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아빠가 말한다. "얘, 넌 왜 옆으로 가니? 앞으로 걸어 봐." 쫄랑쫄랑 따라가던 새끼 게가 묻는다. "아빠, 어떻게 해야 앞으로 갈 수 있어요?" "인석아, 그것도 몰라! 자 이렇게 해 봐." 뻘모래 위를 서걱서걱 걷는 아빠 게를 보면서 새끼 게가 외치는 말, "아빠! 지금 아빠도 옆으로 가쟎아요!" 오늘 난 하루종일 게를 생각하며 살았다. 왜? 쿼바디스 도미네! 여기 사람이 아니라 게가 있었습니다. "실장님. 왜 경품 추첨 한 해요?" 우리 매장에서 행운권을 받은 아줌마 세 분이 내게 항의하다시피 말을 해 왔다. "그게 어렵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다시피 저희 매장이 어렵게 되 면서 경품을 지원해 준 회사에서 다시 회수해 가고 말았습니다." "에이, 나쁜 사람들!! 다시는 내가 그 000회사 제품 쓰나 봐라." "죄송 합니다. 대신 10만원 하는 기초화장품 세트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푸시고 다음을 기약하는게 좋겠습니다" "알았어요. 뭐 저희들이 경품 때문에 그러겠어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 마음이 괘씸해서 그러죠." "어쨌든 실장님. 힘 내시고 열심히 사세요. 꼭 좋은날이 올 거예요. 좋은 여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잊어 버리세요." 위로와 격려의 말들을 들으면서도 난 마음을 추 스리기 어려웠다. 뭔가 빙빙 도는 느낌. 빨리 대화가 끝나고 혼자였으면 하는 생각. 그리고 드디어 그분들은 돌아 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1월 중순. 사무실에서 함께 5개월여 사귄 여자와 극적으로결혼 을 약속했다. 그녀에겐 딸 둘이 있었는데 큰 얘는 대학신입생이고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신입생이었다. 대학진학을 하는 아이가 등록금이 부족하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김을 팔고 특산물을 좀 팔아 어느 정도 돈을 준비했지만 많이 부족했다. 언제까지 등록금을 내야 하느냐 물었더니 시간이 넉 넉 하니까 걱정하지 말란다. 여유를 갖고 장사를 해서 새로 딸이 될 아이에게 기쁨 을 주고 싶었다. 시골읍에 30여평의 매장을 열고 이것저것 팔고 있었 지만 불경기라 그런지 쌓여 있던 빚에다가 이것저것 부담만 늘고 결혼생활이 유지될까 걱정이 많은 시간 이었는데 함께 살아갈 여자는 열심히 해 보자고 해서 너무나도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해서 딸 아이의 등록금이 무슨 문제냐 싶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딸 아이의 등록금을 대 주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시골서 주유소로 수억대의 돈을 모은 분이라 어려운 형 편에 고맙게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돈은 왠지 모르게 늦어지고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서울에 미리 올라가 있던 큰 딸아이로 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돈을 부쳐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대학등록이 취소가 된데요." 딸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엄마가 급히 여기저기에 돈을 구하여 보았으나 여의치 않자, 내게 말을 했다. "00씨, 안 되겠어요. 우선 가지고 있는 교회돈을 쓰면 안될까요? 내일 그 돈을 보충해 놓게요." 순간 난 빠르게 생각했다. '내게 있는 돈은 만져서는 안 되는 돈인데... 어떡하지? 하지만 당장 돈을 보내지 않으면 대학을 못 간 다는데.... 아니, 아니야. 아무리 하나님 돈이라지만 이건 사람이 먼저야. 내 사랑하는 사람의 딸을 망가뜨릴수는 없어." "그래. 알았어요. 여기 돈이 있으니까 빨리 송금 하도록 합시다." 난 재빨리 가방에서 돈을 꺼내 아이의 엄마에게 건네줬다. "돈 보내 주었어요?" 은행에 다녀온 여자에게 물었다. "아니요. 낼 까지 보내도 된다네요.""아니 그런다고 왜 안 보내요?""통장번호를 다시 불러 주기로 했어요." 순간 난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공금을 돌려 달라고 해야 되는거 아니야? 어떡하지...이럴땐...?' 난 그러나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지나치고 말았다. 