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저의 글을 보시고 간혹 소식 전해 달라고 하신 분들이 계셔서 글을 올려봅니다. 전역하고 그녀와 3통의 편지를 주고받고, 지난 토요일 그녀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녀를 보고 싶었고, 어떻게 가야할지 구실을 찾던 중 대관령에 계시는 할아버지 댁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전역도 했고, 추석 전에 뵙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동생을 데리고 지난 목요일 오후 대관령에 계시는 할아버지 댁에 갔습니다. 거기서 토요일 아침까지 먹고 부대로 출발하였습니다. 동생이 부대는 왜 가냐고 했을 때, 사실 그대로 말하려고 했지만, 일단 그녀를 만난 후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강원도 온 김에 간부들하고 후임들 얼굴 보고 가자고 말하니, “오빤, 군 생활 즐겼나봐?” 라고 말하며 웃더군요. 동생에게 그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직 그녀에게 저의 이성적 애틋한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기에 둘이 만나는 것보다 편안한 만남이 될 것 같았고, 그녀도 동생도 서로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대 도착해서 몇몇 간부들과 후임들을 만난 후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 뒤편에 있는 사택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자 목사님께서 나오셨습니다. 동생과 같이 인사드리고, 들어갔습니다. 목사님은 저를 기억 못하셨지만, 너무 반가와 하셨습니다. 차를 마시고, 다음날 있을 예배를 위한 설교를 준비해야하니 천천히 놀다가라고 하셨습니다. 동생은 그녀의 방을 구경시켜 달라고 하더군요. 역시 동생을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방에 들어가자마자 앨범을 발견하고, “언니, 앨범 봐도 되요?” 우리는 과일을 먹으며, 이런저런 그녀의 사진들을 보면서, 웃고 놀라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녀가 없으시던 목사님 내외분께서 늦게 그녀를 가지셨고, 그녀를 출산하면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날 때부터 장애를 갖게 된 그녀는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그녀를 바라보는 동생의 눈을 보고 동생도 저와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맑고 아름다운 그녀...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방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방은... 깜찍하게 꾸며진 옛 여자친구의 방과는 달랐습니다. 빛바랜 벽지에 청테이프로 장판이 땜빵이 되어있는 작은 방이었지만, 이것저것 어렸을 때부터 그녀가 소중하게 간직해온 것들이 차곡차곡 잘 정돈되어있었고, 5개의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넘쳐나는 그녀의 방에 있는 동안 왠지 모르게 푸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방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남양주시에 도착하자 저녁 8시가 다되었습니다. 골아 떨어졌던 동생이 일어나서 대뜸 하는 말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역시나... 동생은 눈치가 정말 빠릅니다. “서울까지 많이 막히겠다. 여기서 밥 먹고 가자” 이제부터 그녀에게 하나하나 ‘나’를 보여주고 싶고 ‘그녀’를 하나하나 보고 싶습니다. ------------------ 지난번 두 번째 글에서 첫 번째 글을 링크해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제 글을 찾아내셨는지... 아래는 지난 저의 이야기입니다. ----- 2007.07 .22 18:35 말년 휴가 복귀중입니다. 지금 부대 들어가기전, 소대장님 방에 와있습니다. 부대복귀까지 2시간 정도 남았군요. 지금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저는 사정상 남들보다 조금 늦게 입대하였습니다. 입대전 여자친구가 있었고, CC(캠퍼스커플)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안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랬죠. 재계 집안인 그녀는 부류가 달랐습니다. 사귀는 동안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밖에 생각이 안나는군요. 행복한 시간보다는 불안한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입대후에는 더 그러했습니다. 첫휴가 외에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방에 위치해, 워낙 산골짜기라 면회 오기도 힘들어서, 제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상병을 달았을 때, 그녀는 유학을 갔습니다. 언제 올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제 너가 날 기다려 줄 차례라고 그러더군요. 저는 그냥 웃고 말았지만, 이별이었던거죠. 남들처럼 괴로워 군생활 적응 못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언제든지 보내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막상 그녀가 떠나고 나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외곽근무를 서고 있는데, 군종후임이 말했습니다. 