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 23일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춰지자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수천 개의 군부대가 자리잡게 되었다. 거기에 살던 민간인은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잃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강제로. - 철규와의 대화 중에서
가도가도 창 밖으로는 산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서울을 출발한지 벌써 5시간이 지났 지만 아직 철규가 있는 부대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반 정도는 더 가야 했다. 녀석의 부대는 인제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도 한참 더 들 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기분인지 새벽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던 지영이 잠잠하 다 싶어 돌아보았더니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지영으로부터 철규에게 면회 가자는 제의를 받은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철규가 지영에게 는 틈틈이 편지도 보내고 한 모양이었다. 철규가 지영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는 가 급적 둘 사이에 끼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영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형, 철규는 전방에 배치되어 있어. 부모님 에게도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아서 면회 오는 사 람도 없는 모먕이야. 거기다가 얼마 전에는 일 주일 영창 갔다왔다는 거야. 형은 철규가 무슨 일로 영창 갔다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전방이라면 지영 혼자서 면회 가는 것도 무 리겠다 싶기도 하고, 입대한지 넉 달밖에 안 된 놈이 무슨 사고를 쳐서 영창까지 갔다왔는 지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지영의 면회길에 다 라나선 것이었다. 버스로 한참을 달리자 군부대가 하나 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국방색 천지 였다. 점점 산악지대로 들어가니,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단풍과 낙엽이 벌써 아름답게 피어나 고 있었다. 버스에는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면회객으로 보이는 두 가족하고, 이곳 주 민으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아주머니 둘이 타 고 있을 뿐이었다.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고 있으니 문득, 술자 리에서 식인(食人)을 했던 지난날들을 들려 주 며 울먹이던 철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동안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졌다. “단풍 참 예쁘죠? 오빠.” 언제 잠에서 깨어났는지 지영이 내 생각을 끊었다. “오빠, 배고프지? 김밥 먹을래?” “난 됐어. 철규 줘야지. 면회 오면서 아무것 도 .” “됐어, 오빠!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그만 해.” 지영이 금세 토라졌는지 샐쭉해서 창 밖으 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한 마디 더 할까 하다 가 그만두었다. 난 아침 여섯시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지 영을 만났을 때, 지영이 멘 배낭부터 살폈다. 배낭은 예상대로 불룩했고, 저 정도면 철규와 철규가 군대에서 사귄 동기생들과 함께 나눠 먹 을 음식은 충분하겠다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판단은 금세 깨어지고 말 았다. 지영은 출발하면서부터 김밥이니, 계란 이니 하는 음식을 권해서 나는 출출하던 터라 아무 의심없이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런데 한참 먹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지영에게 철규 줄 음식은 따로 있겠지, 하고 물어 보았다. 지영은 태연하게 고개를 저으며 군대에서 음식이 잘 나온다고 해서 준비를 안 해 왔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배낭에 든 음식 은 오고가며 먹으려고 준비해 온 거라고. 지영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여자라지만 군대에서 뺑뺑이 돌고 있는 남자들의 심리를 너무도 모른다 싶 었다. 나는‘동작 그만!’을 외친 뒤 먹던 음식을 다 시 챙겨 배낭에 넣게 했다. 우리야 배 고프면 얼마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면 되지만 철 규는 그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지영은 나의 핀잔에 수긍하는 척했지만 그 래도 포기하지 않고 틈만 나면 배낭 속에 있는 음식을 꺼내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렸다. “근데 일한 오빠, 이 근처에 부대가 왜 그렇 게 많아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군인이니 까 이상해요.” “전방이니까 그렇지, 뭐.” 군대 얘기가 나오니까 나의 특이했던 군대 생활이 생각났다. 혼자 피식거리니까 지영이 나의 군대 생활에 대해 물었다. “오빠는 어디 있었어요? 아, 맞다. 오빠 방 위죠?” “그래 나, 유디티다.” “오빠가 무슨 유디티야, 방위지?” “마, 유디티(UDT)가 우리 동네 특공대의 약 자 아니냐.” “흥! 도시락 폭탄을 들고 다니는 특공대?” “야, 너 방위라고 너무 우습게 보지 마. 방위 도 힘든 데가 있어. 훈련소에서 자살하는 사람 도 있고.” “진짜 자살해요? 거짓말 같은데. 설마 그 까 짓 한 달을 못 참아서 훈련 도중에 자살을 할 까? 그것도 남자가.” “너 군대를 우습게 아는 구나. 하긴 방위가 정규군에 비하면 편하긴 하지.” “오빠, 그런데 정말로 군대에서 죽기도 해 요?” “그럼! 남들 다 갔다온다고 군대를 우습게 보면 안 돼. 사실 군대란 곳이 그렇게 녹녹한 데가 아냐.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목숨을 잃지. 통계에 의하면 80년도부터 95년 6월까 지 군대에서 사망한 젊은이의 수가 8,950여 명이래. 이 속에는 물론 자살한 사람의 수도 포함되어 있어. 실로 어마어마한 수야. 거의 일개 사단 병력이지.” “군대가 정말 무섭긴 무서운 데구나.” “그럼!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만 옛날 에는 아주 무시무시했지. 사실 우리가 평화시 니까 심각하게 못 느끼는 거지만 군대 가는 것 은 목숨 걸고 가는 것과 같아. 그럴 리는 없겠 지만 만일 전쟁이라도 나 봐? 그러니 앞으로 군대가는 사람 있으면 잘해 줘. 특히 현역 입 대하는 애들.” “알았어, 이제부터 방위 들어가는 애들 술 사 줄 돈 모았다가 현역 가는 애들 사 줘야지.” “야, 내가 방위가 편하다고 한 건 현역병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너, 방위 훈련소에서도 실재로 자살한 사람이 있어, 알 어? 물론 그 사람은 훈련 때문에 자살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 왜 죽었는데? 귀신이 홀렸나?” 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영은 무서움을 많이 타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를 좋 아했다. “그런 건 아니고.” 나는 군대 훈련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지 영에게 들려 주었다. 나는 5X사단에서 훈련받았지. 군대 들어가 기 전에 그 사단에서 자살한 선배가 있었다는 소문을 듣긴 들었었어. 나보다는 고등학교 3 년 선배인데 훈련소에서 자살했다고 하더라고 . 그래서 난 애인이 변심해서 자살을 했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지. 하여튼 훈련소 생활 은 꽤 힘들더라고. 내가 훈련소에서 이상한 소문을 들은 것은 이주쯤 지나서였어. 훈련소에 입소할 때 들고 간 가방이라든가 옷가지들은 빈 내무반을 하 나 정해서 그곳에 보관하게 되어 있거든.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제일 구석에 있는 내 무반을 비워 놓고 쓰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 있 는 내무반을 비워 놓고 짐을 보관한 거야. 난 그래서 짐을 분실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거려 니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불침번을 서는 아이들이 그 빈 내무반에서 사람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거야. 조교나 교관이 알면 군기 빠졌다고 뭐라고 할까봐 훈 련병끼리만 속닥속닥거린 거지. 난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 그냥 무시해 버렸 어. 그러다 내가 불침번을 서게 되었는데 정말 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슬피 우는 소 린데 분명,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건 아니더라 고. 혼자서 그 소리를 들었다면 대단히 무서웠 을 텐데 워낙 많은 아이들이 있다 보니까 그렇 게 무섭지는 않더라. 내가 그 울음소리의 정체에 대해 들은 것은 퇴소하기 바로 전날이었어. 내무반장이 우리 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더라고. 자살 사건이 터진 것은 내무반장이 신병이 었던 이 년 전이었대. 훈련병들이 새로 들어왔 는데 내무반장은 그 당시 서열이 가장 낮아 훈 련병 지휘는 못 하고 고참들이 하는 것만 구경 하고 있었대. 사건은 사격장에서 일어났대. 그 전날 눈이 많이 와서 사격장을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었 다는 거야. 조교들은 사격장에서 주의사항을 다시 한 번 인식시킨 뒤 실탄 아홉 발씩을 훈 련병에게 먼저 분배해 주었대. 영점 사격용으 로. 영점사격이란 총의 조준을 정확히 하기 위 해서 하는 예비사격을 말하지. 그런데 2중대 3 내무반에 김석주라는 훈련병이 있었대. 아주 평범한 훈련병이어서 눈에 띄지 않던 사람이래. 그 사람이 끼어 있는 조가 사격을 하게 되어서 실탄을 나누어 주는데 공교롭게 우리 내무반장이 그 사람에게 실탄을 나누어 주었다는 거야. 내무반장 말로는 그 김석주라는 훈련병 눈 빛이 싸늘하게 빛나는 것을 느꼈는데, 순간적 으로 추위 탓이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대. 그런 데 일은 벌어진 거야. 김석주란 훈련병이 사격장에 올라가 실탄을 조준하자마자 총을 자기 턱에 갔다 대고 쏴 버 린 거야. ‘펑‘하는 소리와 함께 쓰고 있던 철 모와 피가 십여 미터 높이로 튀어올랐대. 김석주는 물론 현장에서 즉사했지. 조교들 이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벌어진 거야. 모두들 입을 쩍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담력이 센 한 조교가 아직도 부르르 떨고 있는 시체에 다가가더라는 거야. 그 조교는 침착하게 흘러나오는 뇌수를 형 체도 알아볼 수 없는 머리에 집어넣더라는 거 야. 그리곤 응급차에 실어 보냈대. 그 당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에 제대로 움직 일 수도 없었대. 특히 김석주 옆 사선에 누워 있다가 피와 뇌 수를 흠뻑 뒤집어썼던 한 훈련병은 한동안 정 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거야. 생각해봐. 옆에 있던 사람의 머리가 갑자기 날아가고 사방이 피바다로 뒤바뀐 상황을. 조교들은 자살 이유를 밝히기 위해 그 죽은 김석주의 소지품을 조사해 보았대. 수첩이 발 견되었는데 거기에는 딴 얘기는 일절없이, 날 짜마다‘오늘부터 D-DAY 며칠’이런 식의 글 이 적혀 있더래. 그가 기다렸던 디데이는 바로 사격 연습을 하는 날이었던 거야. 그가 자살을 한 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대. ‘드디어 내일이다. 실수 없기를……’ 그가 치밀하게 자살을 준비했다는 얘기지. 자살 이유를 조사해 보았더니 부모가 이혼을 하는 등 입대 전부터 괴로운 일이 많았다는 거 야. 그 사람이 바로 내가 군대가기 전에 소문으 로 들었던 자살했다는 고등학교 선배더라고. 여하튼 군대에서는 누가 죽는 불상사가 생 기면 그가 자던 침상하고 그의 물건이 있던 관 물대를 태워 버리는 관습이 있거든. 그래서 김 석주가 쓰던 침상하고 관물대도 역시 태워졌어. 그런데 그뒤로 훈련소에서 괴기스런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대. 내무반마다 온도계가 있 는데, 이유 없이 김석주가 있었던 내무반이 다 른 내무반보다 3, 4도 낮다는 거야. 실제로 그 내무반에 들어가면 싸늘한 기분이 든대. 그러던 어느날 밤에 무슨 전기 공사로 훈련 소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된 적이 있었대. 그런 데 그걸 모르고 있던 한 병사가 자판기에서 커 피를 빼 먹었대. 분명히 정전이었는데.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실제로 김석주의 유령 을 보았다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야. 제 일 처음 본 사람은 그 김석주를 담당했던 내무 반장이었대. 어느 날 밤 그 사람하고 우리 내무반장이 훈 련소 건물 끝에서 반대편 사무실까지 라면 상 자를 날랐대. 훈련병들이 다 퇴소한 빈 건물이 라, 당직 사무실만 빼 놓고 나머지 불은 모조 리 꺼 놓은 상태였대. 둘이서 라면상지를 지고 복도를 걷고 있었 대. 우리 내무반장이 앞장 서서 걷고 있는데, 그 문제의 내무반을 지날 때 갑자기 뒤에서 ‘악!’하는 소리와 함께 따라오던 그 내무반장 이 푹 고꾸라지더라는 거야. 깜짝 놀라 다가가 봤더니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는데 기절했더래.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나와 간신히 그 사람을 정신 차리게 했대. 그리고 나서 무 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겁에 질린 채로 그가 이렇게 말하더래. “복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2중대 3내무반 에서‘쓰윽’하고 죽은 김석주가 내 앞에 나타 나더니 경례를 했어요. 정말이에요! 난 똑똑히 봤어요. 그 머리에서 흐르던 피까지.” 그때부터 불안감과 공포가 훈련소에서 소리 없이 퍼지기 시작했대. 병사들은 밤이 되면, 그 앞으로 죽어도 지나가려 하지 않았다는 거 야. 우리 내무반장도 직접 귀신을 목격했대. 자 기 전에 세수하기 위해 세면장에서 세수를 하 고 있는데 거울을 무심코 보니 복도에 누가 서 있는 것이 언뜻 보이더래. 그래서 돌아서서 자 세히 보니까 그 김석주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 며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더라는 거야. 너무 놀라 뒤돌아보니 그 귀신은 천천히 저 쪽으로 걸어가더래. 뭐에 홀린 것처럼 따라갔는 데, 한참 걷다 보니 사라지고 없더라는 거야. 날이 지날수록 귀신을 목격하는 사병이 늘 어만 가자 장교들은 골치를 썩었대. 사기는 저 하될 대로 저하되어 있지만 상부에 귀신이 있 다고 보고할 수는 없는 처지고 말야. 별 다른 대책이 없어 쉬쉬하고 있는데 사단 장이 직접 이상한 현상을 목겼했대. 뭐냐 하면 밤 3시쯤 사단장이 부관을 깨워서 기습적으로 순찰을 해서 근무 상태를 파악해 보겠다고 나 섰대. 사단장이 부관과 함께 훈련소 앞을 지나가 고 있는데 파란불이 왔다갔다 하더래는 거야. 처음에는 사병들이 밤에 몰래 TV를 겨 놓고 비디오를 보는 줄 알고 노발대발했대. 그래서 부관 보고 어느 내무반인가 알아보 고 오랬다는 거야. 그래서 부관이 가까이 가 보니 그 내문반은 폐쇄된 지 두 달도 넘은 김 석주가 있던 내무반이었대. 그때는 훈련병들 이 없던 시기라 인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건물이었던 거야. 그런데 파란불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 으니 사단장도 시껍하지 않았겠어. 결국 사단 장은 부관의 보고를 통해서 김석주가 자살했 다는 것을 알았지. 결국 부대 차원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했대. 굿을 한 무당의 말로는 원혼은 쉽게 죽은 자리 를 못 떠나고 맴도는데, 석 달 정도 지나면 괜 찮을 거라는 거야. 그런데 정말로 신기하게도 그 무당의 말처 럼 석 달이 지나니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더라 는 거야. 부대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고.하 지만 그 내무반을 다시 쓰기에는 너무 꺼림칙 해 짐을 놓는 창고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죽은 영혼이 떠났다가 다시 들르는 건지, 그 뒤로도 김석주의 죽음을 모르는 훈련병들이 가끔씩 그 내무반에서 들려 오는 사람의 울음 소리를 듣곤 한다는 거야. 나도 듣긴 들었지만 날이 훤히 밝으니까 내가 환청을 일으킨 게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무섭지? 내무반장은‘김석주 사건’을 처음 에는 집단 착각 현상이라고 생각했대.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김석주의 죽음이 다른 사 람들의 눈에 헛것을 보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러다가 무당의 굿으로 공포에 질린 사 람들이 심리적 위안을 찾았다고 볼 수도 있다 는 거야. 하지만 김석주의 죽음을 전혀 모르는 훈련병들이 울음소리를 듣는 것을 보고는 생 각을 바꿨대. 혼령은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실 재할지도 모르다고.” 지영이는 내가 이야기하는 도중 무서운지 나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얘기가 끝나자 재미 있게 듣고는 왜 그런 무서운 얘기를 했냐고 도 리어 불평을 해 댔다. 드디어 철규가 있는 부대 앞 마을에 버스가 도착했다. 그곳이 마침 버스 종점이기도 해서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이 모두 다 내렸다. 우 리도 사람들에 섞여 마을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받은 마을의 첫인상은 황 량함이었다. 부대가 진주하고 있는 다른 부대 들이 그렇듯이 큰 차이 없었다. 초라한 입간판을 달고 있는 여관과 다방, 허 름한 음식점, 그리고 면회객과 외박 군인들을 상대하는 싸구려 술집들. 거리가 이렇게 황량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 쩌면 자기의 목숨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야 만 하는 병사들의 좌절감이 거리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마을에서 맡아야만 하는 절망의 내음이 너무도 싫었다. 면회소로 걸어가다 보 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라 해 봤자 군인 가족들이 대 부분일 테지만, 그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린 이 방인들을 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강한 경계와 공포의 눈길로 우리를 살펴보 는 것이었다. 놀고 있던 아이들을엄마들은 얼 른 집으로 들이고, 우리들을 경계의 눈으로 쳐 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을 지나는 군인들 역시 완전 무 장을 하고 있었는데 철모 아래로 긴장의 빛이 흐르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마치 며칠 전에 전쟁이라도 치렀던 마을 같 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면회소에 들어간 우리는 본부중대 박철규 이병의 면회를 신청했다. 특별한 훈련이 없는 한 주말은 언제든지 면회가 가능한 게 대한민 국 군대이기에 철규를 만나게 될 것 믿어 의심 하지 않았다. 같이 온 면회객들도 차례대로 면회를 신청 했다. 면회 신청을 받은 병사는 그 즉석에서 전화를 걸지 않고, 뒤로 들어가서 걸었다. 여 러 번 면회를 다녔지만 이런 식으로 면회를 받 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병사들을 유심 히 살펴 보았다. 병사들이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긴장 감으로 예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기소에 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뒤로 돌아갔던 병 사가 되돌아왔다. “이철규 이병만 면회가 가능합니다. 권오은 상병과 김영경 일병을 면회 오신 분들은 돌아 가 주시기 바랍니다.” 초병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린 부산에서 왔는데 와 면회가 안 된다는 겨?” “일요일인데 왜 면회가 안 되죠? 혹시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지금은 특수 훈련을 받고 있기 때문에 면회가 안 됩니다.” “안 되면 다 안 되는 거지, 누구는 되고 누구 는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훈련에 참가한 사람은 면회가 안 되고 훈련 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면회가 가능한 거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아는 행정병이라카던데 뭔 훈련에 참 석했단 말인겨? 그라지 마시고 잠깜만 불러 주이소. 얼굴만 보고 가겠십니더.”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가족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병사는 아무리 떼를 써도 면회 는 절대로 안 되니 포기하고 돌아가라며 아예 부대 밖으로 쫓아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철규를 볼 수 있다니 하여튼 다행이었다. 한참 앉아 있으니 군복을 입은 철규가 들어왔다. 철규는 우리를 향해 절도 있게 거수 경례를 붙 였다. 사개 월 전보다 훨씬 듬직하게 보였다. 그는 면회소 사병에게 신고를 하고 나서 우 리는 밖으로 데리고 나섰다. 초소를 나서는데 철규를 바라보는 사병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 다. 철규를 동정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지옥으 로 들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철규는 지영의 면회에 매우 흥분해 있었다. 지영은 철규의 그런 모습에 부담을 느끼는 눈 치였다. 우리는 허름한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지 영이 배낭을 열고 김밥과 찐 계란, 사과, 보온 병에 타 온 커피 등을 꺼냈다. 나는 치킨과 맥주를 시켰다. 처음 한동안은 초년병은 다 그렇듯이 철규가 군대 생활을 장 황하게 늘어놓았다. 철규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다 보니 철규 가 무척 흥분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처음에는 지영이 면회 와서 그러려니 했는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만은 않았다. 마을에 와서 받은 첫인상이 떠올랐다. 나는 철규가 뭔가를 감추고 위해서 군대 이야기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 철규의 말을 가로막았다. “철규야, 혹시 부대에 무슨 일 있는 것 아 니니? 마을 분위기도 이상하고, 면회도 잘 안 되는 걸 보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말야.” “이상하긴요.낯선 곳에 와서 형이 그렇게 생 각하는 거예요.” “그런 건가? 웬지 말이지 아까 초병이 널 보 던 눈빛이 자꾸 떠올라.” “정 상병님이요? 정 상병님이 왜요?” “글쎄, 뭐랄까? 아무튼 분명 뭔가 숨기고 있 는 눈치였어. 철규야, 너 우릴 속이려 들지 말 고 솔직하게 얘기해 봐. 뭔가 있지?” 철규는 내 눈동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 개를 술잔으로 떨구었다. 글라스를 힘주어 잡 더니 단숨에 입안에 털어넣었다. “이거 또 이상한 얘기를 해야겠네.” “뭔데 그래? 다 이야기해 봐.” 지영이 철규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형, 그친구분연락돼요? 심령학하신다는분.” “윤석이? 응, 가끔씩 연락이 와. 그런데 왜?” “나중에 제 얘기 점 꼭 전해 주세요. 사실 요 즘 우리 부대에 기괴한 일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저 영창까지 갔다왔어요. 그래서 오늘은 남들 못하는 면회도 할 수 있게 된 거 고요.” 지영은 철규의 억양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 기를 느꼈는지 나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나 역시 철규가 윤석의 이야기를 들먹거리는 걸 보니 이상한 얘기를 하려나 보다고 짐작했다. “제가 이 부대에 배치받은 지는 이 개월밖에 안 됐어요. 새까면 졸병이죠.” 철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섬칫한 이 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제가 이 부대에 온 지 한 달이 채 못 되었을 때 시작되었어요. 지금도 신병이지만 그때는 화장실이 어디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바로 윗고참을 따라다니며 하 나씩 배워 나갔지요. 우리 부대는 비무장지대 와 접해 있는 최전방부대라 군기가 꽤 세요. 저 도 한동안은 적응을못해꽤힘들어했어요. 밤에는 불침번이다 동초다 5분대기조다 해 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던 한 달 전이었요. 저는 그날 밤 오분대기조였어요. 지영인 오 분대기조가 뭔지 모르지? 오분대기조란 유사 시 즉각 전투 태세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밤에도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조를 말해. 말 그대로 오 분 안에 출동할 수 있도록 말야. 아마 그때가 새벽 두 시쯤 되었을 거예요. 윗 고참들은 총을 껴안고 요령 있게 졸고 있었 고, 저는 잠을 쫓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따다다다’하는 총소리가 고요한 부대를 뒤흔 들어 놨어요. 저흰 정말 전쟁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죠.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더군요. 뒤이어 온 부대에 긴급 사이렌이 울렸고, 우리는 즉각 출 동을 했어요. 총소리가 들려 온 곳으로. 총소리가 난 곳은 바로 부대 뒤 탄약고였어 요. 대부분의 부대가 그렇듯이 우리 부대도 산 을 등지고 위치한 부대예요. 탄약고는 바로 그 뒷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죠. 우리가 출동했을 때는 이미 많은 군인들이 그 주변에 쫘악 깔려 있었어요. 전부 무장은 하고 있었지만 적이 보이지 않으니 숨어 있을 도리밖에 없었어요. 상관들은 상관들끼리 졸따구는 졸따구끼리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데 연대장이 도착했어 요. 연대장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참모장이 지휘를 했어요. 우린 명령에 따라서 곧바로 부 대를 이동했어요. 십 분도 안 돼서 총소리가 들려 온 탄약고를 여러 겹으로 물 샐 틈 없이 에워쌌죠. 저는 그 제서야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말로만 듣 던 무장공비가 침투했구나, 하고 생각을 바꿔 먹었죠.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데 서치라이 트가 탄약고 주변을 대낮처럼 환히 비추기 시 작했어요. 상황을 보고 하라고 무전을 연이어 쳤지만 총소리가 난 탄약고 앞 초소에서는 아 무런 응답이 없었어요. 적이 난사한 총에 맞아 초소의 병사들은 사 망했을 거라는 추측이 오고 갔죠. 잠시 후에 ‘미친 개’라는 별명을 가진 대대장이 핸드 마 이크로‘너희는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 하라!’하고 외치기 시작했죠. 여러 번에 걸쳐 외쳤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거 였어요. 숨 막히는 긴장이 흘렀죠. 소대장이 잠깐 대 열에서 빠져 나갔다 오더니 전투 준비를 하라 는 거였어요. 저희 소대는 오분 대기조였기 때 문에 현장에 일찍 도착해서 맨 앞줄에 매복하 고 있었죠. 그 덕분에 우리 소대가 선봉에 서 게 되었어요. 서치라이트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초 소를 향해 우리는 포복을 해서 다가갔죠. 식스 틴의 잠금쇠를 끄르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어서 의식이 아주 명료했죠. 군복이 나뭇잎에 스치는 소리 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철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어요. 우리는 초소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가 공격 명령이 떨 어지기를 기다렸어요. 초소는 기분 나쁠 정도 로 잠잠했어요. 원래는 수루탄을 먼저 투척한 뒤에 초소 안 의 움직임을 살피고 초소로 진입을 해야 하는 건데, 우리 병사들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 문에 선제 공격 없이 곧바로 진입을 했어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미친개의 외침만 이 요란한 가운데 초소로 다가갔죠. 언제 적의 총탄이 날아올 줄 모르는 상황이었죠. 입안이 바짝바짝 타더군요. 발소리를 죽이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침투해 들어갔어요. 결국 소리없 이 다가가서 초소 벽에다 등을 기댔어요. 소대장이 손짓을 했죠. 저는 죽기 아니면 까 무리치기로 초소 안으로 한순간에 뛰어들었 죠. 그런데 놀랍게도 초소가 텅 비어 있는 거 예요. 초소 안을 둘러본 소대장이 즉시 무전기 로 상황 보고를 했어요. 이어서 주변 수색 명령이 떨어졌어요. 이번 에는 제법 많은 소대가 참여했죠. 헤드라이트 가 숲 속을 핥아 나가는 가운데 우리는 탄약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어요. 우리 분대에게는 탄약고 철책선을 따라서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저는 사방 경 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조심해서 걸음을 옮 겼죠. 부대 고참들에게서 가끔 북한에서 특수 부대 애들이 넘어와 우리쪽 군인들을 죽이고 다시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 든요. 그 애들은 가는 철사줄로 쥐도 새도 모 르게 목을 따 버린다는 하더군요. 저는 앞에서 플래쉬를 들고 갔는데 모퉁이 가 나왔어요. 돌아서기가 두려운 거였어요. 저 편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조심해서 돌아 가 보니 숲 속에 사람 같은 것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었어요. 두 명이었어요. 분대장이 즉각 중지 신호를 보냈어요. 엎드 려서 살펴 보았지만 전혀 움직이질 않는 거예 요. 군복을 보니 우리 쪽 사람 같더라고요. 그 래서 용기를 내서 다시 조심조심 다가갔어요. 가까이 가 보니 그들은 탄약고 보초를 서던 병사들이었어요. 완전히 나자빠져 있는 거예 요. 그중 한 명이 총을 꽉 쥐고 있고, 탄피가 널려 있는 걸로 봐서 그가 총을 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우리는 공비에게 당해 죽은 줄 알고, 시체를 살펴 봤어요. 그런데 아무런 상처도 발견할 수 없었죠. 심장에 귀를 대 보니 살아 있더라고 요. 그들은 단지 기절해 있었던 거죠. 수통을 열고 물을 끼얹었더니 정신을 차렸 리더라고요. 그들은 정신을 차리자 마자‘그, 그 여자 그 여자 어, 어디 있어요?’라고 더듬 거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분대장이‘군부대에 뭔 여자가 있겠느냐’면서 자초지종을 물었죠. “적이 침투했나?” 그러자 그들은 즉시 고개를 저었어요. “그럼 총은 누가 쏘았나?” “내, 내가.” “무엇을 보고 쏘았나?” “여, 여자.” “제기랄! 헛것을 본 모양이구만. 아직도 제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니.” 분대장은 즉시 상황 보고를 했고 탄약고 주 변에 깔려 있던 부대원들은 철수를 했죠. 우리 분대는 그 두 사람을 데리고 탄약고에 서 내려왔죠. 두 사실을 조사실에다 데려다 준 뒤에 내무반으로 돌아오니 여명이 터오르더군요. 우리는 모두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어 요. 그런데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지도 않 았던가 봐요. 누군가에 입에 의해서인지 그들이 조사받은 내용이 군부대에 쫘악 퍼졌어요. 대충 이런 내 용이었어요. 그들은 평상시대로 보초 근무를 서고 있었 대요. 고참은 초소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자고 있었고, 쫄따구는 열심히 장교가 오나 망을 보 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졸고 있던 고참이 갑자기 오줌을 누 고 오겠다며, 탄약고 뒤로 돌아갔대요. 졸따구 는 금방 올 줄 알고 혼자서 초소를 지키고 있 었죠. 순찰이라도 나오면 어떡하나 연신 사방 을 살피면서. 십 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소변을 보러 간 고참은 돌아오질 않는 거예요. 처음에는 고 참이‘큰 것’을 보거나 자신을 놀려 주려고 그 러는가 보다고 생각했죠. 기다리면 곧 오겠지, 하고 열심히 근무를 섰지만 고참은 삼십 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거였어요. 이상한 예감이 들었죠. 그래서 총을 들고서 천천히 탄약고 뒤로 돌아갔어요.나무 밑에서 고참이 누워 있는 게 보였죠. 졸병은 고참이 너무 졸려서 그대로 나무 밑에서 자는 거라고 생각하고 깨우려고 다가갔대요. 가까이 가 보니 바지 자락을 열어 놓은 채로 고참이 누워 있는 거였어요. 순간, 소름이 확 끼쳤대요. 생각해 봐요. 아무도 없는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잘 아는 사람 하나가 바지자락도 추스리지 못한 채 나자빠져 있다고. 졸병은 총의 안전 장치를 풀르고 천천히 누 워있는 고참에게 다가갔대요. 가까이서 보니 아무런 외상도 없어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 해 몸을 숙였대요. 그 순간, 눈에 파묻인 것처 럼 주변이 새하얘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얼른 고개를 들었대요. 그런데 놀랍 게도 눈앞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서 있더라는 거예요. 눈에서는 파 란 광채가 내뿜으면서. 귀신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전신으로 느꼈대요. 그는 무의식 중에 뒷걸을질을 쳤대 요. 그런데 귀신이 자기를 향해 다가오더라는 거예요. 그는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졸병의 주장에 의하면 그가 본 하얀 것은 귀신의 몸 안이었다는 거예요. 아주 사방 이 눈이 온 것처럼 환하더래요. 고참은 뭐라고 증언했냐구요? 졸병의 증언 과 비슷했대요. 소변을 보러 탄약고 뒤로 돌아 갔는데 갑자기 이상한 한기가 느껴졌대요. 그 는 몸을 한 차례 바르르 떤 뒤에 소변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을 뒤에서 뚫어지기 쳐다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래요.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돌렸더니 졸병이 묘 사한 그 여자가 서 있더라는 거예요. 자기를 빤히 쳐다보면서.너무 놀라서 움직일 수가 없 더래요. 그런데 갑자기 소리나 아무런 기척도 없이 자기에게 쓰윽하고 다가왔대요. 파란 눈이 점점 자신의 얼굴을 향해 다가오 는 것을 보고 그대로 기절했다는 거예요. 둘의 증언은 거기까지였대요. 두 사람의 진술이 진실이었다고 해도 군대 에서 그런 이야기가 먹히겠어요. 위에서는 자 식들이 노루가 눈앞에서 얼씬거리니까 총을 쐈다가 아무것도 안 맞자 둘이서 입을 맞추고 기절한 척한 거라고 결론을 내렸죠. 우리 부대에는 근무 도중에 총을 쏴도 되지 만 노루나 토끼, 하물며 참새 한 마리라도 쓰 러져 있으면 괜찮다는 규정이 있거든요. 물론 총을 쏘고 나서는 곧바로 보고를 해야지요. 결국 두 사람은 영창 갔죠. 고참은 근무 불 성실로 열흘, 총을 발포한 신참은 무단 발포로 2주간 영창에 갔어요. 부대원들은 거짓말을 엉성하게 해서 영창에 간 거라며 둘 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놈들이라 고 손가락질 했죠. 그 일은 그 걸로 끝나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 었어요. 아무도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 도 정말로 귀신이 나타나면 어떡하나 하고 우 려했던 모양이에요. 그 일 이후로 아무도 그 초소에서 보초를 서려고 하질 않는 거예요. 고참들은 탄약고 초소에서 근무를 서지 않 기 위해 행정병에게 압력을 넣곤 했죠. 말년에 비명 횡사할 일 있느냐면서. 그러다 보니 탄약고 보초는 짬밥이 낮은 신 병들에게 돌아갔아요. 결국 저에게도 보초 순 서가 돌아왔죠. 그날 저와 같이 초소에 올라간 고참은, 사실 고참이라고 불리기엔 그 사람도 신병이었지 만, 막 일병을 단 신 일병이었죠. 그러니까 그 사람도 고참으로서 그런 초소에 올라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신 일병은 귀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기 가 졸병 한 명을 데리고, 초소 근무를 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죠. 우리가 맡은 시 간은 시간은 새벽 2시부터 4시까지로 제일 사 람들이 싫어하는 시간이었어요. 지난번 사건으로 장교들의 순찰도 강화되었 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때까지는 신참이라는 이유로 보초 근무도 제외되어 있다가 그 날 처 음으로 2인 1조가 되어 야간 보초 근무를 서게 된 거였죠. 총을 만지작거리면서 주위 경계를 하고 있 는데, 모처럼 사수가 된 신 일병은 자기도 고 참 행세를 한다면서 초소 뒤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오겠다는 거예요. 나는 가지 말라고 말렸죠. 남들은 무서워서 그쪽으로는 아예 가지도 않으려는데, 왜 일부 러 거기까지 가서 담배를 피우려 하느냐고. 신 일병은 자기는 보초를 설 때 고참들이 자 유스럽게 돌아다니면서 담배를 피는 것이 너 무 부러웠다면서, 고참이 되면 꼭 자기도 해 봐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다는 거예요. 원래 귀신을 믿는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귀신 같은 건 안 믿으 니 눈에 보일 리도 없다면서, 아무 걱정 말고 근무나 잘 서라는 거였어요. 혹시 순찰 나오면 그쪽으로 돌을 던져 달라고 당부하면서. 저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 사람이 너무나 자 신만만해 하길래 그래도 두었죠. 그는 한껏 거드 름을 피우면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어요.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하고 애써 자위하면 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담배 피우러 간 신 일 병은 십 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사방은 칠흙같 이 어두운데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가는 소 리만 유난히 크게 들려 왔죠. 그런데 저쪽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떨리는 손으로 총을 겨눈 다음, 배운 대로 암 구호롤 물어보았어요. 나는 너무도 긴장해 있 어서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그냥 주저 없이 총 으로 갈길 작정이었죠. 그런데 귀에 익은 목소 리가 들려왔어요. 바로 우리 내무반장이었어 요. 그날 일직 사령이었대요. 일직 사령이 뭐냐고? 응 일직 사령이란 군대 에서 밤에 상황을 살피는 당직을 말하지. 원래 는 하사나 상사가 맡아야 하는데, 병장이나 군 대 경험이 많은 고참병들이 하는 것이 묵시적 관례로 되어 있어. 일직 사령 위로 장교들이 맡는 일직 사관이 있지. 내무반장은 그날 장교들의 명령으로 밤에 초소 순시를 나왔다는 거예요. 신 일병은 어디 갔느냐고 묻길래 저쪽으로 소변 보러 갔다고 했더니 무슨 말인지 금세 눈치채고는 화를 버 럭 내는 거였어요. “훈련소에서 먹은 짬밥도 아직 소화 못 시킨 놈이 감히 어디서.” 