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상황이 오게 된데에 대해서 다 쓰려면 네이트 게시판을 전세내야 할테지만, 어쨌든 생각나는대로 몇자 적어 볼려구요. 넘 답답해서리...
남편과는 21살에 만났져. 그때 대학생이래서, 동경심에 사귀기로 했져. 전 그때 고졸 직장인..
남편과 우리집과는 고속버스로 1시간, 경남, 경북에 살았져. 각각.
사귄지 2개월쯤된 어느 토요일.
자기집에 한번만 내려와 달라는 간절한 전화를 받고 내려간 것이 화근이 되어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죠.
알고보니, 대학생은 대학생인데 방송대더군요. ㅠㅠ
아버진 국제경찰, 어머닌 큰 갈비집한댔는데 것두 알고보니 아버진 시청소속 환경미화원 반장(게중 우두머리), 어머닌 포장마차를 막 접고 잠깐 쉬는 시기였구요. ㅠㅠ
사람들이 결혼할 때 조건 좀 보잔아요. 저두 정말 좀 있는 집인가 싶어 넘어간거죠. 제 불찰도 있져.
어쨋든 3개월 동거가 끝났을 때 전 엄마한테로 돌아갔구요, 남편은 바로 입대를 해 버렸습니다.
입대하기 전에 기다려 달라고 애원해서 그러겠다구 했구, 것도 마음이 안놓이는지 부대가 있는 춘천까지 저를 올라오게 했습니다. 저 너무 순진했져. 남편이 하자는 대로 다 했으니까..
부대 근처 군무원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 집 부인이 일하는 분식집에서 12시간을 일해 줬구요, 그러다 넘 힘들어서 더 못하겠다고 하더니 자기 집에 가 있으라고 하더군요. 절 엄청 사랑했던건 맞는거 같아요. 그래서 또 남편(아직 식은 안올렸지만)도 없는 시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했죠. 그때 울 시엄니 나이 45세... 증말 힘들었져...저는 나름대로 직장생활 했습니다. 월급 보너스 꼬박꼬박 타서 시엄니 손에 다 들려 주고 용돈만 타서 썼죠. 늘 빠듯했어요. 그러다 남편 제대하고 속도위반하는 바람에 제대 1달만에 후다닥 결혼했져.
첨엔 분가 하고 싶어서(93년) 분가시켜 달랬더니, 시댁식구들 저를 아주 못된년 취급하더군요.
그 때 당시 시댁도 전세 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립주택 한 채 있었는데, 남편이 저 만나기 얼마전 팔아치웠더군요. 시부가... 시어머니 친정에서 해준 집이었답니다. 물론 시부가 돈 다 챙겼져...ㅠㅠ
전세 500만원짜리 방 알아보라고 해서, 그 돈에 맞추려 시내를 다 뒤졌지만 결국 못구했져. 어쩌다 다 쓰러져 가는 집 전세 100만원에 월세 11만원이 있길래, 시부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그걸로 해라, 월세는 내가 주마... 정말 줄줄 알았져. 그러나 1달 받고 지금껏 못받았습니다. 결혼할 당시 남편 제대 1개월이라 백수 상태였고 전 배가 불러 오던중.. 시댁식구 누구하나 쌀 한되 퍼주지 않았고, 불러오는 배를 안고 공장에 다니면서 먹고 살았지요. 그 와중에도 남편은 하루도 그냥 놀지는 않았습니다. 노가다라도 해서 제게 몇만원이라도 안겨 주었지요. 정말 그 오랜 애증의 세월동안 그렇게 자상하고 성실한 남편때문에 전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두달여만에 남편이 정말 운좋게 고졸의 학력임에도 대기업 정식직원에 채용되었구요, 그때부터 우리 형편은 조금씩 풀렸습니다.
