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큐피드 레이저 포인터 "아... 아... 살살해. 자기 살 아니라고 그렇게 하면... 아얏. 너, 의사 맞아?" 형민의 진료실에서 얼굴에 생긴 상처를 치료받던 상규가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짜식이... 엄살은... 임마, 그러니까 싸움박질 좀 그만하고 다녀. 나이 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허구헌날..." "헤헤헤. 하도 그 놈이 까불길래... 그런데... 어때? 흉터는 안남을 것 같아? 난 얼굴로 밥벌어 먹는 놈이라서... 상처가 남으면..." "이 정도 상처야... 시간만 지나면 아물거고... 참, 그런데 너 요새 뭐하 며 지내냐? 한달전 까지만 해도 집에서 빈둥거리던 놈이..." 형민은 거즈와 반창고를 내려 놓으며 상규에게 물었다. 상규는 곁에 놓 인 거울을 집어 들며 왼쪽 이마에 붙은 반창고를 유심히 바라보다 중얼 거렸다. "너 같이 많이 배운 의사선생님이야 나처럼 험한 일 안 하고도 잘 먹고 잘 살겠지만... 나 같이 무식하고..." 상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민이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그만해라, 그만해. 너랑 내가 친구로 지낸 지가 20년이다. 그 놈의 레파 토리 좀 이제 그만하고... 요새 뭐하며 사냐니까? 하도 네 놈은 신출 귀 몰한 놈이라..." 한참을 아무말 없이 거울만 들여다 보고 있던 상규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요새는... 그냥 다닌다. 나이트에..." 형민은 아랫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이트라면... 삐끼하냐? 아냐, 넌 나이가 있으니... 웨이터?" "풋... 아냐 임마. 나도 여자 한명 잘 꼬셔서 팔자 좀 고쳐 볼려고 그냥... 다닌다. 왜? 내가 한심해 보이냐? 내가 보기엔 너나 나나 그 점에서는 똑같잖아?" "뭐가 같아? 나는 촉망 받는 젊은 의사에... 에, 또..." 상규는 형민의 볼을 '톡, 톡' 치며 혀를 '끌, 끌' 찼다. "그래... 너 잘났다. 내가 똑 같다는 건 둘다 변변한 여자 하나 없다는 거 지. 지금 말이야. 휴~ 나도 예전에 정말 잘 나가던 놈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흑흑, 서러워..." 상규가 과장된 몸짓으로 우는 시늉을 하자 형민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난하지 말고... 어쨌든 너, 빨리 장가가서 정신 좀 차려라. 맨날 그러 고 살지 말고 말야." "풋... 너나 먼저 가지 그래? 오년전 첫사랑은 그만 잊어 버리고 말이야. 노총각... 그거 안좋은 거다. 내가 해 봐서 알아. 하하하." "짜식, 알았다. 알았어. 자, 치료 다 끝났으니... 어서 가서 일봐라. 나는 다른 환자 진료를 해야하니." 형민이 기지개를 피며 말하자 상규는 형민에게 바싹 다가 앉으며 속삭이 듯 얘기했다. "저... 이따가 우리, 나이트 클럽에 가지 않을래? 내가 물 좋은데 봐뒀거 든? 가서 착하고, 이~쁜 여자들을 꼬셔서..." 형민은 상규의 바짝 들이댄 얼굴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며 대답했 다. "그래. 뭐... 나이트에 가든 말든... 이따가 퇴근 시간에 전화해라. 나도 모처럼 네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상규는 두손을 비비며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띠었다. "좋아, 이따가 전화하지. 오랜만에 신나게 놀아 보자고." ************************ "이거야 원...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상규야, 여기가 물이 좋은 데라 는 거냐? 내가 보기엔... 전부... 애들만 있는데?" 상규가 잘 아는 웨이터에 이끌려 나이트 클럽 중앙에 자리를 잡은 형민 이가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목청을 한껏 올려 상규에게 물었다. 상규는 뭐가 그리 좋은 지 연신 싱글거리며 형민에게 대답했다. "짜식... 