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 <13>

사나토스200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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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어느새 기울어가고 있었다.
박의원은 유언대로 노을이 잘 보이는 서울 근교의 작은 야산에 묻혔다.
고형사는 박의원 딸의 진술을 듣기 위해 묘지를 찾았다.
급하게 만들어진 무덤은 아직 뻘건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그 앞에는 박성희가 검은 옷을 입은 채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고형사가 다가가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오셨죠?"
"그 분께선 이미 각오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요? 그러니 당연한 죽임을 당했다는 겁니까?"
"........."
"아빠가 저지른 잘못은 저를 낳은 여자 때문에 생긴 일이지 절대 아빠의 잘못이 아니란 말예요."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얼마 살지도 못하시는 분을....... 흑흑...."

 

그녀는 또 다시 오열하며 울음을 터트렸고 고형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각오한 그의 의연한 모습도 단두대의 칼날을 피하진 못했다.
고형사는 엄청난 후회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제 해독제를 건네주지 않았다면 박의원은 그의 말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죄값을 치르기 위해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단두대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성희는 한참을 울었다.
자신을 구실로 아빠에게서 돈을 뜯어낸 엄마를 그녀는 용서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빠를 찾아갔다.
그리고 하던 운동을 포기하고 아빠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대학까지 졸업했다.
그녀는 아빠를 아빠 이상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왜 그가 죽어야만 했는지,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더욱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울던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곤 고형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계셨나요?"
"........."
"저한테 물어볼 것이 있으시겠죠?"
"그렇습니다."
"저도 당신한테 물어볼 것이 있어요."
"........."

 

그녀가 알 리는 없지만 단두대의 목숨을 살려 준 것이 자신이냐는 질문을 할 것만 같았다.

 

"범인을 잡을 수 있나요?"

 

고형사는 머뭇거렸다.
혼란이 왔다.
난 정말 그를 잡기를 바라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 이 세상이 그가 바라는 것으로 바뀌기를 바라고 있는가?

 

"자신이 없으신가요?"
"모르겠습니다."

 

성희는 작게 접어진 종이를 그에게 펼쳐 보여주었다.
그것은 박충호 의원이 고형사의 방문 이후 작성한 딸에게만 남기는 유언장이었다.
그리고 편지도 있었다.
편지를 읽어내려가던 그는 온 몸의 힘이 빠져 나가는 듯 했다.

 


사랑하는 딸 성희 보아라.
먼저 이 말을 꼭 하고 싶구나.  널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널 낳아주신 여인도 사랑한다.
네가 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한순간이었지만 나와 네 엄마가 진심으로 사랑을 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더욱 널 이 세상에 나오게 해 준 네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다.
그녀는 힘들었겠지만 널 포기하지 않고 낳았으니까.
이제 나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나.
병이 먼저일지 단두대라는 저승사자가 먼저일지 그것만이 이제와서 궁금하구나.
난 이유야 어찌 되었든 큰 죄를 지었다.
수많은 생명이 나의 이기적인 욕심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국민의 믿음을 먹고 살아야 하는 내가 그 믿음을 저버리고 말았구나.
날 죽인 사람을 원망하지 말거라.
모든 것을 잊고 잘 살아갔으면 하는 마지막 소원을 말하고 싶구나.
그저 물이 흐르듯 모든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난 그자에 의해 죽는 것이 아니라 그자 덕분에 무거운 죄를 조금이나마 더는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가볍구나.
행복하거라. 사랑한다. 언제나 널 지켜보마.


편지를 다시 접어 성희에게 건네준 고형사는 고개를 들어 무덤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가 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바로 성희의 당찬 목소리가 고형사의 시선을 잡았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달라요."
"복수를 하고 싶은 겁니까?"
"물론이죠. 그리고 그 복수는 당신이 해 주셔야 하겠죠."
"제가 그자를 죽이기를 바라십니까?"
"어차피 사형 아닌가요?"
"잡힌다면......"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것 처럼 들리는군요."

 

그러면서 그녀는 그에게 경찰서로 돌아가서 얘기하자는 말을 먼저 했다.

