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2권 - 5. 귀머거리

LoveHolic200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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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머거리

얘는 귀머거리예요...
가끔 할머니 목소리를 못 듣곤해요...
선생님, 대가로 어떤 것을 치루어도 좋으니
제발 치료해 주세요...
제발....
- 한 어머니의 절규에서

“일한아, 너 사람의 인체 부위중에서 사람이
죽을때까지 계속해서 자라는 부분이 어딘 줄
아니?”
“머리카락이나 손톱 그런 거 아니니?”
“그런데 말고 신체 부위..”
새벽 1시가 넘었을 때 였다. 내일로 닥쳐온
중간고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졸린 눈을 부비
고 공부하고 있었을 때였다.
갑자기 울린 전화기 소리에 잠이 확 깼다.
의대에 다니는 재원이었다. 그 자식은 작년
인가 이상한 정신병자의 얘기를 듣고 심령학
을 공부하겠다는등 이상한 곳을 들쑤시고 다
니던 놈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방학때의 짧은
객기일뿐, 개강을 하니 어쩔 수 없이 의대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리곤 바쁜 지 한동안 연락
이 없다 한밤중에 갑작스런 전화를 하더니, 이
것저것 얘기하다가 이 질문을 한 것이다. 아무
리 생각해도 어떤 부위가 끊임없이 성장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정답이 뭐야? 도저히 모르겠다.”
“바로 사람의 귀래. 좀 섬뜩하지.. 끊임없이
성장하는 귀라...
나도 처음 그 얘기를 교수님에게 들었을때
이유없는 섬뜩함을 느꼈다.”
“자식 한밤중에 전화해서 요상한 얘기하는
것은 여전하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야? 전화한 용건이...”
“특별한 것은 없고...
아니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얘기겠구나..
나 요즘 또 의사가 된다는 일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어.. 역시 의사란 쉬
운일이 아닌 것 같아...”
“또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전화기 넘어로 긴 한숨이 들려왔고, 잠시동
안 침묵이 흘렀다. 그제서야 알아차린 것인데,
재원이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취기가 느껴졌다.
좀처럼 술을 못하던 놈인데...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던 재원이가 이윽고 얘기를 시작했다.
“너, 내가 또 헛소리하고 이상한 생각한다
고 뭐라고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어...
과연 의사의 일이 무엇일까? 사람을 살리거
나 병을 치료하는 것...
그 과정에서 사람의 인성이 산산조각 나도
되는 것인가...
여하튼 잘 모르겠어...
이런 회의에 부딪히게 된 것은 그 애가 응
급실에 실려온 때부터 시작되었지...
겨우 마음을 다잡고 의대 공부에 재미를 붙
이려하고 있을 때였는데...
응급실 실습을 하고 있을 때였어.
응급실의 풍경이라는 것은 처절함 그 자체
란다. 특히 밤이 되면 그것은 심해지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의 수 많은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지..
교통사고로 머리가 부서지고 팔다리가 잘
려나간 피 범벅의 사람들...
술취해 싸우고 어딘가 찢어져서 온 사람
들...
만삭의 몸으로 응급실로 실려와 새생명을
탄생시키는 산모등...
정말 각양각색의 삶과 죽음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우리나라 응급실은 대부분 인턴이 주관하
고 있어. 그러다가 환자가 들어오면 담당
주치의에게 환자를 맡기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응급실은 너무 정신 없는 곳이라...
일본 같은 경우에는 응급의학 담당 의사가
있대. 그래서 응급실에 실려오는 모든 환자
를 대부분 응급실 전문 의사가 처리한대.
심지어는 모든 종류의 수술까지... 거의
만능 의사라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일본에는 만능 의사를 다룬 만화도 많잖아.
<블랙잭> 이라던가, <닥터 K> 등등.. 일본
이 응급실에 관해선 일본이 최고래더라...
미국도 응급의학이 있긴 하지만 조정자에
불과하고...우리나라도 마찬가지야...
그저 응급처지만 하고 나머지 치료는
담당의사에게 맡기는 거지... 그래서
응급실은 거의 인턴이 담당하고 있어...
