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TV 설치하면 남들은 미드, 일드 시리즈 독파한다는데 Etwas, 무한도전부터 섭렵했다. 어제 새벽 드뎌 <커피 프린스 1호점> 12회까지 봤다. 흠.. 역시 멜로가 짱이야~
커피 프린스 1호점.. 길구나, 남들이 그래서 커프로 부르는 게야. 커프의 언니오빠들, 각자의 사회적 세계 속에서 나름 열심히들 산다. 밤도 잘 까고 인형에 눈도 잘 달고 커피도 잘 팔고 그림, 음악도 잘 하고.
연애는 언제나 그들의 치열한 관심사인데 개인사의 곡절, 자기의 복합적인 심리 구조, 타인의 온갖 개성으로 인해 늘 파란만장이다.
그런데! 커프의 언니오빠들은 우짜든둥 연애에 성공한다. 나? ........... 커프 열심히 본다.
요 차이가 모냐고.. 실마리는 케이스 스터디로부터.
먼저 고은찬. (아~ 윤은혜 역시 귀여워~) 아버지 돌아가시고 철딱서니 없는 어머니 모시고 학교 댕기는 여동생 수발하느라 일찌기 소녀가장 되시었다. 어린 나이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고 그렇다 보니 힘 쎄고 밥 잘 먹고, 계집앤지 사낸지 구별하기 힘든 터프한 여자로 자라나시었다.
'프린스'만 뽑겠다는 커피집에 일자리를 얻고자 본인의 장기를 살려 힘쎄고 발랄한 남장여자로 취직하였는데 아 그만, 아니 예정된 대로, 젊고 잘 생긴 사장님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가짜 남자가 진짜 남자를 사랑하다 짠~ 진실을 밝히고 해피엔딩 했다면 순정 만화성 트렌디 드라마로 분류되겠지만, 우리의 찬이는 자신의 처지와 상태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망설이고 자신이 저지른 거짓으로 상대가 당하는 고통을 자책하며 가슴이 찢어진다. 커프는 전체적으로 명랑쾌활한 톤임에도 불구하고 요런 대목 덕분에 멜로드라마의 경지로 넘어간다.
은찬 캐릭터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분석해본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부정하지 않고 나름 적응하며 숨가쁘게 살아왔다. 어머니는 은찬의 현 상태에서 필요한 역할 모델이 되지 못한다. (딸내미 고생한 돈으로 분홍색 구두 사신고, 전세값 올려달라는 주인의 전화도 어머니가 아닌 은찬이 응대한다. 급기야 엄마가 다이아 반지 빌려끼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안 은찬, 길바닥에 다리를 뻗고 엉엉 운다. )
어머니의 여성성, 즉 자신을 가꾸고 남자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본능은 은찬에게 늘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약한 여자일 뿐, 자신이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품이기도 하다. 은찬은 그런 어머니까지도 껴안기로 한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어머니-여성성이란 은찬에게 피해의식 내지 증오의 대상일 수 있는데, 다행히도 그녀가 워낙 착한 덕분에 걍 스스로의 여성성을 억누르는 정도에서 멈췄다. (사내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옷입는 은찬의 모습은 단순히 일하기 편하고자 하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은찬은 가정적-사회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종류의 캐릭터를 강하게 형성한다. 그러한 압력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은 반비례로 심히 저개발 상태다.
은찬의 기존 세계 속에서 이러한 캐릭터는 꽤 효과를 발휘한다. 그녀는 자신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저개발된 여성, 은찬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남자를 보게 된 것이다. 최한결이다. (공유, 처음으로 히트한 주연 역할이라지?^^)
이 세팅이 기존의 은찬 캐릭터에 도전을 걸어온다. 사회적 환경 수준이 높은 사람들, 감수성과 교양이 개발된 사람들을 계기로 은찬에게 새로운 욕구가 끓어오른다.
그녀는 열심히 일하는 틈틈이 원두 볶고 커피 내리는 일을 배운다. 그것은 은찬이 단지 새로운 일 하나를 더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내면에서 새로운 향기가 피어오르는 것이다.
