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깎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피가 '머슴머슴' 피어오른다. 선홍빛 핏방울들. 그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빛깔! 메마른 입술로 상처를 달콤하게 빨아본다. 촉촉히 입술에 젖어드는 싱싱한 핏방울들.
2
처음으로 그를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마치 봄햇살처럼 눈부신 빛을 발하던 그의 환한 미소를, 아주 잘 기억한다. 그렇다고,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만만치않은 빛을 발하던 결혼 반지를 보지 못한 건 아니다. " 난 유부남이야. 넌 항상 나의 첫번째가 될 수 없어. 그래도 날 사랑할 수 있겠어?" 그의 협박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들 이반의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면, 난 특별해지고 싶었다. 조금은 위험하고, 조금은 도발적이며, 조금은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가벼운 그런 사랑. 수년간 쌓아 온 노하우와 테크닉을 바탕으로, 그는, 그 정도 연배의 사람만이 베풀 수 있는, 중형 세단의 자가용 드라이브를 제공했고, 꽤나 값비싼 레스토랑의 정식 코스와 독특한 향의 칵테일을 제공했으며, 밤이면, 동해안이 가득 내다보이는, 호텔방 안에서의 매우 능숙한 쾌락의 향연을 제공했다.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게다가, 그의 환한 미소는, 언제봐도 눈부시지 않았던가!
3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중형세단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최고급 저녁 풀코스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숨막히는 Night Service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내게 화대처럼 제공하는 위험하고, 도발적이며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가벼운,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4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가면 갈수록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환한 미소를 사랑하게 되었다. 드라이브 도중, 급한 전화를 받고선 시내에 나를 던져버리듯 버리고는, 집을 향해 차를 돌려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쇼핑을 하다가도 내 앞에서 아내의 선물을 꼭 하나씩, 챙겨드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둘만의 저녁시간을 가질 때조차,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자식자랑을 잊지않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두 아들. 개구장이 명우와 공부 잘 하는 상우. 어느덧,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의 두 아들에게 친근해져 버렸지만, 한순간이라도,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그들을 떠올릴 수 있었는지... 언젠가, 지나가는 소리로 명우와 상우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가, 그는 마구 화를 내며 나가버렸다. 그게 그리 큰 잘못이었을까. 마치 내가 문둥병자라도 된듯한 기분이었다. 딱 한 번, 그의 부인을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얼마나 예쁜지, 그와의 잠자린 어떤지, 음식솜씨는 또 어떻고,무슨 향수를 쓰는지, 그녀에게도 그가 향수같은 걸 선물하는지. 하지만, 난 그에게 있어서 철저히 숨겨둬야 할 허물, 젊은 이반 애인이었다. 난 잘 알고 있다. 첨에 그가 말했던 것처럼, 그에게 있어 첫째는 항상 가족이며, 난,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두 번째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그를 사랑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겁도 없이 yes라는 대답을 너무 쉽게 해버렸다는 사실을.
5
그를 볼 수 없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가 오지 않는 밤들이 길어졌다. 혼자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가슴이 욱신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되가고 있었다. 돌이키기엔, 이미 난 너무 먼 곳까지 와버렸고, 특별해지고 싶었던 난, 특별히 불행해져 있었다.
6
그를 거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모백화점 안. 그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에스칼레이터 저쪽 위에 서 있다. 이쪽 아래 에스칼레이터에서 난 그들을 바라본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일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난, 정말이지 문둥병자라도 된 기분이다.
그의 가족들이 서서히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내려온다. 나도 서서히 올라간다. 먼저 그의 사랑하는 아들들, 개구장이 명우와 공부 잘 하는 상우가 참새같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스쳐간다. '그를 닮은 아이가 내게도 있었다면, 그의 마음이 좀 더 머물렀을까!' 뒤이어 그의 아내의 향수 내음이 코를 스친다. '그 향기를 잘 기억한다. 그가 좋아하는 향이라며 내게도 선물했던 향수다.' 그리고 그의 외면한 채 돌려져있는 옆얼굴이 스쳐간다. '한때는 나도 그의 환한 미소를, 정면으로 받은 적이 있었지. 그땐, 그 입술에 키스까지 했었는데...'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내내, 그의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혐오스럽게 일그러지던 그의 표정까지 세세하게 되살아 난다. 내 자신이 모욕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정말 그를 사랑했었나보다. 난 겨우 잠시 스쳐가는 게임 파트너였을뿐인데... 그럼에도 난, 게임의 룰을 어기고 그를 사랑해버렸고, 이제 보기좋게 실격패를 당하고, 관심권 밖으로 퇴장당한 것이다.
7
붕대를 푼다. 사과를 깎다가 베었던 손가락의 환부가 흉하게 드러난다. 누렇게 썩어가며, 고름이 잔뜩 곪아있다. 그 싱싱하던 핏방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난,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늠름하게 과도를 집어든다. 그리곤 예리한 칼끝으로 환부를 도려낸다. 이마에 땀방울이 하나, 둘 맺혀간다. ' 쳇, 죄다 썩어버렸군. 다 썩어버렸다구!'