특히 늦은 밤에는... 나도 처음에 응급실
실습을 돌게 되었을 때, 이제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잠자는 것도 포기하고
끔찍한 환자 들도 많이 봐야하니까...
첫날부터 장난이 아니었어.
나는 완전히 파김치가 되었지... 너무 힘든
일이었어...
배우는 우리가 이 정도 였으니, 담당 인턴
선배는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날 담당 인턴 선배는 준환이라는 형이었
는데, 평소에도 능력있고 사람좋은 사람이라
고 후배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한 형이라 좀 편
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일이
워낙 많으니, 뭐 그 형도 정신없어 하더라...
아, 그전에 우리병원에 나놀던 유령소문에
대해 얘기해줄께.
특히 응급실에서 많이 얘기되던...
무슨 얘기나 하면 시도 때도없이 휠체어가
혼자 움직이는 거야. 그런 휠체어 있잖아?
모터로 움직이는 자동 휠체어....
그런데 그 휠체어가 가끔 저절로 움직이곤
한다는 거야. 생각해 봐라. 음산한
병원 복도에서 아무도 타지 않은 횔체어에
마치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풍경...
아무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지만, 목격한
사람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어.
그리곤 거기에 대해 많은 소문이 나돌기 시
작했어...
수술중 의사의 실수로 죽은 환자의 원혼이
라는 얘기, 의사에게 농락당하고
자살했다던 B병동 정간호사의 귀신이라든
가...
그리고 그 사람 귀신이라는 얘기도 있었어.
내가 그전에 얘기 했던 그 사람 있잖아...
밀실공포중이 있던 그 엘리베이터 수리공의
유령이라는 설도 있었어... 그런 때 내가
응급실 실습을 돌게 되었던 것이야...
아,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래 준환이 형... 그 형은 성적도 좋고,
인간성도 좋고, 선배들도 아끼는 촉망받는
인재야...
그런데 몇 달전 부터 준환이형이 의대 공부를
그만둔다는 소문이 나돌곤 했어. 나는 그 형과
함께 응급실에서 실습하게 된거야...
나는 그 형에 대한 소문의 진상에 대해 알고
싶었어.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응급실에서는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았어.
실습 세 번째 날 밤이었을거야...
그날도 엄청 바빴어.
88도로에서 3중추돌 사고가 나서 많은 환
자가 응급실로 몰려 들었어...
그날 병원에 있던 의사들은 총동원될 정도
로 바빴지... 나같은 실습생도 정신없을 정도
였으니까...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응급실로
어린애 환자가 실려 오는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는데, 7살쯤 되
는 꼬마애가 앰블란스에 실려왔는데, 얼굴이
피투성이 였어. 마침 근처에 있던 준환이 형이
그 꼬마애에게 다가갔지... 그때가 밤 2시가
넘었을 시간이었을거야...
일손이 워낙 딸리니까, 인턴인 준환이 형이
우선 응급처치를 해야했나봐...
그런데, 정신을 잃은 꼬마애의 얼굴을 보는
순간, 준환이 형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는거야. 옆에서는 보
호자인듯한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당황
해하고 있었어.
그런데 준환이 형은 아무 것도 못하고, 멍하
니 있는거야. 나는 무슨 일인가하고, 하고 있
던 일을 옆 간호사에게 잠깐 부탁하고, 준환이
형쪽으로 다가갔어...
그 꼬마애의 얼굴의 양옆은 피로 뒤범벅되
어있었어. 자세히 보니, 얼굴에서 피가 난
것이 아니라, 양쪽 귀에 연필 같은 것이
박혀 있던 거야. 피는 거기서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태였어...
나도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준환이 형이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지, 그 꼬마 환자에게
다가가 뭔가 능숙하게 응급처치를 한 다음에,
담당 의사를 호출했어. 궁금해 하는 보호자에
게 준환이형은 이제 곧 담당의사가 올 것 이니
걱정말라며, 오히려 보호자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었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보호자들 말로는 갑자
기 자고 있는데, 애 방에서 비명소리가 나서
달려가 보니, 양쪽 귀에 연필이 꼿힌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는 거야...
