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 <17>

사나토스200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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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사는 인겸과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고형사는 인겸과 헤어진 다음 자신의 집으로 달려갔다.
인겸이 말한 대로 그의 집 거실 구석에 목이 없는 두 구의 시체가 보였다.
시체는 두 구였지만 머리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 사실도 인겸이 미리 말해주었기에 사라진 머리에 대한 궁금증 대신 바닥에 무언가 탄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실내는 상당히 추운 편이었다.
시체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인겸이 에어컨을 가장 세게 틀어놓았기 때문이다.
고형사는 시체를 바라보다가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쌍칼인가?"
"거 참...... 그냥 김사장이라고 하면 안됩니까?"
"그래, 김사장. 지금 내 집으로 와줘."
"무슨 일 있습니까?"
"오늘 단두대가 다시 움직일거야."
"그럼 어제 그 놈이 범인 맞군요."
"만나서 얘기하지."


고형사의 집으로 온 쌍칼은 거실 바닥에 얌전히 누워있는 괴기스런 시체를 보고는 놀라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쌍칼을 데리고 고형사는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쌍칼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쌍칼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하하하. 제가 오늘 꼭 단두대를 잡겠습니다."
"그래, 자네가 잡아. 난 더 이상 형사도 아니니까."

그때 바로 고형사의 전화기가 울렸고 고형사의 얼굴이 굳어지자 쌍칼도 얼굴을 굳혔다.

 

 

밤이 되었을 때 고형사는 다시 한번 남의원을 찾았다.
이번엔 분위기가 달랐다.
지난 번엔 보이지 않던 경호원들이 집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고형사가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다.
그렇게까지 간을 졸여놓고 나왔으니 아무리 주변의 눈이 무서워도 경호원을 부르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비서가 직접 현관까지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자주 뵙는군요. 고형사님."
"남의원님은 잘 계십니까?"
"네......"

 

여자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밑으로 내겨가는 것을 놓치지 않은 고형사는 어제 방문했을 때 남의원을 몰아부친 일이 생각났다.
어쩌면 남의원은 지금쯤 자신에 대한 분노로 덜덜 떨고 있거나 무서워서 어서 자신이 와주기를 바라며 덜덜 떨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거기에 계십니까?"
"네."

 

비서는 마치 고형사가 자신의 다리에 신은 스타킹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 같아서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애써 지으며 태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으니까요."
"아직도 그 자가 이리로 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틀림없이 옵니다."
"어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그 말에 고형사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어제 그 자는 분명 이곳에 왔었습니다. 집 근처까지 왔다가 밖에서 대기중이던 형사의 눈에 띄었습니다. 결국 놓치고 말았죠."

 

고형사의 말에 등골을 따라 땀이 흐르는 듯 했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물었다.

 

"그런데도 그 자가 여길 다시 올까요? 경찰들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른......"
"아닙니다."

 

고형사가 비서의 말을 짤랐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두대라는 자가 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 기필코 남의원을 죽이겠다고 하더군요."
".........."

 

그녀는 식은 땀이 흘렀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있고 형사까지 지키게 된다면 어디로 들어와서 남의원을 죽일 수 있을까.
그는 지금 유일한 출구조차 위장되어 있는 지하실에 있는데......
그런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고형사가 말을 이었다.

 

"지금 남의원님을 만나봐야 하겠습니다."

 

이번엔 비서에게 묻지도 않고 바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다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가서는 철문을 거침없이 두드렸다.
뒤따라온 비서가 무어라 뒤에서 말하고 있었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남의원이 고형사의 목소리를 듣고는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한손엔 총을 들고 있었다.
얼굴이 하루사이에 달라져 있었다.
이제서야 자신의 잘못 때문에 뒤늦게 목숨을 잃게 되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역력히 보였다.

 

"어, 어서 오시오. 고형사."
"단두대가 오늘 이곳으로 올겁니다. 그는 의원님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꼭 의원님을 죽이겠다고 저에게 전화까지 했습니다. 그 자는 꼭 저지를 생각인 것 같습니다."

 

고형사가 거침없이 말하자 남의원은 멍한 표정이 되더니 들고 있던 총을 힘없이 떨어뜨렸다.

 

"저, 정말이요. 그게?"

 

고형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더 효과가 큰 법이니까.