난 죽었어야 했다. 가장 큰 죄중의 죄가 공금횡령죄가 아닌가! 그러나 죽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딸에게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무서운 결정이었고 어리석은 사랑이었 는지 난 지금 절절이 깨닫고 있다. 마땅히 채워져야 할 공금이 이런저런 이유로 채워지지 않았 다. 큰 일이었다. 몇 일 있으면 전도회에 돈을 지출해야 하는데 문제가 보통문 제가 아닌것이 되고 말았다. 어찌됐든 고민스런 날이 많았지만 우린 꿈에 그리던 결혼식 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딱 하루 행복했다. 그 날 이후로는 지긋지긋한 반목의 시간들이 25일간 이어졌다. 전도회 몇 일 전. 난 목사님께 사실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전도회를 주관하는 장로님께 말씀을 드렸다. "저 목사님, 그리고 장로님. 죄송합니다. 저 동부지구의 총무직을 사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왜요? 이 중요한 시기에!" 두 분 다 놀라 물었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제가 어떻게 해서든 돈은 채워 놓겠습니다. 제가 어떤 비난을 받든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집사님. 이 문제는 공개해서 득될게 없으니까 일단 함구하도 록 하구요, 일단 전도회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해 봅 시다." 극구 사양했지만 자칫 잘 못 하다간 두 분을 다치게 할까 싶어 묻고 가기로 결심했다. 전도회가 끝나고 뭔가 좀 해결책이 있으리라 기대해 왔지만 오히려 가정은 이상스러울만치 꼬이고 결국 26일만에 함께 남은 생을 가자던 사람은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멀리멀리 떠나 버리고 말았다. 난 낙담하고 좌절을 맛보았지만 한가지 만큼은 잊어 버릴 수가 없었다. 교회 공금. 매장에 있는 물건을 이것저것 인터넷에 올려 보고 오는 손님들에게 세일가로 판매해 보았지만 믿기지 않을만큼 아무것도 팔리지 않았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도 떠나고 직원들도 다 떠나 버리고 사장님이 외상으 로 물려 준 매장을 떠 안고 문제들을 풀어 나간다는 것은 세상 모든 짐을 진 것 만큼이나 고역스러운 것이었다. 가장 먼저 공금을 채워넣어야 했다. 그 생각에서 하루도 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느날 고민에 고민을 하던 내게 번개 같은 생각이 떠 올랐 다. 협찬사에서 이벤트로 반반 부담하여 준비해 놓은 김치냉장 고가 눈을 현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저거야!" 난 아예 혼자서 소리쳤다. '우선 저것을 싸게 처분해서 공금을 충당하자. 그리고 경품 추첨을 기다리는 손님에겐 사정상 협찬사에서 도로 가져갔다고 말하는 거야!' 어디서 그런 생각이 들어 왔는지...... 여기저기 인터넷에 광고를 냈다. 즉방으로 콜이 들어 왔다. "그 김치 냉장고 진짜인가요? 메이커 맞아요?""네, 맞습니다. 분명 대우 제품이 맞아요.""네, 그렇다면 보내 주세요. 가격은 00원 맞지요?""네. 맞습니다." "택배비는 어떻게 되죠?""아, 선생님께서 자비 부담 하셔야죠. 물건도 절반 정도의 가격에 드리는데요." "아니, 제가 꼭 필요해서 사는건 아니고 우리 집에 들어 오는 친척이 김치냉장고가 없다해서 선물할려고 그래요.""아! 그러십니까? 그럼 반반 부담하시죠.""그래요?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좋은일에 쓰신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죠." 상대방은 마치 선심을 쓰듯이 말을 해 왔으나 난 이 것저것 따질때가 아니었다. 바로 주소와 전화를 적고 택배직원을 불러 물건을 우 송하고 말았다. 이제 공금의 어느 정도가 메꾸어져서 조금은 부담이 줄어드는 듯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있을 일들은 아주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바로 다음날 경품에 목 매달던 세 분의 여자들이 찾아 와 김치냉장고를 찾는 순간 난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한 교회의 집사요, 또한 교회의 역사를 기록하는 서기 요 지역의 총무인 나의 입에서 진실이 아닌 개구리 같 은 거짓이 나온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나의 가슴을 숨기고 하는 매끄럽고 애절한 말에 그 분 들은 여지없이 속아넘어 갔다. 