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근교에 있는 조용한 지하 주차장에 무작정 들어가 졸고 있는 주차 관리인을 흔들어 깨웠다.
"으... 응? 무슨소리야?"
주차관리인은 아직도 잠이 덜 깬듯 입가에 묻은 침을 훔쳐냈다.
"아... 르바이트요. 야간 주차 관리..." "아... 그일?" "예."
나는 이미 일자리가 찼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차관 리인은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광고는 예전에 했던 걸로 아는데...?" "그래요?"
나는 저으기 실망을 하며 뒤돌아 나갈려고 하였다. 그때 주차 관리인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어이, 학생... 얘기는 끝까지 들어봐야지?" "예? 그럼 일자리가 아직 있어요?" "응, 이리로 와봐."
한껏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갔다.
"아직 일자리가 있기는 한데... 자네한테 권하기가 좀 그렇네? 아직 한창 나이 같은데..." "예? 그 일이 나이하고 상관이 있나요?"
주차관리인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 다른게 아니라... 야간 주차관리를 하던 사람들은 전부 미쳐버렸 거든? 그래서 현재 밤에는 주차장을 지키지 않고 문만 꼭 잠궈 놓고 있는 중이지."
순간 호기심과 의아함이 들어 다소 큰 소리로 되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세요? 미쳐버렸다는..."
주차 관리인은 나에게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는 자리에 앉으며 담배를 한대 권했다.
"뭐...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니 감출 것도 없지. 3개월 전인가부터 야간에 주차관리를 하던 사람들은 전부 머리가 이상해졌어.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삼일을 못 넘기더라고. 처음에는 그냥 안색이 좀 안 좋다 싶다가 나중에는 비실, 비실 웃지를 않나 넋이 나간 사람처 럼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지를 않나... 어쨌든 여태까지 3명이나 그랬다 고..."
괜히 온 몸이 오싹해지며 지하 주차장 주위를 한번 '휘' 둘러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보통 주차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거 참 희한하네요." "응... 그렇지? 그래서 자네가 한다고 하니까 좀 염려가 되서. 아, 물론 이 건물 사장이야 지원자가 있으면 좋아야 하겠지만...." "그렇군요..."
주차관리인은 내게 바싹 다가 앉으며 조용히 물었다.
"그래도 하겠다면 내가 사장에게 말해보지. 오늘 당장 부터도 좋고..."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할께요. 요새 너무 돈이 궁해서요. 더구나 일자리도 마땅히 구할 때 도 없고..." "좋아. 난 분명히 얘기해줬으니 나중에 일어나는 일은 내가 책임 못지네. 그럼 이따가 10시쯤에 다시 오게. 그때 할 일을 가르쳐 줄테니." "예. 어쨌든 감사해요."
주차관리인은 걱정 때문에선지 마지못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시간 늦지 말고." "예... 그럼 이따가 뵈요."
**************************
"자, 대충 할 일은 알겠지? 뭐 별로 어려울 건 없어. 밤에는 차들이 별로 안들어오니까... 주차해 있는 차만 잘 지키면 되고..." "그러니까 이 모니터로 차들이 이상없나 감시하면 되는 거죠? 가끔 주차 장을 한바퀴씩 순찰하구요."
주차관리인은 그새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아까 낮에 볼 때와는 영 딴판으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얘기했다.
"응. 그게 할 일의 전부고... 참, 새벽에 가끔 요 앞 건너편 여관이나 호 텔에 투숙하러 온 사람들이 주차를 하러 오니까 그 사람들만 주차증을 끊어주면 되." "예. 생각보다 일이 쉽네요 뭐..." "응, 그래. 그러면 졸지 말고 근무 잘 하고... 내일 새벽에 보세나. 아, 참..." "예?" "저 오른쪽 편에 있는 차들은 주인이 찾으러 오지 않는 차들이야. 먼지 가 꽤 앉아있지?"
나는 고개를 삐죽이 빼고는 주차관리인이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았다. 대 부분 낡은 자가용들이라 한눈에도 여기에 버리고 간 것 같았는데 간혹 꽤 고급차들도 눈에 띄었다.
"그... 래요? 그런데 여기에 그냥 둬요? 주인을 찾든지... 못쓸 차는 폐차를 시키던지 해야지..." "훗... 보통 6개월 정도는 보관을 하거든? 그래도 찾으러 안 오면 학생 말대로 처리하곤 하지. 어쨌든 그 쪽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예. 알았어요. 밤길 조심해서 가시구요." "음... 수고하게."
