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여서 집까지는 5분거리고, 아직 사람들도 이렇게 지나다니잖아요. 여긴 아직 안전할거 같으니까 전 친구들이랑 연락도 해보고 할게요."
"알았어. 조심해라 진환아. 힘들면 꼭 연락해. 내 집도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나는 관원들을 차에 태운 관장님을 뒤로하고 자전거를 몰아 집까지 달려갔다. 등골에 소름이 쫙 돋는걸 느끼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이번 일은 정말 뭔가 조금 소름끼치는 면모가 있었다. 정말 단순히 치부해 무시해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그런 분위기. 어느새 집에 도착한 나는 대문을 걸어잠그고 마당에 들어와 숨을 돌렸다.
우리집은 큰 돌담이 다른 집들과 연결된 채 둘러싸고 있고, 그 돌담에 골목과 통하는 큰 철문이 하나, 안쪽엔 2층집이 있고 1, 2층엔 각각 현관문이 하나찍 딸려있는 개인주택이다. 작은 마당도 있다. 2층은 아버지의 회사로 쓰고 있고, 1층은 우리집이다. 나는 황급히 2층으로 올라가려다 피식 웃으며 발을 멈췄다. 부모님 내 유학 앞서 미국여행 가셨잖아.. 동생이랑.
어찌보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아까 티비에서 본 예의 그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을 떠오르며 몸서리를 쳤다. 아직도 믿겨지지는 않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게 우리 가족이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온 집의 불을 다 켠 뒤 TV와 컴퓨터를 동시에 키고, 부엌찬장에 먹을 것들을 확인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왜 좀비영화 보면 다들 이러니까.
TV앞에 앉아 리모콘을 돌리려던 나는 문득 오늘 친구들의 모임 생각이 났다. 나는 아까 전화한 단짝친구 윤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몇번 울려도 받지 않자 울상이 되어가던 난 녀석이 전화를 받는순간 화색이 돌아 외쳤다.
"야 김윤호! 너 괜찮아?"
-얘가 왜이래? 왓썹은 어디두고?
"김윤호, 내말 잘들어. 거기 누구누구 있어?"
-어? 지금 태완이랑 만나려고 하는데. 아 저기 온다.
"너희 둘뿐이야?"
-어. 나머지 애들은 따로 만나서 합류하기로 했어.
"야 잘들어. 나 지금 뉴스에서 지랄같은 기사를 봤거든? 근데 이거 장난 아니고 엄청 위험해보여. 너 어디야 거기?"
핸드폰 저편에서 잠깐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바꾸는 모양이다. 나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TV에서 잠깐 떨어져 부팅이 끝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켰다. 다음순간 태완이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 이 태완이라는 녀석은 내로라 하는 우등생으로, 막 서울대에 입학해 출세가도를 달리려 하는 놈이다. 흠이라면 키가 좀 작다는 거? 무지 작다.
-어 진환. 뭔일?
"아니 그게.."
윤호놈과는 달리 아주 이성적이고 머리가 좋은 태완이에게라면 말이 통할 것 같아 나는 결국 꺼내기 싫은 그 말을 꺼내고 말았다.
"태완아. 나 지금 농담하는거 아냐. 지금 우리집에 와도 약속엔 안 늦을테니까 시간걱정은 말고 빨리 튀어워. 여기서 뉴스보고 인터넷 보고 나서도 약속장소에 가겠다는 소릴 하면 내가 놔줄게. 그러니까 지금은그냥 빨리 와라 제발. 나 진짜 걱정돼서 그래."
-..알았어. 농담이면 알지?
"정말이야. 빨리 와."
태완이는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쉰뒤 인터넷에 좀비관련 기사가 흘러넘치는 걸 보고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진짜였어!
나는 뒤로 돌아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돌렸다. 아까의 KBS 채널로 돌리자 역시 좀비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재미있는 정보가 있을까 싶어 귀를 기울였다.