그러나 난 그 이후 삼개월 동안 그 분들을 볼 용기를 갖 지 못했다. 최근에 다시 서기 위해 행사를 기획하고 초청장을 발송 하면서도 그 분들만 쏙 빼 놓고 말았다. 그 모든 일이 그렇게 끝나 버린다면... 난 늘 소원했다. 마음으로는 죄스럽고 괴로웠지만 진실로 그렇게 끝나기 를 바랐었다. 그러나 그런 내가 아이들을 열심으로 패고 난 후에 돌 처럼 굳어 있던 마음이 깨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과연 때릴만한 자격이 있는가? 난 의문을 가졌다. 하루종일 게 아빠! 게 아빠!라는 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오늘 행사를 열심으로 끝 마치고 행사를 스폰서한 전 000화장품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매장에 경품을 따지고 들었던 아줌마 한 분이 들어 오셨다. "아니, 사장님! 김치 냉장고 내 놓으세요. 어떻게 되신 거예요?" "아! 아! 저한테 암 말 하지 마세요. 전 그 물건 그대로 놔두고 갔어요." 그 아주머니는 그 다음말을 아끼고 가셨지만 뭔가 낌새를 눈치챈 듯 하였다. 갑자기 돌덩이가 머리를 가격하는 느낌과 동시에 가슴을 조여오고 있었다. 담소를 나누는 시간에 생각은 어떻게 모든것을 털어놓고 사과할까 하는 것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게 아빠! 이런 내가 아이들을 교육한다고? 사랑한다고? 가증스러움이 온 뇌리를 휘감아 돌고 있었다. '그래. 맞자. 그리고 게 아빠가 아닌 사람이 되자. 어떻게든 사람이 되어서 받은 사랑을 전달해 주자.' 일이 끝나면 그 아주머니를 찾아가기로 작정했다. 나머지 두 분도 함께 불러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나머지는 그 분들 에게 심판을 받으리라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인터넷에도 공개적으로 이런 못난 아빠를 고발하고 용서 를 구하자.' 일이 끝나고 그 아주머니 댁을 갖더니 가게가 문이 닫혀진것 같아 전화를 했더니 아이가 받더니 엄마가 외출중이라고 한다. "그래? 그럼 00사랑에서 전화왔었다고 전해 드려라." "네. 전해 드릴께요." 아이가 전화를 끊는다. '내일은 기어코 만나서 내 죄에 대한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 내일이면 야영간다는 딸아이의 준비물을 챙겨주고 두 아이를 일찍 잠자리에 눕혔다. "0성아, 넌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 드려라." "네." "아빠, 나는 아빠하고 고모를 위해서 하면 되지?"딸아이가 먼저 할말을 가로챈다. "그래. 아빠는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마."작은아이부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큰아이의 기도가 끝나고 나는 기도 하면서 울먹였다. 천사같은 아이들을 볼 때 난 얼마나 철저하게 간악했었고, 아이들에 게 부정직한 아버지였던가!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정직을 가르치고 거짓말한다고 훈육했으니... 소가 웃을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나의 무서운 죄를 보며 난 다시 울었다. 그리고 제빨리 불을 꺼 버렸다. 아이들은 양 쪽에서 서로 많이 껴안을려고 옥신각신 한다. "0아야." "네. 아빠?""너 게 이야기 아냐?""그래. 알아요. 아빠." "한 번 해 줄래?" "네. 게 가족이 있었는데 엄마게가 아이게한테 자꾸 똑바로 걸으라 해도 옆으로만 걸으니까 야단쳤다고 그래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근데 그 새끼 게는 누구의 자식이냐?" "게 엄마의 자식이죠.""그래 맞다. 그런 게 엄마의 자식인 게가 똑바로 갈 수 있겠냐?" "아니요.""그래. 똑 바로 갈래야 갈 수가 없지. 아빠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냐?" "몰라요." "아빠가 너희들에게 얼마나 많이 미안한지 모르겠구나. 아빠가 게 아빠야. 사실은 아빠도 잘못을 했는데 너희들한테만 야단치고 매를 때렸구나. 아빠가 너희들에게 많이 미안하구나. 우리 다시는 서로서로 이런 일이 없도록 정직하게 살도록 하자꾸나.""네. 알았어요. 아빠." 두 아이들이 동시에 대답을 한다. 