 

"나, 나, 날 지켜주시오."
"약속을 하나 하십시오."
"무, 무슨...."

 

이제서야 고형사는 장엄한 표정을 지으며 미리 준비해온 대사를 읊었다.

 

"오늘 제가 범인을 잡겠습니다. 그러면 의원님께서는 그대 발생한 댐 붕괴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전부 공개하시고 자진 사퇴하시기 바랍니다."

 

고형사의 말을 들은 남의원과 비서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랬다가는......"
"지금 밖에는 경찰들이 있습니다. 만일 오늘 범인이 이곳에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원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그 자는 의원님을 더 이상 노릴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건 의원님께서도 잘 아실텐데요."

 

남의원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설사 그 뇌물사건을 공개한다 하더라도 몇 년만 지나면 다시 국회에 진출할 기회를 노릴 수 있다.
그의 머리속에 국민은 머리 나쁜 집단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죽는다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우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한 그가 고형사에게 말했다.

 

"어쨌든 그 단두댄지 뭔지 하는 작자를 꼭 잡아주시오. 내 고형사의 말대로 약속하겠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 밖에는 제가 불러놓은 기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에게 내일 신문에 나갈 기사로 그 내용을 말씀해 주십시오."
"기, 기자가?"

 

남의원은 다시 한번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옆에서 둘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듣기만 하던 비서의 얼굴이 노래져 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까지 자신이 일궈놓은 텃밭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일층에 돌아온 고형사는 연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김기자. 어딘가?"
"네, 지금 집 앞에 와있는데요."
"그럼 어서 들어와."

 

연숙은 신이 났다.
고형사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차에 이번에 단두대가 노릴지도 모르는 국회의원이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스스로 밝힐지도 모르니 어서 오라는 전화를 한 것이다.
다른 기사들은 전부 왜 자신의 집에 경찰이 와있냐며 화를 내는 인사들의 기사 뿐이지만 연숙은 다시 한 번 독자적인 기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고형사와 김형사의 비밀을 까발릴까 하는 생각을 수십번도 더 했었다.
하지만 이번 기사만 잘 되면 다 잊을 수 있다.

고형사가 전화를 끊고 일분도 지나지 않아 연숙이 들어왔다.
연숙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고형사의 옆에 앉아 익숙한 동작으로 카메라와 녹음기를 꺼냈다.
그걸 보고 있던 고형사가 나직하게 말했다.

 

"자, 어서 시작하시죠."

 

고형사의 말에 남의원이 깊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내용은 짧은 것이었지만 그가 피나는 노력을 해야 다시 재기할 수 있을 만큼의 내용이었다.
고형사는 연숙에게 따로 다시는 재기하지 못 할 정도의 기억에 남는 기사를 쓰라고 할 작정이다.

남의원은 자신의 추한 과거를 말하면서 그것은 전부 비서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비서는 옆에 서서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녹음을 하며 메모를 하고 있었고 남의원은 정말 눈물까지 흘려가며 참회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남의원이 말이 거의 끝나갈 무렵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실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며 커다란 돌맹이가 날아들었다.
연숙은 비명을 질러대는 와중에도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겨서 탁자 밑으로 몸을 숙였고 비서는 그 돌에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큰 타격은 없는지 이층으로 기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밖에서 경호원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고 누가 단두대다 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남의원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고형사가 얼른 밖을 보니 밖에서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몰려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거실에 대기중이던 경호원 두 명은 남의원의 몸을 가리며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지키려는 자세를 취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두 명 다 손에 전기봉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경호원들이 몰려 간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싸우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여러사람이 기합을 넣는 소리가 처절하게 들렸다.
남의원을 지키던 경호원들은 바짝 긴장을 했는지 계속 몸을 돌리며 사방을 감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염려하던 일이 터졌다.
깨진 유리창 밑에서 갑자기 검은 형상이 불쑥 나타나더니 거실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사람들이 몰려간 틈에 단두대가 나타난 것이다.
단두대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는 등에 멘 칼을 빠르게 뽑아들었다.

 

"스릉"

 

남의원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이층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내려오던 비서는 계단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엉덩방아를 찧더니 비명을 지르며 엉금엉금 기어서 이층으로 올라가버렸다.
탁자 밑에 몸을 숙였던 연숙은 바로 자신의 옆에 단두대가 멈추자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는 다시 죽은 시늉이라도 하듯 고개를 팍 묻었다.

