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군가산점 반대하는 그 여학생이 봤으면....)

155RAP2007.08.01
조회623

솔직히 전 군대이야기 남들 한테 많이 해본적이 없습니다. 보병나오신 분들 보다 훨씬 편안한(?) 포병이었습죠.. 그것도 3보이상이면 승차하는 155mm 견인포병이었습니다.. 그리고 뭐 생각해보면 다른 부대들보다 고참이 너무나도 좋았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론 너무나도 편안했거든요....

 

-------------------------------------------------------------------------------------

전 어떻게 생각해보면 젤 재수없는 군번 중에 하나인 1992년 9월 군번입니다. 오래되었죠.. 벌써 15년이나 흘렀내요..  자대 배치 받은 때가 11월 초였습죠..  초반엔 저두 들은 바가 있었기에 바짝 얼어있었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울 부대는 제가 듣던 그런 부대가 아니었습니다. 부대내 최고참까지도 스스로 침상펴고.. 군화 광내고... 병장 부터 이등병까지 같이 청소하는 부대였더랬습니다. (100일 휴가때 다른 부대 동기한테 물어보니... 자기가 내무반 전원 전투화를 닦는다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우리부대는 천국이었습니다..)

 

간단하게 포병의 일과를 말씀드려보면...

 

0600 -  기상 / 세면

0630 - 장비 점호(포병들 이거 젤 중요합죠...)

0700 - 조식

0800 - 담당구역 청소

0830 - 훈련 준비

0900 ~ 1130 : 오전 훈련 (한 주에 2개 내무반 사격훈련, 나머지 포반은 방렬 훈련, 주특기 훈련 및 작업)

1130 -  교보재 정리

1200 - 중식

1300 ~ 1730: 오후 훈련 (실탄사격 훈련, 방렬 훈련과 주특기 훈련 및 작업.....)

1730~1800 : 교보재 정리, 교장 정리..

1800 - 석식 

1830 - 담당구역 청소 및 세면

1900 ~ 2100 : 자유시간

2100~2130 : 점호 준비

2130 : 일석점호

2200 : 취침

 

그 사이에 주간 경계근무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야간 경계 근무 (역시 마찬가지....)가 한 사람에게 돌아갈 임무로 돌아옵죠..

 

그나마 3개월에 한 번씩 훈련 돌아오면.. 저런 시간계획표 따윈 물건너 갑죠.. 보병 출신 여러분들이야 훈련 나가면 "오늘도 걷는다만은~~" 이 노래가 생각날 정도로 고생하시지만(개인적으로 8사단 여러분들 과 5사단 여러분들... 존경합니다...) 포병이야 포차타고 이 진지 저 진지 돌아다니면서 방렬 훈련만 열심히 합니다.(포차타고 이동중에 책 읽는 것은 한마디로 거의 곡예에 가깝죠. 아무런 쿠션없는 트럭뒤에 타서 책 읽어보십시요..)  하지만 야간 방렬훈련땐 정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납죠..(물론 주간 방렬 훈련때도 한 눈 팔다간.. 허리 다치는 것은 기본이요.. 뼈가 부러지기도 하죠..)  훈련땐 기상 - 식사 - 훈련준비 - 훈련 - 중식 및 휴식 - 훈련 - 석식 - 야간훈련 - 취침.. 이렇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군가산점 반대하시는 분들.. 뭐 시간이 남내.. 마내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요.. )

 

92년 9월 군번이 왜 재수없는 군번이었느냐(개인적으론 유격훈련 4번 받은 것도 참 재수없는 군번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93년 6월 저희 자매 부대에서 굉장히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6월 9일이었나 10일이었나 생각은 안나지만...실탄 사격 훈련도중 포탄이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사고로.. 현역병 2명(아니면 3명 기억이 잘...)과 예비군 훈련도중이었던 예비군 선배님 16명(17명)이 희생되셨더랬습니다. 부상인원도 많았구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 사건이 바로 연천 예비군 훈련 폭발 사고 였습니다. 당시 저희부대도 같은 장소에 있었고.. 사체 수습과 현장 정리를 바로 저희들이 맡았습니다. 그때 근무하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이후 끊임없는 검열(군인들에게 물어보면 차라리 훈련이 편하지 검열 만큼은 피하고 싶어할겁니다...)에 시달렸을 겁니다.. (나라를 위해 훈련하다가 돌아가셨지만.. 그분들 보상금이라는 것이 정말........ )