그런 아이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잠시후 행복한 숨결을 들으며 난 2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로 나왔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난 놀랐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와 교육방법, 어떤 분들은 메일과 쪽지를 통 해서 훈계도 하시고 사랑도 보내 주셨다. 대부분의 글들은 힘내고 열심히 살라, 이해한다, 좋은 아빠 될 것 같다 고 쓰여져 있다. 망설여 졌다. 이런 분위기에 선뜻 나의 추한 모습을 내 보이기가 어렵사리 느껴졌다. 그러나 난 어젯밤에 감히 설 수도 없는 교회 설교단에서 약속했다. "전 바보가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 뭐라하고 한 대 치더라도 '헤~'하고 뭇을 수 있는 사람말입니다." 그래서 잘 돌아 가지도 않는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문제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지난 6개월 동안 난 많이 힘들었었고 이제는 그러한 시간들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찾 기를 원한다. 공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을 여러분들이 어떻게 심판 하실런지 궁금하 지만 난 이제 두렵지 않다. 모든게 홀가분하고 시원한 느낌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혹 어떤 분들이 떠나버린 여자를 공격할까 염려되는데 오해는 없으시길 바란다. 그 여자는 잘못이 없다. 모든 문제는 여기 이사람 게 아빠였던 사람에게 있었으니까. 이제 나도 이 시간 이후로는 사람의 아빠가 될 수 있을것 같다. 자꾸 변태하고 옛모습을 탈피하다 보면 나 같은 자도 신의 아들이 될 수 있을런지...... 여러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에게 공개적으로 저의 잘못된 것을 사과 드리고, 이젠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 나가는 사람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 드립 니다. 제 이름은 이석진입니다. 언젠가는 우울한 내용이 아닌 즐거운 내용으로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노 력하겠습니다. 편한한 밤 되십시요.
내 새끼들 죽이기2-게 아빠의 고백
게 아빠가 말한다.
"얘, 넌 왜 옆으로 가니?
앞으로 걸어 봐."
쫄랑쫄랑 따라가던 새끼 게가 묻는다.
"아빠, 어떻게 해야 앞으로 갈 수 있어요?"
"인석아, 그것도 몰라!
자 이렇게 해 봐."
뻘모래 위를 서걱서걱 걷는 아빠 게를 보면서
새끼 게가 외치는 말,
"아빠! 지금 아빠도 옆으로 가쟎아요!"
오늘 난 하루종일 게를 생각하며 살았다.
왜?
쿼바디스 도미네!
여기 사람이 아니라 게가 있었습니다.
"실장님.
왜 경품 추첨 한 해요?"
우리 매장에서 행운권을 받은 아줌마 세 분이
내게 항의하다시피 말을 해 왔다.
"그게 어렵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다시피 저희 매장이 어렵게 되
면서 경품을 지원해 준 회사에서 다시 회수해
가고 말았습니다."
"에이, 나쁜 사람들!!
다시는 내가 그 000회사 제품 쓰나 봐라."
"죄송 합니다.
대신 10만원 하는 기초화장품 세트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푸시고 다음을 기약하는게 좋겠습니다"
"알았어요.
뭐 저희들이 경품 때문에 그러겠어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 마음이 괘씸해서 그러죠."
"어쨌든 실장님.
힘 내시고 열심히 사세요.
꼭 좋은날이 올 거예요.
좋은 여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잊어 버리세요."
위로와 격려의 말들을 들으면서도 난 마음을 추
스리기 어려웠다.
뭔가 빙빙 도는 느낌.
빨리 대화가 끝나고 혼자였으면 하는 생각.
그리고 드디어 그분들은 돌아 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1월 중순.
사무실에서 함께 5개월여 사귄 여자와 극적으로결혼
을 약속했다.
그녀에겐 딸 둘이 있었는데 큰 얘는 대학신입생이고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신입생이었다.
대학진학을 하는 아이가 등록금이 부족하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김을 팔고 특산물을 좀 팔아 어느 정도
돈을 준비했지만 많이 부족했다.