저는 임신 10개월, 큰애 낳기 전날까지 공장에서 일했구요, 몸이 약해서 자연분만 못하고 제왕절개로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제왕절개 하면 며칠동안 아파서 미치져... 병원에서도 8일 입원하고 있다가 퇴원하라고 권하구여... 자연분만한 엄마들은 바로 걸어 다니고 퇴원할 수도 있는데... 어쨋든 병원에 5일 있었습니다. 남편이 병원비 많이 나온다고 퇴원해야 한다고 재촉해서리... 친정이 먼 관계로 시댁에 갔져..
그때 시어머니 환경미화원 하고 있었습니다. 시아버진 정년퇴직하고... 절 돌봐 줄 사람이 없었져.. 혼자서 화장실가기도 넘 힘들고, 첫아기라서 어찌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아기가 울어도 아무도 봐 줄 사람이 없으니 화장실갈데도 아길 안고 가서 세탁기 위에 올려 놓고 볼일을 봤습니다. ㅠㅠ
그리고 시엄니가 미역국이라고 끓여주는데 산모 입에 맞는게 아니라 몸 성한 사람 입맛에 맞추다보니 제겐 짜고, 저녁밥도 아침에 해 놓은 식은밥 한덩어리 말아 먹어야 하고...제가 원래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조금만 마음 상해도 울고, 조금만 감동해도 울고, 눈물이 먼저 나오는 타입..
그래서 밥먹다 말고 조금 울었거든요... 애기낳고 내 처지가 하도 한심해 저절로 눈물이 나더군요.
시엄니 화를 무척 내더이다... 그러곤 시부께 주절주절 넋두리했겠져...당신도 넘 힘든데 나까지 떠맡게 되었으니... 시부가 정말 가관이더이다. 집이 떠나가랴 소리를 지르며, 왜 우냐고, 니가 뭐 잘한게 있다고 우냐고, 거지처럼 들어온거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 주었더니, 니가 뭐가 못마땅해서 우냐고, 니가 그런 곤조(? 경남에서 쓰는 말...안좋은 뜻 같음)가 있을 줄 알았다고, 당장 나가라고...
일마치고 들어온 남편은 기가 막힌지 저더러 짐을 싸라더군요.
그래서 우리집으로 갔습니다. 더 기막힌건 그런 저를 데려다 놓고 남편은 며칠동안 집에 오지를 않더군요. 젖도 안나오고, 아기는 배고파서 울고, 시댁에서 몸조리 할거라고 우리 집엔 아무것도 사다놓지 않아서 국을 끓일 재료 하나도 없고, 아기를 낳은 달이 2월달이라서 밖에는 도저히 못나갔더이다. 혹시 산후풍이라도 걸릴까 싶어서... 그렇게 며칠을 굶고 있으니 남편이 왔더군요. 아기 목욕도 혼자 시키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남편은 저의 그런 고통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집안에 물의를 일으킨 여자 취급하더군요... 그때 하필 집의 전화도 불통이 되어서 친정엄마한테 s.o.s도 못보냈습니다. 참 재수없었져...그때 이를 악물고 결심했습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 오는 한이 있어도 이제 시댁에는 안간다... 차라리 죽는다... 남편은 나의 피눈물나는 얘기를 듣고 미역 한 봉지 사다 던져 주고는 다시 사라졌습니다.
시엄니가 아기보러 한번씩 들르면서 남편이 차츰 안정을 찾아가더군요.
네, 울 남편 마마보이 맞습니다.
세상의 중심에 엄마가 있고 엄마가 힘들면 자신도 힘들고, 맛있는 음식을 한가지 먹어도 엄마를 떠올리게 되는 효자 아들이죠. 당연히 저랑 아이들은 2순위. ㅠㅠ
울 시엄니 너무 고생많이 해서 남편이 정신병처럼 엄마를 달고 다니고 떠나지 못한다는 것 저도 잘 알져.