내무반장이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면서 뒤로 돌아갔어요. 저는 순간, 돌을 던져 신호를 해 주라는 신 일병의 말을 떠올렸지만 이미 엎지 러진 물이었죠. 신 일병이 엄청나게 깨지겠구나 하고 상상 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나 지 않는 거였어요. 신 일병이 내무반장에게 박 살나고 내무반장이 가고 난 뒤에 신 일병에게 내가 박살나게끔 되어 있는 건데, 이상하게 잠 잠하대요. 내무반장이 달려간 지 10분이 넘었지만 아 무런 기척도 없는 거였어요. 주위가 잠잠하니 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저는 빨리 교대조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았지만, 아직 40분 이나 남아 있더라고요. 그때 내무반장이 사라진 쪽과 반대편에서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거였어요. 나는 떨 리는 목소리로 암구호를 물어보았어요. 이번 에는 그날 일직 사관이었던 1중대장이었어요. 일직 사령이 왔었느냐고 묻길래 저는 그냥 저 뒤에 있다고 말했어요. 중대장은 얼굴이 시 뻘게져서, 빨리 순찰을 돌고서 수시로 상황 보 고를 하라고 했더니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냐 면서, 돌아갔어요. 중대장도 뒤로 사라지자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내무반장이 중대장에게 박살나면 다시 신 일병에게 화풀이를 하겠고, 다시 그 화는 나에게 올 게 뻔했기 때문이죠.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야겠구나, 하고 마음 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또 깜 깜 무소식인 거예요. 아무리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으니 어떡해 요. 할 수 없이 마음을 다잡고, 저도 뒤로 돌아 가 보았어요. 플래쉬를 들고 천천히 모퉁이를 돌았어요. 전신에서 정말 땀방울이 비오듯이 흐르더군요. 누가 뒤에서 불쑥 달려들 것 같은 그런 으스 스한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저쪽에서 빛줄기 가 보이는 거예요. 플래쉬로 비춰 보니 플래쉬 가 땅에 떨어져 있는 거였어요. 플래쉬로 다시 사방을 비쳐 보았죠. 그런데 느티나무 밑에 세 사람이 벌러덩 드러누워있 는 거였어요. 순간 저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 어요. 소문의 그 귀신보다는 철사로 목을 따간 다는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여겼죠. 천천히 쓰러져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어요. 플래쉬가 불이 켜져 있는 채로 떨어져 있는 걸 로 봐서 기습 공격에 당했구나 하고 판단했죠. 저는 초소로 다시 돌아가 보고부터 할까 망 설이다가 초소까지 돌아갈 엄두가 다시 않아 사방을 경계하며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요. 시꺼먼 덤불 속에서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죠. 너무 무서웠지만 일단 앞에 누워 있는 세 사 람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해야겠다고 마음을 굳 게 먹었어요. 사방을 쉴 새 없이 돌아보며 천 천히 접근했죠. 누가 어둠 속에서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 았어요. 저는 결국 쓰러진 그 세 사람 앞에까 지 접근하는데 성공했어요. 우선 그들의 목부터 살폈어요. 목에는 아무 상처도 없었어요. 오히려 목젖이 미세하게 움 직이더라고요. 저는 그들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어요. 얼마 전에 여기서 보초 근무를 섰던 두 사람이 증언한 내용이 떠올랐어요. 이 사람들이 기절 했다면 북한군의 소행이 아니라면 그 귀신 이 다시 나타났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 순간, 심장이 마비되려는지 통증이 오는 것을 느꼈어요.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 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몸을 일으키려는데 갑자기 위에서 뭔가 툭 떨어졌어요.. 그 순간, 정말을 머리가 쭈삣 서는 거였어 요. 저는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살폈어요. 놀 랍게도 하얀 소복을 한 여자 귀신이 머리를 늘 어뜨리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였어 요. 파아란 눈으로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한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거였어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죠. 저는 귀신을 향해서 냅다 총을 갈겨 댔어요. 탄창이 빌 때까지 쐈어요. 아니 탄창이 비는 것도 몰랐죠.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진 걸 어렴풋이 느꼈 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그 귀신이 여전히 저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귀엽다는 듯이 웃음을 띄면 서.저는 총을 버리고 무조건 달렸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무 기억도 안 나 요.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부대 정문을 나 와 있는 거였어요. 탄약고에서 부대 정문까지 는 아무리 빨리 뛰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린 데, 그 거리를 단숨에 뛰어왔던 거예요. 부대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죠. 나중 에 들은 이야기로는 보초병들이 암구호를 외 치는 데도 저는 들은 척도 않고 괴성을 지르며 달렸다는 거예요. 곧바로 보고가 올라갔고, 나 를 발견하더라도 사살하지 말라는 보고가 다 시 떨어졌대요. 제가 정문 쪽으로 달려가자 정문 위병들에 게 나는 저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대요. 내가 정신없이 달려가자 나를 발견한 위병들이‘정 지! 정지!’하고 외쳤대요. 그런데 내가 무시하 고 그냥 달렸나 봐요. 그 위병들은 미처 나를 잡을 틈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웃기는 것은 사건이 정리된 후에 그 위병들은 모두 명령 불복종으로 2주간 영창에 갔어요. 나를 저지 못했기 때문이죠. 만약 나 를 쏴서라도 저지했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포 상 휴가를 받았을 거예요. 그게 군대잖아요. 저는 근무지 이탈에다 부대 탈영을 했지만 서도, 귀신을 보았다는 세 사람의 증언이 일치 해 일주일 영창이라는 예상외로 가벼운 벌을 받았죠. 철규는 자조적인 미소를 띄운 뒤에 담뱃불 을 붙였다. “안 믿기죠? 아니 일한이 형은 믿을 거야. 지영이가 믿질 못하겠구나. 하지만 지영아, 이 건 내가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데 나는 정말로 귀신을 봤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영은 무서운지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곁에 철규 보기 민망할 할 정도로 바짝 붙어 있었다. 나는 무섭증보다는 일종의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제 다 해결된 거 야?” “해결되기는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제 가 일주일 영창을 갔다 와 보니 그 초소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병사들이 몇 명 더 있더라고 요. 그래서인지 병사들은 아무도 탄약고 초소 에 보초를 서려 하지 않는 거예요. 장교들은 휴가다, 열외다 해서 온갖 달콤한 유혹으로 병사들을 달랬지만 소용없었어요. 심지어는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을 보낸다고 겁을 줘도 야간 보초만은 서지 않겠다는 거예 요. 차라리 영창을 가고 말겠다는 거죠. 실제 로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에 간 병사도 셋이나 있어요. 부대 사기가 말이 아니죠. 그렇다고 탄약고 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더구나 우리 연대 장은 장군으로 진급하기 바로 직전이어서 이 사건을 잘 처리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어요. 결국 초소 근무를 모두 기피하자 장교들에 게 그 불똥이 튀었어요. 장교들이 직접 초소에 가서 야간 보초를 서라는 거였어요. 것이예요. 하지만 장교들인들 서고 싶겠어요. 마지못해 그 초소로 올라가는 척하다가 다른 곳에서 놀 다 내려오고 했죠. 사령 사관들도 그쪽으로는 순시를 하기 싫 으니 대신 초소로 전화를 해서 근무를 서나 안 서나 확인하곤 했죠. 그런데 사람이 없는데 전 화를 받겠어요? 보초를 선 장교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면 그들은 전화벨이 울리지 않 았다고 오리발을 내밀곤 했죠. 한마디로 부대 로 개판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보다 못한 한 소대 장이 나섰어요. 엄 중위라고 육사 출신인데 요 즘 찾아보기 힘든 아주 전형적인 군인이에요. 의리 있고, 용감하고, 배짱 두둑하며, 장교는 사병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투철한 장교 의식을 지닌 말 그대로 군인이죠. 집안도 군인 집안인데 할아버지가 우리 부 대 초대 연대장이었대요. 정년 퇴임을 한 뒤로 는 이 근처에서 자리를 잡았대요. 마을의 유지 라고 할 수 있죠. 엄 중위는 출세길이 훤한 특권층 장교라고 할 수 있죠. 그런 그가 흐트러진 부대 기강을 바로잡겠다며 탄약고 초소 야간 근무를 자청 하고 나선 거였어요. 그는 공수부대 출신 상사 한 명을 데리고 갔어요. 엄 중위는 초소로 올라가기 전에 자신의 내 무을 돌며서 자신이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기면 돌아가면서 그 초소에서 근무를 서야 한다고 사병들에게 한바탕 훈시를 했죠. 그리곤 당당하게 초소로 올라갔어요. 우리 는 엄 중위와 상사가 어떻게 될까 몹시 궁금해 했어요. 부대원들은 둘로 갈라져서‘귀신을 만 난다’와‘안 만난다’, 두 편으로 나뉘어서 내 기를 걸기도 했어요. 이윽고 날이 밝았죠.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무척 궁금해하고 있는데 아무도 엄 중위와 상 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아침에 가 보니, 소대장은 초소 안에서 죽어 있고, 상사는 완전히 미쳐 있더라 는 거예요. 어제까지만 해도 귀신 이야기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악령으로 바뀐 거예요. 죽은 소대장의 사인은 쇼크사가 아니라 머리가 180도 돌려진 채 죽어 있더래요. 그러니까 얼굴이 등쪽을 향 하고 있었던 거죠. 같이 있던 공수부대 출신의 상사는 완전히 얼이 나가 있고요. 상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더라는 거예요. 태산을 들 것 같던 그 우람한 사내가. 일부에서는 상사가 엉겹결에 소대장을 죽인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조심스레 나돌았죠. 그 런데 군의관의 말로는 소대장의 머리는 도저 히 사람의 힘으로는 그렇게 돌려 놓을 수 없다 는 거예요. 목뼈는 부러뜨릴 수 있으나 머리 전체를 음료수 뚜껑처럼 돌리는 것은 불가능 하대요. 이 살인 사건은 상부에 보고되었죠. 사단에 서는 곧바로 특검단을 우리 부대로 파견했어 요. 지금 한창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죠. 그러자 연대장은 열이 받을 대로 받았어요. 그래서 사병들에게 탄약고 초소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모든 병사들의 면회, 외출은 물론 휴가도 일절 금지한다고 선포했죠. 하지만 그 대신 지원자에게는 2주간 특별 휴가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모든 훈련에서 열외시 켜 주겠다는 조건을 내 걸었어요.” 나는 순간, 감전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럼 철규 너 설마?” “그래요, 형 휴가도 빵빵하고, 훈련도 열외 시켜 준대잖아요. 저 같은 신병에게는 둘도 없 는 기회예요. 더구나 처음으로 면회도 왔고.” “너 우리 때문에 그랬구나? 이럴 줄 알았으 면 안 오는 건데.” “아녜요, 형! 아주 잘 왔어요. 대한민국 군대 가 귀신 때문에 우왕좌왕하고 있어서는 체신 이 안 서잖아요. 어차피 이 문제는 누군가 나 서서 해결해야 해요.” “그래도 하필이며 왜 너야?”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엄 중위는 운이 없 었던 거라고 봐요. 언젠가 형이 그랬죠? 귀신 은 본래 물리력이 없다고.” “마, 그거야 일반적인 얘기고 이번에는 다르 잖아. 실제로 죽은 사람도 나왔잖아?” “걱정하지 마요. 저는 결코 엄 중위처럼 개 죽음을 당하거나 그러진 않을 테니까.” 철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맥주잔을 쭉 들이켰다. 그리곤 시계를 보았다. 어느덧 시간 이 꽤 되어 있었다. “이제 저 가 봐야겠어요. 보초 설 준비를 해 야 되거든요. 지영이도 일한이 형도 조금도 걱 정하지 마세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귀신은 퇴마록 같은 데나 나오는 거예요.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 귀신을 한 번 본 적이 있으니까 괜찮 을 거예요. 혹시 모르잖아요. 그 귀신이 나에 게 반했을지도.” 철규가 우릴 안심시키기 위해서 여유 있는 척 농담까지 던졌으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 다. 눈동자 속에는 잔뜩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 었다. 지영이 초소 근무 서는 것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라고, 차라리 영창을 가는 쪽으로 생각해 보라고 권했지만 철규는 이미 결심을 굳힌 모 양이었다. 철규는 부대로 들어가면서 힘껏 손 을 흔들었다. “지영이도 일한 형도 와 줘서 너무 고마 워요. 얼굴을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어요. 반드시 살아야겠다는.다음중에 서울에서 만나 요. 휴가 나갈 테니까.” 철규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돌아섰 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철규의 뒷모습을 보면 서 간절히 기도했다. 철규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지만 자꾸만 철규의 뒷모습에서 교수대를 향해 꿋꿋하게 걸어가는 사형수의 모습이 떠 올랐다. 나는 애써 머리를 저어 불안감을 떨쳐 버렸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은 나는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올 때와는 정반대로 지영도 침묵을 지켰다. 몸이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타인의 죽음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데서 무력감 이 나의 전신을 무겁게 짓눌렀다. 지영이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면회 가서 철구를 난처하게 만들고 말았다는. 버스는 양평을 지나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서 굳어 있는 나의 얼굴과 지영의 얼굴이 비쳤 다. 한없이 무기력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혼불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철규 괜찮겠죠?” 지영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이 상황에서 나의 대답이란 뻔할 수 밖에 없었다. 지영도 그걸 알고서 위로받기 위해서 물었으리라. “그렇겠지.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철규 이외 로 강한 놈이야. 그리고 너 들어 봤니? 귀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걸?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 났다고 하면, 신문에도 나고 그랬을 것 아니겠 어?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결코 귀신이나 유령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일어날 수 없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지영을 위해서 위로의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말에 얼마나 많 은 거짓이 숨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자기가 이해하고 싶은 대로 사건을 이해하려는 본성이 있다. 그러기에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는 한낱 미신으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또한 그것은 얼마 나 왜곡된 채 세상에 알려지는가? 이 세상에 범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은 수없이 많다. 우리는 그런 죽음에 대해서 범인이 잡히 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표현은 정말로 옳은 것일까? 부분적으로 옳은 면도 있으리라. 하지만 귀신이나 유령에 의해서 저 질러진 범행을 잡을 수 없다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그 동안의 경 험이나 윤석의 이야기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 다. 우리는 모두 장님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 히 눈을 감고 사는. 버스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 다. 나는 지영을 집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지 영은 초인종을 누르려다 말고 갑자기 몸을 부 르르 떨었다. “오빠, 무서워요. 지금쯤 철규는 초소로 올라 가 있겠죠?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아무 일 없을 거야. 난 믿어, 내 예감을.” “오빠, 난 오늘 밤 밤새도록 기도할 거야. 철 규를 지켜 달라고.오빠도 철규를 위해서 기도 해 줘.” “알았어. 들어가 봐.” 난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지영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곤 돌아섰다. “오빠, 고마워요.” 등 뒤에서 지영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뒤에 걸음을 옮 겼다. 집으로 오자마자 나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다. 잠을 이루려 했지만 철규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철규에게서는 며칠이 지나도 전화 한통 없 었다. 나는 매일 군부대 관련 소식이 신문에 실리지 않았나 꼼꼼히 살펴 보았지만 단 한 줄 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새삼 군대라는 곳은 국 방부에서 정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언론도 통제되어 있는 특수한 지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국방부 민원실에 전화 해 문의해 보았으나, 그런 문의는 접수할 수 없다며 전화를 매정하게 끊어 버렸다. 지영이 도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었지만 대책이 없기 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혹시나 해서 윤석이 속해 있는 심령학 학회에 전화해 보았으나 사무실이 빈 건지 아 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철규에 대한 걱정 도 잊혀져 갔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귀신이 있겠느냐면서 마음 편하게 생각을 하 기 시작했다. 면회 갔다 온 지 이 주일쯤 지났을 때, 그러 니까 철규에 대한 걱정이 잊혀질 갈 즈음이었 다. 잊고 있었던 그 일이 현실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신문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신문을 펼쳤 는데 신문 한 귀퉁이에 자그마한 군부대 관련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철규가 속해 있는부대였다. 놀라 다급히 기사를 읽어 나갔다. 비축 창고 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나 거기에 있던 사병 3명 과 장교 한 명이 죽었다는 아주 짧은 기사였다. 구체적인 사망자 명단도 나와 있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철규를 떠올렸다. 화제 발 생일은 그저께 밤으로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철규가 말했던 그 불가사의한 일과 무슨 연관 이 있지 싶었다. 지영이에게 얘기해 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부터 누구의 전 화일까 궁금해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일한이 형이에요? 저 철규예요.” 너무도 반가운 전화였다. “야, 너 어디야?” 나의 목소리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지금 터미날이에요.” “철규야, 아무 일 없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니네 부대 기사 보고 걱정하고 있었다.” “형, 한번 봐야죠. 나올래요?” “어? 물론 봐야지. 언제 어디서 볼까?” 철규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치 생사를 알 수 없던 동생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처럼 반가웠다. “야, 너 거기 시계탑 밑에서 기다려야. 내가 금방 나갈 테니까.” 나는 대충 씻고서 터미널로 달려갔다. 아침 의 터미날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철규는 시계탑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손 에 등산배낭을 들고서. “야, 철규야.” 손을 흔들며 부르자 철규가 돌아보았더. 걸 음을 옮기던 나는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철규 는 얼마 전에 보았을 때보다 눈에 띄게 늙어 있었다. 도저히 갓 스물을 넘긴 젊은이로는 보 아 줄 수 없는 정도였다. 못 먹었어도 한 서른 은 되어 보였다. “자식, 여전하구나.” 나는 속마음을 감추고 철규와 악수를 했다. 철규의 눈동자는 더없이 공허해 보였다. “배 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형 아침은 됐어요. 버스 타고 올라오면서 휴계소에서 김밥하고 계란을 사 먹었더니 생 각이 없네요. 우리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이야 기나 하죠.” “그래? 아직 커피숍은 문을 안 열었을 텐데.” “그럼 한강 고수부지나 가요.” “한강 고수부지?” 나는 철규의 얼굴을 힐끗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우 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한강 고수부지로 갔다. 한강에는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 외에는 인 적이 뜸했다. 우리는 강 저편에 한남대교가 바라보이는 강변에 걸터앉았다.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묵 묵히 피우고 난 철규가 손가락으로 담뱃불을 짓이겨 끄면서 입을 열었다. 담뱃가루가 강바 람에 날렸다. “그 기사 난 신문 저도 봤어요. 원인 모를 화 재로 죽었다고 났더군요. 하긴 불이 나긴 났었 죠. 저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 죽은 사람들은 결코 불에 타 죽은 게 아니 에요.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죠.” 철규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한남대교 위로 지나가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철규의 이 야기가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철규는 담배꽁 초를 완전히 분해해서, 허공에 날려 보낸 뒤에 조금은 지친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롤 이야기 를 시작했다. 그 전의 상황은 알고 있을 테니까 형이 면회 온 날부터 시작하지요. 형하고 지영이하고 면 회 온 날 밤, 저는 혼자서 초소로 올라갔어요. 교대 없이 혼자서 저 혼자 밤새도록 근무를 서야 했죠. 물론 국군 규정에는 이인이 일조가 되어 교대로 서게 되어 있었지만 위에서 시키 니 어쩔 수 없었어요. 내무반원이 저를 위로해 줬죠. 하지만 그들 의 어투는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에게나 할 법 한 말들 뿐이었어요. 사형수에게 묻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할 말 없느냐?’는 식이었죠. 저는 그들의 동정을 뒤로 하고 초소로 올라 갔어요. 밤 여섯시부터 여덟시까지 서는 마지 막 근무조와 교대를 했어요. 혹시나 내가 안 오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고 있던 병사들은 나를 무척이나 반기더군요. 김 상병은 나에게 행운을 빈다면서 자신이 차고 있던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 주었죠. 그 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갔어요. 혼자 남자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사방은 몹 시 몹시 깜깜했어요.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었죠. 저는 일단 초소 안으로 들어갔어요. 초소 안 은 바깥보다 더 으시시했어요. 며칠 전에 죽은 소대장의 핏자국이 여기저기 보였죠. 죽기 전 에 처절하게 몸부림을 친 것 같았어요. 저는 엉겨 붙은 핏자국을 보다가 초소 입구 쪽으로 나갔어요. 여차하면 튈 생각으로요. 겁도 나고 무료해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어 요. 내가 알고 있는 노래들을 모조리 불러 보 았죠. 한 백여 곡이나 불렀을까? 그 사이에 두 시간이 흘렀는지 취침 나팔이 울렸죠. 비로소 열시가 된 거죠. 초소 주위는 누군가 접근했을 때만 불을 밝 히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무서움을 참을 수 없어 아예 전등을 켜 놨어요. 그랬더니 다소 마음이 놓이더군요. 불 밖에 서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둠 속에 있는 것보다 는 한결 나았어요. 나는 다시 노래를 불렀어요.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르기도 하고 유년시절에 교회에서 배 운 찬송가도 기억을 더듬으면서 불러 봤죠. 목 이 잠기도록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지만 시간 은 더디게 가기만 하는 거였어요. 얼마나 지났나 시계를 보면 십 분이 흘렀거 나 오륙 분이 지나가 있곤 했어요. 저는 더 이 상 노래도 생각나지 않고 해서 이 주 동안 휴 가를 받으면 무얼할까 궁리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무섬증 때문에 정신 집중을 할 수 없었 어요. 형도 아시다시피 저는 원래 내성적이잖아 요. 그래서 혼자 있는 것에 남들보다 익숙해 요.. 그런데 그때처럼 뼈저리게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든 적은 없었어요. 마치 우주 공간에 결박된 채로 떠서 창이 날아와 내 몸에 꽂히기 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공포에 질리면 누구나 민감하게 되죠. 저도 그때 극도로 민감해 있었어요. 먼 데서 솔방울 이 떨어지는 소리, 산새들이 풀숲을 헤치고 후 두둑 날아가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죠. 하지만 저는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어요. 초소 벽에 등을 기대고 전방을 뚫어지게 보고 있으니 희끄므레한 환영이 자주 보였죠. 어둠 속을 쳐다보면 뭔가 숨어서 움직이는 것 같기 도 하고.한마디로 미칠 지경이었죠. 저는 가급적 즐거웠던 추억만을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죠. 하지만 놀랍게도 즐거운 추억 은 많지 않대요. 도리어 괴로웠던 날들이 많았 어요. 정신 집중을 할 수 없어 무작정 떠오르 는 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죠. 이제 한 서너 시쯤 됐겠다 싶어 시계를 보았 더니 겨우 한시더라고요. 동이 틀려면 아직 5 시간이 넘게 남았다고 생각하니 암담한 거예 요. 나중에는 이왕 나올 귀신이면 빨리 나타났 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두려움에 점점 지쳐 두려움 자체를 잊어 갔 죠. 너무 신경을 쓰고 있었더니 머리도 아프고 눈도 아파 왔어요. 아무 생각하니 멍하니 앞을 주시하고 있었죠. 낮에 마신 술도 있고 해서 조는 것처럼 몽롱한 상태에 빠졌어요. 그런데 갑자기‘지지직’하더니 초소 주변을 밝히는 전등이 나가는 것이었어요. 갑자기 주 변이 어두워지니까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본 능적으로 총을 꽉 쥐었죠. 어둠이 눈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어요. 그 몇 초간의 시간 동안에 죽음이 밀물처럼 서서 히 밀려오고 있는 걸 느꼈죠. 저는 눈을 빠르 게 깜빡거리면서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어요. 이윽고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귀신은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너무 무서워 몸이 저절로 덜덜 떨리는 거였어요. 나 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상황실과 연결되어 있는 긴급 전화기를 들었어요. 전등이 나갔다는 것을 보고라도 할 생각으 로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너무 무서워서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그 런데 전화기를 들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예요. 완전 불통이었어요. 전화기를 내려놓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어요. 바 로 초소 앞에 그 하얀 옷을 입은 귀신이 서 있 는 거예요. 제가 서 있는 거리와는 너무도 가 까웠어요. 저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지난번처럼 튈 수 도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조금도 손가락 하 나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전신이 완전히 마비 된 듯했어요. 공포심만 제외하고요. 등줄기에서 기분 나쁜 식은 땀이 주루룩 흘 러내렸죠. 너무도 놀라서 눈조차 감을 수도 없 었어요. 대치 상태가 한참 동안 이어졌어요. 저는 간 신히 정신을 추스릴 수 있었어요. 일단 총을 집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총은 내 가 전화를 하느라고 한쪽 구석에 세워 놓았기 때문에 총을 잡으려고 하면 걸음을 옮겨야만 했죠. 그런데 내가 움직이게 되면 이 미묘한 적막 함에 큰 균열을 생겨서 뭔 일이 벌어지고 말 것만 같았어요. 나도 다시 그녀를 유심히 봤어 요. 초소 입구를 막고 있는 그녀를. 구름에 가려 있던 달이 나와서, 저는 귀신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지 금까지 흰 소복이라고 보았던 그 옷은 소복이 아니라 하얀 정장이었어요. 머리는 산발이었 고, 눈동자에서는 소름 끼치는 빛이 뿜어져 나 왔죠. 여자의 모습 중에서도 눈이 가장 무서웠어 요.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뚫어지 게 쳐다보고 있었죠. 저는 무서워서 그녀의 눈 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만 그녀의 눈으로 시선이 갔다. 홀린다는 말 알죠? 그녀의 눈은 모든 걸 빨 아들일 것만 같았어요. 저는 제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죠. 정신이 점점 희미해지 고 그녀의 모습이 가까이 다가왔다 멀어져 가 고 했어요. 순간, 목이 180도로 돌아간 채 죽은 소대장 이 생각났어요. 나도 이젠 죽는구나 하는 생각 이 들더군요. 나는 그녀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 는 파란 빛이 초소 안을 환히 비추는 걸 느꼈 어요. 그리곤 정신을 잃었죠. 제가 다시 눈을 떠 보니 어느 숲속이었어요.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어요. 일어나 보 니 군복이며 머리가 온통 새벽 이슬로 축축히 젖어 있더군요. 그녀가 초소 입구를 막고 서 있던 기억까지 는 생생한데, 그 뒤로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였어요. 사방을 유심히 살펴 보았죠. 낯익은 철조망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고서야 탄약고 뒤편의 숲 속이라는 걸 알았죠.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하고 한참을 생각했지 만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어요. 동 터 오는 하 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는데 문득, 내가 살아 있 구나 하는 기쁨이 차올랐죠. 아, 이젠 휴가를 가는구나.이 지겨운 악몽에 서 벗어나서.내가 이 주 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나겠지! 나는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느꼈어 요.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였어요. 어디서 고약 하고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나는 코를 벌름거 리다가 내가 누워 있던 자리 옆의 풀섶을 헤쳐 보았어요. 놀랍게도 시체가 누워 있었어요. 저는 그때 본 참혹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흰옷을 입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써서 누런 색으로 보였지만 흰옷을 입은 여자가 죽어 있는 거였 어요. 얼마나 오래 된 시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 섭도록 부폐해 있었죠. 눈이나 콧구멍에서 구 데기가 쿰틀거리는 게 보였죠. 끔찍한 모습에 일단 시선을 돌렸다가 시체가 약간 부자연스 럽다는 느낌이 들어 자세히 살펴 봤죠. 등 위에 얼굴이 돌려져더군요. 그러니까 죽 은 엄 중위처럼 머리가 180도 돌려져 있는 거 였어요. 혀를 깨물고 있었는데 부폐하기 시작 한 얼굴 위로 수많은 구데기들이 기어다녔죠. 먹은 것도 없었지만 구역질이 나오더군요. 나는 돌아서서 몇 차례 구토를 했어요. 이 여 인이 바로 그 귀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참 토하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탄 약고 쪽에서 들려 왔어요. 저는 다급하게 그들 을 불렀죠. 달려 온 교대조는 시체를 보자마자 구역질을 하더군요. 한 명이 초소로 달려가 곧바로 상황실로 전 화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대장을 비롯 한 고위급 장교들이 달려왔어요. 그런데, 그 시체를 보던 연대장하고 일부 장교들의 얼굴 이 흙빛이 되는 거였어요. 저는 그들이 잘 아 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죠. 연대장이 나에게 어젯밤 상황을 묻더군요. 나는 숨김없이 모든 사실을 보고 했더니, 수고 했다며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내려가 쉬라 는 거였어요. 일단 귀신 소동은 일단락 지어진 것 같았어요. 찜찜한 것은 여전히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누가 그 여자를 죽였으며, 그 여자는 누구이 며, 왜 소대장처럼 목이 돌려져 죽어 있나, 그 리고 장교들은 그 여자를 어떻게 알고 있느냐 하는 등등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 났죠. 마침 소대장의 죽음을 수사하러 왔던 특검 단이 그 여자의 시체를 수거해 가 조사를 시작 했어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하고 있 는데 하루는 내무반장이 들어와서, 그 여자는 북한 공비가 살해한 민간인으로 판명됐다고 하더군요. 웬지 그 여자의 죽음을 흐지부지하려 든다 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속으로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있는가 보다고 짐작했죠. 장교들은 쉬쉬했지만 사병들 사이에는 별 루머가 다 돌 았어요. 그 죽은 여자는 연대장의 정부였다는 둥, 죽 은 엄 중위와 그 여자가 치정 관계에 얽혀 있 었다는 둥, 수십 가지 루머가 돌았죠. 하지만 저는 엄 중위를 검시했던 군의관이 한 말이 자꾸만 마음속에 걸렸어요. 사람의 목 을 180도 돌려 놓는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그녀의 시체가 발견된 지 사흘이 지났어요. 부대는 여전히 어수선했지만 그런 대로 정상 적인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죠. 그 초소는 두 사람이나 죽은 곳이라 아직도 올라가기를 꺼려했어요. 하지만 군대라는 것 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 있나요. 시체도 발 견되고 했으니 걱정할 것 없다면서 신병들 위 주로 경계 근무를 세웠죠. 고참들은 일종의 담 력을 쌓는 훈련을 하는 셈치고 근무를 서라고 신병들에게 주입시켰어요. 사병들 간에는 사라졌던 군기가 다시 서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장교들은 사병들과 달리 몹시 불안해 보였어요. 점호 시간에 실수하기 도 예사였으며, 꼭 어디를 다녀도 둘이나 셋씩 몰려다녔죠. 저는 한동안 훈련에서 열외된 채 내무반 청 소를 하면서 저에게 떨어질 2주간의 포상 휴 가만 기다렸죠. 그런데 이상하죠? 풀리지 않 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거예요. 귀신을 직접 두번이나 목격했다는 게 인연 으로 작용한 걸까요? 저는 그녀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죠. 그러던 중 화장실에서 우연 히 훈련소 동기를 만났어요. 그 자식은 빽이 좋아 연대장 당번병으로 빠진 놈이었는데, 그 놈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 서 제가 물어봤죠. 처음엔 모른다고 잡아떼면서 귀신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도리어 나에게 묻더군요. 나는 그 친구가 궁금해하는 것을 모조리 풀어 주고는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죠. 한동안 망설이더니 그 친구는 마침내 나에 게 모조리 털어놓더군요. 당번실에 있다가, 장 교들과 연대장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면 서. 놀랍게도 시체로 발견된 그 여자는 죽음 엄 중위와 남매라는 거예요. 그래서 장교들이 알 고 있는 거래요. 그리고 그 여자의 할아버지는 이 부대의 초대 연대장이었는데 별 세 개를 달 고 전역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퇴역 군인이지 만 아직도 힘이 막강하대요. 일설에 의하면 이 부대의 인사권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입김을 지니고 있대요. 그는 지금은 80이 넘었는데 정정하대요. 아직 도 명절 때가 되면 국회의원들이 찾아가 세배 를 드린다고 하더군요. 그런 거물의 손자와 손녀가 부대 안에서 의 문의 죽음을 당했으니 참 별일이죠. 특히 그 손녀는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가기 전에 남동생에게 면회왔다가 사라졌는데, 뒤늦게 발견된 거래요. 집에서는 그래서 서울에 올라 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 친구도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은 바 로 퇴역 장군의 태도래요. 