서울에서 이만한 곳 찾기도 힘들어. 잘 봐봐. 아까 우리를 안내 한 웨이터가 이곳 '짱'인데... 아무튼 내가 찍는 애들은 전부 부킹시켜 준다고... 기다려봐." 잠시후 맥주와 과일 안주가 나오자 상규는 호기롭게 웨이터에게 만원짜 리 몇장을 찔러주었다. 천장에 어지러이 돌아가는 싸이키 조명과 앰프에 서 쿵쾅대는 찢어지는 음악소리에 형민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야, 나가서 한번 흔들까? 아냐... 그거 보다는 삼삼한 아가씨를 먼저 꼬 셔서..." 상규는 혼자서 결정을 다하더니 난데없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잠시후 곤혹의 표정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왜그래? 뭘 찾는 거야?" 형민이 목을 길게 빼서 상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그게... 없네? 안 가져 왔나?" "뭘? 뭘 안가져와?" 형민의 물음에는 대꾸도 안한 채 한동안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상규가 벌 떡 일어나 나이트 클럽 밖으로 뛰듯이 나갔다. 형민은 어리둥절해서 상 규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상규가 다시 싱글 벙글한 표정으로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와 형민의 앞자리에 털퍼덕 앉 았다. "도대체... 뭐하는 거야? 왜 그러는 건데?" "히히히. 이걸 안가져 와서 말이야. 나가서 하나 사왔지." 상규가 히죽거리며 형민이 앞에다가 자신의 손을 펴보였다. 상규의 손에 는 조악하게 만든 레이저 포인터가 역시 조잡하게 생긴 종이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이게... 뭐야? 어? 레이저 포인터 아냐? 이걸 뭐에 쓰려고..." "이런... 바보같으니... 요새 나이트 클럽에서 이걸로 상대편을 찍는다고. 그러니까... 이걸로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가리키면 웨이터가 부킹을 시켜 준단 말이야." "그래? 참, 나. 별대다 다 그걸 쓰는 구만. 하지만 그렇다고 한두번 쓸 걸... 비싼 돈 주고..." 상규가 빙긋이 웃으며 종이 상자를 뜯어 레이저 포인터를 꺼내 살펴보며 말했다. "이거... 5000원 밖에 안해. 너, 그거 모르니? 요새 중국산이 많아서 얼마 나 싼데... 고등학생들도 열쇠고리겸 하나씩 사서 가지고 다닌다고." "그러냐? 얼마전까지만 해도 몇만원씩 하던데..." 상규가 구겨버린 종이상자를 집어 이리저리 살펴보던 형민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흠... 이것도 중국산이네? 뭐라고 써있는 거야?" "내가 중국말 좀 할 줄 알지. 훗훗... 해석해 줄까?" 상규는 현란한 조명 아래서 번쩍거리는 빛다발에 눈을 찡긋거리며 애써 해석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해 버렸다. "아이고, 눈아퍼 못하겠다. 대충 쓰는 용도하고 주의사항이 씌여 있는 데..." 상규는 형민에게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대 위에 서 한참 흔들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중에 한 여자를 레이저 포인터로 가 리키며 신나했다. "형민아. 쟤 봐봐. 끝내주지 않니?" "어디?" 상규가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킨 붉은 초점을 따라가니 왠 여자의 툭 불 거진 엉덩이가 있었고 조금 위를 쳐다보니 야하게 차려 입은 짙은 화장 을 한 여자가 너무나도 즐거워 못견디겠다는 듯 정신없이 온 몸을 흔들 어 대고 있었다. "휴~ 넌 역시 저런 이상한 여자를 좋아하는 구나. 내 취향은 아니다. 날 라리 같아." "하하하. 그래 난 저렇게 야하고 잘 노는 애가 좋다. 어쨌든 잠깐만 있어 봐. 내 직접 가서 꼬셔봐야지." 상규는 무스로 떡칠한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더니 그 여자에게로 다가갔 다. "어이구, 저런 애가 너한테 관심이나 주겠냐? 보아하니... 다른 남자들이 랑 같이 온 것 같은데... 