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 <3>

사나토스2003.06.28
조회164

다음날 일본에서 팩스가 한 통 날라왔다.
사진으로 본 상처는 여자가 말한 길이 정도의 일본도일 가능성이 짙다는 것이었다.
어제 서로 돌아온 다음 일본 경시청에 정식으로 감식의뢰를 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종류의 무기는 그쪽이 더 경험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도 있었지만 사용된 흉기가 정말 일본도인지 확인 한 것이다.

범인에 대한 윤곽이 서서히 보일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자 고형사는 조금 마음이 놓이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부터 마음속에 일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조금은 가시는 듯 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반장이 소리쳤다.

 

"이봐, 고형사. 사건이 또 터졌어. 동일수법이야."

 

현장으로 달려간 시간은 신고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룸싸롱 웨이터가 신고를 한 것인데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목이 잘린 채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지하에 위치한 그곳은 신속하게 출입을 통제되기 시작했고 문 앞에선 순경들과 술 취한 사람들이 신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신원을 확보 할 때가지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누구나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현장을 수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사람 한사람 전부 알리바이를 확인해야 하는 작업이 우선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가려는 사람과 잡아두려고 하는 경찰들 사이에 마찰이 생기고 있었다.

시체가 발견 된 화장실은 입구 바로 옆에 있었다.
들어가 보니 바닥 전체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쓰러져 있는 남자는 목이 따로 분리된 채 주저앉듯 널브러져 있었고 머리는 구석에 박혀 있었다.

고형사가 시체쪽으로 가까이 다가서려 하는데 박형사가 불렀다.

 

"선배님, 이 친구가 처음 발견했답니다."

 

뒤를 돌아보니 박형사의 손에 깡마른 남자가 팔뚝을 잡힌 채 정신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다.
워낙 마른 체격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이 툭 건들면 심장마비라도 걸릴 것 같아 보였다.

"가게 사장은?"
"지금 외출중이랍니다."
"박형사는 우선 그 사장부터 찾아보고 피해자와 같이 있던 사람들이 누구누군지 알아봐. 이친구는 좀 진정된 다음에 보자구."

박형사가 다시 남자를 데리고 돌아섰을 때 고형사는 시체 가까이 다가가서 뒷주머니의 지갑을 꺼냈다.
신분증을 확인하기 위해 지갑을 연 고형사는 입이 딱 벌어졌다.
지갑을 떨어드린 그는 구석에 쳐박힌 피살자의 머리를 얼굴이 보이도록 조심스럽게 돌렸다.
고형사는 그 자리에서 온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머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강기호 검사였다.


다음날 모든 신문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말았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현직 검사가 어린 여자들과 원조교제를 하다가 목이 잘려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기사가 난 이유는 강검사가 죽은 직후에 누군가에 의해 신문사들로 어떠한 사진들이 배달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고형사의 앞에 그 배달된 사진들이 도착해 있었는데 전부 강검사가 어려보이는 여자와 함께 여관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찍힌 것들이었다.
여자들은 전부 다른 얼굴이었는데 얼핏 봐도 스무명은 넘어보였다.
신문에 공개된 사진들은 다행히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여자들의 얼굴을 가리고는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누군지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들을 바라보던 고형사는 그 빠른 시간에 사진속의 여자들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아낸 기자들의 수단이 궁금했다.

밖은 소나기가 한참 내리고 있었다.
신문과 뉴스에서는 온통 강기호 검사의 피살사건으로 한참 시끄러웠고 매일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서는 사건의 진행상황에 대해 캐물었다.
김순경은 계속 곧 발표가 있을 거라는 말을 연신 해대고 있었고 용의자는 아직 한명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박형사가 몇 가지 더 알아낸 사실에 의하면 이인화라는 여인의 동생이 범인일 확률이 컸다.
김덕중의 아이를 가진 그녀는 김덕중이 사람들을 시켜 지속적으로 괴롭히자 동생과 함께 이사를 갔다.
하지만 심한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고 곧 자살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직후 누나의 죽음을 뒤로 하고 동생은 사라졌다.
충분히 원한을 품을만한 상황이다.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복수극을 펼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그자의 행방을 찾으면 쉽게 밝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가득했다.
강기호 검사가 피살 된 직후 신문사에 배달된 사진속의 여자들은 전부 미성년자들이었다.
일명 '원조교제' 라는 것을 하는 장면이 찍힌 것이다.
어째서 김덕중의 수중에 그런 사진이 있었으며 강기호 검사는 어떤 경위에 의해 그것을 알고 김덕중의 시체 옆에서 그 사진을 찾으려 한 것일까.
그리고 범인 또한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강기호까지 살해하고는 그의 추태를 알리기 위해 신문사에 사진을 보낸 것일까.