주차관리인을 보내고 난 후 사무실로 들어와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한 10분 정도가 지나자 문득 무료해져 잠시 졸았던 것 같다. 사무실에 있는 괘종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 부시시 눈을 떠서 사무실 창 문을 흐린 눈으로 바라 보는데 어떤 남자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물끄 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앗... 누... 누구세요?" "......"
등에서 부터 소름이 쫙 끼쳤다.
"누... 구... 시냐... 니까요?"
그러나 그 남자는 희멀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주차해 있는 차들 쪽 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사무실 밖으로 나와 그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
"아저씨... 자... 잠깐만요..."
그 남자는 어두운 주차장 한 가운데 서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아까 주차 관리인이 얘기하던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 차를 주차해 놓은 쪽으 로 힘없이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어둠 속에 파묻혀 보이 지 않았다.
"이... 런 세상에... 아, 맞다. 그걸 보면..."
사무실로 돌아가 감시 카메라에 녹화된 테이프를 되감아 다시 틀어 보 았다. 그러나 내가 이 곳에 출근한 후로는 어느 누구도 주차장에 들어 온 적이 없었다. 갑자기 머리칼이 쭈뼛서는 것을 느꼈다.
"그럼... 도대체 내가 본 건...?"
착각이라고 하기에 너무 뚜렷해서 테이프를 두세번 되돌려 틀어 보았다. 그런데 세번째 볼때 쯤 주차장 안이 처음과 조금 다른 것을 느꼈다.
"뭐가 좀 다른데? 지금이랑...? 음... 앗, 이런!!! 조금 전 까지 있던... 빨간색 스포츠카가 없잖아?"
나는 깜짝 놀라 후레시를 들고 아까 그 남자가 사라진 곳으로 뛰어가 보았다. 역시 나란히 줄지어 주차가 되 있는 차 들 중에 한대가 비어 있 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그 차는 어디로 간거고..."
무서움에 잔뜩 긴장을 하고 한대가 비어있는 곳으로 다가가 땅바닥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차가 있었던 흔적은 남아 있는데 바퀴 자국도 없 이 차가 없어진 것이었다.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서 주위를 둘러 보았 다. 컴컴한 지하 주차장안이 더욱 을씨년하게 느껴졌다. 문득 낮에 들었 던 주차 관리인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웅웅거렸다.
"젠장... 이거 오싹한 걸? 이러다가..."
그때 누군가가 나의 등을 살며시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악!"
깜짝 놀라 다급히 뒤로 도는데 조금전 사무실에서 봤던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저것 생각 할 틈도 없이 냅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사람이든 귀신이든 그래 야 할 것만 같았다.
자꾸 뒤에서 잡아 당기는 느낌에 돌아보려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 었다. 어두운 통로 끝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나는 있는 힘을 다 해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 긴 어디지?"
숨을 고르며 두리번 거렸다. 작은 스탠드가 애처롭게 켜있는 책상이 하 나 있었고, 문도 없는 조그마한 창고 같았다. 한쪽에는 종이상자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멀리서 그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내 심장이 방망 이질 치는 것을 애써 진정시키며 종이상자 뒤로 숨어들었다. 눈만 겨우 내밀어 복도를 바라보니 창백한 얼굴의 남자는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터벅, 터벅 걸어다니고 있었다.
"억울해... 너무 억울해..."
그 남자는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그 소리만 뇌까릴 뿐이었다. 순간 밖 으로 나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 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어서 그 남자가 사라지기를 바랬다. 그렇게 5 분쯤 지나자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만 감고 있는 두눈 앞에 어떤 물체가 어른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설 마하는 심정에 천천히 눈을 떠보니...
"헉.... "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 남자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순 간 호흡이 멈춰 지는 것 같았다. 아무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는데 다시 그 남자의 허망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억... 울... 해. 너무... 억울... 해..."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
"학생... 학생... 일어나... 괜찮아?"
아스라이 주차관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에 힘을 주어 간신히 뜨고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며 물었다.
"그... 남자는 요? 예?" "남자라니? 누구? 정신차려... 새벽에 와보니 저쪽 창고에 쓰러져 있길 래... 사무실로 옮겨 온건데..." "휴~"
내 안도의 한숨에 주차관리인은 걱정이 되는 듯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쯧쯧쯧... 그러길래... 내가 주의 줬잖아. 그나마 다행이네... 자네는 정신을 차렸으니. 다른 사람들은 하루종일 사경을 헤메던데..."