귀여운 손자와 손녀 가 둘씩이나 죽었는데도 수사를 대충 마무리 지으라고 했다는 거예요. 당번병을 통해서 그녀가 누군지는 알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그러던 차에 3중대 수색조가 수색 훈련을 하 던 도중에 수상한 사람을 잡았다는 소문이 들 려 왔어요. 그 사람이 살인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파다하게 퍼져 갔죠. 우연히 우리 내무반에 동기를 만나러 온 그 수색조의 조장으로부터 잡은 사람에 대해 들 었어요. 그는 포상 휴가를 가게 될 거라고 들 떠 있더군요. “글쎄 그 자식은 죽어도 여기가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거야. 자식이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 말이지.” “어떻게 생겼는데?” “얼굴이 온통 시꺼면 수염으로 텁수룩하더 라고.” “나이는?” “한 서른쯤 되어 보였어.” “소지품은 뭘 가지고 있었는데?” “텐트가 숲 속에 처져 있더라고. 텐트 안에 는 이상한 책하고 낯선 도구들이 가득 차 있더 라. 책은 일본책도 있었고 영어책도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더라고. 뭐냐고 물으 니까 무슨 심령 어쩌구저쩌고 하더라고.” “수색조가 다가갔을 때 그는 뭐하고 있었는 데?” “부처님처럼 척하니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거야. 총부리를 들이댔는데도 가만히 있더라 고. 이 자식이 괜히 그러는 거다 싶어 눈뜨라 고 소리 쳤지. 그랬더니 그제서야 눈을 뜨고 우릴 천천히 돌아보는 거야.” “뭐하는 작자래?” “뭐, 자기는 심령술사인데 수도하는 중이라 는 거야. 내 그놈이 심령술사인지 마법사인 알 게 뭐야? 그래서 잡아왔지.” “순진한 민간인을 생포해 왔구만?” “순진한 민간인? 얀마, 순진한 민간인이 통 제 구역 안에서 수도합네 하고 죽치고 있는 것 봤어? 내 보기엔 그놈은 공비는 아니라고 하 더라도 그 두 사람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 을 거야. 조사를 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밝혀지 겠지. 그 놈이 만일 살인자라면 나는 포상 휴 가를 가게 되겠지? 밖에 나가면 네 애인을 불 러내 실컷 놀아야지!” “뭐 인마?” 나는 내무반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어요. 그러던 중 저녁 식사 시 간이 되어서 식당으로 갔죠. 식당에서 연대장 당번병을 만났어요. 나는 그 자식을 조용히 뒤 를 끌고가, 잡아 온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보 았죠. 그 사람 때문에 작전참모하고 연대장이 문 을 닫아 걸고 한동안 의견을 주고 받았다는 거 예요. 뭔지 모르지만 연대장과 작전참모는 그 사람을 만나서 뭔가를 부탁하기로 했다고 하 더군요. 나는 그놈 하고 헤어져 내무반으로 돌아왔 어요. 내무반 청소를 하고 있는데 당번병이 들 어오는 거였어요. 연대장이 나를 호출했다면 서요. 한밤중에 왜 연대장이 나를 호출했을까 무척 의아하더군요. 하여튼 저는 복장을 단정히 하고 당번병을 따라가면서 왜 연대장이 나를 부르는 거냐고 물어 봤죠. 그랬더니 당번병이 잡아온 사내 때 문에 그런다고 하더군요. 당번병은 그 사람을 심령술사라 부르지 않 고 무당이라 부르더군요. 무당이 부대 간부들 앞에서 우리 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귀신처럼 맞췄대요. 그러면서 아직 살인은 끝 난 게 아니고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는 거예요. 장교들은 무당의 말을 믿는 눈치래 요. 그런데 그 작자가 귀신을 두 번이나 목격 했다는 나와 얘기하고 싶다고 해서 나를 부르 는 거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사내에 대한 일종의 호기심을 품고 서 연대장실로 들어갔어요. 연대장실 안에는 저 같은 신병들은 얼굴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 었던 고급 장교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 어요. 맞은편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자칭 심령술사라는 사내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그 여자의 혼 령이 소대장을 살해하거나, 상사에게 해꼬지 를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여자의 혼령은 자기 의 죽음을 알리려고 초소에 몇 번 나타났을 뿐 입니다. 그 여자 역시 살해당했습니다. 그녀의 동생인 소대장처럼 참혹하게 살해당한 거죠. 제 추측이 맞다면, 이 부대 안에 강한 한을 가진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사람 은 아닙니다. 하여튼 제 생각에는 그녀의 유령 은 여러분을 놀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 라, 무언가 경고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 같습니 다.” 그 무당은 나를 발견했는지 하던 말을 멈추 었어요. 얼마나 얘기에 열중하고 있었는지 장 교들도 그제서야 내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렸 어요. 저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잔뜩 긴장한 채 서 있었죠. 사실 이 중의 한 사람이 내무반에 나타났다 해도 난리가 날 텐데 까마득한 졸병이 고급 장 교들의 시선을 일제히 받으니 기분이 어떻겠 어요. 한 장교가‘편히 쉬어’하며 짧게 명령을 하 더군요. 그리곤 수염난 사내가 묻는 말에 사실 대로 대답하라는 거였어요. 저는 시선을 심령술사에게 돌렸어요. 덥수 룩한 수염이 전체적으로 얼굴을 덮고 있어서 그런지 거칠고 무식하게 보이더군요. 그런데 그의 눈빛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생각이 바 뀌더군요. 눈빛은 차분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보였어요. 저는 직감적으로 지식인이라는 걸 느꼈죠. 그는 신이 내려서 점이나 치고 굿이나 하는 그 런 무당 같지는 않았어요. 그들과는 다른 어떤 깊이를 엿볼 수 있었죠. 그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귀신에 대해 서 질문을 던졌어요. 그 귀신과 무슨 대화를 나눴느냐는 둥 그 동안 수없이 받아 본 질문이 었어요. 그는 나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앞질러서 질문을 던지기도 했어요. 나의 이야 기가 대략 끝나자 그는 고급 장교들을 향해 돌 아섰어요. “역시 그 여자는 희생자예요. 여러분들이 이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고 싶다면 저에게 세 가 지 약속을 해 주셔야 합니다. 결코 무리한 약 속은 아닙니다. 첫째로, 소대장의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주세요. 둘째는 이 사건이 의혹이 대 강 풀리면 저를 보내 주세요. 셋째로 이 병사 를 저의 조수로 쓰게 해 주십시오. 저는 사실 여기에 오래 있을 만한 형편이 못 됩니다. 이 병사에게 뒷처리를 하도록 가르쳐 주고 나서 떠나겠습니다. 제가 이 일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저는 그 사람 말에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나를 끌어 들이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들었죠. 사실 저는 그 사람이 내건 조건이 마음에 들 지 않았습니다. 일의 뒤처리는 나에게 맡기고 자기는 가겠다니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속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죠. 연대장을 비롯한 여러 장교들은 즉석에서 그가 내민 조건을 받아들였어요. 달리 방법이 없으니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 장이었겠죠. 나는 밖으로 나와서 당번병에게 불만을 털 어놨어요. 그랬더니 당번병이 서울에서 조사 해서 보내 왔다는 팩스를 보여 주더군요. 그 사내의 이름은 임성수, 나이는 서른 둘, 학력은 명문대 철학과 대학원 졸업. 경력 사항 을 봤더니 신문사 문화부 기자를 하다가 한동 안 철학관을 운영했다고 나와 있더군요. 그리 고 그가 철학관을 할 때 드나들었던 손님들 이 름이 적혀 있는데 굉장하더라고요. 나는 그제서야 그 사람 말이라면 왜 장교들 이 꾸벅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나는 팩스를 보 고서 그가 그쪽 계통에 상당한 전문가라는 것 을 알았어요. 저는 다음날부터 그 사람 조수가 되어 그의 뒤를 따라다녔어요. 휴가는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보내 주겠다고 연대장이 직접 약속하더 군요. 저야 그 사람 조수로 일하는 게 싫을 턱 이 없죠. 훈련은 전번 일로 열외되었다고 하지 만 졸따구다 보니까 내무반에 있으면 번거러 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차라리 잘 됐다 싶어 그 사람 뒤를 졸졸 따 라다녔어요. 그런데 제가 잘못했던 것 같아요. 일이 그렇게 돌아갈 줄은 정말로 몰랐으니까 요. 그때 거절했어야 하는 건데 하긴 거절할 상황도 아니었지만. 여하튼 다음날부터 나는 임성수라는 사람과 함께 다녔죠. 그 사람은 마치 형사나 탐정처 럼, 그 여자와 소대장이 시체로 발견된 탄약고 주위를 차근차근 둘러보았어요. 일대를 한 바 퀴 돌고 나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저에게 다가 와 그러더군요. “잊을 건 빨리 잊는 게 좋아요. 우리는 자의 식을 가진 인간이라 해도 자신의 의지대로만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제는 그만 부모 님을 용서하세요. 사실 우리들은 누구를 미워 하고 용서할 자격도 없어요. 업을 청산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도 부족한 게 인생이니까요.” 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마치 저의 과거를 모조리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더군요. 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그는 사방을 휘휘 둘러보더니 초소 위쪽에 자리를 잡고 앉더군 요. 그리곤 결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어요. 저는 그가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 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죠. 이번에는 뭘하려는 걸까 궁금하기도 해서 그를 관찰하고 있는데 그는 한 삼십 분쯤 지나서 눈을 뜨더군요. 그는 눈을 감은 채 일어나서 걸음을 옮겼어 요. 그러더니 여자 시체가 누워 있던 주변을 한참 뒤지더니 풀숲에서 검은 덩어리를 집는 거였어요. 제가 보기에는 풀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잡풀 뭉치 같더군요. 저는 그래서 저런 시꺼먼 잡풀 뭉치를 갔다가 뭐라려는 걸 까 유심히 보았죠. 그는 잡풀을 조금 떼내서 손가락으로 비비 더군요. 그러자 미세한 먼지가 되어서 허공으 로 날아가는 거였어요. 저는 그제서야 그것이 잡풀 뭉치가 아니라 먼지라는 것을 알았죠. 먼 지는 성인 주먹만한 크기로 덩어리가 져서 동 그랗게 뭉쳐 있더군요. 그는 주머니에서 비닐 봉지를 꺼내 먼지 덩 어리를 넣었어요. 그리곤 그것을 들고 다니 주 변의 먼지와 일일이 비교해 보더군요. 저도 그 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해 보았지 만 그처럼 검은 먼지는 없었더군요. 주변을 샅샅이 뒤져 구석진 곳에 있는 먼지 와 일일이 대조를 해 봤지만 어디서 날아온 건 지 그런 먼지는 없더군요. 제가 하도 궁금해서 그 먼지가 뭐냐고 물어 보았더니 이 사건과 밀 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대요. 그리더니 손목 시 계를 보더니 연병장으로 급히 향했어요. 어디 가는 거냐고 했더니 상갓집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과연 연병장 한쪽 에서 짚차가 대기하고 있더군요. 우린 그 짚차 를 타고 엄 중위네 상갓집으로 떠났죠. 초대 연대장이었다는 엄 중위의 할아버지 집은 부대에서 한 사십 분 정도 떨어져 있었어 요. 산을 끼고 달리기에 저는 야산에서 은거하 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산굽이를 돌아가자 마을이 나오더군요. 그 마 을은 비교적 산골 마을답지 않게 넓고 깨끗해 요. 도로도 비교적 잘 깔려 있고, 넓은 곡창지 대도 있었죠. 한참 가다 보니 으리으리한 집이 보이던군 요. 저는 서울에서 내노라하는 재벌이 여기다 별장을 지어 놓았나 보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점점 가까이 가 보니 그 집이 바로 상갓집이었 어요. 문 앞에 쭈욱 서 있는 화환을 보고 알았 죠. 화환이 거짓말 아니라 백 개는 족히 넘는 것 같더군요. 국회의원 및 장관, 주변 부대 사 단장 및 각 부대장, 각종 상인 연합체, 무슨 클 럽 등 보낸 사람도 참으로 다양했죠. 열려진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곳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정원이 펼쳐져 있었어요. 파란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 아 놓고 그 위에 간이 천막으로 하늘을 가려 놓았더군요. 조문객들은 민간인들도 많았지만 그 중의 반은 고급 장성이었어요. 최소한 영관급 이상 이었죠.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제가 감히 낄 자리가 아닌 것 같더군요. 우리가 들어서자 한눈에 띄는지 다른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 다봤어요. “허어, 원성만큼이나 명예가 하늘을 찌르는 구만!” 그런데 임성수 씨는 마치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령처럼 묘한 말을 한마디 하더군요. 다른 사 람들이 눈쌀을 찌푸리며 우리를 쳐다보았죠. 그때 안채에서 상주 한 분이 뛰어와 우리에 게 다가갔죠. 우리의 신분을 확인한 뒤에 곧바 로 안채로 우리를 안내했어요. 우린 일단 죽은 희생자 가족에게 조의를 표 한 뒤에 엄 장군이라는 분을 만나러 갔죠. 그 는 퇴역을 한 지 꽤 되었지만 모두들 장군님이 라고 부르더군요. 집을 돌아가니 정자 같은 곳이 보이더군요. 그 옆에 한옥으로 지은 별채가 있었는데 엄 장 군은 그곳에 있었죠. 그곳은 완전 다른 세계더군요. 안채와 정원 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도 물레방아에서 쏟 아지는 물소리, 풀벌레 소리에 섞여 들려 오지 않았죠. 엄 장군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안으 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방 안은 보료가 깔려 있고 아주 정갈했어요. 엄 장군은 열두 자 병 풍 앞에 앉아 한문으로 된 서적을 읽고 있었 죠. 얼핏 보건데 손자병법 같았어요. 그는 안경을 벗고서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 죠. 눈썹이 하얗고 머리카락도 완전 백발이었 죠. 그의 눈에서는 노인의 정기라고는 할 수 없는 형형한 빛이 흘러나왔죠. 임성수 씨와 엄 장군은 차가 나올 때까지 눈 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고 서로 눈을 쳐다보고 있더군요. 마치 질식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어 요. 저는 목안이 간질간질해서 기침을 참느라 고 혼났죠. 마침내 다과상이 나오자 엄 장군이 먼저 입을 열더군요. “먼 데서 귀인이 오셨는데 대접이 소홀하여 면목이 없습니다. 집안이 어수선해서 그런 거 니 양해하여 주시지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 죠. 하지만 정중하게 예의를 차렸음에도 불구하 고 웬지 우릴 얕잡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초상이라도 치른 뒤에 찾아와야 하는 건데 부대 사정도 워낙 다급해 이렇게 찾아뵙게 되 었습니다. 무례한 질문을 하게 되더라도 양해 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임성수 씨가 머리를 조아리며 충분한 예의 를 갖추어 말했죠. 그의 말투나 행동거지로 보 아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자주 접해 보았 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자 차를 드시며 천천히 말씀하시지요.” 엄 장군이 차를 권해 우리는 설록차를 마셨 어요. 상갓집이 아니라 무슨 도 닦는 사람 집 에 방문한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안색을 보아 하니 요즘 통 잠을 못 주무시 는 것 같은데 꿈자리가 몹시 어수선한지요?” 임성수 씨가 찻잔을 들고서 물었죠. “꿈자리가 어수선한 거야 당연하지 않겠습 니까? 아끼는 손주들이 공비의 손에 무자비하 게 죽임을 당했으니.” 엄 장군의 말은 가시가 돋혀 있는 것 같았어 요. 그는‘공비들 손에’라고 말할 때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군요.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요근래 혹시 악몽이 나 환영에 자주 시달리지 않는가 해서 물어 보 았습니다.” 엄 장군은 임성수 씨의 말에 움찔 놀라더군 요. 하얀 눈썹이 한번 꿈틀거리더니 다시 노인 특유의 완고한 표정을 찾았죠. “임 선생이라고 했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봐요, 임 선생! 나이를 먹으면 잠이 없어 지는 건 당연한 현상 아닌가요? 잠이 엷어지 다 보니 악몽에 시달리는 거고.” 다소 불쾌하다는 듯이 엄 장군이 말했죠. 임 성수 씨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 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두 악몽에 시달리 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이가 꾸는 꿈은 미래에 대한 암시를 품고 있기도 하지만, 노인들이 꾸 는 꿈은 대부분 과거의 반영입니다. 평생을 죄 없이 살아오셨다면 악몽에 시달릴 리가 없죠.” “그럼, 내가 몹쓸 죄라도 지었단 말이요?” 금세 안색을 바꾸며 엄 장군이 근엄한 얼굴 로 물었죠. “잘 아시잖습니까? 요즘 들어 그 사람이 꿈 속에 자주 나타나고 있지요?” “그 사람이라니?” “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손자와 손녀 가 죽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됐다고 생각하 시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면 장군 님께서 커다란 실수를 하신 겁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니? 또 다른 사람이 죽 어간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가족들뿐만 아리라 무차별 살 생이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 전에 막아야 합니다.” “허어! 난 도대체 뭔 말인 줄 모르겠소!” 엄 장군이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더니 반쯤 돌아앉았죠. 임성수 씨의 얼굴에 언짢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죠. 엄 장군과 임성수 씨는 각자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먼저 임성수 씨 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죠. “장군님 심정은 이해합니다. 평생을 군인으 로 보낸 장군님이시니 명예롭게 눈을 감고 싶 겠죠. 하지만 가족들이 모조리 죽고 나서 명예 만 남는다면 그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 까? 장군님만 혼자 당하고 나면 끝날 것 같지 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서울에 있는 자 제분들이 차례대로 당하게 될 겁니다.” “음!” 엄 장군은 입을 꼭 다문 채 신음을 내뱉었 죠.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어요. 임성수 씨 가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말했죠. “모두 다 자업자득입니다. 여태 그 나이 드 시도록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이치 하나 깨우치 지 못했습니까? 인생 헛 사신 겁니다!” 임성수 씨는 뼈 있는 말을 뱉고는 답답해 더 이상 못 있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 죠. 그러자 엄 장군이 당황해서 임성수 씨의 바짓자락을 잡았어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이미 40년 전 일인데?” 엄 장군의 얼굴은 풀어져 있었죠. 더 이상 장군의 위엄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지요. 임성수 씨는 노인의 눈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어요. 여전히 불쾌하다는 표 정이었죠. “그래요.내가 어리석었던 거요. 나는 그때 그 걸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소. 당시 칼 자루는 내가 쥐고 있었기에 그 놈의 복수가 40 년이 지나 이렇게 시작될 거라곤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소.” 엄 장군은 눈을 지그시 감았죠. 두 눈을 감 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비로소 많이 늙었 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닫힌 눈꺼풀이 미 세하게 흔들렸죠. 그는 한참 뒤에 차분한 목소 리로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기 시작했지요.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당시 이 지역 에서 치열한 전투를 지휘했던 연대장이었소. 당시는 전시 상황이라 내 나이에 연대장이면 그리 높은 계급은 아니었다오.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다가 휴 전이 되었소. 우리는 휴전 협정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전투를 하곤 했다오. 그러 다 마침내 38선이 확정되었지요. 정전 협정이 이루어진 게 아니고 휴전 협정이었기에 자연스 레 38선 부근으로 군부대가 들어서게 되었소.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해서 언제 다시 일 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서 서로 총부리 를 겨눈 채 대치 상태에 들어서게 된 거요. 우 리 부대는 휴전이 될 때까지 이곳에 있었는데 우리 부대로 이 지역에 부대 막사를 세우고 철통 같은 경계 태세를 갖추라는 명령이 떨어졌소. 나는 적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 는 전술적인 위치를 찾아 부대 막사를 세웠소. 그런데 작은 문제가 발생했지요. 내가 부대터 로 선정한 곳에 살던 주민들이 반발을 한 거요. 그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이주할 수는 없다는 거였소.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어 떻게 고향을 버리고 갈 수 있겠느냐는 거요. 회유도 해 보고 겁도 줘 봤지요. 그래서 많 은 사람들이 떠나기는 했지만 몇 사람들은 끄 떡도 안 했어요. 나는 군대식으로 몰아붙이기 로 마음을 먹었소. 얼마 뒤에 대통령을 비롯해 서 국가 고위 관리들이 방문할 거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 더 서둘 수밖 에 없었소. 우리는 일주일의 최후 통첩 기간을 두고서 무작정 철거를 시작했소. 한쪽에서는 공사가 시작되고 한쪽에서는 철거가 이루어졌지요. 곳곳에‘민간인 통제 구역’이라는 푯말을 세 우고 밀어붙이자 공사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 소. 젊은 군인들이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서 일 을 해 나가서인지 속도도 무척 빨랐지요. 공사가 반이 넘게 진척되었지만 여전히 집 을 떠나지 않는 토박이들이 있었소. 남아 있는 몇몇 사람들과는 개별 면담을 해서 무조건 떠 나라고 협박을 했소. 말을 듣지 않으면 탱크로 빈 집을 깔아뭉개버리기도 하면서. 모두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떠나갔지요. 그런데 딱 한 집이 남아 있었어요. 약초를 캐 서 먹고 사는 약초장수가 사는 집이었소. 그는 두 딸과 함께 오두막에 살고 있었는데 선산을 지켜야 하기에 결코 떠날 수 없다는 거요. 그 의 오두막이 서 있던 자리가 현재 탄약고가 서 있는 자리라오. 나는 군인들을 동원해서 강제로 쫓아내기도 여러 번 했소. 그랬지만 소용 없었지요. 다음 날이면 어느 새 산을 타고 넘어와 집에 들어가 있는 거였소. 대통령과 국가 고위 관리들이 방 문하기로 한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지요. 사실 그때는 전쟁 직후라 보상 문제니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때요. 단지 쫓아내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었소. 그런데 일자 무식쟁이 인 약초장수가 생계 수단을 보장해 달라고 주 장하고 나선 거요. 그렇지 않으면 결코 선산을 떠날 수 없다고. 물론 그 당시는 폐품이 된 덩치 큰 군수품이 많아 몇 개만 처분하면 약초장수가 원하는 돈 쯤은 만들어 줄 수 있었소.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소. 만약 그런 선례를 남기면 쫓겨난 다른 주 민들이 몰려와 돈을 요구할까 봐 겁이 난 거요. 나는 그의 가족을 강제로 쫓아내라고 명령 을 내렸소. 명령은 곧바로 실행됐소. 그는 약 초를 캐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두 딸 들은 군인들의 손에 끌려갔다오. 나는 부관을 시켜 밑에서 연병장 땅 고르기를 하고 있는 탱 크를 동원해 원두막을 깔아뭉개 버리라고 명 령했소. 그때는 점심 무렵이었다오. 점심을 먹고 나서 임시 막사에서 몇 가지 지 시 사항을 내린 뒤에, 해가 질 무렵에 오두막 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소. 그런데 아직도 오두 막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 거요. 난 화가 날 대로 나서 빨리 탱크를 끌고 오라고 호통을 쳤 소. 내가 명령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탱 크 한 대가 올라왔지요. 나는 마지막으로 혹시 나 해서 오두막 안을 살펴 보았소. 맹세컨데 분명 아무도 없었다오. 밖으로 나간 나는 탱크 로 깔아뭉개 버리라고 손짓을 했소. 마침내 탱크가 오두막을 밀고 들어갔지요. 나는 앓던 이가 빠진 듯한 통괘함을 느꼈소. 탱크 굉음 소리와 함께 오두막은 순식간에 무 너져 내렸다오. 탱크는 서너 차례 움직였는데 나는 누군가의 비명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일 단 정지 신호를 내렸소. 그리곤 잔해를 살펴 보았더니 흙벽 사이로 사람의 팔이 보이는 거 였어요. 허겁지겁 들어냈더니 시체가 나왔소. 점심 무렵에 쫓아냈던 두 딸이 서로 꼭 껴안은 채 짓뭉개져 있었지요. 캐터필더에 깔려 내장이 튀어나온 채로.정말 고의는 아니었다오. 나는 너무도 놀라 망연자실 서 있었소. 전시 때 참혹한 시체도 많이 보았지만 그런 시체는 처음이었다오. 시체를 치울 생각도 못 하고 충 격 속에 서 있다가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였소. 약초장수가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거요. 두 딸의 시체를 보았는지 그의 눈동자가 시뻘 겋게 타오르고 있었소. 고의가 아니었다고 말 하려고 하는데 그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 소. 한 손에 호미를 들고. 심장을 쥐어짜는 듯 한 신음과 함께. 나는 위기감을 느꼈소.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권총을 꺼내 약초장수를 쐈소. 아니, 솔 직히 말한다면 그를 죽여야지만 사건을 조용 히 묻어 버릴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을 한 거요. 일이 틀어진 데 대한 화풀이라도 하듯이 나 는 약초장수를 향해 세 발을 쏘았다오. 그는 죽어 가면서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소. 네 놈에게 꼭 복수를 하겠노라고.내 딸들처럼 네 놈의 자식들도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될 거라며.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부관과 탱크병 들에게 이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소. 그리곤 시체는 그 당시 공사중 이었던 창고 건물 바닥에다 묻어 버렸지요. 무사히 부대 공사는 끝났소. 나는 그 뒤로 승승장구했고 명예롭게 군에서 물러났소. 부 대 대치를 직접한 덕분에 난 부대 마을의 상권 을 쉽게 장악할 수 있었지요. 나는 전역 후 고 향으로 돌아가려다가 생각을 바꿔 먹고 이 곳 에 눌러앉았소. 이 곳은 정말이지 나의 고향이나 마찬가지 로 정이 들었던 곳이니까. 내가 여기에 터를 잡자 고위 군인들이 찾아왔소. 아직도 높은 자 리에 있는 동기생과 선후배들에게 인사 청탁 을 해 달라고. 퇴역 군인의 집으로 현역 장성들이 드나드 니 나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소. 어리석 게도 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이런 행복은 계속 이어질 줄로 알았다오. 그런데 삼 년 전부터 놈이 꿈 속에 나타나기 시작한 거요. 아주 가끔씩.나는 몸이 허해져서 그런 줄 알고 몸 관리를 하는 한편 보약을 먹 었소. 그런데도 잠을 자다가 나는 자주 그놈 꿈을 꾸어야 했지요.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나타나던 놈이 점점 자주 나타났소. 난 내가 죄의식 때문에 놈의 꿈을 꾸는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게 아니었소. 재작년 봄에 큰아들이 밤낚시를 하다가 저수지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을 한 거요. 난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들이 죽 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소. 놈이 내 아들을 강 제로 물에 처넣는 장면을.내 아들은 물 속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아무 소 용이 없었소. 놈이 내 아들의 팔을 잡고 놓아 주질 않는 거요. 놈은 나를 보고 기분 나쁜 웃 음을 흘렸소. 그리곤 물 속으로 서서히 들어갔 지요. 놈의 두 눈이 물 속으로 사라지고 나서 나는 벌떡 일어났지요.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 었소. 나는 다급히 자고 있는 운전수를 깨웠지 요. 그리곤 꿈 속에서 보았던 저수지로 달려갔소. 부랴부랴 달려가 가 보니 내가 꿈 속에서 보 았던 것과 똑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지요. 낚 시대 하나는 떨어져 있고, 아들은 보이지 않았 소. 나는 아들을 삼키 저수지 한가운데를 망연 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오. 다음날 유디티를 동원시켜서 아들을 저수지 에서 건져냈소. 내 아들은 수초더미에 칭칭 감 겨 있었다고 합디다. 나는 아들의 시신을 집으 로 들여 놓고 몰래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을 했소. 무당은 죽은 아들을 불러내기 위해서 한참 춤을 주더니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떠는 떨어대 는 거요. 그러더니 갑자기 음산한 목소리로, 자식을 잃은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거였소. 바 로 그 놈, 그 약초장수의 목소리였지요. 나는 무당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어 요. 용서해 달라고.이만 화를 풀라고.그러자 무당은 길길이 날뛰면서 준비한 음식상을 발 로 차 뒤집는 거였소. 나는 살려 달라고 안 할 테니까 내 딸을 살려내라고. 그러면 다시는 나 타나지 않겠다고. 노여움을 풀라고 내가 손이 발이 되게 빌었 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다른 무당이 말렸 지만 약초장수 신이 실린 무당은 펄펄 뛰면서 집안을 온통 들쑤셔 놓고 집을 나가 버렸소. 굿이 엉망이 된 거지요. 며칠 뒤에 나는 다시 그 무당을 찾아갔지요. 무슨 방법이 없냐고 물어 보려고.그 무당은 몸 이 아프다고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손을 휘휘 젓는 거였소. 다시는 굿을 하지 않겠다면서. 나는 그래서 다른 무당을 찾아갔지요. 몇 번 해 보았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소. 장군신이니 뭐니 하는 신들이 나와서 조상의 묘자리가 나빠서 그렇다는 둥 괜한 헛 소리만 지껄여 대는 거요. 나는 그래도 행여 자손들이 화를 입을까 그 들이 시키는 대로 모두 했소. 부모님 묘도 합 장을 했고, 부적을 사다가 집 곳곳에 붙이기도 했다오. 그러자 동네에서 소문이 이상하게 나는 거 였소. 소위 퇴역 장군이라는 사람네 집에서 연 일 굿이나 하고, 점장이나 찾아다니니 실망스 럽다는 거지요. 나는 이웃들의 안목도 있고 해 서 모든 행위를 중단했지요. 그리곤 사찰로 등 산을 핑계삼아 약초장수와 두 딸의 명복을 몰 래 빌러 다녔소. 하지만 약초장수의 노여움은 풀어지지 않았 지요. 놈이 힘이 강해진 건지 내가 몸이 약해 진 건지는 모른겠지만 꿈 속에 수시로 나타나 는 거였소. 그러던 어느 날 밤에는 놈이 이번 에는 손녀를 데려가겠다는 거요. 잠에서 깬 나는 깜짝 놀라서 딸을 불렀소. 서울로 보내 놓으면 놈의 힘이 미치지 않을 것 같아 딸네 집에 가 있으라고 보냈지요. 그런데 그 아이는 떠나기 전에 동생 얼굴이나 보고 간 다고 면회를 간 거요. 난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소. 손녀가 서울로 간 날부터 나는 계속해서 악 몽을 꾸었다오. 그런데 이번에는 손자가 어이 없게 죽은 거요. 이어서 손녀의 시체가 발견되 고. 군부대에서 온 연락을 받고, 나는 놈이 내 귀여운 아이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았소. 그래 서 수사를 종결시키고 공비의 소행이었다고 발표하라고 한 거요. 그때의 비리가 밝혀져서 는 안 되겠기에. 나는 살만큼 살았소. 이 생에 대해서 더 이 상 미련도 없소. 놈이 나타나 나를 데려가기만 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 하지만 나 내 개인의 명예는 상관없지만 군 의 명예는 더럽힐 수 없소. 내가 자랑스러워 부대에서 일어난 일들이 세상에 밝혀져,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소. 이 상이오. 엄 장군은 긴 이야기를 마치고 찻잔을 들었 으나 잔은 이미 비워져 있는 상태였어요. 나는 옆에 있는 주전자를 들어 장군의 잔에 차를 가 득 따랐어요. 엄 장군은 찻잔을 들어 하얗게 말라붙은 입술을 적셨죠. 침통한 표정으로. 임성수 씨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다가 이 렇게 말하더군요. “장군님의 마음은 어느 정도 알겠습니다만 다음 차례는 장군님 차례가 아닙니다.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진 원귀라면 장군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죽여서 장군님의 피를 말려 죽이려 들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군부대에서 대 대적인 굿이라도 하면 그 원한이 풀어지겠는 가?” 엄 장군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임성수 씨를 바라보았죠. 임성수 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 어요. “늦었습니다. 인생은 업을 씻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도리어 업을 쌓았으니 인생 잘못 산 겁니다. 좀더 올바르게 처신하셨 어야지요.” “다른 방법은 없겠는가?” “꽃이 피면 지게 반드시 지게 되어 있지요.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으셔야지요.” “인과응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장군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막 기 위해서 제가 수단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그럼, 재앙을 막을 수 있나?” “막아야지요. 장군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부터라도 제대로 업을 씻으십시오.” “어떻게 하면 내 업을 씻을 수 있나? 방법을 가르쳐 주게나.” “죽음이 얼마 안 남은 노인네에게 이런 호화 스러운 집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아 놓 은 재산은 죽을 때 지고 가시렵니까? 그런 욕 심을 지닌 채 죽게 되면 영계로도 들어가지 못 한 채 이 세상을 떠도는 잡령이 됩니다. 잘 알 아서 처신하십시오. 그럼.” 임성수 씨는 차갑게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 어났지요. 엄 장군이 일어나서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임성수 씨는 매정하게 뿌 리치며 집을 나섰어요. 나는 부대로 돌아가는 짚차 안에서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 보았지요. “어떻게 엄 장군님에게 그런 과거가 있다는 것을 알았죠?” “귀신이 선량한 사람을 해꼬지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를 제거하려 하지 않는 한. 난 그 래서 그 귀신이 가족 중의 누구에게 원한을 품 고 있다고 판단했죠. 그런데 엄 장군을 보고 나서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죠. 보통 사람들 은 잘 모르겠지만 전 엄 장군의 눈동자를 보고 귀신을 본다는 것을 느꼈어요.” “엄 장군님은 꿈 속에서 귀신을 만났다고 했 잖아요. 꿈 속에서 귀신을 봐도 눈동자에 드러 나나요?” “보통 사람들은 악몽은 잠잘 때 꾼다고 생각 하는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엄 장군 은 저수지에서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고 했는데 그건 꿈이 아니에요. 약초장수가 엄 장군의 영혼을 불러내 저수지로 데려간 다음 아들을 서서히 죽인 거죠. 영혼은 깜짝 놀라 다시 몸 안에 들어갔고, 그제사 정신을 차린 엄 장군은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귀신은 물리력을 지닐 수 없 다고 들었는데 이 귀신은 어떻게 해서 물리력 을 지닐 수 있는 거죠? 목을 완전히 등 뒤로 돌 려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아마도 그는 보통 약초장수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귀신은 원래 물리력을 지닐 수는 없지 만 맛과 향은 느낄 수가 있어요. 약초 장수는 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이 산 저산을 떠돌며 약초의 향을 맡으며 기를 모 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장장 사십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말이죠?” “그래요. 그는 처음에는 아들이 저수지에 가 까스로 끌어들일 정도의 힘밖에 없었어요. 그 런데 불과 이 년 만에 그토록 강한 기를 모은 걸로 봐서는 살아 생전에도 보통 약초장수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임 선생님은 그 귀신을 무슨 수로 막으시려는 거죠?” “지금부터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요.” 임성수 씨는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냈어요. 그리곤 저에게 주었죠. “이 부적은 제가 어제 저녁에 쓴 거예요. 우 주에 떠도는 힘을 모아 쓴 거니까 효험이 있을 거예요.” 저는 뭐라고 썼나 궁금해서 부적을 펴 보았 죠. 두 장이었어요. 그런데 예사 부적과는 달 랐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어머니 가 부적을 자주 옷에 달아 주셨기 때문에 부적 에 대해서는 잘 알거든요. 그런데 그 부적은 제가 지금까지 본 것과는 아주 달랐어요. 붉은 잉크도 아닌 검은 먹으로 ‘술(術)’이라고 써 있었지요. 다른 한 장도 똑 같았어요. 제가 부적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 는데 임성수 씨가 말을 이었어요. “약초장수의 원귀는 자신의 집을 잃은 한이 가장 커요. 원귀에게 있어서 집은 바로 육체 죠. 귀신이 죽어서도 육체 곁을 맴도는 것은 일종의 미련 때문이죠. 그래서 일단은 시체를 찾아내 불에 태워 줘야 해요. 그러면 원귀의 힘이 많이 약해지게 되죠. 그러니 부대로 들어가게 되면 그 창고로 가 세요. 아무 때나 가지 말고 자시(11시 1시)에 가세요. 자시는 원래 귀신들이 활동하는 시간 인데 원한이 깊은 악령들은 반대로 자는 시간 이죠. 그들은 해시나 축시, 묘시에 주로 나다 니는데 이번 악령 같은 경우는 시간에 구애받 지 않는 것 같더군요. 