어... 어?" 여자에게 다가간 상규의 뒤에 대고 혼잣말을 하던 형민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전 상규가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킨 여자가 상규가 몇마디 건네기도 전에 와락 안기며 한데 몸을 섞어 춤을 추기 시작한 것 이었다. "이상도 해라. 내가 보기에는 상규 녀석... 그리도 매력적이지 않은데... 더구나 이마박에 반창고까지 붙인... 싸움꾼을... 어쨌든 재주가 좋구만." 형민은 괜한 오기가 나서 힘없이 중얼거리다가 앞에 놓인 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잠시후 상규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다가오더니 어깨를 '툭'치며 얘기했다. "형민아, 저 여자... 정말 죽인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제. 훗... 오늘밤... 난 황홀할 것 같아. 아으~!~" "놀고있네. 짜식..." "헤헤헤... 형민아. 미안하다만 나먼저 간다. 너도 이번 기회에 잘 해보라 고. 자, 이거 줄테니... 멋진 여자 한명 꼬시란 말이다... 하하하." "가라, 가. 에이, 친구라는 놈이... 그저..." 형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던 상규가 레이저 포인터를 손에 쥐어 주고는 그 여자와 다정히 팔짱을 끼고 나이트 클럽 문을 나섰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형민은 담배 한대를 물고 자리에 서 일어섰다. "에이... 나쁜 놈. 나혼자 여기서 뭐하냐? 집에나 가야지." ********************** "김박사, 오늘 학부생 해부학 실습 있는 것 알지?" "예? 아, 예..." 형민이 진료실에 앉아 따분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학교 선배인 최 교수가 들어오며 형민에게 말했다. "이따가 저녁 8시부터 강의니까... 준비 잘 하고... 오늘 결석한 학생은 무조건 F줘. 요새 애들은 수업을 너무 우습게 생각한단 말이야." "하하하. 알았어요. 참, 해부할 시신은... 지하 냉동고에 있죠?" "응, 한구 어렵게 구해놨지. 며칠 전 자살한 여자 같은데... 연고가 없어 서 이리로 온 거야. 아무튼..." "예. 알았어요." 8시가 되어 지하 해부 실습실로 내려간 형민은 미리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의 출석을 부르고 해부 실습에 들어갔다. 해부할 시신은 최 교수의 말대로 깨끗이 닦여져 철제 침대 위에 다소곳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죽을 때 몹시 괴로웠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목에 선 명하게 혈흔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목을 메달아 죽은 것 같았다. 더구나 온 몸은 누구에게 얻어 맞은 것 같이 푸르딩딩하게 한껏 부어 있었고 창 백한 얼굴에 길게 검은 머리칼이 느려 뜨려 있었다. 형민은 주위에 서 있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처음 해부 실습을 하는 학생도 있을 텐데... 내가 하는 것을 잘 보고... 랫트 해부들은 한두번씩 했을 테니... 장기 적출 순서는 잘 알거 야. 오늘은 장기만 적출해 살펴 볼거고... 머리와 기타 근육 부위들은 이 시신을 잘 보관했다가 다음주에 다시 할테니... 그렇게들 알고..." 형민은 능숙한 말솜씨로 강의를 하며 새파랗게 날이 선 메스를 들고 여자 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스윽'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나고 뱃가죽을 들치자 시뻘건 장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창자를 들어내고 위장과 간, 신장, 횡격막을 갈라 갈비뼈를 들치고 간과 허파, 심장 등등을 조심스럽게 꺼내 하얀 천위에 늘어 놓고는 메스 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잘들 봐요. 