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고형사와 자신을 이인겸이라고 말한 그는 가까이 다가섰다. 고형사가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키지 않으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죽었다고 하던데." "이인겸은 죽었다. 그리고 내 이름은 테슈이다." "왜 죽음을 가장했지?" "그건 말할 수 없다." "야쿠자의 일과 관련된 것인가?" "그렇다."
고형사의 눈에 그는 이미 한국인의 모든 것을 버린 것 같았다.
"당신은 그저 단순한 야쿠자는 아닌 것 같더군." "그렇다." "오보로 형사를 그가 죽였다고 했는데 왜 죽였지?" "말할 수 없다." "이봐, 당신은 방금 나에게 부탁을 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많으면 내가 어떻게 당신을 돕는단 말인가?" "............" "그는 지금 어디있지? 그는 도데체 누구인가?" "그의 이름은 히루카. 한국 이름은 전태성. 나의 매형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다."
고형사는 이제서야 의문이 풀렸다. 박형사는 수사 도중 전태성이라는 인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안 그가 박형사를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말한 것처럼 죽일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가 만들어 놓은 밀실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풀릴 듯 풀리지 않던 범인에 대한 의문도 풀리는 순간이었다. 고형사는 계속 질문을 했다.
"왜 그를 일본으로 데려가려고 하지?" "그는 조직을 배신했다. 그리고 그의 스승도 배신했다. 그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이다." "그래서 데려가면? 죽일거 아닌가?" "그건 그분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난 데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가 당신의 죽은 누나를 사랑했나?" "........."
아무리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일본의 야쿠자가 되어 자객차림으로 서 있는 그였지만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자 고형사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깊은 사연이 있음을 알았다.
"테슈라고 했나? 지금 15년 전의 일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는 자신을 스스로 단두대라고 칭하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도데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한가지 약속을 해다오."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지금부터 들려주는 얘기를 무덤까지 가져가기 바란다. 당신을 믿겠다." "어떻게 믿지? 난 경찰이다. 지금도 당신에게 수갑을 채워야 하는 입장인데." "후후..... 눈빛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가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고만 보지 않고 그가 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사실 당신도 그가 하는 일에 대해 통쾌함을 느끼고 있지 않는가?"
고형사는 무어라 말을 해야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동안 살해당한 피해자의 과거를 보면서 일말의 동정심도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단두대라는 자를 마음 깊은 곳에서 동경하고 있는 자신을 가끔 발견하곤 했던 것이다. 테슈는 얼굴의 두건을 풀며 그 자리에 풀석 앉았다. 두건 때문에 잘 볼 수 없었지만 그는 한 쪽 눈이 실명된 듯 눈동자가 회색을 띠고 있었다. 그가 긴 얘기를 하려는 것을 안 고형사도 좀 더 다가가 맞은 편에 앉았다.
"그는 약속을 지키려 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녀와의 약속인가?" "그렇다."
테슈라는 자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눈을 천천히 뜬 그는 깊은 회상에 잠긴 듯한 눈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태성오빠."
한참 작업을 하던 태성은 익숙한 목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왜 왔어." "피........ 지금 바빠?" "응. 조금 밀렸는데." "잠깐이면 돼. 앞에서 기다릴테니까 빨랑 와."
태성은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에 젖었다. 아직 18살 밖에 안되기에 당장 결혼을 할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 2년만 더 기다렸다가 꼭 그녀와 결혼 할 꿈을 갖고 있었다. 그때를 위해서 그는 힘든 줄도 모르고 공장에서 야근가지 해가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그는 그녀보다 4살이나 많았고 남자로서 느끼는 여성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그녀 앞에만 서면 그저 순진한 송아지처럼 눈만 꿈뻑거리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사실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고아원에서 큰 오빠처럼 따르던 그녀도 나이가 들면서 그에게 사랑을 느꼈고 나중에 꼭 그에게 시집간다는 말을 동생에게만 하곤 했다.
태성은 기뻤다. 이제 하루에 한 번씩 야근 전의 시간에 뛰어가서 보던 그녀를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벌어지려는 입을 억지로 닫으며 말했다.
"야, 여기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알아." "네가 할 수 있어?" "그럼. 내가 누군데. 고아원에서도 그 많은 빨래 내가 다 한거 몰라? 특히 오빠것이 젤 많았다구. 맨날 쌈박질이나 했잖아." "아, 그거야.... 그자식들이....."
태성은 누구든 고아원 아이들을 괴롭히는 녀석이 있으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단숨에 달려가서 담판을 짓고 돌아왔다. 덕분에 하루가 멀다하고 옷이 더러워지는 바람에 그녀의 잔소릴 들었었다.