준환이 형은 뭔가 생각하는 듯이 보이더니,
이내 보호자들을 안심시켰어...
곧 담당선생님이 오시고, 그 아이는 응급실
을 떠나 수술실로 향했지...
준환이 형은 응급실 담당인데도 불구하고
그 애 수술실까지 따라 들어갔다 왔어. 마치
아는 아이 같더라...
그 애 수술실에서 돌아온 준환이 형은 바쁜
일에도 불구하고 얼빠진 사람처럼 가만히 한
숨만 내쉬고 있는 거야....
너무 이상해서, 내가 물었지... 무슨 일이냐
고...
준환이 형이 완전히 축쳐진 목소리로 대답
하더라.
‘휴.... 그 애... 완전히 고막이 짓이겨 졌더
구나...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되겠지.... 자칫하면 뇌
손상까지 올뻔 했으니까...
그렇게 될 때 어린 것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오죽 했으면 그랬을까....
제기랄! 이게 다 의사라는 직위에서 나오는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내가 만들어낸 비극이
야! 비극....
사람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게 사람을 치료
하겠다고!
나는 자격이 없는 놈이야....’
준환이 형은 알 수 없는 넋두리를 늘어 놓
았어. 나는 이해할 수가 없더라.
다시 물어봤지. 그러니까 준환이 형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렇게 얘기했어.
‘너, 재원이라고 했지... 지난학기 네 얘기
언뜻 들은 것 같구나.
너도 혹시 의사에 길에 회의를 느껴 딴 길
을 생각해 보았다고 했지...
지금 내가 그렇게 되었구나...
휴... 오늘 밤일 끝나면 나가서, 아침이나
먹으면서 얘기 좀 할까....’
호기심도 생기고 평소 좋은 사람이라던 준
환이 형과의 자리라 나는 마다하지 않았어. 새
벽 6시쯤 되자, 응급실도 좀 한가해지고, 우리
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병원앞에 있는 해장국
집으로 향했어.
그 국밥집은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병
원에서 밤샘을 한 환자 가족, 간병인, 의사들
로 북적되었어.
준환이 형은 구석자리에 앉더니, 다자고짜
소주를 시키는 거야.
난 좀 놀랐지.
‘야, 가끔은 이렇게 새벽 술이 필요할 때가
있어.
오늘 같은 날은 말이지....
너는 국밥이나 먹어라. 나는 김치찌게를 안
주 삼아 한잔 해야겠다.’
준환이 형은 정말 심한 고민이라도 있는 것
처럼 썬득한 새벽녘에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
어. 나는 분위기에 눌려 아무말도 못하고 국밥
만 먹었어.
‘야, 너도 식사가 다 끝났으면 한잔 받아라.
혼자 취하긴 싫구나.’
어쩔 수 없이 나도 새벽부터 술을 마시게 되
었어. 몸이 피곤했는지 몇잔 마시지도 않았는
데, 금방 술이 돌더라. 너도 알잖아? 나 술 잘
못하잖아.
준환이 형도 빈속에 들이켜서인지, 곧 취하
더라.
그리고 얘기를 시작했어.
찝찝한 얘기더라...
‘너 임마, 의사가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
니?
돈, 명예, 보람, 권위, 일등 신랑감, 박애...
웃기지 마라! 단지 이기와 허위로 가득찬 위선
의 결정체지...
환자를 치료할 때, 의사가 동등하게 환자를
취급하는 것 보았니?
나 자신도 학생일때부터 그런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너도 물론 그렇겠지... 그럴 수 밖에 없을
거야.
우리가 배우는 것이 다 그런 것들이니까...
나도 그것이 올바른 진리라고 생각했어. 그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어느정도의 합리성을
가진 것이라고 위안했지....
하지만 그런 것만은 절대로 아니더라.
이 얘기 좀 들어봐라.
오늘 귀에 연필이 찔려 들어온 그 꼬마애,
내가 2달전에 만났던 애야.
응급실에서... 그 애의 엄마와 같이...
제기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때는 그것이 의사로서의 최고의 선택이
라고 생각했는데...