하지만 저도 여자인데, 시어머니와 남편을 반반 나누어서 갖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기 낳은지 두어달 쯤 될 무렵 시댁에서 집을 한채 산다고 하더군요. 그때 연립 판돈이랑 은행에 대출받아서 2층 양옥을요... 근데 대출 받으면 이자를 내야 하잔아요... 그걸 우리보고 물게 하려고 시댁으로 들어 오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시댁에서 들어 오라고 한건지 효자인 남편이 들어가겠다고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그 이자 다 갚는 1년동안 그 때 남편 월급이 60만원정도였는데, 그 돈 다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상여금으로 먹고 살았져... 저도 아기가 돌이 될 무렵에 회사를 그만두었구요, 그때도 시부,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젊은것이 놀고 먹으려 한다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고...암튼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연년생으로 둘째가 태어나고.... 그렇게 지금은 큰애가 4학년 작은애가 2학년입니다....
시댁에서 같이 사는 동안 첨에 5년은 시부모님과 같은 공간에 살다가 다음 5년은 애들이 커서 집이 좁다는 핑계로 2층 안채를 저희가 썼었죠. 일단 같은 공간이 아니라 훨씬 살기가 편해졌습니다. 자유스럽구요. 남편도 큰애 작은애 낳을 때 제게 눈물쏟게 한 일 말고는 별다른 탈없이 언제나 자상하고 가정적이었죠. 땡돌이... 동네에서 다들 부러워했어요. 그렇게 행복인지 불행인지 모를 10여년이 지나고 1달전에 드디어 분가를 했습니다.
시댁에서 차로 10분거리 아파트를 한 채 샀져.
물론 시댁에서 해준거라곤 우리가 살던 2층안채 전세 놓고 받은 3000만원(이 중 1000만원은 우리가 1층 살다 2층으로 올라갈때 낸돈이고 나머지 2000만원에 우리가 지급한 이자, 10년 살면서 충당한 각종 댓가가 포함되어 있음)
나머진 남편 회사 퇴직금 중도청산하고 빚이 지금 6000만원 정도되여...
왜 분가했나구요?
역시 시부땜에...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넘 힘들어서요. 아직도 시엄니껜 환경미화원일 시키면서 당신은 그랜저 XG타고 다니구여, 작년에 남편이 아파서 회사를 3개월 쉬었을 때도 병원비 한푼 안보태주고, 생활비는 물론...암튼 긁어 모을 줄만 알고, 지금 그 집도 돌아가실 땐 우리한테 준다준다하면서 우리한테 단물쓴물 다 빼먹었기 때문에 더이상 같이 살고 싶지가 않았어요. 더욱이 저한테 하는 말투....화가나면 말이져... 거지처럼 들어온게 뭐가 잘났다고 니가 그리 뻣뻣하냐....뭐 그런식 있잔아요. 사람의 존심을 확 뭉개버리는...
내가 거지면 왜 거지가 벌어다 준 돈 3년이나 월급 보너스 다 챙겼대요....??? 비열한.... 그리고 우리 결혼할 때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혼수 좀 해 달랬더니, 니가 번 돈이 어딨냐고, 니 밥값, 방값, 다 제하고 나면 뭐 남는게 있냐고... 헉스...결국, 21인치 티비 하나, 370리터 냉장고 하나, 가스렌지 하나, 장농하나...이게 거의 300만원선에서 다 해결해 주시데요... 너무나 계산에 능한...
시엄니가 시부께 받는 모욕과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왜 이혼안하는지 전 도저히 이해가 안 갈 정도... 제가 이 집에 들어온 13, 4년 전부터 각방을 쓰고 계셨는데요, 아직까집니다.
몇해전엔 사귀는 여자가 집에 찾아온 적도 있어서, 제가 욕을욕을 해서 내 쫓았답니다.