창고에 가기 전에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 뭇가지와 생닭을 한 마리 가지고 가세요. 창고 에 들어서면 일단 문 안쪽에다 내가 준 부적을 한 장 붙이세요. 그리고 나서 곧바로 복숭아 나뭇가지를 태우세요. 나뭇가지에 불이 붙으 면 닭의 목을 따서 창고 주변에 닭피를 뿌려 놔요. 악령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거죠. 그 다음 에 시체를 빠른 시간내에 파내세요. 시체를 파 냈으면 재빨리 약초장수의 이마에 남은 부적 한 장을 붙이세요.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절대로 부적을 손상시켜서는 안 돼요. 아셨 죠? 만일 부적이 찢어지거나 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주는 건데 이걸 가지고 가세요. 창고에 들어서게 되면 제 일 먼저 이 먼지 덩어리와 그곳의 먼지가 같은 가 확인해 보세요. 만약 먼지가 틀리다면 파 봤자 헛수고예요.” 나는 그가 주는 대로 비닐 봉지에 들은 먼지 덩어리를 받았죠.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부 분이 있어서 다시 물어 보았어요. “그건 왜죠?” “악령은 주변에 흩어져 있는 기를 모을 때 주로 원심력을 이용하죠. 그래야 빠른 시간내 에 힘을 비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먼지는 바로 원심력에 의해서 뭉쳐진 거예요. 무슨 말 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창고에 잠들어 있는 약초장수가 기를 창고에다 모아놓았다 이거죠. 그래서 밖 으로 나가기 전에 흩어진 기를 원심력으로 모 았고, 그 과정에서 먼지 덩어리가 형성됐다는 거죠. 형성된 먼지 덩어리는 악령의 뒤를 따라 다녔고 그러다 악령이 그 여자를 죽일 때 바닥 에 떨어졌다 이렇게 되는 건가요?” “아주 훌룽해요! 철규 군에게도 초감각적 지 각능력이 어느 정도 있군요. 우린 훗날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난 이만 가 봐야 해요.” “아니 가시다뇨?” “운전병, 차 좀 세워 줘요!” 임성수 씨가 외치자 짚차가 멈춰 섰어요. 그 는 차 뒤에 놓인 자신의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죠. “섭섭해하지 마요. 어제 제가 말했잖아요. 저는 이 정도에서 손을 떼겠다고.” 임성수 씨가 불쑥 손을 내밀었어요. 나는 그 의 손을 잡지 않고 그를 따라내렸죠. 그를 그 대로 보냈다가는 큰 후회를 할 것 같은 예감 때 문이었어요. 결국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지만. “사건을 마저 해결해 주지 못하고 떠나서 미 안해요. 내가 이대로 떠나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그 두가지 이유란 게 뭐죠?” 나는 그가 달아날까 봐 옷자락을 꼭 잡고 물 었죠. “첫번째 이유는 내가 다른 세계에 발을 디뎌 놓았기 때문에 그 일을 직접하게 되면 지금까 지 내가 노력한 것이 허사가 돼요. 더 이상은 묻지 말아 주세요.” “좋아요. 그렇다면 두번째 이유는 뭐죠?” “두번째 이유는 만약의 경우에 사고가 나게 되면 저에게 닥칠 불행 때문이에요. 군대에서 일어난 일을 군인이 해결해야 해요. 그래야 책 임 소재가 확실하죠. 그런데 만약에 민간인인 내가 그 일을 하려다가 자칫해서 불상사라도 일어나게 되면 저 혼자 뒤집어써야만 하죠. 억 울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아무도 민간인인 저 의 편에 서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첫번째 이유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두번째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나는 그를 순순히 보내 주는 쪽으로 입장을 굳혔다. “고마워요. 많은 도움을 줘서.” “시체를 불에 모조리 태울 때까지 방심하면 안 돼요. 부적이 떨어지지 않게 특별히 조심해 야 해요. 아셨죠?” 임성수 씨는 마지막 당부를 하고는 몸을 돌 렸어요. 그가 점점 멀어져 가자 두려움이 몰려 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들었죠. 사실 임성수 씨에게 전적 으로 의지하고 있었는데 제 앞으로 일이 떨어 지자 불안하기 짝이 없었어요. 저는 일단 부대로 복귀했어요. 연대장과 고 급 장교들은 연대장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죠. 저는 상갓집에서 들은 엄 장군의 과거 는 모두 생략하고 임성수 씨가 사라졌다는 것 만 보고했어요. 그러자 모두들 술렁거렸어요. 연대장은 실 망하는 빛이 역력했죠. 저는 이어서 임성수 씨 가 알려 준 방법을 상세히 말했죠. 그러자 연 대장은 준비물을 빠짐없이 챙겨 두라고 지시 를 내렸어요. 결국 이 일을 어느 소대에서 맡아서 처리하 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주고받더군 요. 어느 소대에서 맡게 될까 궁금하기도 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죠. 그런데 대뜸 연대장이 나에게 저녁을 먹었느냐고 물어봐서 안 먹었 다고 했더니, 이중대 중대장에게 장교 식당으 로 가서 밥을 먹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장교 식당으로 가서 허기진 배를 채웠 죠. 다시 연대장실로 갔더니 일단 내무반으로 복귀해 있으라는 거예요. 다시 부를 테니 이 일을 절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는 거였죠. 아홉시쯤 되어서 이제쯤 호출하겠구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소대장이 들어왔죠. 임 소위님이 내게 와서 우리 소대에서 극비리에 이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임 소위님은 R.O.T.C 장교인데, 저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 단둘이 있을 때면 저에게 아주 잘해 줬죠. 임 소위님은 나와 세 명의 병사를 피엑스로 데려가서 긴장을 풀라고 커피를 사 줬죠. 다른 병사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 건데 일이 끝나면 2주 동안 휴가를 보내 준다는 거냐고 묻더군요. 그러자 소대장이 나서서 그저 시체 만 파내면 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더군요. 나는 모든 사실을 이야기해 줄까 하다가 함구하라는 연대장의 당부도 있 고 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죠. 그들은 더 이상 물어 보지 않고 2주짜리 포 상 휴가를 받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죠. 내가 피엑스에 앉아서 빵과 과자를 먹고 있는 사이에 소대장이 선임하사 와 상병 한 명을 데리고 연대장실에 들렀다가 나왔어요. 손에는 복숭아 나뭇가지와 닭 한 마 리, 곡괭이, 삽, 손전등, 작은 기름통 같은 것 이 들려 있더군요. 일을 막상 시작한다고 하니 저는 솔직히 조 금 걱정이 됐어요. 하지만 소대장이나 다른 병 사들은 휴가 기분에 들떠 있었죠. 저흰 짐을 나눠 들고 임성수 씨가 시킨 대로 문제의 창고 로 올라갔어요. 물자를 비축해 두는 창고였는데 부대 구석 에 처박혀 있더군요. 너무 구석에 위치해 있어 서 일이 있지 않는 한 지나갈 일도 거의 없는 곳이었어요. 그러니 신병인 저로서는 당연히 처음 가는 장소였죠. 같이 올라간 고참들에 의하면 검열 나올 때 만 청소 정도 해 놓고 그 이외에는 거의 들릴 일이 없는 곳이래요. 판초 우의나 군용 담뇨 등을 비롯해서 전시 상황에 쓸 물자를 저장해 두는 곳이라 하더군요. 창고에 도착하니 열한시 십분이 조금 지나 있었어요. 소대장이 열쇠꾸러미를 꺼내 문을 땄어요. 자물쇠가 녹슬어 잘 열리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한참 뒤에 끼익 하는, 귀에 거슬 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어요. 문을 열자 쾌쾌한 창고 냄새가 났어요. 40년 전에 지어진 창고인데다 또 애초부터 창고로 지어진 곳이기 때문에 전등 같은 것은 아예 없 었어요. 밖에는 별빛이라도 있어 그래도 좀 뭐 가 보였지만, 창고 안은 글자 그대로 한치 앞 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했어요. 소대장이 손전등으로 휘이 들러보았지만, 차곡차곡 쌓인 박스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어 요. 저는 솔직히 창고 안으로 발을 들이기가 무서웠어요. 그 창고 안에 무시무시한 힘을 지 닌 악령이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영 내키지가 않았어요. 누군가 등을 떠밀더군요. 뭘 꾸물거리고 있 느냐면서. 저는 그래서 길게 심호흡을 하고 안 으로 들어갔죠. 안으로 들어선 순간, 전신을 조여 오는 듯한 음험한 한기에 깜짝 놀랐어요. 싸늘한 기운이 창고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다른 사람들도 춥다고 몸서리를 치는 거였 어요. 누군가 담배 한 대씩 피우고 하자고 제 의했어요. 소대장이 허락을 하자 모두들 흩어 져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죠. 저는 창고 안을 자세히 살펴 보았어요. 유리 창은 전혀 없고 사람 머리만한 환기창이 위쪽 에 두 개씩 달려 있더군요. 다른 병사들이 흩 어져서 담배 한 대씩 피우는 동안 저는 일단 임성수 씨가 시킨 대로 먼지를 확인해 봤어요. 바닥을 손으로 훑어 비교해 보니 똑같더군요. 저는 다른 병사들 몰래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 문에다 풀로 붙였어요. 풀은 위에다만 살 짝 발랐는데 신기하게도 부적이 쩍 달라붙었 어요. 소대장이 대검을 든 채 닭의 목을 따지 않고 망설이고 있더군요. 제가 가서 대검과 닭을 받 아서 목을 땄죠. 닭피가 튀자 정 상병이 지금 뭐하는 거냐고 깜짝 놀라며 묻더군요. 저는 닭 피를 사방에다 흩뿌리면서 시체를 파낼 때 우 리 고향에서 하는 의식이라고 얼버무렸죠. 다른 병사들은 찜찜한 표정으로 나와 소대 장을 번갈아 보았죠. 나는 개의치 않고 복숭아 나뭇가지를 받아 중앙에다 놓고 불을 피웠죠. 금방 꺾은 나뭇가지라 불이 잘 붙지 않았어요. 석유를 조금 부으니까 그제서야 불이 붙더군 요. 석유가 모조리 타고 나자 나뭇가지가 타들 어가기 시작했어요. 매캐한 연기가 창고 안으 로 조금씩 퍼져 나갔죠. 다른 병사들은 모두 겁을 먹은 듯한 눈치였 어요. 소대장이 일 끝나면 저 닭을 안주삼아 술이나 한잔 하자고 꼬드겼죠. 그제서야 분위 기가 조금씩 바뀌더군요. 누군가 휴가와 애인 이야기를 꺼냈고 다시 분위기가 살아났죠. 저는 플래쉬로 바닥을 천천히 살펴보았어 요. 임성수 씨 말대로 원심력에 의해 힘이 모 아진 거라면 중앙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어서였죠. 바닥을 플래쉬로 유심히 보니 먼지 들이 나이테처럼 둥근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나이테 안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창고 안쪽 에 수많은 원들의 정중앙이 자리하고 있었어 요. 저는 소대장에게 이곳에 시체가 있는 것 같으니까 파들어가자고 했죠. 소대장은 순순 히 그러자고 하더군요. 소대장이 작업을 시작하자고 했어요. 저는 곡괭이를 들고 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죠. 너 무 겁을 먹은 때문인지 곡괭이를 몇 번 휘두르 지도 않았는데 군복이 땀으로 흠뻑 젖더군요. 내가 땀을 뻘뻘 흘리자 정 상병이 곡괭이질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면서 내 손에서 곡괭이 를 뺏어 갔죠. 그는 사회에서 공사판을 떠돌았다고 하더니 정말 곡괭이질을 잘 하더군요. 바닥 콘크리트 는 그리 두껍지 않았어요. 이어서 선임하사와 손 일병이 들어가 삽질을 하기 시작했죠. 바닥 은 딱닥한 흙이었어요. 삽날이 잘 박히질 않더 군요. 소대장은 불을 비추었어요. 정 상병과 제가 한 조가 되어 곡괭이질을 했고, 선임하사와 손 일병은 우리가 으깨놓은 흙을 삽으로 퍼냈죠. 곡괭이가 돌에 부딪히면서 가끔씩 요란한 소 리를 냈죠. 제가 곡괭이를 휘둘렀으면서도‘쨍!’하는 소 리가 나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요. 혹시 악령 이 곡괭이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면 어떡하 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스쳤죠. 정 상병은 원래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열심히 일만 하더군요. 저는 한시라도 빨리 일을 해치 워 버리고 싶어서 죽어라 곡괭이질을 했어요. 한참 일을 하고 나니 땀이 나서 그런지, 무 서움도 덜해졌죠. 거기다가 장정들이 다섯이 나 되는데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하는 낙천적인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여 유가 생겼는지 농담을 하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시체를 발견하는 조에서 시체와 키스하기, 나중에 발견한 조는 시체 껴안고 블 루스 추기 등등. 허리쯤 파들어 가고 나서 시계를 보았어요. 쉬지 않고 일을 해서인지 밤 한시가 조금 넘었 더군요. 몸도 피곤해서 건성으로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데 바닥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 어요. 놀라서 손전등으로 밑을 비춰 봤어요. 내려 앉은 바닥사이로 시꺼먼 것이 보였어 요.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시꺼먼 부분 을 삽으로 긁어냈어요. 잘 보니까 군용담요였 어요. 군용 담요가 왜 묻혀 있을까 궁금하더군 요. 우리는 그 주변을 집중적으로 파헤쳤어요. 보고만 있던 소대장도 흥분했는지 삽을 들고 작업에 끼었어요. 우리는 미친 듯이 그 주변을 팠어요. 한 십여 분쯤 파들어가니까 윤곽이 들 어나기 시작했어요. 시체는 군용담요에 덮어 있었어요. 군용 담 요는 낡을 대로 낡아 있었죠. 장 상병이 대검 으로 군용담요를 갈랐어요. 낡은 새끼줄처럼 손쉽게 갈라지더군요. 소대장이 시체를 비춰 봤어요. 손전등에 비친 시체는 너무도 무서웠어요. 4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시체는 조금도 썩어 있지 않았어요. 머리카락이 원래 길었던 건지 아니면 계속 자랐는지 전신을 덮고 있었 죠. 손톱 또한 무지하게 길었어요. 시체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 하얀 눈자위 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뿜어져 나왔죠. 우리는 너무도 무서워서 숨조차 쉴 수 없었어요. 금방 이라도 벌떡 일어날 기세였으니까요. 소대장이 시체를 들어내라고 지시했죠. 군 용담요 끝을 잡고서 가까스로 시체를 들어냈 어요. 미끈미끈한 땀이 이마에서 계속 흘러내 렸죠. 사실 그때는 내 정신이 아니었어요. 시체를 들어내자 더 끔찍한 것이 보였어요. 탱크에 깔려 죽었다는 두 딸인 모양인데 뼈들 이 엉켜 있었어요. 꼭 껴안 채 죽었었나 봐요. 여기저기 토막난 뼈들이 보였죠. 뼈들을 간추려서 꺼내다 보니까 이상한 생 각이 드는 거예요. 40년전에 같이 묻는 건데 약초장수의 시체만 안 썩었다는 사실을 깨닫 고 나니 섬뜩했어요. 우린 일단 뼈를 모두 주 워 밖으로 끄집어 냈어요. 1차 작업이 끝나자 소대장이 담배나 한대씩 피우라고 하더군요. 소대장은 아무래도 시체 를 소각장으로 옮기려면 담가를 가지고 와야 겠다며 밖으로 나갔어요. 나는 담배를 꺼내다가 주머니에 부적이 한 장 남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어요. 그 래서 재빨리 부적을 꺼내 시체로 다가가 이마 에 붙였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부적이 얼굴에 쩍 달라 붙더군요. 빨판이 달린 오징어처럼 말 예요. 저는 그때 부적을 붙이고 나서 다른 병사들 에게도 알렸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않았어요. 다른 병사들이 알아 봤자 겁만 더 먹지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죠. 나의 판단 착오로 엄청난 일이 일어났죠. 정 상병이 담배 꽁초를 버리고 플래쉬로 시 체를 비춰 보다가 부적을 발견한 거예요. 갑자 기 정 상병이‘이게 뭐지?’하고 다가섰죠. 그 러자 선임하사가‘뭔데 그래’하면서 뒤따라갔 어요. 내가‘만지지 마세요!’하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들은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죠. 내가 뛰어갔을 때는 정 상병이 이미 이마에서 부적 을 떼어들고 있었고, 선임하사는 정 상병 손에 들린 부적을 뺏으려다가 그만 부적을 찢고 말 았죠.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소대장이 담가를 들고 그때 들어선 거예요. 문이 열리는 순간, 바람 이 세차게 불었어요. 그와 동시에 타들어가고 있던 복숭아 나뭇가지가 회오리 바람에 휩쓸 려 밖으로 내동댕이 쳐졌죠. 녹슨 철문이‘덜컹!’하고 닫혔어요. 우리는 너무도 놀래 서로 말똥말똥 쳐다보고만 있었 어요. 한동안은 잠잠했죠. 나는 숨을 죽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바람이 불기 시작 했어요. 문은 닫혀 있는데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바람이 점점 세졌죠. 우리는 너무도 겁이 나 서 철문을 향해 달려갔어요. 손 병장과 내가 문을 열려고 힘을 써 봤지만 철문은 꿈쩍도 하 지 않았죠. 철문이 끄떡도 하지 않자 점점 공 포가 밀려 왔죠. 바람은 무서운 속도로 불고 문은 닫히지 않 으니 정말 사람 환장하겠더라고요. 모두들 철 문에 달려들어서 힘을 써 봤지만 역부족이었 어요. 손 일병이 뒤늦게 문에 붙은 부적을 발 견하곤 이게 뭐냐고 기겁을 하더군요. 저는 떼 지 말라고 다급하게 말렸어요. 그것까지 떼었 다가는 무슨 괴상한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는 사이에 갑자기 뚝 바람이 멎었어요. 너무도 조용해 슬며시 돌아섰죠. 바람이 놀랍 게도 회오리치면서 약초장수의 코로 빨려들어 가고 있는 거였어요. 아주 순식간이었죠. 내가 다시 돌아서서 문을 열려는 순간, 시체 가 벌떡 일어났어요. 손 일병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죠. 바지에다 오줌을 지렸는지 바닥 이 축축했어요. 시체가 어둠 속으로 스르르 사 라져 버렸죠. 겁이 났지만 플래쉬로 구석구석을 비춰 보 았어요. 아무것도 없어서 무심코 허공을 비춰 보았어요. 갑자기 뭔가 뚝 하고 떨어졌어요. 소대장이 엉겹결에 야전삽을 휘둘렀어요. 그 런데 삽의 목부분이‘퍽’하는 소리와 함께 부 러졌죠. 악령은 소대장을 솔개가 병아리를 채가듯이 순식간에 낚아채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랐어요. 플래쉬로 비춰 보았죠. 악령과 소대장이 한몸 이 되어 허공에 떠 있었어요. 소대장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 보였죠. 악령이 두 손으로 소대장의 얼굴을 쥐었어 요. 우리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멍하니 보고만 있었어요. 갑자기‘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소대장의 목이 거꾸로 돌아갔죠. 소대장의 눈 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어요. 그리곤 슬로 비 디오처럼 아주 천천히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 어요. 바로 우리 앞으로. 우리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등에 지켜보고 있 다가‘쿵!’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어요. 엄청 난 공포가 급습해 왔죠. 머리가 어질어질했어 요. 달아나야겠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 생각 도 없었죠. 본능적으로 문에 매달렸어요. 있는 힘을 다 해서 밀어 보았지만 꿈쩍도 안 했어요. 그때였 어요. 내 옆에 서 있던 손 일병이 뒤로 쑥 끌려 갔어요. 우리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손 일병이 살려 달라고 허공에서 절규를 했 어요. 하지만 우리는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요. 손 일병의 목도 마치 장난감 로보트처럼 간단하게 뒤로 돌아갔죠. 뼈마디가 부스러지 는 끔찍한 소리가 귓청을 긁었어요. 우리들은 공포로 제정신을 잃어갔어요. 선 임하사가 갑자기 허공으로 뛰어올랐어요. 벽 윗부분에 매달려 있는 환기창으로 탈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거죠. 그는 환기창에 매달리더니 순식간에 머리를 환기창 밖으로 집어 넣으려는 거였어요. 하지마 환기창 구멍 이 너무 작아 머리만 가까스로 빠져 나갔죠. 머리만 빠져 나가면 몸도 빠져 나간다고 하 던데 그렇지도 않나 봐요. 선임하사는 빠져 나 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목만 낀 채 바둥거 렸죠. 마치 목 잘린 시체를 보는 것 같았어요. 벽에 박혀 있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어요. 악령이 선임하 사의 다리를 잡고는 허공에서 돌려 버렸어요. 비명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죠. 잠시 위에 선임 하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어요. 목이 너덜 거렸죠. 이제 창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정 상병과 저뿐이었죠. 정 상병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곡괭이로 철문을 내리치기 시작했죠. 저는 부 적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는게 아닐까 해서 부 적을 떼려고 손을 가져갔어요. 부적은 판박이처럼 문에 쫙 달라붙어서 손 에 잡히지 않았죠. 저는 간신히 손톱으로 부적 을 떼어냈어요.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갑자 기 철문을 내리치던 정 상병이 확 돌아섰어요. 그리곤 입가에 침을 흘리면서 소리쳤죠.‘ 덤벼 라, 이 괴물아!’하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기름통을 기울여 곡괭이 자루에 붓는 거였어요. 라이터로 불을 켜자 곡 괭이에 불이 불었어요. 정 상병이 곡괭이 끝을 잡고 휘둘러 댔죠. 불 붙은 곡괭이가 죽은 시 체들을 비췄어요. 한번씩 휘두를 때마다 시꺼 먼 그림자가 아른거리는데 마치 지옥에 온 것 같았죠. 악령이 다시 공격을 해 왔어요. 순식간에 접 근을 했죠. 정 상병이 있는 힘껏 다가오는 시 꺼먼 그림자를 향해 곡괭이를 휘둘렀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곡괭이가 악령의 가슴팍에 박혔어요. 그런데도 악령은 꿈쩍 않고 정 상병을 허공 으로 끌고 갔어요. 곡괭이에 붙은 불로 인해서 지글지글 썩은 살이 타들어 갔어요. 정 상병이 살기 위해 바둥거리며 괴성을 질러댔어요. 우연히 정 상병의 공포에 질린 눈과 마주 쳤 어요. 제가 질끈 눈을 감는 순간, ‘우두둑!’하 고 목뼈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왔어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어요. 그러다가 뭐 에 걸려 넘어질 뻔했어요. 바로 소대장의 시체 였어요. 일어서려는데,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닭피와 함께 죽은 닭이 눈에 들어왔어요. 문 득, 악령이 지금까지 바닥을 한번도 밟지 않았 다는 생각이 들었죠. 맞아, 닭피 때문이야. 닭피는 땅의 악령을, 복숭아 나뭇가지를 태운 연기는 하늘의 악령 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었어! 그렇다면 방법을 하나뿐이야! 나는 생각과 동시에 죽은 닭을 잡기 위해 벼 락같이 몸을 날렸어요. 닭을 잡으려는 순간, 바로 앞에 뭔가가‘쿵!’하고 떨어졌어요. 정 상병이었어요. 목이 돌아가 기괴한 자세로 나 를 바라보는 정 상병의 시선을 외면하고 닭을 잡았어요. 닭을 들고 일어나며 대검으로 닭의 겨드랑 이를 길게 그었어요. 예상대로 피가 튀었죠. 나는 닭을 뒤로 감추고 있다가 악령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어요. 악령은 가까이 왔다가 멀어져 가고, 멀어져 갔다가 다시 가까이 오기를 반복했어요. 나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한 뒤에 공격하려는 것 같 았어요. 나는 악령의 가슴에 박혀 있는 곡괭이 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보고 악령의 위치를 알 수 있었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플래쉬 불빛이 서치 라이트처럼 두서없이 바닥을 어지러이 비추고 있었어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악령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어요. 악령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 위기를 느꼈는지 쉽게 공격해 오지 않았어요. 악령의 가슴에 박혀 있던 곡괭이가 가슴이 너덜너덜해지자 제 풀에 풀썩 바닥으로 떨어 졌어요. 한순간에 악령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죠. 저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플래쉬를 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그렇지만 한 손에 는 부적을, 다른 한 손에는 죽은 닭은 들고 있 었기에 그럴 수 없었죠. 놈은 나를 볼 수 있는데 나는 놈을 볼 수 없 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미칠 것 같았어요. ‘침착하자! 침착하자!’고 속으로 수없이 내뱉 으면서 어둠 속을 노려보았어요. 한순간에 놈이 와락 달려드는 것을 느꼈어 요.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들고 있던 닭을 놈 을 향해 휘둘렀어요. 닭피가 놈의 몸에 묻었는 지 깜깜한 어둠 속이었지만 놈이 주춤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저는 부적을 든 왼손을 지체없이 어둠 속으 로 불쑥 뻗었어요. 놀랍게도 부적이 앞으로 쭉 나아가더니 어딘가에 철썩 달라붙었어요. 이 어서‘쿵!’하는 소리가 들려 왔죠.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플래쉬를 들고 재빨리 비추어 보았어요. 부적은 놈의 코와 입을 막고 있고 놈은 시체처럼 뻗어 있었죠. 절로 한숨이 나왔어요. 저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털썩 주저 앉았어요.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숨만 헐떡이고 있었 죠. 그러다가 문득, 놈이 다시 일어설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악령이 몸을 숨기지 못하게끔 놈을 일단 소각시켜 버려야겠다고 판단했어요. 플래쉬를 이리저리 비춰 보니 기름통이 보 이더군요. 나는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서 기 름통을 들고와 놈의 전신에 부었어요. 불을 붙 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찾아보 았어요. 어디로 갔는지 없더군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아직도 바닥에 떨어져 타고 있는 불붙은 곡괭이가 보였어요. 나는 곡괭이를 들고와 놈의 가슴팍에다 힘껏 꽂았죠. 그러자 시체에서 불길이 치솟았죠. 일렁거리는 불길은 창고 안을 훤히 비추었 어요. 창고 안의 처참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 죠.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휴가 기분에 들떠 있던 젊은이들이 흉측한 시체로 변해 있 는 것을 보니 참으로 허탈하더군요. 병사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 오는 것만 같았어요. 나는 타고 있는 약초장수의 시체를 보며 겉 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삽을 쥐었어요. ‘으아악!’하는 괴성을 지르며 불에 훨훨 타오르는 시체를 향해 달려 들었어요. 삽을 힘껏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는데‘트드 득!’하는 기분 나쁜 괴성이 들려 왔어요. 저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죠. 한순간, 타오르고 있 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튀었어 요. 마치 크레모아가 터지듯이. 기겁을 해서 바 닥에 몸을 눕혔죠. 시체가 날아간 자리에서 거센 회오리가 불 어왔어요. 회오리 바람은 점점 속도가 빨라지 더니 나를 향해 다가왔죠. ‘위이잉’하는 마치 구천을 떠도는 악령의 원한 맺힌 울음소리와 함게 서서히 다가왔죠. 호흡하기도 곤란할 정 도로 강한 바람이었어요. 저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몸을 바닥에 최대한 대로 낮췄죠. 귓가에서 고통에 가득 찬,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회오리 바람 소리가 들려 왔어요. 그 소 리에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았죠. 마치‘왜 나를 막는 거야? 네 놈 때문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 가 버렸잖아!’하고 나를 질책하는 것 같았죠. 나는 귀를 꽉 막았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 을까? 바람이 잠잠해진 것 같아서 몸을 일으 켰죠. 회오리 바람은 나를 지나서 철문 앞으로 다가갔어요. 갑자기 철문이‘드르륵!’하고 기 분나쁜 소리와 함께 열렸죠. 회오리 바람은 열려진 문으로 나갔어요. 창 고 앞에서 다시 거센 바람을 일으키더니 서서 히 허공으로 떠올랐죠. 그리곤 어디론가 사라 져 버렸어요. 놈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 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 왔어요. 나는 그 자리 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었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창고 안은 불바다로 변해 있었어요. 빨리 탈출해햐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죠. 나는 몸을 일으켜서 열려진 문 밖으로 나왔 어요. 상쾌한 공기가 폐부 깊숙히 스며들었죠. 귓가에 부대의 비상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가 들 려 왔죠. 군화발 소리가 어지러이 들려 왔어요. 몹시도 목이 말랐던 터라 수돗가로 휘청거 리며 가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잡았어요. 나는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가다가 다시 의식을 잃 고 쓰러졌죠. 다시금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어요. 군의 관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더군요. 내가 의식을 되찾았다고 말하자 군의관 주변으로 많은 장 교들이 몰려 왔어요. 연대장의 모습도 보였죠. 연대장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묻더군 요. 저는 일단 팔에 꽂혀 있는 링겔부터 빼 달 라고 부탁했죠. 영양제였는지 군의관이 지체 없이 빼 주더군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끔 찍했던 간밤의 상황을 들려 주었죠.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더군요. 연대장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는 침통한 표정으로 일 어섰어요. 수고했다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의무 실 밖으로 나갔어요. 장교들이 모두 나가고 나 자 군의관이 걸을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내 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체 확인 좀 해 달라는 거예요. 나는 일어나서 의무실 한쪽으로 갔어요. 하 얀 휘장을 걷자 나란히 누워 있는 네 개의 침 대가 보였어요. 군의관이 하나씩 천을 걷었어 요. 불에 타서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시체는 소대장, 선임하사, 정 상병, 손 일병 순으로 누워 있었죠. 내가 모두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군의관이 서류를 내밀며 아래쪽에다 사인을 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곤 이제는 여 기서 나가도 좋고 계속 있어도 좋으니 마음대 로 하라는 거였어요. 나는 한시라도 빨리 지난밤의 끔찍한 악몽 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의무실을 나섰어요. 문 득, 창고에 한번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 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죠. 가까이 가 보니 창고는 완전히 전소돼서 사라지고 없었어요. 흔적만 남아서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었죠. 창고가 있던 자리에 서서 우두커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문득, 지난밤의 거센 회오 리 바람이 떠올랐죠. 이어서 정말로 악령이 사 라진 걸까, 하는 의혹이 들었어요. 약초장수의 육신은 사라져 버렸지만 원한으 로 뭉친 기(氣) 덩어리는 남아 있으니 다른 사 람의 육신을 빌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거죠. 간밤의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 를 치고 있는데 연대장 당번병이 허겁지겁 달 려왔어요. 연대장이 급히 찾는다는 거였죠. 연대장실로 가 보니 고급 장교들이 모두 모 여 있더군요. 장교들끼리 회의를 하고 있었나 봐요. 연재장은 나에게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 더니 수고했다며 봉투 하나를 내미는 거였어 요. 그러면서 당장 휴가를 떠나라는 거였어요.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연대장의 명령이고 해 서 경례를 붙이고 나왔죠. 봉투 안을 들여다보 니 만 원짜리가 열 장 들어 있었어요. 십만 원 이면 군대에서 주는 특별 격려금 치고는 상당 한 액수죠. 저는 휴가 신고도 없이 부대를 곧바로 떠나 왔어요. 부대를 나오자마자 임성수 씨를 찾아 다녔어요. 정말로 악령이 영원히 사라진 건지 무척 궁금했거든요. 이틀 동안 여기저기 수소 문하고 다녔지만 임성수 씨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죠. 포기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 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를 빨리 휴가 보낸 것은 뭔가 은폐하려는 속셈인 것 같았어요. 나 를 휴가 보내 놓고 재빨리 사건을 처리해 버리 겠다는 거겠죠. 장교 한 명에다 하사관 한 명, 사병 두 명이 죽은 정도의 사건이라면 보통 큰 사건이 아니 잖아요. 그런데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가는 미친놈 취급받을 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해서 나의 방화나 살인으로 조작했다가는 사 회적 파장이 너무 크겠고 해서 실수로 인한 단 순 화재 사건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나 봐요.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추측해 본 거예요. 그리고 참, 제가 휴가 신고하러 가려고 인사 과에 들렀더니 저는 2주 휴가가 아니라 3주 휴 가를 받은 거라 하더군요. 그러니까 1주일 전 부터 포상 휴가를 받아 휴가를 떠난 걸로 되어 있으니 2주 후에 원대 복귀하면 된다는 거예 요. 후훗! 참 우습죠? 서류까지 그렇게 꾸미고 나니, 악령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치 제가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있죠. 얼 굴이 이토록 하룻밤 사이에 팍삭 늙어 버리도 록 끔찍한 경험을 했으면서도 말이에요. 누군가 그랬다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고.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누군가 저에 게 10년 후에 그 일에 대해서 물으면 제가 정 말 그런 경험을 했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지 의 심스러워요. 철규는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는 길게 한숨 을 내쉬었다. 철규의 주름잡힌 얼굴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앉았다. “임성수 씨를 찾는데 실패하고 나서, 이 이 야기를 영원히 묻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어 요. 저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먹었죠. 악령이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들었어요. 그래야지만 선량 한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철규의 음성은 허공으로 힘차게 날아오르지 못하고 강물 위로 맥없이 떨어졌다. 그리곤 강 물과 함께 하류로 하류로 떠내려갔다. “엄 장군에 대한 소식은 그 뒤로 못 들었 어?” “못 들었어요. 아마도 잘 있겠죠. 권력과 부 와 장수를 누리면서.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들 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악령이 존재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세상 참 불공형하군.” “그래요. 저도 이 일을 겪고 나서 그런 생각 을 많이 했어요. 우리 시대에는 보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야겠죠.저는 이번 일을 통해서 너무 혼란스러워 졌어요.. 그 악령이라는 것, 사실 그 사람은 피해자잖 아요... 강한자에 의해,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그리고 가해자는 행복하게 자기 삶을 누리 고... 악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졌어요.. 그 약초장수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잃고 방 황하는 악령이 된 것이 이해가 되요.. 나라도 그렇게 했을테니까요... 그리고 장교들이 사건 을 은폐하는 것을 보고, 어쩌면 그 악령과 대 면 했을때보다 더 무서움을 느꼈어요. 진실이란 것이 힘있는 자의 편의를 위해 얼마나 왜곡되고 잘못 전달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세상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요...” 철규는 죽다가 살아난 사람처럼 회한섞인 말로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그러더니 바지를 털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앞으로 어디 갈 생각이니? 특별히 갈곳도 없잖아... 집에도...”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말실수 한 것을 느 꼈다. 하지만 철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대꾸했다. “집에도 한번 들릴 셈이예요.. 그리고 이번에 받은 충격을 치유할겸 여행 도 하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철규가 결코 집에 가지 않으리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철규는 그냥 떠나려는 것이다. “야 임마, 너 돈 없잖아...이거 가지가고 나 중에 값어라.” 나는 지갑에 있는 돈을 다 털어주었다. 많 은 돈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철규 에게는 꽤 쓸모있을 정도였다. 철규는 거절 하지 않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그 돈을 받 았다. “형 고마와요.. 꼭 돌려 들릴께요.. 그리고 걱정마세요... 아 또 지영이에게 내 얘기 하지 마세요..그 냥 잘있다고 전해 주세요.. 괜한 걱정하게 하기 싫어서요.. 형, 지영이에게 잘 해줘요.. 지영이 형 좋아하는 것 알죠?” 철규는 나를 놀래키는 말을 끝으로 나에게 작별을 고했다. 다시 한번 나는 선배로서의 무 력감을 느꼈다. 아니다, 어쩌면 작은 인간으로서의 무력감 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강은 모든 것에 초연한듯 흘러가고 있었 다... <끝>
어느날 갑자기 2권 - 1. 방황하는 악령
1953년 7월 23일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춰지자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수천 개의 군부대가
자리잡게 되었다.
거기에 살던 민간인은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잃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강제로.