언제까지 등록금을 내야 하느냐 물었더니 시간이 넉
넉 하니까 걱정하지 말란다.
여유를 갖고 장사를 해서 새로 딸이 될 아이에게 기쁨
을 주고 싶었다.
시골읍에 30여평의 매장을 열고 이것저것 팔고 있었
지만 불경기라 그런지 쌓여 있던 빚에다가 이것저것
부담만 늘고 결혼생활이 유지될까 걱정이 많은 시간
이었는데 함께 살아갈 여자는 열심히 해 보자고 해서
너무나도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해서 딸 아이의 등록금이 무슨 문제냐 싶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딸 아이의 등록금을 대 주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시골서 주유소로 수억대의 돈을 모은 분이라 어려운 형
편에 고맙게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돈은 왠지 모르게 늦어지고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서울에 미리 올라가 있던 큰 딸아이로
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돈을 부쳐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대학등록이 취소가 된데요."
딸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엄마가 급히 여기저기에 돈을
구하여 보았으나 여의치 않자, 내게 말을 했다.
"00씨,
안 되겠어요.
우선 가지고 있는 교회돈을 쓰면 안될까요?
내일 그 돈을 보충해 놓게요."
순간 난 빠르게 생각했다.
'내게 있는 돈은 만져서는 안 되는 돈인데...
어떡하지? 하지만 당장 돈을 보내지 않으면 대학을 못 간
다는데....
아니, 아니야.
아무리 하나님 돈이라지만 이건 사람이 먼저야.
내 사랑하는 사람의 딸을 망가뜨릴수는 없어."
"그래. 알았어요.
여기 돈이 있으니까 빨리 송금 하도록 합시다."
난 재빨리 가방에서 돈을 꺼내 아이의 엄마에게 건네줬다.
"돈 보내 주었어요?"
은행에 다녀온 여자에게 물었다.
"아니요. 낼 까지 보내도 된다네요."
"아니 그런다고 왜 안 보내요?"
"통장번호를 다시 불러 주기로 했어요."
순간 난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공금을 돌려 달라고 해야 되는거 아니야?
어떡하지...이럴땐...?'
난 그러나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지나치고
말았다.
난 죽었어야 했다.
가장 큰 죄중의 죄가 공금횡령죄가 아닌가!
그러나 죽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딸에게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무서운 결정이었고 어리석은 사랑이었
는지 난 지금 절절이 깨닫고 있다.
마땅히 채워져야 할 공금이 이런저런 이유로 채워지지 않았
다.
큰 일이었다.
몇 일 있으면 전도회에 돈을 지출해야 하는데 문제가 보통문
제가 아닌것이 되고 말았다.
어찌됐든 고민스런 날이 많았지만 우린 꿈에 그리던 결혼식
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딱 하루 행복했다.
그 날 이후로는 지긋지긋한 반목의 시간들이 25일간 이어졌다.
전도회 몇 일 전.
난 목사님께 사실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전도회를 주관하는 장로님께 말씀을 드렸다.
"저 목사님, 그리고 장로님.
죄송합니다.
저 동부지구의 총무직을 사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왜요? 이 중요한 시기에!"
두 분 다 놀라 물었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제가 어떻게 해서든 돈은 채워 놓겠습니다.
제가 어떤 비난을 받든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집사님.
이 문제는 공개해서 득될게 없으니까 일단 함구하도
록 하구요, 일단 전도회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해 봅
시다."
극구 사양했지만 자칫 잘 못 하다간 두 분을 다치게
할까 싶어 묻고 가기로 결심했다.
전도회가 끝나고 뭔가 좀 해결책이 있으리라 기대해
왔지만 오히려 가정은 이상스러울만치 꼬이고 결국
26일만에 함께 남은 생을 가자던 사람은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멀리멀리 떠나 버리고 말았다.
난 낙담하고 좌절을 맛보았지만 한가지 만큼은 잊어
버릴 수가 없었다.
교회 공금.
매장에 있는 물건을 이것저것 인터넷에 올려 보고 오는
손님들에게 세일가로 판매해 보았지만 믿기지 않을만큼
아무것도 팔리지 않았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도 떠나고 직원들도 다 떠나 버리고 사장님이 외상으
로 물려 준 매장을 떠 안고 문제들을 풀어 나간다는 것은
세상 모든 짐을 진 것 만큼이나 고역스러운 것이었다.
