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과의 차이 중의 하나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내가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학교 앞 횡단 보도에서였다. 상쾌한 아침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나는 다른 많은 학생들과 함께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 아보았다. 한 사내가 유인물을 나눠 주고 있었 는데 유인물을 받아 든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 디씩 하느라고 시끌벅적했다. 유인물을 나눠 주는 사내는 삼십대 중반으 로 보였다. 얼핏 보었지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옷차림부터가 일반 사람들과 달랐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 가을 날씨임에도 불구하 도 그는 반바지에다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 다. 게다가 목에는 보자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머리는 덥수룩했고 면도를 며칠째 하 지 않았는지 수염이 무성했다. 그 사람은 점점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해서 그가 주는 유인물을 받아 보았다. 한순간, 그의 눈과 마 주쳤는데 파란 광채가 번득였다. 정신이상자 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등이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걸 어가면서 그가 나눠 준 유인물을 살펴 보았다. 인쇄물은 한마디로 조악했다. 직접 손으로 쓴 뒤에 복사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꾸불꾸불한 글씨를 읽어 나갔다.
* 어려울땐 슈퍼맨을 불러 주시오!! * 나는 이 거리를 수호하는 슈퍼맨이오.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를 부르시오. 그럼 내가 다 해결해 드리겠소. 이제부터 이 거리에 악한은 사라질 것이며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사람,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사라질 것이오. 나는 여러분들께 약속하겠소. 나의 생명을 다해 여러분을 지킬 것을. 슈퍼맨 올림.
걸어가면서 유인물을 읽고 난 사람들이 여 기저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피식 웃고 나 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칭‘슈퍼맨’은 여전 히 신호등 앞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인쇄 물을 나눠 주고 있었다. 그의 너무도 당당한 모습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교문 앞의 쓰레기통은 슈퍼맨이 나눠 준 유 인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꽤 이른 아침부 터 나와서 유인물을 나눠 준 모양이었다. 나는 쓰레기통 속에 유인물을 넣고는 교문으로 들 어갔다. 강의실 안은 온통‘슈퍼맨’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미국의 막강한 슈퍼맨에 비해 한국의 슈퍼 맨은 너무 초라한 것 같지 않아?” “다 그게 경제력의 차이 아니겠냐.” “미국의 슈퍼맨은 신문기자인데 한국의 슈 퍼맨은 직업이 뭘까?” “혹시 꿈을 찍는 사진사 같은 거 아닐까?” 하루 온종일 학교는 슈퍼맨의 이야기로 떠 들썩했다. 자가용을 타고 등교한 일부 학생들 은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한 채 겉돌아야 했다. 우리는 모두 그 날 아침의 일을 가을날의 해 프닝으로 여겼다. 정신병자가 멀쩡한 사람들 을 상대로 해서 벌인. 우리는 이내 그를 잊어버 렸다. 내가 다시 슈퍼맨을 본 것은 일주일 뒤였다.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는데 옆에서 걷던 지영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오빠 오빠, 저기 봐요. 슈퍼맨이 나타났어.” 지영의 호들갑에 고개를 돌려보니 슈퍼맨의 여전히 괴상한 복장을 하고서 뭔가를 치우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거 리를 두고 서 있었다. 나도 지영과 함께 그쪽 으로 갔다. 슈퍼맨은 공사장에서 쓰는 자재를 치우는 중이었다. 사실 인도에 쌓아 둔 공사 자재 때문에 걸어 다니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우리는 공사중이 니 으레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 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수퍼맨이 인도를 차지하고 있는 자재 를 공사 현장으로 바짝 붙여서 치우고 있는 중 이었다. “당신, 뭐야? 왜 남의 물건을 함부러 만지는 거야?” 수퍼맨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있는 데 안전 헬맷을 쓴 한 사내가 다가와서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의 뒤로 인부들이 하나, 둘 모 여들었다. 그들은 다수고 슈퍼맨은 혼자였지 만 그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큰소리로 그들을 꾸짖었다. “나는 슈퍼맨이요. 공사하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보행자를 이렇게 불편하게 한다면 이 수퍼맨이 용납하지 않겠소. 공사를 해도 보행 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써서 해야 될 것 아니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각별 히 유념하시오. 알겠소?” 너무도 당당한 외침이었다. 현장 사람들은 그의 옷차림을 내려다보다가 기가 막힌지 대 꾸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경꾼 중 누군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박수를 쳤다. 둘 러선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열렬 하게 박수를 보냈다. “옳소! 슈퍼맨을 국회로 보냅시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구경꾼들이 지지의 박수를 보내자 슈퍼맨이 백팔십도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젠장! 어쩐지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헬맷을 쓴 사내가 침을 뱉으며 돌아서자 인 부들도 순순히 돌아섰다. 수퍼맨은 작은 승리 에 고무되었는지 즉흥 연설을 했다. “앞으로 부조리한 일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이 슈퍼맨을 불러 주십시오. 내 생명을 바쳐서 라도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구경꾼들이‘와아!’하고 폭소를 터뜨리며 더 큰 박수를 쳐 주었다. 슈퍼맨은 상기된 표정으 로 다시 자재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로 슈퍼맨을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슈퍼맨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꺼 리를 제공했다. 슈퍼맨은 귀가하던 여자를 희롱하던 술에 취한 젊은이와 일대 격투를 벌이기도 했다. 결 국 슈퍼맨은 파출소까지 끌려 갔다가 훈방되 어 나왔다. 우리는 그 사건을 슈퍼맨 주연의 ‘쌍과부집의 결투’라 불렀다. 슈퍼맨과 싸웠 던 그 직장인이 쌍과부집에서 술을 마시고 나 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쌍과부집의 결투’가 있은 지 이틀 뒤에는 슈퍼맨 주연의‘도망자’사건이 있었다. 도망 자는 해리슨 포드가 아니라 우리 학교 학생이 었다. ‘도망자’는 라면집에서 맛있게 라면을 먹고 나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거나한 기분으로 담 배를 핀 그는 무심코 도로에 담배를 버렸고 그 광경을 발견한 슈퍼맨이‘제자리에 서!’를 외 쳤다. ‘도망자’는 조만간 망실살이 뻗칠 것을 예감했고, 이를 모면해 보기 위해서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슈퍼맨의 추적은 집요했다. 쫓고 쫓기는 대 접전이 벌어졌다. 결국 학교 안으로 도망자는 피신했으나 슈퍼맨은 추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진 추적 끝에 슈퍼 맨은 마침내 도망자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결 국 도망자는 슈퍼맨의 감시 아래 학교 안의 담 배꽁초를 모조리 주워야 했다. “어제 슈퍼맨은 뭐하고 지냈데?” 우리는 학교에 등교하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슈퍼맨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 우리 중 의 누군가가 직접 보거나 들은‘슈퍼맨 통신’ 을 들려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슈퍼맨과 직접 만나게 되었다. 술, 술 때문이었다. 나는 그 전날에도 폭음을 했었다. 원래 그날 은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친구들 에게 잡혀 술집으로 끌려갔다. 심신이 피곤한 상태에서 마신 때문인지 술 이 빨리 취했고 이내 필름이 끊겼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술집 골목에서 토악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아 괴로워하면 토해 내고 있고 있는데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나는 같이 술을 마셨던 친구 중의 한 명인 줄 알고 그의 도움을 받아 마저 토해냈다. 그런데 뜻하 지 않게 전혀 낯선 음성이 들려 왔다. “학생, 오늘 많이 마셨군. 