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프랑스 가장 북쪽 도시 릴에 도착 한 것은 98년 2월 2일 저녁으로 기억 된다 낮선 나라 낮선 도시에 가기전 유학원에서 수속을 다 밟은 상태라 별 걱정없이 연일 친구들과 송별 파티를 하면서 방탕한 1월을 보냈다.. 출발 하기 전날 가방을 챙기고 있는 내게 엄마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프면 어쩌냐..말도 잘 못 하고.. 허걱...나..불어 한 마디도 못 한다..엄마가 그걸 어찌 알지.. 하는 속 마음을 감추며 난 잔뜩 사둔 상비약을 보여주며 이거 먹으면 된다고 큰소릴 쳤다.. 그땐 정말 너무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말을 한 마디도 못 한 다는 것이 그렇게 큰 장애라고 생각 해본 적이 없었다 난 한국에 있을 때 연극을 공부 했구..그리고..졸업하고 유학 자금 마련을 위해서 학습지 교사를 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유학을 떠나려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난 돈에 환장한 사람처럼 돈을 벌었다. 아이들은 이쁜 선생님을 좋아 한다, 부모님과 마주치는 일이 많으니 의상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팀장의 말에 난 매일 같이 세련의 첨단을 걷던 여동생의 옷을 훔쳐 입고 출근을 했다 궁색함이 줄줄 흐르는 딸에게 월요일 마다 대학때 받던 용돈을 지원해주시는 아빠의 훈시.. 돈을 벌어서 잘 쓰는거다.. 어디 빌딩사냐..구두쇠는 큰 부자 못 된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난 옷 한 벌 아니 누구에게 내 월급으로 밥 한끼 산적 없이 고스란히 은행에 넣어두고 불어나는 통장을 보면서 프랑스 어느 하늘아래서 할보하고 있을 나를 상상했다.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이..IMF로 거의 휴지에 가까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포기 하고 있을 때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계획을 실행했다 열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내내 나는 눈이 퉁퉁 붇도록 울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바로 울 엄마라고 생각을 했다.. 거기다..난 5남매 중의 가운데..언니들은 언니들이라고 챙겨주고 동생들은 어리다고 챙겨주고..항상 깍두기 같다는 생각을 했기때문에 나를 잡고 우는 엄마의 의외의 행동에 아 내가 지금 떠나고 있구나 라고 인식을 했던 것 같다 파리에 내려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새 난 고속기차를 타고 있었다..나와 같은 유학원을 통해서 유학을 온 나머지 2사람과 함께 우리는 파리에서 고속기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 릴에 도착을 했다.. 도착을 하니..인솔하기로 해준 사람이 나와 있었다..그 사람 하는 말이..대학 기숙사 열쇠는 8시 이후엔 받을 수 없으니 빨리 가자며 그사람차에 우릴 구겨 넣었다.. 3개의 이민가방과 8개의 크고 작은 가방들 그리고 운전자를 포함한 4사람이 작은 승용차를 타고 십여분을 달려 기숙사에 도착을 했다. 방열쇠를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의 5층방에 도착을 해서 방문을 여는 순간..나는..홀로 떨어졌다는 고독감 보다는..내 방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너무 오래되서 색이 바랜 가구들.. 가로 90 세로180의 침대 하나 책상, 의자 2개, 책장 겸 수납장 하나, 옷 장 하나, 그리고 세면대가 있었다 방안에 들어가 짐을 풀고 나니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잠을 청했다. 쉬이 잠이 오질 않았기 때문에 방안을 정리 하기 시작 했다 정리를 다 마쳤음에도 불구 하고 잠이 오질 않아서 편지를 썼다 언니에게 잘 도착했다는 내용과 내가 지내게 될 방 구조를 설명했다.. 이렇게 첫날을 보냈다.. 아침에 일찍 생소함으로 가득한 방에서 눈을 떳다. 아 내가 지금 프랑스에 있지 라는 생각을 해내기 까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빈 뱃속이 요동을 친다..먹을 것이라곤 서울에서 들고온 라면이 전분데.. 할 수 없이 세면대에서 물을 받아서 밥통에 붇고 밥통에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코펠속에 들어 있던 밥그릇에 라면을 덜어서 맛나게 먹고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싼 감자..달걀..정말 지겹게 먹었던 것들이다.. 난 고추장만 달랑 하나 들고 왔다 매일 전자계산기를 들고 이걸 사면 얼마 저절 사면 얼마 정말 살 것은 많고 돈을 없고..매일 전자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초반의 살림을 마련 했다 내가..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산 것은 커피메이커.. 난 커피없는 하루는 몽롱그 자체다.. 밥그릇도은 코펠용 플라스틱에 먹어도 커피는 우아하게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흰 유리컵 한개와 커피 메이커 그리고..가장 좋아 보이는 봉지에 담겨진 커피를 사가지고 돌아 와..같이 온 한국 사람들을 불러서 커피파티를 했다.. 매일 난 새벽 3시에 일어났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샤워실.. 한국이 있을 때도 난 소심한 편은 아니지만 큰 볼일은 밖에서 해결 하지 못 하곤 했다.. 누군가 기다리기라도 하면..아악.. 나에겐 배변은 쾌락이다..무거운 배가 쑥하고 가벼워지면서 느껴지는 시원함..아무에게도 이 기쁨을 방해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새벽3시에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던 것이다. 하루에..긴 이야길 다 토 할 것도 아닌데.. 방학이거든요.. 매일 좀씩 올려야지..