- 철규와의 대화 중에서
가도가도 창 밖으로는 산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서울을 출발한지 벌써 5시간이 지났
지만 아직 철규가 있는 부대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반 정도는 더 가야 했다. 녀석의 부대는
인제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도 한참 더 들
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기분인지 새벽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던 지영이 잠잠하
다 싶어 돌아보았더니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지영으로부터 철규에게 면회 가자는 제의를
받은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철규가 지영에게
는 틈틈이 편지도 보내고 한 모양이었다.
철규가 지영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는 가
급적 둘 사이에 끼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영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형, 철규는 전방에 배치되어 있어. 부모님
에게도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아서 면회 오는 사
람도 없는 모먕이야. 거기다가 얼마 전에는 일
주일 영창 갔다왔다는 거야. 형은 철규가 무슨
일로 영창 갔다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전방이라면 지영 혼자서 면회 가는 것도 무
리겠다 싶기도 하고, 입대한지 넉 달밖에 안
된 놈이 무슨 사고를 쳐서 영창까지 갔다왔는
지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지영의 면회길에 다
라나선 것이었다.
버스로 한참을 달리자 군부대가 하나 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국방색 천지
였다. 점점 산악지대로 들어가니,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단풍과 낙엽이 벌써 아름답게 피어나
고 있었다.
버스에는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면회객으로 보이는 두 가족하고, 이곳 주
민으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아주머니 둘이 타
고 있을 뿐이었다.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고 있으니 문득, 술자
리에서 식인(食人)을 했던 지난날들을 들려 주
며 울먹이던 철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동안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졌다.
“단풍 참 예쁘죠? 오빠.”
언제 잠에서 깨어났는지 지영이 내 생각을
끊었다.
“오빠, 배고프지? 김밥 먹을래?”
“난 됐어. 철규 줘야지. 면회 오면서 아무것
도 .”
“됐어, 오빠!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그만
해.”
지영이 금세 토라졌는지 샐쭉해서 창 밖으
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한 마디 더 할까 하다
가 그만두었다.
난 아침 여섯시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지
영을 만났을 때, 지영이 멘 배낭부터 살폈다.
배낭은 예상대로 불룩했고, 저 정도면 철규와
철규가 군대에서 사귄 동기생들과 함께 나눠 먹
을 음식은 충분하겠다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판단은 금세 깨어지고 말
았다. 지영은 출발하면서부터 김밥이니, 계란
이니 하는 음식을 권해서 나는 출출하던 터라
아무 의심없이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런데 한참 먹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지영에게 철규 줄 음식은 따로 있겠지, 하고
물어 보았다. 지영은 태연하게 고개를 저으며
군대에서 음식이 잘 나온다고 해서 준비를 안
해 왔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배낭에 든 음식
은 오고가며 먹으려고 준비해 온 거라고.
지영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여자라지만 군대에서 뺑뺑이
돌고 있는 남자들의 심리를 너무도 모른다 싶
었다.
나는‘동작 그만!’을 외친 뒤 먹던 음식을 다
시 챙겨 배낭에 넣게 했다. 우리야 배 고프면
얼마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면 되지만 철
규는 그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지영은 나의 핀잔에 수긍하는 척했지만 그
래도 포기하지 않고 틈만 나면 배낭 속에 있는
음식을 꺼내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렸다.
“근데 일한 오빠, 이 근처에 부대가 왜 그렇
게 많아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군인이니
까 이상해요.”
“전방이니까 그렇지, 뭐.”
군대 얘기가 나오니까 나의 특이했던 군대
생활이 생각났다. 혼자 피식거리니까 지영이
나의 군대 생활에 대해 물었다.
“오빠는 어디 있었어요? 아, 맞다. 오빠 방
위죠?”
“그래 나, 유디티다.”
“오빠가 무슨 유디티야, 방위지?”
“마, 유디티(UDT)가 우리 동네 특공대의 약
자 아니냐.”
“흥! 도시락 폭탄을 들고 다니는 특공대?”
“야, 너 방위라고 너무 우습게 보지 마. 방위
도 힘든 데가 있어. 훈련소에서 자살하는 사람
도 있고.”
“진짜 자살해요? 거짓말 같은데. 설마 그 까
짓 한 달을 못 참아서 훈련 도중에 자살을 할
까? 그것도 남자가.”
“너 군대를 우습게 아는 구나. 하긴 방위가
정규군에 비하면 편하긴 하지.”
“오빠, 그런데 정말로 군대에서 죽기도 해
요?”
“그럼! 남들 다 갔다온다고 군대를 우습게
보면 안 돼. 사실 군대란 곳이 그렇게 녹녹한
데가 아냐.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목숨을
잃지. 통계에 의하면 80년도부터 95년 6월까
지 군대에서 사망한 젊은이의 수가 8,950여
명이래. 이 속에는 물론 자살한 사람의 수도
포함되어 있어. 실로 어마어마한 수야. 거의
일개 사단 병력이지.”
“군대가 정말 무섭긴 무서운 데구나.”
“그럼!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만 옛날
에는 아주 무시무시했지. 사실 우리가 평화시
니까 심각하게 못 느끼는 거지만 군대 가는 것
은 목숨 걸고 가는 것과 같아. 그럴 리는 없겠
지만 만일 전쟁이라도 나 봐? 그러니 앞으로
군대가는 사람 있으면 잘해 줘. 특히 현역 입
대하는 애들.”
“알았어, 이제부터 방위 들어가는 애들 술
사 줄 돈 모았다가 현역 가는 애들 사 줘야지.”
“야, 내가 방위가 편하다고 한 건 현역병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너, 방위
훈련소에서도 실재로 자살한 사람이 있어, 알
어? 물론 그 사람은 훈련 때문에 자살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 왜 죽었는데? 귀신이 홀렸나?”
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영은
무서움을 많이 타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를 좋
아했다.
“그런 건 아니고.”
나는 군대 훈련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지
영에게 들려 주었다.
나는 5X사단에서 훈련받았지. 군대 들어가
기 전에 그 사단에서 자살한 선배가 있었다는
소문을 듣긴 들었었어. 나보다는 고등학교 3
년 선배인데 훈련소에서 자살했다고 하더라고 .
그래서 난 애인이 변심해서 자살을 했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지. 하여튼 훈련소 생활
은 꽤 힘들더라고.
내가 훈련소에서 이상한 소문을 들은 것은
이주쯤 지나서였어. 훈련소에 입소할 때 들고
간 가방이라든가 옷가지들은 빈 내무반을 하
나 정해서 그곳에 보관하게 되어 있거든.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제일 구석에 있는 내
무반을 비워 놓고 쓰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 있
는 내무반을 비워 놓고 짐을 보관한 거야. 난
그래서 짐을 분실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거려
니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불침번을 서는 아이들이 그 빈 내무반에서
사람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거야. 조교나
교관이 알면 군기 빠졌다고 뭐라고 할까봐 훈
련병끼리만 속닥속닥거린 거지.
난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 그냥 무시해 버렸
어. 그러다 내가 불침번을 서게 되었는데 정말
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슬피 우는 소
린데 분명,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건 아니더라
고. 혼자서 그 소리를 들었다면 대단히 무서웠
을 텐데 워낙 많은 아이들이 있다 보니까 그렇
게 무섭지는 않더라.
내가 그 울음소리의 정체에 대해 들은 것은
퇴소하기 바로 전날이었어. 내무반장이 우리
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더라고.
자살 사건이 터진 것은 내무반장이 신병이
었던 이 년 전이었대. 훈련병들이 새로 들어왔
는데 내무반장은 그 당시 서열이 가장 낮아 훈
련병 지휘는 못 하고 고참들이 하는 것만 구경
하고 있었대.
사건은 사격장에서 일어났대. 그 전날 눈이
많이 와서 사격장을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었
다는 거야. 조교들은 사격장에서 주의사항을
다시 한 번 인식시킨 뒤 실탄 아홉 발씩을 훈
련병에게 먼저 분배해 주었대. 영점 사격용으
로.
영점사격이란 총의 조준을 정확히 하기 위
해서 하는 예비사격을 말하지. 그런데 2중대 3
내무반에 김석주라는 훈련병이 있었대.
아주 평범한 훈련병이어서 눈에 띄지 않던
사람이래. 그 사람이 끼어 있는 조가 사격을
하게 되어서 실탄을 나누어 주는데 공교롭게
우리 내무반장이 그 사람에게 실탄을 나누어
주었다는 거야.
내무반장 말로는 그 김석주라는 훈련병 눈
빛이 싸늘하게 빛나는 것을 느꼈는데, 순간적
으로 추위 탓이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대. 그런
데 일은 벌어진 거야.
김석주란 훈련병이 사격장에 올라가 실탄을
조준하자마자 총을 자기 턱에 갔다 대고 쏴 버
린 거야. ‘펑‘하는 소리와 함께 쓰고 있던 철
모와 피가 십여 미터 높이로 튀어올랐대.
김석주는 물론 현장에서 즉사했지. 조교들
이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벌어진 거야. 모두들
입을 쩍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담력이 센 한 조교가 아직도 부르르 떨고 있는
시체에 다가가더라는 거야.
그 조교는 침착하게 흘러나오는 뇌수를 형
체도 알아볼 수 없는 머리에 집어넣더라는 거
야. 그리곤 응급차에 실어 보냈대. 그 당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에 제대로 움직
일 수도 없었대.
특히 김석주 옆 사선에 누워 있다가 피와 뇌
수를 흠뻑 뒤집어썼던 한 훈련병은 한동안 정
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거야. 생각해봐. 옆에
있던 사람의 머리가 갑자기 날아가고 사방이
피바다로 뒤바뀐 상황을.
조교들은 자살 이유를 밝히기 위해 그 죽은
김석주의 소지품을 조사해 보았대. 수첩이 발
견되었는데 거기에는 딴 얘기는 일절없이, 날
짜마다‘오늘부터 D-DAY 며칠’이런 식의 글
이 적혀 있더래.
그가 기다렸던 디데이는 바로 사격 연습을
하는 날이었던 거야. 그가 자살을 한 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대. ‘드디어 내일이다. 실수
없기를……’
그가 치밀하게 자살을 준비했다는 얘기지.
자살 이유를 조사해 보았더니 부모가 이혼을
하는 등 입대 전부터 괴로운 일이 많았다는 거
야. 그 사람이 바로 내가 군대가기 전에 소문으
로 들었던 자살했다는 고등학교 선배더라고.
여하튼 군대에서는 누가 죽는 불상사가 생
기면 그가 자던 침상하고 그의 물건이 있던 관
물대를 태워 버리는 관습이 있거든. 그래서 김
석주가 쓰던 침상하고 관물대도 역시 태워졌어.
그런데 그뒤로 훈련소에서 괴기스런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대. 내무반마다 온도계가 있
는데, 이유 없이 김석주가 있었던 내무반이 다
른 내무반보다 3, 4도 낮다는 거야. 실제로 그
내무반에 들어가면 싸늘한 기분이 든대.
그러던 어느날 밤에 무슨 전기 공사로 훈련
소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된 적이 있었대. 그런
데 그걸 모르고 있던 한 병사가 자판기에서 커
피를 빼 먹었대. 분명히 정전이었는데.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실제로 김석주의 유령
을 보았다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야. 제
일 처음 본 사람은 그 김석주를 담당했던 내무
반장이었대.
어느 날 밤 그 사람하고 우리 내무반장이 훈
련소 건물 끝에서 반대편 사무실까지 라면 상
자를 날랐대. 훈련병들이 다 퇴소한 빈 건물이
라, 당직 사무실만 빼 놓고 나머지 불은 모조
리 꺼 놓은 상태였대.
둘이서 라면상지를 지고 복도를 걷고 있었
대. 우리 내무반장이 앞장 서서 걷고 있는데,
그 문제의 내무반을 지날 때 갑자기 뒤에서
‘악!’하는 소리와 함께 따라오던 그 내무반장
이 푹 고꾸라지더라는 거야. 깜짝 놀라 다가가
봤더니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는데 기절했더래.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나와 간신히
그 사람을 정신 차리게 했대. 그리고 나서 무
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겁에 질린 채로 그가
이렇게 말하더래.
“복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2중대 3내무반
에서‘쓰윽’하고 죽은 김석주가 내 앞에 나타
나더니 경례를 했어요. 정말이에요! 난 똑똑히
봤어요. 그 머리에서 흐르던 피까지.”
그때부터 불안감과 공포가 훈련소에서 소리
없이 퍼지기 시작했대. 병사들은 밤이 되면,
그 앞으로 죽어도 지나가려 하지 않았다는 거
야.
우리 내무반장도 직접 귀신을 목격했대. 자
기 전에 세수하기 위해 세면장에서 세수를 하
고 있는데 거울을 무심코 보니 복도에 누가 서
있는 것이 언뜻 보이더래. 그래서 돌아서서 자
세히 보니까 그 김석주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
며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더라는 거야.
너무 놀라 뒤돌아보니 그 귀신은 천천히 저
쪽으로 걸어가더래. 뭐에 홀린 것처럼 따라갔는
데, 한참 걷다 보니 사라지고 없더라는 거야.
날이 지날수록 귀신을 목격하는 사병이 늘
어만 가자 장교들은 골치를 썩었대. 사기는 저
하될 대로 저하되어 있지만 상부에 귀신이 있
다고 보고할 수는 없는 처지고 말야.
별 다른 대책이 없어 쉬쉬하고 있는데 사단
장이 직접 이상한 현상을 목겼했대. 뭐냐 하면
밤 3시쯤 사단장이 부관을 깨워서 기습적으로
순찰을 해서 근무 상태를 파악해 보겠다고 나
섰대.
사단장이 부관과 함께 훈련소 앞을 지나가
고 있는데 파란불이 왔다갔다 하더래는 거야.
처음에는 사병들이 밤에 몰래 TV를 겨 놓고
비디오를 보는 줄 알고 노발대발했대.
그래서 부관 보고 어느 내무반인가 알아보
고 오랬다는 거야. 그래서 부관이 가까이 가
보니 그 내문반은 폐쇄된 지 두 달도 넘은 김
석주가 있던 내무반이었대. 그때는 훈련병들
이 없던 시기라 인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건물이었던 거야.
그런데 파란불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
으니 사단장도 시껍하지 않았겠어. 결국 사단
장은 부관의 보고를 통해서 김석주가 자살했
다는 것을 알았지.
결국 부대 차원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했대.
굿을 한 무당의 말로는 원혼은 쉽게 죽은 자리
를 못 떠나고 맴도는데, 석 달 정도 지나면 괜
찮을 거라는 거야.
그런데 정말로 신기하게도 그 무당의 말처
럼 석 달이 지나니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더라
는 거야. 부대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고.하
지만 그 내무반을 다시 쓰기에는 너무 꺼림칙
해 짐을 놓는 창고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죽은 영혼이 떠났다가 다시 들르는 건지, 그
뒤로도 김석주의 죽음을 모르는 훈련병들이
가끔씩 그 내무반에서 들려 오는 사람의 울음
소리를 듣곤 한다는 거야. 나도 듣긴 들었지만
날이 훤히 밝으니까 내가 환청을 일으킨 게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무섭지? 내무반장은‘김석주 사건’을 처음
에는 집단 착각 현상이라고 생각했대.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김석주의 죽음이 다른 사
람들의 눈에 헛것을 보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러다가 무당의 굿으로 공포에 질린 사
람들이 심리적 위안을 찾았다고 볼 수도 있다
는 거야. 하지만 김석주의 죽음을 전혀 모르는
훈련병들이 울음소리를 듣는 것을 보고는 생
각을 바꿨대. 혼령은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실
재할지도 모르다고.”
지영이는 내가 이야기하는 도중 무서운지
나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얘기가 끝나자 재미
있게 듣고는 왜 그런 무서운 얘기를 했냐고 도
리어 불평을 해 댔다.
드디어 철규가 있는 부대 앞 마을에 버스가
도착했다. 그곳이 마침 버스 종점이기도 해서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이 모두 다 내렸다. 우
리도 사람들에 섞여 마을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받은 마을의 첫인상은 황
량함이었다. 부대가 진주하고 있는 다른 부대
들이 그렇듯이 큰 차이 없었다.
초라한 입간판을 달고 있는 여관과 다방, 허
름한 음식점, 그리고 면회객과 외박 군인들을
상대하는 싸구려 술집들.
거리가 이렇게 황량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
쩌면 자기의 목숨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야
만 하는 병사들의 좌절감이 거리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마을에서 맡아야만 하는 절망의
내음이 너무도 싫었다. 면회소로 걸어가다 보
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라 해 봤자 군인 가족들이 대
부분일 테지만, 그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린 이
방인들을 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강한 경계와 공포의 눈길로 우리를 살펴보
는 것이었다. 놀고 있던 아이들을엄마들은 얼
른 집으로 들이고, 우리들을 경계의 눈으로 쳐
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을 지나는 군인들 역시 완전 무
장을 하고 있었는데 철모 아래로 긴장의 빛이
흐르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마치 며칠 전에 전쟁이라도 치렀던 마을 같
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면회소에 들어간 우리는 본부중대 박철규
이병의 면회를 신청했다. 특별한 훈련이 없는
한 주말은 언제든지 면회가 가능한 게 대한민
국 군대이기에 철규를 만나게 될 것 믿어 의심
하지 않았다.
같이 온 면회객들도 차례대로 면회를 신청
했다. 면회 신청을 받은 병사는 그 즉석에서
전화를 걸지 않고, 뒤로 들어가서 걸었다. 여
러 번 면회를 다녔지만 이런 식으로 면회를 받
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병사들을 유심
히 살펴 보았다. 병사들이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긴장
감으로 예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기소에
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뒤로 돌아갔던 병
사가 되돌아왔다.
“이철규 이병만 면회가 가능합니다. 권오은
상병과 김영경 일병을 면회 오신 분들은 돌아
가 주시기 바랍니다.”
초병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린 부산에서 왔는데 와 면회가 안 된다는
겨?”
“일요일인데 왜 면회가 안 되죠? 혹시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지금은 특수 훈련을 받고 있기
때문에 면회가 안 됩니다.”
“안 되면 다 안 되는 거지, 누구는 되고 누구
는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훈련에 참가한 사람은 면회가 안 되고 훈련
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면회가 가능한 거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아는 행정병이라카던데 뭔 훈련에 참
석했단 말인겨? 그라지 마시고 잠깜만 불러
주이소. 얼굴만 보고 가겠십니더.”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가족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병사는 아무리 떼를 써도 면회
는 절대로 안 되니 포기하고 돌아가라며 아예
부대 밖으로 쫓아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철규를 볼 수 있다니 하여튼 다행이었다. 한참
앉아 있으니 군복을 입은 철규가 들어왔다.
철규는 우리를 향해 절도 있게 거수 경례를 붙
였다. 사개 월 전보다 훨씬 듬직하게 보였다.
그는 면회소 사병에게 신고를 하고 나서 우
리는 밖으로 데리고 나섰다. 초소를 나서는데
철규를 바라보는 사병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
다. 철규를 동정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지옥으
로 들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철규는 지영의 면회에 매우 흥분해 있었다.
지영은 철규의 그런 모습에 부담을 느끼는 눈
치였다.
우리는 허름한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지
영이 배낭을 열고 김밥과 찐 계란, 사과, 보온
병에 타 온 커피 등을 꺼냈다.
나는 치킨과 맥주를 시켰다. 처음 한동안은
초년병은 다 그렇듯이 철규가 군대 생활을 장
황하게 늘어놓았다.
철규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다 보니 철규
가 무척 흥분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처음에는 지영이 면회 와서 그러려니 했는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만은 않았다.
마을에 와서 받은 첫인상이 떠올랐다. 나는
철규가 뭔가를 감추고 위해서 군대 이야기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 철규의 말을 가로막았다.
“철규야, 혹시 부대에 무슨 일 있는 것 아
니니? 마을 분위기도 이상하고, 면회도 잘 안
되는 걸 보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말야.”
“이상하긴요.낯선 곳에 와서 형이 그렇게 생
각하는 거예요.”
“그런 건가? 웬지 말이지 아까 초병이 널 보
던 눈빛이 자꾸 떠올라.”
“정 상병님이요? 정 상병님이 왜요?”
“글쎄, 뭐랄까? 아무튼 분명 뭔가 숨기고 있
는 눈치였어. 철규야, 너 우릴 속이려 들지 말
고 솔직하게 얘기해 봐. 뭔가 있지?”
철규는 내 눈동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
개를 술잔으로 떨구었다. 글라스를 힘주어 잡
더니 단숨에 입안에 털어넣었다.
“이거 또 이상한 얘기를 해야겠네.”
“뭔데 그래? 다 이야기해 봐.”
지영이 철규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형, 그친구분연락돼요? 심령학하신다는분.”
“윤석이? 응, 가끔씩 연락이 와. 그런데
왜?”
“나중에 제 얘기 점 꼭 전해 주세요. 사실 요
즘 우리 부대에 기괴한 일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저 영창까지 갔다왔어요. 그래서
오늘은 남들 못하는 면회도 할 수 있게 된 거
고요.”
지영은 철규의 억양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
기를 느꼈는지 나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나
역시 철규가 윤석의 이야기를 들먹거리는 걸
보니 이상한 얘기를 하려나 보다고 짐작했다.
“제가 이 부대에 배치받은 지는 이 개월밖에
안 됐어요. 새까면 졸병이죠.”
철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섬칫한 이
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제가 이 부대에 온 지 한 달이 채 못
되었을 때 시작되었어요. 지금도 신병이지만
그때는 화장실이 어디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바로 윗고참을 따라다니며 하
나씩 배워 나갔지요. 우리 부대는 비무장지대
와 접해 있는 최전방부대라 군기가 꽤 세요. 저
도 한동안은 적응을못해꽤힘들어했어요.
밤에는 불침번이다 동초다 5분대기조다 해
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던
한 달 전이었요.
저는 그날 밤 오분대기조였어요. 지영인 오
분대기조가 뭔지 모르지? 오분대기조란 유사
시 즉각 전투 태세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밤에도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조를 말해.
말 그대로 오 분 안에 출동할 수 있도록 말야.
아마 그때가 새벽 두 시쯤 되었을 거예요.
윗 고참들은 총을 껴안고 요령 있게 졸고 있었
고, 저는 잠을 쫓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따다다다’하는 총소리가 고요한 부대를 뒤흔
들어 놨어요. 저흰 정말 전쟁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죠.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더군요. 뒤이어 온
부대에 긴급 사이렌이 울렸고, 우리는 즉각 출
동을 했어요. 총소리가 들려 온 곳으로.
총소리가 난 곳은 바로 부대 뒤 탄약고였어
요. 대부분의 부대가 그렇듯이 우리 부대도 산
을 등지고 위치한 부대예요. 탄약고는 바로 그
뒷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죠.
우리가 출동했을 때는 이미 많은 군인들이
그 주변에 쫘악 깔려 있었어요. 전부 무장은
하고 있었지만 적이 보이지 않으니 숨어 있을
도리밖에 없었어요.
상관들은 상관들끼리 졸따구는 졸따구끼리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데 연대장이 도착했어
요. 연대장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참모장이
지휘를 했어요. 우린 명령에 따라서 곧바로 부
대를 이동했어요.
십 분도 안 돼서 총소리가 들려 온 탄약고를
여러 겹으로 물 샐 틈 없이 에워쌌죠. 저는 그
제서야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말로만 듣
던 무장공비가 침투했구나, 하고 생각을 바꿔
먹었죠.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데 서치라이
트가 탄약고 주변을 대낮처럼 환히 비추기 시
작했어요. 상황을 보고 하라고 무전을 연이어
쳤지만 총소리가 난 탄약고 앞 초소에서는 아
무런 응답이 없었어요.
적이 난사한 총에 맞아 초소의 병사들은 사
망했을 거라는 추측이 오고 갔죠. 잠시 후에
‘미친 개’라는 별명을 가진 대대장이 핸드 마
이크로‘너희는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
하라!’하고 외치기 시작했죠. 여러 번에 걸쳐
외쳤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거
였어요.
숨 막히는 긴장이 흘렀죠. 소대장이 잠깐 대
열에서 빠져 나갔다 오더니 전투 준비를 하라
는 거였어요. 저희 소대는 오분 대기조였기 때
문에 현장에 일찍 도착해서 맨 앞줄에 매복하
고 있었죠. 그 덕분에 우리 소대가 선봉에 서
게 되었어요.
서치라이트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초
소를 향해 우리는 포복을 해서 다가갔죠. 식스
틴의 잠금쇠를 끄르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어서 의식이
아주 명료했죠. 군복이 나뭇잎에 스치는 소리
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철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어요. 우리는
초소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가 공격 명령이 떨
어지기를 기다렸어요. 초소는 기분 나쁠 정도
로 잠잠했어요.
원래는 수루탄을 먼저 투척한 뒤에 초소 안
의 움직임을 살피고 초소로 진입을 해야 하는
건데, 우리 병사들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
문에 선제 공격 없이 곧바로 진입을 했어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미친개의 외침만
이 요란한 가운데 초소로 다가갔죠. 언제 적의
총탄이 날아올 줄 모르는 상황이었죠. 입안이
바짝바짝 타더군요. 발소리를 죽이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침투해 들어갔어요. 결국 소리없
이 다가가서 초소 벽에다 등을 기댔어요.
소대장이 손짓을 했죠. 저는 죽기 아니면 까
무리치기로 초소 안으로 한순간에 뛰어들었
죠. 그런데 놀랍게도 초소가 텅 비어 있는 거
예요. 초소 안을 둘러본 소대장이 즉시 무전기
로 상황 보고를 했어요.
이어서 주변 수색 명령이 떨어졌어요. 이번
에는 제법 많은 소대가 참여했죠. 헤드라이트
가 숲 속을 핥아 나가는 가운데 우리는 탄약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어요.
우리 분대에게는 탄약고 철책선을 따라서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저는 사방 경
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조심해서 걸음을 옮
겼죠. 부대 고참들에게서 가끔 북한에서 특수
부대 애들이 넘어와 우리쪽 군인들을 죽이고
다시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
든요. 그 애들은 가는 철사줄로 쥐도 새도 모
르게 목을 따 버린다는 하더군요.
저는 앞에서 플래쉬를 들고 갔는데 모퉁이
가 나왔어요. 돌아서기가 두려운 거였어요. 저
편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조심해서 돌아
가 보니 숲 속에 사람 같은 것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었어요. 두 명이었어요.
분대장이 즉각 중지 신호를 보냈어요. 엎드
려서 살펴 보았지만 전혀 움직이질 않는 거예
요. 군복을 보니 우리 쪽 사람 같더라고요. 그
래서 용기를 내서 다시 조심조심 다가갔어요.
가까이 가 보니 그들은 탄약고 보초를 서던
병사들이었어요. 완전히 나자빠져 있는 거예
요. 그중 한 명이 총을 꽉 쥐고 있고, 탄피가
널려 있는 걸로 봐서 그가 총을 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우리는 공비에게 당해 죽은 줄 알고, 시체를
살펴 봤어요. 그런데 아무런 상처도 발견할 수
없었죠. 심장에 귀를 대 보니 살아 있더라고
요. 그들은 단지 기절해 있었던 거죠.
수통을 열고 물을 끼얹었더니 정신을 차렸
리더라고요. 그들은 정신을 차리자 마자‘그,
그 여자 그 여자 어, 어디 있어요?’라고 더듬
거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분대장이‘군부대에
뭔 여자가 있겠느냐’면서 자초지종을 물었죠.
“적이 침투했나?”
그러자 그들은 즉시 고개를 저었어요.
“그럼 총은 누가 쏘았나?”
“내, 내가.”
“무엇을 보고 쏘았나?”
“여, 여자.”
“제기랄! 헛것을 본 모양이구만. 아직도 제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니.”
분대장은 즉시 상황 보고를 했고 탄약고 주
변에 깔려 있던 부대원들은 철수를 했죠.
우리 분대는 그 두 사람을 데리고 탄약고에
서 내려왔죠. 두 사실을 조사실에다 데려다 준
뒤에 내무반으로 돌아오니 여명이 터오르더군요.
우리는 모두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어
요. 그런데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지도 않
았던가 봐요.
누군가에 입에 의해서인지 그들이 조사받은
내용이 군부대에 쫘악 퍼졌어요. 대충 이런 내
용이었어요.
그들은 평상시대로 보초 근무를 서고 있었
대요. 고참은 초소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자고
있었고, 쫄따구는 열심히 장교가 오나 망을 보
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졸고 있던 고참이 갑자기 오줌을 누
고 오겠다며, 탄약고 뒤로 돌아갔대요. 졸따구
는 금방 올 줄 알고 혼자서 초소를 지키고 있
었죠. 순찰이라도 나오면 어떡하나 연신 사방
을 살피면서.
십 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소변을 보러
간 고참은 돌아오질 않는 거예요. 처음에는 고
참이‘큰 것’을 보거나 자신을 놀려 주려고 그
러는가 보다고 생각했죠. 기다리면 곧 오겠지,
하고 열심히 근무를 섰지만 고참은 삼십 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거였어요.
이상한 예감이 들었죠. 그래서 총을 들고서
천천히 탄약고 뒤로 돌아갔어요.나무 밑에서
고참이 누워 있는 게 보였죠. 졸병은 고참이
너무 졸려서 그대로 나무 밑에서 자는 거라고
생각하고 깨우려고 다가갔대요.
가까이 가 보니 바지 자락을 열어 놓은 채로
고참이 누워 있는 거였어요. 순간, 소름이 확
끼쳤대요. 생각해 봐요. 아무도 없는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잘 아는 사람 하나가 바지자락도
추스리지 못한 채 나자빠져 있다고.
졸병은 총의 안전 장치를 풀르고 천천히 누
워있는 고참에게 다가갔대요. 가까이서 보니
아무런 외상도 없어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
해 몸을 숙였대요. 그 순간, 눈에 파묻인 것처
럼 주변이 새하얘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얼른 고개를 들었대요. 그런데 놀랍
게도 눈앞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서 있더라는 거예요. 눈에서는 파
란 광채가 내뿜으면서.
귀신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전신으로
느꼈대요. 그는 무의식 중에 뒷걸을질을 쳤대
요. 그런데 귀신이 자기를 향해 다가오더라는
거예요. 그는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졸병의 주장에 의하면 그가 본 하얀
것은 귀신의 몸 안이었다는 거예요. 아주 사방
이 눈이 온 것처럼 환하더래요.
고참은 뭐라고 증언했냐구요? 졸병의 증언
과 비슷했대요. 소변을 보러 탄약고 뒤로 돌아
갔는데 갑자기 이상한 한기가 느껴졌대요. 그
는 몸을 한 차례 바르르 떤 뒤에 소변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을 뒤에서 뚫어지기 쳐다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래요.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돌렸더니 졸병이 묘
사한 그 여자가 서 있더라는 거예요. 자기를
빤히 쳐다보면서.너무 놀라서 움직일 수가 없
더래요. 그런데 갑자기 소리나 아무런 기척도
없이 자기에게 쓰윽하고 다가왔대요.
파란 눈이 점점 자신의 얼굴을 향해 다가오
는 것을 보고 그대로 기절했다는 거예요. 둘의
증언은 거기까지였대요.
두 사람의 진술이 진실이었다고 해도 군대
에서 그런 이야기가 먹히겠어요. 위에서는 자
식들이 노루가 눈앞에서 얼씬거리니까 총을
쐈다가 아무것도 안 맞자 둘이서 입을 맞추고
기절한 척한 거라고 결론을 내렸죠.
우리 부대에는 근무 도중에 총을 쏴도 되지
만 노루나 토끼, 하물며 참새 한 마리라도 쓰
러져 있으면 괜찮다는 규정이 있거든요. 물론
총을 쏘고 나서는 곧바로 보고를 해야지요.
결국 두 사람은 영창 갔죠. 고참은 근무 불
성실로 열흘, 총을 발포한 신참은 무단 발포로
2주간 영창에 갔어요.
부대원들은 거짓말을 엉성하게 해서 영창에
간 거라며 둘 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놈들이라
고 손가락질 했죠.
그 일은 그 걸로 끝나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
었어요. 아무도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
도 정말로 귀신이 나타나면 어떡하나 하고 우
려했던 모양이에요. 그 일 이후로 아무도 그
초소에서 보초를 서려고 하질 않는 거예요.
고참들은 탄약고 초소에서 근무를 서지 않
기 위해 행정병에게 압력을 넣곤 했죠. 말년에
비명 횡사할 일 있느냐면서.
그러다 보니 탄약고 보초는 짬밥이 낮은 신
병들에게 돌아갔아요. 결국 저에게도 보초 순
서가 돌아왔죠.
그날 저와 같이 초소에 올라간 고참은, 사실
고참이라고 불리기엔 그 사람도 신병이었지
만, 막 일병을 단 신 일병이었죠. 그러니까 그
사람도 고참으로서 그런 초소에 올라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신 일병은 귀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기
가 졸병 한 명을 데리고, 초소 근무를 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죠. 우리가 맡은 시
간은 시간은 새벽 2시부터 4시까지로 제일 사
람들이 싫어하는 시간이었어요.
지난번 사건으로 장교들의 순찰도 강화되었
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때까지는 신참이라는
이유로 보초 근무도 제외되어 있다가 그 날 처
음으로 2인 1조가 되어 야간 보초 근무를 서게
된 거였죠.
총을 만지작거리면서 주위 경계를 하고 있
는데, 모처럼 사수가 된 신 일병은 자기도 고
참 행세를 한다면서 초소 뒤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오겠다는 거예요.
나는 가지 말라고 말렸죠. 남들은 무서워서
그쪽으로는 아예 가지도 않으려는데, 왜 일부
러 거기까지 가서 담배를 피우려 하느냐고.
신 일병은 자기는 보초를 설 때 고참들이 자
유스럽게 돌아다니면서 담배를 피는 것이 너
무 부러웠다면서, 고참이 되면 꼭 자기도 해
봐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다는 거예요.
원래 귀신을 믿는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귀신 같은 건 안 믿으
니 눈에 보일 리도 없다면서, 아무 걱정 말고
근무나 잘 서라는 거였어요. 혹시 순찰 나오면
그쪽으로 돌을 던져 달라고 당부하면서.
저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 사람이 너무나 자
신만만해 하길래 그래도 두었죠. 그는 한껏 거드
름을 피우면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어요.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하고 애써 자위하면
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담배 피우러 간 신 일
병은 십 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사방은 칠흙같
이 어두운데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가는 소
리만 유난히 크게 들려 왔죠.
그런데 저쪽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떨리는 손으로 총을 겨눈 다음, 배운 대로 암
구호롤 물어보았어요. 나는 너무도 긴장해 있
어서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그냥 주저 없이 총
으로 갈길 작정이었죠. 그런데 귀에 익은 목소
리가 들려왔어요. 바로 우리 내무반장이었어
요. 그날 일직 사령이었대요.
