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지만...지금 생각하니..행복하네요

나는천하무적2003.06.13
조회450

오늘 친구가 보낸 멜을 읽고 너무 오랜만에 그동안 잊고있었던게 참 많은 나란걸

알게 되었네요...어릴적 가난이 그렇게나 창피한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릴적 기억이 행복하네요...지금은 오히려 맘이 더 가난한걸지도..

이야기 2편이구요..친구랑 저랑 서로 멜로 주고 받은 내용입니다...

가끔 테클 심하게 들어오시는 분들 있으시던데... 예를들면 가난이 자랑이냐? 라던가 ㅋㅋㅋ

아침에 넘 맘이 아리면서두 행복해서 올립니다..

글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행복하세요

----1편----

 

방한칸에서 다섯식구가 자야했던 시절이 있었어..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우리막내 와

고집이 센 여장부로 동네에서 유명했던 개구쟁이 둘째와

공부잘하는 큰딸 나 그리고 젊었을 엄마와 아빠..

지금처럼 얼굴에 주름이 없었을테고 지금처럼 손과 발이 거칠진 않았을 우리 엄마아빠..

 

사실 나도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그때당시 엄마와 아빠가 포장마차를 하셨지..

학교에서 타오는 상장으로 도배를 해도 되겠다고 농담을 하실만큼

난 그때 상을 많이 타왔었어..

아직 학교에 입학을 안한 둘째와 막내는 늘 칭찬만 받는 나를 시샘했던지

"엄마 아빠, 나는 학교에가면 하루에 백개씩 상을 타올꺼야"라고 말하던

코흘리개 동생들이 생각나..

그러는 동생들을 보면서 엄마와 아빠는 힘들었을 장사가 고된 줄도 모르시고

흐뭇해하셨을테지..

그때당시 포장마차 하나의 값이 1~2십만원 정도 했다고 하더군..

돈많이 벌어서 책상을 사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고 그날도 장사를 나가셨는데

어찌된게 다음날엔 장사를 안나가시는거야..

 

알고봤더니 구청인가 동사무소인가에서 나와서 우리엄마아빠 포장마차를

부시고 갔다더군..

우리의 전재산이 날아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였겠지..

 

엄마아빤 부부싸움을 하시고 (속상하셔서 그러셨을테지만)

난 눈이 붓고 허기가 질 정도로 울었던 기억이나..

 

그때 어린 내가 생각해 낸게 뭔줄알아?

아마 TV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어린이 프로를 하는게 있었는데

詩(시) 아마 동시였을테지.. 시를 써서 뽑히면 상품이 어린이용 고급 책상이였어..

전국에 방송이 되는 프로에 많은 학생들이 응모를 했을테고말야..

학교에 다녀와서 숙제를 끝내고 몇번인가 늦은밤까지 동시를 쓸려고 했던 기억이나..

 

그리고 둘째동생과  막내 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난 그때까지 포기하지않았어..

 

하하..  나도 고집이 좀 있었나봐..

 

지금도 기억한다..

<교문>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써서 보냈는데 뽑히고만거야 드디어..

그때 내가 6학년이였는데 막내가 1~2학년쯤 됐을때였겠지..

어린마음에 머리쓴답시고 내이름말고 막내이름으로 보냈었는데 그게 뽑혔던거지..

(어린애가 썼다고 하면 뽑힐 확률이 높을거라고 머리썼나봐 ㅋㅋ)

MBC방송국에서 당선 사실을 알릴겸 확인전화가 왔었는데

그 전화를 마침 막내가 받았었나봐..

근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우리막내는 자기가 그런 글을 쓴적이 없다고 말을 했나봐..

결국 취소되고 말았지..

꿈에 그리던 나의 책상은 날아가고야 마는 순간이였지..

 

막내의 이마에 빨간 혹이 나도록 꿀밤을 때렸던 기억도 잊지않고있지..

 

혹시 카바이트가 뭔줄 알아?

옛날 포장마차의 불을 밝히기 위해 사용했던 특유의 냄새를 풍기던

하얀색..  아무튼.. 

포장마차 일을 끝내고 늦은 시간 집에 돌아오신 우리 엄마와 아빠의 몸에선

항상 그 카바이트 냄새가 났었어..

난 잠결에 그 냄새를 맡으면 "아.. 이제 엄마와 아빠가 돌아오셨구나"하고 안심을 하며

이루지못했던 깊은 잠에 빠지곤했었지..

 

난 벌써 스물여덟살이 됐다..

조기구이가 먹고싶으면 언제든 포장마차에 가서 소주를 마셔도되고

내방에 책상을 들이고 싶으면 언제든 가서 살수도있지..