 

단두대는 다시 고형사의 집을 찾았다.
아직 낮이었기에 택배직원으로 위장한 그는 그의 집에 들어서자 바닥에 풀석 쓰러지고 말았다.
아직 독이 체내에 남아 그의 의식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그는 힘들게 자세를 잡고는 호흡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처치한 박충호라는 자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가 박충호의 집 근처에서 주위를 살펴볼 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경호원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사전에 조사할 때는 분명 9명의 경호원이 보였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집 주위를 돌며 다시 확인했지만 정말 경호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너무도 쉽게 그의 침실까지 들어갔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현관문까지 열려있었다.
만일 경찰의 함정이라면 있던 경호원가지 일부러 치우지는 않을 것이므로 경계는 하지 않았다.

방문은 열려 있었다.
박충호는 잠이 들어 있었고 그 옆에 젊은 여자가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빠를 지키려고 한다는 것도.

그는 조심스럽게 박충호를 깨웠다.
놀라며 일어난 그는 딸이 깨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이며 몸을 일으켰고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데도 웃음을 지었다.

 

"박충호. 당신의 죄는 잘 알겠지."
"기다리고 있었소. 부탁이 있는데 시간을 조금만 주겠소."
"살려달라는 얘긴가?"
"어차피 난 몇 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몸이오. 그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은 힘들겠소?"

 

그때 성희가 잠이 깼다가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몸을 날렸다.
그녀는 박충호의 앞을 가리며 허리춤에서 가스총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발사하기도 전에 쇠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가스총은 그녀의 손을 멀리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본 박충호가 다급하게 말했다.

 

"자, 잠깐!  아이는 살려주시오."
"물론, 당신의 딸을 헤칠 생각은 없다. 얌전히만 있겠다면."
"성희야 나가거라."
"아.... 아빠....... 안돼요. 그럴 수 없어요."
"내가 이 사람과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니 잠시 나가있으렴."
"하지만...."
"내가 이 사람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어서 나가!"

 

딸이 억지로 방에서 나가자 박충호는 얼른 일어서서 나가는 그녀의 주머니에 미리 준비한 쪽지를 넣으며 문을 잠궈버렸다.
그 소리에 성희가 문을 두드렸지만 신경쓰지 않으며 그가 말했다.

 

"내 딸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니 헤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오."
"약속한다."
"고맙소."

안심을 한 그는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 하던 일을 마저 하시오."
"죽음이 두렵지 않나?"
"말하지 않았소. 난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한다고."
"당신은 조금 다르군 그래."
"허허허허. 고맙소. 참,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들어주시겠소?"
"말해보시오."

그가 대답하자 박충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 여식에게 목이 잘린 모습을 보이긴 싫은데..... 안되겠소?"
"그렇게 하겠다."
"하하하하. 내가 그리 복이 없지는 않은가 보군. 그럼 나머지도 얼른 보내주시오. 심심할테니까."
 
문 밖에서는 성희가 문을 두드리며 절규를 하고 있었다.
박충호는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단두대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의 칼날은 뒤집어진 채 빠른 속도로 올려졌다가 내려왔다.
박충호는 아직도 미소를 머금은 체 옆으로 쓰러졌고 단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았다.
그는 박충호의 목을 살펴 약속을 지킨 사실을 확인하고는 유리창으로 몸을 날렸다.
성희가 미친 듯이 전화를 했고 경찰들이 달려왔지만 이미 그는 멀리 사라진 후였다.
경찰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섰을 때, 성희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형사가 돌아올 때까지 의식을 잃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의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는 박충호가 의연한 모습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에게 조용히 목을 내밀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가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경찰서로 돌아온 고형사는 성희의 따가운 눈초리를 계속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아직 그녀는 그에 대한 원망에 얼룩진 표정으로 가끔씩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형사는 가만히 맞은 편에 앉아 그녀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형사와 연숙도 아무 말 없이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연숙은 가방속에 손을 넣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면 바로 버튼을 누를 생각이었다.

 

"아빠는 그가 찾아올 것을 알고 계셨어요."

 

그녀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왜 그러셨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핑계인가요?"
"박의원님을 만나고 나올 때 범인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잡았나요?"

 

비꼬는 말투였다.

 

"아빠는 웃고 계셨어요."
"........"
"아빠는 그를 기다리고 계셨죠. 그가 왔을 때 시간을 달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그자는 바로 아빠를 죽였어요. 그자는 마치 저승사자 같았어요."
"............."
"온 몸이 검은색이더군요. 마치 영화에 나오는 닌자 차림이었어요. 그리고 긴 칼을 들고 있었죠."

