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가는편지

하늘서신200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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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27세 민영찬(가명) 1981년생, 서울 소재 H대학교 인문대학 역사철학과 졸 00학번 현 Ohio State University Dpartment of History, Master's program

저는 민영찬이라는 가명으로 이 글을 쓰고자 합니다. 제 마음속에 16년동안 품어온 여자가 있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글을 올립니다.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엄청 깁니다. 그래도 진심어린 글이니 끝까지 읽어 주세요.

 

1991년 봄 서울 U국민학교

나는 민영찬입니다. 국민학교때 달리기, 싸움 전교 수준급 소위 말해서 공부 안하고 BB탄 총싸움 애들 데리고 놀러다니는 골목대장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우리반 여자 반장애 너무 이뻤습니다. 그냥 이쁘다 생각했습니다. 점심 시간때 도시락 반찬 뺏어먹고 돌아다니던 그 시절 갑자기 우리반 여자애의 울음소리;; 네! 바보같은 기집애 하나가 교실바닥에 오줌을 싸고 울고 있습니다.

 

우리반 여자 반장애 김영인(가명) 자기 잠바때기를 벗어 가려주더군요;; 천사가 따로 없었지요;; 그때부터 그 여자아이를 보호하는 수호신이 되고 싶었습니다. 천사를 지키는자!! 민영찬이 말이죠;; 후훗;;

 

줄곳 혼자 좋아했습니다. 짝사랑의 시작이었죠. 4학년 이후 같은반 한번 되지 못하고 말도 못한 가슴앓이 열병의 시작이었습니다. 공부에는 관심없는 철부지 골목대장 민영찬입니다.

 

1994년 봄 서울 C중학교

하늘의 도우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중학교를 남녀공학 같은학교 같은반에 김영인 그 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조그마하고 곱상한 여자아이 가냘픈듯한 그 아이가 앉아 있는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 입학하지 머지 않아 다른 학교 출신 짱급 애들과 쌈박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담임에게 찍히게 되었고 노는 분류의 아이로 일찌기 분류가 되어가고 있었죠. 그러나 나 민영찬 양아치 아닙니다. 그저 지기 싫고 운동하면 승부욕 강해서 부딪치는 그런 아이였다고나 할까요.

 

 암튼 공부에 관심 없었습니다. 영인이는 공부도 잘했어요. 특히 영어! 어느날, 학원도 땡땡이 치고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놀던 시절 제 성적이 밑바닥으로 치솟고 있었습니다.

 

평균 60~70대, 담임 어머니를 부르십니다. "요즘 영찬이 성적도 그렇고 집에 애로사항이 있나요?" 어머니 왈"요즘 영찬이가 사춘기 접어들면서 좋아하는 아이때문에 공부가 잘 안되고 그러는 모양이에요" 그거 절대 아니었습니다. 원래 공부에 담 쌓고 살았던지라.....

 

 원래 어머니랑은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왔던터라 국민학교때부터 영인이 좋아한것도 알고 계셨고 어머니랑은 숨김없이 대화를 나누곤 했었습니다. 암튼 그다음날 학교 갔더니 담임이 갑자기 교무실로 부르더군요. 제 얼굴을 보더니 씨익~ 웃으면서"너 영인이 좋아하는구나?" 저 정색했습니다. 절대 아니라고. 다시 물으시더군요."너 영인이랑 짝궁 시켜줄까? 그러면 공부 열심히 할래?" 하시더라구요.

 

그날부로 짱궁 되었습니다. 쉬는시간 점심시간만다 나가서 땡땡이 치고 놀다 들어오던 저였습니다. 그날이후로 영인이는 저 영어도 가르쳐주고 점심시간 쉬는시간 절대 못나가게 저를 간섭합니다. 어머니에게 졸라서 영인이 다니는 학원으로 등록도 했죠. 좋아하는 아이랑 같은 학원 다니면 공부 열심히 할거라고....

 

학원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은 여전 하더군요. 무슨 중학1년생 학원이 시험봐서 반가르고 거기다가 과고,외고반이 있습니까? 저 맨 믿바닥반이고 영인이 과고,외고반입니다. 사는 동이 틀려서 학원차 다른거 탑니다. 언젠가부터 차타고 가지 말구 편의점에서 라면먹구 가자고 꼬드겼습니다. 그래서 라면먹는일이 잦아졌구요. 라면먹고 학교 운동장쪽으로 걸어가는데 우리반애들 단체로 걸어옵니다. 영인이 손잡고 냅다 뛰었습니다. 도망간후에 영인이가 손을 놓더니 그 손을 가슴에 대고 얼굴이 빨개지더라구요. 사귀자는 말 없이 사귀게 되었고 순수하게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 반이 갈리고 다시 공부의 흥미를 잃어버렸죠. 그 와중 옆학교와 패싸움 사건에 휘말리고 정학을 맞았습니다. 아버지가 고심끝에 이사를 결심하시고 전학을 시키시더라고요. 전학간단 말도 못하고 전학갔습니다. 전학가서도 쌈박질 많이 했습니다. 영인이가 보고 싶어 가끔 학교 갔지만 만날수 없었지요. 졸업식날 우리학교가 하루 빨리 졸업해서 영인이 졸업식에 참여했습니다. 영인이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친구랑 잠깐 시간좀 보낸다고 하며 저에게 오더군요. 그때 무작정 찾아간 전에 다니던 학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영인이 맛있는것두 사주고 커피숍에서 커피도 사주려고 돈만원 챙겨 왔는데 그친구들까지 합류하는 바람에 떡볶이 사주고 돈 바닥 났습니다. 제가 물었죠 어디고등학교 가느냐고...외고 합격해서 외고 간답니다. 저보고 어디 고등학교 가냐고 물었습니다. 저 공고 입학했습니다. 공고간다고 말했죠. 많이 실망하더군요. 그 이후로 제 연락을 피하더군요. 너무 보고 싶었던 그 아이가 그리웠습니다.