가장 먼저 공금을 채워넣어야 했다.
그 생각에서 하루도 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느날 고민에 고민을 하던 내게 번개 같은 생각이 떠 올랐
다.
협찬사에서 이벤트로 반반 부담하여 준비해 놓은 김치냉장
고가 눈을 현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저거야!"
난 아예 혼자서 소리쳤다.
'우선 저것을 싸게 처분해서 공금을 충당하자.
그리고 경품 추첨을 기다리는 손님에겐 사정상 협찬사에서
도로 가져갔다고 말하는 거야!'
어디서 그런 생각이 들어 왔는지......
여기저기 인터넷에 광고를 냈다.
즉방으로 콜이 들어 왔다.
"그 김치 냉장고 진짜인가요?
메이커 맞아요?"
"네, 맞습니다.
분명 대우 제품이 맞아요."
"네, 그렇다면 보내 주세요.
가격은 00원 맞지요?"
"네. 맞습니다."
"택배비는 어떻게 되죠?"
"아, 선생님께서 자비 부담 하셔야죠.
물건도 절반 정도의 가격에 드리는데요."
"아니, 제가 꼭 필요해서 사는건 아니고 우리
집에 들어 오는 친척이 김치냉장고가 없다해서
선물할려고 그래요."
"아! 그러십니까?
그럼 반반 부담하시죠."
"그래요?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좋은일에 쓰신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죠."
상대방은 마치 선심을 쓰듯이 말을 해 왔으나 난 이
것저것 따질때가 아니었다.
바로 주소와 전화를 적고 택배직원을 불러 물건을 우
송하고 말았다.
이제 공금의 어느 정도가 메꾸어져서 조금은 부담이
줄어드는 듯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있을 일들은 아주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바로 다음날 경품에 목 매달던 세 분의 여자들이 찾아
와 김치냉장고를 찾는 순간 난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한 교회의 집사요, 또한 교회의 역사를 기록하는 서기
요 지역의 총무인 나의 입에서 진실이 아닌 개구리 같
은 거짓이 나온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나의 가슴을 숨기고 하는 매끄럽고 애절한 말에 그 분
들은 여지없이 속아넘어 갔다.
그러나 난 그 이후 삼개월 동안 그 분들을 볼 용기를 갖
지 못했다.
최근에 다시 서기 위해 행사를 기획하고 초청장을 발송
하면서도 그 분들만 쏙 빼 놓고 말았다.
그 모든 일이 그렇게 끝나 버린다면...
난 늘 소원했다.
마음으로는 죄스럽고 괴로웠지만 진실로 그렇게 끝나기
를 바랐었다.
그러나 그런 내가 아이들을 열심으로 패고 난 후에 돌 처럼
굳어 있던 마음이 깨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과연 때릴만한 자격이 있는가?
난 의문을 가졌다.
하루종일 게 아빠! 게 아빠!라는 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오늘 행사를 열심으로 끝 마치고 행사를 스폰서한 전 000화장품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매장에 경품을 따지고
들었던 아줌마 한 분이 들어 오셨다.
"아니, 사장님!
김치 냉장고 내 놓으세요.
어떻게 되신 거예요?"
"아! 아! 저한테 암 말 하지 마세요.
전 그 물건 그대로 놔두고 갔어요."
그 아주머니는 그 다음말을 아끼고 가셨지만 뭔가 낌새를 눈치챈
듯 하였다.
갑자기 돌덩이가 머리를 가격하는 느낌과 동시에 가슴을 조여오고
있었다.
담소를 나누는 시간에 생각은 어떻게 모든것을 털어놓고 사과할까
하는 것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게 아빠!
이런 내가 아이들을 교육한다고?
사랑한다고?
가증스러움이 온 뇌리를 휘감아 돌고 있었다.
'그래. 맞자.
그리고 게 아빠가 아닌 사람이 되자.
어떻게든 사람이 되어서 받은 사랑을 전달해 주자.'
일이 끝나면 그 아주머니를 찾아가기로 작정했다.
나머지 두 분도 함께 불러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나머지는 그 분들
에게 심판을 받으리라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인터넷에도 공개적으로 이런 못난 아빠를 고발하고 용서
를 구하자.'