여기 위장은 몇개의 부분으로 다시 나뉘죠. 그러니까..." 몇몇 비위가 약한 학생들은 고개를 돌렸고 의욕적인 학생들은 서로 잘 보기위해 고개를 바짝 들이 밀었다. "박사님... 잘 안보여요. 장기 부위를 잘 짚어 주세요." "아, 그래? 그러니까..." 무심코 바지춤을 만져보니 며칠 전 나이트 클럽에서 상규가 주고간 레이 저 포인터가 손에 잡혔다. 형민은 그것을 꺼내 떼어낸 장기와 침대 위의 시신을 번갈아 짚어가며 강의에 열중했다. "휴~ 맨날 들락날락 하는 해부실이지만 이런 밤에 혼자 있는건 왠지 섬 뜩하단 말이야." 형민은 두시간이 지나고 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을 돌려보내고서 갈기 갈 기 칼질이 된 장기들의 뒷처리를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뱃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발가벗은 여자 시신의 홀쭉해진 뱃가죽을 대충 꼬맨 후 냉동고에 다시 넣고 수술복을 벗는 순간 요란하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아, 상규구나. 에이구... 이제야 연락하냐? 나이트 클럽의... 그 여자랑 어떻게 됐어? 응? 잘됐어?" 핸드폰 속에서 다소 힘없는 상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잘돼긴... 죽겠다. 그 여자 때문에... 허구헌 날 전화질에... 날 사랑한 다고 난리야. 어떻게하냐? 나... 코 낀 것 같아." "하하하. 잘됐네. 뭐. 이번 기회에 장가나 가라. 하하하." 형민의 웃음소리가 텅빈 해부실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며 묘한 울림을 남 겼다. "장난하지 말고... 정말 그 레이저 포인터... 상자에 써있는대로 될려나봐. 어이구..."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하도 그 여자가 쫓아다니길래 이상하다 싶어 레이저 포인터가 담 겨 있던 상자의 설명서를 해석해 봤는데... 주의 사항에 이렇게 써있더라 고... '이 레이저 포인터는 사랑을 연결해 주며... 한번 선택한 사람에게 서는 영원히 떠날 수 없다...' 라고 말이야... 하여간 중국 놈들 거짓말은 대단하지만... 요새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고..." 형민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허리까지 숙이며 웃어댔다. "하하하... 짜식... 그러게 왜 쓸데 없이 아무 여자나 찝쩍대냐? 나처럼..." 그때 형민의 머리 속에 섬뜩한 생각이 들어 조금 전 여자의 시신을 넣은 냉동고 쪽을 돌아 보았다. 싸늘한 기분을 지닌 채 잠시 바라보다 핸드폰 을 다시 드는데 냉동고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느닷없이 머리칼이 쭈볏서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형민은 핸드폰을 땅바 닥에 떨어뜨리고는 떨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소리가 난 냉동고쪽 으로 걸어갔다. -쿵... 쿵.... 쿵...- 분명히 조그전 해부한 여자 시신을 넣은 그 칸에서 울려 나오고 있는 것 이었다. 형민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 냉동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시신이 누워 있는 철제 침대를 밖으로 당기는데... 온 몸이 핏기 하나 없이 핼쑥한 여자 시신의 오른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자신의 철제 침대를 노크하듯 두들기고 있는 것이었다. "아악~~~" 형민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데 얼기 설기 꿰메진 수술 자국이 아직 도 선명한 그 여자 시신은 꾹 감았던 두눈을 번쩍 뜨며 천천히 몸을 일 으키더니 형민의 팔을 부여 잡고는 붉은 액체가 흐르는 작은 입을 오물 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널... 사... 랑... 해... 나를... 꼭... 껴... 안... 아... 줘... 어... 서..."