일직 사령이 뭐냐고? 응 일직 사령이란 군대
에서 밤에 상황을 살피는 당직을 말하지. 원래
는 하사나 상사가 맡아야 하는데, 병장이나 군
대 경험이 많은 고참병들이 하는 것이 묵시적
관례로 되어 있어. 일직 사령 위로 장교들이
맡는 일직 사관이 있지.
내무반장은 그날 장교들의 명령으로 밤에
초소 순시를 나왔다는 거예요. 신 일병은 어디
갔느냐고 묻길래 저쪽으로 소변 보러 갔다고
했더니 무슨 말인지 금세 눈치채고는 화를 버
럭 내는 거였어요.
“훈련소에서 먹은 짬밥도 아직 소화 못 시킨
놈이 감히 어디서.”
내무반장이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면서 뒤로
돌아갔어요. 저는 순간, 돌을 던져 신호를 해
주라는 신 일병의 말을 떠올렸지만 이미 엎지
러진 물이었죠.
신 일병이 엄청나게 깨지겠구나 하고 상상
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나
지 않는 거였어요. 신 일병이 내무반장에게 박
살나고 내무반장이 가고 난 뒤에 신 일병에게
내가 박살나게끔 되어 있는 건데, 이상하게 잠
잠하대요.
내무반장이 달려간 지 10분이 넘었지만 아
무런 기척도 없는 거였어요. 주위가 잠잠하니
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저는 빨리 교대조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았지만, 아직 40분
이나 남아 있더라고요.
그때 내무반장이 사라진 쪽과 반대편에서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거였어요. 나는 떨
리는 목소리로 암구호를 물어보았어요. 이번
에는 그날 일직 사관이었던 1중대장이었어요.
일직 사령이 왔었느냐고 묻길래 저는 그냥
저 뒤에 있다고 말했어요. 중대장은 얼굴이 시
뻘게져서, 빨리 순찰을 돌고서 수시로 상황 보
고를 하라고 했더니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냐
면서, 돌아갔어요.
중대장도 뒤로 사라지자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내무반장이 중대장에게 박살나면
다시 신 일병에게 화풀이를 하겠고, 다시 그
화는 나에게 올 게 뻔했기 때문이죠.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야겠구나, 하고 마음
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또 깜
깜 무소식인 거예요.
아무리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으니 어떡해
요. 할 수 없이 마음을 다잡고, 저도 뒤로 돌아
가 보았어요. 플래쉬를 들고 천천히 모퉁이를
돌았어요. 전신에서 정말 땀방울이 비오듯이
흐르더군요.
누가 뒤에서 불쑥 달려들 것 같은 그런 으스
스한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저쪽에서 빛줄기
가 보이는 거예요. 플래쉬로 비춰 보니 플래쉬
가 땅에 떨어져 있는 거였어요.
플래쉬로 다시 사방을 비쳐 보았죠. 그런데
느티나무 밑에 세 사람이 벌러덩 드러누워있
는 거였어요. 순간 저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
어요. 소문의 그 귀신보다는 철사로 목을 따간
다는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여겼죠.
천천히 쓰러져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어요.
플래쉬가 불이 켜져 있는 채로 떨어져 있는 걸
로 봐서 기습 공격에 당했구나 하고 판단했죠.
저는 초소로 다시 돌아가 보고부터 할까 망
설이다가 초소까지 돌아갈 엄두가 다시 않아
사방을 경계하며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요.
시꺼먼 덤불 속에서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죠.
너무 무서웠지만 일단 앞에 누워 있는 세 사
람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해야겠다고 마음을 굳
게 먹었어요. 사방을 쉴 새 없이 돌아보며 천
천히 접근했죠.
누가 어둠 속에서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
았어요. 저는 결국 쓰러진 그 세 사람 앞에까
지 접근하는데 성공했어요.
우선 그들의 목부터 살폈어요. 목에는 아무
상처도 없었어요. 오히려 목젖이 미세하게 움
직이더라고요. 저는 그들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어요.
얼마 전에 여기서 보초 근무를 섰던 두 사람이
증언한 내용이 떠올랐어요. 이 사람들이 기절
했다면 북한군의 소행이 아니라면 그 귀신
이 다시 나타났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 순간, 심장이 마비되려는지 통증이
오는 것을 느꼈어요.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
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몸을 일으키려는데
갑자기 위에서 뭔가 툭 떨어졌어요..
그 순간, 정말을 머리가 쭈삣 서는 거였어
요. 저는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살폈어요. 놀
랍게도 하얀 소복을 한 여자 귀신이 머리를 늘
어뜨리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였어
요. 파아란 눈으로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한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거였어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죠. 저는 귀신을 향해서 냅다
총을 갈겨 댔어요. 탄창이 빌 때까지 쐈어요.
아니 탄창이 비는 것도 몰랐죠.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진 걸 어렴풋이 느꼈
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그 귀신이 여전히 저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귀엽다는 듯이 웃음을 띄면
서.저는 총을 버리고 무조건 달렸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무 기억도 안 나
요.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부대 정문을 나
와 있는 거였어요. 탄약고에서 부대 정문까지
는 아무리 빨리 뛰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린
데, 그 거리를 단숨에 뛰어왔던 거예요.
부대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죠. 나중
에 들은 이야기로는 보초병들이 암구호를 외
치는 데도 저는 들은 척도 않고 괴성을 지르며
달렸다는 거예요. 곧바로 보고가 올라갔고, 나
를 발견하더라도 사살하지 말라는 보고가 다
시 떨어졌대요.
제가 정문 쪽으로 달려가자 정문 위병들에
게 나는 저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대요. 내가
정신없이 달려가자 나를 발견한 위병들이‘정
지! 정지!’하고 외쳤대요. 그런데 내가 무시하
고 그냥 달렸나 봐요. 그 위병들은 미처 나를
잡을 틈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웃기는 것은 사건이 정리된 후에 그
위병들은 모두 명령 불복종으로 2주간 영창에
갔어요. 나를 저지 못했기 때문이죠. 만약 나
를 쏴서라도 저지했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포
상 휴가를 받았을 거예요. 그게 군대잖아요.
저는 근무지 이탈에다 부대 탈영을 했지만
서도, 귀신을 보았다는 세 사람의 증언이 일치
해 일주일 영창이라는 예상외로 가벼운 벌을
받았죠.
철규는 자조적인 미소를 띄운 뒤에 담뱃불
을 붙였다.
“안 믿기죠? 아니 일한이 형은 믿을 거야.
지영이가 믿질 못하겠구나. 하지만 지영아, 이
건 내가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데 나는 정말로
귀신을 봤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영은 무서운지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곁에
철규 보기 민망할 할 정도로 바짝 붙어 있었다.
나는 무섭증보다는 일종의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제 다 해결된 거
야?”
“해결되기는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제
가 일주일 영창을 갔다 와 보니 그 초소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병사들이 몇 명 더 있더라고
요. 그래서인지 병사들은 아무도 탄약고 초소
에 보초를 서려 하지 않는 거예요.
장교들은 휴가다, 열외다 해서 온갖 달콤한
유혹으로 병사들을 달랬지만 소용없었어요.
심지어는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을 보낸다고
겁을 줘도 야간 보초만은 서지 않겠다는 거예
요. 차라리 영창을 가고 말겠다는 거죠. 실제
로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에 간 병사도 셋이나
있어요.
부대 사기가 말이 아니죠. 그렇다고 탄약고
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더구나 우리 연대
장은 장군으로 진급하기 바로 직전이어서 이
사건을 잘 처리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어요.
결국 초소 근무를 모두 기피하자 장교들에
게 그 불똥이 튀었어요. 장교들이 직접 초소에
가서 야간 보초를 서라는 거였어요. 것이예요.
하지만 장교들인들 서고 싶겠어요. 마지못해
그 초소로 올라가는 척하다가 다른 곳에서 놀
다 내려오고 했죠.
사령 사관들도 그쪽으로는 순시를 하기 싫
으니 대신 초소로 전화를 해서 근무를 서나 안
서나 확인하곤 했죠. 그런데 사람이 없는데 전
화를 받겠어요? 보초를 선 장교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면 그들은 전화벨이 울리지 않
았다고 오리발을 내밀곤 했죠. 한마디로 부대
로 개판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보다 못한 한 소대
장이 나섰어요. 엄 중위라고 육사 출신인데 요
즘 찾아보기 힘든 아주 전형적인 군인이에요.
의리 있고, 용감하고, 배짱 두둑하며, 장교는
사병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투철한 장교
의식을 지닌 말 그대로 군인이죠.
집안도 군인 집안인데 할아버지가 우리 부
대 초대 연대장이었대요. 정년 퇴임을 한 뒤로
는 이 근처에서 자리를 잡았대요. 마을의 유지
라고 할 수 있죠.
엄 중위는 출세길이 훤한 특권층 장교라고
할 수 있죠. 그런 그가 흐트러진 부대 기강을
바로잡겠다며 탄약고 초소 야간 근무를 자청
하고 나선 거였어요. 그는 공수부대 출신 상사
한 명을 데리고 갔어요.
엄 중위는 초소로 올라가기 전에 자신의 내
무을 돌며서 자신이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기면
돌아가면서 그 초소에서 근무를 서야 한다고
사병들에게 한바탕 훈시를 했죠.
그리곤 당당하게 초소로 올라갔어요. 우리
는 엄 중위와 상사가 어떻게 될까 몹시 궁금해
했어요. 부대원들은 둘로 갈라져서‘귀신을 만
난다’와‘안 만난다’, 두 편으로 나뉘어서 내
기를 걸기도 했어요.
이윽고 날이 밝았죠.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무척 궁금해하고 있는데 아무도 엄 중위와 상
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아침에 가 보니, 소대장은 초소
안에서 죽어 있고, 상사는 완전히 미쳐 있더라
는 거예요.
어제까지만 해도 귀신 이야기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악령으로 바뀐 거예요. 죽은 소대장의
사인은 쇼크사가 아니라 머리가 180도 돌려진
채 죽어 있더래요. 그러니까 얼굴이 등쪽을 향
하고 있었던 거죠. 같이 있던 공수부대 출신의
상사는 완전히 얼이 나가 있고요.
상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더라는
거예요. 태산을 들 것 같던 그 우람한 사내가.
일부에서는 상사가 엉겹결에 소대장을 죽인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조심스레 나돌았죠. 그
런데 군의관의 말로는 소대장의 머리는 도저
히 사람의 힘으로는 그렇게 돌려 놓을 수 없다
는 거예요. 목뼈는 부러뜨릴 수 있으나 머리
전체를 음료수 뚜껑처럼 돌리는 것은 불가능
하대요.
이 살인 사건은 상부에 보고되었죠. 사단에
서는 곧바로 특검단을 우리 부대로 파견했어
요. 지금 한창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죠.
그러자 연대장은 열이 받을 대로 받았어요.
그래서 사병들에게 탄약고 초소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모든 병사들의 면회, 외출은 물론
휴가도 일절 금지한다고 선포했죠. 하지만 그
대신 지원자에게는 2주간 특별 휴가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모든 훈련에서 열외시
켜 주겠다는 조건을 내 걸었어요.”
나는 순간, 감전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럼 철규 너 설마?”
“그래요, 형 휴가도 빵빵하고, 훈련도 열외
시켜 준대잖아요. 저 같은 신병에게는 둘도 없
는 기회예요. 더구나 처음으로 면회도 왔고.”
“너 우리 때문에 그랬구나? 이럴 줄 알았으
면 안 오는 건데.”
“아녜요, 형! 아주 잘 왔어요. 대한민국 군대
가 귀신 때문에 우왕좌왕하고 있어서는 체신
이 안 서잖아요. 어차피 이 문제는 누군가 나
서서 해결해야 해요.”
“그래도 하필이며 왜 너야?”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엄 중위는 운이 없
었던 거라고 봐요. 언젠가 형이 그랬죠? 귀신
은 본래 물리력이 없다고.”
“마, 그거야 일반적인 얘기고 이번에는 다르
잖아. 실제로 죽은 사람도 나왔잖아?”
“걱정하지 마요. 저는 결코 엄 중위처럼 개
죽음을 당하거나 그러진 않을 테니까.”
철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맥주잔을 쭉
들이켰다. 그리곤 시계를 보았다. 어느덧 시간
이 꽤 되어 있었다.
“이제 저 가 봐야겠어요. 보초 설 준비를 해
야 되거든요. 지영이도 일한이 형도 조금도 걱
정하지 마세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귀신은
퇴마록 같은 데나 나오는 거예요.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 귀신을 한 번 본 적이 있으니까 괜찮
을 거예요. 혹시 모르잖아요. 그 귀신이 나에
게 반했을지도.”
철규가 우릴 안심시키기 위해서 여유 있는
척 농담까지 던졌으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
다. 눈동자 속에는 잔뜩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
었다.
지영이 초소 근무 서는 것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라고, 차라리 영창을 가는 쪽으로 생각해
보라고 권했지만 철규는 이미 결심을 굳힌 모
양이었다. 철규는 부대로 들어가면서 힘껏 손
을 흔들었다.
“지영이도 일한 형도 와 줘서 너무 고마
워요. 얼굴을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어요.
반드시 살아야겠다는.다음중에 서울에서 만나
요. 휴가 나갈 테니까.”
철규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돌아섰
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철규의 뒷모습을 보면
서 간절히 기도했다. 철규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지만 자꾸만 철규의 뒷모습에서 교수대를
향해 꿋꿋하게 걸어가는 사형수의 모습이 떠
올랐다. 나는 애써 머리를 저어 불안감을 떨쳐
버렸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은 나는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올 때와는 정반대로
지영도 침묵을 지켰다.
몸이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타인의
죽음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데서 무력감
이 나의 전신을 무겁게 짓눌렀다.
지영이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면회 가서 철구를 난처하게 만들고 말았다는.
버스는 양평을 지나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서 굳어 있는 나의 얼굴과 지영의 얼굴이 비쳤
다. 한없이 무기력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혼불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철규 괜찮겠죠?”
지영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이 상황에서
나의 대답이란 뻔할 수 밖에 없었다. 지영도
그걸 알고서 위로받기 위해서 물었으리라.
“그렇겠지.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철규 이외
로 강한 놈이야. 그리고 너 들어 봤니? 귀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걸?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
났다고 하면, 신문에도 나고 그랬을 것 아니겠
어?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결코 귀신이나
유령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일어날 수 없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지영을 위해서 위로의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말에 얼마나 많
은 거짓이 숨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자기가 이해하고 싶은 대로 사건을
이해하려는 본성이 있다. 그러기에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는 한낱 미신으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또한 그것은 얼마
나 왜곡된 채 세상에 알려지는가?
이 세상에 범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은 수없이
많다. 우리는 그런 죽음에 대해서 범인이 잡히
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표현은
정말로 옳은 것일까? 부분적으로 옳은 면도
있으리라. 하지만 귀신이나 유령에 의해서 저
질러진 범행을 잡을 수 없다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그 동안의 경
험이나 윤석의 이야기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
다. 우리는 모두 장님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
히 눈을 감고 사는.
버스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
다. 나는 지영을 집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지
영은 초인종을 누르려다 말고 갑자기 몸을 부
르르 떨었다.
“오빠, 무서워요. 지금쯤 철규는 초소로 올라
가 있겠죠?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아무 일 없을 거야. 난 믿어, 내 예감을.”
“오빠, 난 오늘 밤 밤새도록 기도할 거야. 철
규를 지켜 달라고.오빠도 철규를 위해서 기도
해 줘.”
“알았어. 들어가 봐.”
난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지영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곤 돌아섰다.
“오빠, 고마워요.”
등 뒤에서 지영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뒤에 걸음을 옮
겼다.
집으로 오자마자 나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다. 잠을 이루려 했지만 철규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철규에게서는 며칠이 지나도 전화 한통 없
었다. 나는 매일 군부대 관련 소식이 신문에
실리지 않았나 꼼꼼히 살펴 보았지만 단 한 줄
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새삼 군대라는 곳은 국
방부에서 정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언론도
통제되어 있는 특수한 지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국방부 민원실에 전화
해 문의해 보았으나, 그런 문의는 접수할 수
없다며 전화를 매정하게 끊어 버렸다. 지영이
도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었지만 대책이 없기
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혹시나 해서 윤석이 속해 있는 심령학
학회에 전화해 보았으나 사무실이 빈 건지 아
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철규에 대한 걱정
도 잊혀져 갔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귀신이 있겠느냐면서 마음 편하게 생각을 하
기 시작했다.
면회 갔다 온 지 이 주일쯤 지났을 때, 그러
니까 철규에 대한 걱정이 잊혀질 갈 즈음이었
다. 잊고 있었던 그 일이 현실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신문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신문을 펼쳤
는데 신문 한 귀퉁이에 자그마한 군부대 관련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철규가 속해
있는부대였다.
놀라 다급히 기사를 읽어 나갔다. 비축 창고
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나 거기에 있던 사병 3명
과 장교 한 명이 죽었다는 아주 짧은 기사였다.
구체적인 사망자 명단도 나와 있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철규를 떠올렸다. 화제 발
생일은 그저께 밤으로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철규가 말했던 그 불가사의한 일과 무슨 연관
이 있지 싶었다.
지영이에게 얘기해 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부터 누구의 전
화일까 궁금해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일한이 형이에요? 저 철규예요.”
너무도 반가운 전화였다.
“야, 너 어디야?”
나의 목소리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지금 터미날이에요.”
“철규야, 아무 일 없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니네 부대 기사 보고 걱정하고 있었다.”
“형, 한번 봐야죠. 나올래요?”
“어? 물론 봐야지. 언제 어디서 볼까?”
철규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치 생사를 알 수
없던 동생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처럼 반가웠다.
“야, 너 거기 시계탑 밑에서 기다려야. 내가
금방 나갈 테니까.”
나는 대충 씻고서 터미널로 달려갔다. 아침
의 터미날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철규는 시계탑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손
에 등산배낭을 들고서.
“야, 철규야.”
손을 흔들며 부르자 철규가 돌아보았더. 걸
음을 옮기던 나는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철규
는 얼마 전에 보았을 때보다 눈에 띄게 늙어
있었다. 도저히 갓 스물을 넘긴 젊은이로는 보
아 줄 수 없는 정도였다. 못 먹었어도 한 서른
은 되어 보였다.
“자식, 여전하구나.”
나는 속마음을 감추고 철규와 악수를 했다.
철규의 눈동자는 더없이 공허해 보였다.
“배 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형 아침은 됐어요. 버스 타고 올라오면서
휴계소에서 김밥하고 계란을 사 먹었더니 생
각이 없네요. 우리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이야
기나 하죠.”
“그래? 아직 커피숍은 문을 안 열었을 텐데.”
“그럼 한강 고수부지나 가요.”
“한강 고수부지?”
나는 철규의 얼굴을 힐끗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우
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한강 고수부지로 갔다.
한강에는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 외에는 인
적이 뜸했다.
우리는 강 저편에 한남대교가 바라보이는
강변에 걸터앉았다.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묵
묵히 피우고 난 철규가 손가락으로 담뱃불을
짓이겨 끄면서 입을 열었다. 담뱃가루가 강바
람에 날렸다.
“그 기사 난 신문 저도 봤어요. 원인 모를 화
재로 죽었다고 났더군요. 하긴 불이 나긴 났었
죠. 저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 죽은 사람들은 결코 불에 타 죽은 게 아니
에요.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죠.”
철규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한남대교
위로 지나가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철규의 이
야기가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철규는 담배꽁
초를 완전히 분해해서, 허공에 날려 보낸 뒤에
조금은 지친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롤 이야기
를 시작했다.
그 전의 상황은 알고 있을 테니까 형이 면회
온 날부터 시작하지요. 형하고 지영이하고 면
회 온 날 밤, 저는 혼자서 초소로 올라갔어요.
교대 없이 혼자서 저 혼자 밤새도록 근무를
서야 했죠. 물론 국군 규정에는 이인이 일조가
되어 교대로 서게 되어 있었지만 위에서 시키
니 어쩔 수 없었어요.
내무반원이 저를 위로해 줬죠. 하지만 그들
의 어투는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에게나 할 법
한 말들 뿐이었어요. 사형수에게 묻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할 말 없느냐?’는 식이었죠.
저는 그들의 동정을 뒤로 하고 초소로 올라
갔어요. 밤 여섯시부터 여덟시까지 서는 마지
막 근무조와 교대를 했어요. 혹시나 내가 안
오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고 있던 병사들은
나를 무척이나 반기더군요.
김 상병은 나에게 행운을 빈다면서 자신이
차고 있던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 주었죠. 그
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갔어요.
혼자 남자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사방은 몹
시 몹시 깜깜했어요.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었죠.
저는 일단 초소 안으로 들어갔어요. 초소 안
은 바깥보다 더 으시시했어요. 며칠 전에 죽은
소대장의 핏자국이 여기저기 보였죠. 죽기 전
에 처절하게 몸부림을 친 것 같았어요.
저는 엉겨 붙은 핏자국을 보다가 초소 입구
쪽으로 나갔어요. 여차하면 튈 생각으로요.
겁도 나고 무료해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어
요. 내가 알고 있는 노래들을 모조리 불러 보
았죠. 한 백여 곡이나 불렀을까? 그 사이에 두
시간이 흘렀는지 취침 나팔이 울렸죠. 비로소
열시가 된 거죠.
초소 주위는 누군가 접근했을 때만 불을 밝
히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무서움을 참을
수 없어 아예 전등을 켜 놨어요.
그랬더니 다소 마음이 놓이더군요. 불 밖에
서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둠 속에 있는 것보다
는 한결 나았어요.
나는 다시 노래를 불렀어요.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르기도 하고 유년시절에 교회에서 배
운 찬송가도 기억을 더듬으면서 불러 봤죠. 목
이 잠기도록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지만 시간
은 더디게 가기만 하는 거였어요.
얼마나 지났나 시계를 보면 십 분이 흘렀거
나 오륙 분이 지나가 있곤 했어요. 저는 더 이
상 노래도 생각나지 않고 해서 이 주 동안 휴
가를 받으면 무얼할까 궁리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무섬증 때문에 정신 집중을 할 수 없었
어요.
형도 아시다시피 저는 원래 내성적이잖아
요. 그래서 혼자 있는 것에 남들보다 익숙해
요.. 그런데 그때처럼 뼈저리게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든 적은 없었어요. 마치 우주 공간에
결박된 채로 떠서 창이 날아와 내 몸에 꽂히기
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공포에 질리면 누구나 민감하게 되죠. 저도
그때 극도로 민감해 있었어요. 먼 데서 솔방울
이 떨어지는 소리, 산새들이 풀숲을 헤치고 후
두둑 날아가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죠.
하지만 저는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어요.
초소 벽에 등을 기대고 전방을 뚫어지게 보고
있으니 희끄므레한 환영이 자주 보였죠. 어둠
속을 쳐다보면 뭔가 숨어서 움직이는 것 같기
도 하고.한마디로 미칠 지경이었죠.
저는 가급적 즐거웠던 추억만을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죠. 하지만 놀랍게도 즐거운 추억
은 많지 않대요. 도리어 괴로웠던 날들이 많았
어요. 정신 집중을 할 수 없어 무작정 떠오르
는 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죠.
이제 한 서너 시쯤 됐겠다 싶어 시계를 보았
더니 겨우 한시더라고요. 동이 틀려면 아직 5
시간이 넘게 남았다고 생각하니 암담한 거예
요. 나중에는 이왕 나올 귀신이면 빨리 나타났
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두려움에 점점 지쳐 두려움 자체를 잊어 갔
죠. 너무 신경을 쓰고 있었더니 머리도 아프고
눈도 아파 왔어요. 아무 생각하니 멍하니 앞을
주시하고 있었죠. 낮에 마신 술도 있고 해서
조는 것처럼 몽롱한 상태에 빠졌어요.
그런데 갑자기‘지지직’하더니 초소 주변을
밝히는 전등이 나가는 것이었어요. 갑자기 주
변이 어두워지니까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본
능적으로 총을 꽉 쥐었죠.
어둠이 눈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어요. 그
몇 초간의 시간 동안에 죽음이 밀물처럼 서서
히 밀려오고 있는 걸 느꼈죠. 저는 눈을 빠르
게 깜빡거리면서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어요.
이윽고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귀신은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너무
무서워 몸이 저절로 덜덜 떨리는 거였어요. 나
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상황실과 연결되어
있는 긴급 전화기를 들었어요.
전등이 나갔다는 것을 보고라도 할 생각으
로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너무 무서워서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그
런데 전화기를 들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예요. 완전 불통이었어요.
전화기를 내려놓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어요. 바
로 초소 앞에 그 하얀 옷을 입은 귀신이 서 있
는 거예요. 제가 서 있는 거리와는 너무도 가
까웠어요.
저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지난번처럼 튈 수
도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조금도 손가락 하
나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전신이 완전히 마비
된 듯했어요. 공포심만 제외하고요.
등줄기에서 기분 나쁜 식은 땀이 주루룩 흘
러내렸죠. 너무도 놀라서 눈조차 감을 수도 없
었어요.
대치 상태가 한참 동안 이어졌어요. 저는 간
신히 정신을 추스릴 수 있었어요. 일단 총을
집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총은 내
가 전화를 하느라고 한쪽 구석에 세워 놓았기
때문에 총을 잡으려고 하면 걸음을 옮겨야만
했죠.
그런데 내가 움직이게 되면 이 미묘한 적막
함에 큰 균열을 생겨서 뭔 일이 벌어지고 말
것만 같았어요. 나도 다시 그녀를 유심히 봤어
요. 초소 입구를 막고 있는 그녀를.
구름에 가려 있던 달이 나와서, 저는 귀신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지
금까지 흰 소복이라고 보았던 그 옷은 소복이
아니라 하얀 정장이었어요. 머리는 산발이었
고, 눈동자에서는 소름 끼치는 빛이 뿜어져 나
왔죠.
여자의 모습 중에서도 눈이 가장 무서웠어
요.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뚫어지
게 쳐다보고 있었죠. 저는 무서워서 그녀의 눈
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만 그녀의 눈으로
시선이 갔다.
홀린다는 말 알죠? 그녀의 눈은 모든 걸 빨
아들일 것만 같았어요. 저는 제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죠. 정신이 점점 희미해지
고 그녀의 모습이 가까이 다가왔다 멀어져 가
고 했어요.
순간, 목이 180도로 돌아간 채 죽은 소대장
이 생각났어요. 나도 이젠 죽는구나 하는 생각
이 들더군요. 나는 그녀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
는 파란 빛이 초소 안을 환히 비추는 걸 느꼈
어요. 그리곤 정신을 잃었죠.
제가 다시 눈을 떠 보니 어느 숲속이었어요.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어요. 일어나 보
니 군복이며 머리가 온통 새벽 이슬로 축축히
젖어 있더군요.
그녀가 초소 입구를 막고 서 있던 기억까지
는 생생한데, 그 뒤로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였어요. 사방을 유심히 살펴 보았죠. 낯익은
철조망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고서야 탄약고
뒤편의 숲 속이라는 걸 알았죠.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하고 한참을 생각했지
만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어요. 동 터 오는 하
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는데 문득, 내가 살아 있
구나 하는 기쁨이 차올랐죠.
아, 이젠 휴가를 가는구나.이 지겨운 악몽에
서 벗어나서.내가 이 주 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나겠지!
나는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느꼈어
요.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였어요. 어디서 고약
하고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나는 코를 벌름거
리다가 내가 누워 있던 자리 옆의 풀섶을 헤쳐
보았어요.
놀랍게도 시체가 누워 있었어요. 저는 그때
본 참혹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흰옷을
입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써서 누런 색으로
보였지만 흰옷을 입은 여자가 죽어 있는 거였
어요.
얼마나 오래 된 시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
섭도록 부폐해 있었죠. 눈이나 콧구멍에서 구
데기가 쿰틀거리는 게 보였죠. 끔찍한 모습에
일단 시선을 돌렸다가 시체가 약간 부자연스
럽다는 느낌이 들어 자세히 살펴 봤죠.
등 위에 얼굴이 돌려져더군요. 그러니까 죽
은 엄 중위처럼 머리가 180도 돌려져 있는 거
였어요. 혀를 깨물고 있었는데 부폐하기 시작
한 얼굴 위로 수많은 구데기들이 기어다녔죠.
먹은 것도 없었지만 구역질이 나오더군요.
나는 돌아서서 몇 차례 구토를 했어요. 이 여
인이 바로 그 귀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참 토하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탄
약고 쪽에서 들려 왔어요. 저는 다급하게 그들
을 불렀죠. 달려 온 교대조는 시체를 보자마자
구역질을 하더군요.
한 명이 초소로 달려가 곧바로 상황실로 전
화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대장을 비롯
한 고위급 장교들이 달려왔어요. 그런데, 그
시체를 보던 연대장하고 일부 장교들의 얼굴
이 흙빛이 되는 거였어요. 저는 그들이 잘 아
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죠.
연대장이 나에게 어젯밤 상황을 묻더군요.
나는 숨김없이 모든 사실을 보고 했더니, 수고
했다며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내려가 쉬라
는 거였어요.
일단 귀신 소동은 일단락 지어진 것 같았어요.
찜찜한 것은 여전히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누가 그 여자를 죽였으며, 그 여자는 누구이
며, 왜 소대장처럼 목이 돌려져 죽어 있나, 그
리고 장교들은 그 여자를 어떻게 알고 있느냐
하는 등등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
났죠.
마침 소대장의 죽음을 수사하러 왔던 특검
단이 그 여자의 시체를 수거해 가 조사를 시작
했어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하고 있
는데 하루는 내무반장이 들어와서, 그 여자는
북한 공비가 살해한 민간인으로 판명됐다고
하더군요.
웬지 그 여자의 죽음을 흐지부지하려 든다
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속으로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있는가 보다고 짐작했죠. 장교들은
쉬쉬했지만 사병들 사이에는 별 루머가 다 돌
았어요.
그 죽은 여자는 연대장의 정부였다는 둥, 죽
은 엄 중위와 그 여자가 치정 관계에 얽혀 있
었다는 둥, 수십 가지 루머가 돌았죠.
하지만 저는 엄 중위를 검시했던 군의관이
한 말이 자꾸만 마음속에 걸렸어요. 사람의 목
을 180도 돌려 놓는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그녀의 시체가 발견된 지 사흘이 지났어요.
부대는 여전히 어수선했지만 그런 대로 정상
적인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죠.
그 초소는 두 사람이나 죽은 곳이라 아직도
올라가기를 꺼려했어요. 하지만 군대라는 것
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 있나요. 시체도 발
견되고 했으니 걱정할 것 없다면서 신병들 위
주로 경계 근무를 세웠죠. 고참들은 일종의 담
력을 쌓는 훈련을 하는 셈치고 근무를 서라고
신병들에게 주입시켰어요.
사병들 간에는 사라졌던 군기가 다시 서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장교들은 사병들과 달리
몹시 불안해 보였어요. 점호 시간에 실수하기
도 예사였으며, 꼭 어디를 다녀도 둘이나 셋씩
몰려다녔죠.
저는 한동안 훈련에서 열외된 채 내무반 청
소를 하면서 저에게 떨어질 2주간의 포상 휴
가만 기다렸죠. 그런데 이상하죠? 풀리지 않
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거예요.
귀신을 직접 두번이나 목격했다는 게 인연
으로 작용한 걸까요? 저는 그녀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죠. 그러던 중 화장실에서 우연
히 훈련소 동기를 만났어요. 그 자식은 빽이
좋아 연대장 당번병으로 빠진 놈이었는데, 그
놈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
서 제가 물어봤죠.
처음엔 모른다고 잡아떼면서 귀신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도리어 나에게 묻더군요. 나는 그
친구가 궁금해하는 것을 모조리 풀어 주고는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죠.
한동안 망설이더니 그 친구는 마침내 나에
게 모조리 털어놓더군요. 당번실에 있다가, 장
교들과 연대장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면
서.
놀랍게도 시체로 발견된 그 여자는 죽음 엄
중위와 남매라는 거예요. 그래서 장교들이 알
고 있는 거래요. 그리고 그 여자의 할아버지는
이 부대의 초대 연대장이었는데 별 세 개를 달
고 전역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퇴역 군인이지
만 아직도 힘이 막강하대요.
일설에 의하면 이 부대의 인사권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입김을 지니고 있대요.
그는 지금은 80이 넘었는데 정정하대요. 아직
도 명절 때가 되면 국회의원들이 찾아가 세배
를 드린다고 하더군요.
그런 거물의 손자와 손녀가 부대 안에서 의
문의 죽음을 당했으니 참 별일이죠. 특히 그
손녀는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가기 전에
남동생에게 면회왔다가 사라졌는데, 뒤늦게
발견된 거래요. 집에서는 그래서 서울에 올라
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 친구도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은 바
로 퇴역 장군의 태도래요. 귀여운 손자와 손녀
가 둘씩이나 죽었는데도 수사를 대충 마무리
지으라고 했다는 거예요.
당번병을 통해서 그녀가 누군지는 알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그러던 차에 3중대 수색조가 수색 훈련을 하
던 도중에 수상한 사람을 잡았다는 소문이 들
려 왔어요. 그 사람이 살인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파다하게 퍼져 갔죠.
우연히 우리 내무반에 동기를 만나러 온 그
수색조의 조장으로부터 잡은 사람에 대해 들
었어요. 그는 포상 휴가를 가게 될 거라고 들
떠 있더군요.
“글쎄 그 자식은 죽어도 여기가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거야. 자식이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 말이지.”
“어떻게 생겼는데?”
“얼굴이 온통 시꺼면 수염으로 텁수룩하더
라고.”
“나이는?”
“한 서른쯤 되어 보였어.”
“소지품은 뭘 가지고 있었는데?”
“텐트가 숲 속에 처져 있더라고. 텐트 안에
는 이상한 책하고 낯선 도구들이 가득 차 있더
라. 책은 일본책도 있었고 영어책도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더라고. 뭐냐고 물으
니까 무슨 심령 어쩌구저쩌고 하더라고.”
“수색조가 다가갔을 때 그는 뭐하고 있었는
데?”
“부처님처럼 척하니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거야. 총부리를 들이댔는데도 가만히 있더라
고. 이 자식이 괜히 그러는 거다 싶어 눈뜨라
고 소리 쳤지. 그랬더니 그제서야 눈을 뜨고
우릴 천천히 돌아보는 거야.”
“뭐하는 작자래?”
“뭐, 자기는 심령술사인데 수도하는 중이라
는 거야. 내 그놈이 심령술사인지 마법사인 알
게 뭐야? 그래서 잡아왔지.”
“순진한 민간인을 생포해 왔구만?”
“순진한 민간인? 얀마, 순진한 민간인이 통
제 구역 안에서 수도합네 하고 죽치고 있는 것
봤어? 내 보기엔 그놈은 공비는 아니라고 하
더라도 그 두 사람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
을 거야. 조사를 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밝혀지
겠지. 그 놈이 만일 살인자라면 나는 포상 휴
가를 가게 되겠지? 밖에 나가면 네 애인을 불
러내 실컷 놀아야지!”