어리바리 좌충우돌 프랑스 살기
내가 프랑스 가장 북쪽 도시 릴에 도착 한 것은 98년 2월 2일 저녁으로
기억 된다
낮선 나라 낮선 도시에 가기전
유학원에서 수속을 다 밟은 상태라 별 걱정없이 연일 친구들과 송별 파티를 하면서
방탕한 1월을 보냈다..
출발 하기 전날 가방을 챙기고 있는 내게 엄마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프면 어쩌냐..말도 잘 못 하고..
허걱...나..불어 한 마디도 못 한다..엄마가 그걸 어찌 알지..
하는 속 마음을 감추며 난 잔뜩 사둔 상비약을 보여주며 이거 먹으면 된다고 큰소릴 쳤다..
그땐 정말 너무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말을 한 마디도 못 한 다는 것이 그렇게 큰 장애라고
생각 해본 적이 없었다
난 한국에 있을 때 연극을 공부 했구..그리고..졸업하고 유학 자금 마련을 위해서 학습지 교사를 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유학을 떠나려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난 돈에 환장한 사람처럼
돈을 벌었다.
아이들은 이쁜 선생님을 좋아 한다, 부모님과 마주치는 일이 많으니 의상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팀장의 말에 난 매일 같이 세련의 첨단을 걷던 여동생의 옷을 훔쳐 입고 출근을 했다
궁색함이 줄줄 흐르는 딸에게 월요일 마다 대학때 받던 용돈을 지원해주시는 아빠의 훈시..
돈을 벌어서 잘 쓰는거다.. 어디 빌딩사냐..구두쇠는 큰 부자 못 된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난 옷 한 벌 아니 누구에게 내 월급으로 밥 한끼 산적 없이 고스란히
은행에 넣어두고 불어나는 통장을 보면서 프랑스 어느 하늘아래서 할보하고 있을 나를 상상했다.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이..IMF로 거의 휴지에 가까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포기 하고 있을 때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계획을 실행했다
열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내내 나는 눈이 퉁퉁 붇도록 울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바로 울 엄마라고 생각을 했다..
거기다..난 5남매 중의 가운데..언니들은 언니들이라고 챙겨주고 동생들은
어리다고 챙겨주고..항상 깍두기 같다는 생각을 했기때문에
나를 잡고 우는 엄마의 의외의 행동에 아 내가 지금 떠나고 있구나 라고 인식을 했던 것 같다
파리에 내려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새 난 고속기차를 타고 있었다..나와 같은 유학원을 통해서 유학을 온 나머지 2사람과 함께
우리는 파리에서 고속기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 릴에 도착을 했다..
도착을 하니..인솔하기로 해준 사람이 나와 있었다..그 사람 하는 말이..대학 기숙사 열쇠는 8시 이후엔
받을 수 없으니 빨리 가자며 그사람차에 우릴 구겨 넣었다..
3개의 이민가방과 8개의 크고 작은 가방들 그리고 운전자를 포함한 4사람이 작은 승용차를 타고 십여분을 달려 기숙사에 도착을 했다.
방열쇠를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의 5층방에 도착을 해서
방문을 여는 순간..나는..홀로 떨어졌다는 고독감 보다는..내 방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너무 오래되서 색이 바랜 가구들..
가로 90 세로180의 침대 하나
책상, 의자 2개, 책장 겸 수납장 하나, 옷 장 하나, 그리고 세면대가 있었다
방안에 들어가 짐을 풀고 나니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잠을 청했다.
쉬이 잠이 오질 않았기 때문에 방안을 정리 하기 시작 했다
정리를 다 마쳤음에도 불구 하고 잠이 오질 않아서 편지를 썼다
언니에게 잘 도착했다는 내용과 내가 지내게 될 방 구조를 설명했다..
이렇게 첫날을 보냈다..
아침에 일찍 생소함으로 가득한 방에서 눈을 떳다.
아 내가 지금 프랑스에 있지 라는 생각을 해내기 까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빈 뱃속이 요동을 친다..먹을 것이라곤 서울에서 들고온 라면이 전분데..
할 수 없이 세면대에서 물을 받아서 밥통에 붇고 밥통에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코펠속에 들어 있던 밥그릇에 라면을 덜어서 맛나게 먹고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싼
감자..달걀..정말 지겹게 먹었던 것들이다..
난 고추장만 달랑 하나 들고 왔다
매일 전자계산기를 들고 이걸 사면 얼마 저절 사면 얼마
정말 살 것은 많고 돈을 없고..매일 전자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초반의 살림을 마련 했다
내가..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산 것은 커피메이커..
난 커피없는 하루는 몽롱그 자체다..
밥그릇도은 코펠용 플라스틱에 먹어도
커피는 우아하게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흰 유리컵 한개와
커피 메이커 그리고..가장 좋아 보이는 봉지에 담겨진 커피를
사가지고 돌아 와..같이 온 한국 사람들을 불러서
커피파티를 했다..
매일 난 새벽 3시에 일어났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샤워실..
한국이 있을 때도 난 소심한 편은 아니지만
큰 볼일은 밖에서 해결 하지 못 하곤 했다..
누군가 기다리기라도 하면..아악..
나에겐 배변은 쾌락이다..무거운 배가 쑥하고 가벼워지면서 느껴지는
시원함..아무에게도 이 기쁨을 방해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새벽3시에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던 것이다.
하루에..긴 이야길 다 토 할 것도 아닌데..
방학이거든요..
매일 좀씩 올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