큐피드 레이저 포인터
[펌글]큐피드 레이저 포인터
"아... 아... 살살해. 자기 살 아니라고 그렇게 하면... 아얏. 너, 의사
맞아?"
형민의 진료실에서 얼굴에 생긴 상처를 치료받던 상규가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짜식이... 엄살은... 임마, 그러니까 싸움박질 좀 그만하고 다녀. 나이
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허구헌날..."
"헤헤헤. 하도 그 놈이 까불길래... 그런데... 어때? 흉터는 안남을 것
같아? 난 얼굴로 밥벌어 먹는 놈이라서... 상처가 남으면..."
"이 정도 상처야... 시간만 지나면 아물거고... 참, 그런데 너 요새 뭐하
며 지내냐? 한달전 까지만 해도 집에서 빈둥거리던 놈이..."
형민은 거즈와 반창고를 내려 놓으며 상규에게 물었다. 상규는 곁에 놓
인 거울을 집어 들며 왼쪽 이마에 붙은 반창고를 유심히 바라보다 중얼
거렸다.
"너 같이 많이 배운 의사선생님이야 나처럼 험한 일 안 하고도 잘 먹고
잘 살겠지만... 나 같이 무식하고..."
상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민이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그만해라, 그만해. 너랑 내가 친구로 지낸 지가 20년이다. 그 놈의 레파
토리 좀 이제 그만하고... 요새 뭐하며 사냐니까? 하도 네 놈은 신출 귀
몰한 놈이라..."
한참을 아무말 없이 거울만 들여다 보고 있던 상규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요새는... 그냥 다닌다. 나이트에..."
형민은 아랫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이트라면... 삐끼하냐? 아냐, 넌 나이가 있으니... 웨이터?"
"풋... 아냐 임마. 나도 여자 한명 잘 꼬셔서 팔자 좀 고쳐 볼려고 그냥...
다닌다. 왜? 내가 한심해 보이냐? 내가 보기엔 너나 나나 그 점에서는
똑같잖아?"
"뭐가 같아? 나는 촉망 받는 젊은 의사에... 에, 또..."
상규는 형민의 볼을 '톡, 톡' 치며 혀를 '끌, 끌' 찼다.
"그래... 너 잘났다. 내가 똑 같다는 건 둘다 변변한 여자 하나 없다는 거
지. 지금 말이야. 휴~ 나도 예전에 정말 잘 나가던 놈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흑흑, 서러워..."
상규가 과장된 몸짓으로 우는 시늉을 하자 형민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난하지 말고... 어쨌든 너, 빨리 장가가서 정신 좀 차려라. 맨날 그러
고 살지 말고 말야."
"풋... 너나 먼저 가지 그래? 오년전 첫사랑은 그만 잊어 버리고 말이야.
노총각... 그거 안좋은 거다. 내가 해 봐서 알아. 하하하."
"짜식, 알았다. 알았어. 자, 치료 다 끝났으니... 어서 가서 일봐라. 나는
다른 환자 진료를 해야하니."
형민이 기지개를 피며 말하자 상규는 형민에게 바싹 다가 앉으며 속삭이
듯 얘기했다.
"저... 이따가 우리, 나이트 클럽에 가지 않을래? 내가 물 좋은데 봐뒀거
든? 가서 착하고, 이~쁜 여자들을 꼬셔서..."
형민은 상규의 바짝 들이댄 얼굴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며 대답했
다.
"그래. 뭐... 나이트에 가든 말든... 이따가 퇴근 시간에 전화해라. 나도
모처럼 네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상규는 두손을 비비며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띠었다.
"좋아, 이따가 전화하지. 오랜만에 신나게 놀아 보자고."
************************
"이거야 원...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상규야, 여기가 물이 좋은 데라
는 거냐? 내가 보기엔... 전부... 애들만 있는데?"