다음주에 종교행사에 나가보자고. 추수감사주일인데 떡도 나온다고. 그래서 바람도 쌜겸 교회에 갔습니다. (매월 마지막 일요일은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종교행사를 합니다.) 처음 갔는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바깥공기도 마실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뒤로 한달에 한번 마을교회에 갔습니다. 목사님께는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는 딸이 있었는데요. 목사님은 연로하신데, 딸은 제또래였습니다. 종교행사가 끝나면 식사를 하게되는데, 언젠가부터 식사당번을 맡게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주방을 드나들게 되었고, 그녀와 몇마디 말들을 주고 받게 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종교행사가 끝나고 부대로 복귀할 때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 같은 것들을 싸 주었습니다. 그렇게 일요일 밤 자리에 누우면 그녀의 미소, 눈빛,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다리를 절면서 먹거리를 챙겨다 주는 그녀를 생각하노라면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타부대 병사와 피아노에 같이 앉아 피아노를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질투심같은 묘한 감정을 느낀 나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호기심이나 연민의 정일까... 그후로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의 솔직한 심정은 그랬습니다. 나의 어설픈 감정으로 인한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제가 상처를 받을까 겁이 났던 것이죠. 그뒤로 그녀를 한번 더 볼 수 있었습니다. 유격행군 복귀하면서 위병소에 들어오기전 비닐봉투를 들고 걸어오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인사를 했는데 못본척 하였었죠.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버린 것입니다. 말년휴가 가기 전날 군종이 저에게 편지 한통을 주었습니다. 또박또박 쓰여진 편지위의 글자들이 밤새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가시게 될줄 몰랐어요. 이곳이 쉽게 잊혀지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각날 때가 있겠죠? ...... 소대장님이 밥먹으로 마을 식당으로 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전 그냥 부대 복귀한다고 말하고수화기를 놓았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갑니다. ----- 2007.07 .25 10:58 지난번에 저의 글을 읽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날 소대장님 전화를 끊고 집밖으로 나가니 6시 40분쯤 되더군요. 부대 복귀시간에 늦을 것 같아, 곧장 그녀의 집(교회)으로 달려갔습니다. 날이 습하고 더워 사택앞에 도착했을 땐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마침 교회에서 나오는 그녀와 마주쳤습니다. 그녀는 정말 뜻밖이라는 듯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 내일 대대 들어갑니다. 화요일 전역이거든요." 제가 부대복귀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위병소까지 그녀랑 같이 걷기로 했습니다. 교회에서 위병소까지는 약 100미터가 채 안되지만, 다리가 불편한 그녀랑 걷다보니 15분 정도 걸리더군요. 위병소까지 오는 15분 동안 그녀와 아무말도 안했습니다. 바보같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머리속이 깜깜하더군요. 위병소 앞에 도착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 000 바보같은 자식, 무슨 말이든 해라! ' 위병소 앞에 도착하자 그녀가 악수를 청했습니다. "000 병장님 전역 축하드려요." 인사하고 그녀가 돌아서자 저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나와버렸습니다. "저기... 미안해요." "네?" 순간 또 나온다는 말이... "저 때문에 식사도 못하시고..." 그러자 그녀가 웃으면서 말합니다. "답장 하실거예요?" "잠시만요" 전 부리나케 위병소로 달려가 위병조장인 후임에게 메모지와 볼펜을 가져왔습니다. 그녀에게서 주소를 알아낸뒤 편지하겠다고 말하고 그녀를 보냈습니다. 다음날 중대장님과 101호를 타고 대대로 들어갔고, 다음날 신고식을 마친뒤 서울로 향하였습니다. 상봉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가 넘더군요. 어머니와 친구들이 마중나왔습니다. 제가 내내 싱글벙글하자, 제대해서 좋아하는 줄로만 알고 계시지요. 오늘 그녀에게 쓸 편지지를 사러 갈 겁니다. 오랜만에 편지를 써보는 군요 그녀집엔 인터넷이 안됩니다. 물론, 이메일로 보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전 그녀를 사랑합니다. 이건 제가 그녀를 생각 하지 않기 위해 교회를 가지 않은 날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통해 확인한 사실입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그녀를 만나고 왔습니다.