"어이구.... 이제 철이 들어서 다행이지. 오늘은 야근하지 말고 일찍 와. 오빠 좋아하는 두부찌게 해줄게. 아까 두부공장 사모님이 두부 많이 줬거든." "너, 또 그 집 가서 청소했구나." "뭐 어때. 그거 금방 한다구 나는....."
그는 그런 그녀를 보며 부모에게 버림 받은 자신에게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태성이 야근을 하면 그녀도 야근을 같이 했다가 같이 집으로 왔고 그녀가 졸라대면 같이 야근을 하지 않고 일찍 집에 와서는 낡은 테레비를 같이 보며 행복에 젖었다. 낡은 월세방에 셋이서 같이 살았다. 원래 고아원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약간의 지원금을 주며 따로 독립을 시킨다. 하지만 그녀는 고아원에서 나오면서 혼자 나오지 않았다. 그녀에겐 남동생이 있었는데 친구도 없이 오로지 공부만 하며 보내는 순진한 아이였다. 언제나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누나가 가끔 벌어오는 파출부 일당만으로 충분히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태성은 받은 월급을 언제나 그녀에게 맡겼다. 하지만 그녀는 그 돈을 쓰지 않았다. 그가 왜 자신에게 월급을 꼬박고박 갖다 주는지 알기 때문이다. 통장에 늘어나는 숫자들이 그들의 행복을 무럭무럭 키워가고 있는 가난하지만 꿈이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채 5개월이 지나기 전에 그 꿈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어느날, 그녀가 조금 이상해진 것을 안 태성은 몸이 아프다며 집에서 쉬겠다고 하고는 그녀 혼자 출근하게 했다. 얼마 전부터 주변의 동료들이 그녀가 점심시간에 사장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는 그냥 심부름이라도 하겠거니 하며 무시했었다. 하지만 조금씩 얼굴에 근심이 보이더니 언제부턴가는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그녀를 발견하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그는 거짓말로 그녀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사장의 집 주변에서 기다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서 골목 모퉁이에 몸을 숨긴 그의 눈에 그녀가 사장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온 몸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도 너무 소중해서 입맛춤조차 함부로 하지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럴 리가 없다고 마음을 고치려 했지만 그녀가 주위를 살피며 들어가는 모습은 그를 더욱 불안한 상상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는 담을 넘어 사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가 조용히 현과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와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허허. 이거 왜 이래? 이제 너도 맛을 봤으니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그리고 내 덕분에 네 동생도 사립학교로 전학까지 시켰잖니." "하지만...." "괜찮아. 나만 믿으면 돼." "한 번 뿐이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벌써...."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태성은 문 앞에 서서 주먹에 힘을 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그 사장의 얼굴을 으깨놓고 싶었다.
"글세, 더 이상은 안돼요. 오빠가 알면 전..... 전......." "그런 가난한 놈 잊어버리고 내가 방 잡아줄테니 거기서 생활해라. 아니, 아파트가 좋겠군. 그래야 동생도 편하게 공부할 거 아니냐." "싫어요. 더 이상은..... " "이리 와!" "싫어요." "아니, 이년이......" '철썩' "꺅!"
그녀의 비명이 들리더니 방안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고 곧 이어 그녀가 얼굴을 손으로 가린채 뛰어나왔다. 사장의 손에서 도망친 그녀는 급하게 뛰어가다 태성의 가슴에 부딪히고 말았다.
"헉! 오... 오..... 오빠...아......."
그녀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코에선 코피를 쏟고 있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태성을 바라보던 그녀는 스르르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장을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넌 뭐야? 아하, 그년의 애인이구만. 당장 그년 데리고 나가." "죽여버린다." "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태성은 온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사장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뒤에서 뛰어들어온 경찰들에 의해 붙잡히고 말았다. 그가 사장의 집 담을 넘는 것을 보고 동네사람이 신고를 한 것이다.
"놔! 놔! 놓으란 말야!" "꼼짝마!" "오, 역시 대한민국 경찰이구만. 그 년놈이 글쎄 백주대낮에 도둑질을 하려고 했습니다. 어서 잡아가십시오."
태성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녀는 몸까지 판 도둑년이라는 누명을 쓰고 공장에서 쫒겨났다. 그 이후로도 사장은 그녀의 집까지 찾아와서는 폭행을 일삼았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하고 말았다. 감옥에 있는 그에게 찾아간 것은 그녀의 동생이었다.
