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애인이자 절친한 그녀를 만난지도 벌써 십년이 넘었다 우리집 대문이자 현관문이었던 부엌문을 열고 빨래를 하던 내눈에 단발퍼머에 작고 여린 그녀가 커다란 아이(세살짜리 사내아이)를 업고서 힘들게 골목을 오가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 왠지 모를 느낌이 싹!~ 스친다. 아무래도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말을 건넨다. 나....... " 이렇게 더운날에 왜 그리 큰애를 업고 왔다갔다 하세요?" 힘든지 숨한번 고른뒤에 그녀... " 이 뜨거운 날 아이가 햇볕을 피하지도 않고 놀다가 더위 먹을까봐서요~ 나....... "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시지 그러세여?" 뜨악해서 묻던 나에게 아이가 방이 작아서인지 밖으로만 나올라구 한다구 조금 한숨섞인 소리를 한다 너무도 생생한 기억이 그녀와 나의 첫만남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졌던 공통점이라곤 방한칸 부엌한칸의 남의 집 곁방 살이 신세였다는거 그리고 일찍 죽음이란 놈에 의해 부모와 헤어진 사람이라는 거였다. 마당을 돌아 들어가서 뒷곁에 있었던 그녀가 세든방,그녀의 집주인은 유난히 깔끔한 여자라 난 그녀의 집에 들어갈 때면 항상 신발 바닥에 묻은 흙을 걱정하면서 털고 다녔다. 반면, 구옥이고 겨울되면 걸레가 마른 장작처럼 꽁꽁 얼어버려 코끝이 시려워 고개조차 들기 힘든 , 골목에서 바로 들어가는 방이었지만 난 훨씬 드나들기에 자유로왔다. 드나들기 편리한 우리집과 겨울이면 좁아도 걸레 어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방에 세든 그녀의 집, 여름에는 우리방 겨울에는 그녀네방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수다떨고 , 그렇게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친구겸 애인같이 살게 되었다. 그녀는 세 살적에 어머니가 페니실린 쇼크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단다. 물론, 엄마라는 모습도 말도 그녀는 기억에 없다구 한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오학년 어느날 술드시고 일어나시지 않았다구 ..... 나는 비교적 많이 성장한 뒤에 어머니를 여읜 경우라 어머니란 소리만 나와도 나도 모르는 새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데... 그녀는 어머니. 아버지 란 소리가 나와도 담담하다,,,,, 정이 없단다 기억조차 없는 부모라서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아버지란 소리에는 눈물이 말라버린다. .... (나중에 꼭 바람둥이 울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제일 오래된 기억이란 것은 언니가 스물둘, 시집갈 적에 네 살이던 그녀를 데리고 가서 인사를 드렸다던 높은 담장으로 둘러친 지붕처마 높이 들리어져 있던 고대광실의 그집, 그 식구들이 자기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우리들의 공통점 또 한가지는 서로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습관이 많다는 거였다. 가계부 쓰기다 경리출신답게 그녀의 가계부는 일목 요연하다, 한달 생활비 내역이며 내용들이 완벽하게 쓰여져서 내가 볼 때는 마치 회사의 경리장부같기도 했다. 그녀는 늘 마이너스 가계로 항상 어려워하면서도 용케도 하루하루 잘 꾸린 것으로 기억된다.나는 그냥 저냥 그날 그날 지출만 주로 기입하고 한달뒤 대충 따져서 돈이 빠지지 않을 만큼만의 그런 가계부를 썼었는데 ... 그녀를 만난 뒤로는 자주 서로의 가계부를 보면서 여러 가지 항목들을 비교해보곤 했다. 피복비 지출은 주로 내가 많구,,,식생활비 지출은 그녀의 집이 많았다.그녀의 남편인 아저씨가 육식을 좋아하는 탓에 고기값으로 많이 나가고 ,,, 난 고기를 전혀 입에두 안대고 맨날 나가서 식사하는 남편이라 거의 삼분지 일정도를 그녀보다 덜 쓰게 된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가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거다. 그녀는 150이 못 되는 키에 사십킬로 조금 넘는 작은 체구인데 그녀의 시어머니는 170에 90킬로나 되는 몸무게를 가지셨다. 세째 며느리이면서도 장남은 장사해야지 어머니 수발은 못든다던 큰며느리와 입만 살아서 트집만 잡아내던 둘째집 사이를 왔다갔다 떠밀려 다니시던 시어머니 병수발을 십년넘게 한 그녀. 누워서 똥오줌만 싸고 먹을 건 절대 줄이실줄 몰랐던 그녀의 시어머니.... 