상규가 잘 아는 웨이터에 이끌려 나이트 클럽 중앙에 자리를 잡은 형민
이가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목청을 한껏 올려 상규에게 물었다. 상규는
뭐가 그리 좋은 지 연신 싱글거리며 형민에게 대답했다.
"짜식... 서울에서 이만한 곳 찾기도 힘들어. 잘 봐봐. 아까 우리를 안내
한 웨이터가 이곳 '짱'인데... 아무튼 내가 찍는 애들은 전부 부킹시켜
준다고... 기다려봐."
잠시후 맥주와 과일 안주가 나오자 상규는 호기롭게 웨이터에게 만원짜
리 몇장을 찔러주었다. 천장에 어지러이 돌아가는 싸이키 조명과 앰프에
서 쿵쾅대는 찢어지는 음악소리에 형민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야, 나가서 한번 흔들까? 아냐... 그거 보다는 삼삼한 아가씨를 먼저 꼬
셔서..."
상규는 혼자서 결정을 다하더니 난데없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잠시후
곤혹의 표정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왜그래? 뭘 찾는 거야?"
형민이 목을 길게 빼서 상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그게... 없네? 안 가져 왔나?"
"뭘? 뭘 안가져와?"
형민의 물음에는 대꾸도 안한 채 한동안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상규가 벌
떡 일어나 나이트 클럽 밖으로 뛰듯이 나갔다. 형민은 어리둥절해서 상
규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상규가 다시 싱글
벙글한 표정으로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와 형민의 앞자리에 털퍼덕 앉
았다.
"도대체... 뭐하는 거야? 왜 그러는 건데?"
"히히히. 이걸 안가져 와서 말이야. 나가서 하나 사왔지."
상규가 히죽거리며 형민이 앞에다가 자신의 손을 펴보였다. 상규의 손에
는 조악하게 만든 레이저 포인터가 역시 조잡하게 생긴 종이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이게... 뭐야? 어? 레이저 포인터 아냐? 이걸 뭐에 쓰려고..."
"이런... 바보같으니... 요새 나이트 클럽에서 이걸로 상대편을 찍는다고.
그러니까... 이걸로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가리키면 웨이터가 부킹을 시켜
준단 말이야."
"그래? 참, 나. 별대다 다 그걸 쓰는 구만. 하지만 그렇다고 한두번 쓸
걸... 비싼 돈 주고..."
상규가 빙긋이 웃으며 종이 상자를 뜯어 레이저 포인터를 꺼내 살펴보며
말했다.
"이거... 5000원 밖에 안해. 너, 그거 모르니? 요새 중국산이 많아서 얼마
나 싼데... 고등학생들도 열쇠고리겸 하나씩 사서 가지고 다닌다고."
"그러냐? 얼마전까지만 해도 몇만원씩 하던데..."
상규가 구겨버린 종이상자를 집어 이리저리 살펴보던 형민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흠... 이것도 중국산이네? 뭐라고 써있는 거야?"
"내가 중국말 좀 할 줄 알지. 훗훗... 해석해 줄까?"
상규는 현란한 조명 아래서 번쩍거리는 빛다발에 눈을 찡긋거리며 애써
해석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해 버렸다.
"아이고, 눈아퍼 못하겠다. 대충 쓰는 용도하고 주의사항이 씌여 있는
데..."
상규는 형민에게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대 위에
서 한참 흔들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중에 한 여자를 레이저 포인터로 가
리키며 신나했다.
"형민아. 쟤 봐봐. 끝내주지 않니?"
"어디?"
상규가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킨 붉은 초점을 따라가니 왠 여자의 툭 불
거진 엉덩이가 있었고 조금 위를 쳐다보니 야하게 차려 입은 짙은 화장
을 한 여자가 너무나도 즐거워 못견디겠다는 듯 정신없이 온 몸을 흔들
어 대고 있었다.
"휴~ 넌 역시 저런 이상한 여자를 좋아하는 구나. 내 취향은 아니다. 날
라리 같아."