"형......" "누나는?" "............" "왜 말을 못하니? 누나한테 무슨 일 생겼어?"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
인겸의 얼굴을 자세히 본 태성은 그들 사이를 막고 있는 유리창을 세게 쳤다. 교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동생은 얼굴에 얻어맞은 흔적이 있었고 그것을 본 그는 탈옥할 결심을 했다.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사장은 자기 대신 사람들을 시켜서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한 밤중에 괴한들이 들이닥쳐서 그녀의 동생을 묶어놓고는 그 앞에서 그녀를 발가벗기고 협박하며 짓밟았다. 그녀는 그렇게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밤에 들이닥친 괴한들은 사람들이 일하러 나가고 없는 낮에도 그녀를 찾아갔다.
그날도 그들이 막 그녀의 옷을 찢으려고 하는 찰나에 누군가 방 문을 벌컥 열었다. 태성이 문을 열자 그 광경이 눈에 들어왔고 바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한 놈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치도록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바로 수없이 많은 발과 손이 날아와 그의 온 몸을 부셨다.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차가운 감방 안에서 그는 매일같이 그녀를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며 매일같이 독방의 한쪽 벽을 주먹으로 치며 원통함에 울부짖었다. 그러다 그는 독방에서 나온 후에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일본 야쿠자의 한국지부원으로 활동하다 조직의 명령으로 거짓자수를 하고 들어왔다는 독패라는 자는 그를 맘에 든다며 가까이 했고 화장실에서 만나 싸움기술을 가르쳤다. 그렇게 7개월의 시간이 흐른 즈음에 그녀의 동생이 그를 찾아왔다. 심하게 부은 얼굴에 안대까지 한 그녀의 동생은 그를 보자 오열을 쏟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그는 독패와 함께 탈옥을 감행하였고 그 와중에 간수 두명을 맨손으로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의 발길을 조금도 머뭇거리게 조차 하지 못했다. 오직 그녈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밤새도록 달리고 차를 훔치며 그녀를 찾았지만 이미 이사를 가고 없었다.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는 그는 독패의 도움으로 바로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냈고 찾아갔지만 오히려 보지 않는 것이 나을뻔했다.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방 안에 누워 있었고 그녀의 동생인 인겸은 한쪽 눈을 실명한 채 누나의 발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는 사장을 죽이기 위해 찾아가려 했지만 독패가 지금은 때가 아니니 나중을 기약하라며 만류를 했다.
그날 밤, 그가 그녀를 한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눈을 뜬 그녀는 옛날 같이 먹던 순대가 먹고 싶다고 했고 그가 순대를 겨우 사왔을 때 그녀의 몸은 이미 불러버린 배에 비해 너무 가는 목에 줄이 감긴체 천장에 메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인겸이 누나의 두 다리를 붙잡고는 위로 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태성이 얼른 달려들어 그녀를 내리자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그녀를 안은 그에게 그녀가 힘겹게 눈을 뜨며 겨우 입을 움직였다.
"오...... 빠아........"
이제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는지 그녀의 눈은 처절한 비명소리만 담겨있을 뿐 마른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말도 다 하지 못한 채 숨을 멈추었다.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그는 그녀의 눈을 감겨주며 북받쳐 오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절규를 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녀를 그 곳에 놓아둔 채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경찰들이 알고 그를 잡기 위해 오고 있다며 독패가 달려왔기 때문이다. 독패는 그를 억지로 끌고 가려고 했고 그는 인화의 싸늘해지는 모습을 보며 마지막 말을 눈물속에 남겼다.
"약속한다. 내가 약속한다. 약속한다."
그는 그날 밤 독패의 권유로 일본으로 가는 무역선의 짐칸에 몸을 숨겼다. 탈옥을 하면서 간수를 두명이나 죽였기 때문에 다시 잡히게 되면 사형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진까지 벽마다 붙으며 수배가 내려진 상태에서는 독패가 계획한 대로 그를 조직원으로 써먹을수가 없기에 하는 수 없이 일본의 조직에 합류를 시켰다가 나중에 부를 계획을 세운 것이다. 독패는 다시 경찰에 자수를 하였고 모든 것은 전태성이라는 자가 시켜서 한 것이라는 거짓 자백을 했다. 그리고 정상참작이 된 그는 몇 년 후에 처음 받은 형기보다 훨씬 빨리 풀려나게 되었다.