“뭐 인마?”
나는 내무반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어요. 그러던 중 저녁 식사 시
간이 되어서 식당으로 갔죠. 식당에서 연대장
당번병을 만났어요. 나는 그 자식을 조용히 뒤
를 끌고가, 잡아 온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보
았죠.
그 사람 때문에 작전참모하고 연대장이 문
을 닫아 걸고 한동안 의견을 주고 받았다는 거
예요. 뭔지 모르지만 연대장과 작전참모는 그
사람을 만나서 뭔가를 부탁하기로 했다고 하
더군요.
나는 그놈 하고 헤어져 내무반으로 돌아왔
어요. 내무반 청소를 하고 있는데 당번병이 들
어오는 거였어요. 연대장이 나를 호출했다면
서요. 한밤중에 왜 연대장이 나를 호출했을까
무척 의아하더군요.
하여튼 저는 복장을 단정히 하고 당번병을
따라가면서 왜 연대장이 나를 부르는 거냐고
물어 봤죠. 그랬더니 당번병이 잡아온 사내 때
문에 그런다고 하더군요.
당번병은 그 사람을 심령술사라 부르지 않
고 무당이라 부르더군요. 무당이 부대 간부들
앞에서 우리 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귀신처럼 맞췄대요. 그러면서 아직 살인은 끝
난 게 아니고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는 거예요. 장교들은 무당의 말을 믿는 눈치래
요. 그런데 그 작자가 귀신을 두 번이나 목격
했다는 나와 얘기하고 싶다고 해서 나를 부르
는 거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사내에 대한 일종의 호기심을 품고
서 연대장실로 들어갔어요. 연대장실 안에는
저 같은 신병들은 얼굴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
었던 고급 장교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
어요. 맞은편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자칭
심령술사라는 사내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그 여자의 혼
령이 소대장을 살해하거나, 상사에게 해꼬지
를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여자의 혼령은 자기
의 죽음을 알리려고 초소에 몇 번 나타났을 뿐
입니다. 그 여자 역시 살해당했습니다. 그녀의
동생인 소대장처럼 참혹하게 살해당한 거죠.
제 추측이 맞다면, 이 부대 안에 강한 한을
가진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사람
은 아닙니다. 하여튼 제 생각에는 그녀의 유령
은 여러분을 놀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
라, 무언가 경고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 같습니
다.”
그 무당은 나를 발견했는지 하던 말을 멈추
었어요. 얼마나 얘기에 열중하고 있었는지 장
교들도 그제서야 내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렸
어요. 저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잔뜩
긴장한 채 서 있었죠.
사실 이 중의 한 사람이 내무반에 나타났다
해도 난리가 날 텐데 까마득한 졸병이 고급 장
교들의 시선을 일제히 받으니 기분이 어떻겠
어요.
한 장교가‘편히 쉬어’하며 짧게 명령을 하
더군요. 그리곤 수염난 사내가 묻는 말에 사실
대로 대답하라는 거였어요.
저는 시선을 심령술사에게 돌렸어요. 덥수
룩한 수염이 전체적으로 얼굴을 덮고 있어서
그런지 거칠고 무식하게 보이더군요. 그런데
그의 눈빛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생각이 바
뀌더군요. 눈빛은 차분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보였어요.
저는 직감적으로 지식인이라는 걸 느꼈죠.
그는 신이 내려서 점이나 치고 굿이나 하는 그
런 무당 같지는 않았어요. 그들과는 다른 어떤
깊이를 엿볼 수 있었죠.
그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귀신에 대해
서 질문을 던졌어요. 그 귀신과 무슨 대화를
나눴느냐는 둥 그 동안 수없이 받아 본 질문이
었어요. 그는 나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앞질러서 질문을 던지기도 했어요. 나의 이야
기가 대략 끝나자 그는 고급 장교들을 향해 돌
아섰어요.
“역시 그 여자는 희생자예요. 여러분들이 이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고 싶다면 저에게 세 가
지 약속을 해 주셔야 합니다. 결코 무리한 약
속은 아닙니다. 첫째로, 소대장의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주세요. 둘째는 이 사건이 의혹이 대
강 풀리면 저를 보내 주세요. 셋째로 이 병사
를 저의 조수로 쓰게 해 주십시오. 저는 사실
여기에 오래 있을 만한 형편이 못 됩니다. 이
병사에게 뒷처리를 하도록 가르쳐 주고 나서
떠나겠습니다. 제가 이 일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저는 그 사람 말에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나를 끌어
들이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들었죠.
사실 저는 그 사람이 내건 조건이 마음에 들
지 않았습니다. 일의 뒤처리는 나에게 맡기고
자기는 가겠다니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속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죠.
연대장을 비롯한 여러 장교들은 즉석에서
그가 내민 조건을 받아들였어요. 달리 방법이
없으니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
장이었겠죠.
나는 밖으로 나와서 당번병에게 불만을 털
어놨어요. 그랬더니 당번병이 서울에서 조사
해서 보내 왔다는 팩스를 보여 주더군요.
그 사내의 이름은 임성수, 나이는 서른 둘,
학력은 명문대 철학과 대학원 졸업. 경력 사항
을 봤더니 신문사 문화부 기자를 하다가 한동
안 철학관을 운영했다고 나와 있더군요. 그리
고 그가 철학관을 할 때 드나들었던 손님들 이
름이 적혀 있는데 굉장하더라고요.
나는 그제서야 그 사람 말이라면 왜 장교들
이 꾸벅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나는 팩스를 보
고서 그가 그쪽 계통에 상당한 전문가라는 것
을 알았어요.
저는 다음날부터 그 사람 조수가 되어 그의
뒤를 따라다녔어요. 휴가는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보내 주겠다고 연대장이 직접 약속하더
군요. 저야 그 사람 조수로 일하는 게 싫을 턱
이 없죠. 훈련은 전번 일로 열외되었다고 하지
만 졸따구다 보니까 내무반에 있으면 번거러
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차라리 잘 됐다 싶어 그 사람 뒤를 졸졸 따
라다녔어요. 그런데 제가 잘못했던 것 같아요.
일이 그렇게 돌아갈 줄은 정말로 몰랐으니까
요. 그때 거절했어야 하는 건데 하긴 거절할
상황도 아니었지만.
여하튼 다음날부터 나는 임성수라는 사람과
함께 다녔죠. 그 사람은 마치 형사나 탐정처
럼, 그 여자와 소대장이 시체로 발견된 탄약고
주위를 차근차근 둘러보았어요. 일대를 한 바
퀴 돌고 나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저에게 다가
와 그러더군요.
“잊을 건 빨리 잊는 게 좋아요. 우리는 자의
식을 가진 인간이라 해도 자신의 의지대로만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제는 그만 부모
님을 용서하세요. 사실 우리들은 누구를 미워
하고 용서할 자격도 없어요. 업을 청산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도 부족한 게 인생이니까요.”
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마치 저의
과거를 모조리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더군요.
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그는 사방을 휘휘
둘러보더니 초소 위쪽에 자리를 잡고 앉더군
요. 그리곤 결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어요.
저는 그가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
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죠. 이번에는 뭘하려는
걸까 궁금하기도 해서 그를 관찰하고 있는데
그는 한 삼십 분쯤 지나서 눈을 뜨더군요.
그는 눈을 감은 채 일어나서 걸음을 옮겼어
요. 그러더니 여자 시체가 누워 있던 주변을
한참 뒤지더니 풀숲에서 검은 덩어리를 집는
거였어요. 제가 보기에는 풀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잡풀 뭉치 같더군요. 저는 그래서
저런 시꺼먼 잡풀 뭉치를 갔다가 뭐라려는 걸
까 유심히 보았죠.
그는 잡풀을 조금 떼내서 손가락으로 비비
더군요. 그러자 미세한 먼지가 되어서 허공으
로 날아가는 거였어요. 저는 그제서야 그것이
잡풀 뭉치가 아니라 먼지라는 것을 알았죠. 먼
지는 성인 주먹만한 크기로 덩어리가 져서 동
그랗게 뭉쳐 있더군요.
그는 주머니에서 비닐 봉지를 꺼내 먼지 덩
어리를 넣었어요. 그리곤 그것을 들고 다니 주
변의 먼지와 일일이 비교해 보더군요. 저도 그
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해 보았지
만 그처럼 검은 먼지는 없었더군요.
주변을 샅샅이 뒤져 구석진 곳에 있는 먼지
와 일일이 대조를 해 봤지만 어디서 날아온 건
지 그런 먼지는 없더군요. 제가 하도 궁금해서
그 먼지가 뭐냐고 물어 보았더니 이 사건과 밀
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대요. 그리더니 손목 시
계를 보더니 연병장으로 급히 향했어요.
어디 가는 거냐고 했더니 상갓집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과연 연병장 한쪽
에서 짚차가 대기하고 있더군요. 우린 그 짚차
를 타고 엄 중위네 상갓집으로 떠났죠.
초대 연대장이었다는 엄 중위의 할아버지
집은 부대에서 한 사십 분 정도 떨어져 있었어
요. 산을 끼고 달리기에 저는 야산에서 은거하
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산굽이를 돌아가자 마을이 나오더군요. 그 마
을은 비교적 산골 마을답지 않게 넓고 깨끗해
요. 도로도 비교적 잘 깔려 있고, 넓은 곡창지
대도 있었죠.
한참 가다 보니 으리으리한 집이 보이던군
요. 저는 서울에서 내노라하는 재벌이 여기다
별장을 지어 놓았나 보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점점 가까이 가 보니 그 집이 바로 상갓집이었
어요. 문 앞에 쭈욱 서 있는 화환을 보고 알았
죠. 화환이 거짓말 아니라 백 개는 족히 넘는
것 같더군요. 국회의원 및 장관, 주변 부대 사
단장 및 각 부대장, 각종 상인 연합체, 무슨 클
럽 등 보낸 사람도 참으로 다양했죠.
열려진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곳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정원이
펼쳐져 있었어요. 파란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
아 놓고 그 위에 간이 천막으로 하늘을 가려
놓았더군요.
조문객들은 민간인들도 많았지만 그 중의
반은 고급 장성이었어요. 최소한 영관급 이상
이었죠.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제가 감히
낄 자리가 아닌 것 같더군요. 우리가 들어서자
한눈에 띄는지 다른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
다봤어요.
“허어, 원성만큼이나 명예가 하늘을 찌르는
구만!”
그런데 임성수 씨는 마치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령처럼 묘한 말을 한마디 하더군요. 다른 사
람들이 눈쌀을 찌푸리며 우리를 쳐다보았죠.
그때 안채에서 상주 한 분이 뛰어와 우리에
게 다가갔죠. 우리의 신분을 확인한 뒤에 곧바
로 안채로 우리를 안내했어요.
우린 일단 죽은 희생자 가족에게 조의를 표
한 뒤에 엄 장군이라는 분을 만나러 갔죠. 그
는 퇴역을 한 지 꽤 되었지만 모두들 장군님이
라고 부르더군요.
집을 돌아가니 정자 같은 곳이 보이더군요.
그 옆에 한옥으로 지은 별채가 있었는데 엄 장
군은 그곳에 있었죠.
그곳은 완전 다른 세계더군요. 안채와 정원
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도 물레방아에서 쏟
아지는 물소리, 풀벌레 소리에 섞여 들려 오지
않았죠.
엄 장군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안으
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방 안은 보료가 깔려
있고 아주 정갈했어요. 엄 장군은 열두 자 병
풍 앞에 앉아 한문으로 된 서적을 읽고 있었
죠. 얼핏 보건데 손자병법 같았어요.
그는 안경을 벗고서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
죠. 눈썹이 하얗고 머리카락도 완전 백발이었
죠. 그의 눈에서는 노인의 정기라고는 할 수
없는 형형한 빛이 흘러나왔죠.
임성수 씨와 엄 장군은 차가 나올 때까지 눈
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고 서로 눈을 쳐다보고
있더군요. 마치 질식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어
요. 저는 목안이 간질간질해서 기침을 참느라
고 혼났죠. 마침내 다과상이 나오자 엄 장군이
먼저 입을 열더군요.
“먼 데서 귀인이 오셨는데 대접이 소홀하여
면목이 없습니다. 집안이 어수선해서 그런 거
니 양해하여 주시지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
죠. 하지만 정중하게 예의를 차렸음에도 불구하
고 웬지 우릴 얕잡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초상이라도 치른 뒤에 찾아와야 하는 건데
부대 사정도 워낙 다급해 이렇게 찾아뵙게 되
었습니다. 무례한 질문을 하게 되더라도 양해
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임성수 씨가 머리를 조아리며 충분한 예의
를 갖추어 말했죠. 그의 말투나 행동거지로 보
아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자주 접해 보았
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자 차를 드시며 천천히 말씀하시지요.”
엄 장군이 차를 권해 우리는 설록차를 마셨
어요. 상갓집이 아니라 무슨 도 닦는 사람 집
에 방문한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안색을 보아 하니 요즘 통 잠을 못 주무시
는 것 같은데 꿈자리가 몹시 어수선한지요?”
임성수 씨가 찻잔을 들고서 물었죠.
“꿈자리가 어수선한 거야 당연하지 않겠습
니까? 아끼는 손주들이 공비의 손에 무자비하
게 죽임을 당했으니.”
엄 장군의 말은 가시가 돋혀 있는 것 같았어
요. 그는‘공비들 손에’라고 말할 때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군요.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요근래 혹시 악몽이
나 환영에 자주 시달리지 않는가 해서 물어 보
았습니다.”
엄 장군은 임성수 씨의 말에 움찔 놀라더군
요. 하얀 눈썹이 한번 꿈틀거리더니 다시 노인
특유의 완고한 표정을 찾았죠.
“임 선생이라고 했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봐요, 임 선생! 나이를 먹으면 잠이 없어
지는 건 당연한 현상 아닌가요? 잠이 엷어지
다 보니 악몽에 시달리는 거고.”
다소 불쾌하다는 듯이 엄 장군이 말했죠. 임
성수 씨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
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두 악몽에 시달리
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이가 꾸는 꿈은 미래에
대한 암시를 품고 있기도 하지만, 노인들이 꾸
는 꿈은 대부분 과거의 반영입니다. 평생을 죄
없이 살아오셨다면 악몽에 시달릴 리가 없죠.”
“그럼, 내가 몹쓸 죄라도 지었단 말이요?”
금세 안색을 바꾸며 엄 장군이 근엄한 얼굴
로 물었죠.
“잘 아시잖습니까? 요즘 들어 그 사람이 꿈
속에 자주 나타나고 있지요?”
“그 사람이라니?”
“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손자와 손녀
가 죽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됐다고 생각하
시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면 장군
님께서 커다란 실수를 하신 겁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니? 또 다른 사람이 죽
어간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가족들뿐만 아리라 무차별 살
생이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 전에 막아야
합니다.”
“허어! 난 도대체 뭔 말인 줄 모르겠소!”
엄 장군이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더니 반쯤
돌아앉았죠. 임성수 씨의 얼굴에 언짢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죠. 엄 장군과 임성수 씨는 각자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먼저 임성수 씨
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죠.
“장군님 심정은 이해합니다. 평생을 군인으
로 보낸 장군님이시니 명예롭게 눈을 감고 싶
겠죠. 하지만 가족들이 모조리 죽고 나서 명예
만 남는다면 그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
까? 장군님만 혼자 당하고 나면 끝날 것 같지
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서울에 있는 자
제분들이 차례대로 당하게 될 겁니다.”
“음!”
엄 장군은 입을 꼭 다문 채 신음을 내뱉었
죠.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어요. 임성수 씨
가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말했죠.
“모두 다 자업자득입니다. 여태 그 나이 드
시도록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이치 하나 깨우치
지 못했습니까? 인생 헛 사신 겁니다!”
임성수 씨는 뼈 있는 말을 뱉고는 답답해 더
이상 못 있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
죠. 그러자 엄 장군이 당황해서 임성수 씨의
바짓자락을 잡았어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이미 40년
전 일인데?”
엄 장군의 얼굴은 풀어져 있었죠. 더 이상
장군의 위엄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지요.
임성수 씨는 노인의 눈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어요. 여전히 불쾌하다는 표
정이었죠.
“그래요.내가 어리석었던 거요. 나는 그때
그 걸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소. 당시 칼
자루는 내가 쥐고 있었기에 그 놈의 복수가 40
년이 지나 이렇게 시작될 거라곤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소.”
엄 장군은 눈을 지그시 감았죠. 두 눈을 감
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비로소 많이 늙었
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닫힌 눈꺼풀이 미
세하게 흔들렸죠. 그는 한참 뒤에 차분한 목소
리로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기 시작했지요.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당시 이 지역
에서 치열한 전투를 지휘했던 연대장이었소.
당시는 전시 상황이라 내 나이에 연대장이면
그리 높은 계급은 아니었다오.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다가 휴
전이 되었소. 우리는 휴전 협정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전투를 하곤 했다오. 그러
다 마침내 38선이 확정되었지요. 정전 협정이
이루어진 게 아니고 휴전 협정이었기에 자연스
레 38선 부근으로 군부대가 들어서게 되었소.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해서 언제 다시 일
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서 서로 총부리
를 겨눈 채 대치 상태에 들어서게 된 거요. 우
리 부대는 휴전이 될 때까지 이곳에 있었는데
우리 부대로 이 지역에 부대 막사를 세우고 철통
같은 경계 태세를 갖추라는 명령이 떨어졌소.
나는 적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
는 전술적인 위치를 찾아 부대 막사를 세웠소.
그런데 작은 문제가 발생했지요. 내가 부대터
로 선정한 곳에 살던 주민들이 반발을 한 거요.
그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이주할 수는 없다는 거였소.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어
떻게 고향을 버리고 갈 수 있겠느냐는 거요.
회유도 해 보고 겁도 줘 봤지요. 그래서 많
은 사람들이 떠나기는 했지만 몇 사람들은 끄
떡도 안 했어요. 나는 군대식으로 몰아붙이기
로 마음을 먹었소. 얼마 뒤에 대통령을 비롯해
서 국가 고위 관리들이 방문할 거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 더 서둘 수밖
에 없었소.
우리는 일주일의 최후 통첩 기간을 두고서
무작정 철거를 시작했소. 한쪽에서는 공사가
시작되고 한쪽에서는 철거가 이루어졌지요.
곳곳에‘민간인 통제 구역’이라는 푯말을 세
우고 밀어붙이자 공사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
소. 젊은 군인들이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서 일
을 해 나가서인지 속도도 무척 빨랐지요.
공사가 반이 넘게 진척되었지만 여전히 집
을 떠나지 않는 토박이들이 있었소. 남아 있는
몇몇 사람들과는 개별 면담을 해서 무조건 떠
나라고 협박을 했소. 말을 듣지 않으면 탱크로
빈 집을 깔아뭉개버리기도 하면서.
모두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떠나갔지요.
그런데 딱 한 집이 남아 있었어요. 약초를 캐
서 먹고 사는 약초장수가 사는 집이었소. 그는
두 딸과 함께 오두막에 살고 있었는데 선산을
지켜야 하기에 결코 떠날 수 없다는 거요. 그
의 오두막이 서 있던 자리가 현재 탄약고가 서
있는 자리라오.
나는 군인들을 동원해서 강제로 쫓아내기도
여러 번 했소. 그랬지만 소용 없었지요. 다음
날이면 어느 새 산을 타고 넘어와 집에 들어가
있는 거였소. 대통령과 국가 고위 관리들이 방
문하기로 한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지요.
사실 그때는 전쟁 직후라 보상 문제니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때요. 단지 쫓아내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었소. 그런데 일자 무식쟁이
인 약초장수가 생계 수단을 보장해 달라고 주
장하고 나선 거요. 그렇지 않으면 결코 선산을
떠날 수 없다고.
물론 그 당시는 폐품이 된 덩치 큰 군수품이
많아 몇 개만 처분하면 약초장수가 원하는 돈
쯤은 만들어 줄 수 있었소.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소. 만약 그런 선례를 남기면 쫓겨난 다른 주
민들이 몰려와 돈을 요구할까 봐 겁이 난 거요.
나는 그의 가족을 강제로 쫓아내라고 명령
을 내렸소. 명령은 곧바로 실행됐소. 그는 약
초를 캐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두 딸
들은 군인들의 손에 끌려갔다오. 나는 부관을
시켜 밑에서 연병장 땅 고르기를 하고 있는 탱
크를 동원해 원두막을 깔아뭉개 버리라고 명
령했소. 그때는 점심 무렵이었다오.
점심을 먹고 나서 임시 막사에서 몇 가지 지
시 사항을 내린 뒤에, 해가 질 무렵에 오두막
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소. 그런데 아직도 오두
막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 거요. 난 화가 날
대로 나서 빨리 탱크를 끌고 오라고 호통을 쳤
소.
내가 명령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탱
크 한 대가 올라왔지요. 나는 마지막으로 혹시
나 해서 오두막 안을 살펴 보았소. 맹세컨데
분명 아무도 없었다오. 밖으로 나간 나는 탱크
로 깔아뭉개 버리라고 손짓을 했소.
마침내 탱크가 오두막을 밀고 들어갔지요.
나는 앓던 이가 빠진 듯한 통괘함을 느꼈소.
탱크 굉음 소리와 함께 오두막은 순식간에 무
너져 내렸다오. 탱크는 서너 차례 움직였는데
나는 누군가의 비명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일
단 정지 신호를 내렸소. 그리곤 잔해를 살펴
보았더니 흙벽 사이로 사람의 팔이 보이는 거
였어요.
허겁지겁 들어냈더니 시체가 나왔소. 점심
무렵에 쫓아냈던 두 딸이 서로 꼭 껴안은 채
짓뭉개져 있었지요. 캐터필더에 깔려 내장이
튀어나온 채로.정말 고의는 아니었다오.
나는 너무도 놀라 망연자실 서 있었소. 전시
때 참혹한 시체도 많이 보았지만 그런 시체는
처음이었다오. 시체를 치울 생각도 못 하고 충
격 속에 서 있다가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였소.
약초장수가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거요.
두 딸의 시체를 보았는지 그의 눈동자가 시뻘
겋게 타오르고 있었소. 고의가 아니었다고 말
하려고 하는데 그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
소. 한 손에 호미를 들고. 심장을 쥐어짜는 듯
한 신음과 함께.
나는 위기감을 느꼈소.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권총을 꺼내 약초장수를 쐈소. 아니, 솔
직히 말한다면 그를 죽여야지만 사건을 조용
히 묻어 버릴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을 한 거요.
일이 틀어진 데 대한 화풀이라도 하듯이 나
는 약초장수를 향해 세 발을 쏘았다오. 그는
죽어 가면서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소. 네
놈에게 꼭 복수를 하겠노라고.내 딸들처럼 네
놈의 자식들도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될 거라며.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부관과 탱크병
들에게 이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소. 그리곤 시체는 그 당시 공사중
이었던 창고 건물 바닥에다 묻어 버렸지요.
무사히 부대 공사는 끝났소. 나는 그 뒤로
승승장구했고 명예롭게 군에서 물러났소. 부
대 대치를 직접한 덕분에 난 부대 마을의 상권
을 쉽게 장악할 수 있었지요. 나는 전역 후 고
향으로 돌아가려다가 생각을 바꿔 먹고 이 곳
에 눌러앉았소.
이 곳은 정말이지 나의 고향이나 마찬가지
로 정이 들었던 곳이니까. 내가 여기에 터를
잡자 고위 군인들이 찾아왔소. 아직도 높은 자
리에 있는 동기생과 선후배들에게 인사 청탁
을 해 달라고.
퇴역 군인의 집으로 현역 장성들이 드나드
니 나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소. 어리석
게도 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이런 행복은 계속
이어질 줄로 알았다오.
그런데 삼 년 전부터 놈이 꿈 속에 나타나기
시작한 거요. 아주 가끔씩.나는 몸이 허해져서
그런 줄 알고 몸 관리를 하는 한편 보약을 먹
었소. 그런데도 잠을 자다가 나는 자주 그놈
꿈을 꾸어야 했지요.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나타나던 놈이
점점 자주 나타났소. 난 내가 죄의식 때문에
놈의 꿈을 꾸는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게 아니었소. 재작년 봄에 큰아들이 밤낚시를
하다가 저수지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을 한 거요.
난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들이 죽
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소. 놈이 내 아들을 강
제로 물에 처넣는 장면을.내 아들은 물 속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아무 소
용이 없었소. 놈이 내 아들의 팔을 잡고 놓아
주질 않는 거요. 놈은 나를 보고 기분 나쁜 웃
음을 흘렸소. 그리곤 물 속으로 서서히 들어갔
지요.
놈의 두 눈이 물 속으로 사라지고 나서 나는
벌떡 일어났지요.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
었소. 나는 다급히 자고 있는 운전수를 깨웠지
요. 그리곤 꿈 속에서 보았던 저수지로 달려갔소.
부랴부랴 달려가 가 보니 내가 꿈 속에서 보
았던 것과 똑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지요. 낚
시대 하나는 떨어져 있고, 아들은 보이지 않았
소. 나는 아들을 삼키 저수지 한가운데를 망연
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오.
다음날 유디티를 동원시켜서 아들을 저수지
에서 건져냈소. 내 아들은 수초더미에 칭칭 감
겨 있었다고 합디다. 나는 아들의 시신을 집으
로 들여 놓고 몰래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을
했소.
무당은 죽은 아들을 불러내기 위해서 한참
춤을 주더니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떠는 떨어대
는 거요. 그러더니 갑자기 음산한 목소리로,
자식을 잃은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거였소. 바
로 그 놈, 그 약초장수의 목소리였지요.
나는 무당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어
요. 용서해 달라고.이만 화를 풀라고.그러자
무당은 길길이 날뛰면서 준비한 음식상을 발
로 차 뒤집는 거였소. 나는 살려 달라고 안 할
테니까 내 딸을 살려내라고. 그러면 다시는 나
타나지 않겠다고.
노여움을 풀라고 내가 손이 발이 되게 빌었
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다른 무당이 말렸
지만 약초장수 신이 실린 무당은 펄펄 뛰면서
집안을 온통 들쑤셔 놓고 집을 나가 버렸소.
굿이 엉망이 된 거지요.
며칠 뒤에 나는 다시 그 무당을 찾아갔지요.
무슨 방법이 없냐고 물어 보려고.그 무당은 몸
이 아프다고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손을 휘휘 젓는 거였소. 다시는 굿을
하지 않겠다면서.
나는 그래서 다른 무당을 찾아갔지요. 몇 번
해 보았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소. 장군신이니 뭐니 하는 신들이 나와서
조상의 묘자리가 나빠서 그렇다는 둥 괜한 헛
소리만 지껄여 대는 거요.
나는 그래도 행여 자손들이 화를 입을까 그
들이 시키는 대로 모두 했소. 부모님 묘도 합
장을 했고, 부적을 사다가 집 곳곳에 붙이기도
했다오.
그러자 동네에서 소문이 이상하게 나는 거
였소. 소위 퇴역 장군이라는 사람네 집에서 연
일 굿이나 하고, 점장이나 찾아다니니 실망스
럽다는 거지요. 나는 이웃들의 안목도 있고 해
서 모든 행위를 중단했지요. 그리곤 사찰로 등
산을 핑계삼아 약초장수와 두 딸의 명복을 몰
래 빌러 다녔소.
하지만 약초장수의 노여움은 풀어지지 않았
지요. 놈이 힘이 강해진 건지 내가 몸이 약해
진 건지는 모른겠지만 꿈 속에 수시로 나타나
는 거였소. 그러던 어느 날 밤에는 놈이 이번
에는 손녀를 데려가겠다는 거요.
잠에서 깬 나는 깜짝 놀라서 딸을 불렀소.
서울로 보내 놓으면 놈의 힘이 미치지 않을 것
같아 딸네 집에 가 있으라고 보냈지요. 그런데
그 아이는 떠나기 전에 동생 얼굴이나 보고 간
다고 면회를 간 거요. 난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소.
손녀가 서울로 간 날부터 나는 계속해서 악
몽을 꾸었다오. 그런데 이번에는 손자가 어이
없게 죽은 거요. 이어서 손녀의 시체가 발견되
고.
군부대에서 온 연락을 받고, 나는 놈이 내
귀여운 아이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았소. 그래
서 수사를 종결시키고 공비의 소행이었다고
발표하라고 한 거요. 그때의 비리가 밝혀져서
는 안 되겠기에.
나는 살만큼 살았소. 이 생에 대해서 더 이
상 미련도 없소. 놈이 나타나 나를 데려가기만
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
하지만 나 내 개인의 명예는 상관없지만 군
의 명예는 더럽힐 수 없소. 내가 자랑스러워
부대에서 일어난 일들이 세상에 밝혀져,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소. 이
상이오.
엄 장군은 긴 이야기를 마치고 찻잔을 들었
으나 잔은 이미 비워져 있는 상태였어요. 나는
옆에 있는 주전자를 들어 장군의 잔에 차를 가
득 따랐어요. 엄 장군은 찻잔을 들어 하얗게
말라붙은 입술을 적셨죠. 침통한 표정으로.
임성수 씨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다가 이
렇게 말하더군요.
“장군님의 마음은 어느 정도 알겠습니다만
다음 차례는 장군님 차례가 아닙니다.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진 원귀라면 장군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죽여서 장군님의 피를 말려
죽이려 들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군부대에서 대
대적인 굿이라도 하면 그 원한이 풀어지겠는
가?”
엄 장군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임성수 씨를
바라보았죠. 임성수 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
어요.
“늦었습니다. 인생은 업을 씻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도리어 업을 쌓았으니
인생 잘못 산 겁니다. 좀더 올바르게 처신하셨
어야지요.”
“다른 방법은 없겠는가?”
“꽃이 피면 지게 반드시 지게 되어 있지요.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으셔야지요.”
“인과응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장군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막
기 위해서 제가 수단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그럼, 재앙을 막을 수 있나?”
“막아야지요. 장군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부터라도 제대로 업을 씻으십시오.”
“어떻게 하면 내 업을 씻을 수 있나? 방법을
가르쳐 주게나.”
“죽음이 얼마 안 남은 노인네에게 이런 호화
스러운 집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아 놓
은 재산은 죽을 때 지고 가시렵니까? 그런 욕
심을 지닌 채 죽게 되면 영계로도 들어가지 못
한 채 이 세상을 떠도는 잡령이 됩니다. 잘 알
아서 처신하십시오. 그럼.”
임성수 씨는 차갑게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
어났지요. 엄 장군이 일어나서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임성수 씨는 매정하게 뿌
리치며 집을 나섰어요. 나는 부대로 돌아가는
짚차 안에서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 보았지요.
“어떻게 엄 장군님에게 그런 과거가 있다는
것을 알았죠?”
“귀신이 선량한 사람을 해꼬지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를 제거하려 하지 않는 한. 난 그
래서 그 귀신이 가족 중의 누구에게 원한을 품
고 있다고 판단했죠. 그런데 엄 장군을 보고
나서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죠. 보통 사람들
은 잘 모르겠지만 전 엄 장군의 눈동자를 보고
귀신을 본다는 것을 느꼈어요.”
“엄 장군님은 꿈 속에서 귀신을 만났다고 했
잖아요. 꿈 속에서 귀신을 봐도 눈동자에 드러
나나요?”
“보통 사람들은 악몽은 잠잘 때 꾼다고 생각
하는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엄 장군
은 저수지에서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고 했는데 그건 꿈이 아니에요. 약초장수가 엄
장군의 영혼을 불러내 저수지로 데려간 다음
아들을 서서히 죽인 거죠. 영혼은 깜짝 놀라
다시 몸 안에 들어갔고, 그제사 정신을 차린
엄 장군은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귀신은 물리력을 지닐 수 없
다고 들었는데 이 귀신은 어떻게 해서 물리력
을 지닐 수 있는 거죠? 목을 완전히 등 뒤로 돌
려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아마도 그는 보통 약초장수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귀신은 원래 물리력을 지닐 수는 없지
만 맛과 향은 느낄 수가 있어요. 약초 장수는
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이
산 저산을 떠돌며 약초의 향을 맡으며 기를 모
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장장 사십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말이죠?”
“그래요. 그는 처음에는 아들이 저수지에 가
까스로 끌어들일 정도의 힘밖에 없었어요. 그
런데 불과 이 년 만에 그토록 강한 기를 모은
걸로 봐서는 살아 생전에도 보통 약초장수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임 선생님은 그 귀신을 무슨 수로
막으시려는 거죠?”
“지금부터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요.”
임성수 씨는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냈어요.
그리곤 저에게 주었죠.
“이 부적은 제가 어제 저녁에 쓴 거예요. 우
주에 떠도는 힘을 모아 쓴 거니까 효험이 있을
거예요.”
저는 뭐라고 썼나 궁금해서 부적을 펴 보았
죠. 두 장이었어요. 그런데 예사 부적과는 달
랐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어머니
가 부적을 자주 옷에 달아 주셨기 때문에 부적
에 대해서는 잘 알거든요.
그런데 그 부적은 제가 지금까지 본 것과는
아주 달랐어요. 붉은 잉크도 아닌 검은 먹으로
‘술(術)’이라고 써 있었지요. 다른 한 장도 똑
같았어요. 제가 부적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
는데 임성수 씨가 말을 이었어요.
“약초장수의 원귀는 자신의 집을 잃은 한이
가장 커요. 원귀에게 있어서 집은 바로 육체
죠. 귀신이 죽어서도 육체 곁을 맴도는 것은
일종의 미련 때문이죠. 그래서 일단은 시체를
찾아내 불에 태워 줘야 해요. 그러면 원귀의
힘이 많이 약해지게 되죠.
그러니 부대로 들어가게 되면 그 창고로 가
세요. 아무 때나 가지 말고 자시(11시 1시)에
가세요. 자시는 원래 귀신들이 활동하는 시간
인데 원한이 깊은 악령들은 반대로 자는 시간
이죠. 그들은 해시나 축시, 묘시에 주로 나다
니는데 이번 악령 같은 경우는 시간에 구애받
지 않는 것 같더군요.
창고에 가기 전에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
뭇가지와 생닭을 한 마리 가지고 가세요. 창고
에 들어서면 일단 문 안쪽에다 내가 준 부적을
한 장 붙이세요. 그리고 나서 곧바로 복숭아
나뭇가지를 태우세요. 나뭇가지에 불이 붙으
면 닭의 목을 따서 창고 주변에 닭피를 뿌려
놔요.
악령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거죠. 그 다음
에 시체를 빠른 시간내에 파내세요. 시체를 파
냈으면 재빨리 약초장수의 이마에 남은 부적
한 장을 붙이세요.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절대로 부적을 손상시켜서는 안 돼요. 아셨
죠?