 

1997년 봄 S공고를 다니던 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아버지께 졸랐습니다. 인문계로 전학 시켜주시면 목숨걸고 공부 하겠다고 싸움도 안하고 공부에만 전념하겠다고 말이죠. 아버지께서 힘들게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 보내 주시더군요. 인문계 간 이후 연락을해서 다시 만났습니다. 영인이는 공부하느라 바쁘니까 시간이 없어서 만날수 없지만 그래도 좋은 관계로 대학가서 꼭 다시 만나자고 나도 너 중학교때부터 많이 좋아했다고 대학가서 꼭 사귀자고 약속했습니다.

 

목숨걸고 공부했습니다. 내신 밑바닥 치던 제가 죽어라 공부했죠. 삐삐 에서 핸드폰으로 바뀌던 과도기 1998년 전 핸드폰도 없었습니다. 물론 연인이도 삐삐에서 핸드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삐삐를 처분하고 공부를 한 모양입니다. 말 그대로 연락 두절이었습니다. 진짜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2000년 대학을 입학하고 미팅,소개팅 건수 많이 들어오더군요. 다 거절했습니다. 영인이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수소문을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일찌기 전학을 왔기때문에 2001년 다음의 사람찾기로 김영인 수십명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영인이를 찾았습니다. "나 그영인이 맞아 잘 지냈어? 나 강남역에서 요즘 아르바이트해 놀러와!!" 6년동안 기다리던 첫사랑 그녀 다시 만났죠. 서울 소재 명문대학에서 학교 잘 다니고 있습디다. 남자친구 있냐고 물었습니다. 있더랩니다. 작년에 만난 1년 오빠랍디다. 군대갔답니다. 그러면서 영인이가 하는말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걸" ㅠ.ㅠ

 

친구로라도 연락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전 남자이기 때문에 애인있는 첫사랑 기다릴수 있지만 이쁘게 사랑하고 있는 고무신 행복을 빌어줬습니다. 그리고 저두 서둘러 지원하여 군입대를 했죠. 너무 가슴 아픕디다. 편지 해준다던 영인이의 말을 뒤로 하고 자대 주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군대서 조차도 꿈에서 보고싶어서 잘때 생각하며 잠들곤 했죠. 너무 사랑하는 단하나뿐인 여인이니깐요.

 

2003년 전역하고 복학을 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싸이월드란게 있더군요. 사람찾기로 들어가봤더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더군요. 글을 남길수가 없었습니다. 남자 친구가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인데 남자들이 가만 나둘리가 있겠나요. 시간은 흘러 2005년 봄 누군가가 1촌을 겁디다. 네! 그렇습니다. 바로 영인이었습니다. 너무 행복했죠. 그리고 6년의 기다림의 재회 이후 4년만에 우리는 다시 재회를 했습니다. 아름다운 고백과 함께 우린 사귀게 되었구요. 이쁘게 사랑했습니다. 대학 4학년때 진로에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취업하기 힘든 인문계열인데다 공무원을 준비할까 기업을 들어갈까 하던 시기였죠. 먼저 대학 졸업하고 한국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여자친구 영인이..

 

대학4학년 취업준비로 바쁘던 2006년 어느날, 영인이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자네, 우리 영인이는 미국 유학 보낼계획인데 자넨 어떨 계획인가? 헉>.< 저도 유학 가겠습니다. 했지요. 3달만에 토플 준비 서둘러 준비하고 지알이도 준비했었죠. 영인이 외고 나와서 원래 영어 잘합니다.;;제가 문제였지요. 유학 준비과정 그쪽 부모님이 우리 부모님 만나뵙자고 합디다. 사실 우리집 저 유학 보낼 형편 안됩니다. 그래도 무리수 두셔서 부모님 지원하셨습니다.

 

결혼 하기로 하고 그집에서 제 비행기값까지 대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유학생활을 할 큰 꿈을 품고 미국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계획 대로라면 이번 여름 영인이 오빠가 결혼하고 우리가 내년 에 결혼할 계획이었죠; 내사랑!! 내사랑!! 내사랑!! 미국에서 공부 하는도중 머리가 너무 아프답니다. 너무 걱정 되었습니다. 글쎄 뇌종양이라네요. ㅠ.ㅠ 하나님 우리 영인이 살려주세요. 기도하고 매달렸습니다.

 

영인이 한국 들어가서 연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감마 나이프 치료받다 강남성모 병원에서 로봇수술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악성 뇌종양 말기로 그녀 이번 여름 한국에서 하늘나라 갔습니다. 저 지금 울고 있어요. 이거 너무 이세상 불공평 하지 않나요? 17년동안 한사람만 사랑했고 결혼할 약혼녀가 갑자기 하늘나라 가면 어떻게 하나요; 왜이렇게 눈물이 안 멈추죠?

 

저 평생 결혼 안할껍니다. 열심히 살다가 좋은일 많이 하고 하늘나라가서 영인이랑 결혼하려구요. 너 몫까지 열심히 살았다라고 당당히 말할겁니다. 내사랑!! 기다리고 있어 열심히 이세상 너 몫까지 살다 갈게.

 

사랑해! 영인아!! 너무 너무!! 무지 무지!! 마구 마구!! 사랑해!!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