이것은 쉽다. 배우고 익히는 일은 차라리 은찬의 특기사항인 까닭이다. 그녀가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일하는 것이 '재밌다'고 말하는 이유다.
문제는 연애다. 여장남자라서가 아니라, 은찬은 연애관계 자체를 다루지 못한다. 자기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조차 주변사람의 도움을 빌어 설명 받고 이해한다. 이해하고 나자, 은찬의 컴플렉스가 폭발한다.
과연 그 남자가 나를 여자로 보아줄까, 내가 그 남자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가. 여성스럽지 못하고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우아하지 못하고 등등. 더구나 한결은 '니가 남자라서 다행이다. 여자라면 누가 널 좋아하겠냐'며 아픈 데를 쑤셔댔다. (물론, 한결 캐릭터도 연구 대상이다) 이러한 자기 인식-컴플렉스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더 강도가 높아진다.
이 결절점, 즉 모든 요소가 마주쳐 소용돌이 치는 지점에서 어떤 선택으로 나아가느냐가 향후 은찬의 연애 경력과 삶의 패턴을 규정지을 것이다. 다행히도 은찬은 현명한, 아~주 다행스런 길로 나아간다.
그 계기는, 은찬이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맞대면 하는 것으로부터 주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정직함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헤집어 놓고, 강박관념과 컴플렉스조차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용기를 뜻한다. 그러자 그동안 나름 안정적으로 작동하던 에고(ego)의 시스템이 뒤틀리며 불을 내뿜는다.
화장실 변기 위에 쭈그려 앉아 베개에 기댄 채 울고 짜는 은찬, 전화기를 붙들고 안절부절 하는 은찬, 누웠다 기댔다 불면증에 시달리느라 덕분에 밤은 잔뜩 깎아둔 은찬... 드라마 시간상으로는 하룻밤이지만 실제 인생이라면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의 반복된 시행착오가 있을지 모르는...
마침내 고요가 온다. 그녀는 한결을 맞대면 하여 무언가를 고백할 준비가 되었다. 우연처럼 기회가 다가온다. 그녀는 말한다.
내 마음은 이랬다고, 내 컴플렉스는 이랬다고, 거짓을 뒤집을 용기가 없었다고. 그러나 당신을 좋아한다고, 보고 싶다고.
거절 당하는 쪽팔림, 인정받지 못하는 두려움, 그로 인한 자아존중감의 훼손, 그 모든 두려움을 넘어서서. 어떠한 내숭도 없이, 어떠한 위장의 가면도 없이..
아이러니 하게도 이것은 강한 자기 긍정의 시작이다. 상대의 반응이 어떠하든, 관계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과와 상관없이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현재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결정.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자기 긍정이야말로 관계 형성의 비결이라는 거다.
자아존중감이 희박할수록, 타인과의 관계가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에 대해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가 클수록, 두려움도 커진다. 관계의 실패를 자아의 실패로 동일시 하기 때문이다. 두려워 하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기껏 뭔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두려움과 위장된 자존심으로 필터링 되어 일그러진다. 실패가 반복되면 급기야 내면으로 숨어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또 한가지.
은찬-한결의 경우, 사회적-경제적 환경 차이가 크다. 은찬은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일단 넘어가 버린다.
은찬과 비스무리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우리 주변이나 테레비 드라마에 많다. 모든 외적 장애를 뛰어넘어, 상대의 감정과 상관없이 내 감정에 충실한 언니 오빠들.
그런데 어떤 자들은 악인이나 비극의 주인공이고 은찬은 Etwas의 열렬한 지지를 받느냐고.
비참하거나 악역이 되어버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를 들여다보기 이전에, 남을 보는 것을 우선시 한다. 상대가 가진 매력, 상대가 가진 부, 상대가 나에게 주었으면 하는 사랑 등등. 그것을 나에게 갖다 붙이면 행복해지고, 그들 만큼 멋져질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는 단순함, 불타는 욕망.
