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히·아우구스트 Ⅱ세 /드레스덴 그린 다이아몬드

돈키호테200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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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히·아우구스트 Ⅱ세 /드레스덴 그린 다이아몬드

프리드히·아우구스트 Ⅱ세 /드레스덴 그린 다이아몬드

 

원석의 상태에서 "녹색감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우는 것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3가지 타입 중의 하나이다. 첫째 명료한 결정의 상태로 풀장(Pool)의 물의색과 같은 엷은 색조를 가지고 있는 것. 둘째 진한 녹색의 표면을 하고 있는 것, 마지막으로 황색감의 녹색으로 표면의 윤기가 특징인 3종류이다.

위 3종류 중 연마해 보면 처음의 두 타입은 녹색감의 색조를 잃어버리고, 블루·화이트 계열의 다이아몬드가 되거나, 실버·케이프의 색과 유사하게 황색감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연마해도 녹색을 나타내는 극히 희귀한 다이아몬드는 3번째 타입의 원석에서만 탄생하게 되는데, 이 진귀한 녹색의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출현하는 것일까하는 것은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다이아몬드의 녹색은 보통 그것이 생성되는 과정중에서 지질학상 몇 백만년 정도의 장시간의 기간에 걸쳐 결정이 방사선 물질과 접촉하는 것에의해 발생하게 된다. 원래 다이아몬드의 방사선 조사는 마그마 또는 킴벌라이트에 극히 소량 존재하는 알파 입자에 의한 것으로, 이 입자에 장시간 닿게 되면 다이아몬드의 표면에 얇은 피막이 형성된다. 이것은 피막층이 너무 얇기 때문에 연마관에서 연마하는 것만으로도 피막층이 간단히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중성자나 베타선, 감마선에 많이 방사되면 다이아몬드의 깊은 곳까지 색이 침투되고, 때에 따라서 원석의 내부 전체를 녹색으로 변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된 다이아몬드가 열을 받으면 색이 아름답게 되는 경우가 있으나, 그 때의 온도는 600℃ 이하로 유지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임계온도를 벗어나면 녹색은 엷은 황색 또는 차(茶)색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색의 변화는 결정의 격자 구조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방사선 입자를 쏘이기 이전에는 결정의 격자구조는 안정되어 있으나, 최초의 방사선 충격을 받는 것만으로도 이 평형상태는 흐트러지고 녹색으로 변색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 잡아당긴 고무줄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동일하다. 다시말해 고무줄은 어느 정도까지는 원상복귀되지만 최초의 길이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듯이, 열을 가하면 다이아몬드의 격자는 영구히 왜곡된 상태로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연구의 결과 녹색 또는 방사선 조사를 받은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가 채굴되는 모든 지역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밝혀졌다. 특히 아프리카, 인도, 소련, 남아프리카의 각지에서 녹색의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크기이건 녹색의 다이아몬드는 희귀하다. 이러한 점에서 대략 원석 상태에서 100올드 캐럿의 중량이었다고 생각되는 "드레스덴 그린"은 세계에서 유명한 보석 중에서도 "유니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드레스덴 그린"다이아몬드는 애플·그린컬러를 하고 있고, 품질도 최고이다. 패싯을 58면 가지고 있으며 40.7 메트릭 캐럿의 변형된 페어 셰이프인 "펜드로크"형으로 연마되어 있다. 길이 29mm, 폭 19.7mm, 두께는 10.2mm로 연마되어 있으며, 크라운 부위가 5.3mm, 퍼빌리언 부위가 4.9mm로 되어 있다.

다른 유명한 다이아몬드와 달리 "드레스덴 그린"의 역사는 비교적 파란이 적었던 것 같다. "드레스덴"이라는 이름은 이 다이아몬드가 200년 이상이나 전시되어 있던 작센의 수도인 드레스덴 시(市)에서 유래되고 있다. 1742년 작센의 프리드히·아우구스트 Ⅱ세(1733-1763)는 이 다이아몬드를 라이프치히 시장(市場)에서 네덜란드의 상인으로부터 20만 달러에 구입하였다고 한다.