독패의 소개장을 들고 간 태성은 일본 야쿠자의 조직에 바로 받아들여졌다. 약간의 실력테스트가 있었지만 독패로부터 배운 기술을 인정받아 행동대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사람을 시켜 인겸을 일본으로 데리고 왔다. 태성과 아직 어린 인겸은 그렇게 일본 야쿠자의 조직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태성은 맡은 일마다 완벽하게 해결했다. 특히 잔인한 임무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처리했다. 그의 머리속에서는 비참하게 죽어간 인화와 그녈 그렇게 만든 사장에 대한 분노가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던 조직의 보스는 그를 특수조직으로 합류시켰다. 그 조직은 상대파의 움직임을 견재하기 위해 조직의 이름을 숨기고 활동하는 조직이었다. 그 조직 안에서 그는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닌자가문의 후계자로부터 지독한 특수훈련을 받게 된다. 뽑힌 조직원들끼리는 밤에 서로 목숨을 노리기 위해 칼부림을 일삼았다. 그 조직원들 중 절반이 남으면 그때 비로소 인정을 받고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이 훈련받던 동료의 목에 칼을 꽂으며 그는 살아남았다. 오로지 복수를 하기 위한 일념으로 악마가 되기를 스스로 다짐한 그는 참혹한 훈련이 끝나는 날부터 조직의 선두에 서서 주변의 크고 작은 반대세력들을 짓밟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날 태성은 종적을 감추었다. 자신을 가르친 스승에게 죄송하다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긴체.
긴 이야기를 마치며 한숨을 쉰 테슈는 다시 얼굴에 두건을 썼다.
"그렇다면 전태성이라는 자가 죽은 이인화라는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으나 지켜주지 못한 여인을 위해 세상을 정화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방법은 썩은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과연 그럴까." "무슨 소리지?"
테슈는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몇 명 죽지도 않았는데 벌써 고위 공직자와 연결된 기업체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 로비에 의해 진행되던 국가공사들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고 있고 몇 명의 인사들은 벌써 외국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미 사직서까지 제출하려고 하더군. 그것들은 어떻게 보나." "..........."
고형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이들의 정보력에 혀를 내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를 왜 꼭 데려가려고 하지?" "조직의 원칙이다. 배신자는 우리의 손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럼 죽이면 되겠군. 왜 굳이 데려가려고 하지?" "그 분의 부탁이 있었다." "그 분이란 데체 누군가?" "그에게 무술을 가르친 스승이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이미 청소부를 보냈다. 만일 그들이 먼저 그를 잡는다면 그는 시체도 남기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 분께서는 그걸 원치 않으신다." "청소부?" "나도 청소부의 일원이다."
고형사는 모든 것이 이해가 갔지만 아직 궁금한 것이 있었다.
"당신은 어째서 단두대 그자를 따르지 않았나?" "나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어째서 죽음을 위장했지? 그에게는 알릴 수 있는 문제 아닌가?" "배신자를 처리하는 청소부는 전부 죽은 사람들이다. 그 사실은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도 죽게 된다. 내가 청소부로 발탁된 이상 그가 나의 생존을 알게 된다면 그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는 몰랐지만 나 또한 그와 같은 시기에 암살조직으로 발탁되어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그러다 배신자가 속출하자 그쪽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스승이라는 자의 부탁으로 혼자 그를 데려가기 위해 온 거라 이건가?" "그렇다." "그는 가지 않으려고 할텐데." "그는 계획한 일을 끝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자살 또한 조직의 허락 없이 해서는 안된다." "무슨 종교단체 같구만."
그 말에 테슈는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분은 벌써 그 때문에 스스로 오른팔을 잘랐다. 마지막이 오기 전에 그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다."
고형사는 테슈의 얼굴을 보며 개인적으로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당신은 누나의 복수를 하고 싶지 않았나?" "난 이제 조직의 일부일 뿐이다. 지난 일에 얶메여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럼 그 친구만 고생하고 있구만 그래. 나한테 전부 말해주는 이유는 뭐지?" "당신을 믿는다. 그리고 당신이라면 그를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죽여서는 안된다." "상대는 벌써 여러명을 죽였다. 난 경찰이고. 불가피하다면 총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텐데." "난 할 말은 다 했다. 그리고....."
그는 작은 주머니를 고형사에게 건네주었다.
"해독제다. 그를 만나면 꼭 전해주기 바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서는 문 쪽으로 다가가더니 무슨 낌새를 느끼고는 바로 문 옆에 바싹 붙어 섰다. 그가 문을 갑자기 열자 손에 쇠파이프를 든 쌍칼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하지만 테슈가 옆에서 달려들며 주먹을 몇 차레 날렸고 부하 중 몇 놈이 쓰러지는 사이에 그들의 몸을 밟고는 재빠르게 달려나갔다. 밖에서는 쌍칼이 발악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 잠잠해졌다. 이들의 실력으로 그를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단두대 <11>
잠시 후 고형사와 자신을 이인겸이라고 말한 그는 가까이 다가섰다.
고형사가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키지 않으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죽었다고 하던데."
"이인겸은 죽었다. 그리고 내 이름은 테슈이다."
"왜 죽음을 가장했지?"
"그건 말할 수 없다."
"야쿠자의 일과 관련된 것인가?"
"그렇다."
고형사의 눈에 그는 이미 한국인의 모든 것을 버린 것 같았다.
