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의 크리스마스

꿈틀 지렁이2007.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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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님이 편찮으시다는 전갈을 받았다.

왠지 청주에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술을 마신 남편에게 청주를 가자고 졸라서

음주 상태에서 서울을 출발했다.

내려가니 시아버님께선 눕지도 못하고 벽에 기대고만 계셨다.

다음날 청주에 있는 리라병원<지금의 성모 병원>에 가니

가망이 없다며 모시고 가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아는 사람을 통해 서울대 병원으로 아버님을 모셨다.

16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병명은 알 수 없는 상태이나

이런 저런 시험 삼은 치료에 아버님께선 고비를 넘겼다.

사업 실패로 집에서 지냈던 남편은

보름동안 집에도 오지 않고

병원 아버님의 침상 아래서 신문을 깔고 지냈다.

난 한달이 조금 넘은 아들과

24개월을 갓 넘긴 딸아이와 지냈다.

물론 음식을해서 배달을 했었지만

두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출입 하기란 쉬운건 아니었다.

한번은 아버님이 너무나 기다리셨던 손주셨기에,

돌아가실수도 있다는 생각에

11층까지 경비원의 눈을 피해 걸어 올라간 적도 있었지만

난 거의 혼자서 집에서 지냈는데 그땐 왜 그렇게도 겁이 많았던지

사방 방범창을 했음에도 두려워

현관에는 빨래 건조대를 세워 놓고서도 밤을 세우는 일이 많았었다.

왠만 하셨던지 남편은 가끔 먹거리를 가질러 오기도 했었고

집에 와서 옷을 갈아 입고 가기도 했었지만

남편에게 무섭다며 집에서 자 달라는 청은 할 줄 몰랐었다.

12월 23일 남편이 집에 먹거리를 가질러 온다는 말에

난  남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

오가는데 추울까봐 파카로....

24일에도 남편은 들어오지 않는데 느낌이 참으로 묘했다.

새벽3시,

이문동에 살았던 큰시누이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막내 성희 아가씨가 전화를 받는데

까르르 넘어갈 듯 웃으며 오빠 전화를 받으라는데

주변이 몹시 시끌벅적했다.

모두들 거기에 모여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순간 참을 수 없는 소외감과 배신감이 나의 이성을 앗아가 버렸다.

거하게 취한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왜?"

라고 물어오는데

"인간들이 너무하네."

란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

잠시 후 술에 취한 남편은 손살같이 집으로 와서 살림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이유는 자기네 식구들에게 '인간들'이라는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

참 어이없는 일이고

상식이하의 말이었지만 미친듯이 살림을 때려 부시는 남편의 행동이 두려워 잘못 했다고 빌어야만 했다.

그 이후로 내 인생에는 크리스마스란건 없다.

물론 내가 기독교를 천주교를 믿는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인간이란 말에 토를 달기 전에

두 아이의 아빠였다면,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반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