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성금을 아십니까? 초등학교 시절 1년에 몇 번씩 자주국방 수호와 북한 공산당 남침을 방어하기위해 온 국민이 줄을 서서 납부 했던 방위성금. TV에선 성금 모금을 방송하던 그때 그 시절……. 전 재산이 29만원 이라는 말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전 초등학생 이였습니다. 학교에선 방위성금 납부 몇 일 전 부터 칠판에 방위성금 300원 납부라는 빨간 글씨가 한곳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6살 때 아버지는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남의 땅 빌려 작게 농사짓는 저의 어머니와 가족들은 밥을 못 먹을 정도로 가난 했기에 300원은 작은 돈이 아니였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집엔 돈이 없다는 걸 알고 방위성금 몇 일전부터 우울했습니다. 방위선금 납부날 아침밥도 안 먹고 어머니께 방위성금 내야 한다며 300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밥을 드시지 못한 어머니는 윗집, 아랫집, 건넛집으로 300원을 빌리러 다니셨습니다. 학교 등교 시간은 점점 더 다가오고, 귀가엔 몇 일전 방위성금 납부 100% 달성 하자는 교장선생님 말씀이 맴돌고……. 발을 동동 구르며 대문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달려오시는 어머니 손엔 300원이 있었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돈을 받아 달렸습니다. 잃어버리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을 뒤로 하곤 꼬리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달려갔습니다. 학교와 집 중간 지점에 왔을 때 혹시나 호주머니에서 빠져 나갔나를 몇 번이나 확인했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무사히 방위성금을 내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밭에서 수건 쓰시고 일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멀리서 보였습니다 300원을 빌려 왔기에 그 돈을 갚으려 일 하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며 어린 나이에도 전 눈물을 흘렸습니다. 16살 꽃 다운 나이에 가난한 저희 집안으로 시집와 늘 가난 때문에 고생 하셨던 80 세 되신 저희 어머니에게 전 늘 부족한 아들 이였습니다. 5년 전 저는 지방의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 미루었던 대학 공부를위해 공부도 할 수 있고, 직장도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때 한달 월급이 세금 제외하고 920,000받았습니다. 그 월급으로 대학 등록금도 내고, 집안 살림도 했고, 회사,집,학교를 오가야 했기에 1500CC자동차도 있었습니다. 낮엔 회사에서 근로자 밤엔 대학생 이였습니다. 그 작은 월급을 쪼개 적금도 들었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결과는 전세금과 제가 저축한 돈을 모아 낡지만 작은 19평 아파트로 생애 처음 내 집을 마련했습니다. 돈이 없어 도배를 못해 누런 벽지를 보면서도 미소가 지어졌고, 생전 처음 우리 집을 마련 하니 너무 든든하고 좋다던 어머니 말씀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혼자 자전거 타고 다니며 아파트 소유권 이전 했던 아련한 기억이 4월이면 떠오른답니다. 몇년전 그 아파트를 팔고, 이젠 32평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난 때문에 눈물 흘리시는 분이나, 작은 월급으로 힘겨운 삶을 사시는 548만 3000명의 비정규 근로자분들(전체 근로자의 36.6%) 절대로 희망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강한 정신력과 절약을 바탕으로 꿈을 향해 느리지만 더디지만 반발짝씩 한 발짝씩 전진에 전진을 거듭 하신다면 가난은 멀어져 가고, 행복은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을 거라 확신 합니다. 희망을 잃치 않고 노력하여 300원이 없어 눈물 흘렸던 소년도 이젠 가난을 한발 물리치고 주인집 이라는 소릴 듣고 재테크를 한답니다. 다시 한번 강조 합니다.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와도 희망 잃지 마시고 우리 함께전진 해요.!!
월급이 920,000원 이라면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방위성금을 아십니까?
초등학교 시절 1년에 몇 번씩 자주국방 수호와 북한 공산당 남침을 방어하기위해
온 국민이 줄을 서서 납부 했던 방위성금. TV에선 성금 모금을 방송하던 그때 그
시절…….
전 재산이 29만원 이라는 말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전 초등학생 이였습니다.
학교에선 방위성금 납부 몇 일 전 부터 칠판에 방위성금 300원 납부라는 빨간
글씨가 한곳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6살 때 아버지는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남의 땅 빌려 작게 농사짓는 저의 어머니와
가족들은 밥을 못 먹을 정도로 가난 했기에 300원은 작은 돈이 아니였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집엔 돈이 없다는 걸 알고 방위성금 몇 일전부터 우울했습니다.
방위선금 납부날 아침밥도 안 먹고 어머니께 방위성금 내야 한다며 300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밥을 드시지 못한 어머니는 윗집, 아랫집, 건넛집으로 300원을 빌리러
다니셨습니다.
학교 등교 시간은 점점 더 다가오고, 귀가엔 몇 일전 방위성금 납부 100% 달성
하자는 교장선생님 말씀이 맴돌고……. 발을 동동 구르며 대문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달려오시는 어머니 손엔 300원이 있었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돈을 받아 달렸습니다. 잃어버리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을 뒤로
하곤 꼬리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달려갔습니다.
학교와 집 중간 지점에 왔을 때 혹시나 호주머니에서 빠져 나갔나를 몇 번이나
확인했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무사히 방위성금을 내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밭에서 수건 쓰시고 일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멀리서 보였습니다 300원을 빌려
왔기에 그 돈을 갚으려 일 하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며 어린 나이에도 전 눈물을 흘렸습니다.
16살 꽃 다운 나이에 가난한 저희 집안으로 시집와 늘 가난 때문에 고생 하셨던 80
세 되신 저희 어머니에게 전 늘 부족한 아들 이였습니다.
5년 전 저는 지방의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 미루었던 대학
공부를위해 공부도 할 수 있고, 직장도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때 한달 월급이 세금 제외하고 920,000받았습니다. 그 월급으로 대학 등록금도
내고, 집안 살림도 했고, 회사,집,학교를 오가야 했기에 1500CC자동차도
있었습니다.
낮엔 회사에서 근로자 밤엔 대학생 이였습니다.
그 작은 월급을 쪼개 적금도 들었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결과는 전세금과
제가 저축한 돈을 모아 낡지만 작은 19평 아파트로 생애 처음 내 집을 마련했습니다.
돈이 없어 도배를 못해 누런 벽지를 보면서도 미소가 지어졌고, 생전 처음 우리 집을
마련 하니 너무 든든하고 좋다던 어머니 말씀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혼자 자전거 타고 다니며 아파트 소유권 이전 했던 아련한 기억이 4월이면
떠오른답니다.
몇년전 그 아파트를 팔고, 이젠 32평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난 때문에 눈물 흘리시는 분이나, 작은 월급으로 힘겨운 삶을
사시는 548만 3000명의 비정규 근로자분들(전체 근로자의 36.6%) 절대로 희망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강한 정신력과 절약을 바탕으로 꿈을 향해 느리지만 더디지만 반발짝씩
한 발짝씩 전진에 전진을 거듭 하신다면 가난은 멀어져 가고, 행복은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을 거라 확신 합니다.
희망을 잃치 않고 노력하여 300원이 없어 눈물 흘렸던 소년도 이젠 가난을 한발
물리치고 주인집 이라는 소릴 듣고 재테크를 한답니다.
다시 한번 강조 합니다.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와도 희망 잃지 마시고 우리 함께전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