사비가 더 많이 드는데다, 명령이 떨어져도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집행을 위해 다시 소송의 소송을 반복해야 한다.

군포 여성민우회의 전영순 대표는 "외국의 경우 월급에서 자동공제하거나 사회기관이 법정대리인으로 나서서 양육비를 대신 받아주고, 또 이행하지 않으면 민형사상 처벌까지 받는다"며 이혼 뒤 아이 양육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니까 남편이 주는 양육비로는 도저히 애들 교육이 안돼요. 아이들이 알아서 학원을 안가겠다 그러는데 마음이 아프죠. 남편의 경제적 여건이 안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양육비 판결은 경제적 여건이나 남녀의 차이, 아이의 나이 상관없이 일률적입니다. 제 경우 양육비를 올려달라고 소송할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이들에게 또 한번의 상처를 줄까봐 망설이게 되더라구요."

세 집당 한 집 이혼, 아이들이 병든다 ⓒ2003 우먼타임스 제공 30만원이란 액수는 양육자에게도 절반의 책임을 물은 결과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똑같이 양육비를 부담하라는 것은 양육자에게 이중의 부담을 물리는 셈이다.

이러한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친권자 지정에 있어 자녀의 복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내용의 민법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가정법률상담소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조경애 상담위원은 "면접교섭권, 양육, 입양 등에서도 아이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어야 한다"며 "이혼 당사자들이 협의한 내용을 법정에 제출하게 하고 그 내용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는가 심사하는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녀의 복리를 단지 친권 지정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자녀와 관련한 법원의 모든 결정에 적용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법원은 부모간 합의와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혼시 자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의 상처다. 성정현 교수는 "이혼 사실은 양부모 모두 있는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설명되어야 한다"며 이는 "새로운 부모와의 관계설정에 아이가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외국은 부모의 교육이 이혼 절차 중 하나로 제도화되어 있어요. 부모는 몇 차례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의 어려움이 뭔지,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거죠."

대법원에까지 친권 소송이 이어지면서 김인혜씨는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고려해 전문가에게 아이의 상담을 의뢰했지만 "아이의 아버지가 도와줘야 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한부모 일방의 노력으로는 아이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손석한씨는 "이혼에 대한 부모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아이는 부모의 이혼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부모가 헤어지는 이유와 함께 부모자식 관계는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한울타리'라는 인터넷 한부모가족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진옥씨(38)는 "아이들에게 한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은 부모 자신이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여러 한부모가족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아이들 문제는 결국 부모의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 자신이 이혼 뒤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아이도 그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가 증오,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으면 아이에게도 그 감정이 전달되거든요. 집착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구요."

김씨는 그래서 모임회원들에게 집단상담을 제안했지만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모들 중에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이지 않고 상처에 안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월계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작년부터 이혼가족 자녀를 위한 집단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이혼가족의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한후남 사회복지사는 다음의 네 가지를 꼽았다.

▲이혼과정에 대해 이해의 어려움 ▲분노, 죄책감, 불안감, 상실감 등의 정서적 어려움 ▲달라진 환경에 대한 대처기술의 부족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부정적 견해(낮은 자아존중감) ▲사회적 지지의 부족

집단프로그램은 부모의 이혼과 분리된 자아개념을 형성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사전/사후 검사를 통해 아이들의 이혼에 대한 태도 및 자아존중감이 나아졌다는 결과를 얻었다.

한후남 복지사는 "이혼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상황을 얘기함으로써 서로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시행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외국 교재들이 몇 권 있었지만 우리 실정과 맞지 않았구요. 외국은 교과서부터 이혼가족을 일반적인 가족형태로 인정하고 그 수준에서 적응방법을 제시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요. 교사의 인식수준도 낮고 여전히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고 있죠."

모고등학교 사회교사인 김영철(32)씨는 "32명 학생 가운데 8명의 학생이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인데 교과서에서는 여전히 이혼을 사회병리현상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와 부모가 친권을 따지는 동안 아이들은 정작 정서적 '이혼고아'의 상태에 있는 건 아닐까?