뭔가 괴로운 일이 있나 본데 그런다고 술을 마시면 되나. 술을 마신다고 해서 괴로움이나 고민이 해결되는 게 아냐. 맨정신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해. 술 을 마시고 모든 것을 잊으려 하는 것은 일종의 회피야. 도망다니지만 말고 한번 부딪혀 봐.” 나는 고통스럽게 게운 뒤에 돌아보았다. 눈 물로 흐려진 시야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들어 왔다. 그는 바로 다름 아닌 슈퍼맨이었다. “집이 어디야?” 벽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부축하러 다 가왔다. “됐어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지구나 많이 지 키시라고요!” 정신 이상자로 생각하고 있던 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아무도 일종의 자존심 때문 이었으리라. 나는 비틀거리며 골목을 빠져 나갔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옆 으로 쓰러지려 하는데 슈퍼맨이 잡아 주었다. 바짝 쫓아온 모양이었다. “몇 번 타지?” 그는 나를 버스 정류장으로 데려가며 물었 다. 그의 도움을 더 이상 거절하기도 번거러워 서 집으로 가는 버스 번호를 댔다. 나는 골목을 빠져 나와 큰길에서도 몇 차례 걸음을 멈추고 토악질을 했다. 그때마다 슈퍼 맨이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버스가 왔어. 자, 타라고.” 슈퍼맨의 도움을 받아 버스에 올라탔다. 누 군가 나를 의자에 앉혀 주었다. “고맙습니다.” 말하고 나서 무심코 고개를 드니 슈퍼맨이 었다. “아니 집이 이쪽이세요? 저 바래다 주기 위 한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학생은 자기 몸이나 걱정해. 나는 학생같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돕는 슈퍼맨이야. 나는 슈퍼맨으로써 내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 부 담 갖지 마.” 나는 취중이었지만 그의 말에 심한 부끄러 움을 느꼈다. 멀쩡한 육신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술을 깨기 위 해서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버스가 도착했을 때 나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 기는 했지만. “아저씨, 저는 이제 술이 다 깼으니까 그만 돌아가세요. 조금 있으면 버스도 끊긴다고요”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슈퍼맨을 가까스로 설득해서 돌려 보냈다. 그와 헤어지고 나자 다 시금 취기가 몰려 왔다. 이튿날 눈을 뜨자 어젯밤의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학교에 가니‘슈퍼맨과 고주망태’라 는 한 편의 길고 긴 이야기가 쫘아악 퍼져 있 었다. 후배와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지만 나는 슈퍼맨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가 아니었 으면 나는 어젯밤 길거리에서 밤을 새웠을지 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한동안 슈퍼맨을 보지 못 했다. 중간고사가 가까워지면서 슈퍼맨에 대 한 학우들의 관심도 점차 식어 갔다. 내가 슈퍼맨을 다시 만난 것은 정류장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였다. 배가 출출해서 후배 와 함께 들어갔더니 슈퍼맨이 그곳에 앉아 있 었다. 슈퍼맨은 오뎅국물을 후루룩 소리내서 마시는 중이었다. 전에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던 터라 인사도 할 겸해서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잘 먹었습니다.” 그 순간, 슈퍼맨이 일어나더니 휘장을 걷고 나갔다. “배 고프면 언제든지 와요. 돈 안 받을 테니.” 주인 아주머니가 펄렁거리는 휘장을 향해 소리쳤다. 저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 았다. 나는 엉거주춤 서 있다가 후배 옆에 슬 그머니 가서 앉았다. “아주머니, 지금 나간 사람 아세요?” 나는 먹을 것들을 주문하면서 주인 아주머 니에게 물어 보았다. “아주 잘 알지.” “저 아저씨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던데.” “아주 불쌍한 사람이라우.교통 사고 때문에 그만 저렇게 됐다우.” “교통사고? 그게 언젠데요?” “아마 초 여름이었을 걸. 바로 요 앞길에서 사고가 났었지. 밖에서‘꽝!’하는 소리가 나길 래 나가 봤더니, 트럭과 승용차가 부딪힌 거 라. 소형차는 완전히 찌그러진 채 뒤집혀 있더 라고.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이 그러는데 트럭 운 전사가 중앙선을 넘어서서 달려오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는 거야. 아무도 트럭 운전사가 졸 았던 모양이야. 하도 큰 사고라서 모두들 승용차에 탄 사람 을 죽었을 거라고 혀를 차고 있었지. 그런데 뒤집힌 승용차에서 아까 왔던 그 사람이 피범 벅이 된 채 나오는 거야. 이마에서 핏줄기가 주루룩 흘러내렸지. 그런데 그 사람은 흐르는 핏줄기는 닦을 생 각도 않고 앞자리로 다가가는 거야. 차에서 연 기는 피어오르는데 차문은 열리지 않는 거라. 운적석에는 부인이 그 옆자리에는 열 살 남짓 한 딸이 타고 있었지. 그 사람은 차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차는 뒤집혀 있고 차문은 휴지처럼 찌그러져 있는데 열리겠어. 사람들은 자동차가 폭발할 까봐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 인심 한 번 사납 지.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데 구경만 하고 있 었으니.내가보다못해도와주려고다가갔어. 차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는데 너무도 끔찍 하더군. 부인은 피투성이가 된 채 운전대 위에 엎어져 있고, 딸애는 의자와 차 사이에 끼여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고 있었지. 그 사람은 손가락이 부러져라 차문을 잡아 당겨 보았지만 차문이 열려야 말이지. 차를 위 로 좀 들어올리면 차문이 열릴 법도 한데 내 힘으론 어림도 없더라고.내가 와서 좀 도와 달 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나서려고 하질 않 는 거야. 그러다 마침내 어린 딸이 기가 다 빠졌는지 이렇게 말하는 거야.‘ 아빠, 나 아파 졸립고. 자고 싶어 엄마 일어나면 나도 깨워 줘.’그 리곤 고개를 떨구었지. 그 사람은 야수처럼 울부짖었지. 눈 감으면 안 된다고. 조금만 참으라고. 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우.” 아주머니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다 휴지 를 빼서 코를 소리나게 풀었다. 그리곤 마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구조대가 왔을 때는 이미 그 사람은 실성한 뒤였지.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어 가는 딸애의 모습을 보고만 있었으니 오죽 했겠수. 망할 놈 의 인심.” 아주머니가 내미는 떡볶기 그릇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졌다. 인정많은 주인 아주머 니는 얘기 도중에 그 사람이 불쌍하게 생각드 는지, 훌쩍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불행한 사람에 대한 얘기는 계속했다. “몇 주전이었수다. 그 날이 바로 자릿세 주는 날이였수... 자릿세 뭔줄 알우? 이런 장사해 먹으려면, 쥐어줘야 하는 푼돈이유... 그런데 지난 달에 수입이 신동치 않아 그 날 준비 못했수... 돈 받으러온 깡패들이 뭐라고 소리치면서, 돈을 독촉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물벼락이 그 깡패들에게 쏟아지는 것이였수... 나는 놀라서 거길 봤수. 거기에는 그 교통 사고 당했던 사람이 이상한 옷을 입고 한 손에는 바께스를 들고 서 있었수... 그러더니 싸울 듯이 다가가는 깡패들에게 호통을 치는게야... ‘이 버러지 못한 놈들! 이 이상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면 이 슈퍼 맨이 용서 않겠다!’ 한 손에는 어디서 주었는지 모를 부러진 빗 자루를 들고 흔들어 대는 게유. 한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닌게 분명해 보였 수... 깡패들은 사람들도 모이고 미친놈이랑 상 대해봤자 덕볼고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말하고 갔쑤다. ‘재수없으려니까.. 아줌씨, 오늘 미친놈 때문에 운 좋은 줄 아 슈... 여기서 장사질 계속하려면, 다음주까지 돈 마련해 두슈... 그때도 아니면, 미친놈이 떼거기로 와도장 사는 끝인줄 아슈... ’ 결과야 어떻든 나는 그 미친 사람때문에 곤 경을 모면했수. 그리고 깡패들이 물벼락 맞는 것 보니, 통쾌도 하더구만. 그 사람은 눈앞에서 자기 가족이 죽는 걸 직접보 고 충격으로 돌아버린거유.. 그 후로 이 거리를 배휘하구 다니유.. 그래서 가끔 찾아오면 내가 먹을 것 해 먹 이고 있수다...” 나와 후배는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떡볶 이를 먹었다. 아주머니의 눈물과 함께.현장에 없었지만 마치 내가 슈퍼맨의 딸을 죽인 것 같 이 죄스러웠다. 거리의 수호자라기 보다는 어 릿광대에 가까운 슈퍼맨의 뒤편에 그런 사연 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슈퍼맨 이 더없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가족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었었던 한 사내 그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서 심한 좌절감을 느 꼈으리라. 결국 그 좌절감은 내가 만일 슈퍼맨 이었다면 가족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를 낳았겠고 결국 뼈 아픈 후회가 사내 로 하여금 슈퍼맨으로 돌변하게 하였으리라.