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늦은겨울, 어쩌면 초 봄쯤- 이별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저를 , 보다못한 친구들이 기분풀자며 데려간 무도회장에서 아주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옆에서 조잘조잘 이것저것 물어오는 그 사람이 귀찮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더니, (그것도 우리 자리였는데-_-;) 번호를 줄수 없겠냐는 그 사람.. 그때 생각 없이 줘버린 번호가 우리 인연의 시작이였나봅니다. 그렇게 연락을 하게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갔고, 며칠 후 다시 만났을때 그사람이 저에게 서로 연인이 되어주면 안되겠냐고 했었습니다. 무도회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저였고, 그렇기에 그렇다 저렇다 별 반응이 없던 저에게, 세상에서 제일 예쁜 미소로 웃으며 침묵은 오케이지,? 그럼 오늘이 1일이다 - 라고 하던 그였습니다. 사랑을 시작하고나서 늘 한결같이 항상 이해해주고 , 웃어주고, 다독여주고, 저 밖에 모르는 참 좋은 사람이였습니다. 저보다 1살어린 동생이였는데도 오빠같았다고나 할까요- 지난 사람에게 받은 상처에 마음을 닫아버렸던 저도, 어느순간 그사람에게 문을 열게 되었고, 그렇게 이쁘게 사랑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유난히 밤하늘이 깜깜하던 날, 한강둔치에 앉아 맥주한캔씩 마시며 서로의 소소한 일상얘기를 나누던 도중, 그가 그랬습니다. 나, 군대가- 라구요. 마음한켠이 갑자기 먹먹해지기도 하고, 무거운 추가 하나 쿵" 떨어지는것 같기도 하고, 내색하기엔 뭔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들, 전 그렇게 말해줄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기전까지 나한테 잘해야 기다려줄꺼야- 라구요. 그날 이후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서로 더 애틋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사람 입영날짜가 되던날, 아이들 레슨때문에 훈련소까지 바래다 주지 못해서 버스정류장까지만 배웅을 했었습니다. 버스에 오르며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말해주었습니다. 나 여기놓고 혼자 여행가는거 이번 한번뿐이야, 오래기다리게 하지마, 금방갔다와야해, 라구요. 그리고, 그때부턴 여느 곰신 들처럼 보낸날부터 전화를 기다리기도 했고 자대주소받자마자 소포도 보내주고 빨강편지봉투로만 한아름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고, 매일저녁 짧은 통화를 나눴었고 한달에 두어번은 꼭 면회를 갔었고, 휴가나오면 짧은 시간 쪼개 여기저기 놀러도 다녔고- 그렇게 1년을 추억에 기대어 기다렸고, 2년을 사랑했습니다. 또한 만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다퉈도 늘 하루안에 풀곤 했던 우리기에 심심하게 사귄 스타일도 아니고 함께 나눈 추억이 많았기에 권태기는 생각도 못했던게 잘못이였던 걸까요. 언젠가부터 조금씩..서로에게 시들해져버렸나봅니다. 매일하던 통화도 일주일에 한번이 되고, 서로의 생활이 바빠서 습관적인 안부전화로 바뀌기가 일수였고,점점 짧은 통화는 의무적이 되었고,, 결국, 3주전쯤- 군화와 고무신이 꺽여 버렸습니다. 아직도 사랑한다는, 그렇지만 자기옆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찾으라는 그와, 사랑한다면 버거워도 옆에있어야 하는거라는 , 시간을 갖자는 저의 말은 끝내 답을 찾지 못한채, 그렇게 돌아섰습니다. 그렇게 짧고도 길었던 3년간의 사랑이 끝이 났습니다. 싸우고 소리지르고 서로 상처주고 헤어진게 아니기에, 마음이 아직 많이 아픕니다. 헤어지기 얼마전에도 이주전에 봐놓고선 또 면회오라는 그의 투정아닌 투정을, 못이긴척 가줄걸 ,, 계속 후회가 되곤 합니다. 곰신님들, 군화들도 그 안에서 하고싶은게 많고, 전화한통 더해주려고 포기하는게 있다고 하네요, 저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구, 지금 사랑하실때, 해주고 싶은거, 해줄수 있는거, 다 해주세요^-^ 다들 꽃신신으시길 바라며-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ㅡ'
결국, 꺽어진 고무신과 군화..
