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듯이 몰두 해도 좋을 것들에 대한 변(辨)*** 어찌 방황해보지 않고 방황을 설명할 수 있나, 어찌 눈물 흘려보지 않고 눈물을 얘기할 수 있나, 어찌 사랑을 해 보지 않고 사랑을 피력할 수 있으며, 어찌 이별해보지 않고 이별을 노래 할 수 있나, 시인의 시도 소설가의 소설도 화가의 그림도 아무리 변명하고 미사여구로 다듬어도 그건 그 사람의 역사이며 생활이라네, 한때 대처승에서부터 걸레스님까지 그들의 구도(求道)를 경멸하고 이름만 들어도 냄새가 풍겨 역겨워했지만 이젠 감히 눈도 맞추지 못하겠더라, 인간의 본능? 그거 아주 아름다운거야, 단지 인간들이, 처신을 잘못 했을 뿐이지, 그걸 겪어보지 않고 말하는 자 만이 위선이고 자만일 뿐이야, 처신만 잘해봐, 영원한 로맨스야, 가정이 있는 여자도 외로워할 수 있지,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어떻게 승화시키느냐는 인간의 도리지만 부족하여 승화시키지 못하고 본능의 습관으로 전락해버림으로써 가정에서 버림받고 이웃에서 손가락질받지, 모든게 마찬가지야 다 버려도 좋지만 한가지만큼은 버리지 않아야 할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야, 그 자존심으로 쓴 자신만의 작품에 누가 옳고 그르다고 자를 잰다면 그건 자신의 자일뿐이지 보편타당한 논리의 자는 될 수 없지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작품하는 사람들이야, 머리로,기교로,미사여구로 가다듬고 장식하고도 속을 채우지 않고 세운 조각이 바로 서 던가? 화가가 죽을 때 까지 붓을 놓지 못하고 글쓰는 사람이 생이 마감하는 날까지 펜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의 사리같은 작품을 만들기 위함이지 위대한 걸작품을 만들 야망은 없어, 그리고 진정 교만을 말 할 수 있는자는 쉽게 그렇게 남을 평가하지 않지 내면을 볼 마음의 눈이 없는데 뭘 보겠나 겉으로 드러난 것? 좋지? 가장 좋은 예가 여자지, 그 여자가 육체적인 본능에 미친듯이 몰두해도 좋을 만큼의 여자라면? 애인으로나 아내로나 어떻게 믿고 살지? 바로 그거야, 세상 만물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마음의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세상마저도 우리가 미쳐도 될 만큼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삶은 장난이 아니지, 새벽 두시부터 저녁까지 뛰면서도 시를 생각하는 사람은 시에 미처도 좋지 않겠나? 아무나 시를 쓰지 않는다네, 누구나 시를 쓸 수도 없다네, 한에 맺힌 사람만이 시를 쓰지, 한 맺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말을 시에 담지, 읽기 쑥쓰러우면 사탕수수라 생각하고 씹어봐 씹을 수록 달콤할거야, 정제된 설탕이야 흔하지만 사탕수수야 흔하지 않지 흔하지 않다는 건 소중한 거지, 박수근화백의 그림들, 나야 똑 같이 예쁘더라, 초보화가의 그림이랑, 그건 나의 잣대일 뿐이지, 세상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상도 풍속도 다른 외국에서 그렇게 엄청난 가격에 팔리겠나, 비 맞고 새벽을 네 시간을 달리면서 치자꽃을 보았고 그걸 시로 옮겼네, 미치도록 시가 좋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시로 승화시킨거야, 누가 감히 그 시를 보고 비에 젖어 초라한 내 몰골을 상상이나 하겠나? 그것도 네시간씩이나, 우의를 입어도 속옷까지 다 젖는다네, 그 생활 십년이야, 시가 있으므로 자연도 예찬하고 칭송할 사람은 칭송하고 아니꼬운 사람들도 야유할 수 있다네, 옳고 그름의 논리는 한물갔지, 좋으면 다행이고 싫으면 그뿐이라는 마당에, 뭐가 있고 뭐가 없다는 거지? 제발이지, 노력하는 사람에게 똥바가지 퍼붓지 말게 좋아, 똥바가지라도 내가 고치고 개선해야 될 정곡을 질렀다면 달게 받지 비겁하다고 생각지 말게, 그릇타령 하지말게, 모두가 자신의 그릇에 세상을 담으려 하지만 세상의 그릇에 나를 담으려 하는 사람도 있다는걸 잊지 말게나, 글/이희숙
***미친듯이 몰두해도 좋을 것들에 대한 변(辨)***
***미친듯이 몰두 해도 좋을 것들에 대한 변(辨)***
어찌 방황해보지 않고 방황을 설명할 수 있나,
어찌 눈물 흘려보지 않고 눈물을 얘기할 수 있나,
어찌 사랑을 해 보지 않고 사랑을 피력할 수 있으며,
어찌 이별해보지 않고 이별을 노래 할 수 있나,
시인의 시도
소설가의 소설도
화가의 그림도
아무리 변명하고 미사여구로 다듬어도
그건 그 사람의 역사이며 생활이라네,
한때 대처승에서부터 걸레스님까지
그들의 구도(求道)를 경멸하고
이름만 들어도 냄새가 풍겨 역겨워했지만
이젠 감히 눈도 맞추지 못하겠더라,
인간의 본능?