"시민 여러분. 지금 이 기사는 실제상황이며 절대 장난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해드립니다. 어제 9시경부터 시작된 K-바이러스 사태는 이미 한국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눈에 초점이 없고, 비정상적으로 이동을 하며 간혹은 기어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공통점은 하나같이 사람에게 접근하면 물어뜯고.. 먹어치운다는 것입니다."
기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한번 치켜올리고는 다시금 말했다.
"정부에서는 일련의 사태를 접하고 이들을 좀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K-바이러스.. 즉 Korea Virus 라는 이름은 현재 미국에서 붙혀진 것인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좀비들은 현재 한국에서만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현재 이들을 제압할 군부대를 국가에서 파견.."
"게임도 아니고 진짜.."
나는 기자의 말을 차분히 들으며 또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자면 걸어다니는 시체가 서울시를 떼지어 활보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다행인 점은 언젠가 보았던 좀비영화와는 다르게 막 뛰어다니고 물어뜯는 좀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장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잇는 기자의 옆에는 생중계로 아비규환이 펼져지고 있었다. 내 눈에 익는 거리들이 속속 눈에 들어오는걸로 봐서는 이제 내 눈으로 직접 그 걸어다니는 시체들을 목격할 순간도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 속보입니다. 이 좀비들에게 물리면 당신도 좀비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에 좀비에게 물려 크게 다쳐 죽기직전의 사태까지 갔을 때고, 그저 물리기만 한 거라면 그 자리에서 좀비로 변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거 다행이네."
나는 어떤 좀비영화에서, 힘든 사투를 끝낸 두 주인공이 싸움을 끝내고 쉬는동안 둘 중 한명이 자신의 팔뚝에 물린 자국이 남아있는 걸 보고 그가 친구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자살을 택하는 절망적인 장면을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또한 이들의 혈액이 사진의 몸에 침투했을 시에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므로 되도록이면 접근을 피해주십시요. 시민 여러분, 침착하시고 앞으로 있을 경찰들과 군부대의 인도에 따라.."
띵동
도어벨이 울렸다. 나는 맨발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 친구들을 맞이했다. 녀석들은 투덜거리며 현관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김진환, 농담 너무 좋아하면 못쓴다."
"거 사람 말 못 믿는 놈일세? 저거나 보고 말하시지."
"응?"
시큰둥한 표정으로 TV 앞으로 간 둘은, 10초도 채 되지 않아 사색이 되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TV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나는 둘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것봐 시키들아! 지금 그 화면에 나오고 있는거 너네집 바로 앞 아냐 김윤호?"
"어.. 으응."
"이거.. 진짜 진짜야?"
태완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TV를 가리켰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낸들 아냐. 눈으로 보지는 못했는걸. 근데 그거 확인할라고 저것들한테 물어뜯기느니 그냥 집에서 죽치고 겁먹은채 덜덜 떨고 있는게 십만배는 안전할 것 같아서 말이지. 너네 부모님들한테 연락해봤어?"
내 말을 들은 윤호와 태완이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황급히 전화를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어딨어? 어 나도 뉴스 봤어. 진환이가 불러서 지금 진환이네 집에 있어. 우리 약속 가는 중이었는데 진환이가 위험하다고 불러서.. 어, 응. 응. 못 봤는데. 근데 바로 근처에도 많이 있는 것 같아. 응. 알았어요."
태완이는 거듭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도에 찬 목소리로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녀석은 전화를 끊고 내게 말했다.
"엄마는 지금 거래처에 갔다가 그 빌딩에서 대피중이래. 좀비들이 위에서 막 보인대. 경비용 철문을 내리고 경비들이 실탄이 든 총으로 대기중이라는데."
"아 좋겠다. 우리집은 저 돌담밖에 없는데. 김윤호 너는?"
"..안 받아.."
"어?"
윤호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씁쓸하게 말했다.
"두분 다 안 받아."
"...."
"...."
