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생각나서

불여우2003.06.20
조회377

이젠 혼자사는 일도 마니 익숙해져서 그런가

외롭다는 생각두  

지지리 궁상스런 생각이 들라치면

사우나 한판하구 맥주한캔 마시구

뽀송뽀송한 잠자리로 달래줌 ... 

글케 또 환절기 감기 지나가듯이 넘어가주고...처음이 생각나서

 

혼자사는 게시판 드나들다봄

 

얼마나 혼자살기를 소원했었던가? 생각이 난다. 처음이 생각나서

 

고등학교 다니던 무렵  바글대던 식구들과 함께 지지고 볶는게 싫어서

부모님께 집을 나가 자취하겠다고 했다가

아부지한테 쥐어 박히구 시간 나는 족족 엄마한테 잔소리듣구...처음이 생각나서

 

글다가 

아부지하시던 사업 망하구

동생들 줄줄이 아직 학생이었구

학교는 졸업했는데 마땅한 직장도 못구하고

답답하던차에 다행히 아는 분의 소개로

직장을 구했다

 

집에서 다니려니 했는데

서울에 갑자기 사람이 필요하니

거처도 마련해 주겠단다.

이런 경우를 천만 다행이라고 하나?

 

엄마가 없는 살림에 챙겨 준 10만원과  

가방 두개에 옷가지 몇벌, 수저 한벌, 남비하나, 그릇 두개, 세면도구, 밑반찬과 쌀

글구... 이불보따리 하나

뭐 이런거 나눠 담아 들고 상경을 하고

 

퇴근후 같이 근무하게 된 동료가

집까지 데려다 주고 가버리니

정말 혼자였다.

 

어둑어둑해지는 빈방에 

가방 두개 떨렁 던져두고

이불보따리를 깔고 앉아 있으니...

암튼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글치만 기분 같은거 따지고 잇을 상황이 아니다

아침에 헤매지 않게 우선 버스노선부터 알아둬야지

하고는 이삿짐이라고 있는 가방 두개 대강 풀어놓구

 

천천히 언덕을 내려오는데

골목두 많구 닥지닥지 사이사이 집들도 많다.

거의 다 내려와서 보니 재래시장이 있는거다

긴장도 가라앉고(나두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나 보다 )

맘이 편해져서 이것저것 둘러보다

 

버스가 다니는 길을 물어보니 언덕 반대편으로 내려가야 한단다

'에구 다시 올라가야겠다' 했는데

왠걸 올라가는 지점을 잃어버렸다.처음이 생각나서

20분이 넘도록 시장을 헤매는 동안

수중엔 돈 한푼 없구, 아는 연락처두 하나 없구 처음이 생각나서

 

차라리 파출소에 가서 얘기하구 하룻밤 신세를 지까?(어떻게 이런생각을 했는지 나도 의문이다)

가서 머라 그러지?

스물 네살이나 된게

'집을 잃어버렸는데여.. 주소두 엄구, 전화번호두 몰라여...'처음이 생각나서

치매걸린 할마씨두 아니구 (글믄 찾아주는 사람이라두 있지) 

아~~~~ 이대로 아침까지 개기까? 근데 그러구보니까 사무실 가는길두 잘 모르겠네

참 희안한게도 이 바보같은 여자가

직원이 사무실 위치를 설명해줬는데도 불구하고 그 순간 전혀 생각이 안나는거였다.처음이 생각나서

'아! 이기모야'처음이 생각나서

알고 있는건 우리집 전화번호 뿐!!!처음이 생각나서 

이런 상황임 경찰도 어쩔수 엄따

걍~~~ 찾아야겠따. 길이 떠내려 갈것두 아니구 우쨋거나 나오겠지

그러구 한시간 !!!

우여곡절끝에

집앞이라 생각되는 지점에 도착했는데

이집인지 저집인지 헷갈린다

내가 나온집이 어디더라 처음이 생각나서

...

어후! 이 암담한 사람아!

 

 

겨우 내 방을 찾아 들어와 시계를 보니 9시 반 

오랜시간 헤맸다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시간은 그렇게 오래 지나 있지 않았다.

그날 그 텅빈 방에 누워서

멀뚱 멀뚱 ... 생각이 많았다. 

여기서 어떻게 살랑가 모르겄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서울생활은 벌써 10년이 넘었다

혼자 살다봄

게다가 별루 넉넉하지 않음

이것저것 혼자서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이제 나름대로 익숙해지는 것들도 많아졌고

집근처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많은 것들이 종종

촌뜨기로 남아있는 내 맘을 당황하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