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서른넷~ 적지도 많지도 않는 나이. 얼마나 살았다고...이나이에 고달픔에 노곤했다고 말한다면.... 나보다 먼저 험한 세상 살아낸 분들에게 깝죽거리는 말이겠다. 근데....깝죽거리게도 힘들고 고달팠다. 어린시절~ 지독히 가부장적인 아버지. 유교~양반을 운운하면서 엄마를 왜그리 죽어라 패는지. 작은 소리에도 가슴이 쿵~내려앉았던 어린시절. 숨죽여 눈물에젖은 엄마의 뒷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대부분이다. 철이들면서 엄마처럼 살기싫다고 죽도록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고싶었다. 학교만 졸업시키면 이혼해야지....늘 한숨으로 말하던 엄마가 왜그리 힘없고 못나보였는지. 만신창이된 엄마를 향해 더 모질게 화를냈었다. 자식 핑계로 엄마를 묶어두긴 싫었던거 같다. 그후 도피하듯 맞선으로 결혼을 선택했다. 집과 떨어진 타도시라서 좋았고 아버지처럼 사업하는 남자가 아니라서 좋았고 적당히 섬세한 남자인거 같아서 선택했다. 내 선택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여우 피하고나니 범 만난다더니.... 의처증이 있는 남자였고 집과 멀어서 말려줄 사람없어서 맘놓고 때렸고 연차 월차를 내면서 이틀씩 괴롭히기도 다반사였다. 화장실 볼일보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달려나가 전화를 받을수가 없자 오랜동안 울리던 전화가 조용하다. 곧....남편이 집으로 들어닥쳐 그런 전쟁이 시작되곤했다. 샅샅히 집을뒤지며 어느놈이랑 뒹굴었냐고...... 엄마의 얼룩진 삶에 내가 더 눈물을 보태주긴 싫었다. 그래서 꾹꾹 참고 또참고 맞고사는 이야길 하지못했다. 물론 긴 시간을 견뎌내진 못했다. 그런 인내의 끝에 반전이란게 없단걸 누구보다 잘 알기때문에. 이혼 이야기를 해야했을때 엄마는 나를 감싸안고 세상이 다 무너진듯 실신하듯 우셨고 아버지는.....말이 없었다. 순조롭지 못한 이혼이었지만 긴긴 싸움끝에 이혼을 했고 어느날 밤.....술에 만취해서 속시원히 울부짖었다. 반평생 엄마를 패고살더니 니속으로 낳은 딸년 맞다 못견뎌 이혼하고오니 좋냐고... 아버지는 ..... 그날밤도 아무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떨구고 눈물만 보이셨다. 내 나이...그때 27살이었다. 부모복도 남편복도 없다싶은게 세상 다살았다 싶었고 그후 일년이 넘도록 술에 미쳐 살았다. 아버지 헛기침 소리에도 온식구가 종종걸음치던 우리집이 내 이혼으로 아버지가 무력해지기 시작했다. 위풍당당하던 아버지가 어느날 부턴가 기가 죽어버렸고 작아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통쾌해했다. 마치...내 실패가 아버지 때문인냥 철저히 원망을 했다. 술은 현실을 잊게해줬지만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갔고 우울증과 알콜중독 불면증.... 무엇보다도 매맞던 순간들이 잊혀지질 않았던게 힘들었다. 어느날.....거울속에 내모습을 보았다. 마치.....거식증에 걸린 사람처럼 흉해보이는 내모습. 내가 뭘하고 있는건가.... 정신이 번뜩 ..... 영화 장면에서 보는듯....눈앞에 후레쉬가 번쩍~한것처럼. 살아야겠구나,,,,,,살아내야겠구나. 그다음날 가게를 알아보러 다녔고 대출을 준비했고 며칠후 작은 가게를 시작했다. 긴긴시간 힘들어하던 내 변화에 가족들은 조심스런 안도를 했고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불운은 연거퍼 온다더니.... 32살즈음..... 잘 알던 언니가 같이 일해보자고 운을 띄웠고. 정말 믿던 부부였기 때문에 별 의심없이 합쳐서 일을했다. 명의만 잠시 빌려달라기에 그정도야 어떨까....싶어서 잠시 이름만 빌려준것이 7억이 넘는 빚을 떠안게됐고. 부부는 위장이혼을 남몰래 해둔 후였다. 지금까지....한푼도 써보지 못한 큰 빚을 떠안은채 살고있다. 죽는게 차라리 편할거 같았다. 죽으려고 여러번 시도했다. 죽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몇년이 흘렀고 지금 나는 서른넷이다. 모으고 살아도 시원찮을 판에....빚이 7억이다. 하하 웃으며 빚이 7억이라고...그저 웃는다. 난 이제 겨우 서른넷이다. 그동안 고단했던 내 젊은 날들에 마침표 하나 이쯤에서 찍고싶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준비를 하고있다. 주저앉으면 아무도 내 이야기를 펼쳐주지 않기때문이다. 물론....빚을지게된것도 부모님께는 말하지 못했다. 가슴아픈 딸...더 아파보이는게 싫어서. 그리고...그렇게 폭군이던 아버지가 어느날 60넘은 힘없는 남자일뿐이다. 내 생애 원망으로 똘똘뭉쳤던 지난날의 아버지를 잊기로했다. 용서란.... 세월이고 사랑이었다. 난 이제 겨우 서른넷이다.