상당히 많은 수의 인력이 이 사건에 메달리게 되었다.
피해자 주변 뿐만 아니라 사진속의 여자들까지 전부 조사를 하는 중이다.
어떤 신문에서는 그 어린 여자들 중 한 명의 부모가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기사까지 났지만 아직 그런 조사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기엔 너무 전문가의 솜씨였다.

아마 그 부모들 중 누가 도살장에서 일이라도 하고 있으면 바로 범인으로 주목받을 분위기였다.
검찰측에서는 더 이상 명예가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서 범인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젊은 검사들도 형사들을 앞세우고 수사를 한답시고 난리통이다.
하지만 정작 범인에 대한 단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겨있을 때, 김형사가 온 몸에 비를 힘뻑 맞고서는 뛰어들어왔다.
김형사는 사건이 확대되면서 추가된 인원인데 용의자나 피해자의 과거를 추적하는 인내심이 요구되는 조사에는 진가를 발휘하는 친구여서 고형사의 신청에 의해 합류한 것이다.

 

"선배님. 찾았습니다."
"어디야?"
"일본입니다."
"일본?"
"네. 누나가 자살하고 한 달 후에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의 출국자 명단에도 있습니다."
"그럼 일본 경시청에 협조 공문 보내. 소재 파악하는 대로 우리가 간다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입국자 명단도 확인해."


그자의 이름은 이인겸.
벌써 열흘이 넘게 피해자의 주변과 원한관계가 있을만한 것들은 모두 조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 의심이 가는 부분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시간이 가면서 이인겸 그자가 범인이라는 심증이 굳어지고 있었다.
입국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나온다면 무조건 잡아들여서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장마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이틀에 한번씩은 비가 오고 있다.
이런 날씨에 살인이 일어난다면 운 좋게 미세하게 발견되는 범인의 흔적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창 밖을 내다보는 고형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범인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면서 다른 희생자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 기분을 떨치려는 듯 시선을 아래로 내린 고형사는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벌써 며칠 째 기자들이 밖에 차를 세워두고는 교대로 철야까지 하면서 수사진행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사무실에 몰래 들어오려는 시도는 벌써 여러번 적발되었고 김순경도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든지 진저리를 치고 있는 중이다.
만일 지금 고형사가 얼굴을 내밀기만 해도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빗줄기처럼 퍼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와중에 일본 경시청에서 기다라던 공문이 날라왔다.
하지만 그 내용은 고형사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인겸이라는 자는 작년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고형사는 바로 일본으로 전화를 걸어 조사를 맡았던 형사와 통화를 했다.
통역사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긴 했지만 내용은 간단한 것이었으므로 그리 어렵진 않았다.
그자의 말로는 이인겸이라는 한국인이 10년 가까이 일본 야쿠자에 몸담고 행동원으로 활동하던 중 조직간의 싸움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는 것이다.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유일하게 주목하고 있던 용의자는 죽었다는 소식으로 결백을 주장한 셈이고 김덕중에게 원한을 살만한 사람은 많았지만 살인을 저지를 만큼의 동기를 가진 자는 없었다.
설사 김인겸이라는 자가 범인이라 할지라도 의문이 남는다.
왜 강기호라는 현직 검사까지 살해한 것일까.
그것도 그에게 협박거리가 될만한 사진들까지 언론에 알리면서.
그토록 잔인한 방법을 선택한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형사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고형사는 휴대폰을 꺼내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작지만 무거운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오는 고형사를 자지러지게 반기는 것은 김마담이었다.

"어머, 또 오셨네...... 요즘 바쁘실텐데....."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자~알 알죠. 야, 김군아."

김마담이 코막힌 소리로 부르자 자그마한 웨이타 하나가 뛰어왔다.

"여기 고사장님이시니까 조용한 데로 모셔. 애들은 필요 없으시죠?"
"술이나 줘."
"혼자 오셨어요?"
"나 찾으면 없다고 해."

잠시 후, 고형사는 큰 테이블 위에 놓인 양주병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벌써 반병이나 마셨지만 머리를 계속 굴려서 그런지 취기도 잘 올라오지 않는 것이 기분만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여자가 들어왔다.

"이런.... 김마담한테 필요 없다고 해."

고형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지만 여자는 나갈 생각이 없는지 고형사의 말은 무시하고는 다소곳이 허리를 숙여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필요 없으니 그만 나가."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이렇게 말하며 여자는 고형사의 맞은 편에 앉더니 생긋 웃었다.

"여기 계실거라고 그러더군요. 반장님께서요."

반장이라는 말에 고형사는 고개를 들었다가 놀라고 말았다.
맞은 편에 앉아서 웃고 있는 여자는 최여린 이었다.

