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와의 피튀기는 결투..

휴.200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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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퀴벌레와의 피튀기는 결투...

 

지금 시간은 날짜가 바뀌어서 8월 18일 토요일 1시 30분입니다. 방금 전 저는 바퀴벌레 한 마리와의 끔찍한

혈투(?)를 마쳤습니다. 이해 못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바퀴벌레에 대해서 심각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 40분간 경험한 공포와 전율이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글로 한번 적어 보겠습니다.

 그 녀석이 처음 출현한 것은 12시 50분 경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혼자 아파트에서 자취

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하고 있던 제 눈에 책상 밑으로 움직이는 검은 점이 감지 되었습니

다. 저는 순간적으로 바퀴벌레라는 것을 인지했고, 반사적으로 옆의 침대로 쓰러지다시피 이동했습니다.

그 짧은 1초정도의 순간동안 온몸에 전율이 일며 패닉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침대 위에 앉아서 정신을 가다

듬고 그 놈을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그 놈의 출처는 책상과 연결된 책장 밑인 듯 했습니다. 조금 전 저의

격렬한 움직임에 놈도 이상 기운을 감지한 듯, 다시 방향을 틀어 책장 방향으로 향한 채 정지하고 있었습니

다. 일단 저는 거실로 나가 뿌리는 살충제를 찾아봤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마침 또 없는 것이었습니다. 많

은 공포증과 마찬가지로 이런 저 역시 이성적으로는 바퀴벌레가 저에게 직접적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거리에서 살충제로 잡는 정도의 일은 크게 어려운 작업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휴지로 잡아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끔찍한 일이죠. 더구나 그놈이 가만히 있는다는 보

장도 없고 휴지로 잡는 찰나에 반사적으로 도망가기 시작하는 놈의 움직임을 본다면 저는 다시 '1초간의 패

닉'을 경험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살충제를 찾는데에 실패한 저는 방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동안에도 혹시나 바닥에 놈

이 이동해 있지는 않은가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발바닥과 다리를 모든 신경이 마치 놈이 제 몸 위를 기어다


니는 것 마냥 느껴져서 눈으로 확인까지 하게 됐습니다. 놈은 아까 전 그 자리에 미동도 않고 그대로 있었

습니다. 정말 끔찍하게 생겼습니다. 한번 잡아보려고 휴지를 10칸 정도 뗐습니다. 무릎을 꿇고 책상 밑으

로 다가가자 놈이 제 움직임을 감지하고 책장 밑으로 움직였습니다. 책장과 바닥 사이 공간에 반쯤 몸을 내

밀고 다시 정지.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휴지를 집은 손으로 재빨리 잡으려 시도했습니다. 이 작업은 바닥으

로 너무 눌러도 바퀴벌레가 터지는 불상사를 유발하고 너무 느슨하게 해도 도망가기 쉬운 모양이 되기 때문

에 정확한 조작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잡은 휴지를 가로 방향으로 누른 뒤 조심스레 뒤집어 보니 바퀴벌

레는 없었습니다. 책장 밑의 공간에 걸쳐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급작스럽게 도망가는 불미스러운 광경을 보

지 않게 된 것은 그나마 좋았으나 아무튼 1차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놈이 책장 밑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결국 언젠가는 다시 나올 것이고 어쩌면

알을 낳아서 번식까지 하게 된다면 최악이겠죠. 나름대로 깨끗하게 하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난데없는 바퀴

벌레 1마리 때문에 기분이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다시 앉아서 컴퓨터를 보고 있는데 계속 눈은 책장 밑으

로 가고, 다리 쪽으로 계속 간지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발을 의자 위로 올리고 계속 생각을 했습니다.

이 놈을 결국 잡지 못한다면 아무때고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놈이 내 발 주위를 기어다닐 것이고 혹시 그걸

밟는다면? 최악의 상상이 나래를 폈습니다. 약 5분 뒤 놈이 다시 출현했습니다. 두번째 자극인데도 '1초간

의 패닉'과 함께 반사적으로 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까 접어 놓은 휴지를 이용해서 같은 방법으로

잡는 것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닥에 엎드리는 순간 이 녀석은 그 움직임을 감지하고 벌써 경

계를 하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비슷한 양상으로 2차 시도 역시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음주광성을 가진 바퀴벌레가 2번이나 밝은 곳으로 나온 것을 보면 놈은 먹이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

니다. 결국 머지 않아 다시 나올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로서는 2가지 방법 중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