나와 태완이는 일제히 말문이 막혀 윤호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뒤통수를 신경질적으로 긁적거리더니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나와 윤호는 낙천적인거 하나로 뭉친 사이다. 녀석은 특유의 너스레를 떨면서 내게 안심하라고 말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말이지.. 내 머리 한켠에 제일 처음 보았던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이대로 죽치고 있어?"
"그래야지. 아까 뉴스에서 들었는데 그놈들은 느리고 머리가 비었댔어. 우리집은 사방이 막혀있고 담 높이도 꽤 높은 편이니까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할거야. 정찰할 곳도 있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떠올리며 말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우리 집의 계단은, 1층 현관을 마주보고 있는 철대문 바로 옆에서부터 벽을 타고 올라가 기역자로 꺾여올라가 2층과 연결된 형태인데, 그 꺾이는 부분에서 담을 넘어 골목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게다가 도둑을 막기 위해 벽 위에는 뾰족한 쇠철망이 담 꼭대기를 둘러싸고 있다. 또한 우리집 철문 양쪽엔 철문을 고정하기 위한 콘크리트 기둥이 있는데, 그 위로 장독대 등을 놓을 수 있도록 작은 옥상과 같은 공간도 있다. 비상시엔 훌륭한 대피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위험요소라면 철문. 사람 한 명 힘으로야 꿈쩍도 안 하겠지만 수십명.. 아니 마리들이 그 문을 밀어대면 힘없이 떨어져나갈 것은 당연지사. 만약 골목에 녀석들이 들이닥쳤다면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기겁한 우리들은 서둘러 현관을 나서서 내가 말했던 정찰하는 스팟으로 뛰어올라갔다. 아니나다를까, 정말로 보기 싫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골목 저쪽에서부터 한 누님이 이쪽으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고 있었고, 그 뒤로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뭉개진 흉칙한 형상을 한 인간들이 기묘한 신음소리를 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다만, 그 걸음이 생각보다 빨랐다. 웃기는 건 꼭 막 만든 로봇과 같은 녀석들의 움직임이었는데, 걷는 것이 익숙치 않은지 어떤 녀석은 돌에 걸려 자빠지더니 그대로 온 몸을 사용해 기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웃으면서 보기에는 영 꺼림칙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언니는 내 말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우리 집 앞에서 꺾어 골목을 빠져나가버렸다. 아마 한 순간도 멈추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공포를 맛보았겠지. 아니면 남자놈들이 웅성거리는 집 안으로 피해들어가기는 싫었던 건가? 킁..
"앗 온다."
"야야 숨어.. 숨어."
좀비들은 누님의 뒤를 쫓다가 놓쳐버렸는지 이동을 멈추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놈들이 멈춘 곳은 딱 우리집의 철문 앞이었다. 우리들은 잔뜩 쫄아서 고개를 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계단에 엎드려 덜덜 떨고 있었다.
"야 김진환.. 너네 철문 튼튼하냐?"
"남자 열명 정도가 일시에 몸통박치기 하면 열릴걸."
"그래.. 그럼 일단은 안전할까나?"
"낸들 아냐!"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빼고 밖을 쳐다보았다. 몇몇 녀석들은 골목 저편으로 사라졌고, 좀비 둘만이 우리 집 앞에 남아 신음소리를 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조금 시야를 넓혀 자세히 보니 아까 우스꽝스럽게 기어오던 좀비는 아직도 그쯤에 누워 어딘가를 향해 마구 기어가고 있었다. 아니, 기어간다기보단 뭐랄까.. 필사적으로 이동한다고 해야 할까? 가만히 보고 있으니 무섭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야야. 이새끼들 병신이야. 함 봐봐."
"아 졸라 담큰새끼.."
"담이 크건 말건 저새끼들 폴짝거려도 여기에 손끝이 닿을까 말까 해. 절대 안전하니까 봐봐."
"그럼 조금만.."
녀석들도 나를 따라 조심스레 밖을 쳐다보았다.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녀석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허얼.."
"우와 진짜다. 진짜 있었어. 야 태완아 우리 지금까지 홍대역에 있었으면.."