그거 아주 아름다운거야,
단지 인간들이,
처신을 잘못 했을 뿐이지,
그걸 겪어보지 않고 말하는 자 만이
위선이고 자만일 뿐이야,
처신만 잘해봐,
영원한 로맨스야,
가정이 있는 여자도 외로워할 수 있지,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어떻게 승화시키느냐는 인간의 도리지만
부족하여 승화시키지 못하고
본능의 습관으로 전락해버림으로써
가정에서 버림받고 이웃에서 손가락질받지,
모든게 마찬가지야
다 버려도 좋지만 한가지만큼은 버리지 않아야 할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야,
그 자존심으로 쓴 자신만의 작품에 누가 옳고 그르다고
자를 잰다면 그건 자신의 자일뿐이지 보편타당한 논리의 자는 될 수 없지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작품하는 사람들이야,
머리로,기교로,미사여구로
가다듬고 장식하고도 속을 채우지 않고 세운 조각이
바로 서 던가?
화가가 죽을 때 까지 붓을 놓지 못하고
글쓰는 사람이 생이 마감하는 날까지 펜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의 사리같은 작품을 만들기 위함이지
위대한 걸작품을 만들 야망은 없어,
그리고
진정 교만을 말 할 수 있는자는 쉽게 그렇게 남을 평가하지 않지
내면을 볼 마음의 눈이 없는데 뭘 보겠나
겉으로 드러난 것?
좋지? 가장 좋은 예가 여자지,
그 여자가 육체적인 본능에 미친듯이 몰두해도 좋을 만큼의 여자라면?
애인으로나 아내로나 어떻게 믿고 살지?
바로 그거야,
세상 만물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마음의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세상마저도 우리가 미쳐도 될 만큼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삶은 장난이 아니지,
새벽 두시부터 저녁까지 뛰면서도 시를 생각하는 사람은
시에 미처도 좋지 않겠나?
아무나 시를 쓰지 않는다네,
누구나 시를 쓸 수도 없다네,
한에 맺힌 사람만이 시를 쓰지,
한 맺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말을 시에 담지,
읽기 쑥쓰러우면 사탕수수라 생각하고 씹어봐
씹을 수록 달콤할거야,
정제된 설탕이야 흔하지만
사탕수수야 흔하지 않지
흔하지 않다는 건 소중한 거지,
박수근화백의 그림들,
나야 똑 같이 예쁘더라, 초보화가의 그림이랑,
그건 나의 잣대일 뿐이지,
세상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상도 풍속도 다른 외국에서 그렇게 엄청난 가격에 팔리겠나,
비 맞고 새벽을 네 시간을 달리면서
치자꽃을 보았고 그걸 시로 옮겼네,
미치도록 시가 좋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시로 승화시킨거야,
누가 감히 그 시를 보고 비에 젖어 초라한 내 몰골을 상상이나 하겠나?
그것도 네시간씩이나,
우의를 입어도 속옷까지 다 젖는다네,
그 생활 십년이야,
시가 있으므로
자연도 예찬하고 칭송할 사람은 칭송하고
아니꼬운 사람들도 야유할 수 있다네,
옳고 그름의 논리는 한물갔지,
좋으면 다행이고 싫으면 그뿐이라는 마당에,
뭐가 있고 뭐가 없다는 거지?
제발이지,
노력하는 사람에게 똥바가지 퍼붓지 말게
좋아,
똥바가지라도 내가 고치고 개선해야 될
정곡을 질렀다면 달게 받지
비겁하다고 생각지 말게,
그릇타령 하지말게,
모두가 자신의 그릇에 세상을 담으려 하지만
세상의 그릇에 나를 담으려 하는 사람도 있다는걸 잊지 말게나,
글/이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