아직도 두려움에 몸이 떨려왔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차장으로 나가 어제 그 빨간 스포츠카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내 예상대로 그 스포츠 카는 얌전히 주차해져 있었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주차관리인에 게 어제 밤에 일어난 일을 대충 설명을 하고는 다그치듯 물었다.
"아, 아저씨... 혹시 저쪽 구석에 있는 빨간 스포츠카... 주인이 누구인 지 아세요?" "어떤?"
주차 관리인은 목을 길다랗게 빼며 주차장을 힐끔보더니 고개를 끄떡이 며 말했다.
"또 저 차때문인 줄 알았어. 예전에 일하던 사람들도 그 소리를 하더니 만..." "그랬어요? 아니 그러면 주인을 찾던가, 조사를 해보시던가... 정 안되 면... 저, 재수없는 차를 없애든가 했어야지요."
약간 짜증이 섞인 내 말에 주차관리인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조사를 할 만큼 해봤어. 그런데 저 차를 샅샅이 뒤져도 아무것도 안 나올뿐더러... 저 차 주인이 누구인지 도통 알아낼 수 없더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차번호로 경찰에 조회를 해보면..."
주차관리인은 설래설래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경찰에 조회를 해도 알아낼 수가 없었어. 등록도 안된 차라는 거야. 보다시피 외제차 같은데... 차번호도 우리나라께 아니잖아?"
나는 주차관리인의 손을 잡고 끌듯이 그 스포츠카쪽으로 걸어갔다. 과연 주차관리인의 말대로 차번호가 외국것 같았다.
"자꾸 그런 일이 일어나서... 저 차를 없앨려고 별짓 다 했지. 그런데 소 용없었어. 저 차를 견인해서 폐차장에 갔다놓으면 다음날 다시 저 자리 에 와 있는거야..."
주차관리인의 말에 다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처음 저 차가 이 곳에 올때는 누가 받은 거예요? 그 사람은 차 주인을 알거 아니예요?" "그게... 장부를 뒤져보니까... 3개월 전... 밤에 처음 입고를 한 것 같은데... 그날 야간에 당직을 했던 사람이 지금 연락이 안돼." "예? 아니.. 왜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주차관리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말이야... 어느날 부터인가 갑자기 그 사람이 출근을 하지 않는 거 야. 야간 주차관리인으로 일한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 사람 이력서에 적혀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했더니만 결번이더라고... 어쨌든 그래서..."
문득 내 머리 속에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새벽에 본 그 남자가... 혹시...
"아저씨... 그 남자... 사진 있어요? 그러니까... 이력서 같은 곳에... 붙은..." "갑자기 그 사람 사진은 왜?" "하여튼... 있어요? 없어요?" "잠깐만... 기다려봐."
주차 관리인은 사무실로 돌아갔고 나는 그 이상한 스포츠카 주위를 돌 며 자세히 살펴 보았다. 먼지가 좀 낀 것을 빼면 아주 신형이었고 차의 색깔이 기분 나쁘리만치 새빨갛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이상한 점을 발 견 할 수가 없었다.
무심코 차의 손잡이를 당겨보니 열려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살며시 앉았다. 차안도 깨끗하게 잘 정돈이 되있었는데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한참을 생각해 봐도 느낌만 그런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주차관리인이 허겁지겁 내게로 뛰어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 다.
"이... 사진... 좀 봐봐. 어서..."
주차관리인이 내미는 조그마한 증명사진을 보고 나는 놀라 까무라칠 뻔 했다. 그 사진 속에는 내 예상대로 새벽에 본 그 남자의 얼굴이 있었는 데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두눈에 핏발이 서서 살아있는 사람처럼 무섭 게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진... 어디서 난거예요?" "자네 말대로... 이력서를 뒤지다가... 거기 붙어 있던 건데... 설마 증명사진을 그런 얼굴로 찍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러니..." "휴~ 아저씨... 이제 대충 알 것 같아요. 이 사람... 억울하게 죽었나 봐요. 그리고... 이 차와 관련이 있고요. 그걸 밝혀야 하는데... 음... 아마 오늘밤에도 그가 나타날 것 같으니... 저와 함께..."
내 말에 주차관리인은 덜덜 떨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난 이 사건에서 빠지겠어. 얘기로만 들을 때는 그냥 넘겼는데 막상 이 사진을 보니... 우~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야, 정말 귀신이란게 있는 거 아냐? 휴~ 끔직해라..."