주위의 친구들과 내가 먹는 것을 줄여보라고 하는데두 기운 떨어지시면 안된다고 사골 국 끓이고 돼지 삼겹살을 구워 작은 크기로 곁에서 먹여 주는 거였다 정신이 없는 중에도 내가 가면 그래두 며느리 친구인줄 기억하고 반겨주는 분이셨지만 . 자기 며느리인 그녀에겐 자주 잔인하게 되셨던 분이다. 작은 택시에는 태울 수 조차도 없었던 거구의 시어머니를 날마다 아이처럼 씻기구, 매일 매일 식단을 바꿔가며 수발들던 그녀의 모습은 차라리 천사였다. 또한 그녀는 슈퍼우먼이다. 어느날인가 내게 전화해서 흥분되구 화가 너무 난다면서 울먹거리면서 "에미애비 잡아먹은년이 들어와서 내가 이렇게 됐다~~아!!. 쓰벌년아~" 똥오줌 받아내는 며느리에게 악담을 해대는 시어머니 엉덩이를 너무 분하고 화가나서 두어차례 때려줬다구 말하면서 나 정말 이러다 못된년 될 것 같다구....말하는 그녀에게 난 "그래두 조금 참아보지 그랬어요" 하는 말밖에는 할수 없었던 일도 ..... 그녀는 나보다 다섯살이나 연상이다. 하지만, 나를 자기 시집식구나 친정 붙이들에게 소개할때는 내 친구라고 하면서 소개를 시킨다. (난 어지간히 바보라서 그녀에게 언니란 소리를 못한다. **엄마라고 하고 아님 경어를 빠뜨리지 않는 것으로 그녀의 서운할지도 모를 기분을 달래주는 편이지만 그녀는 한번도 그것으로 화낸 적이 없다.) 웬만한 그녀의 친구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날 알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나보다 열살이나 많은 그녀의 남편은 때때로 내가 전화할때면 자기 마누라를 바꿔주면서 "당신 애인이야...받어!~" 라고 소리치는걸 간간히 듣는다. 난 그녀의 애인이라 기분이 넘 좋다.... "연상의 애인".... 환상적이기 까지 하다.... 그치만 누구보다도 그녀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고 모든이들이 인정하는 공식적인 애인이다. 내가 가슴아픈일 다 말 못하지만 난 그래두... 그녀가 있어서 가끔 행복하다. 고생하던 그녀 ! 얼마전에야 시어머님을 하늘로 보내고 요즘 들어서 파트타임 알바를 한다고 전화를 했다..... 매일 매일하던 전화가 이틀간격으로 미뤄진다.... 오늘은 내가 먼저 그녀에게 전화 해야겠다.... ☞ 클릭, 다섯번째 오늘의 톡! 남편이 아프게 된다는군요
그녀의 남편은 나를 그녀의 애인이라고 한다.
내 애인이자 절친한 그녀를 만난지도 벌써 십년이 넘었다
우리집 대문이자 현관문이었던 부엌문을 열고 빨래를 하던 내눈에
단발퍼머에 작고 여린 그녀가 커다란 아이(세살짜리 사내아이)를 업고서 힘들게 골목을
오가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
왠지 모를 느낌이 싹!~ 스친다.
아무래도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말을 건넨다.
나....... " 이렇게 더운날에 왜 그리 큰애를 업고 왔다갔다 하세요?"
힘든지 숨한번 고른뒤에
그녀... " 이 뜨거운 날 아이가 햇볕을 피하지도 않고 놀다가 더위 먹을까봐서요~
나....... "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시지 그러세여?"
뜨악해서 묻던 나에게 아이가 방이 작아서인지 밖으로만 나올라구 한다구 조금 한숨섞인
소리를 한다
너무도 생생한 기억이 그녀와 나의 첫만남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졌던 공통점이라곤
방한칸 부엌한칸의 남의 집 곁방 살이 신세였다는거 그리고 일찍 죽음이란 놈에 의해
부모와 헤어진 사람이라는 거였다.
마당을 돌아 들어가서 뒷곁에 있었던 그녀가 세든방,
그녀의 집주인은 유난히 깔끔한 여자라 난 그녀의 집에 들어갈 때면
항상 신발 바닥에 묻은 흙을 걱정하면서 털고 다녔다.
반면,
구옥이고 겨울되면 걸레가 마른 장작처럼 꽁꽁 얼어버려 코끝이 시려워 고개조차 들기 힘든 ,
골목에서 바로 들어가는 방이었지만 난 훨씬 드나들기에 자유로왔다.
드나들기 편리한 우리집과 겨울이면 좁아도 걸레 어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방에 세든 그녀의 집, 여름에는 우리방 겨울에는 그녀네방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수다떨고 ,
그렇게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친구겸 애인같이 살게 되었다.
그녀는 세 살적에 어머니가 페니실린 쇼크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단다.
물론,
엄마라는 모습도 말도 그녀는 기억에 없다구 한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오학년 어느날
술드시고 일어나시지 않았다구 .....
나는 비교적 많이 성장한 뒤에 어머니를 여읜 경우라 어머니란 소리만 나와도
나도 모르는 새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데...
