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신혜인2009.08.06
조회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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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커피를 마시던 박민규의 아내

- 언론에 알려진 괴짜 작가들의 마누라들로 보아

꽤 미인일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는 - 가 물었다.

 

'만약, 제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면,

그래도 절.. 사랑해 줄 건가요?'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됐다.

 

박민규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고백한다.

 

- 세상의 모든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또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한다 해도

잔인한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어쩔 수 없이 미남과 부자가 좋은 당신이라면

그런 저 자신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에겐

너무나 먼 가야 할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단순히 말해 이 소설은

못생긴 여자를 사랑했던

- 사랑하고 있는 - (잘생긴)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예뻐지는데' 할애하며 살아왔는가.

또 동시에,

얼마나 수차례 같은 질문을 반복했는가.

'내 영혼을 사랑해, 내 외모를 사랑해?'라고.

 

생각해보면 모순 아닌가.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외모가 아닌 영혼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그래서 이 책을 단순한 연애소설로 볼 수가 없다.

 

아직은 젊은 내겐 와닿지 않지만,

이 책이 밝히는 절대절명의 진리.

 

- 그리고 저는,

그래도 예전보다 평범한 얼굴에 속해가고 있다...

서서히 그런 느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사이 제가 예뻐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여자들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 세월이 흐르고...노인이 된다면

세상의 모든 얼굴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늙어가는 만큼...

당신과 저의 거리도

점점 좁혀져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는 점점 비슷해지고,

또 결국엔 같아질 거란 생각입니다.

 

 

P.S.

 

참지 못하고 박민규 아내를 모방해봤다.

 

나: 내가 못생겨져도 날 사랑할 건가요?

 

그: 네????? 왜요????? 지금 그대로만 늙으면 문제 없다오.

 

나: 죽어도 네-라고 대답해주지 않네요. 박민규보다 못하군요.

 

그: 그는 구라쟁이라오.

 

나: 나는 오빠가 헐크처럼 못생겨도 사랑할 수 있어요.

오빠의 영혼을 사랑하니까요.

 

그: 나는 혜인이의 영혼과 외모를 모두 사랑해요.

-.-

 

 

P.P.S.

 

이 책에서 유일하게 거슬린 부분.

Writer's cut이란 미명 하에 박민규가 덧붙힌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의 또 다른 이야기'는

명백한 사족으로 보인다.

-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지요.

 

아무튼, 심심한 일상을 살고 있는 당신

- 남녀 모두 - 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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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 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행운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서로의 이해가,

오해였음을 깨닫지 않아도 좋았다는 것.

 

 

세상이 멈춘 순간

왜 그런 것들은 보다 상세해지는지,

바람이 없는데도 무엇이 파르르 잠자리의 날개를 떨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구가 정지하기 전까지는,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더는 열아홉 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아홉 살이 아니므로,

다시는 그런 상세한 감정의 파편들을

느끼고 추릴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하고 내가 말했다.

어머니께선 너무 많은 말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단 한 줄도 쓰지 못하셨을 거에요.

그건...제가 소설을 써봐서 알아요.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땐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게 인간이거든요.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형은 작품이에요...그리고 나도 작품이에요.

인간은...작품이에요.

 

 

그해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

누구보다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그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나는 여전했지만 여전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누가 누구와 헤어졌대,

누가 누구를 버렸대...주변의 속삭임에도

마음을 아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 -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무를 키워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는...그렇게까지는 믿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일까지 나에게 일어날까 싶은,

그러니까 당신을 믿는다해도...

고궁의 뜰에 봄이 오고 가을이 오겠지 할 정도로는

믿지 않았던 거에요.

실은 그래서 언제고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생각을 했어요.

그래야만 최대한 상처를 줄일 수 있으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너무 못생겼어요.'

'알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그래서 좋아요.

앞으로는 계속 더 아름다운 모습만 볼 수 있을 테니까.

봄이나...가을의 고궁처럼 말이에요.

부탁이니까, 그렇게 나를 길들여줘요.

 

 

아마도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겨울이었을 것이다.

무엇을 해줄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보잘것없는 기억의 편린조차도

더없이 눈부신 순은의 반짝임으로 떠오른다.

인생에 주어진 사랑의 시간은 왜 그토록 짧기만 한 것인가.

왜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적어도 인간이라면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투병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기적 같은 사랑이란 그런 거라고.

보잘것없는 인간이 보잘것없는 인간과 더불어...

누구에게 보이지도, 보여줄 일도 없는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야.

이쁘지도 않은 서로를,

잘난 것도 없는 서로를...

평생가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릴 일 없는 사랑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인간을, 곧 시시해질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당신이라면 변하지 않을 거야, 그런 생각보다는...

당신에게도 변화가 생길 것이고

또 마땅히 변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점점...당신을 바라는,

당신이 나의 남자이길 바라는

저 자신의 욕구가 두려웠습니다.

 

 

함께한 시간 동안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닮아가고 흡수하고 있엇음을...

좋든 실든, 해서 서로에게 서로가 남아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우리'가 있다는,

그리고 '우리'에게 '내'가 있을 거란 그 사실이

조금은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나도, 잘 지내고 있어.'