나는 갖은 말로 주차관리인을 설득했으나 그는 요지부동 이었다. 주차관 리인은 시계만 쳐다보며 어서 시간이 지나 퇴근하기를 바라는 눈치였고 그후로는 어제 내가 겪은 일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나절이 가고 저녁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주차 관리인은 도망치 듯 주차장을 빠져 나가 버렸고 나는 또 밤을 혼자서 보내게 되었다.
친구들 몇명을 불러 같이 밤을 새며 그를 맞이할까도 생각했지만 여러명 이면 그의 혼령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굳게 다져먹고 기다리기 로 다짐했다. 아무래도... 그에게 직접 묻는 것이 가장 빠르리라는 생각 에...
사실 두렵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억울하게 죽은 혼령이라면 한 이라도 풀어주어야겠다는 의무감에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고 자정이 되자 내가 앉아 있는 사무실 앞에서 어제 와 같이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눈에 힘 을 주어 어두운 주차장 안을 응시했다.
한참을 바라봐도 그 남자의 구두 발자국 소리만 들릴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인데... 나는 밖으로 나가 확인 해 볼 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사무실 창문에 그 남자의 을씨 년한 얼굴이 반사되어 비치는 것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있던 터라 저절로 떨리는 몸을 애써 추스려 뒤를 돌아보 았다. 그 남자는 내 뒤에서 양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걷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처음 발자국 소리가 들릴때부터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머리칼이 곤두섰다.
나는 벽에 '딱' 붙어 선 후 떨어지지 않는 입을 애써 움직여 그에게 물 었다.
"다... 당신... 억울하게 죽었나요?"
그 남자는 걷는 시늉을 멈추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누가... 죽였... 나요?"
그 남자는 울분에 가득찬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더니 주차장을 가리켰다. 내가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니 바로 그 스포츠카가 있는 쪽 이었다.
"말... 좀 해보세요... 저 차 때문에 죽은 거예요? 그... 런데... 누가 죽인거냐고요..."
떨리는 내 목소리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 남자는 스르륵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 은 터였다. 그 남자는 내 얼굴에 싸늘한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는 쉰 목 소리로 중얼거렸다.
"억울해... 너무 억울해..." "얘기를 해보시라니까요? 제가 억울한 사정을 다 풀어 줄테니..." "저... 차... 운전석... 억울해... 난..."
그 남자는 말을 마치자 마자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 듯 점차 옅어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막상 그 남자가 없어지고 나니 방금 일어난 일들이 꿈만 같았다. 나는 애써 정신을 추스린 후 빨간색 스포츠카로 뛰듯이 달려가 차문을 열고 앞 좌석에 앉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 차문이 '철커덕'하고 잠겨 버렸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려고 손잡 이를 아무리 당겨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발로 앞 유리 창을 때리는 순간 차가 '부르릉'하고 저절로 시동이 걸리며 차안 스피커 에서 조금 전까지도 죽은 이의 혼령으로만 알고 있던 그 남자의 쉰 목소 리가 음산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훗... 당신... 호기심이 너무 많았어... 사실 이 차는... 우리 별에서 보낸... 지구 탐사선이야... 너희들이 흔히 얘기하는 일종의 타임머신과 비슷한 거지... 태양의 밝은 빛을 두려워 하는 우리 종족들은... 밤에만 이 차를 이용해서 오가며 탐사하는 중인데...
아무튼... 여지껏 납치해 실험한 지구인들을 살펴보면... 귀신이나 영혼이 란 존재를 무척 두려워 하던데... 아참,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귀신이나 혼령은 지구인들을 공포로 몰아 나약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별에서 보낸... 발명품들이거든? 그리고 밤에 돌아다니는 지구인 중에는... 우리 종족들도 많이 끼어있지... 후후후...
그나저나... 당신은... 영혼이나 귀신을 별로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같더군. 쿡~ 당신의 뇌를 해부해서 조사해 볼 할 가치가 있겠어... 어차피 우리가 지구를 정복하려면...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할테니... 잠시만.. 기다려라... 곧... 우리를 만나게 될거야... 후후후..."
그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탄 스포츠카는 귀가 찢어질 정도 로 커다란 굉음을 내며 어딘지 모를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자정, 지하 주차장에서
자정, 지하 주차장에서
"저... 아르바이트 모집한다는 광고 보고 왔는데요?"