불륜, 그 위험한 상상(펌)
1






사과를 깎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피가 '머슴머슴' 피어오른다.
선홍빛 핏방울들.
그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빛깔!
메마른 입술로 상처를 달콤하게 빨아본다.
촉촉히 입술에 젖어드는 싱싱한 핏방울들.
2
처음으로 그를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마치 봄햇살처럼 눈부신 빛을 발하던
그의 환한 미소를,
아주 잘 기억한다.
그렇다고,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만만치않은 빛을 발하던
결혼 반지를 보지 못한 건 아니다.
" 난 유부남이야.
넌 항상 나의 첫번째가 될 수 없어.
그래도 날 사랑할 수 있겠어?"
그의 협박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들 이반의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면,
난 특별해지고 싶었다.
조금은 위험하고,
조금은 도발적이며,
조금은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가벼운 그런 사랑.
수년간 쌓아 온 노하우와 테크닉을 바탕으로,
그는,
그 정도 연배의 사람만이 베풀 수 있는,
중형 세단의 자가용 드라이브를 제공했고,
꽤나 값비싼 레스토랑의
정식 코스와 독특한 향의 칵테일을 제공했으며,
밤이면,
동해안이 가득 내다보이는,
호텔방 안에서의
매우 능숙한 쾌락의 향연을 제공했다.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게다가,
그의 환한 미소는,
언제봐도 눈부시지 않았던가!
3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중형세단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최고급 저녁 풀코스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숨막히는 Night Service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내게 화대처럼 제공하는
위험하고, 도발적이며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가벼운,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4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가면 갈수록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환한 미소를 사랑하게 되었다.
드라이브 도중, 급한 전화를 받고선
시내에 나를 던져버리듯 버리고는,
집을 향해 차를 돌려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쇼핑을 하다가도 내 앞에서 아내의 선물을 꼭 하나씩,
챙겨드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둘만의 저녁시간을 가질 때조차,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자식자랑을 잊지않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두 아들.
개구장이 명우와 공부 잘 하는 상우.
어느덧,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의 두 아들에게 친근해져 버렸지만,
한순간이라도,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그들을 떠올릴 수 있었는지...
언젠가,
지나가는 소리로 명우와 상우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가,
그는 마구 화를 내며 나가버렸다.
그게 그리 큰 잘못이었을까.
마치 내가 문둥병자라도 된듯한 기분이었다.
딱 한 번, 그의 부인을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얼마나 예쁜지,
그와의 잠자린 어떤지,
음식솜씨는 또 어떻고,무슨 향수를 쓰는지,
그녀에게도 그가 향수같은 걸 선물하는지.
하지만,
난 그에게 있어서 철저히 숨겨둬야 할 허물, 젊은 이반 애인이었다.
난 잘 알고 있다.
첨에 그가 말했던 것처럼,
그에게 있어 첫째는 항상 가족이며,
난,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두 번째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그를 사랑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겁도 없이 yes라는 대답을 너무 쉽게 해버렸다는 사실을.
5
그를 볼 수 없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가 오지 않는 밤들이 길어졌다.
혼자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가슴이 욱신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되가고 있었다.
돌이키기엔,
이미 난 너무 먼 곳까지 와버렸고,
특별해지고 싶었던 난,
특별히 불행해져 있었다.
6
그를 거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모백화점 안.
그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에스칼레이터 저쪽 위에 서 있다.
이쪽 아래 에스칼레이터에서 난 그들을 바라본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일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난, 정말이지 문둥병자라도 된 기분이다.
그의 가족들이 서서히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내려온다.
나도 서서히 올라간다.
먼저 그의 사랑하는 아들들, 개구장이 명우와 공부 잘 하는 상우가
참새같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스쳐간다.
'그를 닮은 아이가 내게도 있었다면,
그의 마음이 좀 더 머물렀을까!'
뒤이어 그의 아내의 향수 내음이 코를 스친다.
'그 향기를 잘 기억한다.
그가 좋아하는 향이라며 내게도 선물했던 향수다.'
그리고 그의 외면한 채 돌려져있는 옆얼굴이 스쳐간다.
'한때는 나도 그의 환한 미소를,
정면으로 받은 적이 있었지.
그땐, 그 입술에 키스까지 했었는데...'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내내,
그의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혐오스럽게 일그러지던 그의 표정까지 세세하게 되살아 난다.
내 자신이 모욕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정말 그를 사랑했었나보다.
난 겨우 잠시 스쳐가는 게임 파트너였을뿐인데...
그럼에도 난, 게임의 룰을 어기고 그를 사랑해버렸고,
이제 보기좋게 실격패를 당하고,
관심권 밖으로 퇴장당한 것이다.
7
붕대를 푼다.
사과를 깎다가 베었던 손가락의 환부가 흉하게 드러난다.
누렇게 썩어가며, 고름이 잔뜩 곪아있다.
그 싱싱하던 핏방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난,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늠름하게 과도를 집어든다.
그리곤 예리한 칼끝으로 환부를 도려낸다.
이마에 땀방울이 하나, 둘 맺혀간다.
' 쳇, 죄다 썩어버렸군.
다 썩어버렸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