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memoi...5

미무아미무아2007.08.04
조회110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는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비웃음을 받기 마련이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마땅히 살기 위해 먹는다고 우겨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중병이 걸렸거나
며칠을 굶은 사람이라면 또 모른다.  그런 경우를 빼놓고,  음식을 대할 때 먹지
않으면 죽으니까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배가 고파서, 먹음직스럽게 보여서, 혹은 냄새가 하도 구수해서,  그래서
먹고 싶어져서 음식을 먹게 된다. 그러니까 먹기 위해서 산다고 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먹고 싶어서 먹는다고 하는 것이 옳다.  굳이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
강변할 것 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이것 저것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며 먹는 호식가를 말로는 좋지 않게 여기면서도
속으로는 호식가를 부러워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 다같이 솔직해지자.
기왕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잘 먹고 잘 살도록 노력해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Say memoi(미무아)...

 

한국영화 위기라고?

 

한국영화가 위기라고 한다. 스크린 쿼터제가 축소되고, 스파이더맨 3편의 개봉 이후
계속 외국영화가 흥행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올 여름 '몇 백만 명이 보았다'라고
떠드는 영화 중 한국영화는 없다.  과연 한국영화는 이렇게 위기를 맞이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좋은 영화는 관객이 찾는다'라는 속설은 영원하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한국영화에 대해서는 그렇다.  외국영화에 관객을 빼앗겼다고
푸념만 할 것이 아니라, 과연 '수백만 명'을 불러올 수 있는 한국영화가 최근에
어떤 것이 있었을까 되짚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스크린 쿼터제가 폐지되더라도
관객이 많이 드는 한국영화가 있다면 간판을 내릴 극장은 없을 것이다.

 

국내에 개봉한 역대 칸 영화제 수상작중에서 관객이 150만 명이 넘는 영화가 '밀양'과
'올드보이'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적어도 '같은 값'이면 한국영화를 선호하는 것이 .
관객들이 추세이다.  20여년전 직배영화가 들어와서 한국영화가 다 망할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한국영화는 더욱 강해졌고, 쉬리 이후에 점유율이 50%가 넘는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전 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하고 자국의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 국가는 없다. 
한국영화가 인기가 바닥이었다는 올 상반기에도 점유율은 45%가 넘는다.  개봉편당
관객수를 놓고 볼 때 월등히 한국영화가 앞선 것이다. 

 

요 몇 년 동안 사실 많은 영화관객들이 식상한 '조폭 코미디'나 '억지 로맨스'영화에
실망한 것이 사실이다.  같은 소재로 큰 인기를 모으는 경우는 한 두 번이다.
관객은 스크린 쿼터 반대를 외치며 시위하는 스타보다는 좋은 영화에 출연하여
열심히 연기하는 스타를 더 좋아한다.  관객이 외면하는데 기득권만 지킨다고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다. 

 

외국영화는 600-700만 명이면 사실상 최다관객이다.  우리영화는 1천만이 넘는 관객을
모을 수 있다.  '트랜스포머'나 '스파이더맨' 같은 블록 버스터는 절대 안보는 나이든
관객들도 '왕의 남자'나 '괴물'에는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이다.  관객이 멍석을 깔아 줄
준비가 되었을 때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1950년대부터 이미 50년이 지나도록
잘 만든 한국영화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  한국영화는 계속 사랑 받을 수 있다.

 

'디 워' '화려한 휴가'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등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Say memoi(미무아)...


지금은 노예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19세기 미국 동부에서 어떤 흑인이 큰 모자를 쓰고 길을 가다가 비가 갑자기
쏟아지자 모자를 벗어서 소중히 팔에 끼워 비에 젖지 않게 하였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걸 보고 "자네 비가 오는데 왜 모자를 벗나, 모자를 벗으면 머리가
젖을 텐데"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흑인은 "내 몸은 주인의 소유지만 이 모자는 내 소유이기 때문에
남의 것보다 내 것을 더 아끼려고 내 몸보다 이 모자를 더 소중히 여깁니다" 라고 말했다.