일이 끝나고 그 아주머니 댁을 갖더니 가게가 문이 닫혀진것 같아
전화를 했더니 아이가 받더니 엄마가 외출중이라고 한다.
"그래? 그럼 00사랑에서 전화왔었다고 전해 드려라."
"네. 전해 드릴께요."
아이가 전화를 끊는다.
'내일은 기어코 만나서 내 죄에 대한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
내일이면 야영간다는 딸아이의 준비물을 챙겨주고 두 아이를 일찍
잠자리에 눕혔다.
"0성아, 넌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 드려라."
"네."
"아빠, 나는 아빠하고 고모를 위해서 하면 되지?"
딸아이가 먼저 할말을 가로챈다.
"그래. 아빠는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마."
작은아이부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큰아이의 기도가 끝나고
나는 기도 하면서 울먹였다.
천사같은 아이들을 볼 때 난 얼마나 철저하게 간악했었고, 아이들에
게 부정직한 아버지였던가!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정직을 가르치고 거짓말한다고 훈육했으니...
소가 웃을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나의 무서운 죄를 보며 난 다시 울었다.
그리고 제빨리 불을 꺼 버렸다.
아이들은 양 쪽에서 서로 많이 껴안을려고 옥신각신 한다.
"0아야."
"네. 아빠?"
"너 게 이야기 아냐?"
"그래. 알아요. 아빠."
"한 번 해 줄래?"
"네. 게 가족이 있었는데 엄마게가 아이게한테 자꾸 똑바로 걸으라 해도
옆으로만 걸으니까 야단쳤다고 그래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근데 그 새끼 게는 누구의 자식이냐?"
"게 엄마의 자식이죠."
"그래 맞다. 그런 게 엄마의 자식인 게가 똑바로 갈 수 있겠냐?"
"아니요."
"그래. 똑 바로 갈래야 갈 수가 없지.
아빠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냐?"
"몰라요."
"아빠가 너희들에게 얼마나 많이 미안한지 모르겠구나.
아빠가 게 아빠야.
사실은 아빠도 잘못을 했는데 너희들한테만 야단치고 매를 때렸구나.
아빠가 너희들에게 많이 미안하구나.
우리 다시는 서로서로 이런 일이 없도록 정직하게 살도록 하자꾸나."
"네. 알았어요. 아빠."
두 아이들이 동시에 대답을 한다.
그런 아이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잠시후 행복한 숨결을 들으며 난
2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로 나왔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난 놀랐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와 교육방법, 어떤 분들은 메일과 쪽지를 통
해서 훈계도 하시고 사랑도 보내 주셨다.
대부분의 글들은 힘내고 열심히 살라, 이해한다, 좋은 아빠 될 것 같다
고 쓰여져 있다.
망설여 졌다.
이런 분위기에 선뜻 나의 추한 모습을 내 보이기가 어렵사리 느껴졌다.
그러나 난 어젯밤에 감히 설 수도 없는 교회 설교단에서 약속했다.
"전 바보가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 뭐라하고 한 대 치더라도 '헤~'하고 뭇을 수 있는 사람말입니다."
그래서 잘 돌아 가지도 않는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문제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지난 6개월
동안 난 많이 힘들었었고 이제는 그러한 시간들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찾
기를 원한다.
공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을 여러분들이 어떻게 심판 하실런지 궁금하
지만 난 이제 두렵지 않다.
모든게 홀가분하고 시원한 느낌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혹 어떤 분들이 떠나버린 여자를 공격할까 염려되는데
오해는 없으시길 바란다.
그 여자는 잘못이 없다.
모든 문제는 여기 이사람 게 아빠였던 사람에게 있었으니까.
이제 나도 이 시간 이후로는 사람의 아빠가 될 수 있을것 같다.
자꾸 변태하고 옛모습을 탈피하다 보면 나 같은 자도 신의 아들이 될 수
있을런지......
여러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에게 공개적으로 저의 잘못된 것을 사과 드리고, 이젠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 나가는 사람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 드립
니다.
제 이름은 이석진입니다.
언젠가는 우울한 내용이 아닌 즐거운 내용으로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노
력하겠습니다.
편한한 밤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