"언론엔 알리지 않으실 거라는 거 믿어도 되겠죠?"
"물론, 범인만 잡으면 됩니다."
"보증하실 수 있으세요?"
"이젠 김덕중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무도 관심 없습니다. 그래서 절 찾으신 것 아닙니까?"

여린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상당히 미안한 표정을 지었는데 역시 연기자구나 라고 고형사는 생각했다.

"알고 계셨나요? 기절하지 않은거......"
"네. 알고 있었습니다."
"왜 말씀하지 않으셨죠?"
"어차피 당신이 우기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형사는 잔을 들이키고는 여린의 앞에 잔을 놓고 술을 조금 따라주었다.

"드시죠. 아직 힘드실텐데."
"네, 고마워요."

여린은 잔을 들어 조금 마시고는 다시 잔을 내려놓았다.

"범인이 의원님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어요."

고형사는 다시 옆의 빈 잔을 끌어 놓고 술을 따르며 조용히 듣기만 했다.

"의원님께선 그사람에게 사진을 찾으러 왔냐고 물으시더군요. 옷 속에 있으니 가져가라고 했는데 범인은 그냥 칼을 휘둘렀어요."

여린은 그 당시의 장면이 생생한지 몸서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의원님께선 제가 소리지르지 못하도록 입을 막고 계시다가  목이 잘리면서 손을 내릴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그제서야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듣기만 하던 고형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자가 칼을 휘두르기 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15년 전 일을 기억하라고. 그러니 억울하지는 않을거라고 말예요."
"범인의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까?"
"전혀요. 의원님이 그렇게 되시고 전 바로 기절한 척 했으니까요. 저도 죽일줄만 알았죠. 그자가 그대로 나가기만 기도했어요. 근데 그러질 않았죠."
"사진을 가져갔군요."

여린이 핸드백을 열더니 작은 주머니를 내놓았다.

"그 안에 필름이 들어있어요.  무엇인지는 신문을 보고 알았지만."
"이건 어디 있었습니까?"
"그날 낮에 의원님께서 직접 주셨어요.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신문사로 가져가라고 하셨구요."
"그럼 김의원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단 말입니까?"
"글쎄요. 하지만 강검사가 무슨 짓을 할거라고 하시긴 하셨어요."

고형사는 여린쪽으로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

"협박을 하고 계셨어요."
"협박이요?"
"네.  강검사라는 사람이 의원님의 과거를 알고 있다며 자신의 정치자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었어요. 자기도 국회에 진출하겠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의원님은 그럴 생각이 없으셨죠. 이 필름을 만드셔서 거기에 대응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이젠 죽은 사람들이니 다 말해도 상관 없겠죠."
"그 반댑니다."
"네?"
"현직 국회의원과 검사가 처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근데 그 둘의 추한  뒷얘기가 공개되면 상부에서는 어떡해서든 부정하려 들 겁니다. 위신이 달린 문제니까요."
"그럼....."
"묻으십시오."
"네?"

고형사는 술잔을 들이키며 한숨을 쉬었다.

"범인을 잡는 건 접니다. 여린씨가 알고 있는 내용이 지금에 와서 알려질 필요는 없습니다. 설마 배우를 그만두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야....."
"그럼 잊으십시오. 여린씨 말대로 다 죽은 사람들 얘깁니다."

여린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절 보호하시려는 건가요?"
"쓸데없이 희생자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만 가시죠."

여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나갔다.

고형사는 여린의 눈빛을 보며 자신이 조금씩 빠져드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기분을 들키기 전에 서둘러서 내보내긴 했지만 뒤가 찜찜했다.
나가면서 보인 여린의 옅은 미소가 자신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지끈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정신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 박형사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푹신한 바닥이었다.
손과 발이 묶인 채 바닥에 엎드려 있는 자신을 발견한 박형사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두뇌가 이리저리 부딪히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와서 그만두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묶인 팔다리에 감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몇시간은 이런 상태로 있었는가 보다.

박형사는 죽은 이인화의 동생에 대한 행방을 찾기 위해 그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아원을 찾아갔었다.
겨우 단서를 찾은 그는 시골길을 한참 달려 그 고아원을 찾았고 원장을 만나 놀라운 사실을 접하고는 바로 고형사에게 전화를 했지만 김순경이 대신 받자 바로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차를 세웠는데 머리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었다.
아마도 누군가 고아원에서부터 차 뒷자석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자신을 공격한 것 같았다.
힘겹게 고개를 드는데 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며 다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 앞에 백열등으로 보이는 작은 것이 어른거린다.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이번에는 자신의 몸이 바로 누워 있고 손은 아직 묶여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느슨하게 다시 묶였다는 것을 알 만큼 감각이 돌아와 있었다.

"이제 정신이 드시오."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