나는 서울 근교에 있는 조용한 지하 주차장에 무작정 들어가 졸고 있는
주차 관리인을 흔들어 깨웠다.
"으... 응? 무슨소리야?"
주차관리인은 아직도 잠이 덜 깬듯 입가에 묻은 침을 훔쳐냈다.
"아... 르바이트요. 야간 주차 관리..."
"아... 그일?"
"예."
나는 이미 일자리가 찼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차관
리인은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광고는 예전에 했던 걸로 아는데...?"
"그래요?"
나는 저으기 실망을 하며 뒤돌아 나갈려고 하였다. 그때 주차 관리인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어이, 학생... 얘기는 끝까지 들어봐야지?"
"예? 그럼 일자리가 아직 있어요?"
"응, 이리로 와봐."
한껏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갔다.
"아직 일자리가 있기는 한데... 자네한테 권하기가 좀 그렇네? 아직 한창
나이 같은데..."
"예? 그 일이 나이하고 상관이 있나요?"
주차관리인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 다른게 아니라... 야간 주차관리를 하던 사람들은 전부 미쳐버렸
거든? 그래서 현재 밤에는 주차장을 지키지 않고 문만 꼭 잠궈 놓고 있는
중이지."
순간 호기심과 의아함이 들어 다소 큰 소리로 되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세요? 미쳐버렸다는..."
주차 관리인은 나에게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는 자리에 앉으며
담배를 한대 권했다.
"뭐...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니 감출 것도 없지. 3개월
전인가부터 야간에 주차관리를 하던 사람들은 전부 머리가 이상해졌어.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삼일을 못 넘기더라고. 처음에는 그냥 안색이
좀 안 좋다 싶다가 나중에는 비실, 비실 웃지를 않나 넋이 나간 사람처
럼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지를 않나... 어쨌든 여태까지 3명이나 그랬다
고..."
괜히 온 몸이 오싹해지며 지하 주차장 주위를 한번 '휘' 둘러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보통 주차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거 참 희한하네요."
"응... 그렇지? 그래서 자네가 한다고 하니까 좀 염려가 되서. 아, 물론
이 건물 사장이야 지원자가 있으면 좋아야 하겠지만...."
"그렇군요..."
주차관리인은 내게 바싹 다가 앉으며 조용히 물었다.
"그래도 하겠다면 내가 사장에게 말해보지. 오늘 당장 부터도 좋고..."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할께요. 요새 너무 돈이 궁해서요. 더구나 일자리도 마땅히 구할 때
도 없고..."
"좋아. 난 분명히 얘기해줬으니 나중에 일어나는 일은 내가 책임 못지네.
그럼 이따가 10시쯤에 다시 오게. 그때 할 일을 가르쳐 줄테니."
"예. 어쨌든 감사해요."
주차관리인은 걱정 때문에선지 마지못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시간 늦지 말고."
"예... 그럼 이따가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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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대충 할 일은 알겠지? 뭐 별로 어려울 건 없어. 밤에는 차들이 별로
안들어오니까... 주차해 있는 차만 잘 지키면 되고..."
"그러니까 이 모니터로 차들이 이상없나 감시하면 되는 거죠? 가끔 주차
장을 한바퀴씩 순찰하구요."
주차관리인은 그새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아까 낮에 볼 때와는
영 딴판으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얘기했다.
"응. 그게 할 일의 전부고... 참, 새벽에 가끔 요 앞 건너편 여관이나 호
텔에 투숙하러 온 사람들이 주차를 하러 오니까 그 사람들만 주차증을
끊어주면 되."
"예. 생각보다 일이 쉽네요 뭐..."
"응, 그래. 그러면 졸지 말고 근무 잘 하고... 내일 새벽에 보세나.
아, 참..."
"예?"
"저 오른쪽 편에 있는 차들은 주인이 찾으러 오지 않는 차들이야. 먼지
가 꽤 앉아있지?"
나는 고개를 삐죽이 빼고는 주차관리인이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았다. 대
부분 낡은 자가용들이라 한눈에도 여기에 버리고 간 것 같았는데 간혹
꽤 고급차들도 눈에 띄었다.
"그... 래요? 그런데 여기에 그냥 둬요? 주인을 찾든지... 못쓸 차는
폐차를 시키던지 해야지..."
"훗... 보통 6개월 정도는 보관을 하거든? 그래도 찾으러 안 오면 학생
말대로 처리하곤 하지. 어쨌든 그 쪽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예. 알았어요. 밤길 조심해서 가시구요."