사실 시엄니가 대차지 못하고, 좀 미련하고, 어리숙한 구석이 있지요....(욕하는거 아님)
이혼할 수 있을까?...(1)
이렇게까지 상황이 오게 된데에 대해서 다 쓰려면 네이트 게시판을 전세내야 할테지만, 어쨌든 생각나는대로 몇자 적어 볼려구요. 넘 답답해서리...
남편과는 21살에 만났져. 그때 대학생이래서, 동경심에 사귀기로 했져. 전 그때 고졸 직장인..
남편과 우리집과는 고속버스로 1시간, 경남, 경북에 살았져. 각각.
사귄지 2개월쯤된 어느 토요일.
자기집에 한번만 내려와 달라는 간절한 전화를 받고 내려간 것이 화근이 되어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죠.
알고보니, 대학생은 대학생인데 방송대더군요. ㅠㅠ
아버진 국제경찰, 어머닌 큰 갈비집한댔는데 것두 알고보니 아버진 시청소속 환경미화원 반장(게중 우두머리), 어머닌 포장마차를 막 접고 잠깐 쉬는 시기였구요. ㅠㅠ
사람들이 결혼할 때 조건 좀 보잔아요. 저두 정말 좀 있는 집인가 싶어 넘어간거죠. 제 불찰도 있져.
어쨋든 3개월 동거가 끝났을 때 전 엄마한테로 돌아갔구요, 남편은 바로 입대를 해 버렸습니다.
입대하기 전에 기다려 달라고 애원해서 그러겠다구 했구, 것도 마음이 안놓이는지 부대가 있는 춘천까지 저를 올라오게 했습니다. 저 너무 순진했져. 남편이 하자는 대로 다 했으니까..
부대 근처 군무원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 집 부인이 일하는 분식집에서 12시간을 일해 줬구요, 그러다 넘 힘들어서 더 못하겠다고 하더니 자기 집에 가 있으라고 하더군요. 절 엄청 사랑했던건 맞는거 같아요. 그래서 또 남편(아직 식은 안올렸지만)도 없는 시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했죠. 그때 울 시엄니 나이 45세... 증말 힘들었져...저는 나름대로 직장생활 했습니다. 월급 보너스 꼬박꼬박 타서 시엄니 손에 다 들려 주고 용돈만 타서 썼죠. 늘 빠듯했어요. 그러다 남편 제대하고 속도위반하는 바람에 제대 1달만에 후다닥 결혼했져.
첨엔 분가 하고 싶어서(93년) 분가시켜 달랬더니, 시댁식구들 저를 아주 못된년 취급하더군요.
그 때 당시 시댁도 전세 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립주택 한 채 있었는데, 남편이 저 만나기 얼마전 팔아치웠더군요. 시부가... 시어머니 친정에서 해준 집이었답니다. 물론 시부가 돈 다 챙겼져...ㅠㅠ
전세 500만원짜리 방 알아보라고 해서, 그 돈에 맞추려 시내를 다 뒤졌지만 결국 못구했져. 어쩌다 다 쓰러져 가는 집 전세 100만원에 월세 11만원이 있길래, 시부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그걸로 해라, 월세는 내가 주마... 정말 줄줄 알았져. 그러나 1달 받고 지금껏 못받았습니다. 결혼할 당시 남편 제대 1개월이라 백수 상태였고 전 배가 불러 오던중.. 시댁식구 누구하나 쌀 한되 퍼주지 않았고, 불러오는 배를 안고 공장에 다니면서 먹고 살았지요. 그 와중에도 남편은 하루도 그냥 놀지는 않았습니다. 노가다라도 해서 제게 몇만원이라도 안겨 주었지요. 정말 그 오랜 애증의 세월동안 그렇게 자상하고 성실한 남편때문에 전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두달여만에 남편이 정말 운좋게 고졸의 학력임에도 대기업 정식직원에 채용되었구요, 그때부터 우리 형편은 조금씩 풀렸습니다.
