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대에 3월달에 들어왔으니, S대에 들어온 지도 어느 덧 5~6개월이 지났군요 제가 S대에 들어가게 된 과정이 수험생 여러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몇 글자 써보겠습니다.
저는 문제아였습니다. 여의도의 유복하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랐지만, 어릴 적 부모님의 과잉 보호와 교육에 대한 소홀로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불량학생의 길로 빠지게 되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담배도 하루에 한 갑씩 피우고, 제 옷방은 태그호이어, 구찌, 폴 스미스, 루이비통 등 명품 의류가 넘쳐나, 전당포를 방불케 했죠.
고등학교 때는 더더욱 심해졌습니다. 마음에 안드는 아이들에게 물고문을 하기도 하고, 칼을 가지고 다녔고, 무면허 운전(야메라고 하죠)으로 여자를 헌팅해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제 별명은 극악무도였고, 제 도덕성은 갈수록 바닥을 쳐갔습니다. 여자들도 하루에 세 명씩 만나고 다녔고, 매일 다른 여자와 잤습니다. 여의도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성적은 아무리 고액 과외를 해 봐도 바닥이었고, 부모님은 저를 보시면서 매일 '너를 그렇게 키운 내가 잘못이다'라며 한탄하셨습니다.
모범생이었던 제 동생은 언제나 제 비교 대상이었고, 저는 질투심에 동생을 항상 때리고, 괴롭히기 일쑤였죠.
놀다 보니 말로만 듣던 고3은 수업이 끝난 후 다시 다가오는 수업시간처럼 금방 다가왔고, 저는 친구의 권유로 명문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재미있었고, 나중에는 기독교에 빠지게 되었죠. 저는 어느 정도 온순하고 착해졌고, 친구들은 제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다들 놀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부를 여전히 소홀히 했고, 제 성적은 나아질 줄을 몰랐죠. 그렇게 고3의 6월이 가고, 7월이 가고, 8월도 가고, 9월도 성적이나 공부 습관에는 진전이 없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답답하고, 제 자신이 한심하고, 암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람도 쐴 겸 남해안에 가서 마음을 굳게 다잡았습니다.
남은 기간동안 죽도록 공부하기로.
태어나서 그렇게 굳은 결심을 한 적은 처음이었죠.
하지만 저는 나아지지 않았고, 수능 D-Day 50일에도, 10일에도 술만 마시고 놀았습니다. 단지 잘한 것이 있다면 교회를 열심히 나간 것 뿐이었죠.
그리고 수능날, 역시 성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더군요. 379/500이라는 부끄러운 성적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S대에 가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선생님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한 번 지원해 보기나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들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S대에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S대 합격 통지서를 받은 겁니다!!! 사람들은 S대는 성적을 거의 안 봐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뛸 듯이 기뻤고, 드디어 3월, S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명문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 Sungga대이니, 명문 S대겠죠?
S대 생활에는 아주 만족합니다^^
여러분들은 저처럼 대충대충 해서 운으로 오시지 마시고, 열심히 노력하셔서 S대에 꼭 오시기 바랍니다~
완전 양아치의 명문 S대 합격수기
제가 S대에 들어가게 된 과정이 수험생 여러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몇 글자 써보겠습니다.
저는 문제아였습니다.
여의도의 유복하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랐지만,
어릴 적 부모님의 과잉 보호와 교육에 대한 소홀로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불량학생의 길로 빠지게 되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담배도 하루에 한 갑씩 피우고,
제 옷방은 태그호이어, 구찌, 폴 스미스, 루이비통 등 명품 의류가 넘쳐나,
전당포를 방불케 했죠.
고등학교 때는 더더욱 심해졌습니다.
마음에 안드는 아이들에게 물고문을 하기도 하고, 칼을 가지고 다녔고, 무면허 운전(야메라고 하죠)으로 여자를 헌팅해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제 별명은 극악무도였고, 제 도덕성은 갈수록 바닥을 쳐갔습니다.
여자들도 하루에 세 명씩 만나고 다녔고, 매일 다른 여자와 잤습니다.
여의도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성적은 아무리 고액 과외를 해 봐도 바닥이었고,
부모님은 저를 보시면서 매일 '너를 그렇게 키운 내가 잘못이다'라며 한탄하셨습니다.
모범생이었던 제 동생은 언제나 제 비교 대상이었고,
저는 질투심에 동생을 항상 때리고, 괴롭히기 일쑤였죠.
놀다 보니 말로만 듣던 고3은 수업이 끝난 후 다시 다가오는 수업시간처럼 금방 다가왔고, 저는 친구의 권유로 명문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재미있었고, 나중에는 기독교에 빠지게 되었죠.
저는 어느 정도 온순하고 착해졌고, 친구들은 제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다들 놀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부를 여전히 소홀히 했고, 제 성적은 나아질 줄을 몰랐죠.
그렇게 고3의 6월이 가고, 7월이 가고, 8월도 가고, 9월도 성적이나 공부 습관에는 진전이 없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답답하고, 제 자신이 한심하고, 암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람도 쐴 겸 남해안에 가서 마음을 굳게 다잡았습니다.
남은 기간동안 죽도록 공부하기로.
태어나서 그렇게 굳은 결심을 한 적은 처음이었죠.
하지만 저는 나아지지 않았고, 수능 D-Day 50일에도, 10일에도 술만 마시고 놀았습니다.
단지 잘한 것이 있다면 교회를 열심히 나간 것 뿐이었죠.
그리고 수능날, 역시 성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더군요.
379/500이라는 부끄러운 성적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S대에 가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선생님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한 번 지원해 보기나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들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S대에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S대 합격 통지서를 받은 겁니다!!!
사람들은 S대는 성적을 거의 안 봐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뛸 듯이 기뻤고, 드디어 3월, S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명문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 Sungga대이니, 명문 S대겠죠?
S대 생활에는 아주 만족합니다^^
여러분들은 저처럼 대충대충 해서 운으로 오시지 마시고,
열심히 노력하셔서 S대에 꼭 오시기 바랍니다~
제 보잘 것 없는 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