"음... 수고하게."
주차관리인을 보내고 난 후 사무실로 들어와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한
10분 정도가 지나자 문득 무료해져 잠시 졸았던 것 같다. 사무실에 있는
괘종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 부시시 눈을 떠서 사무실 창
문을 흐린 눈으로 바라 보는데 어떤 남자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물끄
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앗... 누... 누구세요?"
"......"
등에서 부터 소름이 쫙 끼쳤다.
"누... 구... 시냐... 니까요?"
그러나 그 남자는 희멀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주차해 있는 차들 쪽
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사무실 밖으로 나와
그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
"아저씨... 자... 잠깐만요..."
그 남자는 어두운 주차장 한 가운데 서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아까
주차 관리인이 얘기하던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 차를 주차해 놓은 쪽으
로 힘없이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어둠 속에 파묻혀 보이
지 않았다.
"이... 런 세상에... 아, 맞다. 그걸 보면..."
사무실로 돌아가 감시 카메라에 녹화된 테이프를 되감아 다시 틀어 보
았다. 그러나 내가 이 곳에 출근한 후로는 어느 누구도 주차장에 들어
온 적이 없었다. 갑자기 머리칼이 쭈뼛서는 것을 느꼈다.
"그럼... 도대체 내가 본 건...?"
착각이라고 하기에 너무 뚜렷해서 테이프를 두세번 되돌려 틀어 보았다.
그런데 세번째 볼때 쯤 주차장 안이 처음과 조금 다른 것을 느꼈다.
"뭐가 좀 다른데? 지금이랑...? 음... 앗, 이런!!! 조금 전 까지 있던...
빨간색 스포츠카가 없잖아?"
나는 깜짝 놀라 후레시를 들고 아까 그 남자가 사라진 곳으로 뛰어가
보았다. 역시 나란히 줄지어 주차가 되 있는 차 들 중에 한대가 비어 있
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그 차는 어디로 간거고..."
무서움에 잔뜩 긴장을 하고 한대가 비어있는 곳으로 다가가 땅바닥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차가 있었던 흔적은 남아 있는데 바퀴 자국도 없
이 차가 없어진 것이었다.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서 주위를 둘러 보았
다. 컴컴한 지하 주차장안이 더욱 을씨년하게 느껴졌다. 문득 낮에 들었
던 주차 관리인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웅웅거렸다.
"젠장... 이거 오싹한 걸? 이러다가..."
그때 누군가가 나의 등을 살며시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악!"
깜짝 놀라 다급히 뒤로 도는데 조금전 사무실에서 봤던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저것 생각 할
틈도 없이 냅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사람이든 귀신이든 그래
야 할 것만 같았다.
자꾸 뒤에서 잡아 당기는 느낌에 돌아보려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
었다. 어두운 통로 끝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나는 있는 힘을 다
해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 긴 어디지?"
숨을 고르며 두리번 거렸다. 작은 스탠드가 애처롭게 켜있는 책상이 하
나 있었고, 문도 없는 조그마한 창고 같았다. 한쪽에는 종이상자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멀리서 그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내 심장이 방망
이질 치는 것을 애써 진정시키며 종이상자 뒤로 숨어들었다. 눈만 겨우
내밀어 복도를 바라보니 창백한 얼굴의 남자는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터벅, 터벅 걸어다니고 있었다.
"억울해... 너무 억울해..."
그 남자는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그 소리만 뇌까릴 뿐이었다. 순간 밖
으로 나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
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어서 그 남자가 사라지기를 바랬다. 그렇게 5
분쯤 지나자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만 감고 있는 두눈 앞에 어떤 물체가 어른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설
마하는 심정에 천천히 눈을 떠보니...
"헉.... "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 남자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순
간 호흡이 멈춰 지는 것 같았다. 아무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는데
다시 그 남자의 허망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억... 울... 해. 너무... 억울... 해..."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
"학생... 학생... 일어나... 괜찮아?"
아스라이 주차관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에 힘을 주어 간신히
뜨고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며 물었다.
"그... 남자는 요? 예?"
"남자라니? 누구? 정신차려... 새벽에 와보니 저쪽 창고에 쓰러져 있길
래... 사무실로 옮겨 온건데..."
"휴~"
내 안도의 한숨에 주차관리인은 걱정이 되는 듯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쯧쯧쯧... 그러길래... 내가 주의 줬잖아.