그녀는 어머니. 아버지 란 소리가 나와도 담담하다,,,,, 정이 없단다 기억조차 없는 부모라서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아버지란 소리에는 눈물이 말라버린다. ....
(나중에 꼭 바람둥이 울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제일 오래된 기억이란 것은
언니가 스물둘, 시집갈 적에 네 살이던 그녀를 데리고 가서 인사를 드렸다던
높은 담장으로 둘러친 지붕처마 높이 들리어져 있던 고대광실의 그집,
그 식구들이 자기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우리들의 공통점 또 한가지는
서로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습관이 많다는 거였다.
가계부 쓰기다
경리출신답게 그녀의 가계부는 일목 요연하다, 한달 생활비 내역이며 내용들이
완벽하게 쓰여져서 내가 볼 때는 마치 회사의 경리장부같기도 했다.
그녀는 늘 마이너스 가계로 항상 어려워하면서도 용케도 하루하루 잘 꾸린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냥 저냥 그날 그날 지출만 주로 기입하고 한달뒤 대충 따져서 돈이 빠지지 않을 만큼만의
그런 가계부를 썼었는데 ...
그녀를 만난 뒤로는 자주 서로의 가계부를 보면서 여러 가지 항목들을 비교해보곤 했다.
피복비 지출은 주로 내가 많구,,,식생활비 지출은 그녀의 집이 많았다.
그녀의 남편인 아저씨가 육식을 좋아하는 탓에 고기값으로 많이 나가고 ,,,
난 고기를 전혀 입에두 안대고
맨날 나가서 식사하는 남편이라 거의 삼분지 일정도를 그녀보다 덜 쓰게 된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가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거다.
그녀는 150이 못 되는 키에 사십킬로 조금 넘는 작은 체구인데
그녀의 시어머니는 170에 90킬로나 되는 몸무게를 가지셨다.
세째 며느리이면서도 장남은 장사해야지 어머니 수발은 못든다던 큰며느리와
입만 살아서 트집만 잡아내던 둘째집 사이를 왔다갔다 떠밀려 다니시던
시어머니 병수발을 십년넘게 한 그녀.
누워서 똥오줌만 싸고 먹을 건 절대 줄이실줄 몰랐던 그녀의 시어머니....
주위의 친구들과 내가 먹는 것을 줄여보라고 하는데두
기운 떨어지시면 안된다고 사골 국 끓이고
돼지 삼겹살을 구워 작은 크기로 곁에서 먹여 주는 거였다
정신이 없는 중에도
내가 가면 그래두 며느리 친구인줄 기억하고 반겨주는 분이셨지만 .
자기 며느리인 그녀에겐 자주 잔인하게 되셨던 분이다.
작은 택시에는 태울 수 조차도 없었던 거구의 시어머니를 날마다 아이처럼 씻기구,
매일 매일 식단을 바꿔가며 수발들던 그녀의 모습은 차라리 천사였다.
또한 그녀는 슈퍼우먼이다.
어느날인가
내게 전화해서 흥분되구 화가 너무 난다면서 울먹거리면서
"에미애비 잡아먹은년이 들어와서 내가 이렇게 됐다~~아!!. 쓰벌년아~"
똥오줌 받아내는 며느리에게 악담을 해대는 시어머니 엉덩이를 너무 분하고 화가나서
두어차례 때려줬다구 말하면서 나 정말 이러다 못된년 될 것 같다구....말하는 그녀에게
난 "그래두 조금 참아보지 그랬어요" 하는 말밖에는 할수 없었던 일도 .....
그녀는 나보다 다섯살이나 연상이다.
하지만, 나를 자기 시집식구나 친정 붙이들에게 소개할때는
내 친구라고 하면서 소개를 시킨다.
(난 어지간히 바보라서 그녀에게 언니란 소리를 못한다.
**엄마라고 하고 아님 경어를 빠뜨리지 않는 것으로 그녀의 서운할지도 모를
기분을 달래주는 편이지만 그녀는 한번도 그것으로 화낸 적이 없다.)
웬만한 그녀의 친구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날 알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나보다 열살이나 많은 그녀의 남편은 때때로
내가 전화할때면 자기 마누라를 바꿔주면서 "당신 애인이야...받어!~"
라고 소리치는걸 간간히 듣는다.
난 그녀의 애인이라 기분이 넘 좋다....
"연상의 애인".... 환상적이기 까지 하다....
그치만
누구보다도 그녀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고
모든이들이 인정하는 공식적인 애인이다.
내가 가슴아픈일 다 말 못하지만 난 그래두...
그녀가 있어서 가끔 행복하다.
고생하던 그녀 !
얼마전에야
시어머님을 하늘로 보내고 요즘 들어서 파트타임 알바를 한다고 전화를 했다.....
매일 매일하던 전화가 이틀간격으로 미뤄진다....
오늘은 내가 먼저 그녀에게 전화 해야겠다....
☞ 클릭, 다섯번째 오늘의 톡! 남편이 아프게 된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