칼을 뽑은 단두대는 남의원 쪽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눈에선 살기를 뿜고 있었고 그의 칼은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
얼굴에 쓴 검은 두건 안에서 그의 입이 움직였다.

 

"이제 심판을 받을 시간이다. 남성근."
"아, 아악, 아악!"

 

단두대가 칼을 세우고 비명을 지르는 남의원 쪽으로 다가가려 하자 고형사가 품에서 권총을 꺼내며 소리쳤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쏘겠다!"

 

하지만 단두대는 조금도 움직임을 머뭇거리지 않았다.
고형사가 다시 경고를 하며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멈춰! 한발짝만 더 움직이면 쏘겠다!"
"누가 빠른지 해보겠나?"

 

말을 마친 단두대는 빠르게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고형사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소리가 울리고 단두대는 잠시 주춤했으나 달리던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남의원 쪽으로 돌진했다.
경호원 한 명이 앞을 막아서자 단두대는 경호원의 옆으로 돌며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 남의원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기기 시작했고 바닥에는 남의원의 손가락이 떨어졌다.
남의원이 바닥을 기며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고 그를 보호하려는 경호원과 단두대의 일대 사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남의원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그의 칼은 경호원들의 손에 들려있는 전기봉마저 한 번에 잘라버렸다.
당황한 경호원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용기를 짜내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바로 단두대에게 달려들었다.
단두대는 불필요한 살인은 피하려는 듯 그들의 공격을 막고 피하기만 할 뿐 그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고형사는 계속 단두대를 겨누고 있었지만 경호원들이 다칠가봐 쏘진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단두대는 계속 고형사와 경호원들이 같은 방향에 위치하도록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고형사가 소리쳤다.

 

"비켜!"

 

그 소리와 함께 경호원들이 뒤로 물러났고 바로 총소리가 울렸다.

 

"탕!"
"큭!"

 

단두대는 자신의 왼쪽 팔을 감싸며 주춤했다.
그때를 노려 경호원들이 달려들었지만 단두대는 기합을 넣으며 빠른 속도로 발을 날렸다.
경호원들은 둘 다 턱을 가격당하며 뒤로 나가떨어졌고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심호흡을 하며 남의원을 노려보았다.

 

"남성근. 지금은 가겠다. 하지만 넌 내 손에 죽는다. 기필코."

 

이 말을 하며 단두대는 칼 끝을 구석으로 도망가 있는 남의원에게 겨누었다.
그때 또 연숙의 카메라가 불빛을 터트렸다.
단두대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연숙은 또 고개를 밑으로 박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었고 절대 단두대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멈춰. 쏘겠다."
"고형사. 오늘은 내가 운이 없다. 그냥 가겠다."
"넌 못간다. 체포한다! 단두대 아니, 이인겸."

 

그때 연숙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가 다시 얼른 고개를 박았다.
이인겸이라니..... 그자는 죽은 것으로.... 아니지...... 살아있었지.... 어쨌든 그는 범인이 아니라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연숙은 무서워서 고개를 들지는 못했지만 머릿속이 엉키기 시작했다.

 

"그럼 잘 있어라."

 

그 말을 남기며 단두대는 빠른 몸놀림으로 방향을 틀어 들어왔던 곳으로 몸을 날렸다.
고형사가 다시 두발의 총을 연달아 쏘았지만 그를 맞추지는 못했다.
고형사도 뛰었다.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며 단두대의 뒤를 따라가던 그는 소리를 질렀다.

 

"단두대! 서라!"

 

그때였다.
단두대가 막 마당을 가로질러 정문 쪽으로 뛰어가는 순간 누군가 정문으로 뛰어 들어오며 단두대를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쌍칼은 달려오다가 단두대의 바로 앞에서 멈추며 단두대가 갑자기 휘두르는 칼을 몸을 숙여 피하면서 동시에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단두대는 흡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고 다시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쌍칼은 옆으로 슬쩍 비키며 피했고 이번엔 발을 단두대의 정수리에 작렬시켰다.

 

"커억!"

 

고형사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단두대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하지만 다시 벌떡 일어서더니 쌍칼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달려온 고형사가 총을 발사했고 단두대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쓰러졌다.
잔디 위에 풀석 쓰러진 단두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