그나마 다행이네... 자네는 정신을 차렸으니. 다른 사람들은 하루종일
사경을 헤메던데..."
아직도 두려움에 몸이 떨려왔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차장으로 나가
어제 그 빨간 스포츠카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내 예상대로 그 스포츠
카는 얌전히 주차해져 있었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주차관리인에
게 어제 밤에 일어난 일을 대충 설명을 하고는 다그치듯 물었다.
"아, 아저씨... 혹시 저쪽 구석에 있는 빨간 스포츠카... 주인이 누구인
지 아세요?"
"어떤?"
주차 관리인은 목을 길다랗게 빼며 주차장을 힐끔보더니 고개를 끄떡이
며 말했다.
"또 저 차때문인 줄 알았어. 예전에 일하던 사람들도 그 소리를 하더니
만..."
"그랬어요? 아니 그러면 주인을 찾던가, 조사를 해보시던가... 정 안되
면... 저, 재수없는 차를 없애든가 했어야지요."
약간 짜증이 섞인 내 말에 주차관리인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조사를 할 만큼 해봤어. 그런데 저 차를 샅샅이 뒤져도 아무것도 안
나올뿐더러... 저 차 주인이 누구인지 도통 알아낼 수 없더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차번호로 경찰에 조회를 해보면..."
주차관리인은 설래설래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경찰에 조회를 해도 알아낼 수가 없었어. 등록도 안된 차라는 거야.
보다시피 외제차 같은데... 차번호도 우리나라께 아니잖아?"
나는 주차관리인의 손을 잡고 끌듯이 그 스포츠카쪽으로 걸어갔다.
과연 주차관리인의 말대로 차번호가 외국것 같았다.
"자꾸 그런 일이 일어나서... 저 차를 없앨려고 별짓 다 했지. 그런데 소
용없었어. 저 차를 견인해서 폐차장에 갔다놓으면 다음날 다시 저 자리
에 와 있는거야..."
주차관리인의 말에 다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처음 저 차가 이 곳에 올때는 누가 받은 거예요? 그 사람은
차 주인을 알거 아니예요?"
"그게... 장부를 뒤져보니까... 3개월 전... 밤에 처음 입고를 한 것
같은데... 그날 야간에 당직을 했던 사람이 지금 연락이 안돼."
"예? 아니.. 왜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주차관리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말이야... 어느날 부터인가 갑자기 그 사람이 출근을 하지 않는 거
야. 야간 주차관리인으로 일한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
사람 이력서에 적혀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했더니만 결번이더라고...
어쨌든 그래서..."
문득 내 머리 속에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새벽에 본 그 남자가... 혹시...
"아저씨... 그 남자... 사진 있어요? 그러니까... 이력서 같은 곳에...
붙은..."
"갑자기 그 사람 사진은 왜?"
"하여튼... 있어요? 없어요?"
"잠깐만... 기다려봐."
주차 관리인은 사무실로 돌아갔고 나는 그 이상한 스포츠카 주위를 돌
며 자세히 살펴 보았다. 먼지가 좀 낀 것을 빼면 아주 신형이었고 차의
색깔이 기분 나쁘리만치 새빨갛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이상한 점을 발
견 할 수가 없었다.
무심코 차의 손잡이를 당겨보니 열려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살며시 앉았다. 차안도 깨끗하게 잘 정돈이 되있었는데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한참을 생각해 봐도
느낌만 그런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주차관리인이 허겁지겁 내게로 뛰어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
다.
"이... 사진... 좀 봐봐. 어서..."
주차관리인이 내미는 조그마한 증명사진을 보고 나는 놀라 까무라칠 뻔
했다. 그 사진 속에는 내 예상대로 새벽에 본 그 남자의 얼굴이 있었는
데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두눈에 핏발이 서서 살아있는 사람처럼 무섭
게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진... 어디서 난거예요?"
"자네 말대로... 이력서를 뒤지다가... 거기 붙어 있던 건데... 설마
증명사진을 그런 얼굴로 찍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러니..."
"휴~ 아저씨... 이제 대충 알 것 같아요. 이 사람... 억울하게 죽었나
봐요. 그리고... 이 차와 관련이 있고요. 그걸 밝혀야 하는데... 음...
아마 오늘밤에도 그가 나타날 것 같으니... 저와 함께..."