 

근데 눈물이 날려고 한다..

 

-----2편-----

 

그 교문이라는 동시 읽고 싶다...

우리 ??가 그때는 어떤 표현으로 ...글을 썼을까 정말 궁금하다....

 

책읽기를 무지 싫어했던..못생겼던...한아이..

지금은 이렇게나 건강해서..며칠을 술을 먹어두...체력은 늘 인정받고 있는 나~

하지만..그때는 운동장을 심하게 뛰는것두...늦게 까지 노는것두 힘에 부치곤 했던 아이...

심장병이라구..일년동안 약먹구...주사맞구...그래서 지금도 세상에서 주사가 가장

무서운줄 아는 나~

글짓기..독후감...

그나마 지금이야 어떤건지 알고 있지만..그냥 두개가 같은 말인지 알고 있던 나는

항상 방학때면 숙제로 해야할 글짓기나 독후감이 뒤바뀌곤 했었지..

그러던 어느날.......

이뿌지도 않구 공부도 못했구...상장이라곤 받아보지 못했던 나...

이름한번 제대로 불려지지 않던 날...부르신 선생님.....

내 이름을 듣자 마자 난 주늑이 들어버렸지...

처음으로 환하게 웃어주시던 선생님....

(....우리 ??가 이번에 쓴 위문편지가 (ㅋㅋㅋ) 우리 학교에서 젤 잘썼다구

뽑혔다며...박수를 치라고 하시던 선생님.....)

무슨 큰 죄라도 지은냥...머리를 조아리며...난 그때 글이라곤 구냥 머리아픈거였는데

내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구나..속으로 작가가 되야지..란 커다란 포부를 가졌던거 같다..

 

그때부터...온통 이뿐 말로 치장하는....보여지기 위한..걸 연습을 했던것두 같아...

그러니 지금은 이러구 있지 않을까 싶다....ㅋㅋ

 

..................너 때문에 떠오른 내 어린시절..가난의 기억.......................

 

27살에 결혼해서 혼자가 된 우리엄마는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와... 첫딸이라며 눈에 넣어두 않아퍼 하던 아빠가 넘 고이고이 ..오냐오냐..했던

나와...너무 많이 울어서..얼굴에 울음주름이 생겨서...지금두 친척들은 울보라 칭하는

둘째동생....임신9개월에 아빠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세상에 태어나 이름이 생기기도

전에 유복자라....불리워지던...우리 막내....와....막내로 태어나...심한고생한번 안해보구

그 어렵던 시절에두...꼭 외할아버지와 쌀밥을 드셨다던 우리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남은 살림을 정리하면서....300만원이란 돈을 들고 첨 구로동이란

곳으로 이사를 왔었지.....

돈도...할줄아는게 없었던 울엄마.....그나마 공장을 다니기엔...넘 어린자식들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그래서 시작했던...반찬장사...

기억난다....전봇대 앞에서 양동이에다 김치며..멸치며....장아찌며...파 마늘을

늘어놓구 팔구계셨던 우리엄마....

젊은 과부가 불쌍해서 동네 사는 하숙하는 대학생...들이 우리 엄마 가계에서 어느덧

단골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져..오히려..재료값도 못빼구 덤으로 덤으로 더 얹어주던

우리엄만....젊은과부년이 웃음 흘린다는 소리를 들으며 앞에 커다랗게 반찬장사를

하시던 아줌마에게 며칠에 한번씩 머리채를 잡히곤 하셨지....

(ㅜ..ㅡ 괜히 아침에 이거 쓰다가 눈물만 흘리구 있다....)

 

그때두 지금처럼 철이 없던 난...여자동생은 심부름두 시키구...같이 놀수도 있는데

내가 돌봐줘야 할 2살을 갓 넘어..엄마손길이 필요한 내 어린동생을 늘 팽개치곤 했었지....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운 내동생....지금은 어른걸음으로 채 1분도 되지 않을 엄마를

찾으러 나가면....난 그애가 저녁까지 안들어와두....나 노는데 정신이 나간채로..

배고프다 칭얼대구 그러다 둘째동생 때리구...그러다 보면...만 미친 사람처럼...

우리 막내를 찾아돌아다니셨던 우리 엄마와.... 하두하두...울어서....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눈물이 범벅이 된 우리 막내가 힘겼게 대문을 밀고 들어오구 있었지....

하다하다 못해....문밖에다 자물쇠를 채워놓구...요강이며 하루먹을 밥을 밥상위에

차려주고 ...그럼...난 그 문을 부수기위해 얼마나 문을 잡고 울었는지...몰라.

그땐.........

 

슬퍼서 더이상 못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