그것은 처절하고도 완벽한 자기 부정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징벌받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의 내면은 끝없는 결핍감에 시달린다. 한가지가 충족되면 또 다른 외부 요소를 향해서 고속주행을 할 것이다. (아, 물론 돈 좋다는 거 Etwas도 안다. 심리 측면에서 안 됐다는 야그지.)
고속주행 하는 사람들, 고독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관계 장애자이며, 그 뿌리는 자아존중감의 결핍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심리 유형이다.
은찬이 지금 결혼이 아니라 연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건 한결 다행스럽다. 환경 조건은 결혼에 있어서 커다란 요소다. 무쟈게 개방적인 척 하는 Etwas조차 결혼의 실제적 요소는 사랑이 아니라 유사한 환경의 재생산이라고 말하겠다. 사랑은 그 선택을 가능케 하는 윤활유일 뿐이다. 심지어 사랑 없어도 결혼 되고~
반면 연애에 있어서 환경 차이란 외부의 저항 요소가 적다. 즉 당사자들의 심리적 요소에 그친다는 야그. 커다란 차이 요소를 갖고 있는 관계는, 삐그덕 댈 수는 있어도 그 경험 자체가 서로를 살찌울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게 싫으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면 되니까.)
은찬이 지금 하려는 것은 연애, 즉 관계 형성의 체험이다. 한 개인의 내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도 연애를 비롯한 수많은 관계 유형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싱글의 삶도 살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풍요롭다는 야그.
우짜든둥, 외적인 성공-실패와 상관없이 더 소중한 무엇이 내 안에 있다는 자각, 그것은 은찬이 의식의 밑바닥에 숨차도록 다이빙해 들어가서 건져올린, 최초의 보물일 것이다. 평생 동안 반짝일 그 무엇.
은찬이 해낸 것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당연하다. 심리적 장애란 애초에 그리 대단찮은 것들, 남들이 쉽게 하는 것을 어렵게 붙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커프 은찬의 심리 분석 : 쫀득쫀득한 글
하나TV 설치하면 남들은 미드, 일드 시리즈 독파한다는데
Etwas, 무한도전부터 섭렵했다.
어제 새벽 드뎌 <커피 프린스 1호점> 12회까지 봤다.
흠.. 역시 멜로가 짱이야~
커피 프린스 1호점.. 길구나, 남들이 그래서 커프로 부르는 게야.
커프의 언니오빠들, 각자의 사회적 세계 속에서 나름 열심히들 산다.
밤도 잘 까고 인형에 눈도 잘 달고 커피도 잘 팔고 그림, 음악도 잘 하고.
연애는 언제나 그들의 치열한 관심사인데
개인사의 곡절, 자기의 복합적인 심리 구조, 타인의 온갖 개성으로 인해 늘 파란만장이다.
그런데!
커프의 언니오빠들은 우짜든둥 연애에 성공한다.
나? ........... 커프 열심히 본다.
요 차이가 모냐고..
실마리는 케이스 스터디로부터.
먼저 고은찬. (아~ 윤은혜 역시 귀여워~)
아버지 돌아가시고 철딱서니 없는 어머니 모시고 학교 댕기는 여동생 수발하느라
일찌기 소녀가장 되시었다.
어린 나이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고 그렇다 보니
힘 쎄고 밥 잘 먹고, 계집앤지 사낸지 구별하기 힘든 터프한 여자로 자라나시었다.
'프린스'만 뽑겠다는 커피집에 일자리를 얻고자
본인의 장기를 살려 힘쎄고 발랄한 남장여자로 취직하였는데
아 그만, 아니 예정된 대로, 젊고 잘 생긴 사장님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가짜 남자가 진짜 남자를 사랑하다 짠~ 진실을 밝히고 해피엔딩 했다면
순정 만화성 트렌디 드라마로 분류되겠지만,
우리의 찬이는 자신의 처지와 상태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망설이고
자신이 저지른 거짓으로 상대가 당하는 고통을 자책하며 가슴이 찢어진다.