"당신은 그저 단순한 야쿠자는 아닌 것 같더군."
"그렇다."
"오보로 형사를 그가 죽였다고 했는데 왜 죽였지?"
"말할 수 없다."
"이봐, 당신은 방금 나에게 부탁을 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많으면 내가 어떻게 당신을 돕는단 말인가?"
"............"
"그는 지금 어디있지? 그는 도데체 누구인가?"
"그의 이름은 히루카. 한국 이름은 전태성. 나의 매형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다."
고형사는 이제서야 의문이 풀렸다.
박형사는 수사 도중 전태성이라는 인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안 그가 박형사를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말한 것처럼 죽일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가 만들어 놓은 밀실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풀릴 듯 풀리지 않던 범인에 대한 의문도 풀리는 순간이었다.
고형사는 계속 질문을 했다.
"왜 그를 일본으로 데려가려고 하지?"
"그는 조직을 배신했다. 그리고 그의 스승도 배신했다. 그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이다."
"그래서 데려가면? 죽일거 아닌가?"
"그건 그분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난 데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가 당신의 죽은 누나를 사랑했나?"
"........."
아무리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일본의 야쿠자가 되어 자객차림으로 서 있는 그였지만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자 고형사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깊은 사연이 있음을 알았다.
"테슈라고 했나? 지금 15년 전의 일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는 자신을 스스로 단두대라고 칭하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도데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한가지 약속을 해다오."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지금부터 들려주는 얘기를 무덤까지 가져가기 바란다. 당신을 믿겠다."
"어떻게 믿지? 난 경찰이다. 지금도 당신에게 수갑을 채워야 하는 입장인데."
"후후..... 눈빛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가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고만 보지 않고 그가 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사실 당신도 그가 하는 일에 대해 통쾌함을 느끼고 있지 않는가?"
고형사는 무어라 말을 해야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동안 살해당한 피해자의 과거를 보면서 일말의 동정심도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단두대라는 자를 마음 깊은 곳에서 동경하고 있는 자신을 가끔 발견하곤 했던 것이다.
테슈는 얼굴의 두건을 풀며 그 자리에 풀석 앉았다.
두건 때문에 잘 볼 수 없었지만 그는 한 쪽 눈이 실명된 듯 눈동자가 회색을 띠고 있었다.
그가 긴 얘기를 하려는 것을 안 고형사도 좀 더 다가가 맞은 편에 앉았다.
"그는 약속을 지키려 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녀와의 약속인가?"
"그렇다."
테슈라는 자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눈을 천천히 뜬 그는 깊은 회상에 잠긴 듯한 눈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태성오빠."
한참 작업을 하던 태성은 익숙한 목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왜 왔어."
"피........ 지금 바빠?"
"응. 조금 밀렸는데."
"잠깐이면 돼. 앞에서 기다릴테니까 빨랑 와."
태성은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에 젖었다.
아직 18살 밖에 안되기에 당장 결혼을 할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 2년만 더 기다렸다가 꼭 그녀와 결혼 할 꿈을 갖고 있었다.
그때를 위해서 그는 힘든 줄도 모르고 공장에서 야근가지 해가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그는 그녀보다 4살이나 많았고 남자로서 느끼는 여성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그녀 앞에만 서면 그저 순진한 송아지처럼 눈만 꿈뻑거리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사실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고아원에서 큰 오빠처럼 따르던 그녀도 나이가 들면서 그에게 사랑을 느꼈고 나중에 꼭 그에게 시집간다는 말을 동생에게만 하곤 했다.
"왜 불렀어."
"나 내일부터 하루종일 오빠 옆에 있을거야."
"뭐? 너 제정신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나 여기에 취직했어."
"엉? 언제?"
"방금 면접 봤는데 내일부터 나오래."
태성은 기뻤다.
이제 하루에 한 번씩 야근 전의 시간에 뛰어가서 보던 그녀를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벌어지려는 입을 억지로 닫으며 말했다.
"야, 여기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알아."
"네가 할 수 있어?"
"그럼. 내가 누군데. 고아원에서도 그 많은 빨래 내가 다 한거 몰라? 특히 오빠것이 젤 많았다구. 맨날 쌈박질이나 했잖아."
"아, 그거야.... 그자식들이....."
태성은 누구든 고아원 아이들을 괴롭히는 녀석이 있으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단숨에 달려가서 담판을 짓고 돌아왔다.
덕분에 하루가 멀다하고 옷이 더러워지는 바람에 그녀의 잔소릴 들었었다.
"어이구.... 이제 철이 들어서 다행이지. 오늘은 야근하지 말고 일찍 와. 오빠 좋아하는 두부찌게 해줄게. 아까 두부공장 사모님이 두부 많이 줬거든."