"하하하. 그래 난 저렇게 야하고 잘 노는 애가 좋다. 어쨌든 잠깐만 있어
봐. 내 직접 가서 꼬셔봐야지."
상규는 무스로 떡칠한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더니 그 여자에게로 다가갔
다.
"어이구, 저런 애가 너한테 관심이나 주겠냐? 보아하니... 다른 남자들이
랑 같이 온 것 같은데... 어... 어?"
여자에게 다가간 상규의 뒤에 대고 혼잣말을 하던 형민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전 상규가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킨 여자가 상규가
몇마디 건네기도 전에 와락 안기며 한데 몸을 섞어 춤을 추기 시작한 것
이었다.
"이상도 해라. 내가 보기에는 상규 녀석... 그리도 매력적이지 않은데...
더구나 이마박에 반창고까지 붙인... 싸움꾼을... 어쨌든 재주가 좋구만."
형민은 괜한 오기가 나서 힘없이 중얼거리다가 앞에 놓인 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잠시후 상규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다가오더니 어깨를 '툭'치며
얘기했다.
"형민아, 저 여자... 정말 죽인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제. 훗... 오늘밤...
난 황홀할 것 같아. 아으~!~"
"놀고있네. 짜식..."
"헤헤헤... 형민아. 미안하다만 나먼저 간다. 너도 이번 기회에 잘 해보라
고. 자, 이거 줄테니... 멋진 여자 한명 꼬시란 말이다... 하하하."
"가라, 가. 에이, 친구라는 놈이... 그저..."
형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던 상규가 레이저
포인터를 손에 쥐어 주고는 그 여자와 다정히 팔짱을 끼고 나이트 클럽
문을 나섰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형민은 담배 한대를 물고 자리에
서 일어섰다.
"에이... 나쁜 놈. 나혼자 여기서 뭐하냐? 집에나 가야지."
**********************
"김박사, 오늘 학부생 해부학 실습 있는 것 알지?"
"예? 아, 예..."
형민이 진료실에 앉아 따분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학교 선배인 최
교수가 들어오며 형민에게 말했다.
"이따가 저녁 8시부터 강의니까... 준비 잘 하고... 오늘 결석한 학생은
무조건 F줘. 요새 애들은 수업을 너무 우습게 생각한단 말이야."
"하하하. 알았어요. 참, 해부할 시신은... 지하 냉동고에 있죠?"
"응, 한구 어렵게 구해놨지. 며칠 전 자살한 여자 같은데... 연고가 없어
서 이리로 온 거야. 아무튼..."
"예. 알았어요."
8시가 되어 지하 해부 실습실로 내려간 형민은 미리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의 출석을 부르고 해부 실습에 들어갔다. 해부할 시신은 최
교수의 말대로 깨끗이 닦여져 철제 침대 위에 다소곳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죽을 때 몹시 괴로웠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목에 선
명하게 혈흔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목을 메달아 죽은 것 같았다. 더구나
온 몸은 누구에게 얻어 맞은 것 같이 푸르딩딩하게 한껏 부어 있었고 창
백한 얼굴에 길게 검은 머리칼이 느려 뜨려 있었다. 형민은 주위에 서
있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처음 해부 실습을 하는 학생도 있을 텐데... 내가 하는 것을 잘
보고... 랫트 해부들은 한두번씩 했을 테니... 장기 적출 순서는 잘 알거
야. 오늘은 장기만 적출해 살펴 볼거고... 머리와 기타 근육 부위들은 이
시신을 잘 보관했다가 다음주에 다시 할테니... 그렇게들 알고..."
형민은 능숙한 말솜씨로 강의를 하며 새파랗게 날이 선 메스를 들고 여자
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스윽'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나고 뱃가죽을
들치자 시뻘건 장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창자를 들어내고 위장과 간, 신장, 횡격막을 갈라 갈비뼈를 들치고
간과 허파, 심장 등등을 조심스럽게 꺼내 하얀 천위에 늘어 놓고는 메스
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잘들 봐요. 여기 위장은 몇개의 부분으로 다시 나뉘죠. 그러니까..."