내 말에 주차관리인은 덜덜 떨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난 이 사건에서 빠지겠어. 얘기로만 들을 때는 그냥 넘겼는데 막상 이
사진을 보니... 우~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야, 정말
귀신이란게 있는 거 아냐? 휴~ 끔직해라..."
나는 갖은 말로 주차관리인을 설득했으나 그는 요지부동 이었다. 주차관
리인은 시계만 쳐다보며 어서 시간이 지나 퇴근하기를 바라는 눈치였고
그후로는 어제 내가 겪은 일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나절이 가고 저녁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주차 관리인은 도망치
듯 주차장을 빠져 나가 버렸고 나는 또 밤을 혼자서 보내게 되었다.
친구들 몇명을 불러 같이 밤을 새며 그를 맞이할까도 생각했지만 여러명
이면 그의 혼령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굳게 다져먹고 기다리기
로 다짐했다. 아무래도... 그에게 직접 묻는 것이 가장 빠르리라는 생각
에...
사실 두렵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억울하게 죽은 혼령이라면 한
이라도 풀어주어야겠다는 의무감에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고 자정이 되자 내가 앉아 있는 사무실 앞에서 어제
와 같이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눈에 힘
을 주어 어두운 주차장 안을 응시했다.
한참을 바라봐도 그 남자의 구두 발자국 소리만 들릴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인데... 나는 밖으로 나가 확인
해 볼 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사무실 창문에 그 남자의 을씨
년한 얼굴이 반사되어 비치는 것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있던 터라 저절로 떨리는 몸을 애써 추스려 뒤를 돌아보
았다. 그 남자는 내 뒤에서 양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걷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처음 발자국 소리가 들릴때부터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머리칼이 곤두섰다.
나는 벽에 '딱' 붙어 선 후 떨어지지 않는 입을 애써 움직여 그에게 물
었다.
"다... 당신... 억울하게 죽었나요?"
그 남자는 걷는 시늉을 멈추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누가... 죽였... 나요?"
그 남자는 울분에 가득찬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더니 주차장을 가리켰다.
내가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니 바로 그 스포츠카가 있는 쪽
이었다.
"말... 좀 해보세요... 저 차 때문에 죽은 거예요? 그... 런데... 누가
죽인거냐고요..."
떨리는 내 목소리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 남자는
스르륵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
은 터였다. 그 남자는 내 얼굴에 싸늘한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는 쉰 목
소리로 중얼거렸다.
"억울해... 너무 억울해..."
"얘기를 해보시라니까요? 제가 억울한 사정을 다 풀어 줄테니..."
"저... 차... 운전석... 억울해... 난..."
그 남자는 말을 마치자 마자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 듯 점차 옅어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막상 그 남자가 없어지고 나니 방금 일어난 일들이 꿈만
같았다. 나는 애써 정신을 추스린 후 빨간색 스포츠카로 뛰듯이 달려가
차문을 열고 앞 좌석에 앉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 차문이 '철커덕'하고 잠겨 버렸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려고 손잡
이를 아무리 당겨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발로 앞 유리
창을 때리는 순간 차가 '부르릉'하고 저절로 시동이 걸리며 차안 스피커
에서 조금 전까지도 죽은 이의 혼령으로만 알고 있던 그 남자의 쉰 목소
리가 음산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훗... 당신... 호기심이 너무 많았어... 사실 이 차는... 우리 별에서
보낸... 지구 탐사선이야... 너희들이 흔히 얘기하는 일종의 타임머신과
비슷한 거지... 태양의 밝은 빛을 두려워 하는 우리 종족들은... 밤에만
이 차를 이용해서 오가며 탐사하는 중인데...
아무튼... 여지껏 납치해 실험한 지구인들을 살펴보면... 귀신이나 영혼이
란 존재를 무척 두려워 하던데... 아참,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귀신이나
혼령은 지구인들을 공포로 몰아 나약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별에서 보낸...
발명품들이거든? 그리고 밤에 돌아다니는 지구인 중에는... 우리 종족들도
많이 끼어있지... 후후후...
그나저나... 당신은... 영혼이나 귀신을 별로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같더군.
쿡~ 당신의 뇌를 해부해서 조사해 볼 할 가치가 있겠어... 어차피 우리가
지구를 정복하려면...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할테니... 잠시만.. 기다려라...
곧... 우리를 만나게 될거야... 후후후..."
그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탄 스포츠카는 귀가 찢어질 정도
로 커다란 굉음을 내며 어딘지 모를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제... 엔장... 이런.... 이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