지난번 저의 글을 보시고 간혹 소식 전해 달라고 하신 분들이 계셔서 글을 올려봅니다.
전역하고 그녀와 3통의 편지를 주고받고, 지난 토요일 그녀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녀를 보고 싶었고, 어떻게 가야할지 구실을 찾던 중 대관령에 계시는 할아버지 댁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전역도 했고, 추석 전에 뵙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동생을 데리고 지난 목요일 오후
대관령에 계시는 할아버지 댁에 갔습니다. 거기서 토요일 아침까지 먹고 부대로 출발하였습니다.
동생이 부대는 왜 가냐고 했을 때, 사실 그대로 말하려고 했지만, 일단 그녀를 만난 후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강원도 온 김에 간부들하고 후임들 얼굴 보고 가자고 말하니, “오빤, 군 생활 즐겼나봐?”
라고 말하며 웃더군요.
동생에게 그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직 그녀에게 저의 이성적 애틋한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기에 둘이 만나는 것보다 편안한 만남이
될 것 같았고, 그녀도 동생도 서로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대 도착해서 몇몇 간부들과 후임들을 만난 후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 뒤편에 있는 사택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자 목사님께서 나오셨습니다.
동생과 같이 인사드리고, 들어갔습니다.
목사님은 저를 기억 못하셨지만, 너무 반가와 하셨습니다.
차를 마시고, 다음날 있을 예배를 위한 설교를 준비해야하니 천천히 놀다가라고 하셨습니다.
동생은 그녀의 방을 구경시켜 달라고 하더군요. 역시 동생을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방에 들어가자마자 앨범을 발견하고, “언니, 앨범 봐도 되요?”
우리는 과일을 먹으며, 이런저런 그녀의 사진들을 보면서, 웃고 놀라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녀가 없으시던 목사님 내외분께서 늦게 그녀를 가지셨고, 그녀를 출산하면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날 때부터 장애를 갖게 된 그녀는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그녀를 바라보는 동생의 눈을 보고 동생도 저와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맑고 아름다운 그녀...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방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방은...
깜찍하게 꾸며진 옛 여자친구의 방과는 달랐습니다.
빛바랜 벽지에 청테이프로 장판이 땜빵이 되어있는 작은 방이었지만,
이것저것 어렸을 때부터 그녀가 소중하게 간직해온 것들이 차곡차곡 잘 정돈되어있었고,
5개의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넘쳐나는 그녀의 방에 있는 동안 왠지 모르게 푸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방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남양주시에 도착하자 저녁 8시가 다되었습니다. 골아 떨어졌던 동생이 일어나서 대뜸 하는 말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역시나...
동생은 눈치가 정말 빠릅니다.
“서울까지 많이 막히겠다. 여기서 밥 먹고 가자”
이제부터 그녀에게 하나하나 ‘나’를 보여주고 싶고 ‘그녀’를 하나하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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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두 번째 글에서 첫 번째 글을 링크해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제 글을 찾아내셨는지...
아래는 지난 저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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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 .22 18:35
말년 휴가 복귀중입니다.
지금 부대 들어가기전, 소대장님 방에 와있습니다.
부대복귀까지 2시간 정도 남았군요.
지금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저는 사정상 남들보다 조금 늦게 입대하였습니다.
입대전 여자친구가 있었고, CC(캠퍼스커플)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안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랬죠. 재계 집안인 그녀는 부류가 달랐습니다.
사귀는 동안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밖에 생각이 안나는군요. 행복한 시간보다는
불안한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입대후에는 더 그러했습니다.
첫휴가 외에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방에 위치해, 워낙 산골짜기라 면회 오기도 힘들어서, 제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상병을 달았을 때, 그녀는 유학을 갔습니다.
언제 올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제 너가 날 기다려 줄 차례라고 그러더군요.
저는 그냥 웃고 말았지만, 이별이었던거죠.
남들처럼 괴로워 군생활 적응 못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언제든지 보내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막상 그녀가 떠나고 나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외곽근무를 서고 있는데, 군종후임이 말했습니다.
