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천사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그렇게 그녀는 나에게 음악도 가르쳐 주었고, 미술도, 독서
하는 방법 까지도,..정말 완벽한 사람이라, 전 그녀를 하늘이 보낸 나의 수호천사라 믿었습니다
전 공부를 못했습니다,,초등에서 고등졸업 할 떄까지 동창들이 다 알 만큼 저능아 수준
이상 이었다고 말할 정도 였으니까요, 저희 어머니는 "제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다 필요없다~",,,이해하시죠?
우린 함께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녀도 겨우 퇴원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결석이 잦을 만큼 아팠고, 실업계를 진학한 저는 방과후면 바깥보다 병원에서
그녀를 보는 일이 많아 졌지요,,결국 그녀는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기 전 다시 병원
으로 가게 되었고, 자퇴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2학년이 되었습니다. 전 그녀가 아프지만 사랑해야 겠다고 그래서 언젠가 내가
돈도벌고 열심히 살면서 그녀를 위해 간호하면서 옆에 있어 주어야 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어느날 그녀가 뜬금없이 저와 약속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언젠가 자신의 모든 병이 나아 건강해지면, 자신이 좋아하는 렘브란트 화가의 그림과 네덜란드에 있는 그의 집을 꼭 함께 보자는 것이 었지요,, 그래서 난 당시 이름도 못들어 본 파리, 암스텔담, 런던등,,그녀가, 신기하게만 보이는 나라의 수도 이름을 가르쳐 줄 떄마다 난 그녀가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는 관심도 없는 나에게 그녀의 얘기를 알아 들을 수 없는건 당연했지요,, 그리고 그녀는
함께 대학을 꼭 가서 우리 대학생되면 좋은 커플로 사귀자고 무척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사실,,꼴찌하는 나에게 대학 입학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지금 보다 대학 가기가 무척 힘든 시절이었거든요,,전문대학도 정말 입학이 어려웠던 ,,,
하지만 그녀가 함께 있어준다면, 난 언젠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했지요. 그리고 그 해 겨울 크리스 마스 때 전 좋은 선물을 주기위해 (실은 프로포즈할려구..) 아는 교회 분 유리 가게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당시 받았던 10만원으로 그녀가 평소 갖고 싶어하던
선물을 사고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다리던 몇 달 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날 어머니께서 저에게 어렵게 그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그 후로 어떤 정신으로 살았는지 글로 정리 할 수가 없네요,,,저희 아버지는 저에게 병원에서 상담을 권해주실 만큼 제가 정신나간 사람처럼 살았다고 말해주셨습니다,,
너무 어려서 인지 머리가 나빠서 인지,,그녀가 그렇게 아프고 빨리 떠나리라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지 못한 것이 아주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맺혀 있네요,,경남 00에 있는 그녀의 묘지에서 12월 24일을 밤새 보냈습니다,,선물을 주지는
못했지만, 꼭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결국 아침에 눈밭에 얼어서 쪼그라 들어 있는 나를 동네 아저씨가 경운기에 태워서 병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그 때 ,,나도 이렇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고3 졸업시즌이 되었을 때 전 그녀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비록 늦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편입을 하고 , 대학원에 진학해서 사회과학을 전공하게 되었지요,,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그토록 그녀가 보고 싶었던 렘브란트의 그림과 집을 내 가슴속 그녀와 방문하고 왔습니다,,사실 지금은 해외여행 자주 하는 편인것 같은데 찢어지게 가난한 저에게 유럽을 가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 보다 힘든 일입니다,,그래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기회를 만들어,,8월 28일,,그녀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런던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고 20년의 약속을 끝냈습니다,,,20년의 시간을 회상하면서,,돌아오는 네덜란드 항공기에서,,이불 뒤집어 쓰고.....