만일 부적이 찢어지거나 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주는 건데
이걸 가지고 가세요. 창고에 들어서게 되면 제
일 먼저 이 먼지 덩어리와 그곳의 먼지가 같은
가 확인해 보세요. 만약 먼지가 틀리다면 파
봤자 헛수고예요.”
나는 그가 주는 대로 비닐 봉지에 들은 먼지
덩어리를 받았죠.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부
분이 있어서 다시 물어 보았어요.
“그건 왜죠?”
“악령은 주변에 흩어져 있는 기를 모을 때
주로 원심력을 이용하죠. 그래야 빠른 시간내
에 힘을 비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먼지는
바로 원심력에 의해서 뭉쳐진 거예요. 무슨 말
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창고에 잠들어 있는 약초장수가
기를 창고에다 모아놓았다 이거죠. 그래서 밖
으로 나가기 전에 흩어진 기를 원심력으로 모
았고, 그 과정에서 먼지 덩어리가 형성됐다는
거죠. 형성된 먼지 덩어리는 악령의 뒤를 따라
다녔고 그러다 악령이 그 여자를 죽일 때 바닥
에 떨어졌다 이렇게 되는 건가요?”
“아주 훌룽해요! 철규 군에게도 초감각적 지
각능력이 어느 정도 있군요. 우린 훗날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난 이만 가 봐야 해요.”
“아니 가시다뇨?”
“운전병, 차 좀 세워 줘요!”
임성수 씨가 외치자 짚차가 멈춰 섰어요. 그
는 차 뒤에 놓인 자신의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죠.
“섭섭해하지 마요. 어제 제가 말했잖아요.
저는 이 정도에서 손을 떼겠다고.”
임성수 씨가 불쑥 손을 내밀었어요. 나는 그
의 손을 잡지 않고 그를 따라내렸죠. 그를 그
대로 보냈다가는 큰 후회를 할 것 같은 예감 때
문이었어요. 결국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지만.
“사건을 마저 해결해 주지 못하고 떠나서 미
안해요. 내가 이대로 떠나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그 두가지 이유란 게 뭐죠?”
나는 그가 달아날까 봐 옷자락을 꼭 잡고 물
었죠.
“첫번째 이유는 내가 다른 세계에 발을 디뎌
놓았기 때문에 그 일을 직접하게 되면 지금까
지 내가 노력한 것이 허사가 돼요. 더 이상은
묻지 말아 주세요.”
“좋아요. 그렇다면 두번째 이유는 뭐죠?”
“두번째 이유는 만약의 경우에 사고가 나게
되면 저에게 닥칠 불행 때문이에요. 군대에서
일어난 일을 군인이 해결해야 해요. 그래야 책
임 소재가 확실하죠. 그런데 만약에 민간인인
내가 그 일을 하려다가 자칫해서 불상사라도
일어나게 되면 저 혼자 뒤집어써야만 하죠. 억
울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아무도 민간인인 저
의 편에 서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첫번째 이유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두번째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나는 그를 순순히
보내 주는 쪽으로 입장을 굳혔다.
“고마워요. 많은 도움을 줘서.”
“시체를 불에 모조리 태울 때까지 방심하면
안 돼요. 부적이 떨어지지 않게 특별히 조심해
야 해요. 아셨죠?”
임성수 씨는 마지막 당부를 하고는 몸을 돌
렸어요. 그가 점점 멀어져 가자 두려움이 몰려
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들었죠. 사실 임성수 씨에게 전적
으로 의지하고 있었는데 제 앞으로 일이 떨어
지자 불안하기 짝이 없었어요.
저는 일단 부대로 복귀했어요. 연대장과 고
급 장교들은 연대장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죠. 저는 상갓집에서 들은 엄 장군의 과거
는 모두 생략하고 임성수 씨가 사라졌다는 것
만 보고했어요.
그러자 모두들 술렁거렸어요. 연대장은 실
망하는 빛이 역력했죠. 저는 이어서 임성수 씨
가 알려 준 방법을 상세히 말했죠. 그러자 연
대장은 준비물을 빠짐없이 챙겨 두라고 지시
를 내렸어요.
결국 이 일을 어느 소대에서 맡아서 처리하
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주고받더군
요. 어느 소대에서 맡게 될까 궁금하기도 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죠. 그런데 대뜸 연대장이
나에게 저녁을 먹었느냐고 물어봐서 안 먹었
다고 했더니, 이중대 중대장에게 장교 식당으
로 가서 밥을 먹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장교 식당으로 가서 허기진 배를 채웠
죠. 다시 연대장실로 갔더니 일단 내무반으로
복귀해 있으라는 거예요. 다시 부를 테니 이
일을 절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는 거였죠.
아홉시쯤 되어서 이제쯤 호출하겠구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소대장이 들어왔죠. 임
소위님이 내게 와서 우리 소대에서 극비리에
이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임 소위님은 R.O.T.C 장교인데, 저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 단둘이 있을 때면 저에게 아주
잘해 줬죠. 임 소위님은 나와 세 명의 병사를
피엑스로 데려가서 긴장을 풀라고 커피를 사
줬죠.
다른 병사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 건데 일이
끝나면 2주 동안 휴가를 보내 준다는 거냐고
묻더군요. 그러자 소대장이 나서서 그저 시체
만 파내면 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더군요. 나는 모든 사실을 이야기해
줄까 하다가 함구하라는 연대장의 당부도 있
고 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죠.
그들은 더 이상 물어 보지 않고 2주짜리 포
상 휴가를 받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죠. 내가 피엑스에 앉아서 빵과
과자를 먹고 있는 사이에 소대장이 선임하사
와 상병 한 명을 데리고 연대장실에 들렀다가
나왔어요. 손에는 복숭아 나뭇가지와 닭 한 마
리, 곡괭이, 삽, 손전등, 작은 기름통 같은 것
이 들려 있더군요.
일을 막상 시작한다고 하니 저는 솔직히 조
금 걱정이 됐어요. 하지만 소대장이나 다른 병
사들은 휴가 기분에 들떠 있었죠. 저흰 짐을
나눠 들고 임성수 씨가 시킨 대로 문제의 창고
로 올라갔어요.
물자를 비축해 두는 창고였는데 부대 구석
에 처박혀 있더군요. 너무 구석에 위치해 있어
서 일이 있지 않는 한 지나갈 일도 거의 없는
곳이었어요. 그러니 신병인 저로서는 당연히
처음 가는 장소였죠.
같이 올라간 고참들에 의하면 검열 나올 때
만 청소 정도 해 놓고 그 이외에는 거의 들릴
일이 없는 곳이래요. 판초 우의나 군용 담뇨
등을 비롯해서 전시 상황에 쓸 물자를 저장해
두는 곳이라 하더군요.
창고에 도착하니 열한시 십분이 조금 지나
있었어요. 소대장이 열쇠꾸러미를 꺼내 문을
땄어요. 자물쇠가 녹슬어 잘 열리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한참 뒤에 끼익 하는, 귀에 거슬
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어요.
문을 열자 쾌쾌한 창고 냄새가 났어요. 40년
전에 지어진 창고인데다 또 애초부터 창고로
지어진 곳이기 때문에 전등 같은 것은 아예 없
었어요. 밖에는 별빛이라도 있어 그래도 좀 뭐
가 보였지만, 창고 안은 글자 그대로 한치 앞
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했어요.
소대장이 손전등으로 휘이 들러보았지만,
차곡차곡 쌓인 박스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어
요. 저는 솔직히 창고 안으로 발을 들이기가
무서웠어요. 그 창고 안에 무시무시한 힘을 지
닌 악령이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영 내키지가
않았어요.
누군가 등을 떠밀더군요. 뭘 꾸물거리고 있
느냐면서. 저는 그래서 길게 심호흡을 하고 안
으로 들어갔죠. 안으로 들어선 순간, 전신을
조여 오는 듯한 음험한 한기에 깜짝 놀랐어요.
싸늘한 기운이 창고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다른 사람들도 춥다고 몸서리를 치는 거였
어요. 누군가 담배 한 대씩 피우고 하자고 제
의했어요. 소대장이 허락을 하자 모두들 흩어
져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죠.
저는 창고 안을 자세히 살펴 보았어요. 유리
창은 전혀 없고 사람 머리만한 환기창이 위쪽
에 두 개씩 달려 있더군요. 다른 병사들이 흩
어져서 담배 한 대씩 피우는 동안 저는 일단
임성수 씨가 시킨 대로 먼지를 확인해 봤어요.
바닥을 손으로 훑어 비교해 보니 똑같더군요.
저는 다른 병사들 몰래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 문에다 풀로 붙였어요. 풀은 위에다만 살
짝 발랐는데 신기하게도 부적이 쩍 달라붙었
어요.
소대장이 대검을 든 채 닭의 목을 따지 않고
망설이고 있더군요. 제가 가서 대검과 닭을 받
아서 목을 땄죠. 닭피가 튀자 정 상병이 지금
뭐하는 거냐고 깜짝 놀라며 묻더군요. 저는 닭
피를 사방에다 흩뿌리면서 시체를 파낼 때 우
리 고향에서 하는 의식이라고 얼버무렸죠.
다른 병사들은 찜찜한 표정으로 나와 소대
장을 번갈아 보았죠. 나는 개의치 않고 복숭아
나뭇가지를 받아 중앙에다 놓고 불을 피웠죠.
금방 꺾은 나뭇가지라 불이 잘 붙지 않았어요.
석유를 조금 부으니까 그제서야 불이 붙더군
요. 석유가 모조리 타고 나자 나뭇가지가 타들
어가기 시작했어요. 매캐한 연기가 창고 안으
로 조금씩 퍼져 나갔죠.
다른 병사들은 모두 겁을 먹은 듯한 눈치였
어요. 소대장이 일 끝나면 저 닭을 안주삼아
술이나 한잔 하자고 꼬드겼죠. 그제서야 분위
기가 조금씩 바뀌더군요. 누군가 휴가와 애인
이야기를 꺼냈고 다시 분위기가 살아났죠.
저는 플래쉬로 바닥을 천천히 살펴보았어
요. 임성수 씨 말대로 원심력에 의해 힘이 모
아진 거라면 중앙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어서였죠. 바닥을 플래쉬로 유심히 보니 먼지
들이 나이테처럼 둥근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나이테 안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창고 안쪽
에 수많은 원들의 정중앙이 자리하고 있었어
요. 저는 소대장에게 이곳에 시체가 있는 것
같으니까 파들어가자고 했죠. 소대장은 순순
히 그러자고 하더군요.
소대장이 작업을 시작하자고 했어요. 저는
곡괭이를 들고 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죠. 너
무 겁을 먹은 때문인지 곡괭이를 몇 번 휘두르
지도 않았는데 군복이 땀으로 흠뻑 젖더군요.
내가 땀을 뻘뻘 흘리자 정 상병이 곡괭이질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면서 내 손에서 곡괭이
를 뺏어 갔죠.
그는 사회에서 공사판을 떠돌았다고 하더니
정말 곡괭이질을 잘 하더군요. 바닥 콘크리트
는 그리 두껍지 않았어요. 이어서 선임하사와
손 일병이 들어가 삽질을 하기 시작했죠. 바닥
은 딱닥한 흙이었어요. 삽날이 잘 박히질 않더
군요.
소대장은 불을 비추었어요. 정 상병과 제가
한 조가 되어 곡괭이질을 했고, 선임하사와 손
일병은 우리가 으깨놓은 흙을 삽으로 퍼냈죠.
곡괭이가 돌에 부딪히면서 가끔씩 요란한 소
리를 냈죠.
제가 곡괭이를 휘둘렀으면서도‘쨍!’하는 소
리가 나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요. 혹시 악령
이 곡괭이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면 어떡하
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스쳤죠.
정 상병은 원래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열심히
일만 하더군요. 저는 한시라도 빨리 일을 해치
워 버리고 싶어서 죽어라 곡괭이질을 했어요.
한참 일을 하고 나니 땀이 나서 그런지, 무
서움도 덜해졌죠. 거기다가 장정들이 다섯이
나 되는데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하는
낙천적인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여
유가 생겼는지 농담을 하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시체를 발견하는 조에서 시체와
키스하기, 나중에 발견한 조는 시체 껴안고 블
루스 추기 등등.
허리쯤 파들어 가고 나서 시계를 보았어요.
쉬지 않고 일을 해서인지 밤 한시가 조금 넘었
더군요. 몸도 피곤해서 건성으로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데 바닥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
어요. 놀라서 손전등으로 밑을 비춰 봤어요.
내려 앉은 바닥사이로 시꺼먼 것이 보였어
요.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시꺼먼 부분
을 삽으로 긁어냈어요. 잘 보니까 군용담요였
어요. 군용 담요가 왜 묻혀 있을까 궁금하더군
요.
우리는 그 주변을 집중적으로 파헤쳤어요.
보고만 있던 소대장도 흥분했는지 삽을 들고
작업에 끼었어요. 우리는 미친 듯이 그 주변을
팠어요. 한 십여 분쯤 파들어가니까 윤곽이 들
어나기 시작했어요.
시체는 군용담요에 덮어 있었어요. 군용 담
요는 낡을 대로 낡아 있었죠. 장 상병이 대검
으로 군용담요를 갈랐어요. 낡은 새끼줄처럼
손쉽게 갈라지더군요. 소대장이 시체를 비춰
봤어요.
손전등에 비친 시체는 너무도 무서웠어요.
4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시체는 조금도
썩어 있지 않았어요. 머리카락이 원래 길었던
건지 아니면 계속 자랐는지 전신을 덮고 있었
죠. 손톱 또한 무지하게 길었어요.
시체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 하얀 눈자위
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뿜어져 나왔죠. 우리는
너무도 무서워서 숨조차 쉴 수 없었어요. 금방
이라도 벌떡 일어날 기세였으니까요.
소대장이 시체를 들어내라고 지시했죠. 군
용담요 끝을 잡고서 가까스로 시체를 들어냈
어요. 미끈미끈한 땀이 이마에서 계속 흘러내
렸죠. 사실 그때는 내 정신이 아니었어요.
시체를 들어내자 더 끔찍한 것이 보였어요.
탱크에 깔려 죽었다는 두 딸인 모양인데 뼈들
이 엉켜 있었어요. 꼭 껴안 채 죽었었나 봐요.
여기저기 토막난 뼈들이 보였죠.
뼈들을 간추려서 꺼내다 보니까 이상한 생
각이 드는 거예요. 40년전에 같이 묻는 건데
약초장수의 시체만 안 썩었다는 사실을 깨닫
고 나니 섬뜩했어요. 우린 일단 뼈를 모두 주
워 밖으로 끄집어 냈어요.
1차 작업이 끝나자 소대장이 담배나 한대씩
피우라고 하더군요. 소대장은 아무래도 시체
를 소각장으로 옮기려면 담가를 가지고 와야
겠다며 밖으로 나갔어요.
나는 담배를 꺼내다가 주머니에 부적이 한
장 남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어요. 그
래서 재빨리 부적을 꺼내 시체로 다가가 이마
에 붙였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부적이 얼굴에
쩍 달라 붙더군요. 빨판이 달린 오징어처럼 말
예요.
저는 그때 부적을 붙이고 나서 다른 병사들
에게도 알렸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않았어요.
다른 병사들이 알아 봤자 겁만 더 먹지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죠. 나의 판단 착오로
엄청난 일이 일어났죠.
정 상병이 담배 꽁초를 버리고 플래쉬로 시
체를 비춰 보다가 부적을 발견한 거예요. 갑자
기 정 상병이‘이게 뭐지?’하고 다가섰죠. 그
러자 선임하사가‘뭔데 그래’하면서 뒤따라갔
어요.
내가‘만지지 마세요!’하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들은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죠. 내가
뛰어갔을 때는 정 상병이 이미 이마에서 부적
을 떼어들고 있었고, 선임하사는 정 상병 손에
들린 부적을 뺏으려다가 그만 부적을 찢고 말
았죠.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소대장이 담가를 들고
그때 들어선 거예요. 문이 열리는 순간, 바람
이 세차게 불었어요. 그와 동시에 타들어가고
있던 복숭아 나뭇가지가 회오리 바람에 휩쓸
려 밖으로 내동댕이 쳐졌죠.
녹슨 철문이‘덜컹!’하고 닫혔어요. 우리는
너무도 놀래 서로 말똥말똥 쳐다보고만 있었
어요. 한동안은 잠잠했죠. 나는 숨을 죽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바람이 불기 시작
했어요. 문은 닫혀 있는데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바람이 점점 세졌죠. 우리는 너무도 겁이 나
서 철문을 향해 달려갔어요. 손 병장과 내가
문을 열려고 힘을 써 봤지만 철문은 꿈쩍도 하
지 않았죠. 철문이 끄떡도 하지 않자 점점 공
포가 밀려 왔죠.
바람은 무서운 속도로 불고 문은 닫히지 않
으니 정말 사람 환장하겠더라고요. 모두들 철
문에 달려들어서 힘을 써 봤지만 역부족이었
어요. 손 일병이 뒤늦게 문에 붙은 부적을 발
견하곤 이게 뭐냐고 기겁을 하더군요. 저는 떼
지 말라고 다급하게 말렸어요. 그것까지 떼었
다가는 무슨 괴상한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는 사이에 갑자기 뚝 바람이 멎었어요.
너무도 조용해 슬며시 돌아섰죠. 바람이 놀랍
게도 회오리치면서 약초장수의 코로 빨려들어
가고 있는 거였어요. 아주 순식간이었죠.
내가 다시 돌아서서 문을 열려는 순간, 시체
가 벌떡 일어났어요. 손 일병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죠. 바지에다 오줌을 지렸는지 바닥
이 축축했어요. 시체가 어둠 속으로 스르르 사
라져 버렸죠.
겁이 났지만 플래쉬로 구석구석을 비춰 보
았어요. 아무것도 없어서 무심코 허공을 비춰
보았어요. 갑자기 뭔가 뚝 하고 떨어졌어요.
소대장이 엉겹결에 야전삽을 휘둘렀어요. 그
런데 삽의 목부분이‘퍽’하는 소리와 함께 부
러졌죠.
악령은 소대장을 솔개가 병아리를 채가듯이
순식간에 낚아채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랐어요.
플래쉬로 비춰 보았죠. 악령과 소대장이 한몸
이 되어 허공에 떠 있었어요. 소대장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 보였죠.
악령이 두 손으로 소대장의 얼굴을 쥐었어
요. 우리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멍하니 보고만
있었어요. 갑자기‘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소대장의 목이 거꾸로 돌아갔죠. 소대장의 눈
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어요. 그리곤 슬로 비
디오처럼 아주 천천히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
어요. 바로 우리 앞으로.
우리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등에 지켜보고 있
다가‘쿵!’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어요. 엄청
난 공포가 급습해 왔죠. 머리가 어질어질했어
요. 달아나야겠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 생각
도 없었죠.
본능적으로 문에 매달렸어요. 있는 힘을 다
해서 밀어 보았지만 꿈쩍도 안 했어요. 그때였
어요. 내 옆에 서 있던 손 일병이 뒤로 쑥 끌려
갔어요. 우리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손 일병이 살려 달라고 허공에서 절규를 했
어요. 하지만 우리는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요. 손 일병의 목도 마치 장난감 로보트처럼
간단하게 뒤로 돌아갔죠. 뼈마디가 부스러지
는 끔찍한 소리가 귓청을 긁었어요.
우리들은 공포로 제정신을 잃어갔어요. 선
임하사가 갑자기 허공으로 뛰어올랐어요. 벽
윗부분에 매달려 있는 환기창으로 탈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거죠. 그는 환기창에
매달리더니 순식간에 머리를 환기창 밖으로
집어 넣으려는 거였어요. 하지마 환기창 구멍
이 너무 작아 머리만 가까스로 빠져 나갔죠.
머리만 빠져 나가면 몸도 빠져 나간다고 하
던데 그렇지도 않나 봐요. 선임하사는 빠져 나
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목만 낀 채 바둥거
렸죠. 마치 목 잘린 시체를 보는 것 같았어요.
벽에 박혀 있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어요. 악령이 선임하
사의 다리를 잡고는 허공에서 돌려 버렸어요.
비명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죠. 잠시 위에 선임
하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어요. 목이 너덜
거렸죠.
이제 창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정 상병과
저뿐이었죠. 정 상병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곡괭이로 철문을 내리치기 시작했죠. 저는 부
적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는게 아닐까 해서 부
적을 떼려고 손을 가져갔어요.
부적은 판박이처럼 문에 쫙 달라붙어서 손
에 잡히지 않았죠. 저는 간신히 손톱으로 부적
을 떼어냈어요.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갑자
기 철문을 내리치던 정 상병이 확 돌아섰어요.
그리곤 입가에 침을 흘리면서 소리쳤죠.‘ 덤벼
라, 이 괴물아!’하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기름통을 기울여 곡괭이
자루에 붓는 거였어요. 라이터로 불을 켜자 곡
괭이에 불이 불었어요. 정 상병이 곡괭이 끝을
잡고 휘둘러 댔죠. 불 붙은 곡괭이가 죽은 시
체들을 비췄어요. 한번씩 휘두를 때마다 시꺼
먼 그림자가 아른거리는데 마치 지옥에 온 것
같았죠.
악령이 다시 공격을 해 왔어요. 순식간에 접
근을 했죠. 정 상병이 있는 힘껏 다가오는 시
꺼먼 그림자를 향해 곡괭이를 휘둘렀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곡괭이가 악령의 가슴팍에
박혔어요.
그런데도 악령은 꿈쩍 않고 정 상병을 허공
으로 끌고 갔어요. 곡괭이에 붙은 불로 인해서
지글지글 썩은 살이 타들어 갔어요. 정 상병이
살기 위해 바둥거리며 괴성을 질러댔어요.
우연히 정 상병의 공포에 질린 눈과 마주 쳤
어요. 제가 질끈 눈을 감는 순간, ‘우두둑!’하
고 목뼈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왔어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어요. 그러다가 뭐
에 걸려 넘어질 뻔했어요. 바로 소대장의 시체
였어요. 일어서려는데,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닭피와 함께 죽은 닭이 눈에 들어왔어요. 문
득, 악령이 지금까지 바닥을 한번도 밟지 않았
다는 생각이 들었죠.
맞아, 닭피 때문이야. 닭피는 땅의 악령을,
복숭아 나뭇가지를 태운 연기는 하늘의 악령
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었어! 그렇다면 방법을
하나뿐이야!
나는 생각과 동시에 죽은 닭을 잡기 위해 벼
락같이 몸을 날렸어요. 닭을 잡으려는 순간,
바로 앞에 뭔가가‘쿵!’하고 떨어졌어요. 정
상병이었어요. 목이 돌아가 기괴한 자세로 나
를 바라보는 정 상병의 시선을 외면하고 닭을
잡았어요.
닭을 들고 일어나며 대검으로 닭의 겨드랑
이를 길게 그었어요. 예상대로 피가 튀었죠.
나는 닭을 뒤로 감추고 있다가 악령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어요.
악령은 가까이 왔다가 멀어져 가고, 멀어져
갔다가 다시 가까이 오기를 반복했어요. 나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한 뒤에 공격하려는 것 같
았어요. 나는 악령의 가슴에 박혀 있는 곡괭이
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보고 악령의 위치를 알
수 있었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플래쉬 불빛이 서치
라이트처럼 두서없이 바닥을 어지러이 비추고
있었어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악령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어요. 악령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
위기를 느꼈는지 쉽게 공격해 오지 않았어요.
악령의 가슴에 박혀 있던 곡괭이가 가슴이
너덜너덜해지자 제 풀에 풀썩 바닥으로 떨어
졌어요. 한순간에 악령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죠. 저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플래쉬를
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그렇지만 한 손에
는 부적을, 다른 한 손에는 죽은 닭은 들고 있
었기에 그럴 수 없었죠.
놈은 나를 볼 수 있는데 나는 놈을 볼 수 없
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미칠 것 같았어요.
‘침착하자! 침착하자!’고 속으로 수없이 내뱉
으면서 어둠 속을 노려보았어요.
한순간에 놈이 와락 달려드는 것을 느꼈어
요.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들고 있던 닭을 놈
을 향해 휘둘렀어요. 닭피가 놈의 몸에 묻었는
지 깜깜한 어둠 속이었지만 놈이 주춤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저는 부적을 든 왼손을 지체없이 어둠 속으
로 불쑥 뻗었어요. 놀랍게도 부적이 앞으로 쭉
나아가더니 어딘가에 철썩 달라붙었어요. 이
어서‘쿵!’하는 소리가 들려 왔죠.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플래쉬를 들고 재빨리
비추어 보았어요. 부적은 놈의 코와 입을 막고
있고 놈은 시체처럼 뻗어 있었죠. 절로 한숨이
나왔어요. 저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털썩 주저
앉았어요.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숨만 헐떡이고 있었
죠. 그러다가 문득, 놈이 다시 일어설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악령이 몸을 숨기지
못하게끔 놈을 일단 소각시켜 버려야겠다고
판단했어요.
플래쉬를 이리저리 비춰 보니 기름통이 보
이더군요. 나는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서 기
름통을 들고와 놈의 전신에 부었어요. 불을 붙
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찾아보
았어요. 어디로 갔는지 없더군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아직도 바닥에
떨어져 타고 있는 불붙은 곡괭이가 보였어요.
나는 곡괭이를 들고와 놈의 가슴팍에다 힘껏
꽂았죠. 그러자 시체에서 불길이 치솟았죠.
일렁거리는 불길은 창고 안을 훤히 비추었
어요. 창고 안의 처참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
죠.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휴가 기분에
들떠 있던 젊은이들이 흉측한 시체로 변해 있
는 것을 보니 참으로 허탈하더군요. 병사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 오는 것만 같았어요.
나는 타고 있는 약초장수의 시체를 보며 겉
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삽을 쥐었어요. ‘으아악!’하는 괴성을
지르며 불에 훨훨 타오르는 시체를 향해 달려
들었어요.
삽을 힘껏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는데‘트드
득!’하는 기분 나쁜 괴성이 들려 왔어요. 저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죠. 한순간, 타오르고 있
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튀었어
요. 마치 크레모아가 터지듯이. 기겁을 해서 바
닥에 몸을 눕혔죠.
시체가 날아간 자리에서 거센 회오리가 불
어왔어요. 회오리 바람은 점점 속도가 빨라지
더니 나를 향해 다가왔죠. ‘위이잉’하는 마치
구천을 떠도는 악령의 원한 맺힌 울음소리와
함게 서서히 다가왔죠. 호흡하기도 곤란할 정
도로 강한 바람이었어요. 저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몸을 바닥에 최대한 대로
낮췄죠.
귓가에서 고통에 가득 찬,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회오리 바람 소리가 들려 왔어요. 그 소
리에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았죠. 마치‘왜 나를
막는 거야? 네 놈 때문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
가 버렸잖아!’하고 나를 질책하는 것 같았죠.
나는 귀를 꽉 막았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
을까? 바람이 잠잠해진 것 같아서 몸을 일으
켰죠. 회오리 바람은 나를 지나서 철문 앞으로
다가갔어요. 갑자기 철문이‘드르륵!’하고 기
분나쁜 소리와 함께 열렸죠.
회오리 바람은 열려진 문으로 나갔어요. 창
고 앞에서 다시 거센 바람을 일으키더니 서서
히 허공으로 떠올랐죠. 그리곤 어디론가 사라
져 버렸어요.
놈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
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 왔어요. 나는 그 자리
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었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창고 안은 불바다로 변해 있었어요. 빨리
탈출해햐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죠.
나는 몸을 일으켜서 열려진 문 밖으로 나왔
어요. 상쾌한 공기가 폐부 깊숙히 스며들었죠.
귓가에 부대의 비상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가 들
려 왔죠. 군화발 소리가 어지러이 들려 왔어요.
몹시도 목이 말랐던 터라 수돗가로 휘청거
리며 가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잡았어요. 나는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가다가 다시 의식을 잃
고 쓰러졌죠.
다시금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어요. 군의
관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더군요. 내가 의식을
되찾았다고 말하자 군의관 주변으로 많은 장
교들이 몰려 왔어요. 연대장의 모습도 보였죠.
연대장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묻더군
요. 저는 일단 팔에 꽂혀 있는 링겔부터 빼 달
라고 부탁했죠. 영양제였는지 군의관이 지체
없이 빼 주더군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끔
찍했던 간밤의 상황을 들려 주었죠.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더군요. 연대장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는 침통한 표정으로 일
어섰어요. 수고했다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의무
실 밖으로 나갔어요. 장교들이 모두 나가고 나
자 군의관이 걸을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내
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체 확인 좀 해 달라는
거예요.
나는 일어나서 의무실 한쪽으로 갔어요. 하
얀 휘장을 걷자 나란히 누워 있는 네 개의 침
대가 보였어요. 군의관이 하나씩 천을 걷었어
요. 불에 타서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시체는 소대장, 선임하사, 정 상병, 손 일병
순으로 누워 있었죠. 내가 모두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군의관이 서류를 내밀며 아래쪽에다
사인을 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곤 이제는 여
기서 나가도 좋고 계속 있어도 좋으니 마음대
로 하라는 거였어요.
나는 한시라도 빨리 지난밤의 끔찍한 악몽
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의무실을 나섰어요. 문
득, 창고에 한번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
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죠. 가까이 가 보니
창고는 완전히 전소돼서 사라지고 없었어요.
흔적만 남아서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었죠.
창고가 있던 자리에 서서 우두커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문득, 지난밤의 거센 회오
리 바람이 떠올랐죠. 이어서 정말로 악령이 사
라진 걸까, 하는 의혹이 들었어요.
약초장수의 육신은 사라져 버렸지만 원한으
로 뭉친 기(氣) 덩어리는 남아 있으니 다른 사
람의 육신을 빌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거죠. 간밤의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
를 치고 있는데 연대장 당번병이 허겁지겁 달
려왔어요. 연대장이 급히 찾는다는 거였죠.
연대장실로 가 보니 고급 장교들이 모두 모
여 있더군요. 장교들끼리 회의를 하고 있었나
봐요. 연재장은 나에게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
더니 수고했다며 봉투 하나를 내미는 거였어
요. 그러면서 당장 휴가를 떠나라는 거였어요.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연대장의 명령이고 해
서 경례를 붙이고 나왔죠. 봉투 안을 들여다보
니 만 원짜리가 열 장 들어 있었어요. 십만 원
이면 군대에서 주는 특별 격려금 치고는 상당
한 액수죠.
저는 휴가 신고도 없이 부대를 곧바로 떠나
왔어요. 부대를 나오자마자 임성수 씨를 찾아
다녔어요. 정말로 악령이 영원히 사라진 건지
무척 궁금했거든요. 이틀 동안 여기저기 수소
문하고 다녔지만 임성수 씨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죠.
포기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
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를 빨리 휴가 보낸
것은 뭔가 은폐하려는 속셈인 것 같았어요. 나
를 휴가 보내 놓고 재빨리 사건을 처리해 버리
겠다는 거겠죠.
장교 한 명에다 하사관 한 명, 사병 두 명이
죽은 정도의 사건이라면 보통 큰 사건이 아니
잖아요. 그런데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가는 미친놈 취급받을 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해서 나의 방화나 살인으로 조작했다가는 사
회적 파장이 너무 크겠고 해서 실수로 인한 단
순 화재 사건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나 봐요.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추측해 본 거예요.
그리고 참, 제가 휴가 신고하러 가려고 인사
과에 들렀더니 저는 2주 휴가가 아니라 3주 휴
가를 받은 거라 하더군요. 그러니까 1주일 전
부터 포상 휴가를 받아 휴가를 떠난 걸로 되어
있으니 2주 후에 원대 복귀하면 된다는 거예
요.
후훗! 참 우습죠? 서류까지 그렇게 꾸미고
나니, 악령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치
제가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있죠. 얼
굴이 이토록 하룻밤 사이에 팍삭 늙어 버리도
록 끔찍한 경험을 했으면서도 말이에요.
누군가 그랬다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고.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누군가 저에
게 10년 후에 그 일에 대해서 물으면 제가 정
말 그런 경험을 했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지 의
심스러워요.
철규는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는 길게 한숨
을 내쉬었다. 철규의 주름잡힌 얼굴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앉았다.
“임성수 씨를 찾는데 실패하고 나서, 이 이
야기를 영원히 묻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어
요. 저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먹었죠. 악령이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들었어요. 그래야지만 선량
한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철규의 음성은 허공으로 힘차게 날아오르지
못하고 강물 위로 맥없이 떨어졌다. 그리곤 강
물과 함께 하류로 하류로 떠내려갔다.
“엄 장군에 대한 소식은 그 뒤로 못 들었
어?”
“못 들었어요. 아마도 잘 있겠죠. 권력과 부
와 장수를 누리면서.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들
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악령이 존재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세상 참 불공형하군.”
“그래요. 저도 이 일을 겪고 나서 그런 생각
을 많이 했어요. 우리 시대에는 보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야겠죠.저는 이번 일을 통해서
너무 혼란스러워 졌어요..
그 악령이라는 것, 사실 그 사람은 피해자잖
아요... 강한자에 의해,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그리고 가해자는 행복하게 자기 삶을 누리
고...
악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졌어요..
그 약초장수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잃고 방
황하는 악령이 된 것이 이해가 되요.. 나라도
그렇게 했을테니까요... 그리고 장교들이 사건
을 은폐하는 것을 보고, 어쩌면 그 악령과 대
면 했을때보다 더 무서움을 느꼈어요.
진실이란 것이 힘있는 자의 편의를 위해
얼마나 왜곡되고 잘못 전달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세상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요...”
철규는 죽다가 살아난 사람처럼 회한섞인
말로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그러더니 바지를 털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앞으로 어디 갈 생각이니?
특별히 갈곳도 없잖아... 집에도...”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말실수 한 것을 느
꼈다. 하지만 철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대꾸했다.
“집에도 한번 들릴 셈이예요..
그리고 이번에 받은 충격을 치유할겸 여행
도 하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철규가 결코 집에
가지 않으리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철규는 그냥 떠나려는 것이다.
“야 임마, 너 돈 없잖아...이거 가지가고 나
중에 값어라.”
나는 지갑에 있는 돈을 다 털어주었다. 많
은 돈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철규
에게는 꽤 쓸모있을 정도였다. 철규는 거절
하지 않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그 돈을 받
았다.
“형 고마와요.. 꼭 돌려 들릴께요..
그리고 걱정마세요...
아 또 지영이에게 내 얘기 하지 마세요..그
냥 잘있다고 전해 주세요..
괜한 걱정하게 하기 싫어서요..
형, 지영이에게 잘 해줘요..
지영이 형 좋아하는 것 알죠?”
철규는 나를 놀래키는 말을 끝으로 나에게
작별을 고했다. 다시 한번 나는 선배로서의 무
력감을 느꼈다.
아니다, 어쩌면 작은 인간으로서의 무력감
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강은 모든 것에 초연한듯 흘러가고 있었
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