나는 무시하고 침대로 가서 그냥 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다렸다가 잡는 것이죠. 무시하고 그냥 잔다면

문제의 녀석은 여전히 방안 어딘가를 유유히 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제가 컴퓨터를 할 때야 책장과 바닥

쪽이 제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때에는 바닥 쪽의 시야가 들어오

지 않기 때문에 집중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말하자면 당장의 학업이 걸린 문제였죠. 결국 저는

다시 기다렸다 잡아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놈은 너무나

빨라서 휴지로 잡기는 거의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투명한 유리 그릇의 뚜껑을 가지고 놈을 생포하려

고 마음먹었습니다. 유리그릇 뚜껑을 책상 위에 얹어 놓고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놈도 2번이나 위협을 경험

했기 때문에 쉽사리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10분이여 정도 흘렀을까..


 다시금 움직이는 검은 점 감지. 또 다시 1초간의 패닉. 같은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데도 전혀 익숙

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유리그릇 뚜껑을 집었습니다. 책장 밑을 유유히 빠져나

온 녀석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벽을 따라 옷장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녀석의 위로 저도 재빨리 유리그릇 뚜껑을 덮었습니다. 옷장 밑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생포 성공. 이제는 놈

과 제가 공간적으로 완전히 단절되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심장이 여전히 격하게 뛰

었지만 필요한 작업의 80%를 끝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놈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듯 뚜껑의 원주

를 따라 빠른 몸짓으로 빙빙 돌기 시작했습니다. 생포는 했지만 여전히 놈의 모양을 관찰한다는 것은 소름

끼치는 일이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공포증 치료는 점진적으로 공포 대상에 대한 접근을 통해 이뤄진다는

상기하면서 일단 놈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몸 길이 보다 더 긴듯한 더듬이로 뚜껑 가장자리의 공간이 있

는지 찾는 모습을 보니 왠지 처절해 보였습니다. 다리마다 장미 줄기의 가시 같은 바늘 모양의 돌기들이 수

두룩했는데 정말 징그러웠습니다. 어쩌다 이런 모양으로 진화하게 되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자신도 미움

을 살까 생각되었습니다. 이놈이 악의를 가지지 않았음은 자명하지만 결과적으로 제 몸속의 신경들을 긴장

시키고 불필요한 물질 대사를 일으켜 신체적으로 악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입니다. 다분히 자기 중심적 사고

이고 일종의 종족의 우상이지만 놈은 인간이 아니니 상관은 없죠. 이 녀석을 죽인다고 제 신념에 반하는 행

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감상은 접고 나머지 20%의 작업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작업을 생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주로 살충제를 이용했죠.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적 측

면은 언젠가 미리 생각해 두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기억 저편의 예전에 한번 해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궁극적 목적은 녀석을 변기속으로, 그리고 정화조까지 흘려 보내는 것이죠. A4용지 2장을 겹쳐서 뚜껑과 바

닥 사이로 집어넣었습니다. 바닥으로 이물질의 감촉이 느껴지자 녀석도 급격하게 반응했습니다. 저처럼 1초

간의 패닉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러한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제 공포는 가라앉지 않았습니

다. 계속 신경이 곤두서있었죠. 종이를 넣어서 이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하지만 유

리뚜껑은 꽤나 무거웠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드는 것은 위험해 보였습니다. 섣불리 시도하다가 엎지르기라

도 하면 심각한 낭패죠. 얇고 빧빧한 책 하나를 A4용지 밑으로 더 넣었습니다. 책은 A4용지와는 다르게 두

께가 상당하기 때문에 넣는 작업이 좀더 힘들었지만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동에 필요한 모든 조건

이 충족되었습니다.


 애초의 계획은 잡자마자 신속히 변기로 옮겨가는 것이었지만 막상 잡고나니 심적 동요 때문에 수분을 지

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말의 동정심 따위는 없습니다. 다만 계속 공포가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이

죠. 하지만 책까지 무사히 받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95%의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

다. 별 무리 없이 책과 유리 뚜껑을 마치 음식을 드는 것 마냥 들고 거실을 통해 화장실로 향할 수 있었습

니다. 거실에서 자고 있던 제 애완견 마르티즈가 '먹을 것 주려나' 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바

퀴벌레를 한번 보여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의 정서상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접었습니다. 화장실로 드

러섰고 순조롭게 변기로 향했습니다. 머리 속으로 어떤 식의 동작이 효율적일지 예행 연습 삼아 그려 보았

습니다. 책을 받친 채 뚜껑을 빠르고 부드럽게 밀어내면서 녀석을 변기 속으로 떨궜습니다. 녀석은 뒤집어

진채 변기 물속으로 빠졌고 물보다 비중이 작은 녀석은 물 표면에서 배영을 하듯이 고통스럽게 발버둥 쳤습

니다. 그덕에 이리저리 막 움직이더군요.