"너, 또 그 집 가서 청소했구나."
"뭐 어때. 그거 금방 한다구 나는....."
그는 그런 그녀를 보며 부모에게 버림 받은 자신에게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태성이 야근을 하면 그녀도 야근을 같이 했다가 같이 집으로 왔고 그녀가 졸라대면 같이 야근을 하지 않고 일찍 집에 와서는 낡은 테레비를 같이 보며 행복에 젖었다.
낡은 월세방에 셋이서 같이 살았다.
원래 고아원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약간의 지원금을 주며 따로 독립을 시킨다.
하지만 그녀는 고아원에서 나오면서 혼자 나오지 않았다.
그녀에겐 남동생이 있었는데 친구도 없이 오로지 공부만 하며 보내는 순진한 아이였다.
언제나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누나가 가끔 벌어오는 파출부 일당만으로 충분히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태성은 받은 월급을 언제나 그녀에게 맡겼다.
하지만 그녀는 그 돈을 쓰지 않았다.
그가 왜 자신에게 월급을 꼬박고박 갖다 주는지 알기 때문이다.
통장에 늘어나는 숫자들이 그들의 행복을 무럭무럭 키워가고 있는 가난하지만 꿈이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채 5개월이 지나기 전에 그 꿈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어느날, 그녀가 조금 이상해진 것을 안 태성은 몸이 아프다며 집에서 쉬겠다고 하고는 그녀 혼자 출근하게 했다.
얼마 전부터 주변의 동료들이 그녀가 점심시간에 사장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는 그냥 심부름이라도 하겠거니 하며 무시했었다.
하지만 조금씩 얼굴에 근심이 보이더니 언제부턴가는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그녀를 발견하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그는 거짓말로 그녀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사장의 집 주변에서 기다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서 골목 모퉁이에 몸을 숨긴 그의 눈에 그녀가 사장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온 몸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도 너무 소중해서 입맛춤조차 함부로 하지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럴 리가 없다고 마음을 고치려 했지만 그녀가 주위를 살피며 들어가는 모습은 그를 더욱 불안한 상상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는 담을 넘어 사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가 조용히 현과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와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허허. 이거 왜 이래? 이제 너도 맛을 봤으니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그리고 내 덕분에 네 동생도 사립학교로 전학까지 시켰잖니."
"하지만...."
"괜찮아. 나만 믿으면 돼."
"한 번 뿐이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벌써...."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태성은 문 앞에 서서 주먹에 힘을 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그 사장의 얼굴을 으깨놓고 싶었다.
"글세, 더 이상은 안돼요. 오빠가 알면 전..... 전......."
"그런 가난한 놈 잊어버리고 내가 방 잡아줄테니 거기서 생활해라. 아니, 아파트가 좋겠군. 그래야 동생도 편하게 공부할 거 아니냐."
"싫어요. 더 이상은..... "
"이리 와!"
"싫어요."
"아니, 이년이......"
'철썩'
"꺅!"
그녀의 비명이 들리더니 방안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고 곧 이어 그녀가 얼굴을 손으로 가린채 뛰어나왔다.
사장의 손에서 도망친 그녀는 급하게 뛰어가다 태성의 가슴에 부딪히고 말았다.
"헉! 오... 오..... 오빠...아......."
그녀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코에선 코피를 쏟고 있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태성을 바라보던 그녀는 스르르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장을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넌 뭐야? 아하, 그년의 애인이구만. 당장 그년 데리고 나가."
"죽여버린다."
"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태성은 온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사장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뒤에서 뛰어들어온 경찰들에 의해 붙잡히고 말았다.
그가 사장의 집 담을 넘는 것을 보고 동네사람이 신고를 한 것이다.
"놔! 놔! 놓으란 말야!"
"꼼짝마!"
"오, 역시 대한민국 경찰이구만. 그 년놈이 글쎄 백주대낮에 도둑질을 하려고 했습니다. 어서 잡아가십시오."
태성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녀는 몸까지 판 도둑년이라는 누명을 쓰고 공장에서 쫒겨났다.
그 이후로도 사장은 그녀의 집까지 찾아와서는 폭행을 일삼았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하고 말았다.
감옥에 있는 그에게 찾아간 것은 그녀의 동생이었다.
"형......"
"누나는?"
"............"
"왜 말을 못하니? 누나한테 무슨 일 생겼어?"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
인겸의 얼굴을 자세히 본 태성은 그들 사이를 막고 있는 유리창을 세게 쳤다.
교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동생은 얼굴에 얻어맞은 흔적이 있었고 그것을 본 그는 탈옥할 결심을 했다.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사장은 자기 대신 사람들을 시켜서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한 밤중에 괴한들이 들이닥쳐서 그녀의 동생을 묶어놓고는 그 앞에서 그녀를 발가벗기고 협박하며 짓밟았다.