 

성희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형사가 수건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 자의 목소리를 분명히 기억합니다. 범인이 누군지는 아시는 건가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잡는 일만 남았네요."
".........."

 

옆에서 김형사가 대신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말처럼 간단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고형사가 잠시 고민을 하는 표정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범인은 꼭 잡습니다. 꼭 잡아서 감옥에 보낼겁니다. 사형을 당하든 말든."


성희가 돌아간 후에 연숙이 미리 준비한 자료를 내밀었다.
지난 밤에 고형사가 부탁한 내용이었다.
잠시 자료를 들여다보던 고형사는 어제 박충호 의원을 만난 다음에 찾아가기로 한 사람의 이름을 찾았다.
예상대로 그의 이름이 있었고 그 밑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이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다.
남성근 전 국회의원의 이름 밑에는 2년 전 발생한 저수지 붕괴사건에 대한 기록이 보였다.
그 사건이 발생하고 이틀 후에 그는 외국으로 출장을 갔고 한 달 후에 돌아왔다.
그가 다녀왔다는 외국출장은 가족들이 전부 따라갔다는 연숙의 기록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 밑에도 다른 이름이 몇 명 더 있었다.
하나같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알만한 사람들이었고 알만한 과거의 사건들이 그 밑에 있었다.

고형사는 함숨을 쉬었다.
도데체 이 중에 누가 먼저 단두대의 다음 목표가 될 것인가.
그리고 그는 언제 움직일 것인가.

고형사는 다시 한번 쌍칼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박을 걸기로 했다.
오랜만에 밝은 햇볕이 유리창을 달구고 있었다.

 

고형사는 쌍칼과 마주 앉아 있었다.
이번엔 김형사와 연숙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쌍칼을 찾은 고형사는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형사님.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음, 있지."
"그 단두댄지 뭔지 하는 녀석을 잡기라도 했습니까?"
"아니. 그건 쌍칼 자네가 할 일이지."

 

쌍칼은 속마음을 들킨 생각에 뜨끔했다.
고형사는 자신에게 건네준 명단에 있는 사람들의 집을 감시해 달라는 부탁만을 받았지 범인을 잡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쌍칼의 생각은 달랐다.
이참에 자신이 그 유명한 연쇄살인범을 잡아서 유명세를 타고 싶은 욕심에 실력있는 부하들을 몇 명의 집 앞에 집중적으로 배치시켜 놓고 있는 중이었다.
그를 잡아서 다리를 분지른 다음에 고형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자신이 경찰서로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부하들한테 위신도 서고 여기저기 신문사나 테레비에 얼굴을 내밀고 유명해지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는 중인데 고형사가 나타나서 그 심중을 알고 있는 듯 말을 하니 뜨끔할 수 밖에........

 

"하하. 형님도 참...... 제가 무슨 범인을 잡습니까? 그거야 형님같은 형사들이 하는 일이지.... 저같은 건달이 무슨....."
"아니, 자네가 잡아줘야 겠어."
"..........."

 

고형사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서 쌍칼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뭡미까?"
"앞으로 단두대가 노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리스트야."

 

쌍칼은 그 종이에 적힌 명단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이 비밀리에 조사해서 부하들을 배치시켜 놓은 집 주인들의 이름과 거의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그럼, 이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면 그자가 나타나겠군요."
"아마도."
"경찰은 안 움직입니까? 벌써 테레비에도 난리가 났던데요."

 

이젠 단두대라는 인물은 전 국민의 우상이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집요한 기자들에 의해 호텔에서 지내기 시작했거나 비밀리에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 인사들의 이름까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높은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바람에 생기는 불상사는 없어질 것이라며 입을 모아 단두대를 영웅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쨌든 연쇄살인범인 것이다.

 

"이번엔 꼭 잡는다. 더 이상 살인을 저지르게 둘 수는 없어."
"그래야죠."
"아마 단두대는 내가 자네한테 이런 일을 부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거야. 하지만 그는 불필요한 살인은 저지르지 않는다. 자네 부하들이 이 사람들의 집과 주변을 철저하게 에워싸고 있으면 그는 순서를 바꿔서라도 우선 노리기 쉬운 목표를 노릴거야."
"그럼....."
"그래,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내가 정했다. 자네와 내가 한사람만 감시를 하는 거지."
"그럼 나타날까요?"
"그에겐 시간이 없어. 서두르기 위해서라도 분명히 움직일거야."
"그럼 형님이 정한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이사람."