재작년 늦은겨울, 어쩌면 초 봄쯤-
이별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저를 ,
보다못한 친구들이 기분풀자며 데려간 무도회장에서
아주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옆에서 조잘조잘 이것저것 물어오는 그 사람이 귀찮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더니, (그것도 우리 자리였는데-_-;)
번호를 줄수 없겠냐는 그 사람..
그때 생각 없이 줘버린 번호가 우리 인연의 시작이였나봅니다.
그렇게 연락을 하게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갔고,
며칠 후 다시 만났을때 그사람이 저에게
서로 연인이 되어주면 안되겠냐고 했었습니다.
무도회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저였고,
그렇기에 그렇다 저렇다 별 반응이 없던 저에게, 세상에서 제일 예쁜 미소로 웃으며
침묵은 오케이지,? 그럼 오늘이 1일이다 - 라고 하던 그였습니다.
사랑을 시작하고나서 늘 한결같이 항상 이해해주고 , 웃어주고, 다독여주고,
저 밖에 모르는 참 좋은 사람이였습니다.
저보다 1살어린 동생이였는데도 오빠같았다고나 할까요-
지난 사람에게 받은 상처에 마음을 닫아버렸던 저도,
어느순간 그사람에게 문을 열게 되었고, 그렇게 이쁘게 사랑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유난히 밤하늘이 깜깜하던 날,
한강둔치에 앉아 맥주한캔씩 마시며 서로의 소소한 일상얘기를 나누던 도중,
그가 그랬습니다.
나, 군대가- 라구요.
마음한켠이 갑자기 먹먹해지기도 하고,
무거운 추가 하나 쿵" 떨어지는것 같기도 하고,
내색하기엔 뭔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들,
전 그렇게 말해줄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기전까지 나한테 잘해야 기다려줄꺼야- 라구요.
그날 이후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서로 더 애틋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사람 입영날짜가 되던날,
아이들 레슨때문에 훈련소까지 바래다 주지 못해서
버스정류장까지만 배웅을 했었습니다.
버스에 오르며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말해주었습니다.
나 여기놓고 혼자 여행가는거 이번 한번뿐이야,
오래기다리게 하지마, 금방갔다와야해, 라구요.
그리고, 그때부턴 여느 곰신 들처럼 보낸날부터 전화를 기다리기도 했고
자대주소받자마자 소포도 보내주고 빨강편지봉투로만 한아름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고, 매일저녁 짧은 통화를 나눴었고
한달에 두어번은 꼭 면회를 갔었고, 휴가나오면 짧은 시간 쪼개 여기저기 놀러도 다녔고-
그렇게 1년을 추억에 기대어 기다렸고, 2년을 사랑했습니다.
또한 만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다퉈도 늘 하루안에 풀곤 했던 우리기에
심심하게 사귄 스타일도 아니고 함께 나눈 추억이 많았기에
권태기는 생각도 못했던게 잘못이였던 걸까요.
언젠가부터 조금씩..서로에게 시들해져버렸나봅니다.
매일하던 통화도 일주일에 한번이 되고, 서로의 생활이 바빠서
습관적인 안부전화로 바뀌기가 일수였고,점점 짧은 통화는 의무적이 되었고,,
결국, 3주전쯤- 군화와 고무신이 꺽여 버렸습니다.
아직도 사랑한다는, 그렇지만 자기옆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찾으라는 그와,
사랑한다면 버거워도 옆에있어야 하는거라는 , 시간을 갖자는 저의 말은
끝내 답을 찾지 못한채, 그렇게 돌아섰습니다.
그렇게 짧고도 길었던 3년간의 사랑이 끝이 났습니다.
싸우고 소리지르고 서로 상처주고 헤어진게 아니기에,
마음이 아직 많이 아픕니다.
헤어지기 얼마전에도 이주전에 봐놓고선 또 면회오라는 그의 투정아닌 투정을,
못이긴척 가줄걸 ,, 계속 후회가 되곤 합니다.
곰신님들, 군화들도 그 안에서 하고싶은게 많고,
전화한통 더해주려고 포기하는게 있다고 하네요,
저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구,
지금 사랑하실때, 해주고 싶은거, 해줄수 있는거,
다 해주세요^-^
다들 꽃신신으시길 바라며-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