그녀는 그렇게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밤에 들이닥친 괴한들은 사람들이 일하러 나가고 없는 낮에도 그녀를 찾아갔다.
그날도 그들이 막 그녀의 옷을 찢으려고 하는 찰나에 누군가 방 문을 벌컥 열었다.
태성이 문을 열자 그 광경이 눈에 들어왔고 바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한 놈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치도록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바로 수없이 많은 발과 손이 날아와 그의 온 몸을 부셨다.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차가운 감방 안에서 그는 매일같이 그녀를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며 매일같이 독방의 한쪽 벽을 주먹으로 치며 원통함에 울부짖었다.
그러다 그는 독방에서 나온 후에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일본 야쿠자의 한국지부원으로 활동하다 조직의 명령으로 거짓자수를 하고 들어왔다는 독패라는 자는 그를 맘에 든다며 가까이 했고 화장실에서 만나 싸움기술을 가르쳤다.
그렇게 7개월의 시간이 흐른 즈음에 그녀의 동생이 그를 찾아왔다.
심하게 부은 얼굴에 안대까지 한 그녀의 동생은 그를 보자 오열을 쏟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그는 독패와 함께 탈옥을 감행하였고 그 와중에 간수 두명을 맨손으로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의 발길을 조금도 머뭇거리게 조차 하지 못했다.
오직 그녈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밤새도록 달리고 차를 훔치며 그녀를 찾았지만 이미 이사를 가고 없었다.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는 그는 독패의 도움으로 바로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냈고 찾아갔지만 오히려 보지 않는 것이 나을뻔했다.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방 안에 누워 있었고 그녀의 동생인 인겸은 한쪽 눈을 실명한 채 누나의 발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는 사장을 죽이기 위해 찾아가려 했지만 독패가 지금은 때가 아니니 나중을 기약하라며 만류를 했다.
그날 밤, 그가 그녀를 한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눈을 뜬 그녀는 옛날 같이 먹던 순대가 먹고 싶다고 했고 그가 순대를 겨우 사왔을 때 그녀의 몸은 이미 불러버린 배에 비해 너무 가는 목에 줄이 감긴체 천장에 메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인겸이 누나의 두 다리를 붙잡고는 위로 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태성이 얼른 달려들어 그녀를 내리자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그녀를 안은 그에게 그녀가 힘겹게 눈을 뜨며 겨우 입을 움직였다.
"오...... 빠아........"
이제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는지 그녀의 눈은 처절한 비명소리만 담겨있을 뿐 마른채 흐느끼고 있었다.
"인화야..... 크윽...... 조금만 기다려...... 금방 병원에........"
"오빠아......"
그녀는 바싹 말라버린 입술로 오빠를 부르며 옅은 웃음을 띠었다.
"그래..... 말하지 마라. 이제 다시 시작하면 돼. 아무 걱정 말아라. 내가 지켜줄게."
그의 눈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그녀의 갈라진 입술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약....속...해........."
"그래, 약속하마. 무엇이든 약속하마. 으으......"
"다시.... 태어나면........ 이런......세상말구..... "
그녀는 마지막 말도 다 하지 못한 채 숨을 멈추었다.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그는 그녀의 눈을 감겨주며 북받쳐 오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절규를 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녀를 그 곳에 놓아둔 채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경찰들이 알고 그를 잡기 위해 오고 있다며 독패가 달려왔기 때문이다.
독패는 그를 억지로 끌고 가려고 했고 그는 인화의 싸늘해지는 모습을 보며 마지막 말을 눈물속에 남겼다.
"약속한다. 내가 약속한다. 약속한다."
그는 그날 밤 독패의 권유로 일본으로 가는 무역선의 짐칸에 몸을 숨겼다.
탈옥을 하면서 간수를 두명이나 죽였기 때문에 다시 잡히게 되면 사형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진까지 벽마다 붙으며 수배가 내려진 상태에서는 독패가 계획한 대로 그를 조직원으로 써먹을수가 없기에 하는 수 없이 일본의 조직에 합류를 시켰다가 나중에 부를 계획을 세운 것이다.
독패는 다시 경찰에 자수를 하였고 모든 것은 전태성이라는 자가 시켜서 한 것이라는 거짓 자백을 했다. 그리고 정상참작이 된 그는 몇 년 후에 처음 받은 형기보다 훨씬 빨리 풀려나게 되었다.
독패의 소개장을 들고 간 태성은 일본 야쿠자의 조직에 바로 받아들여졌다.
약간의 실력테스트가 있었지만 독패로부터 배운 기술을 인정받아 행동대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사람을 시켜 인겸을 일본으로 데리고 왔다.