"이 형님한테 감사해라."
열심히 주변을 살피던 우리는 잠시 뒤 약속이라도 한 듯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왔다. 왠지 계속 그러고 살피고 있으면 녀석들에게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관문 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근 우리는 마루에 둘러앉아 작전회의를 시작했다.
"하여간 이걸로 지금 실제상황이라는 게 판명됐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지."
"어쩌기는 미친.. 여기서 죽치고 있는거지. 군대 출동했대매. 저것들 하는짓보니까 군인들 오면 밥이겠구만. 얼마 걸리지도 않을걸?"
"야야 김윤호.. 수를 봐 저 수를. 괜히 저만큼 늘어났겠어? 아마 뭔가가 더 있을거야. 단순히 느리고 머리나쁜 저정도 수준으로 이렇게까지 불어날 리가 없어."
"글쎄, 다들 너무 갑작스러웠을테니까.. 불시에 당했겠지. 그래도 이젠 다들 정신차리고 있으니까 정리되겠지 아마?"
"아마도."
"으음.."
가만히 생각을 하던 태완이가 내게 말했다.
"진환아 너네집에 먹을거 얼마나 있어?"
"꽤 있어. 한달은 너끈해. 부모님 여행간게 그저께니까 냉장고도 만빵이고 사골국 끓여놓은것도 있고, 라면도 두 박슨가 있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윤호가 말했다.
"무기는 있냐? 호신용."
"어 무기. 그러고보니 그게 필요하겠군. 아 이거 점점 무슨 게임같아진다. 가만있어 보자.."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초단을 따며 장만한 내 전용 쌍절곤과 두 개의 짧은 곤봉, 죽도가 있었다. 나는 문득 아버지가 장식용으로 구비해놓은 두 자루의 목검을 떠올렸다. 다만 그것을 가지러 가려면 위층으로 가야 하는데 계단참에서 좀비들에게 들킬 염려가 있었다. 놈들이 우릴 발견해봤자 어떻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발견되서 좋을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쌍절곤, 죽도라.. 그런 게 저놈들에게 통할까? 무엇보다 싸우기조차 싫다.
"있긴 있는데. 쓸만한건 위에 가야할거야."
"으으.. 그럼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자구."
"그래야겠지. 일단은 짱박혀있자."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저녁이 다 되어갔다. 나는 부엌으로 걸어들어가 사골국에 불을 올렸다. 나는 불을 조절하며 말했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무엇보다 티비에서 본 그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가슴 한켠이 말 할 수 없이 답답했다. 나는 속이 울렁거려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내 얼굴 바로 앞에 있는 부억의 통풍용 창문을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그렇게, 내 인생 19년 제일 길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닥칠 일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여유롭게, 안심하며..
[루카] (좀비물) 살기위해 뛰어라! (2) 대책
<살기위해 뛰어라>
1ȭ : http://pann.nate.com/b200004270
3ȭ : http://pann.nate.com/b200004294
4ȭ : http://pann.nate.com/b200008195
5ȭ : http://pann.nate.com/b200008204
6ȭ : http://pann.nate.com/b200008220
7ȭ : http://pann.nate.com/b200012346
8ȭ : http://pann.nate.com/b200012362
9ȭ : http://pann.nate.com/b200012371
10ȭ : http://pann.nate.com/b200012387
11ȭ : http://pann.nate.com/b200012396
12ȭ : http://pann.nate.com/b200012404
외전 - 1화 : http://pann.nate.com/b200012428
"정말 괜찮겠냐?"
"네. 여서 집까지는 5분거리고, 아직 사람들도 이렇게 지나다니잖아요. 여긴 아직 안전할거 같으니까 전 친구들이랑 연락도 해보고 할게요."