 

그리고 94년 4월 그 유명한 서울 불바다 사건이 일어납죠.. 남북 적십자 회담중.. 북측 대표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뭐 이런 말을 했습죠.. 그 이후 거의 두달 동안 전방의 모든 부대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실제로 북쪽 방송에선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 처럼 방송을 해댔고.. 날마다 들어오는 북쪽 부대의 이동 관찰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비상중엔.. 함부로 군복 벗을 수도 없습니다. 전원 전투대기 상태란 말이죠.. (그렇게 긴장된 상태에서도 고참들은 함부로 아랫사람을 구타하지도 않았고.. 욕설도 "아쭈.. 아주 썪었내.." 이정도였습죠..이등병이나 일병때문에 병장한테 상병이 욕먹어도.. 조용히 따로 불러내서 좀더 신경쓰고 잘해보자.. 뭐 이런말을 주고 받았을 뿐이었습죠.. 그당시를 생각해보면 정말 천사같은 고참들이었습니다..물론 아주 구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죠..실사격 훈련이나 방렬 훈련때 한 눈 팔다 걸리면 정말 후덜덜하게 맞았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어느덧 제가 거의 최고참급이 되었을 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역시 비상이 걸렸습죠.. 

 

그리고 94년 10월 즈음.. 53사단에서 하사관과 소위가 탈영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탈영이유가 계급은 낮지만 짠밥상으론 훨씬 위인 병장들에게서 따돌림 당하고 구타까지 일어나는 하극상을 겪어서 탈영했다고들 하더군요.. (울 부대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신임소위든.. 신임 하사든간에 말년 고참들까지 거수경례하고.. 뭐 그랬거든요.. 그 사건이 있은지 며칠 후 그당시 막 소위 계급장 달고 부임해온 전포대장과 전포선임하사 (갓 하사관 학교 졸업하고 온 신임 하사였습죠..)가 부대 고참급을 식당으로 부르더군요.. 한상 그득히 차려놓고.. 저희들 보고 고맙다고 했더랬습니다.. 뭐가 고마운지는 잘 몰랐지만 말이죠.. 그때 저희들은 그냥 저희 고참들에게 배운데로 했을 뿐이었습니다..)

 

전 1994년 12월 7일 전역했습니다. 그리고 12월 10일 다시 전 부대로 찾아가서 같이 고생한 우리 내무반 사람들과 함께 중식(짜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했었습니다..(원래 이건 허락이 안되는 것이지만... 호랑이 같던 인사 장교가 허락을 해주더군요.. 내무반 전원 면회와 더불어 민간인의 영내 출입허가와 내무반 출입....) 이것도 전통아닌 전통이었더랬습니다..

 

솔직히 남들은 두번은 갈때가 못된다고 했던 곳이 군대였지만.. 전 천사같은 고참들 때문에.. 군대가 오히려 좋은 추억으로 많이 남아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만성 소화불량이 깨끗하게 해결 될 정도로 덜컹거리는 포차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피할 길없어..졸던 기억도.. 텐트 안 온도 영하 12도에서도 몰려오는 피곤 때문에 웅크리고 잘 수 밖엔 없었던 동계 혹한기 훈련 마져도.. 육군이라면 이를 갈던 해병대 여러분들이 운영하던 유격장에서 유격훈련 받던 기억마져도 말이죠..

 

전 그래도 굉장히 편안하게 군대 생활을 했다고 말합니다. 보통 보병부대나 전차부대 같은 경우 저 같은 사람은 명함도 못내밀 정도로 힘들게 군대 생활 합죠.. 그러니까.. 아무 생각없이 가산점 가지고 왈가왈부 하지 마십시요.. 아무 생각없이 훈련도중에 공부를 하니 마니 그런 말도 하지 마십시요.. 아무 생각없이 군대가 자기 개발의 시간이 될 수 있느니 마니 그런 말씀도 하지 마십시요..( 남들 보다 편안하게 생활했던 저도 공부를 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영어 단어 공부할 시간에 저희들은 주특기 공부를 해야만 합니다.. )

 

뭐 지금은 편해졌다곤 하지만.. 제가 적어놓은 일상과 크게 다르진 않겠죠?

 

어쨌거나.. 무식하게 더운 여름날.. 근무중인 후배님들.. 건강하게 몸성히 재대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님께는 최대의 효도가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