그날도 바쁜 날이었어.
새벽 3시쯤 되었을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응급실 문이 열리며 7살쯤
꼬마애를 데리고 어떤 아주머니가 들어왔어.
나는 무슨 일인가 했지.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다짜고짜 의사를
찾더니 자기 아이가 큰 병이 났다는 거여. 나
는 우선 아이를 진찰대에 눕히고 아이 엄마에
게 무슨 병이냐고 물었지.
황당한 대답이 나오더구나.
자기 아이가 귀머거리가 되었다는 거야.
이상하지 않겠니? 새벽에 응급실에 와서,
자기 애가 귀머거리니까 치료해 달라는 자체
가. 나는 지금 이런 치료는 안 되니 내일 한 번
이비인후과로 가보라고 했지.하지만 그 어머
니는 막무가내였어. 무조건 자기 아이 귀를 치
료해달라는 거야. 무슨 대가를 치루어도 괜찮
다면서 간곡히 부탁하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내가 대강은 봐주기로 했어.
우선 어머니에게 아이의 증세를 물어 보았어.
엄마의 말로는 평소에는 정상적으로 모든
소리를 잘 듣는 것 같은데, 할머니가 말하는
것은 전혀 못 듣는다는 거야. 좀 이상한
증세같더라.
무슨 심리적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이의 귀를 검사해 보았지. 아이는
어린애같지 않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가만
히 앉아 있는 거야.
두리번 거리거나, 무서워 하는 기색없이 아
무 말없이 우리들의 얘기를 못 듣는 것처럼
조용히 앉아있었어.
그 애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도
측은한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우선 청력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 전혀 이상
없었어.
귀를 보았는데, 고막등 기관에도 특별한 이
상이 안 보였어.
애 엄마는 계속해서 할머니에 대해 설명을
했어. 할머니의 말이 거칠다는 거야. 욕도 심
하게하고, 사투리도 심하고... 그리고 자기와
많이 다툰다는 거야. 그래서 언성을 높일 때도
많은데, 아이는 전혀 못 듣는다는 거야. 가끔
은 할머니가 아이에게 뭐를 시켜도 전혀 알아
듣지 못 한다는 거야. 나는 그 아이가 무언가
심리적 압박으로 인한 청력장애를 겪는 것으로
생각했어.
아이에게 내가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물어
보았어.
너 전혀 이상없이 모든 소리 들을 수 있지
라고... 그랬더니 아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
였어. 좀 이상했어. 분명히 아이의 귀에는 아
무 이상도 없었거든... 그래서 할머니와의 관계
로 인한 스트레스가 청력저하의 원인으로 간
주했지. 어머니에게 물어 보았어.
그 할머니와는 같이 사시냐고....
애 엄마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어.
이 애 할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처음에 나는 그 대답의 의미를 이해못했어.
그 의미를 깨닫는 순간 큰 충격을 느꼈어.
애에게는 아무 이상도 없었던 거야.
이상이 있었던 건 그 애 엄마였던 거야.
미쳐있던 거지... 아니, 나는 그렇다고 생각
했어.
설마 할머니 귀신이라도 나온다는 것은 아
닐거 아냐....
나는 유심히 그 엄마를 관찰하였지. 그 광
기어린 눈빛이며, 안절 부절 못하는 행동이
며... 뭔가 수상해 보였지.
나는 조심스럽게 애 엄마에게 말을 건네며,
그녀의 증세를 관찰하였어.
심한 정신 질환자로 생각되었어. 그래서
나는 잠깐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그 자리를
떠, 정신병동에 연락했지. 힘센 간호사들 좀
보내 달라고... 그 때 나의 생각은 강제라도 그
엄마를 입원시키던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
어. 정신이 나간 엄마와 같이 사는 아이를 위
해서라도... 내가 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 엄마
는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었는지, 나를 경
계하기 시작하면서 나갈 준비를 하는 거야. 나
는 어려운 병명을 대며, 마치 아이의 귀와 관
계있는 것처럼 떠벌리면서 시간을 끌었지. 엄
마는 아이 귀에 관한 이야기라니 떠날 생각은
접어 놓고 듣고만 있더라... 모성애란... 휴...
