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상사(중사) / 아버님이 1951년도에 군에 가실 때는 6.25전쟁중이여서 군생활 잘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네어른들이 마을입구에 솔잎문을 세워서 군대 가는 장정들을 환송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군에 가셔서 전쟁중이라 훈련은 제주도에서 받았는데 훈련소 있을 때 한겨울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목만 내놓고 있으면 다른 곳은 다 참을 수 있는데. 바닷물과 맞닿는 목 부위가 애어지는듯한 고통 이였으며 무엇보다도 밥 한번 실컨 먹어 보는 것이 소원 이였다고 합니다. 훈련을 마치고 전선으로 이동중 강원도 00군 3.8선(당시는 휴전선이 없음) 부근에서 적의 공격을 받고 차량이 계곡으로 굴러 팔 부상을 입고 대구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송아지를 팔아 노잣돈을 마련하여 첫 면회를 가셨는데 마음이 어떠했을지 이때 입은 상처흉터는 평생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상이군경은 아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냥 무덤덤했는데 자식을 군에 보내고 나서 이제야 아버님에 대한 생각과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을 백분의 일쯤 헤아려 보는 자손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에 대한 이런 죄스러운 마음으로 옛날 아버님이 전선으로 가던 곳(부상을 당한곳)강원도 00군 휴전선(당시 3.8선)이 어디쯤 될까 인터넷으로 여러 사단을 이리저리 검색하던 중 주소를 보고 00사단 관할구역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강원도에서 군대 생활하셨던 아버님 6.25때도 00사단이 있었다면 아마 여기에 소속되어 있었을 것 같은데 고인이 되시기 전에 어느 사단 어느 부대에서 근무하셨는지 물어나 볼 것을 무심한 자식은 그런데는 관심이 없었나 봅니다. 00사단 메인 창에 걸려있는 산 능선을 보니 어쩌면 우리 아버님도 저 능선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당시에 나라살림을 보면 모든 것이 부족하였을 테니까) 생사를 걸고 싸웠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찡해 옵니다. 아버님은 이렇게 군생활 5년 3개월을 마치시고 육군 이등상사(중사)로 전역 하셨습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 중태학력으로 군에 가셨고 아들은 대학교 2학년 재학중에 군에 갔는데 같은"2"자이지만 아들녀석이 얼마나 군생활 잘할지 이런 아버님의 군대생활5년 그것도 전쟁터에 다녀오셨는데 얼마나 할말이 많겠습니까그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한권도 넘을텐데 이렇게 몇줄만 쓰고 얼버무리다니 무어라고 할말이 없습니다 자식 군에 보내고나서 이제서야 이렇게 참회의 글을 써 봅니다 이런 아버님을 (당시 아들을) 군에 보낸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마 새까맞케 숯껑이 되었을 텐데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에 비하면 지금 아들 군에 보내고 호들갑 뜨는 내 모습을 보면 얼마나 한심하다고 하실까 노래는 군가 “전우여” 아주옛날노래이며 지금은 잘 불려지지 않습니다.
이등상사(중사)
이등상사(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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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1951년도에 군에 가실 때는 6.25전쟁중이여서
군생활 잘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네어른들이 마을입구에 솔잎문을 세워서
군대 가는 장정들을 환송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군에 가셔서 전쟁중이라 훈련은 제주도에서 받았는데
훈련소 있을 때 한겨울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목만 내놓고 있으면
다른 곳은 다 참을 수 있는데.
바닷물과 맞닿는 목 부위가 애어지는듯한 고통 이였으며
무엇보다도 밥 한번 실컨 먹어 보는 것이 소원 이였다고 합니다.
훈련을 마치고 전선으로 이동중
강원도 00군 3.8선(당시는 휴전선이 없음) 부근에서 적의 공격을 받고
차량이 계곡으로 굴러 팔 부상을 입고
대구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송아지를 팔아
노잣돈을 마련하여 첫 면회를 가셨는데 마음이 어떠했을지
이때 입은 상처흉터는 평생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상이군경은 아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냥 무덤덤했는데
자식을 군에 보내고 나서 이제야 아버님에 대한 생각과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을 백분의 일쯤 헤아려 보는 자손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에 대한 이런 죄스러운 마음으로
옛날 아버님이 전선으로 가던 곳(부상을 당한곳)
강원도 00군 휴전선(당시 3.8선)이 어디쯤 될까
인터넷으로 여러 사단을 이리저리 검색하던 중
주소를 보고 00사단 관할구역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강원도에서 군대 생활하셨던 아버님
6.25때도 00사단이 있었다면
아마 여기에 소속되어 있었을 것 같은데
고인이 되시기 전에 어느 사단 어느 부대에서 근무하셨는지
물어나 볼 것을 무심한 자식은 그런데는 관심이 없었나 봅니다.
00사단 메인 창에 걸려있는 산 능선을 보니
어쩌면 우리 아버님도 저 능선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당시에 나라살림을 보면 모든 것이 부족하였을 테니까)
생사를 걸고 싸웠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찡해 옵니다.
아버님은 이렇게 군생활 5년 3개월을 마치시고
육군 이등상사(중사)로 전역 하셨습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 중태학력으로 군에 가셨고
아들은 대학교 2학년 재학중에 군에 갔는데
같은"2"자이지만 아들녀석이 얼마나 군생활 잘할지
이런 아버님의 군대생활5년 그것도 전쟁터에 다녀오셨는데
얼마나 할말이 많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한권도 넘을텐데
이렇게 몇줄만 쓰고 얼버무리다니 무어라고 할말이 없습니다
자식 군에 보내고나서 이제서야 이렇게 참회의 글을 써 봅니다
이런 아버님을 (당시 아들을) 군에 보낸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마 새까맞케 숯껑이 되었을 텐데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에 비하면
지금 아들 군에 보내고 호들갑 뜨는 내 모습을 보면
얼마나 한심하다고 하실까
노래는 군가 “전우여” 아주옛날노래이며 지금은 잘 불려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