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부터 나의 번뇌는, 내가 못 떨쳐버려 가슴 아픈 애욕은 사치가 되고 맙니다. 눈물이 되고 맙니다.
내가 이성에 눈을 떳을때 나의 결혼은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것 이었읍니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하였고 그런 선택이 성과없이 허무히 끝나 버린 지금이지만 격랑과 풍파와 주검까지 남겨진 내 몫 속에서 나는 의연히 해 냈기에
지금 내 안엔 잔잔한 평화와 흔들림 없는 안정뿐이라고 자위하면서도,
더 이상의 번뇌를 갖지 말자! 아니다. 인간이기에 번뇌는 우리가 살아가는 요소라며 아귀다툼으로 매일 매일 내 자신 혹사하며 깊은 산속만 산속만 찾았는데...
님은 그 힘겨운 살아냄을 위하여 안스러이 혼신을 다하고 계섰던 겁니다.
지금도 라디오 방송에 '내일도 푸른하늘'이라는 장애우를 위한 방송이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 우습게 끝나버린 후일담인데요, 오늘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 방송에서 친구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낮에는 직장 밤에는 독학을 하면서도 나는 주소 한장 달랑 들고 그 주소지를 찾아 생전 처음 부산으로 향했읍니다.
물어 물어 어렵게 찾아간 이층연립집이었답니다. 그에게 받은 사진한장은 지금도 친정집 장농위에 있을테지만 사진보다도 그의 삶은 나에게 경악 그 자체였답니다. 벌써 20년이 다되어가는 세월이라 그가 생존해 계시는지 아니면 영면하셨는지는 모르지만 혹 이 글도 그 분께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답니다.
자그마한 할머니께서 저를 맞으셨는데 눈빛이 너무 싸늘했었답니다. 소중한 손자분 이상한 여자한테 눈요기 시키는것 같으셨을게지요, 허나 그분은 저를 반가이 맞으셨읍니다. 우리는 이미 서신으로 서로가 잘 아는 처지 였으니 당연하지요,
그때 그의 나이 28세! 19세때 연탄가스를 마신지도 모르고 문을 나섰다가 계단을 굴렀는데 뒷목부분의 척추를 다쳐 경추 아래는 간신히 감각을 유지하는 팔을 빼고 모두 마비인체 9년을 사신 것입니다. 그의 여고생같은 필체는 거의 감각이 없는 두 손바닥을 맞붙여 그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편지를 썼다는 것입니다.
손가락부분도 마비가 되었기에 겨우 살아 있는 두 손바닥으로 글을 썼다는것입니다.
운신도 못하는 그가 엎드린체 들처보라는 시트아래에는 살점하나 없는 감각없는 신체 뿐이였죠,
그의 손은 갈고리가 달린 긴 막대 하나와 짧은 막대하나였읍니다. 식구들이 있어도 입에 그 막대기를 물고는 멀리 있는 물건들들 끌어다 쓴다더군요, 내가 제일 놀랐던건 10여권가까운 우표수집책이였답니다. 테마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그의 우표수집책을 보고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지요, 그렇게 둘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의 할머니가 인기척도 없이 들어 오셔서는 내가 가주기를 말로는 못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놓으셨읍니다. 외로운 그와 같이 더 있고 싶었지만 촌티흐르는 내 연약한 심성으로는 어쩔 수 없어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었고 그게 마지막이 되어 버렸답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픈 것은 그가 분명 나를 (너도 별 볼일 없는 인간이구나! ) 생각 했을 거라는 겁니다.
내가 장래까지 꿈꾸었다고는 생각지도 못하셨을게지요, 단지 나는 그 집 할머니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생각을 달리 했을 뿐인데,
그 사람이나 님이나 인간승리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오늘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할 일없어 쓸데없이 시간낭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님은 잘 모르실겝니다. 끝없는 갑론을박에서 부터 가치없는 수다에 쏟아 넣는 시간, 사 들여도, 사 모아도, 풀리지 않은 욕망의 갈증때문에 오늘도 백화점이다, 할인점이다를 기웃거리는 유한마담은 또 얼마나 많구요, 몇년 살다 보니 정떨어진 신랑은 직장에서 상사한테 욕먹고 기가 죽어 내가 왜 사는가? 심각한 시간에 온갖 멋 다내고는 남의 남자와 시장봐다 조개탕 보골보골 끓이며 입이 귀에 걸리는 정신나간 여편네들은 또 얼마나 되는지... 지금도 님은 모니터를 보며 공부하느라 혼신을 다 바치고 계시겠죠, 돈없이 무료동영상으로 공부하다 뒤통수맞은 벗들의 고충을 가슴에 안고 말입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하시는 분만 보십시요,***
내 생각의 휴일은 일요일인데
망자의 가슴팍을 베고
그윽한 눈길에 취해서는
새벽이 다가도록 일어나지 못했기에
새벽 일정도 엉망이 되고 생각도 길을 못 찾습니다.
산 자와 망 자의 교감에도 연륜이 필요한지,
꼭 며칠 없는 10년인데 처음입니다.
여기 처음으로 예전의 글을 가감없이 다시 올립니다.