 

이 몹쓸 노예제도를 풍자했던 이야기지만 자유의 소중함과 내가 뭔가를 소유하는
것의 소중함을 함께 지적한 '블랙유머'다.  사실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웃을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100여년전까지 '양반'과 '상놈'이라는 계급이 있었고,
양반집에서 평생 '종'으로 일하면서 먹고 자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의 노예제도를 비판하기에 앞서, 같은 민족끼리 계급을 나누어 아무 일도
안하고 호강하는 사람들과 죽도록 평생 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우리나라의
과거를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가끔 우리는 자유와 평등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내가 능력만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현실이 사실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그런 '기회의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남탓, 정부탓, 집안탓 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의 현실을 바꿀 수
없는 '노예의 신분'은 아니지 않는가? 현실이 조금 어렵다고 해도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 기회를 소중히 활용하여 희망적인 나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 보자.

 

                                                                                        Say memoi(미무아)...


슈퍼맨에서 트랜스포머까지

 

언젠가부터 미국 할리우드의 주류는 슈퍼히어로인 만화의 주인공들이다.  요즈음 케이블의
만화 전문 채널에도 등장하는 이들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음은 물론 대부분 TV 시리즈로도
제작이 되었었고 심지어는 영화로도 반복적으로 제작된다.  모두 아시다시피 ‘슈퍼맨 리턴즈’나
'‘배트맨 비긴스’가 여기에 속한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과 함께 만화에서나 가능했던 장면들이
실사로 자연스럽고 실감나게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제작비 투여는 기본이다.
그래서 스토리보다는 얼마나 실감나게 표현 하느냐가 더욱 중요하고 최근에는 주어진 시간에
무리하게 스토리까지 넣다 보니 다소 엉성한 구성이 되기도 한다.

 

과연 누가 이런 천문학적 투자를 하는 것일까?  현재까지 나온 슈퍼히어로들은 가장 유명한
만화 캐릭터 이기도 하지만 현재 가장 돈이 많고 활동이 왕성한 세대가 어렸을 때 절정을 이르던
주인공들이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헐크, 팬타스틱 4, …  그러다 보니 그들이 추억을
더듬으며 상대적으로 쉽게 투자가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닐까?  물론 감독들도 같은 세대 이다
보니 각 각의 캐릭터의 특성을 가장 잘 표출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주인공들은 모두
미국에서만 활약 했었다.  최근에는 그 다음 세대의 만화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시작 했다. 
바로 트랜스포머다.  한국에서도 유행했었던 일본 로봇을 미국에서 만화로 제작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깊이가 없는 느낌이다.  정서상 미국 것이 아니라서 그럴까?  물론 그래픽 자체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 할 수 없었다.  이제 역대 국내에서 상영된 외화 중 최대 관객 기록을
세웠으니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한 로봇의 추억이 대단한 것 같다.

 

비디오 시대가 도래 한 지 오래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여러 장르의 만화를 영화화하여 성공한
사례는 다양하다.  그런데 어설프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표현 하다 보면 철저하기로 유명한
할리우드도 엉성한 영상에 그치는 경우를 우리는 왕왕 보아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을
누구나 공감하게 영상화 하여 세계를 감동 시키는 그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Say memoi(미무아)...

 

'악착'과 '억척'

 

사람 사는 방법은 가지가지다.  얼굴이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다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아보겠다는 자세가 가상하다.

 

우리는 예로부터 가난하고 못살고 남의 시달림을 받아와서 그런지 어떻게 보면 반항성이
짙은 악착같은 또는 억척스러운 생활태도가 몸에 배어 버린 듯 하다.  그런데 억척과 
악착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오십보 백보 이겠지만 각박하고 이기적이라고 보여지는
악착보다는 씩씩하고 진취적인 억척이 좀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억척도
아니고 악착도 아닌 부드러운 생활 태도도 있다.  담담하게, 유유히 살아가는 태도다.
어떻게 보면 무사 안일하게,  천하 태평하게, 팔자 좋게 지내는 자세인 듯 하여 반감마저
갖게도 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뭐 있겠는가?

 

우리 사회는 다행스럽게도 자기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력을 가지고 조절하려
했으면 잘 되지도 않을뿐더러 굉장히 많은 힘이 들었을 일들이 저절로 풀려가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에 악착같이, 억척스럽게, 그리고 담담하게, 유유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맞게 섞여있어서 자기조절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Say memoi(미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