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보자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삼십대 중반의 한 사 내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슈퍼맨이라는 이상을 통해서 참혹한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치는 중이리라. 하지만 내가 보건데 그는 결코 과거에서 벗 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보자기를 두르고 허 공을 날 수 없는 한 그는 결코 진정한 슈퍼맨 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슈퍼맨의 과거를 알은 뒤부터는 그의 우스 꽝스러운 모습이 더 이상 우습게 느껴지지 않 았다. 우리 시대의 칙칙한 얼굴같이만 느껴져 서 어떤 때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면 기분이 언짢아지기까지 했다. 나는 가급적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 노력했고 봐도 외면해 버리곤 했다. 이런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는 나의 시야에 자 주 잡혔다. 나는 한번은 그와 정면으로 부딪혔 는데 그날은 가을비가 오는 날이었다. 수없이 끝난 후 나는 술집에 가서 거리에 내 리는 가을비를 보며 혼자서 술을 마셨다. 심란 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술을 마셨는데 소 주 두 병을 비우고 나니 오히려 더 심란하기만 했다. 술도 취하지 않아 술집을 나섰다. 비닐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옮기 는데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 왔다. “이놈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다니 오늘 슈퍼맨에게 뜨거운 맛 좀 봐라!” 소리가 들려 온 쪽을 돌아보았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골목에서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안 으로 헤집고 들어가 보니 반바지에 보자기를 두른 반팔 차림의 슈퍼맨이 빗 속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 주위에는 험상궂게 생긴 사내 셋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거예요?”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대답은 뒤편에서 들려 왔다. “나쁜놈들! 저놈들은 이 동네 불량배들인데, 요 밑에 주점에서 술을 처먹고는 술집 유리창 을 깨고 나왔다오. 술값도 제대로 안 내고 말 이오. 게다가 길 가는 여자를 붙잡고 거리에서 회롱을 하는 게 아니겠소? 그때 마침 저 양반 이 나타난 거라오. 죽일 놈들.” “경찰서에 연락을 하지 그랬어요?” “아마 누군가 신고를 하긴 했을 거요.” 귀엣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사 내들은 슈퍼맨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슈퍼맨 이 맨 앞에 서 있는 사내의 따귀를 때렸다. 구 경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다른 사내 가 고개를 돌려 째려 보자 구경꾼들은 모두 잠 잠해졌다. “비도 오고 해서 기분도 지랄 같은데 어디서 이런 개뼉다구같은 자식이 나타나 가지고서는.” 왼쪽 볼에 길게 칼자국이 나 있는 사내가 손 바닥으로 주먹을 누르며 슈퍼맨에게 다가갔다 ‘우두두둑’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놈아, 나는 개뼉다구가 아니고 슈퍼맨이 야!” 슈퍼맨이 큰소리로 말했다. 구경꾼들이 모 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칼자국’이 한쪽 볼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없이 웃으면서 슈퍼맨에게 다가갔다. 다른 두 사내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고 있었다. 잠간 사이에 둘 사이에 팽팽 한 긴장이 흘렀다. 슈퍼맨 화이팅! 나는 마음속으로 슈퍼맨을 응원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슈퍼맨을 응원하는 눈치였다. 우린 모두들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기적은 일어 나지 않았다. ‘칼자국’이 커다란 동작으로 주 먹을 휘둘렀다. 나는 저런 주먹쯤은 가뿐히 피 하리라 예상했으나 슈퍼맨은 나의 예상을 깨 고 그 주먹에 턱을 맞고 이 미터 가량 허공에 붕 떠서 고인 빗물 위로 철퍼덕 나가 떨어졌다. 너무도 싱거운 결과였다. 슈퍼맨은 빗물을 흠뻑 뒤집어쓴 채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났다. 그가‘칼자국’에게 달려가 힘차게 주먹을 휘 둘렀지만 칼자국은 너무도 쉽게 피하며 그의 명치끝에 다시 주먹을 박았다. 링 위에서 쓰러 지는 복서처럼 슈퍼맨은 앞으로 맥없이 고꾸 라졌다. “이 상놈의 자식아, 네가 감히 내 뺨을 때 려?” 사내의 구둣발이 복부를 움켜쥐고 신음하는 슈퍼맨의 옆구리에 꽃혔다. 슈퍼맨은 허공으 로 붕 솟구쳤다가 공처럼 빗속을 떼굴떼굴 굴 러갔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구경하던 두 사 내도 달려들어 슈퍼맨에게 발길질을 하기 시 작했다. “저런 저런.” “쯧쯧!” “나쁜놈들.” 구경꾼들은 혀를 차거나 낮으막하게 욕을 퍼부을 뿐 아무도 나서서 그들을 말리려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리를 뜨는 사람도 없 었다. 마침내 슈퍼맨이 길게 뻗어 버리고 나자 사 내들은 슈퍼맨의 몸 위에 침을 뱉었다. 그리곤 구경꾼들이 가로막고 있는 한가운데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구경꾼들은 군소리없이 그들이 지나갈 수 있게끔 길을 터 줬다. 나는 빗속에 처참한 몰골로 뻗어 있는 슈퍼 맨을 보았다. 슈퍼맨은 엄마 뱃속의 태아처럼 허리를 잔뜩 움크리 채 빗물 위에 누워 있었 다. 보도블럭 위에 고인 빗물 위로 핏물이 섞 이고 있었다. “나쁜 자식들.큰형님뻘 되는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경찰은 여태 뭘하고 있는 거야? 사람이 저 지경이 되었는데.” “저런 놈들은 모조리 잡아서 상아밥으로 줘 버려야 해. 천하에 쓰레기 같은 놈들.” 사내들이 있을 때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구 경꾼들은 그들이 멀어져 가자 저마다 언성을 높여 한마디씩 했다. 그리곤 몇 사람이 쓰러져 있는 슈퍼맨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웠다. 나도 쓰러져 있는 그 사람에게 부축해주려고 다가 갔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온 몸에 심한 멍과 상처에 도 불구하고, 부축하려는 내 손을 사양하고 절 뚝거리면서 저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가만히 멀어져가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 심 한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꼈다. 그는 비록 미 쳤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했다 고 말할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에 우리들은 제정신인데도 그런 불의에 항거하지 못했다. 자기즐만의 안위를 위해 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제 정신인 것은 저기 걸어가는 슈퍼 맨이고, 미친것은 우리가 아닐까하는... 절뚝거리며 천천히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에 서 고독의 내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미쳐서 소 외된 모습에서 나온 고독이 아닌, 모두가 조용 히 덮어두고 피하려는 불의해 혼자 항거해, 따 돌림당하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의 고독감 이...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쯤 뒤에 나는 우연 히 슈퍼맨이 사는 집을 발견하였다.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학교 뒤 야산으로 산보를 갔다 가 우연히 허름한 텐트를 하나 발견하였다. 텐 트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불안하게 서 있었다. 이런 곳에다 누가 텐트를 쳐 놓았을까 궁금 해서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텐트 안에는 군 용 담요와 물통, 코펠 같은 것이 어지러이 널 려 있었다. 한참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 기 인기척이 났다. 나는 텐트 뒤편으로 재빨리 몸을 감췄다. 슈퍼맨이 저편에서 절뚝거리며 달려오고 있 었다. 그의 손에는 쓰레기통에서 주웠을 법한 낡은 곰 인형이 들여 있었다. 그는 텐트 안으 로 들어가더니 사진틀을 들고 나와 그루터기 에 걸터앉았다. “금비야, 오늘이 네 생일이지? 아빠가 백화 점에서 인형을 사 왔어. 어때 아주 마음에 들 지? 금비야, 아빠는 널 사랑한단다.” 슈퍼맨은 사진틀에다 연신 입을 맞추며 행 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곰 인형을 꼭 껴안 고 눈을 감고 있던 슈퍼맨이 슬그머니 눈을 뜨 더니 곰 인형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다시 사진틀 을 보았다. 눈물이 사진틀 위로 뚝뚝 떨어졌다. “여보, 거리는 지키기가 날이 갈수록 힘들구 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힘이 없어 고통 받는 사람이나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있 으면 꼭 구해 주겠노라고 약속했잖소? 나는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소. 