"알았어. 조심해라 진환아. 힘들면 꼭 연락해. 내 집도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나는 관원들을 차에 태운 관장님을 뒤로하고 자전거를 몰아 집까지 달려갔다. 등골에 소름이 쫙 돋는걸 느끼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이번 일은 정말 뭔가 조금 소름끼치는 면모가 있었다. 정말 단순히 치부해 무시해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그런 분위기. 어느새 집에 도착한 나는 대문을 걸어잠그고 마당에 들어와 숨을 돌렸다.
우리집은 큰 돌담이 다른 집들과 연결된 채 둘러싸고 있고, 그 돌담에 골목과 통하는 큰 철문이 하나, 안쪽엔 2층집이 있고 1, 2층엔 각각 현관문이 하나찍 딸려있는 개인주택이다. 작은 마당도 있다. 2층은 아버지의 회사로 쓰고 있고, 1층은 우리집이다. 나는 황급히 2층으로 올라가려다 피식 웃으며 발을 멈췄다. 부모님 내 유학 앞서 미국여행 가셨잖아.. 동생이랑.
어찌보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아까 티비에서 본 예의 그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을 떠오르며 몸서리를 쳤다. 아직도 믿겨지지는 않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게 우리 가족이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온 집의 불을 다 켠 뒤 TV와 컴퓨터를 동시에 키고, 부엌찬장에 먹을 것들을 확인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왜 좀비영화 보면 다들 이러니까.
TV앞에 앉아 리모콘을 돌리려던 나는 문득 오늘 친구들의 모임 생각이 났다. 나는 아까 전화한 단짝친구 윤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몇번 울려도 받지 않자 울상이 되어가던 난 녀석이 전화를 받는순간 화색이 돌아 외쳤다.
"야 김윤호! 너 괜찮아?"
-얘가 왜이래? 왓썹은 어디두고?
"김윤호, 내말 잘들어. 거기 누구누구 있어?"
-어? 지금 태완이랑 만나려고 하는데. 아 저기 온다.
"너희 둘뿐이야?"
-어. 나머지 애들은 따로 만나서 합류하기로 했어.
"야 잘들어. 나 지금 뉴스에서 지랄같은 기사를 봤거든? 근데 이거 장난 아니고 엄청 위험해보여. 너 어디야 거기?"
-홍대역이지. 너도 5분거리니까 빨리..
"아 그게 아니고! 잘됐구만 차라리. 너 태완이랑 거기서 우리집으로 뛰어와. 안그러면 죽어."
-뭠마? 뭔소리야! 너 약속 어기는거 싫어하면서 뭐냐 이번엔?
"아 진짜 말좀 들어! 지금 뛰어오면 저번주에 만원 빌린거 탕감해줄게."
-진짜?
"진짜야."
-엠창?
"아 병신 초딩새끼! 태완이 바꿔봐! 그리고 빨리 뛰어와 지금 당장!"
-알았습니다요. 태완아 김진환이 바꿔달래.
핸드폰 저편에서 잠깐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바꾸는 모양이다. 나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TV에서 잠깐 떨어져 부팅이 끝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켰다. 다음순간 태완이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 이 태완이라는 녀석은 내로라 하는 우등생으로, 막 서울대에 입학해 출세가도를 달리려 하는 놈이다. 흠이라면 키가 좀 작다는 거? 무지 작다.
-어 진환. 뭔일?
"아니 그게.."
윤호놈과는 달리 아주 이성적이고 머리가 좋은 태완이에게라면 말이 통할 것 같아 나는 결국 꺼내기 싫은 그 말을 꺼내고 말았다.
"지금 서울시에 좀비가 끓어넘친댄다. 그래서 위험하니까 빨리 오라고."
-뭐?
"좀비! 서울시에 좀비가 나타났대. 지금 막 뉴스에 나오고 난리도 아냐."
-이보세요 진환씨. 만우절은 4월 1일이거든요.
"태완아. 나 지금 농담하는거 아냐. 지금 우리집에 와도 약속엔 안 늦을테니까 시간걱정은 말고 빨리 튀어워. 여기서 뉴스보고 인터넷 보고 나서도 약속장소에 가겠다는 소릴 하면 내가 놔줄게.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빨리 와라 제발. 나 진짜 걱정돼서 그래."