창필할 정도로 한없이 울었습니다,,가는 곳마다 그녀와 내가 함께 있다고 믿었지만,,보고 싶은 내 마음의 간절함에도 곁에 없는 그녀와 나와의 현실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져 꿈에라도 한번만이라도,,그녀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저도 연애하고 결혼하려고 몇 번인가 연애를 시도 했습니다, 그 떄마다 왠지 무겁고 차가워 보이는 내 모습 떄문에 여친은 힘들어 했고, 결국 저는 상처만 주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끔은 그녀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노력도 해보고 나름대로 현실을 인정하려
애써보기도 했지만,,왜 이렇게 어려운지요!
며칠전 친구 부부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20년간 지킨 약속을 처음으로 털어 놓았습니다,,누군가에게 그렇게 내 감정과 마음속 깊은 그리움, 슬픔을 말한다는 것, 참 힘든 일이지만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친구 앞에서 하염없이 울어 버렸습니다,,친구도 부인도 따뜻하게 위로해 주어 참 고마웠지요.
이젠 저도 그녀와의 약속을 마치고 자유롭고 싶습니다, 그래서 누가 이 글을 읽으시든꼭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 같아,,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저도 그녀를 마음속에서 평생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젠 열심히 가정을 꾸리고 살아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녀도 기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20년의 그리운 여행을 마쳤습니다,,
그녀와 약속을 위해 노력하다보니 ,,이젠 저도 공부하는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꼴찌의 대명사 였던 저에겐 큰 영광이지요,, 저도 그녀 한 사람만을 사랑했던 만큼 이젠 누군가를 만나서 제가 사랑할 수 있는 열린 마음도,,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것처럼,,자유롭게 현실에 나타날 오직 한 사람 '그녀'를 기다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용기가 생기길,,,여러분이 힘 주시길 외람되지만,,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을 떠난 여친과의 약속, 20만에 지켰습니다,,
누가 알아 주길 원하기 보다
제가 스스로 하는 고백이기에
이렇게 글을 쓰기로 맘 먹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살고 있는
36의 미혼 남성입니다.
그녀를 만난 건 16세 때 였구요
...
병원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습니다
중학생인 우리는 동갑이었고 입원 중이던 그녀에게 전 맹장 수술을 받기위해
갔던 차, 복도 휴게실에서 처음 말을 걸어온 적극적이고 밝은 그녀에게 처음 설레이는
맘을 갖게 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일주일이 지난 뒤, 퇴원 후에도 저는 그녀를
찾아 갔고 우린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도 좋아하셨고, 늘 밝은 그녀를 보며
전 천사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그렇게 그녀는 나에게 음악도 가르쳐 주었고, 미술도, 독서
하는 방법 까지도,..정말 완벽한 사람이라, 전 그녀를 하늘이 보낸 나의 수호천사라 믿었습니다
전 공부를 못했습니다,,초등에서 고등졸업 할 떄까지 동창들이 다 알 만큼 저능아 수준
이상 이었다고 말할 정도 였으니까요, 저희 어머니는 "제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다 필요없다~",,,이해하시죠?