 

고형사가 가리키는 이름은 남성근. 박충호 의원을 먼저 만나고 바로 찾아가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쌍칼의 사무실을 나온 그는 바로 김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어디십니까?"
"그것보다는 어서 지원병력 요청해."
"지원병력이요? 무장한 채로요?"
"당연하지. 상대는 연쇄살인범이야. 무장병력을 최대한 지원받아서 지금 내가 말해주는 사람들 주변을 무샐 틈 없이 감시하라고 해."

 

그러면서 그는 남성근을 제외한 나머지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름을 따라 부르면서 받아 적은 김형사가 물었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이렇게 하지 않으셨잖습니까. 바로 기자들이 벌떼같이 덤빌텐데요. 그러면....."
"이젠 방법이 없어."

 

약 두시간 후에 난리가 나고 말았다.
수많은 무장경찰들이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항의전화가 서장에게 직통으로 빗발쳤고 기자들이 벌떼같이 몰려다녔다.
무슨 근거로 단두대라는 자가 자신을 노릴 것이라고 생각하냐며 걸려 온 항의전화는 서장으로 하여금 바로 고형사를 찾게 했지만 고형사는 일부러 연락을 피했다.
만일 오늘 내일 중에 단두대를 잡지 못하면 그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잡는다 하더라도 옷을 벗을 생각이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형사라는 굴레를 벗어야 할 때라고 다짐했다.

저녁신문엔 많은 인사들의 잔뜩 구겨진 인상이 그대로 실리고 말았다.
그들의 집과 사무실 주변에 깔린 무장병력들의 사진도 실렸다.
'과연 이번엔 누가 단두대의 칼날을 받을 것인가? 그들은 무엇 때문에 단두대의 살인명부에 올랐단 말인가?' 라는 내용의 신문기사가 나오자 그들의 항의는 더욱 빗발쳤다.
난 단두대가 노릴 이유가 없으니 당장 치우라는 전화가 계속 울려댔고 서장은 계속 고형사를 당장 불러오라며 김형사를 닥달했지만 김형사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김형사는 고형사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가 누굴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도 알았지만 입을 꼭 다물었다.

연숙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고형사 옆에 바싹 붙어다니면서 취재를 해서 독보적인 연재기사를 쓰려는 그녀의 계획에 커다란 차질이 생긴 것이다.
쌍칼이 범인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달려갔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죽었다고 알려진 김인겸이었다.
그는 전부 내보내고 고형사와 한참동안이나 얘기를 나누었지만 고형사는 거기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김인겸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범인이 자신의 뒤에서 입을 가렸을 때 직접 알려준 사실이다.
하지만 고형사의 지시에 의해 그 일을 기사로 쓰지는 않았었다.
누가 범인인지 고형사의 수사에 동행하면서 알아내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까지 마치 영화같은 내용의 기사를 멋지게 써서 남들이 말하는 출세하는 것을 해보려고 하던 그녀의 꿈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자 연숙은 경찰서 안에서 누가 보던 말던 연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이다.
김형사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고형사가 무슨 일을 지시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그녀는 모르고 있지만 고형사는 전화를 끊으면서 연숙을 경찰서 밖으로 절대 내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고형사의 행방을 눈치채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형사가 남성근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쌍칼이 먼저 와 있었다.

 

"아, 형님 이제 오십니까?"
"뭐야? 벌써 왔어?"
"이 짓도 빨라야 해먹습니다."
"부하들은?"

 

고형사의 물음에 쌍칼이 손짓을 하자 머지 않은 곳에 세워진 봉고차가 보였다.

 

"아까 말씀하신 곳들은 한 곳마다 열놈씩 보냈습니다. 지금 여기엔 실력 있는 놈으로 다섯놈이 와 있구요. 근데 정말 그자가 여기에 나타날까요?"
"글세. 아마 나타나겠지?"
"에? 확실한 것 아닙니까?"

 

쌍칼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물었지만 고형사는 바로 남성근의 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 옆에 달인 스피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잘 아실텐데요."

 

고형사는 문 위의 감시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 이유 또한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지금 의원님께선 이 곳에 안계십니다."
"뭐,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 어디 계신지 만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고형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다른 사람을 찾았다.

 

"그럼 비서분이라도 만나 뵙고 가겠습니다."

 

잠시 후에 문이 열렸다.
고형사는 쌍칼쪽으로 살짝 웃어보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