커프는 전체적으로 명랑쾌활한 톤임에도 불구하고
요런 대목 덕분에 멜로드라마의 경지로 넘어간다.
은찬 캐릭터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분석해본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부정하지 않고 나름 적응하며 숨가쁘게 살아왔다.
어머니는 은찬의 현 상태에서 필요한 역할 모델이 되지 못한다.
(딸내미 고생한 돈으로 분홍색 구두 사신고, 전세값 올려달라는 주인의 전화도 어머니가 아닌 은찬이 응대한다.
급기야 엄마가 다이아 반지 빌려끼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안 은찬, 길바닥에 다리를 뻗고 엉엉 운다. )
어머니의 여성성, 즉 자신을 가꾸고 남자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본능은 은찬에게 늘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약한 여자일 뿐, 자신이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품이기도 하다.
은찬은 그런 어머니까지도 껴안기로 한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어머니-여성성이란 은찬에게 피해의식 내지 증오의 대상일 수 있는데,
다행히도 그녀가 워낙 착한 덕분에 걍 스스로의 여성성을 억누르는 정도에서 멈췄다.
(사내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옷입는 은찬의 모습은 단순히 일하기 편하고자 하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은찬은 가정적-사회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종류의 캐릭터를 강하게 형성한다.
그러한 압력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은 반비례로 심히 저개발 상태다.
은찬의 기존 세계 속에서 이러한 캐릭터는 꽤 효과를 발휘한다.
그녀는 자신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저개발된 여성, 은찬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남자를 보게 된 것이다.
최한결이다. (공유, 처음으로 히트한 주연 역할이라지?^^)
이 세팅이 기존의 은찬 캐릭터에 도전을 걸어온다.
사회적 환경 수준이 높은 사람들, 감수성과 교양이 개발된 사람들을 계기로
은찬에게 새로운 욕구가 끓어오른다.
그녀는 열심히 일하는 틈틈이 원두 볶고 커피 내리는 일을 배운다.
그것은 은찬이 단지 새로운 일 하나를 더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내면에서 새로운 향기가 피어오르는 것이다.
이것은 쉽다. 배우고 익히는 일은 차라리 은찬의 특기사항인 까닭이다.
그녀가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일하는 것이 '재밌다'고 말하는 이유다.
문제는 연애다.
여장남자라서가 아니라, 은찬은 연애관계 자체를 다루지 못한다.
자기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조차 주변사람의 도움을 빌어 설명 받고 이해한다.
이해하고 나자, 은찬의 컴플렉스가 폭발한다.
과연 그 남자가 나를 여자로 보아줄까, 내가 그 남자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가.
여성스럽지 못하고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우아하지 못하고 등등.
더구나 한결은 '니가 남자라서 다행이다. 여자라면 누가 널 좋아하겠냐'며 아픈 데를 쑤셔댔다.
(물론, 한결 캐릭터도 연구 대상이다)
이러한 자기 인식-컴플렉스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더 강도가 높아진다.
이 결절점, 즉 모든 요소가 마주쳐 소용돌이 치는 지점에서
어떤 선택으로 나아가느냐가
향후 은찬의 연애 경력과 삶의 패턴을 규정지을 것이다.
다행히도 은찬은 현명한, 아~주 다행스런 길로 나아간다.
그 계기는, 은찬이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맞대면 하는 것으로부터 주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정직함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헤집어 놓고, 강박관념과 컴플렉스조차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용기를 뜻한다.
그러자 그동안 나름 안정적으로 작동하던 에고(ego)의 시스템이 뒤틀리며 불을 내뿜는다.
화장실 변기 위에 쭈그려 앉아 베개에 기댄 채 울고 짜는 은찬,
전화기를 붙들고 안절부절 하는 은찬,
누웠다 기댔다 불면증에 시달리느라 덕분에 밤은 잔뜩 깎아둔 은찬...
드라마 시간상으로는 하룻밤이지만
실제 인생이라면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의 반복된 시행착오가 있을지 모르는...