금비야, 아빠는 다시 거리를 지키러 가야 해. 엄마 말씀 잘 듣 고 재미있게 놀고 있으렴.” 슈퍼맨은 다시 사진틀에다 입을 맞추고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슈퍼맨에게 들킬 새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숨어 있었다. 일주일 전 깡패들에게 맞아 얼굴이 퉁퉁 부 은 슈퍼맨이 다시 텐트 밖으러 나왔다. 그는 다 시 망토를 휘날리며 절뚝거리면서 달려갔다. 나는 슈퍼맨이 사라진 뒤에 다시 한 번 텐트 안을 살핀 뒤 학교로 되돌아왔다. 떨어지는 낙 엽을 밟으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몰래 침낭 이나 하나 갔다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이튿날 나는 학교를 오는 길에 등산용품 점에 들렀다. 그곳에서 때도 잘 타지 않고 질 기고 두터운 침낭을 하나 샀다. 어쩌면 나는 침낭 하나로써 그가 베풀어 준 호의를 대신하려거나, 그를 폭력 앞에 방치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달아나려 했던 것이었는 지도 몰랐다. 나는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하철에서 내려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 걸어가고 있 는데 갑자기 뒤에서‘꽝!’하는 소리가 들려 왔 다.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버스와 택시가 충 돌한 모양이었다. 버스는 도로에서 미끌어지더니 저만큼 가서 섰다. 택시는 인도변으로 밀려나다가 가로수 를 들이박고 뒤로 벌렁 넘어졌다. “사고다!” 사람들이 우르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택시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다가서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살아 있어!” 누군가 외쳐서 택시를 보니 반쯤 열린 유리 창 밖으로 나와 있는 손이 보였다. ‘살려 달 라’는 아수성과 함께 손이 꼼지락거리기 시작 했다. 손의 크기로 보아 아주 어린 아이의 손 이었다. 하지만 택시에는 불이 붙고 있어서 아무도 접근을 못 하고 있었다. 모두들 멀찍이 물러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순간, 구경꾼을 밀치며 한 사내가 절뚝거 리며 뛰어왔다. 설마 했는데 바로 그 슈퍼맨이 었다. 슈퍼맨은 조금은 망설임도 없이 불 붙은 택 시로 다가갔다. 문을 열려고 하다가 문이 열리 지 않자 그는 뒤집힌 택시를 들어올리려고 시 도했다. “어어? 저 미친 놈 봐라? 지 죽을 건 모르 고.” 지나가던 행인 중의 한 명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젊은이, 빨리 물러서!” 중늙은이가 다급히 손을 저었지만 슈퍼맨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택시 밑부분을 잡고 바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택시에서 흘러내린 기름에 불이 붙어서 택시를 달구었 는지 그의 손이 지글지글 타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이름 악 물 고 힘을 쓰느라 그의 이마에 파란 핏줄이 불끈 솟았다. “어어?” 택시가 조금씩 들어올려졌다. 처음엔 냉소하 던 사람들도 놀라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택시 주변의 불길은 점점 거세져, 슈퍼맨의 망토에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 “저런.” “아, 어떡하면 좋아!” 사람들이 초조한지 발을 동동 굴렀다. 불길 이 슈퍼맨의 전신으로 옮아갔다. 슈퍼맨은 조 금도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택시를 바라 세우 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아아악!” 슈퍼맨이 한순간,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은 그가 뜨거운 불길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 는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는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혼신의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 순간,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 다. 택시가 조금씩 조금씩 위로 들리고 있었 다. 택시와 슈퍼맨은 하나가 되어 활활 타오르 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 고 택시를 들어올렸다. 그가 가슴까지 택시를 들어올리자 거짓말처 럼 택시문이 열렸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삼십 대 주부가 나오고 열 살 남짓한 여자애가 나왔다. “와아!” 최면에 걸린 듯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 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그리곤 일제히 박수를 쳤다. 아이가 차에서 완전히 나오자 슈퍼맨은 택시를 놓더니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몸 위로 불길이 솟구쳤다. 마치 분신 자살을 기도한 사람처럼. “아아!” 구경꾼들이 한목소리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나는 순간 가슴에서 뭔가 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서, 정신없이 들고 있던 침낭을 팽개치고 가까 운 가게에 들어가서(나중에 알았는데, 비싼 구 두를 파는 가게였다) 점원의 만류에도 불구하 고 소화기를 들고 쓰러진 그에게 달려갔다. 소 화기를 켜서 우선 그에게 붙은 불을 껐다. 그 리고 택시에 붙은 불도 대충은 잡았다. 내가 불을 꺼자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곁으로 다가 왔다. 그 사람은 누가봐도 가망없이 보였다. 온몸 은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주위는 살타는 냄새가 가득찼다. 보기에 흉칙할 정도로 처참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탄 얼굴에서 이상하게도 행복한 웃음을 볼 수가 있었다. 분명 그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 다... 마치 자기 가족과의 약속을 이룬 사람처럼... 그 슈퍼맨은 자기의 죽음과 믿기지 않는 기 적을 일으켜 네명의 생명을 살려냈다. 거기에 는 자기 딸 또래의 여자애도 있었다. 그 슈퍼맨을 둘러싼 우리들 사이로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누가 말 안해도 그 침묵의 의미는 서로들 다 알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경외의.... 팽겨쳐져 있던 침낭을 바라보면서,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두터운 침낭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자신의 몸처럼 이웃을 돌볼 줄 아는 그런 시민이었더라면 그는 아내도 아이를 잃 지 않았으리라.그랬더라면 그는 우스꽝스러운 슈퍼맨이 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그랬더라면 오늘, 운전사도 그도 죽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그랬더라면 우린 무거운 얌심의 가책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그랬더라 면 우린 더 이상 비겁하지 않아도 좋은 것을 우리들에게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그 사람은 진정한 슈퍼맨이었던 것이다. 이기와 개인으로 똘똘 뭉친 우리들에게 희생이 뭔가 를 보여준 슈퍼맨이었다. 나는 쓰러져 있는 진정한 우리들이 슈퍼맨 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사람을 이렇게 이끈 것은 가족을 구하지 못 한 자책감의 보상이었나.. 아니면 개인주의로 무장한 우리들에게 내리치는 호통인가... 내 뒤에선 소화기 마음대로 써다고 보상하 라는 구두가게 주인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 다. 그 슈퍼맨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이 세상 에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 었다. 보라.. 진정한 용기와 삶은 이런거라고 말하 면서.... 그 사건은 며칠 동안 사람들에게 화제였다. 그 슈퍼맨의 숭고한 희생보다는 택시를 들어올린 괴력이 그 중심이었다. 그리곤 곧 잊혀졌다. 그 자리를 목격했던 사람들이 가끔씩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하는 얘기거리로 전락했다. 정신나간 슈퍼맨 얘기로... 나도 우리의 슈퍼맨의 얘기를 잊어갔다. 하지만, 때때로 불의가 자행되거나, 우리가 이기적인 생각에 몸을 사리고 있을 때면,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우스꽝스럽지만, 정의와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늠름한 그 슈퍼맨의 모습을 기대하 며.... <끝>
어느날 갑자기 2권 - 4. 슈퍼맨 이었던 사나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인간과 동물과의 차이 중의 하나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내가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학교 앞 횡단
보도에서였다. 상쾌한 아침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나는 다른 많은 학생들과 함께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
아보았다. 한 사내가 유인물을 나눠 주고 있었
는데 유인물을 받아 든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
디씩 하느라고 시끌벅적했다.