이윽고 정신과 김선배와 간호사들이 도착했
어. 그리고 정중하게 그 엄마에게 잠깐 진찰을
받아보라고 권했지. 그제서야 모든 것을 알아
챈 엄마는 격렬하게 반항했어. 정말 미친사람
소리를 치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야. 그리곤 나
를 무시무시한 증오의 눈으로 바라보는 거야.
간신히 간호사들이 양쪽에서 그 엄마를 잡았
을 때, 그 아이가 엄마를 구하려 달려들었어.
처절하게 울면서...
엄마! 엄마... 우리 엄마 나 줘요! 하던 그
아이의 처절한 울음소리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던 그 모자의 결사적
인 모습을 보고 내가 과연 올바른 행동을 했나
라는 회의도 들더군... 휴...
결국 엄마는 끌려가고, 나는 울다 지친 아
이를 박간호사에게 부탁했어.
떠나가던 그 아이의 그 원망의 눈빛은 내
가슴을 송곳처럼 찔러왔어.
나는 그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
사실 내가 한 행동은 어쩌면 과잉행위였을
지도 모를 거야. 대부분의 의사가 그런 경우에
는 아무 조치없이 환자를 돌려보내고 덮어두
지...
나는 그러기 싫었거든. 뻔히 정신질환자라
는 것을 알고 모른척 할 수가 없었어. 그 아이
의 미래를 위해서도 나는 옳은 판단을 내렸다
고 자위했어. 다음날 아침, 그 애 엄마는 심각
한 정신 질환자로 판명되어 병원에 강제 감금
되었어. 아이는 다른 가족에 양육조치 되야했
어. 가까운 가족이란 아무도 없이 간신히 찾아
낸 6촌 아저씨 댁에 부탁되었지. 그것도 싫다
는 것을 간신히 했어. 그쪽도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라. 아마 아까 보호자로 병원에 왔던
그 사람들일거야....
나는 그 일을 책임지고 다 처리했어. 동료
들이 비웃기도 하더라.
그런 일에 시간을 투자한다고... 하지만 나
는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라 최선을 다해 일
을 처리했지.
그리곤 그 일을 거의 잊었지.
아니다! 가끔씩 악몽에 그 아이의 원망스런
얼굴이 보일때도 있었지....
그러다가 그 애가 귀에 연필을 박은채 응급
실로 실려온 거야.
처음에 그 애를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다른 부위도 아니고
귀에 그런 깊은 상처를 입고 실려오다
니......
보호자들에게 물었더니, 계속 우울하게 지
내더니 결국 일저질렀다고 하더라. 누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 꼬마애 자신이 날카로운 연필
로 자기 귀를 찌른거야! 제기랄...
나는 정신없이 그 피투성이 아이의 귀에서
연필을 뽑아내고 지혈을 했어. 그리고 수술실
로 옮겼지.
그런데 수술실로 옮기던 도중 그 애가 잠시
정신을 차렸어.
그러더니 나를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내 착각이 아니었다면, 그 아이는 득의의 미
소를 띠고 있었어.
마치 그렇게도 원하던 것을 갖게된 순간처
럼....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의사 아저씨, 나 이제 귀머거리니 우리엄마
풀어줘요...
그 아이는 말야! 엄마를 보기 위해 자기 귀
를 멀게 한거야.
엄마가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
려 한거야.
내가 그 모자에게 그렇게 몹쓸 짓을 한거야!
나는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거야.
위선적으로...
정신병이니 무조건 아이와 엄마를 격리시
키는 것이 재고의 여지없이 절대적으로 옳다
고 생각했던 거야...
병신! 뭐가 제일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도 못
하고...
나는 이제 평생동안 커다란 짐을 지고 살 수
밖에 없는거야...
흐...흑흑...
그러더니 준환이 형은 식탁위에 엎드려 한
참을 흐느꼈어. 그 형의 그런 모습을 보니,
나 역시 커다란 회의를 느끼게 되었어.