저는 임신 10개월, 큰애 낳기 전날까지 공장에서 일했구요, 몸이 약해서 자연분만 못하고 제왕절개로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제왕절개 하면 며칠동안 아파서 미치져... 병원에서도 8일 입원하고 있다가 퇴원하라고 권하구여... 자연분만한 엄마들은 바로 걸어 다니고 퇴원할 수도 있는데... 어쨋든 병원에 5일 있었습니다. 남편이 병원비 많이 나온다고 퇴원해야 한다고 재촉해서리... 친정이 먼 관계로 시댁에 갔져..
그때 시어머니 환경미화원 하고 있었습니다. 시아버진 정년퇴직하고... 절 돌봐 줄 사람이 없었져.. 혼자서 화장실가기도 넘 힘들고, 첫아기라서 어찌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아기가 울어도 아무도 봐 줄 사람이 없으니 화장실갈데도 아길 안고 가서 세탁기 위에 올려 놓고 볼일을 봤습니다. ㅠㅠ
그리고 시엄니가 미역국이라고 끓여주는데 산모 입에 맞는게 아니라 몸 성한 사람 입맛에 맞추다보니 제겐 짜고, 저녁밥도 아침에 해 놓은 식은밥 한덩어리 말아 먹어야 하고...제가 원래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조금만 마음 상해도 울고, 조금만 감동해도 울고, 눈물이 먼저 나오는 타입..
그래서 밥먹다 말고 조금 울었거든요... 애기낳고 내 처지가 하도 한심해 저절로 눈물이 나더군요.
시엄니 화를 무척 내더이다... 그러곤 시부께 주절주절 넋두리했겠져...당신도 넘 힘든데 나까지 떠맡게 되었으니... 시부가 정말 가관이더이다. 집이 떠나가랴 소리를 지르며, 왜 우냐고, 니가 뭐 잘한게 있다고 우냐고, 거지처럼 들어온거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 주었더니, 니가 뭐가 못마땅해서 우냐고, 니가 그런 곤조(? 경남에서 쓰는 말...안좋은 뜻 같음)가 있을 줄 알았다고, 당장 나가라고...
일마치고 들어온 남편은 기가 막힌지 저더러 짐을 싸라더군요.
그래서 우리집으로 갔습니다. 더 기막힌건 그런 저를 데려다 놓고 남편은 며칠동안 집에 오지를 않더군요. 젖도 안나오고, 아기는 배고파서 울고, 시댁에서 몸조리 할거라고 우리 집엔 아무것도 사다놓지 않아서 국을 끓일 재료 하나도 없고, 아기를 낳은 달이 2월달이라서 밖에는 도저히 못나갔더이다. 혹시 산후풍이라도 걸릴까 싶어서... 그렇게 며칠을 굶고 있으니 남편이 왔더군요. 아기 목욕도 혼자 시키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남편은 저의 그런 고통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집안에 물의를 일으킨 여자 취급하더군요... 그때 하필 집의 전화도 불통이 되어서 친정엄마한테 s.o.s도 못보냈습니다. 참 재수없었져...그때 이를 악물고 결심했습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 오는 한이 있어도 이제 시댁에는 안간다... 차라리 죽는다... 남편은 나의 피눈물나는 얘기를 듣고 미역 한 봉지 사다 던져 주고는 다시 사라졌습니다.
시엄니가 아기보러 한번씩 들르면서 남편이 차츰 안정을 찾아가더군요.
네, 울 남편 마마보이 맞습니다.
세상의 중심에 엄마가 있고 엄마가 힘들면 자신도 힘들고, 맛있는 음식을 한가지 먹어도 엄마를 떠올리게 되는 효자 아들이죠. 당연히 저랑 아이들은 2순위. ㅠㅠ
울 시엄니 너무 고생많이 해서 남편이 정신병처럼 엄마를 달고 다니고 떠나지 못한다는 것 저도 잘 알져.