난 이제 겨우 서른넷이다.
여자 나이 서른넷~
적지도 많지도 않는 나이.
얼마나 살았다고...이나이에 고달픔에 노곤했다고 말한다면....
나보다 먼저 험한 세상 살아낸 분들에게 깝죽거리는 말이겠다.
근데....깝죽거리게도 힘들고 고달팠다.
어린시절~
지독히 가부장적인 아버지.
유교~양반을 운운하면서 엄마를 왜그리 죽어라 패는지.
작은 소리에도 가슴이 쿵~내려앉았던 어린시절.
숨죽여 눈물에젖은 엄마의 뒷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대부분이다.
철이들면서 엄마처럼 살기싫다고
죽도록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고싶었다.
학교만 졸업시키면 이혼해야지....늘 한숨으로 말하던 엄마가
왜그리 힘없고 못나보였는지.
만신창이된 엄마를 향해 더 모질게 화를냈었다.
자식 핑계로 엄마를 묶어두긴 싫었던거 같다.
그후 도피하듯 맞선으로 결혼을 선택했다.
집과 떨어진 타도시라서 좋았고
아버지처럼 사업하는 남자가 아니라서 좋았고
적당히 섬세한 남자인거 같아서 선택했다.
내 선택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여우 피하고나니 범 만난다더니....
의처증이 있는 남자였고
집과 멀어서 말려줄 사람없어서 맘놓고 때렸고
연차 월차를 내면서 이틀씩 괴롭히기도 다반사였다.
화장실 볼일보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달려나가 전화를 받을수가 없자 오랜동안 울리던 전화가 조용하다.
곧....남편이 집으로 들어닥쳐 그런 전쟁이 시작되곤했다.
샅샅히 집을뒤지며 어느놈이랑 뒹굴었냐고......
엄마의 얼룩진 삶에 내가 더 눈물을 보태주긴 싫었다.
그래서 꾹꾹 참고 또참고 맞고사는 이야길 하지못했다.
물론 긴 시간을 견뎌내진 못했다.
그런 인내의 끝에 반전이란게 없단걸 누구보다 잘 알기때문에.
이혼 이야기를 해야했을때
엄마는 나를 감싸안고 세상이 다 무너진듯 실신하듯 우셨고
아버지는.....말이 없었다.
순조롭지 못한 이혼이었지만 긴긴 싸움끝에 이혼을 했고
어느날 밤.....술에 만취해서 속시원히 울부짖었다.
반평생 엄마를 패고살더니 니속으로 낳은 딸년 맞다 못견뎌 이혼하고오니 좋냐고...
아버지는 ..... 그날밤도 아무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떨구고 눈물만 보이셨다.
내 나이...그때 27살이었다.
부모복도 남편복도 없다싶은게 세상 다살았다 싶었고
그후 일년이 넘도록 술에 미쳐 살았다.
아버지 헛기침 소리에도 온식구가 종종걸음치던 우리집이
내 이혼으로 아버지가 무력해지기 시작했다.
위풍당당하던 아버지가 어느날 부턴가 기가 죽어버렸고
작아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통쾌해했다.
마치...내 실패가 아버지 때문인냥 철저히 원망을 했다.
술은 현실을 잊게해줬지만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갔고
우울증과 알콜중독 불면증....
무엇보다도 매맞던 순간들이 잊혀지질 않았던게 힘들었다.
어느날.....거울속에 내모습을 보았다.
마치.....거식증에 걸린 사람처럼 흉해보이는 내모습.
내가 뭘하고 있는건가....
정신이 번뜩 .....
영화 장면에서 보는듯....눈앞에 후레쉬가 번쩍~한것처럼.
살아야겠구나,,,,,,살아내야겠구나.
그다음날 가게를 알아보러 다녔고
대출을 준비했고 며칠후 작은 가게를 시작했다.
긴긴시간 힘들어하던 내 변화에 가족들은 조심스런 안도를 했고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불운은 연거퍼 온다더니....
32살즈음.....
잘 알던 언니가 같이 일해보자고 운을 띄웠고.
정말 믿던 부부였기 때문에 별 의심없이 합쳐서 일을했다.
명의만 잠시 빌려달라기에 그정도야 어떨까....싶어서
잠시 이름만 빌려준것이 7억이 넘는 빚을 떠안게됐고.
부부는 위장이혼을 남몰래 해둔 후였다.
지금까지....한푼도 써보지 못한 큰 빚을 떠안은채 살고있다.
죽는게 차라리 편할거 같았다.
죽으려고 여러번 시도했다.
죽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몇년이 흘렀고 지금 나는 서른넷이다.
모으고 살아도 시원찮을 판에....빚이 7억이다.
하하 웃으며 빚이 7억이라고...그저 웃는다.
난 이제 겨우 서른넷이다.
그동안 고단했던 내 젊은 날들에 마침표 하나
이쯤에서 찍고싶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준비를 하고있다.
주저앉으면 아무도 내 이야기를 펼쳐주지 않기때문이다.
물론....빚을지게된것도 부모님께는 말하지 못했다.
가슴아픈 딸...더 아파보이는게 싫어서.
그리고...그렇게 폭군이던 아버지가 어느날 60넘은 힘없는 남자일뿐이다.
내 생애 원망으로 똘똘뭉쳤던 지난날의 아버지를 잊기로했다.
용서란....
세월이고 사랑이었다.
난 이제 겨우 서른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