우린 함께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녀도 겨우 퇴원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결석이 잦을 만큼 아팠고, 실업계를 진학한 저는 방과후면 바깥보다 병원에서
그녀를 보는 일이 많아 졌지요,,결국 그녀는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기 전 다시 병원
으로 가게 되었고, 자퇴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2학년이 되었습니다. 전 그녀가 아프지만 사랑해야 겠다고 그래서 언젠가 내가
돈도벌고 열심히 살면서 그녀를 위해 간호하면서 옆에 있어 주어야 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어느날 그녀가 뜬금없이 저와 약속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언젠가 자신의 모든 병이 나아 건강해지면, 자신이 좋아하는 렘브란트 화가의 그림과 네덜란드에 있는 그의 집을 꼭 함께 보자는 것이 었지요,, 그래서 난 당시 이름도 못들어 본 파리, 암스텔담, 런던등,,그녀가, 신기하게만 보이는 나라의 수도 이름을 가르쳐 줄 떄마다 난 그녀가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는 관심도 없는 나에게 그녀의 얘기를 알아 들을 수 없는건 당연했지요,, 그리고 그녀는
함께 대학을 꼭 가서 우리 대학생되면 좋은 커플로 사귀자고 무척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사실,,꼴찌하는 나에게 대학 입학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지금 보다 대학 가기가 무척 힘든 시절이었거든요,,전문대학도 정말 입학이 어려웠던 ,,,
하지만 그녀가 함께 있어준다면, 난 언젠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했지요. 그리고 그 해 겨울 크리스 마스 때 전 좋은 선물을 주기위해 (실은 프로포즈할려구..) 아는 교회 분 유리 가게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당시 받았던 10만원으로 그녀가 평소 갖고 싶어하던
선물을 사고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다리던 몇 달 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날 어머니께서 저에게 어렵게 그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그 후로 어떤 정신으로 살았는지 글로 정리 할 수가 없네요,,,저희 아버지는 저에게 병원에서 상담을 권해주실 만큼 제가 정신나간 사람처럼 살았다고 말해주셨습니다,,
너무 어려서 인지 머리가 나빠서 인지,,그녀가 그렇게 아프고 빨리 떠나리라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지 못한 것이 아주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맺혀 있네요,,경남 00에 있는 그녀의 묘지에서 12월 24일을 밤새 보냈습니다,,선물을 주지는
못했지만, 꼭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결국 아침에 눈밭에 얼어서 쪼그라 들어 있는 나를 동네 아저씨가 경운기에 태워서 병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그 때 ,,나도 이렇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고3 졸업시즌이 되었을 때 전 그녀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비록 늦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편입을 하고 , 대학원에 진학해서 사회과학을 전공하게 되었지요,,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그토록 그녀가 보고 싶었던 렘브란트의 그림과 집을 내 가슴속 그녀와 방문하고 왔습니다,,사실 지금은 해외여행 자주 하는 편인것 같은데 찢어지게 가난한 저에게 유럽을 가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 보다 힘든 일입니다,,그래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기회를 만들어,,8월 28일,,그녀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런던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고 20년의 약속을 끝냈습니다,,,20년의 시간을 회상하면서,,돌아오는 네덜란드 항공기에서,,이불 뒤집어 쓰고.....
창필할 정도로 한없이 울었습니다,,가는 곳마다 그녀와 내가 함께 있다고 믿었지만,,보고 싶은 내 마음의 간절함에도 곁에 없는 그녀와 나와의 현실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져 꿈에라도 한번만이라도,,그녀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저도 연애하고 결혼하려고 몇 번인가 연애를 시도 했습니다, 그 떄마다 왠지 무겁고 차가워 보이는 내 모습 떄문에 여친은 힘들어 했고, 결국 저는 상처만 주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끔은 그녀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노력도 해보고 나름대로 현실을 인정하려
애써보기도 했지만,,왜 이렇게 어려운지요!
며칠전 친구 부부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20년간 지킨 약속을 처음으로 털어 놓았습니다,,누군가에게 그렇게 내 감정과 마음속 깊은 그리움, 슬픔을 말한다는 것, 참 힘든 일이지만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친구 앞에서 하염없이 울어 버렸습니다,,친구도 부인도 따뜻하게 위로해 주어 참 고마웠지요.
이젠 저도 그녀와의 약속을 마치고 자유롭고 싶습니다, 그래서 누가 이 글을 읽으시든꼭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 같아,,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저도 그녀를 마음속에서 평생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젠 열심히 가정을 꾸리고 살아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녀도 기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20년의 그리운 여행을 마쳤습니다,,
그녀와 약속을 위해 노력하다보니 ,,이젠 저도 공부하는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꼴찌의 대명사 였던 저에겐 큰 영광이지요,, 저도 그녀 한 사람만을 사랑했던 만큼 이젠 누군가를 만나서 제가 사랑할 수 있는 열린 마음도,,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것처럼,,자유롭게 현실에 나타날 오직 한 사람 '그녀'를 기다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용기가 생기길,,,여러분이 힘 주시길 외람되지만,,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루하고 못난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