준환이 형은 그 이후 그 아이와 정신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편지만을 남
긴채 인턴을 그만두고 병원에서 사라졌어.
집으로 전화를 몇번 해 보았지만, 여행을
떠났대...
휴... 끔찍한 얘기 아니니...”
나도 재원이의 얘기를 듣고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선망의 대상인 의사도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한다니... 눈앞에 귀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엄마를 찾는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름마저 끼치는 것 같았다.
“그랬구나... 그런 일이...
너도 꽤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의사라는 것은 그런 어려움도 겪으
면서 되는 것 아니니...
너무 쉽게 너의 길에 대해 회의를 갖는 것
은 글쎄다......
너무 성급한 것 아니니?”
“만약에 그 애 일이 그냥 그렇게 끝났다면
나도 그렇게 심하게 고민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마무리지어지 않았
어...
그것도 바로 내가 목격했지...
너도 알잖아? 내가 지난 겨울에 빠졌던 그
딜레마...
이번에도 그런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어.
제기랄! 이것도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재원이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격양되었다.
나는 재원이의 말에 그 자식이 지난 겨울에 경
험했던 미치광이 엘리베이터 기술자와의 만남
이 떠올랐다.
이미 죽어버린...
재원이가 뭔가 또 이상한 경험을 한 것같았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누르며 일부러 농
담조로 말을 던졌다.
“너 아까 처음에 얘기했던 혼자 움직이던 휠
체어 유령을 본 것이냐?
달걀 귀신은 들어보았지만, 휠체어 귀신은
처음이다.
휠체어 귀신은 어떻게 생겨 먹었냐?”
“자식, 그런거 아냐... 휠체어 귀신이라...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그 휠체어 유령
소동은 황당하게 해결되었어.
자꾸 그런 일이 발생해서, 휠체어 기술자까
지 불렀지.
하지만 원인이 찾아내지 못했어. 그런데 답
은 엉뚱한 데서 나왔지.
레지던트 선배 중에 하나가 쓸 일도 거의 없
으면서 휴대폰을 하나 사서 매일 병원에서
자랑하고 다녔거든. 그래. 그 유령의 정체는
휴대폰이었어.
그 선배가 휴대폰으로 통화할 때마다 휠체어
가 영향을 받아서 움직였던 거야. 거의 같은
주파수로 작동이 가능했나봐...
덕분에 그 선배는 과장님에게 엄청 혼나고,
병원에서는 휴대폰 사용을 금지 당했지...
우숩지 않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유령의 정체가 첨단과학의 산물인 휴대폰이
었다는거...
하지만 내 얘기는 휴대폰 얘기가 아냐...
아까 그 애 얘기이지...
준환이 형이 그렇게 사라진지 며칠 후, 나
는 호기심반 걱정 반으로 그 꼬마애의 병실로
찾아갔지. 그 애는 생명도 건지고 의식도 회복
했지만, 청력은 백퍼센트 상실되었대... 불쌍
한 생각도 들고 해서... 그 애는 운좋게 독실을
쓰더구나. 아마 준환이 형이 자기돈을 들여서
독실로 입원실을 옮겨주었나 봐.
나는 그 애를 뭐라고 위로할까 생각하고 병
실 방문을 열었어.
그 애는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전혀 못들었
는지, 문 반대쪽을 쳐다보면서
내 쪽은 돌아볼 생각도 안하는 것 같았어.
의식을 회복했는지 자그마한 상체를 일으켜
병실 한구석을 바라보고 있었어. 양쪽 귀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나는 그 애에게 내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리
기 위해 다가가다가, 정말 기괴한 광경을 보게
되었어.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는 그 아이가 허공에다
대고 마치 거기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처럼
대화를 하고 있는 거야.
처음에는 혼잣말로 지껄이는 것인줄 알았
지....
그런데 귀를 기울여 들은 그 애의 얘기는 결
코 혼잣말이 아니었어.
‘할머니, 이제 할머니 말 잘들리게 되었어요.
역시 엄마 말이 맞었어요. 이제 우리 엄마
보러 가요.
할머니....’
난 도저히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되
었어.
제기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