유인물을 나눠 주는 사내는 삼십대 중반으
로 보였다. 얼핏 보었지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옷차림부터가 일반 사람들과 달랐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 가을 날씨임에도 불구하
도 그는 반바지에다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
다. 게다가 목에는 보자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머리는 덥수룩했고 면도를 며칠째 하
지 않았는지 수염이 무성했다.
그 사람은 점점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해서 그가 주는
유인물을 받아 보았다. 한순간, 그의 눈과 마
주쳤는데 파란 광채가 번득였다. 정신이상자
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등이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걸
어가면서 그가 나눠 준 유인물을 살펴 보았다.
인쇄물은 한마디로 조악했다. 직접 손으로 쓴
뒤에 복사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꾸불꾸불한
글씨를 읽어 나갔다.
* 어려울땐 슈퍼맨을 불러 주시오!! *
나는 이 거리를 수호하는 슈퍼맨이오.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를 부르시오.
그럼 내가 다 해결해 드리겠소.
이제부터 이 거리에 악한은 사라질 것이며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사람,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사라질 것이오.
나는 여러분들께 약속하겠소.
나의 생명을 다해 여러분을 지킬 것을.
슈퍼맨 올림.
걸어가면서 유인물을 읽고 난 사람들이 여
기저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피식 웃고 나
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칭‘슈퍼맨’은 여전
히 신호등 앞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인쇄
물을 나눠 주고 있었다. 그의 너무도 당당한
모습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교문 앞의 쓰레기통은 슈퍼맨이 나눠 준 유
인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꽤 이른 아침부
터 나와서 유인물을 나눠 준 모양이었다. 나는
쓰레기통 속에 유인물을 넣고는 교문으로 들
어갔다.
강의실 안은 온통‘슈퍼맨’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미국의 막강한 슈퍼맨에 비해 한국의 슈퍼
맨은 너무 초라한 것 같지 않아?”
“다 그게 경제력의 차이 아니겠냐.”
“미국의 슈퍼맨은 신문기자인데 한국의 슈
퍼맨은 직업이 뭘까?”
“혹시 꿈을 찍는 사진사 같은 거 아닐까?”
하루 온종일 학교는 슈퍼맨의 이야기로 떠
들썩했다. 자가용을 타고 등교한 일부 학생들
은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한 채 겉돌아야 했다.
우리는 모두 그 날 아침의 일을 가을날의 해
프닝으로 여겼다. 정신병자가 멀쩡한 사람들
을 상대로 해서 벌인. 우리는 이내 그를 잊어버
렸다.
내가 다시 슈퍼맨을 본 것은 일주일 뒤였다.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는데 옆에서 걷던
지영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오빠 오빠, 저기 봐요. 슈퍼맨이 나타났어.”
지영의 호들갑에 고개를 돌려보니 슈퍼맨의
여전히 괴상한 복장을 하고서 뭔가를 치우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거
리를 두고 서 있었다. 나도 지영과 함께 그쪽
으로 갔다. 슈퍼맨은 공사장에서 쓰는 자재를
치우는 중이었다.
사실 인도에 쌓아 둔 공사 자재 때문에 걸어
다니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우리는 공사중이
니 으레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 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수퍼맨이 인도를 차지하고 있는 자재
를 공사 현장으로 바짝 붙여서 치우고 있는 중
이었다.
“당신, 뭐야? 왜 남의 물건을 함부러 만지는
거야?”
수퍼맨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있는
데 안전 헬맷을 쓴 한 사내가 다가와서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의 뒤로 인부들이 하나, 둘 모
여들었다. 그들은 다수고 슈퍼맨은 혼자였지
만 그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큰소리로 그들을
꾸짖었다.
“나는 슈퍼맨이요. 공사하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보행자를 이렇게 불편하게 한다면 이
수퍼맨이 용납하지 않겠소. 공사를 해도 보행
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써서 해야 될
것 아니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각별
히 유념하시오. 알겠소?”
너무도 당당한 외침이었다. 현장 사람들은
그의 옷차림을 내려다보다가 기가 막힌지 대
꾸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경꾼 중
누군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박수를 쳤다. 둘
러선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열렬
하게 박수를 보냈다.
“옳소! 슈퍼맨을 국회로 보냅시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구경꾼들이 지지의 박수를 보내자 슈퍼맨이
백팔십도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젠장! 어쩐지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헬맷을 쓴 사내가 침을 뱉으며 돌아서자 인
부들도 순순히 돌아섰다. 수퍼맨은 작은 승리
에 고무되었는지 즉흥 연설을 했다.
“앞으로 부조리한 일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이 슈퍼맨을 불러 주십시오. 내 생명을 바쳐서
라도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구경꾼들이‘와아!’하고 폭소를 터뜨리며 더
큰 박수를 쳐 주었다. 슈퍼맨은 상기된 표정으
로 다시 자재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로 슈퍼맨을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슈퍼맨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꺼
리를 제공했다.
슈퍼맨은 귀가하던 여자를 희롱하던 술에
취한 젊은이와 일대 격투를 벌이기도 했다. 결
국 슈퍼맨은 파출소까지 끌려 갔다가 훈방되
어 나왔다. 우리는 그 사건을 슈퍼맨 주연의
‘쌍과부집의 결투’라 불렀다. 슈퍼맨과 싸웠
던 그 직장인이 쌍과부집에서 술을 마시고 나
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쌍과부집의 결투’가 있은 지 이틀 뒤에는
슈퍼맨 주연의‘도망자’사건이 있었다. 도망
자는 해리슨 포드가 아니라 우리 학교 학생이
었다.
‘도망자’는 라면집에서 맛있게 라면을 먹고
나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거나한 기분으로 담
배를 핀 그는 무심코 도로에 담배를 버렸고 그
광경을 발견한 슈퍼맨이‘제자리에 서!’를 외
쳤다. ‘도망자’는 조만간 망실살이 뻗칠 것을
예감했고, 이를 모면해 보기 위해서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슈퍼맨의 추적은 집요했다. 쫓고 쫓기는 대
접전이 벌어졌다. 결국 학교 안으로 도망자는
피신했으나 슈퍼맨은 추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진 추적 끝에 슈퍼
맨은 마침내 도망자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결
국 도망자는 슈퍼맨의 감시 아래 학교 안의 담
배꽁초를 모조리 주워야 했다.
“어제 슈퍼맨은 뭐하고 지냈데?”
우리는 학교에 등교하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슈퍼맨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 우리 중
의 누군가가 직접 보거나 들은‘슈퍼맨 통신’
을 들려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슈퍼맨과 직접 만나게
되었다. 술, 술 때문이었다.
나는 그 전날에도 폭음을 했었다. 원래 그날
은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친구들
에게 잡혀 술집으로 끌려갔다.
심신이 피곤한 상태에서 마신 때문인지 술
이 빨리 취했고 이내 필름이 끊겼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술집 골목에서 토악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아 괴로워하면 토해
내고 있고 있는데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나는
같이 술을 마셨던 친구 중의 한 명인 줄 알고
그의 도움을 받아 마저 토해냈다. 그런데 뜻하
지 않게 전혀 낯선 음성이 들려 왔다.
“학생, 오늘 많이 마셨군. 뭔가 괴로운 일이
있나 본데 그런다고 술을 마시면 되나. 술을
마신다고 해서 괴로움이나 고민이 해결되는
게 아냐. 맨정신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해. 술
을 마시고 모든 것을 잊으려 하는 것은 일종의
회피야. 도망다니지만 말고 한번 부딪혀 봐.”
나는 고통스럽게 게운 뒤에 돌아보았다. 눈
물로 흐려진 시야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들어
왔다. 그는 바로 다름 아닌 슈퍼맨이었다.