마침내 고요가 온다.
그녀는 한결을 맞대면 하여 무언가를 고백할 준비가 되었다.
우연처럼 기회가 다가온다.
그녀는 말한다.
내 마음은 이랬다고, 내 컴플렉스는 이랬다고,
거짓을 뒤집을 용기가 없었다고.
그러나 당신을 좋아한다고, 보고 싶다고.
거절 당하는 쪽팔림, 인정받지 못하는 두려움, 그로 인한 자아존중감의 훼손,
그 모든 두려움을 넘어서서.
어떠한 내숭도 없이, 어떠한 위장의 가면도 없이..
아이러니 하게도 이것은 강한 자기 긍정의 시작이다.
상대의 반응이 어떠하든, 관계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과와 상관없이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현재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결정.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자기 긍정이야말로 관계 형성의 비결이라는 거다.
자아존중감이 희박할수록,
타인과의 관계가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에 대해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가 클수록, 두려움도 커진다.
관계의 실패를 자아의 실패로 동일시 하기 때문이다.
두려워 하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기껏 뭔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두려움과 위장된 자존심으로 필터링 되어 일그러진다.
실패가 반복되면 급기야 내면으로 숨어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또 한가지.
은찬-한결의 경우, 사회적-경제적 환경 차이가 크다.
은찬은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일단 넘어가 버린다.
은찬과 비스무리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우리 주변이나 테레비 드라마에 많다.
모든 외적 장애를 뛰어넘어, 상대의 감정과 상관없이
내 감정에 충실한 언니 오빠들.
그런데 어떤 자들은 악인이나 비극의 주인공이고
은찬은 Etwas의 열렬한 지지를 받느냐고.
비참하거나 악역이 되어버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를 들여다보기 이전에, 남을 보는 것을 우선시 한다.
상대가 가진 매력, 상대가 가진 부, 상대가 나에게 주었으면 하는 사랑 등등.
그것을 나에게 갖다 붙이면 행복해지고, 그들 만큼 멋져질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는 단순함, 불타는 욕망.
그것은 처절하고도 완벽한 자기 부정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징벌받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의 내면은 끝없는 결핍감에 시달린다.
한가지가 충족되면 또 다른 외부 요소를 향해서 고속주행을 할 것이다.
(아, 물론 돈 좋다는 거 Etwas도 안다. 심리 측면에서 안 됐다는 야그지.)
고속주행 하는 사람들,
고독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관계 장애자이며,
그 뿌리는 자아존중감의 결핍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심리 유형이다.
은찬이 지금 결혼이 아니라 연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건 한결 다행스럽다.
환경 조건은 결혼에 있어서 커다란 요소다.
무쟈게 개방적인 척 하는 Etwas조차
결혼의 실제적 요소는 사랑이 아니라 유사한 환경의 재생산이라고 말하겠다.
사랑은 그 선택을 가능케 하는 윤활유일 뿐이다.
심지어 사랑 없어도 결혼 되고~
반면 연애에 있어서 환경 차이란 외부의 저항 요소가 적다.
즉 당사자들의 심리적 요소에 그친다는 야그.
커다란 차이 요소를 갖고 있는 관계는, 삐그덕 댈 수는 있어도 그 경험 자체가 서로를 살찌울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게 싫으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면 되니까.)
은찬이 지금 하려는 것은 연애, 즉 관계 형성의 체험이다.
한 개인의 내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도
연애를 비롯한 수많은 관계 유형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싱글의 삶도 살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풍요롭다는 야그.
우짜든둥,
외적인 성공-실패와 상관없이 더 소중한 무엇이 내 안에 있다는 자각,
그것은 은찬이 의식의 밑바닥에 숨차도록 다이빙해 들어가서 건져올린,
최초의 보물일 것이다.
평생 동안 반짝일 그 무엇.
은찬이 해낸 것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당연하다.
심리적 장애란 애초에 그리 대단찮은 것들, 남들이 쉽게 하는 것을
어렵게 붙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펌 출처 : 공룡양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