"이혼 결심한 때부터 아이에게 설명할 준비해야"

세 집당 한 집 이혼, 아이들이 병든다 세 집당 한 집 이혼, 아이들이 병든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손석환 부모의 이혼과정에서 아이는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가정법원에 아이를 데려오는 엄마의 무지, 아이를 막무가내로 데려가려는 아빠의 폭력, 부모가 입회한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엄마와 살래, 아빠와 살래”를 물어보는 판사의 몰상식 앞에서 아이는 또 한 번의 상처를 입는다.


이에 대해 손석한 원장(연세신경정신과)은 “이혼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아이에게 정신과적 징후가 발병해야 비로소 병원을 찾는다”며 “부모가 마음속으로 이혼을 결심한 순간 아이에게도 설명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리 부모의 상황을 감지한 아이들은 나름대로 판단할 시간이 있는데 반해 ‘어느날 갑자기’ 통보를 받은 아이의 상실감은 더 크다. 이는 마치 부모의 죽음과도 같은 충격으로 전달된다.


따라서 아이가 어리다고 해서 “아빠(혹은 엄마)가 외국에 공부하러 나가 있다”는 식의 설명은 좋지 않다.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지속되는 부모에 대한 판타지가 아이의 사회적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큰 아이가 갑자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면서 퇴행 현상을 보이는 것도 한 증세다.


“초등학생 이하의 이혼자녀들은 부모의 이혼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엄마는 이런저런 이유 로 떨어져 살지만 너는 여전히 아빠엄마의 아들이고 딸이다라는 식으로 분명히 설명해야 합니다.”


상대방 부모에 대해 적대감을 갖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를 ‘내편’으로 만들려는 언행은 아이로 하여금 한쪽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느낌을 갖게 할 수 있다.


“혼자서 양부모 역할을 다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친척, 혹은 이웃 등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갖고 그 과정에 함께 하다보면 아이는 의외로 적응을 잘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양육 부모와의 만남을 정례화하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기약없는 만남에 아이는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 박형숙

"털어놓으면 별 것 아닌데 감춰서 더 큰 문제"

세 집당 한 집 이혼, 아이들이 병든다 ▲고등학교 2학년 정연규군 세 집당 한 집 이혼, 아이들이 병든다 서울시 청소년직업체험학교 ‘하자센터’의 정연규군(18)은 부모의 이혼사실에 대해 “뭐가 문제죠, 내가 이혼한 것도 아닌데”라고 반문한다. 초등학교 4학년때 부모가 이혼했는데 그와 관련한 ‘슬픈’ 기억은 이혼 직후 엄마가 자신을 껴안고 펑펑 울었던 것 정도다.


그 후 엄마와 살면서 아빠는 한 달에 한두 번 만나고 있다. 그리고 자신과 관련한 문제는 양부모가 모인 자리에서 함께 상의한다. 정군은 부모 각각에 대한 자기 판단이 명확했다.


“엄마, 아빠의 장단점을 알게 되면서 두 분은 떨어져 사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분은 너무 달라요. 정서적으로는 아빠쪽에 더 끌리지만 생활방식은 엄마쪽이 맘에 들어요. 하지만 두 분 다 열심히 사세요. 엄마는 얼마전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아빠는 대학진학을 준비하고 계시거든요. 오히려 게으른 제가 부끄럽죠.”


정군은 부모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그러면서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발견한 “이혼한 부모가 자식 앞에서 상대방을 욕하면 좋지 않다”는 내용을 보고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은 부모님께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어렸을 땐 형, 삼촌, 아저씨들과 많이 놀았어요. 엄마가 사회봉사활동을 해서 그럴 기회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친구들로 채워요. 아빠 찾을 나이도 지났고…”


정군은 그러면서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이 힘든 건 혼자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먼저 얘기를 꺼내기가 어렵지 일단 털어놓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버린다는 것. 상처였다면 중학교 때 가정환경조사서를 제출하면서 느낀 교사와 반아이들의 시선이었다.


“학기초에 가정환경조사서를 써서 내면 선생님이 부모가 이혼한 아이들은 교무실로 부르거든요. 그럼 얘들이 다 알게 되잖아요. 그 때 생각했어요. 가정환경조사서를 이메일로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 박형숙



/박형숙 기자 (hspark@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