-..알았어. 농담이면 알지?
"정말이야. 빨리 와."
태완이는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쉰뒤 인터넷에 좀비관련 기사가 흘러넘치는 걸 보고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진짜였어!
나는 뒤로 돌아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돌렸다. 아까의 KBS 채널로 돌리자 역시 좀비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재미있는 정보가 있을까 싶어 귀를 기울였다.
"시민 여러분. 지금 이 기사는 실제상황이며 절대 장난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해드립니다. 어제 9시경부터 시작된 K-바이러스 사태는 이미 한국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눈에 초점이 없고, 비정상적으로 이동을 하며 간혹은 기어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공통점은 하나같이 사람에게 접근하면 물어뜯고.. 먹어치운다는 것입니다."
기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한번 치켜올리고는 다시금 말했다.
"정부에서는 일련의 사태를 접하고 이들을 좀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K-바이러스.. 즉 Korea Virus 라는 이름은 현재 미국에서 붙혀진 것인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좀비들은 현재 한국에서만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현재 이들을 제압할 군부대를 국가에서 파견.."
"게임도 아니고 진짜.."
나는 기자의 말을 차분히 들으며 또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자면 걸어다니는 시체가 서울시를 떼지어 활보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다행인 점은 언젠가 보았던 좀비영화와는 다르게 막 뛰어다니고 물어뜯는 좀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장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잇는 기자의 옆에는 생중계로 아비규환이 펼져지고 있었다. 내 눈에 익는 거리들이 속속 눈에 들어오는걸로 봐서는 이제 내 눈으로 직접 그 걸어다니는 시체들을 목격할 순간도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 속보입니다. 이 좀비들에게 물리면 당신도 좀비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에 좀비에게 물려 크게 다쳐 죽기직전의 사태까지 갔을 때고, 그저 물리기만 한 거라면 그 자리에서 좀비로 변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거 다행이네."
나는 어떤 좀비영화에서, 힘든 사투를 끝낸 두 주인공이 싸움을 끝내고 쉬는동안 둘 중 한명이 자신의 팔뚝에 물린 자국이 남아있는 걸 보고 그가 친구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자살을 택하는 절망적인 장면을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또한 이들의 혈액이 사진의 몸에 침투했을 시에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므로 되도록이면 접근을 피해주십시요. 시민 여러분, 침착하시고 앞으로 있을 경찰들과 군부대의 인도에 따라.."
띵동
도어벨이 울렸다. 나는 맨발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 친구들을 맞이했다. 녀석들은 투덜거리며 현관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김진환, 농담 너무 좋아하면 못쓴다."
"거 사람 말 못 믿는 놈일세? 저거나 보고 말하시지."
"응?"
시큰둥한 표정으로 TV 앞으로 간 둘은, 10초도 채 되지 않아 사색이 되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TV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나는 둘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것봐 시키들아! 지금 그 화면에 나오고 있는거 너네집 바로 앞 아냐 김윤호?"
"어.. 으응."
"이거.. 진짜 진짜야?"
태완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TV를 가리켰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낸들 아냐. 눈으로 보지는 못했는걸. 근데 그거 확인할라고 저것들한테 물어뜯기느니 그냥 집에서 죽치고 겁먹은채 덜덜 떨고 있는게 십만배는 안전할 것 같아서 말이지. 너네 부모님들한테 연락해봤어?"
내 말을 들은 윤호와 태완이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황급히 전화를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어딨어? 어 나도 뉴스 봤어. 진환이가 불러서 지금 진환이네 집에 있어. 우리 약속 가는 중이었는데 진환이가 위험하다고 불러서.. 어, 응. 응. 못 봤는데. 근데 바로 근처에도 많이 있는 것 같아. 응. 알았어요."
태완이는 거듭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도에 찬 목소리로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녀석은 전화를 끊고 내게 말했다.