“집이 어디야?”
벽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부축하러 다
가왔다.
“됐어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지구나 많이 지
키시라고요!”
정신 이상자로 생각하고 있던 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아무도 일종의 자존심 때문
이었으리라.
나는 비틀거리며 골목을 빠져 나갔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옆
으로 쓰러지려 하는데 슈퍼맨이 잡아 주었다.
바짝 쫓아온 모양이었다.
“몇 번 타지?”
그는 나를 버스 정류장으로 데려가며 물었
다. 그의 도움을 더 이상 거절하기도 번거러워
서 집으로 가는 버스 번호를 댔다.
나는 골목을 빠져 나와 큰길에서도 몇 차례
걸음을 멈추고 토악질을 했다. 그때마다 슈퍼
맨이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버스가 왔어. 자, 타라고.”
슈퍼맨의 도움을 받아 버스에 올라탔다. 누
군가 나를 의자에 앉혀 주었다.
“고맙습니다.”
말하고 나서 무심코 고개를 드니 슈퍼맨이
었다.
“아니 집이 이쪽이세요? 저 바래다 주기 위
한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학생은 자기 몸이나 걱정해. 나는 학생같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돕는 슈퍼맨이야. 나는
슈퍼맨으로써 내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 부
담 갖지 마.”
나는 취중이었지만 그의 말에 심한 부끄러
움을 느꼈다. 멀쩡한 육신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술을 깨기 위
해서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버스가 도착했을 때 나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
기는 했지만.
“아저씨, 저는 이제 술이 다 깼으니까 그만
돌아가세요. 조금 있으면 버스도 끊긴다고요”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슈퍼맨을 가까스로
설득해서 돌려 보냈다. 그와 헤어지고 나자 다
시금 취기가 몰려 왔다.
이튿날 눈을 뜨자 어젯밤의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학교에 가니‘슈퍼맨과 고주망태’라
는 한 편의 길고 긴 이야기가 쫘아악 퍼져 있
었다. 후배와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지만 나는
슈퍼맨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가 아니었
으면 나는 어젯밤 길거리에서 밤을 새웠을지
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한동안 슈퍼맨을 보지 못
했다. 중간고사가 가까워지면서 슈퍼맨에 대
한 학우들의 관심도 점차 식어 갔다.
내가 슈퍼맨을 다시 만난 것은 정류장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였다. 배가 출출해서 후배
와 함께 들어갔더니 슈퍼맨이 그곳에 앉아 있
었다. 슈퍼맨은 오뎅국물을 후루룩 소리내서
마시는 중이었다.
전에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던 터라
인사도 할 겸해서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잘 먹었습니다.”
그 순간, 슈퍼맨이 일어나더니 휘장을 걷고
나갔다.
“배 고프면 언제든지 와요. 돈 안 받을 테니.”
주인 아주머니가 펄렁거리는 휘장을 향해
소리쳤다. 저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
았다. 나는 엉거주춤 서 있다가 후배 옆에 슬
그머니 가서 앉았다.
“아주머니, 지금 나간 사람 아세요?”
나는 먹을 것들을 주문하면서 주인 아주머
니에게 물어 보았다.
“아주 잘 알지.”
“저 아저씨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던데.”
“아주 불쌍한 사람이라우.교통 사고 때문에
그만 저렇게 됐다우.”
“교통사고? 그게 언젠데요?”
“아마 초 여름이었을 걸. 바로 요 앞길에서
사고가 났었지. 밖에서‘꽝!’하는 소리가 나길
래 나가 봤더니, 트럭과 승용차가 부딪힌 거
라. 소형차는 완전히 찌그러진 채 뒤집혀 있더
라고.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이 그러는데 트럭 운
전사가 중앙선을 넘어서서 달려오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는 거야. 아무도 트럭 운전사가 졸
았던 모양이야.
하도 큰 사고라서 모두들 승용차에 탄 사람
을 죽었을 거라고 혀를 차고 있었지. 그런데
뒤집힌 승용차에서 아까 왔던 그 사람이 피범
벅이 된 채 나오는 거야. 이마에서 핏줄기가
주루룩 흘러내렸지.
그런데 그 사람은 흐르는 핏줄기는 닦을 생
각도 않고 앞자리로 다가가는 거야. 차에서 연
기는 피어오르는데 차문은 열리지 않는 거라.
운적석에는 부인이 그 옆자리에는 열 살 남짓
한 딸이 타고 있었지.
그 사람은 차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차는 뒤집혀 있고 차문은 휴지처럼 찌그러져
있는데 열리겠어. 사람들은 자동차가 폭발할
까봐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 인심 한 번 사납
지.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데 구경만 하고 있
었으니.내가보다못해도와주려고다가갔어.
차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는데 너무도 끔찍
하더군. 부인은 피투성이가 된 채 운전대 위에
엎어져 있고, 딸애는 의자와 차 사이에 끼여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고 있었지.
그 사람은 손가락이 부러져라 차문을 잡아
당겨 보았지만 차문이 열려야 말이지. 차를 위
로 좀 들어올리면 차문이 열릴 법도 한데 내
힘으론 어림도 없더라고.내가 와서 좀 도와 달
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나서려고 하질 않
는 거야.
그러다 마침내 어린 딸이 기가 다 빠졌는지
이렇게 말하는 거야.‘ 아빠, 나 아파 졸립고.
자고 싶어 엄마 일어나면 나도 깨워 줘.’그
리곤 고개를 떨구었지.
그 사람은 야수처럼 울부짖었지. 눈 감으면
안 된다고. 조금만 참으라고. 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우.”
아주머니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다 휴지
를 빼서 코를 소리나게 풀었다. 그리곤 마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구조대가 왔을 때는 이미 그 사람은 실성한
뒤였지.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어 가는 딸애의
모습을 보고만 있었으니 오죽 했겠수. 망할 놈
의 인심.”
아주머니가 내미는 떡볶기 그릇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졌다. 인정많은 주인 아주머
니는 얘기 도중에 그 사람이 불쌍하게 생각드
는지, 훌쩍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불행한
사람에 대한 얘기는 계속했다.
“몇 주전이었수다.
그 날이 바로 자릿세 주는 날이였수...
자릿세 뭔줄 알우? 이런 장사해 먹으려면,
쥐어줘야 하는 푼돈이유...
그런데 지난 달에 수입이 신동치 않아 그
날 준비 못했수...
돈 받으러온 깡패들이 뭐라고 소리치면서,
돈을 독촉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물벼락이 그 깡패들에게
쏟아지는 것이였수...
나는 놀라서 거길 봤수. 거기에는 그 교통
사고 당했던 사람이 이상한 옷을
입고 한 손에는 바께스를 들고 서 있었수...
그러더니 싸울 듯이 다가가는 깡패들에게
호통을 치는게야...
‘이 버러지 못한 놈들!
이 이상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면 이 슈퍼
맨이 용서 않겠다!’
한 손에는 어디서 주었는지 모를 부러진 빗
자루를 들고 흔들어 대는 게유.
한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닌게 분명해 보였
수...
깡패들은 사람들도 모이고 미친놈이랑 상
대해봤자 덕볼고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말하고 갔쑤다.
‘재수없으려니까..
아줌씨, 오늘 미친놈 때문에 운 좋은 줄 아
슈...
여기서 장사질 계속하려면, 다음주까지 돈
마련해 두슈...
그때도 아니면, 미친놈이 떼거기로 와도장
사는 끝인줄 아슈... ’
결과야 어떻든 나는 그 미친 사람때문에 곤
경을 모면했수. 그리고 깡패들이
물벼락 맞는 것 보니, 통쾌도 하더구만. 그
사람은 눈앞에서 자기 가족이 죽는 걸 직접보
고 충격으로 돌아버린거유..
그 후로 이 거리를 배휘하구 다니유..
그래서 가끔 찾아오면 내가 먹을 것 해 먹
이고 있수다...”
