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남의 집 담이나 학교 담벼락에 스캔들을 뿌렸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직접 벽에다 고백하면서 일부러 화를 내기도 하였다.
이런 습관은 결국 고 학년이되고, 중학생이 되면 촌스러운 도색그림을 재래식 화장실 곳곳에 도배를 하였다
▲ 도둑침입방지용 설치물
80년대만 해도 곳곳에는 도둑침입방지용으로 병을 깨서 벽 위에 올려놓거나 커다란 집은 쇠창살을 설치하였다. 때로는 못을 거꾸로 세워놓기도 하였다. 쇠창살은 가끔씩 볼 수 있지만 병이나 못을 박아 놓은 곳은 산동네로 불리는 21세기의 또 하나의 도시 속에서나 볼 수 있다
▲ '1981년 4월 22일 이름 김인옥' 쇠창살 사진 밑 벽에 써있는 글이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이니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은 김인옥씨는 아마 서른 중반쯤 되었을 것이다.
시멘트로 깔끔하게 다듬어 놓은 벽과 마당을 보면 왜 이렇게 이름과 손자국을 남기고 싶어했을까? 전두환 정권 초기에 만들어진 이 담벼락은 여전히 골목길의 경계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 수명을 다한 굳게 잠긴 재래식 화장실
수세식이 대중화 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지저분함의 대명사였던 화장실이었건만 한번도 인간을 배신하지 않았다. 어릴적 똥장군 할아버지가 왔다 가면 흔히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느그 앞으로 공부 열심히 안하면 나중에 저렇게 똥푸면서 산다"
공부 못하면 왜 항상 3D업종 노동자의 모습을 심어주었을까? 이제 이 화장실은 철거될 날만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 막걸리 심부름을 할 때 면 으례 좁다란 골목을 오갔다.
비오는 날이면 끝이 뾰족한 우산은 골목길 양벽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주전자에 50원, 100원어치의 막걸리를 사들고 아버지가 벌컥벌컥 드시는 모습을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숟가락으로 한번 떠먹어 보기도 하고 컵에 조금 따라서 마셔보기도 한다. 왜 저렇게 시금털털한 것을 어른들은 맛있게 드실까? 그 해답은 청년이 되어서야 풀렸다. 체육대회라도 하는 날이면 두부김치 한 모금에 사이다 조금 섞은 막걸리 한 사발. 그리고 비가 오는 축축한 날에 곰팡이 냄새나는 막걸리 집에서의 정겨움이 그립기만 하다.
술을 전혀 못하시는 어머니는 가끔 갈증이 나면 설탕을 듬뿍 타서 마시기도 했었다
▲ 수명을 다하고 하얗게 재가 되어버린 연탄재와 새 생명을 불태울 연탄
하루에 몇 번만 수고하면 24시간 내내 뜨끈한 온기를 내어주었다. 예전에는 겨울철만 되면 '연탄가스 중독...일가족 전원 사망'이라는 소식이 방송과 신문의 화젯거리가 되었지만 이제는 정말 옛이야기가 된 것 같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요즘에도 연탄을 쓰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IMF이후에 연탄사용이 조금 늘어나기도 하였으나 이제 재래식 화장실과 함께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어른들은 지금도 연탄불과 풍로(곤로)에 끓여 먹던 라면의 내음을 매우 정겨워 한다
▲ 사랑이 싹트던 우물가
보기 힘든 우물터가 아직도 세월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 근심스런 모습의 우리들 누렁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누렁이. 어쩌면 이번 여름이 최대 고비일지도 모른다
(덧)조용히 눈감아보면 우리들 주변에 있었던 모습들, 아주 옛일처럼 기억되지만 강산이 한두번밖에 바뀌지않은 얼마전의 모습들이다
눈감으면 아련한 동네의 흔적들
도시의 또다른 모습, 눈감으면 아련한 동네의 흔적들
[출처 : http://www.ohmynews.com]
▲ "훌이는 은총이를 좋아한데요"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남의 집 담이나 학교 담벼락에 스캔들을 뿌렸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직접 벽에다 고백하면서 일부러 화를 내기도 하였다.
이런 습관은 결국 고 학년이되고, 중학생이 되면 촌스러운 도색그림을 재래식 화장실 곳곳에 도배를 하였다
▲ 도둑침입방지용 설치물
80년대만 해도 곳곳에는 도둑침입방지용으로 병을 깨서 벽 위에 올려놓거나 커다란 집은 쇠창살을 설치하였다. 때로는 못을 거꾸로 세워놓기도 하였다. 쇠창살은 가끔씩 볼 수 있지만 병이나 못을 박아 놓은 곳은 산동네로 불리는 21세기의 또 하나의 도시 속에서나 볼 수 있다
▲ '1981년 4월 22일 이름 김인옥' 쇠창살 사진 밑 벽에 써있는 글이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이니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은 김인옥씨는 아마 서른 중반쯤 되었을 것이다.
시멘트로 깔끔하게 다듬어 놓은 벽과 마당을 보면 왜 이렇게 이름과 손자국을 남기고 싶어했을까? 전두환 정권 초기에 만들어진 이 담벼락은 여전히 골목길의 경계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 수명을 다한 굳게 잠긴 재래식 화장실
수세식이 대중화 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지저분함의 대명사였던 화장실이었건만 한번도 인간을 배신하지 않았다. 어릴적 똥장군 할아버지가 왔다 가면 흔히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느그 앞으로 공부 열심히 안하면 나중에 저렇게 똥푸면서 산다"
공부 못하면 왜 항상 3D업종 노동자의 모습을 심어주었을까? 이제 이 화장실은 철거될 날만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 막걸리 심부름을 할 때 면 으례 좁다란 골목을 오갔다.
비오는 날이면 끝이 뾰족한 우산은 골목길 양벽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주전자에 50원, 100원어치의 막걸리를 사들고 아버지가 벌컥벌컥 드시는 모습을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숟가락으로 한번 떠먹어 보기도 하고 컵에 조금 따라서 마셔보기도 한다. 왜 저렇게 시금털털한 것을 어른들은 맛있게 드실까? 그 해답은 청년이 되어서야 풀렸다. 체육대회라도 하는 날이면 두부김치 한 모금에 사이다 조금 섞은 막걸리 한 사발. 그리고 비가 오는 축축한 날에 곰팡이 냄새나는 막걸리 집에서의 정겨움이 그립기만 하다.
술을 전혀 못하시는 어머니는 가끔 갈증이 나면 설탕을 듬뿍 타서 마시기도 했었다
▲ 수명을 다하고 하얗게 재가 되어버린 연탄재와 새 생명을 불태울 연탄
하루에 몇 번만 수고하면 24시간 내내 뜨끈한 온기를 내어주었다. 예전에는 겨울철만 되면 '연탄가스 중독...일가족 전원 사망'이라는 소식이 방송과 신문의 화젯거리가 되었지만 이제는 정말 옛이야기가 된 것 같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요즘에도 연탄을 쓰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IMF이후에 연탄사용이 조금 늘어나기도 하였으나 이제 재래식 화장실과 함께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어른들은 지금도 연탄불과 풍로(곤로)에 끓여 먹던 라면의 내음을 매우 정겨워 한다
▲ 사랑이 싹트던 우물가
보기 힘든 우물터가 아직도 세월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 근심스런 모습의 우리들 누렁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누렁이. 어쩌면 이번 여름이 최대 고비일지도 모른다
(덧)조용히 눈감아보면 우리들 주변에 있었던 모습들, 아주 옛일처럼 기억되지만 강산이 한두번밖에 바뀌지않은 얼마전의 모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