"엄마는 지금 거래처에 갔다가 그 빌딩에서 대피중이래. 좀비들이 위에서 막 보인대. 경비용 철문을 내리고 경비들이 실탄이 든 총으로 대기중이라는데."
"아 좋겠다. 우리집은 저 돌담밖에 없는데. 김윤호 너는?"
"..안 받아.."
"어?"
윤호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씁쓸하게 말했다.
"두분 다 안 받아."
"...."
"...."
나와 태완이는 일제히 말문이 막혀 윤호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뒤통수를 신경질적으로 긁적거리더니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사람 불안하게 뭐 그렇게 봐 자식아. 설마 울 엄마아빠가 죽기라도 했겠냐?"
"하기야 그렇지. 우리도 이렇게 멀쩡하잖아. 하하.."
나와 윤호는 낙천적인거 하나로 뭉친 사이다. 녀석은 특유의 너스레를 떨면서 내게 안심하라고 말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말이지.. 내 머리 한켠에 제일 처음 보았던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이대로 죽치고 있어?"
"그래야지. 아까 뉴스에서 들었는데 그놈들은 느리고 머리가 비었댔어. 우리집은 사방이 막혀있고 담 높이도 꽤 높은 편이니까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할거야. 정찰할 곳도 있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떠올리며 말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우리 집의 계단은, 1층 현관을 마주보고 있는 철대문 바로 옆에서부터 벽을 타고 올라가 기역자로 꺾여올라가 2층과 연결된 형태인데, 그 꺾이는 부분에서 담을 넘어 골목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게다가 도둑을 막기 위해 벽 위에는 뾰족한 쇠철망이 담 꼭대기를 둘러싸고 있다. 또한 우리집 철문 양쪽엔 철문을 고정하기 위한 콘크리트 기둥이 있는데, 그 위로 장독대 등을 놓을 수 있도록 작은 옥상과 같은 공간도 있다. 비상시엔 훌륭한 대피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위험요소라면 철문. 사람 한 명 힘으로야 꿈쩍도 안 하겠지만 수십명.. 아니 마리들이 그 문을 밀어대면 힘없이 떨어져나갈 것은 당연지사. 만약 골목에 녀석들이 들이닥쳤다면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나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집 근처까지 오기전에 군대가 제압할 수도 있.."
"꺄아아아아아아악!!"
"..지 않네."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기겁한 우리들은 서둘러 현관을 나서서 내가 말했던 정찰하는 스팟으로 뛰어올라갔다. 아니나다를까, 정말로 보기 싫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골목 저쪽에서부터 한 누님이 이쪽으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고 있었고, 그 뒤로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뭉개진 흉칙한 형상을 한 인간들이 기묘한 신음소리를 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다만, 그 걸음이 생각보다 빨랐다. 웃기는 건 꼭 막 만든 로봇과 같은 녀석들의 움직임이었는데, 걷는 것이 익숙치 않은지 어떤 녀석은 돌에 걸려 자빠지더니 그대로 온 몸을 사용해 기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웃으면서 보기에는 영 꺼림칙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어느정도 녀석들을 관찰하다 그새 여기까지 뛰어온 그 누나에게 소리쳤다.
"누나! 일로 들어오세요! 여긴 안전해요! 지금 문을.."
"꺄아아악!"
"..."
"가버렸다."
그 언니는 내 말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우리 집 앞에서 꺾어 골목을 빠져나가버렸다. 아마 한 순간도 멈추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공포를 맛보았겠지. 아니면 남자놈들이 웅성거리는 집 안으로 피해들어가기는 싫었던 건가? 킁..
"앗 온다."
"야야 숨어.. 숨어."
좀비들은 누님의 뒤를 쫓다가 놓쳐버렸는지 이동을 멈추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놈들이 멈춘 곳은 딱 우리집의 철문 앞이었다. 우리들은 잔뜩 쫄아서 고개를 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계단에 엎드려 덜덜 떨고 있었다.
"야 김진환.. 너네 철문 튼튼하냐?"
"남자 열명 정도가 일시에 몸통박치기 하면 열릴걸."
