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스스로 왕따가 되었습니다.

swott200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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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한 외모, 그럭저럭한 학벌, 그럭저럭한 키, 그럭저럭한 집안, 그럭저럭한 친구들...
5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럭저럭 살아왔습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다닐 때도 그럭저럭 괜찮은 옷 입고, 평범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연예인 얘기, 교수 뒷담 따위의 별 특별할 것 없는 얘기들을 담고 살았습니다.
다른 모든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게임도 좀 했고, 노래도 좀 했고, 운동도 좀 했고, 웃기기도 좀 하며, 그저 꿇리는 일 없이 살았지만,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애착이 가는 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특별히 애착이 가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졸업 후 평범한 중소기업에 취직해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아가던 1999년,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결혼할 나이가 됐나보다.'라고 생각하며 결혼 상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선도 받아보고, 아는 사람들 범위 내에서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년간 7명의 여자를 만나봤지만 결혼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그나마 가망이 있어보였던 그녀에게 "미안해. 사귀는 정도까진 괜찮은데 너 같은 애랑 결혼까지 하고 싶진 않아" 라며 차갑게 차여버리고는, 저는 크게 상심해 3일간 집에 박혀서 소주를 하루에 4병이나 마시고 하루 종일 울며 벽에 대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도대체 내가 부족한 게 뭐지? 얼굴도 이정도면 괜찮고, 키도 꽤 크고, 안정적인 직장도 있는데, 또 특유의 유머로 그녀를 재밌게 해줬는데, 괜찮은 노래로 그녀에게 프로포즈까지 했는데, 왜 내가 결혼상대로는 부적합하다는 거지? 왜?"

그러다가 문득 "근데 왜 결혼을 하필 이 나이에 해야 할까? 너무 '표준'에 집착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감고 되짚어보니, 내 삶은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그저 남들과 비슷한 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세계는 겉보기에도 별 다를 게 없었고, 그 안에는 20년정도 묵은 'superficiality'와 'commonness', 그리고 'overscrupulousness'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그 세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몇 년이면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 안에 오래 살며, 내 세계를 가꿔줄 친구 하나 없었습니다. 저는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저는 나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요소들을 없애버리고,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첫 걸음을 내딛기 위해 저는 다니던 직장에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핸드폰을 없애고, 적금을 깼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자유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 것이었죠.

그 순간 저는 남들이 보기엔 대단한 존재도 아니었고, 나쁘게 말하면 '백수'였지만,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존재였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웠고, 이제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평범함으로만 요약되던 나의 세계, 이유도 모른 채 소위 '표준'이라는 것에 끌려오던 내 삶에 새로운 것들을 담을 앞날을 기대하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또, 그동안 친구라고 불러오던 사람들을 가장 친한 한 명을 빼고 모두 정리하니 속이 시원했습니다.

막상 무엇부터 할 지 몰랐던 저는, 원래 씻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격이기에, 씻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냄새가 난다고 욕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평소부터 잘 알고 싶었던 분야인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매일 혼자 영화관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화를 봤습니다.

'엘 토포'나 '이레이져헤드'같은 그로테스크한 영화나 '희생'같은 영화들을 많이 봤고, 자주 사색에 잠겨 살았습니다.

 

평소에 친구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리우드 영화만 맞춰서 함께 봐오던 제게 그런 영화들은 신선한 충격이요, 해방이었습니다.

또 평범한 정장을 벗어던지고,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특이한 옷들만 골라 입었습니다.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반대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교회도 나가보았습니다.가요나 팝송은 듣지도 부르지도 않고, 저만의 하드코어 CCM을 만들어 집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며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피했지만, 저 또한 그들을 피하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년을 살았습니다.

직장 생활 하면서 악착같이 모아둔 돈을 모두 써버려서 길거리에 나앉았지만, 또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큰 수확이 있었습니다.

 

저와 정말 마음과 취미가 맞는 진짜 친구들을 얻었고,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심장으로 느꼈고, 열심히 쌓은 영화 지식 덕분에,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지금 저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제 아내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제 더럽고, 특이한 모습을 겁내거나 피하지 않고, 제 가난을 신경쓰지 않고, 제 마음과 '나'라는 세계의 특별한 매력을 보고 저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되레 제가 차갑게 대하고, 피했고, 거부했지만, 제 아내는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습니다.

제게 힘을 주었고, 제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시켜줬고, '나'의 세계를 가꾸어 주었습니다.

이제 저는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예전처럼 안정된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저만의 친구와 저만 존중해주고 사랑해주는 아내와 사는 이 삶이 저는 행복합니다.

 

여럿이 어울려 다니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소신을 지키는 삶이 행복한 삶임을 믿습니다.

 

영화 '인썸니아'에서 윌 도머 형사(알 파치노 역)가 죽기 전 내뱉은 마지막 대사처럼...

 

"소신을 지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