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 휴가 복귀중입니다. 지금 부대 들어가기전, 소대장님 방에 와있습니다. 부대복귀까지 2시간 정도 남았군요. 지금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저는 사정상 남들보다 조금 늦게 입대하였습니다. 입대전 여자친구가 있었고, CC(캠퍼스커플)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안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랬죠. 재계 집안인 그녀는 부류가 달랐습니다. 사귀는 동안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밖에 생각이 안나는군요. 행복한 시간보다는 불안한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입대후에는 더 그러했습니다. 첫휴가 외에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방에 위치해, 워낙 산골짜기라 면회 오기도 힘들어서, 제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상병을 달았을 때, 그녀는 유학을 갔습니다. 언제 올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제 너가 날 기다려 줄 차례라고 그러더군요. 저는 그냥 웃고 말았지만, 이별이었던거죠. 남들처럼 괴로워 군생활 적응 못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언제든지 보내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막상 그녀가 떠나고 나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외곽근무를 서고 있는데, 군종후임이 말했습니다. 다음주에 종교행사에 나가보자고. 추수감사주일인데 떡도 나온다고. 그래서 바람도 쌜겸 교회에 갔습니다. (매월 마지막 일요일은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종교행사를 합니다.) 처음 갔는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바깥공기도 마실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뒤로 한달에 한번 마을교회에 갔습니다. 목사님께는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는 딸이 있었는데요. 목사님은 연로하신데, 딸은 제또래였습니다. 종교행사가 끝나면 식사를 하게되는데, 언젠가부터 식사당번을 맡게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주방을 드나들게 되었고, 그녀와 몇마디 말들을 주고 받게 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종교행사가 끝나고 부대로 복귀할 때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 같은 것들을 싸 주었습니다. 그렇게 일요일 밤 자리에 누우면 그녀의 미소, 눈빛,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다리를 절면서 먹거리를 챙겨다 주는 그녀를 생각하노라면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타부대 병사와 피아노에 같이 앉아 피아노를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질투심같은 묘한 감정을 느낀 나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호기심이나 연민의 정일까... 그후로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의 솔직한 심정은 그랬습니다. 나의 어설픈 감정으로 인한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제가 상처를 받을까 겁이 났던 것이죠. 그뒤로 그녀를 한번 더 볼 수 있었습니다. 유격행군 복귀하면서 위병소에 들어오기전 비닐봉투를 들고 걸어오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인사를 했는데 못본척 하였었죠.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버린 것입니다. 말년휴가 가기 전날 군종이 저에게 편지 한통을 주었습니다. 또박또박 쓰여진 편지위의 글자들이 밤새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가시게 될줄 몰랐어요. 이곳이 쉽게 잊혀지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각날 때가 있겠죠? ...... 소대장님이 밥먹으로 마을 식당으로 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전 그냥 부대 복귀한다고 말하고수화기를 놓았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갑니다.
이제 그녀에게 갑니다.
말년 휴가 복귀중입니다.
지금 부대 들어가기전, 소대장님 방에 와있습니다.
부대복귀까지 2시간 정도 남았군요.
지금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저는 사정상 남들보다 조금 늦게 입대하였습니다.
입대전 여자친구가 있었고, CC(캠퍼스커플)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안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랬죠. 재계 집안인 그녀는 부류가 달랐습니다.
사귀는 동안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밖에 생각이 안나는군요. 행복한 시간보다는
불안한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입대후에는 더 그러했습니다.
첫휴가 외에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방에 위치해, 워낙 산골짜기라 면회 오기도 힘들어서, 제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상병을 달았을 때, 그녀는 유학을 갔습니다.
언제 올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제 너가 날 기다려 줄 차례라고 그러더군요.
저는 그냥 웃고 말았지만, 이별이었던거죠.
남들처럼 괴로워 군생활 적응 못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언제든지 보내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막상 그녀가 떠나고 나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외곽근무를 서고 있는데, 군종후임이 말했습니다.
다음주에 종교행사에 나가보자고. 추수감사주일인데 떡도 나온다고.
그래서 바람도 쌜겸 교회에 갔습니다.
(매월 마지막 일요일은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종교행사를 합니다.)
처음 갔는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바깥공기도 마실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뒤로 한달에 한번 마을교회에 갔습니다.
목사님께는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는 딸이 있었는데요.
목사님은 연로하신데, 딸은 제또래였습니다.
종교행사가 끝나면 식사를 하게되는데, 언젠가부터 식사당번을 맡게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주방을 드나들게 되었고, 그녀와 몇마디 말들을 주고 받게 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종교행사가 끝나고 부대로 복귀할 때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 같은 것들을 싸 주었습니다.
그렇게 일요일 밤 자리에 누우면 그녀의 미소, 눈빛,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다리를 절면서 먹거리를 챙겨다 주는 그녀를 생각하노라면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타부대 병사와 피아노에 같이 앉아 피아노를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질투심같은 묘한 감정을 느낀 나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호기심이나 연민의 정일까...
그후로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의 솔직한 심정은 그랬습니다.
나의 어설픈 감정으로 인한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제가 상처를 받을까 겁이 났던 것이죠.
그뒤로 그녀를 한번 더 볼 수 있었습니다.
유격행군 복귀하면서 위병소에 들어오기전 비닐봉투를 들고 걸어오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인사를 했는데 못본척 하였었죠.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버린 것입니다.
말년휴가 가기 전날
군종이 저에게 편지 한통을 주었습니다.
또박또박 쓰여진 편지위의 글자들이
밤새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가시게 될줄 몰랐어요.
이곳이 쉽게 잊혀지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각날 때가 있겠죠?
......
소대장님이 밥먹으로 마을 식당으로 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전 그냥 부대 복귀한다고 말하고수화기를 놓았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