 여전히 일말의 동정심은 없습니다. 물론 제가 녀석의 신상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

지만 녀석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제 신념에 반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통쾌함과 카타르시스

를 느꼈습니다. 변기 물을 내리면 모든 작업이 종료되지만 좀더 관찰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녀석은 여전히

뒤집혀서 배영을 하며 고통스럽게 움직여 댔습니다. 저는 그 위로 가래침을 뱉었습니다. 명중. 하지만 별

다른 쾌감은 느껴지지 않더군요. 기왕 물을 내리기 전에 소변을 본 뒤, 변기 물을 내렸습니다. 허걱. 근데

이게 웬일. 변기 물이 막힌 건 아닌데 시원하게 안 내려가고 수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물이 내

려간 것도 아니고 안 내려간 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계획과는 다르게 녀석이 유유

히 계속 떠 있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배영 상태도 역전되어 녀석으로선 헤엄치기 좀 더 나은 자세가 제

공되었습니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여전히 유리한 쪽은 제 쪽이죠. 녀석은 자세가 제대로 돌아오더니 점더 능숙하게 헤

엄을 치며 변기 가장자리 쪽으로 왔습니다. 녀석으로서는 분명 물을 처음 접하는 것일텐데 신기하더군요.

더구나 변기 가장자리까지 오더니 변기 면을 타고 위로 올라 오려는 시도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살

짝 놀라서 다시 침을 뱉어 미끄러지게 했습니다. 다시 한번 변기 물을 내려봤지만 역시 같은 결과였습니

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죠. 대야에 물을 받았습니다. 물을 내리는 동시에 대야로 더욱 퍼부으면 될

것 같았습니다. 물을 받는 와중에도 녀석은 살기 위해 변기 가장자리 벽타기를 지속 시도했습니다. 가만 두

면 진짜 탈출할 꼴상이더군요. 앞서 얘기 했어야 했지만 녀석의 반응 속도와 이동속도 등을 볼 때 바퀴벌

레 중에서도 운동 신경이 제대로 발달한 유전적으로 우월한 녀석임을 이미 느꼈었습니다. 역시나 변기에 빠

지고서도 살길을 찾더군요. 물론 제가 침을 뱉으면서 방해했기 때문에 무산됐지만요. 대야에 물이 차는 동

안 놈을 좀 묶어 두려고 휴지를 몇장 떼서 그놈 위에 덮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놈이 그걸 해치고 나와

서 오히려 휴지 위로 올라가 버리네요. -_-;; 정말 대단한 녀석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계획대

로 변기를 누르면서 대야의 물을 쏟아 부었습니다. 계획과는 살짝 다르게 변기 수위가 거의 넘칠 뻔할 정도

까지 올라와서 살짝 쫄았습니다만 결국 수압이 작용하며 모든 물이 내려 가더군요. 물이 역류하는 불상사

를 막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물을 내렸습니다.


 바퀴벌레의 현황을 상상해 봤습니다. 정화조의 구조는 잘 모르겠지만 물로 가득 차있는 형태가 아니라면

그 안에서 꽤나 오래 생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거야 이제 저와는 상관 없죠. 방으로 돌아와

보니 여전히 익숙한 파이터포럼 화면과, 모니터 옆에 아까 녀석을 잡으려 시도했던 휴지가 있었습니다. 휴

지를 말아서 변기에 넣고 또 한번 물을 내렸습니다. 모든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이 홀가분함을 말할 수

가 없네요. 지금 시간은 3시 30분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거의 2시간이 되어 갑니다. 글을 쓰는 초반

에는 여전히 신경이 곤두선 상태여서 바닥의 거뭇한 곳이 계속 다른 바퀴벌레인 것 처럼 느껴지고 다리에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을 받아서 괴로웠는데 이제는 완전히 안정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오늘 경험은 그리 유

쾌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녀석의 친구들이 더 없었으면 좋겠네요. 어쨌든 내일 당장 살충제를 구비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 경험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평생 못 잊을 것 같네요. 그래서 글로 한

번 써 봤습니다. 좀 피곤하네요.  

긴 글 읽으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