태성과 아직 어린 인겸은 그렇게 일본 야쿠자의 조직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태성은 맡은 일마다 완벽하게 해결했다.
특히 잔인한 임무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처리했다.
그의 머리속에서는 비참하게 죽어간 인화와 그녈 그렇게 만든 사장에 대한 분노가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던 조직의 보스는 그를 특수조직으로 합류시켰다.
그 조직은 상대파의 움직임을 견재하기 위해 조직의 이름을 숨기고 활동하는 조직이었다.
그 조직 안에서 그는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닌자가문의 후계자로부터 지독한 특수훈련을 받게 된다.
뽑힌 조직원들끼리는 밤에 서로 목숨을 노리기 위해 칼부림을 일삼았다.
그 조직원들 중 절반이 남으면 그때 비로소 인정을 받고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이 훈련받던 동료의 목에 칼을 꽂으며 그는 살아남았다.
오로지 복수를 하기 위한 일념으로 악마가 되기를 스스로 다짐한 그는 참혹한 훈련이 끝나는 날부터 조직의 선두에 서서 주변의 크고 작은 반대세력들을 짓밟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날 태성은 종적을 감추었다.
자신을 가르친 스승에게 죄송하다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긴체.
긴 이야기를 마치며 한숨을 쉰 테슈는 다시 얼굴에 두건을 썼다.
"그렇다면 전태성이라는 자가 죽은 이인화라는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으나 지켜주지 못한 여인을 위해 세상을 정화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방법은 썩은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과연 그럴까."
"무슨 소리지?"
테슈는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몇 명 죽지도 않았는데 벌써 고위 공직자와 연결된 기업체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 로비에 의해 진행되던 국가공사들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고 있고 몇 명의 인사들은 벌써 외국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미 사직서까지 제출하려고 하더군. 그것들은 어떻게 보나."
"..........."
고형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이들의 정보력에 혀를 내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를 왜 꼭 데려가려고 하지?"
"조직의 원칙이다. 배신자는 우리의 손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럼 죽이면 되겠군. 왜 굳이 데려가려고 하지?"
"그 분의 부탁이 있었다."
"그 분이란 데체 누군가?"
"그에게 무술을 가르친 스승이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이미 청소부를 보냈다. 만일 그들이 먼저 그를 잡는다면 그는 시체도 남기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 분께서는 그걸 원치 않으신다."
"청소부?"
"나도 청소부의 일원이다."
고형사는 모든 것이 이해가 갔지만 아직 궁금한 것이 있었다.
"당신은 어째서 단두대 그자를 따르지 않았나?"
"나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어째서 죽음을 위장했지? 그에게는 알릴 수 있는 문제 아닌가?"
"배신자를 처리하는 청소부는 전부 죽은 사람들이다. 그 사실은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도 죽게 된다. 내가 청소부로 발탁된 이상 그가 나의 생존을 알게 된다면 그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는 몰랐지만 나 또한 그와 같은 시기에 암살조직으로 발탁되어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그러다 배신자가 속출하자 그쪽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스승이라는 자의 부탁으로 혼자 그를 데려가기 위해 온 거라 이건가?"
"그렇다."
"그는 가지 않으려고 할텐데."
"그는 계획한 일을 끝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자살 또한 조직의 허락 없이 해서는 안된다."
"무슨 종교단체 같구만."
그 말에 테슈는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분은 벌써 그 때문에 스스로 오른팔을 잘랐다. 마지막이 오기 전에 그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다."
고형사는 테슈의 얼굴을 보며 개인적으로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당신은 누나의 복수를 하고 싶지 않았나?"
"난 이제 조직의 일부일 뿐이다. 지난 일에 얶메여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럼 그 친구만 고생하고 있구만 그래. 나한테 전부 말해주는 이유는 뭐지?"
"당신을 믿는다. 그리고 당신이라면 그를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죽여서는 안된다."
"상대는 벌써 여러명을 죽였다. 난 경찰이고. 불가피하다면 총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텐데."
"난 할 말은 다 했다. 그리고....."
그는 작은 주머니를 고형사에게 건네주었다.
"해독제다. 그를 만나면 꼭 전해주기 바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서는 문 쪽으로 다가가더니 무슨 낌새를 느끼고는 바로 문 옆에 바싹 붙어 섰다.
그가 문을 갑자기 열자 손에 쇠파이프를 든 쌍칼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하지만 테슈가 옆에서 달려들며 주먹을 몇 차레 날렸고 부하 중 몇 놈이 쓰러지는 사이에 그들의 몸을 밟고는 재빠르게 달려나갔다.
밖에서는 쌍칼이 발악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 잠잠해졌다.
이들의 실력으로 그를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