나와 후배는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떡볶
이를 먹었다. 아주머니의 눈물과 함께.현장에
없었지만 마치 내가 슈퍼맨의 딸을 죽인 것 같
이 죄스러웠다. 거리의 수호자라기 보다는 어
릿광대에 가까운 슈퍼맨의 뒤편에 그런 사연
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슈퍼맨
이 더없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가족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었었던 한 사내 그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서 심한 좌절감을 느
꼈으리라. 결국 그 좌절감은 내가 만일 슈퍼맨
이었다면 가족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를 낳았겠고 결국 뼈 아픈 후회가 사내
로 하여금 슈퍼맨으로 돌변하게 하였으리라.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보자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삼십대 중반의 한 사
내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슈퍼맨이라는 이상을 통해서 참혹한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치는 중이리라.
하지만 내가 보건데 그는 결코 과거에서 벗
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보자기를 두르고 허
공을 날 수 없는 한 그는 결코 진정한 슈퍼맨
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슈퍼맨의 과거를 알은 뒤부터는 그의 우스
꽝스러운 모습이 더 이상 우습게 느껴지지 않
았다. 우리 시대의 칙칙한 얼굴같이만 느껴져
서 어떤 때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면 기분이
언짢아지기까지 했다.
나는 가급적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 노력했고 봐도 외면해 버리곤 했다. 이런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는 나의 시야에 자
주 잡혔다. 나는 한번은 그와 정면으로 부딪혔
는데 그날은 가을비가 오는 날이었다.
수없이 끝난 후 나는 술집에 가서 거리에 내
리는 가을비를 보며 혼자서 술을 마셨다. 심란
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술을 마셨는데 소
주 두 병을 비우고 나니 오히려 더 심란하기만
했다.
술도 취하지 않아 술집을 나섰다. 비닐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옮기
는데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 왔다.
“이놈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다니
오늘 슈퍼맨에게 뜨거운 맛 좀 봐라!”
소리가 들려 온 쪽을 돌아보았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골목에서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안
으로 헤집고 들어가 보니 반바지에 보자기를
두른 반팔 차림의 슈퍼맨이 빗 속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 주위에는 험상궂게 생긴 사내
셋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거예요?”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대답은 뒤편에서 들려
왔다.
“나쁜놈들! 저놈들은 이 동네 불량배들인데,
요 밑에 주점에서 술을 처먹고는 술집 유리창
을 깨고 나왔다오. 술값도 제대로 안 내고 말
이오. 게다가 길 가는 여자를 붙잡고 거리에서
회롱을 하는 게 아니겠소? 그때 마침 저 양반
이 나타난 거라오. 죽일 놈들.”
“경찰서에 연락을 하지 그랬어요?”
“아마 누군가 신고를 하긴 했을 거요.”
귀엣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사
내들은 슈퍼맨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슈퍼맨
이 맨 앞에 서 있는 사내의 따귀를 때렸다. 구
경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다른 사내
가 고개를 돌려 째려 보자 구경꾼들은 모두 잠
잠해졌다.
“비도 오고 해서 기분도 지랄 같은데 어디서
이런 개뼉다구같은 자식이 나타나 가지고서는.”
왼쪽 볼에 길게 칼자국이 나 있는 사내가 손
바닥으로 주먹을 누르며 슈퍼맨에게 다가갔다
‘우두두둑’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놈아, 나는 개뼉다구가 아니고 슈퍼맨이
야!”
슈퍼맨이 큰소리로 말했다. 구경꾼들이 모
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칼자국’이 한쪽 볼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없이 웃으면서 슈퍼맨에게
다가갔다. 다른 두 사내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고 있었다. 잠간 사이에 둘 사이에 팽팽
한 긴장이 흘렀다.
슈퍼맨 화이팅!
나는 마음속으로 슈퍼맨을 응원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슈퍼맨을 응원하는 눈치였다.
우린 모두들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기적은 일어
나지 않았다. ‘칼자국’이 커다란 동작으로 주
먹을 휘둘렀다. 나는 저런 주먹쯤은 가뿐히 피
하리라 예상했으나 슈퍼맨은 나의 예상을 깨
고 그 주먹에 턱을 맞고 이 미터 가량 허공에
붕 떠서 고인 빗물 위로 철퍼덕 나가 떨어졌다.
너무도 싱거운 결과였다. 슈퍼맨은 빗물을
흠뻑 뒤집어쓴 채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났다.
그가‘칼자국’에게 달려가 힘차게 주먹을 휘
둘렀지만 칼자국은 너무도 쉽게 피하며 그의
명치끝에 다시 주먹을 박았다. 링 위에서 쓰러
지는 복서처럼 슈퍼맨은 앞으로 맥없이 고꾸
라졌다.
“이 상놈의 자식아, 네가 감히 내 뺨을 때
려?”
사내의 구둣발이 복부를 움켜쥐고 신음하는
슈퍼맨의 옆구리에 꽃혔다. 슈퍼맨은 허공으
로 붕 솟구쳤다가 공처럼 빗속을 떼굴떼굴 굴
러갔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구경하던 두 사
내도 달려들어 슈퍼맨에게 발길질을 하기 시
작했다.
“저런 저런.”
“쯧쯧!”
“나쁜놈들.”
구경꾼들은 혀를 차거나 낮으막하게 욕을
퍼부을 뿐 아무도 나서서 그들을 말리려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리를 뜨는 사람도 없
었다.
마침내 슈퍼맨이 길게 뻗어 버리고 나자 사
내들은 슈퍼맨의 몸 위에 침을 뱉었다. 그리곤
구경꾼들이 가로막고 있는 한가운데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구경꾼들은 군소리없이
그들이 지나갈 수 있게끔 길을 터 줬다.
나는 빗속에 처참한 몰골로 뻗어 있는 슈퍼
맨을 보았다. 슈퍼맨은 엄마 뱃속의 태아처럼
허리를 잔뜩 움크리 채 빗물 위에 누워 있었
다. 보도블럭 위에 고인 빗물 위로 핏물이 섞
이고 있었다.
“나쁜 자식들.큰형님뻘 되는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경찰은 여태 뭘하고 있는 거야? 사람이 저
지경이 되었는데.”
“저런 놈들은 모조리 잡아서 상아밥으로 줘
버려야 해. 천하에 쓰레기 같은 놈들.”
사내들이 있을 때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구
경꾼들은 그들이 멀어져 가자 저마다 언성을
높여 한마디씩 했다. 그리곤 몇 사람이 쓰러져
있는 슈퍼맨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웠다. 나도
쓰러져 있는 그 사람에게 부축해주려고 다가
갔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온 몸에 심한 멍과 상처에
도 불구하고, 부축하려는 내 손을 사양하고 절
뚝거리면서 저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가만히
멀어져가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 심
한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꼈다. 그는 비록 미
쳤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했다
고 말할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에 우리들은 제정신인데도 그런 불의에
항거하지 못했다. 자기즐만의 안위를 위해
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제 정신인 것은 저기 걸어가는 슈퍼
맨이고, 미친것은 우리가
아닐까하는...
절뚝거리며 천천히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에
서 고독의 내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미쳐서 소
외된 모습에서 나온 고독이 아닌, 모두가 조용
히 덮어두고 피하려는 불의해 혼자 항거해, 따
돌림당하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의 고독감
이...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쯤 뒤에 나는 우연
히 슈퍼맨이 사는 집을 발견하였다.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학교 뒤 야산으로 산보를 갔다
가 우연히 허름한 텐트를 하나 발견하였다. 텐
트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불안하게 서
있었다.
이런 곳에다 누가 텐트를 쳐 놓았을까 궁금
해서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텐트 안에는 군
용 담요와 물통, 코펠 같은 것이 어지러이 널
려 있었다. 한참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
기 인기척이 났다. 나는 텐트 뒤편으로 재빨리
몸을 감췄다.
슈퍼맨이 저편에서 절뚝거리며 달려오고 있
었다. 그의 손에는 쓰레기통에서 주웠을 법한
낡은 곰 인형이 들여 있었다. 그는 텐트 안으
로 들어가더니 사진틀을 들고 나와 그루터기
에 걸터앉았다.