드레스덴의 지적·예술적 활동의 중심지로서, 또 바로크 건축의 걸작이 넘치는 도시로 탈바꿈시킨 것은 그의 아버지로써 프리드리히·아우구스트 Ⅰ세(1694-1733)이다. 아우구스트 Ⅰ세는 드레스덴에 있는 몇 개의 저명한 건물을 세운 인물로서, 당연한 일이나 이 건물에 진귀한 고가의 보물을 모아 숨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697년 폴란드 왕으로 선출되었을 때 자신의 대관식을 위하여 새로운 즉위용 보식품 제작을 명령하였다. 그는 드레스덴 성에 만든 8개의 룸을 자신의 보석이나 보물, 귀중품을 넣기 위하여 특별히 비워 두었고, 이 룸들을 "그린 보트"라고 불렀다. 내장(內裝)은 파리의 디자이너들에게 일임하였고 바로크 양식의 건물의 최고 걸작중 하나가 될 정도의 것을 완성하여, 왕실보석품 컬렉션을 그 중 8번째의 룸에 보관하였다.

"그린 보트"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Ⅱ세가 "드레스덴 그린"을 매입하였을 때 완성되어 있었다. 보석상(寶石商)인 "딘그린가"는 최초에 이 드레스덴·그린 다이아몬드를 "골든 프리스의 장식"으로 세트시켰다. 그러나 1746년 원의 보석상인 파라드가 이것을 다시 만들어 드레스덴 그린을 빼내고 49.71메트릭 캐럿의 "드레스덴 화이트"를 다이아몬드를 세팅시켰다. 그리고 최후에 1768년 또 다른 보석상인 디스바하라는 사람이 연마된 다이아몬드 2개를 몇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와 함께 드레스덴 그린을 모자의 장신구로 바꿔 제작하였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뛰어난 다이아몬드에는 흥미깊은 점이 또 하나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인도 또는 동인도가 원산지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 채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18세기 중반까지, 이와같은 뛰어난 보석에 대해서 유럽에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만일 이 다이아몬드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면 아마 훨씬 전시대에 보석을 매우 좋아한 유럽의 군주중 누군가가 그 존재를 소문을 듣어 알고 탈취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17세기에 동양에서는 다이아몬드의 산출이 정점에 달한 시기였고, 18세기초에는 그것은 이미 사향길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아마 이런 문제의 답으로 하나의 단서가 있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Ⅱ세가 이 다이아몬드를 라이프치히의 시장에서 네덜란드의 상인에게서 매입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암스텔담은 그 100년전에 이미 다이아몬드의 연마센터로서 최 전성기에 있었고, 18세기 전반에는 그 중요성이 저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720년 브라질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됨에 의해 다시 다이아몬드 연마산업은 활발히 성행하게 되었다. 암스텔담은 결국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감지하게 되었고, 결과로 리보·데·자네이로라는 네덜란드 영사(領事)는 브라질산 다이아몬드를 연마산업이 다시 상승 기류에 오르기 시작한 암스템담으로 보내는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 드레스덴·그린은 브라질에서 네덜란드로 보내진 다이아몬드중 하나였다는 것이 명확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프리드히·아우구스트 Ⅱ세 /드레스덴 그린 다이아몬드The Dresden Green

 This almond-shaped stone, at 41 carats, is the largest apple-green diamond known.  Although of Indian origin, nothing was known of it until Frederick Augustus II of Saxony purchased the diamond at the Leipzig Fair in 1743 for about $150,000.  Set in an elaborate shoulder knot, the stone was exhibited with the other Crown Jewels of Saxony in the famous Green Vaults under the Dresden Palace.   After World War II, these gems were confiscated by the Russians, but they were returned to Dresden in 1958, and are again on display in the pa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