몇몇 비위가 약한 학생들은 고개를 돌렸고 의욕적인 학생들은 서로 잘
보기위해 고개를 바짝 들이 밀었다.
"박사님... 잘 안보여요. 장기 부위를 잘 짚어 주세요."
"아, 그래? 그러니까..."
무심코 바지춤을 만져보니 며칠 전 나이트 클럽에서 상규가 주고간 레이
저 포인터가 손에 잡혔다. 형민은 그것을 꺼내 떼어낸 장기와 침대 위의
시신을 번갈아 짚어가며 강의에 열중했다.
"휴~ 맨날 들락날락 하는 해부실이지만 이런 밤에 혼자 있는건 왠지 섬
뜩하단 말이야."
형민은 두시간이 지나고 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을 돌려보내고서 갈기 갈
기 칼질이 된 장기들의 뒷처리를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뱃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발가벗은 여자 시신의 홀쭉해진 뱃가죽을 대충 꼬맨
후 냉동고에 다시 넣고 수술복을 벗는 순간 요란하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아, 상규구나. 에이구... 이제야 연락하냐? 나이트 클럽의...
그 여자랑 어떻게 됐어? 응? 잘됐어?"
핸드폰 속에서 다소 힘없는 상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잘돼긴... 죽겠다. 그 여자 때문에... 허구헌 날 전화질에... 날 사랑한
다고 난리야. 어떻게하냐? 나... 코 낀 것 같아."
"하하하. 잘됐네. 뭐. 이번 기회에 장가나 가라. 하하하."
형민의 웃음소리가 텅빈 해부실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며 묘한 울림을 남
겼다.
"장난하지 말고... 정말 그 레이저 포인터... 상자에 써있는대로 될려나봐.
어이구..."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하도 그 여자가 쫓아다니길래 이상하다 싶어 레이저 포인터가 담
겨 있던 상자의 설명서를 해석해 봤는데... 주의 사항에 이렇게 써있더라
고... '이 레이저 포인터는 사랑을 연결해 주며... 한번 선택한 사람에게
서는 영원히 떠날 수 없다...' 라고 말이야... 하여간 중국 놈들 거짓말은
대단하지만... 요새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고..."
형민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허리까지 숙이며 웃어댔다.
"하하하... 짜식... 그러게 왜 쓸데 없이 아무 여자나 찝쩍대냐?
나처럼..."
그때 형민의 머리 속에 섬뜩한 생각이 들어 조금 전 여자의 시신을 넣은
냉동고 쪽을 돌아 보았다. 싸늘한 기분을 지닌 채 잠시 바라보다 핸드폰
을 다시 드는데 냉동고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느닷없이 머리칼이 쭈볏서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형민은 핸드폰을 땅바
닥에 떨어뜨리고는 떨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소리가 난 냉동고쪽
으로 걸어갔다.
-쿵... 쿵.... 쿵...-
분명히 조그전 해부한 여자 시신을 넣은 그 칸에서 울려 나오고 있는 것
이었다. 형민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 냉동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시신이 누워 있는 철제 침대를 밖으로 당기는데...
온 몸이 핏기 하나 없이 핼쑥한 여자 시신의 오른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자신의 철제 침대를 노크하듯 두들기고 있는 것이었다.
"아악~~~"
형민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데 얼기 설기 꿰메진 수술 자국이 아직
도 선명한 그 여자 시신은 꾹 감았던 두눈을 번쩍 뜨며 천천히 몸을 일
으키더니 형민의 팔을 부여 잡고는 붉은 액체가 흐르는 작은 입을 오물
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널... 사... 랑... 해... 나를... 꼭... 껴... 안... 아... 줘...
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