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정치학/경제통상무역 51995717 조혜정

돈키호테200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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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통상무역  51995717 조혜정


問題1. < 인간의 본성-선과 악>을 양면적으로 다룬 영화 2편 이상을 들고 영화에서 표현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주장을 비판적으로 논하시오.

 

  "인간의 본성-선과 악"이라는 주제는 참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데블스 어드버킷>에서는 항상 승소하기만 하는 젊은 변호사를 통해 논하였고, <양들의 침묵>에서는 약간은 비정상적인 의사와 새내기 FBI요원을 통해 논하였고, <드라큐라2000>에서는 드라큐라와 그를 죽이려는 노신사를 통해 논하였다.


  드러내는 방식이 다른 만큼 주장되어지는 것도 다른데 <데블스 어드버킷>에서는 "인간의 삶 속에는 언제나 선을 유혹하는 악이 있다, 선의 근처에는 항상 악이 있다,

 

악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라는 것이 있고. <양들의 침묵>에서는 '선과 악은 하나의 동전과 같은 것으로 앞·뒷면이 있어야 하나의 동전이 되듯 선과 악도 같이 있을 때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선과 악은 공존하고 있다.'라고 조장하고 있으며 <드라큐라2000>에서는 '선은 악을 선으로 인도하여 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모든 주장의 바탕은 "오로지 선의 추구만이 정당화 될 수 있다."라는 선의 추구에 있다. 그러나 선의 추구만이 인간의 진정한 도리일까? 선을 추구하는 것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양들의 침묵>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이 영화에서 렉터 박사는 악의 대표적 모습으로 나오며, FBI요원인 클라리스는 선의 대표적 인물로 나온다. 연쇄살인을 해결하고자 클라리스는 렉터 박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어린시절 상처를 치유받고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얻게된다. 이 내용을 봤을 때 과연 선만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선만 추구한다면 렉터박사(악)에게 도움을 구하지 말았어야 하며, 자신의 가슴 속 상처도 치유받지 못했을 것이다. 또 렉터 박사에게 간접적으로나마 탈출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오직 선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옳은 일이 아니며 악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악의 대표적 인물인 렉터 박사가 오로지 악하기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클라리스의 상처를 치유해 줬으며, 미궁에 빠진 수사의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렉터 또한 악하기만 한 인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클라리스의 경우는 어떠한가?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나중에는 쾌감을 느낀다. 그러고 렉터(악)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득(상처치유, 사건해결)을 얻는다. 그러므로 클라리스 또한 착하기만 한 인물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화의 기본적 바탕인 <선의 추구>는 인간에겐 선과 악의 양면적 모습이 함께 일 수밖에 없으므로 정당화 될 수 없다. 인간 안에 있는 선과 악의 비중 조절 혹은 억제의 노력으로 선의 비중을 늘리되 악의 비중을 줄이며 억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드라큐라2000>에서는 드라큐라 본성은 매운 선한 사람이였으나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정반대의 매우 악한 사람이 되어 반그리스도적 세력이 되었다는 개념 아래에서 드라큐라를 죽이려는 세력들로 인하여 영생을 잃고 다시 죽게되면서 선으로 귀환한다는 내용으로 선의 추구만을 부각시키고 있으나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의 산과 악의 이중성을 띄고 있어, 오직 선의 추구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생각된다.

 

問題2. (인간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정체성의 혼란과 이의 회복에 관한 영화적 주장은 어떻게 표현되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시오

 

  "마음이 없는 육체는 살 수 없다." - 매트릭스의 "모리스"가 한 말


  인간의 정체성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위의 말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지, 스스로의 선택권 등을 바르게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떳떳이 펼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존중과 사랑이 충만한 상태를 정체성의 확립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이 확립된 상태에 이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영화 <매트릭스>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이 영화에서는 새디즘과 매조히즘의 대립 양상 속에서의 정보화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새디즘이란 지배를 가하면서, 타인을 시키고 공격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집단이고, 매조히즘이란, 그 반대되는 개념으로 지배와 억압을 당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집단이다. 영화에서는 인간이 기계를 개발, 이용하면서 편리함을 느끼고 그 과정이 심화되면서 역으로 기계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여 인간의 뇌를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매조히즘의 집단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매뉴얼적으로 정해진 삶 속에서 안주하면서 사는 삶을 행복이라고 느낀다. 이는 정부의 잘못된 정보유포 혹은 남용과도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A를 B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유포시키면 자신의 선택과 의지없이 사는 삶에 지친 사람들이게 그대로 받아들여지는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영화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매트리스 속에 갇혀서 의식하지 못할 뿐.....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내 삶은 나의 것"이라는 주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판단으로 사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수반되어야 한다.


  영화에서는 키에누리브스가 메시아라는 이름으로 매트릭스의 파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그러나 그 또한 처음에는 매뉴얼대로 주어진 삶 속에서 안주하며 사는 사람이였고, 그것이 정체성의 혼란이니, 매트릭스 속의 삶이니.... 그러한 상황을 모르고 기계에 지배되어 "잘 살아가고 있어"라고 세뇌되어진 사람이다. 그러나 혼란의 시기를 겪으면서 자기 자신만의 정체성 회복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현실세계에서 비추어 얘기하자면, 무한한 정보가 넘치고 자신의 생각조차 옳고 그른지 생각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이 메시아가 되어 정체성의 회복을 위해 힘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한 정보의 무분별한 수용보다는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자기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매트릭스는 사방에 있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