하지만 저도 여자인데, 시어머니와 남편을 반반 나누어서 갖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기 낳은지 두어달 쯤 될 무렵 시댁에서 집을 한채 산다고 하더군요. 그때 연립 판돈이랑 은행에 대출받아서 2층 양옥을요... 근데 대출 받으면 이자를 내야 하잔아요... 그걸 우리보고 물게 하려고 시댁으로 들어 오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시댁에서 들어 오라고 한건지 효자인 남편이 들어가겠다고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그 이자 다 갚는 1년동안 그 때 남편 월급이 60만원정도였는데, 그 돈 다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상여금으로 먹고 살았져... 저도 아기가 돌이 될 무렵에 회사를 그만두었구요, 그때도 시부,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젊은것이 놀고 먹으려 한다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고...암튼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연년생으로 둘째가 태어나고.... 그렇게 지금은 큰애가 4학년 작은애가 2학년입니다....
시댁에서 같이 사는 동안 첨에 5년은 시부모님과 같은 공간에 살다가 다음 5년은 애들이 커서 집이 좁다는 핑계로 2층 안채를 저희가 썼었죠. 일단 같은 공간이 아니라 훨씬 살기가 편해졌습니다. 자유스럽구요. 남편도 큰애 작은애 낳을 때 제게 눈물쏟게 한 일 말고는 별다른 탈없이 언제나 자상하고 가정적이었죠. 땡돌이... 동네에서 다들 부러워했어요. 그렇게 행복인지 불행인지 모를 10여년이 지나고 1달전에 드디어 분가를 했습니다.
시댁에서 차로 10분거리 아파트를 한 채 샀져.
물론 시댁에서 해준거라곤 우리가 살던 2층안채 전세 놓고 받은 3000만원(이 중 1000만원은 우리가 1층 살다 2층으로 올라갈때 낸돈이고 나머지 2000만원에 우리가 지급한 이자, 10년 살면서 충당한 각종 댓가가 포함되어 있음)
나머진 남편 회사 퇴직금 중도청산하고 빚이 지금 6000만원 정도되여...
왜 분가했나구요?
역시 시부땜에...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넘 힘들어서요. 아직도 시엄니껜 환경미화원일 시키면서 당신은 그랜저 XG타고 다니구여, 작년에 남편이 아파서 회사를 3개월 쉬었을 때도 병원비 한푼 안보태주고, 생활비는 물론...암튼 긁어 모을 줄만 알고, 지금 그 집도 돌아가실 땐 우리한테 준다준다하면서 우리한테 단물쓴물 다 빼먹었기 때문에 더이상 같이 살고 싶지가 않았어요. 더욱이 저한테 하는 말투....화가나면 말이져... 거지처럼 들어온게 뭐가 잘났다고 니가 그리 뻣뻣하냐....뭐 그런식 있잔아요. 사람의 존심을 확 뭉개버리는...
내가 거지면 왜 거지가 벌어다 준 돈 3년이나 월급 보너스 다 챙겼대요....??? 비열한.... 그리고 우리 결혼할 때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혼수 좀 해 달랬더니, 니가 번 돈이 어딨냐고, 니 밥값, 방값, 다 제하고 나면 뭐 남는게 있냐고... 헉스...결국, 21인치 티비 하나, 370리터 냉장고 하나, 가스렌지 하나, 장농하나...이게 거의 300만원선에서 다 해결해 주시데요... 너무나 계산에 능한...
시엄니가 시부께 받는 모욕과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왜 이혼안하는지 전 도저히 이해가 안 갈 정도... 제가 이 집에 들어온 13, 4년 전부터 각방을 쓰고 계셨는데요, 아직까집니다.
몇해전엔 사귀는 여자가 집에 찾아온 적도 있어서, 제가 욕을욕을 해서 내 쫓았답니다.
사실 시엄니가 대차지 못하고, 좀 미련하고, 어리숙한 구석이 있지요....(욕하는거 아님)
암튼 분가를 하기로 한 때부터 문제는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