정말 답이 없다 하시는 분
정말 길이 없다 하시는 분께
좋은 메세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8742. 어느 장애우에게 바칩니다.
작성자 : 이희숙
작성일 : 2002/05/01 00:00
조회 : 107
추천 : 0
전파를 타고 온 님의 한 마디가
아마도 내 뼈 마디 마디에 박혔나 봅니다.
"감기라도 들면 누워서 모니터를 봐야 하거든요,"
그 순간부터 나의 번뇌는, 내가 못 떨쳐버려 가슴 아픈
애욕은 사치가 되고 맙니다. 눈물이 되고 맙니다.
내가 이성에 눈을 떳을때 나의 결혼은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것 이었읍니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하였고 그런 선택이 성과없이 허무히
끝나 버린 지금이지만 격랑과 풍파와 주검까지
남겨진 내 몫 속에서 나는 의연히 해 냈기에
지금 내 안엔 잔잔한 평화와 흔들림 없는 안정뿐이라고 자위하면서도,
더 이상의 번뇌를 갖지 말자!
아니다. 인간이기에 번뇌는 우리가 살아가는 요소라며
아귀다툼으로 매일 매일 내 자신 혹사하며 깊은 산속만
산속만 찾았는데...
님은 그 힘겨운 살아냄을 위하여 안스러이
혼신을 다하고 계섰던 겁니다.
지금도 라디오 방송에 '내일도 푸른하늘'이라는 장애우를 위한
방송이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
우습게 끝나버린 후일담인데요, 오늘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 방송에서 친구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낮에는 직장 밤에는 독학을 하면서도 나는 주소 한장 달랑 들고 그 주소지를 찾아 생전 처음 부산으로 향했읍니다.
물어 물어 어렵게 찾아간 이층연립집이었답니다.
그에게 받은 사진한장은 지금도 친정집 장농위에 있을테지만 사진보다도 그의 삶은 나에게 경악 그 자체였답니다.
벌써 20년이 다되어가는 세월이라 그가 생존해 계시는지 아니면 영면하셨는지는 모르지만 혹 이 글도 그 분께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답니다.
자그마한 할머니께서 저를 맞으셨는데 눈빛이 너무 싸늘했었답니다. 소중한 손자분 이상한 여자한테 눈요기 시키는것 같으셨을게지요,
허나 그분은 저를 반가이 맞으셨읍니다. 우리는 이미 서신으로 서로가 잘 아는 처지 였으니 당연하지요,
그때 그의 나이 28세! 19세때 연탄가스를 마신지도 모르고 문을 나섰다가 계단을 굴렀는데 뒷목부분의 척추를 다쳐 경추 아래는 간신히 감각을 유지하는 팔을 빼고 모두 마비인체 9년을 사신 것입니다.
그의 여고생같은 필체는 거의 감각이 없는 두 손바닥을 맞붙여 그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편지를 썼다는 것입니다.
손가락부분도 마비가 되었기에 겨우 살아 있는 두 손바닥으로 글을 썼다는것입니다.
운신도 못하는 그가 엎드린체 들처보라는 시트아래에는 살점하나 없는 감각없는 신체 뿐이였죠,
그의 손은 갈고리가 달린 긴 막대 하나와 짧은 막대하나였읍니다.
식구들이 있어도 입에 그 막대기를 물고는 멀리 있는 물건들들 끌어다 쓴다더군요,
내가 제일 놀랐던건 10여권가까운 우표수집책이였답니다. 테마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그의 우표수집책을 보고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지요,
그렇게 둘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의 할머니가 인기척도 없이 들어 오셔서는 내가 가주기를 말로는 못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놓으셨읍니다.
외로운 그와 같이 더 있고 싶었지만 촌티흐르는 내 연약한 심성으로는 어쩔 수 없어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었고 그게 마지막이 되어 버렸답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픈 것은 그가 분명 나를 (너도 별 볼일 없는 인간이구나! ) 생각 했을 거라는 겁니다.
내가 장래까지 꿈꾸었다고는 생각지도 못하셨을게지요, 단지 나는 그 집 할머니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생각을 달리 했을 뿐인데,
그 사람이나 님이나 인간승리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오늘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할 일없어 쓸데없이 시간낭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님은
잘 모르실겝니다.
끝없는 갑론을박에서 부터 가치없는 수다에 쏟아 넣는 시간,
사 들여도, 사 모아도, 풀리지 않은 욕망의 갈증때문에 오늘도 백화점이다, 할인점이다를 기웃거리는 유한마담은 또 얼마나 많구요, 몇년 살다 보니 정떨어진 신랑은 직장에서 상사한테 욕먹고 기가 죽어 내가 왜 사는가? 심각한 시간에 온갖 멋 다내고는 남의 남자와 시장봐다 조개탕 보골보골 끓이며 입이 귀에 걸리는 정신나간 여편네들은 또 얼마나 되는지...
지금도 님은 모니터를 보며 공부하느라 혼신을 다 바치고 계시겠죠,
돈없이 무료동영상으로 공부하다 뒤통수맞은 벗들의 고충을 가슴에 안고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열심히 할께요, 멀리 있으나마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