"그래.. 그럼 일단은 안전할까나?"
"낸들 아냐!"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빼고 밖을 쳐다보았다. 몇몇 녀석들은 골목 저편으로 사라졌고, 좀비 둘만이 우리 집 앞에 남아 신음소리를 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조금 시야를 넓혀 자세히 보니 아까 우스꽝스럽게 기어오던 좀비는 아직도 그쯤에 누워 어딘가를 향해 마구 기어가고 있었다. 아니, 기어간다기보단 뭐랄까.. 필사적으로 이동한다고 해야 할까? 가만히 보고 있으니 무섭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야야. 이새끼들 병신이야. 함 봐봐."
"아 졸라 담큰새끼.."
"담이 크건 말건 저새끼들 폴짝거려도 여기에 손끝이 닿을까 말까 해. 절대 안전하니까 봐봐."
"그럼 조금만.."
녀석들도 나를 따라 조심스레 밖을 쳐다보았다.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녀석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허얼.."
"우와 진짜다. 진짜 있었어. 야 태완아 우리 지금까지 홍대역에 있었으면.."
"이 형님한테 감사해라."
열심히 주변을 살피던 우리는 잠시 뒤 약속이라도 한 듯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왔다. 왠지 계속 그러고 살피고 있으면 녀석들에게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관문 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근 우리는 마루에 둘러앉아 작전회의를 시작했다.
"하여간 이걸로 지금 실제상황이라는 게 판명됐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지."
"어쩌기는 미친.. 여기서 죽치고 있는거지. 군대 출동했대매. 저것들 하는짓보니까 군인들 오면 밥이겠구만. 얼마 걸리지도 않을걸?"
"야야 김윤호.. 수를 봐 저 수를. 괜히 저만큼 늘어났겠어? 아마 뭔가가 더 있을거야. 단순히 느리고 머리나쁜 저정도 수준으로 이렇게까지 불어날 리가 없어."
"글쎄, 다들 너무 갑작스러웠을테니까.. 불시에 당했겠지. 그래도 이젠 다들 정신차리고 있으니까 정리되겠지 아마?"
"아마도."
"으음.."
가만히 생각을 하던 태완이가 내게 말했다.
"진환아 너네집에 먹을거 얼마나 있어?"
"꽤 있어. 한달은 너끈해. 부모님 여행간게 그저께니까 냉장고도 만빵이고 사골국 끓여놓은것도 있고, 라면도 두 박슨가 있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윤호가 말했다.
"무기는 있냐? 호신용."
"어 무기. 그러고보니 그게 필요하겠군. 아 이거 점점 무슨 게임같아진다. 가만있어 보자.."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초단을 따며 장만한 내 전용 쌍절곤과 두 개의 짧은 곤봉, 죽도가 있었다. 나는 문득 아버지가 장식용으로 구비해놓은 두 자루의 목검을 떠올렸다. 다만 그것을 가지러 가려면 위층으로 가야 하는데 계단참에서 좀비들에게 들킬 염려가 있었다. 놈들이 우릴 발견해봤자 어떻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발견되서 좋을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쌍절곤, 죽도라.. 그런 게 저놈들에게 통할까? 무엇보다 싸우기조차 싫다.
"있긴 있는데. 쓸만한건 위에 가야할거야."
"으으.. 그럼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자구."
"그래야겠지. 일단은 짱박혀있자."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저녁이 다 되어갔다. 나는 부엌으로 걸어들어가 사골국에 불을 올렸다. 나는 불을 조절하며 말했다.
"사골국 싫어하는놈 손들어."
"없어."
"난 좋아."
"착한 어린이들이군."
나는 우리가 이렇게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무엇보다 티비에서 본 그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가슴 한켠이 말 할 수 없이 답답했다. 나는 속이 울렁거려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내 얼굴 바로 앞에 있는 부억의 통풍용 창문을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그렇게, 내 인생 19년 제일 길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닥칠 일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여유롭게, 안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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