“금비야, 오늘이 네 생일이지? 아빠가 백화
점에서 인형을 사 왔어. 어때 아주 마음에 들
지? 금비야, 아빠는 널 사랑한단다.”
슈퍼맨은 사진틀에다 연신 입을 맞추며 행
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곰 인형을 꼭 껴안
고 눈을 감고 있던 슈퍼맨이 슬그머니 눈을 뜨
더니 곰 인형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다시 사진틀
을 보았다. 눈물이 사진틀 위로 뚝뚝 떨어졌다.
“여보, 거리는 지키기가 날이 갈수록 힘들구
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힘이 없어 고통
받는 사람이나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있
으면 꼭 구해 주겠노라고 약속했잖소? 나는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소. 금비야, 아빠는
다시 거리를 지키러 가야 해. 엄마 말씀 잘 듣
고 재미있게 놀고 있으렴.”
슈퍼맨은 다시 사진틀에다 입을 맞추고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슈퍼맨에게 들킬
새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숨어 있었다.
일주일 전 깡패들에게 맞아 얼굴이 퉁퉁 부
은 슈퍼맨이 다시 텐트 밖으러 나왔다. 그는 다
시 망토를 휘날리며 절뚝거리면서 달려갔다.
나는 슈퍼맨이 사라진 뒤에 다시 한 번 텐트
안을 살핀 뒤 학교로 되돌아왔다. 떨어지는 낙
엽을 밟으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몰래 침낭
이나 하나 갔다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이튿날 나는 학교를 오는 길에 등산용품
점에 들렀다. 그곳에서 때도 잘 타지 않고 질
기고 두터운 침낭을 하나 샀다.
어쩌면 나는 침낭 하나로써 그가 베풀어 준
호의를 대신하려거나, 그를 폭력 앞에 방치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달아나려 했던 것이었는
지도 몰랐다.
나는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하철에서
내려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 걸어가고 있
는데 갑자기 뒤에서‘꽝!’하는 소리가 들려 왔
다.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버스와 택시가 충
돌한 모양이었다.
버스는 도로에서 미끌어지더니 저만큼 가서
섰다. 택시는 인도변으로 밀려나다가 가로수
를 들이박고 뒤로 벌렁 넘어졌다.
“사고다!”
사람들이 우르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택시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다가서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살아 있어!”
누군가 외쳐서 택시를 보니 반쯤 열린 유리
창 밖으로 나와 있는 손이 보였다. ‘살려 달
라’는 아수성과 함께 손이 꼼지락거리기 시작
했다. 손의 크기로 보아 아주 어린 아이의 손
이었다.
하지만 택시에는 불이 붙고 있어서 아무도
접근을 못 하고 있었다. 모두들 멀찍이 물러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순간, 구경꾼을 밀치며 한 사내가 절뚝거
리며 뛰어왔다. 설마 했는데 바로 그 슈퍼맨이
었다.
슈퍼맨은 조금은 망설임도 없이 불 붙은 택
시로 다가갔다. 문을 열려고 하다가 문이 열리
지 않자 그는 뒤집힌 택시를 들어올리려고 시
도했다.
“어어? 저 미친 놈 봐라? 지 죽을 건 모르
고.”
지나가던 행인 중의 한 명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젊은이, 빨리 물러서!”
중늙은이가 다급히 손을 저었지만 슈퍼맨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택시 밑부분을
잡고 바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택시에서
흘러내린 기름에 불이 붙어서 택시를 달구었
는지 그의 손이 지글지글 타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이름 악 물
고 힘을 쓰느라 그의 이마에 파란 핏줄이 불끈
솟았다.
“어어?”
택시가 조금씩 들어올려졌다. 처음엔 냉소하
던 사람들도 놀라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택시 주변의 불길은 점점 거세져, 슈퍼맨의
망토에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
“저런.”
“아, 어떡하면 좋아!”
사람들이 초조한지 발을 동동 굴렀다. 불길
이 슈퍼맨의 전신으로 옮아갔다. 슈퍼맨은 조
금도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택시를 바라 세우
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아아악!”
슈퍼맨이 한순간,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은
그가 뜨거운 불길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
는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는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혼신의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 순간,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
다. 택시가 조금씩 조금씩 위로 들리고 있었
다. 택시와 슈퍼맨은 하나가 되어 활활 타오르
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
고 택시를 들어올렸다.
그가 가슴까지 택시를 들어올리자 거짓말처
럼 택시문이 열렸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삼십
대 주부가 나오고 열 살 남짓한 여자애가 나왔다.
“와아!”
최면에 걸린 듯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
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그리곤 일제히 박수를
쳤다. 아이가 차에서 완전히 나오자 슈퍼맨은
택시를 놓더니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몸 위로 불길이 솟구쳤다. 마치
분신 자살을 기도한 사람처럼.
“아아!”
구경꾼들이 한목소리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나는 순간
가슴에서 뭔가 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서, 정신없이 들고 있던 침낭을 팽개치고 가까
운 가게에 들어가서(나중에 알았는데, 비싼 구
두를 파는 가게였다) 점원의 만류에도 불구하
고 소화기를 들고 쓰러진 그에게 달려갔다. 소
화기를 켜서 우선 그에게 붙은 불을 껐다. 그
리고 택시에 붙은 불도 대충은 잡았다. 내가
불을 꺼자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곁으로 다가
왔다.
그 사람은 누가봐도 가망없이 보였다. 온몸
은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주위는 살타는
냄새가 가득찼다. 보기에 흉칙할 정도로 처참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탄 얼굴에서 이상하게도
행복한 웃음을 볼 수가 있었다.
분명 그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
다...
마치 자기 가족과의 약속을 이룬 사람처럼...
그 슈퍼맨은 자기의 죽음과 믿기지 않는 기
적을 일으켜 네명의 생명을 살려냈다. 거기에
는 자기 딸 또래의 여자애도 있었다.
그 슈퍼맨을 둘러싼 우리들 사이로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누가 말 안해도 그 침묵의 의미는 서로들 다
알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경외의....
팽겨쳐져 있던 침낭을 바라보면서,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두터운 침낭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자신의 몸처럼 이웃을 돌볼 줄 아는
그런 시민이었더라면 그는 아내도 아이를 잃
지 않았으리라.그랬더라면 그는 우스꽝스러운
슈퍼맨이 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그랬더라면
오늘, 운전사도 그도 죽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그랬더라면 우린 무거운 얌심의 가책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그랬더라
면 우린 더 이상 비겁하지 않아도 좋은 것을
우리들에게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그
사람은 진정한 슈퍼맨이었던 것이다. 이기와
개인으로 똘똘 뭉친 우리들에게 희생이 뭔가
를 보여준 슈퍼맨이었다.
나는 쓰러져 있는 진정한 우리들이 슈퍼맨
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사람을 이렇게 이끈 것은 가족을 구하지 못
한 자책감의 보상이었나.. 아니면 개인주의로
무장한 우리들에게 내리치는 호통인가...
내 뒤에선 소화기 마음대로 써다고 보상하
라는 구두가게 주인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
다. 그 슈퍼맨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이 세상
에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
었다.
보라.. 진정한 용기와 삶은 이런거라고 말하
면서....
그 사건은 며칠 동안 사람들에게 화제였다.
그 슈퍼맨의 숭고한 희생보다는 택시를
들어올린 괴력이 그 중심이었다.
그리곤 곧 잊혀졌다. 그 자리를 목격했던
사람들이 가끔씩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하는
얘기거리로 전락했다.
정신나간 슈퍼맨 얘기로...
나도 우리의 슈퍼맨의 얘기를 잊어갔다.
하지만, 때때로 불의가 자행되거나, 우리가
이기적인 생각에 몸을 사리고 있을 때면,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우스꽝스럽지만, 정의와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늠름한 그 슈퍼맨의 모습을 기대하
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