다음주에 종교행사에 나가보자고. 추수감사주일인데 떡도 나온다고.
그래서 바람도 쌜겸 교회에 갔습니다.
(매월 마지막 일요일은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종교행사를 합니다.)
처음 갔는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바깥공기도 마실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뒤로 한달에 한번 마을교회에 갔습니다.
목사님께는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는 딸이 있었는데요.
목사님은 연로하신데, 딸은 제또래였습니다.
종교행사가 끝나면 식사를 하게되는데, 언젠가부터 식사당번을 맡게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주방을 드나들게 되었고, 그녀와 몇마디 말들을 주고 받게 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종교행사가 끝나고 부대로 복귀할 때 옥수수나 감자 고구마 같은 것들을 싸 주었습니다.
그렇게 일요일 밤 자리에 누우면 그녀의 미소, 눈빛,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다리를 절면서 먹거리를 챙겨다 주는 그녀를 생각하노라면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타부대 병사와 피아노에 같이 앉아 피아노를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질투심같은 묘한 감정을 느낀 나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호기심이나 연민의 정일까...
그후로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의 솔직한 심정은 그랬습니다.
나의 어설픈 감정으로 인한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제가 상처를 받을까 겁이 났던 것이죠.
그뒤로 그녀를 한번 더 볼 수 있었습니다.
유격행군 복귀하면서 위병소에 들어오기전 비닐봉투를 들고 걸어오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인사를 했는데 못본척 하였었죠.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버린 것입니다.
말년휴가 가기 전날
군종이 저에게 편지 한통을 주었습니다.
또박또박 쓰여진 편지위의 글자들이
밤새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가시게 될줄 몰랐어요.
이곳이 쉽게 잊혀지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각날 때가 있겠죠?
......
소대장님이 밥먹으로 마을 식당으로 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전 그냥 부대 복귀한다고 말하고수화기를 놓았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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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 .25 10:58
지난번에 저의 글을 읽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날 소대장님 전화를 끊고 집밖으로 나가니 6시 40분쯤 되더군요.
부대 복귀시간에 늦을 것 같아, 곧장 그녀의 집(교회)으로 달려갔습니다.
날이 습하고 더워 사택앞에 도착했을 땐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마침 교회에서 나오는 그녀와 마주쳤습니다.
그녀는 정말 뜻밖이라는 듯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 내일 대대 들어갑니다. 화요일 전역이거든요."
제가 부대복귀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위병소까지 그녀랑 같이 걷기로 했습니다.
교회에서 위병소까지는 약 100미터가 채 안되지만, 다리가 불편한 그녀랑 걷다보니
15분 정도 걸리더군요. 위병소까지 오는 15분 동안 그녀와 아무말도 안했습니다.
바보같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머리속이 깜깜하더군요.
위병소 앞에 도착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 000 바보같은 자식, 무슨 말이든 해라! '
위병소 앞에 도착하자 그녀가 악수를 청했습니다.
"000 병장님 전역 축하드려요."
인사하고 그녀가 돌아서자
저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나와버렸습니다.
"저기... 미안해요."
"네?"
순간 또 나온다는 말이...
"저 때문에 식사도 못하시고..."
그러자 그녀가 웃으면서 말합니다.
"답장 하실거예요?"
"잠시만요"
전 부리나케 위병소로 달려가 위병조장인 후임에게 메모지와 볼펜을 가져왔습니다.
그녀에게서 주소를 알아낸뒤 편지하겠다고 말하고 그녀를 보냈습니다.
다음날 중대장님과 101호를 타고 대대로 들어갔고, 다음날 신고식을 마친뒤 서울로 향하였습니다.
상봉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가 넘더군요. 어머니와 친구들이 마중나왔습니다.
제가 내내 싱글벙글하자, 제대해서 좋아하는 줄로만 알고 계시지요.
오늘 그녀에게 쓸 편지지를 사러 갈 겁니다.
오랜만에 편지를 써보는 군요
그녀집엔 인터넷이 안됩니다. 물론, 이메일로 보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전 그녀를 사랑합니다.
이건 제가 그녀를 생각 하지 않기 위해 교회를 가지 않은 날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통해
확인한 사실입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